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굴
나오는 사람들
[편집]유 불란… 한국의 이름난 탐정으로써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고아원장 선생과 백희의 청탁을 받고 부처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비밀에 싸인 부처의 암호문을 샅샅이 알아내서 먼 인도양까지 백희, 학준, 원장선생과 원정을 떠나 암호문에 쓰여있는 굴을 찾아 보물을 발견한다.
또 먼저 차지하려는 음흉한 인도인 도둑들과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는 황금물에서 보물을 찾아낸다.
학준… 이 소년은 금년 열 여섯 