해석:독립신문/1896년/5월/14일
광고
[편집]독립신문이 본국과 외국 사정을 자세히 기록하며 정부와 민간 소문을 다 말하며 정치상 일과 농사·장사·의술상 일을 매일 조금씩 기록함.
신문 값 한 장 동전 한 푼, 한달치 동전 십이전, 일년치 일원 삼십 전 선급함.
경향간에 누구든지 이 신문을 받아 파는 이는 장날마다 이조 엽전 한 푼.
물가
[편집]쌀 상품 한 되 3냥 2돈, 중품 한 되 3냥, 하품 한 되 2냥 7돈.
찹쌀 한 되 3냥 7돈.
팥 상품 한 되 2냥 3돈, 5푼 중품 한 되 2냥 2돈 5푼, 하품 2냥.
콩 상품 한 되 1냥 7돈, 중품 한 되 1냥 6돈 5푼. 하품 1냥 4돈.
양목 상품 한 자 2냥 2돈, 중품 한 자 2냥.
무명 상품 한 자 1냥 2돈, 중품 한 자 1냥.
베 상품 한 자 5냥, 중품 한 자 3냥, 하품 한 자 1냥 2돈.
모시 상품 한 자 3냥, 중품 한 자 2냥 2돈, 하품 한 자 1냥 5돈.
석유 1궤 72냥.
소금 상품 1섬 오십 5냥, 중품 1섬 3팔 냥, 하품 1섬 32냥.
면주 한 자 상품 3냥, 중품 2냥 5돈, 하품 1냥 8돈 하더라.
논셜
[편집]근일에 들으니 서울과 인천에서 조선 백성들이 돈이 없으면 외국 사람에게 가서 집을 전당 잡히고 돈을 얻어 쓰고 변리를 할 달에 한돈 변식 주고 쓴다니, 세상에 이런 중변 주는 나라는 조선 밖에 없고 이런 중변 받는 사람도 조선 와 있는 외국 전당국 밖에는 없는지라. 사람이 돈에 몰려 남에게 빚을 얻어 쓰려고 할 때 사세가 급하기에 한 것이니 그 사람이야 후일 생각은 아니하고 다만 우선 돈 얻어 쓸 생각만 있어 변리는 달라는 대로 주고 돈을 얻어 쓴즉, 몇 달이 못 되어 길미가 본전보다 더 하게 되니, 세계에 이런 무리하고 야만에 풍속은 다시 없는지라.
길미가 높은 것은 전당이 없고 아직 갚을 도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연이 전당 있는 사람 보다 높으려니와, 전당을 준 후에는 돈 빌린 사람이 자기 돈 일어 버릴 염려가 없은즉, 자연이 변리가 가벼워야 할지라. 사람의 집을 잡고 돈을 빌릴 때에는 그 돈 잃어버릴 묘리는 조금도 없은즉, 매 삯에 한 돈 변식 받고 돈 취해주는 것은 곧 불쌍하고 가난 한 사람의 집을 도적질 하는 것이니, 어찌 조선 사람보다 문명개화 하였다는 사람들이 이런 무리한 일을 덜 열린 조선 사람에게 행하는지, 다른 사람이 약하고 세계물정을 모른다고 그 사람을 속이고 천대하는 것은 그 속는 사람만도 못한 사람이니, 조선 사람을 이렇게 속이고 천대하는 사람들은 우리 생각에는 그 천대 받는 조선 사람 보다 천한 줄로 더 생각하노라. 설령 집이 삼천 냥 자리면 돈 주기는 천 냥쯤 주고 몇 달 동안이면 그집을 뺏으니, 그 천 냥 변리를 쳐 보거드면 한 달에 서돈 변이나 되니, 이것은 곧 아이의 눈을 가리고 손에 든 떡을 뺏어가는 것이라.
만일 조선 사람이 세계 재리상 규칙을 알고 남과 돈 거래하는 법을 알 것 같으면 이런 일이 물론 없으려니와, 조선 사람들이 세계 물정을 모른즉 이런 봉변을 하고 집 빼앗기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니, 빼앗기는 사람도 불상 하거니와 이렇게 빼앗는 사람은 다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만 천히 보일 뿐 아니라. 후생에 이런 죄로 인연하여 앙화를 받을 날이 있으리라. 나라 마다 길미 주는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 외에 더 받는 사람은 법사에서 더 받아주는 법이 없고 당초에 더 받으려는 것을 금하는 법이라. 조선 정부에서도 이 일에 인연하여 규칙을 정하되 매 삯에 한 푼 이리 변 외에는 주든지 받든지 못 하게 할 것이요, 만일 한 사람이 오천 냥 이상을 빌어 쓰되 튼튼한 전당이 있을 것 같으면 한 양에 한 푼 변을 매 삯에 밖에 함이 옳은지라.
서양 각국서는 좋은 전당이 있으면 매 삭에 매 냥 오리 변만 받아도 큰 길미라 하고 그 외에 길미 더 받는 사람은 도적놈이라 하는데, 조선은 돈이 귀한고로 갑절을 잡아 매 냥 일삭에 한 푼 이리 변만 받아도 돈 빌리는 사람에게도 큰 장사가 될 것이요, 돈 쓰는 사람도 돈 갚기가 과히 어렵지 안 할 것이라. 변리가 경한즉 돈 빌어 쓰는 사람이 더 생길 터이니, 돈 빌리는 사람에게 취리가 더 될 터이요, 사람이 돈을 경변으로 빌기가 쉬운즉 돈을 빌어 가지고 장사 할 사람이 많이 생길 터이니, 국 중에 장사가 많이 생기거드면 그 이는 다만 조선에만 있을 뿐 아니라 각국 사람에게 다 미칠 터이니, 지각 있는 사람이야 어찌 당장 조그만한 이만 취하여 약하고 무식한 사람을 무리이 대접하며, 그 사람의 재산을 억지로 어찌 탈취 하리오. 사람이 차라리 집을 아주 팔아 값을 값답게 받으면 그것이 나으니, 얼마큼 우리는 조선 백성에게 권하기를, 차라리 집을 팔지언정 전당은 잡히지 말고 정부에서도 새로 규칙을 내야, 내외 국민 간에 돈 취대 하는 변리를 아주 정부에서 정해 주고, 외국 사람에게 집전당 잡히는 일은 엄금하기를 바라노라.
관보
[편집]오월 십이일
법부 참서관 김교성 주사 제주 나학규 외부 이사범 임하고 법부 참서관 김교헌 진주 부주사 홍지영 중추원 의관 이근호 면본관
오월 십삼일
장능 참봉 김유증 주사 궁내부 김안수 봉상사 이희주 진주부 장두석 해주부 안세영
왕태자 시종관 이기종 군수 북청 신림 부평 신찬희 무산 유진호 부인 조용하 해남 흥건 문의 김인식 임하고 장능 참봉 이건하 주사 봉상사 서택환 해주부 최창우 군수 북청 조선영 해남 정석진 부안 서상원 의원 면본관 해서리 대신 사무 이재정
외국 통신
[편집]이홍장씨는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러 러시아 정부에서 대접을 잘한다더라. 러시아 병정 일천 오백 이십 칠명이 이달 초 9일 장기(長崎)를 떠나 해삼위로 갔다더라. 일본 신문에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 일을 같이 봐 주자고 하는 담판이 있다고 말들을 많이 하였더라.
잡보
[편집]연안 증산도 김덕기가 물기울서 이달 6일 불한당에게 돈 천량을 빼앗기고 칼에 상하여 모화관 병원에서 나흘 약을 붙이고 갔다더라.
안동 김윤보란 사람이 신문사에 편지를 하였는데 민사 소송을 받지 않은 제가 두서너 달이 되매 경향간에 민송이 산같이 쌓여 백성에게 해로운 일이 많다니 재판소에서 민송을 받아 결치하여 주시기를 우리는 바라노라.
북로선유사 이종건씨가 북도 가서 비도들을 귀화시키고 이달 9일날 올라왔다더라.[1]
각 부 각 군 관찰사와 수령들이 서임하고 부임 할 날 기약이 지내되 서울 집과 혹 시골 집에 있어 지금 비도와 그 전 민요를 끄려 부임을 아니하니 지금은 다른 때와 달라 급히 부임하여 민요와 비도들을 진무하는 것이 옳거늘 안연히 집에 들앉았는 이가 더러 있다니 이런 일은 내부에서 알아서 곧 내려보내어 부임하게 함이 옳을 듯 하오.
아홉 해 전에 운봉군 고인동 민우식이가 오참판 익영에게 논 열 닷 섬지기를 뺏겨서 관할된 지방관에게 여러 해 정소하여도 찾지 못한 고로, 작년 동짓달 6일 서울 고등 재판소에 정하였더니 두 사람의 송사 판결 하기를 오익영 더러 그 논을 내어주라 할 제 내어줄 한까지 받아 주었거늘 한이 지내도 아니 내주기로 민가가 이번에 또 고등 재판소에 와서 정하였다더라.
이달 8일날 밤에 남서 경무관 이종하씨와 총순 이수봉씨가 순검 다섯을 데리고 안 남산에 올라 가서 소나무 베는 도적을 살피고 새벽에 창골과 남문밖 집마다 생소나무 베다 놓았는가 탐지하였거니와 또한 사산에 골작 마다 순검들이 밤이면 소나무 베는 도적을 자세히 살피니 백성들은 미리 알고 죄에 빠지지 않음을 바라노라.
통진 마송리 심능원이가 부자로 동리 배고픈 사람의 집 사십호에 일백사십여명을 정월부터 보리 나기까지[2] 양식을 내어준다니 참 옳은 일이더라.
총과 탄알 육백 아흔 세궤를 해삼위에 사두었다가 이달 10일~11일 남문으로 실어 들여 군부에 두었다더라.
강화 김순석이가 신문사에 보하였는데 본군 서사면 최한길이란 놈이 노름꾼 괴수로 서면 북면 부자의 자손들을 유인하여 재물을 빼앗는다니 인천 경무서에서 최가를 살펴잡아다가 법률대로 다스리기를 바라노라.
순청골 이근풍씨가 부자가 아니로되 그전에 여러골 외임으로 있을 때에도 관황 (官況) 으로 백성에게 보폐 (補弊)한 일이 많거니와 작년 10월에 순천 군수 때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월급 중으로 천여 금을 내어 구제하고 작년 동짓달에 장흥군수를 하여 농사 하는 때가 당하매 날마다 짚신 신고 촌과 논과 밭에 걸어 나가서 농사함을 권하며 월급 중으로 수천여금을 내어 백성들에게 보폐하고 촌간으로 다니면서 밥을 농부들에게 사 먹고 원 노릇을 하니 이 두골은 비도가 없고 백성들이 거리 거리 칭송한다더라.
우쳬시간표
[편집]한성내외
모이는 시간 오전 일곱시 열시 오후 한시 전하는 시간 오전 아홉시 정오 열두시 오후 세시 여섯시
한성-인천간 보내는 시간 오전 아홉시 오는 시간 오후 다섯시 삼십분
한성-개성간 보내는 시간 오전 아홉시 오는 시간 오후 두시 삼십분
한정-평양-의주간 보내는 시간 닷새날마다 오전 아홉시 오는 시간 닷새날마다 오후 두시 삼십분
한성-수원-공주-전주-남원-나주 간 보내는 시간 오전 아홉시 오는 시간 오후 세시
한성-충주-안동-대구-동래간 보내는 시간 오전 아홉시 오는 시간 오후 세시
쥬식회샤
[편집]광청교 북천변에 있는 이 회사는 내부와 군부와 경무청에 수용지물을 공납 하량으로 언약하고 갓과 신과 옷을 상품 물건으로 팔되 비싸지 아니하니 사 가시기를 바라오.
누구든지 신문사에 편지하는 이는 거주성명을 써서 보내야 보지 그렇지 않으면 상관 아니하노라.
잡보 연쇽
[편집]탁지대신 심상훈씨는 이번에 서울로 올라왔고 학부대신 신기선씨도 쉬이 올라온다 하고 궁내대신 이재순씨도 시골 갔다가 올라왔다더라.
계동 궁내서 순검 이갑근이가 이달 10일 사내아이 이름 순갑이를 잃었는데 붉은 당목 저고리에 당목 바지 입고 붉은 당혜 신고 나이는 네 살이니 그 집으로 찾아 보내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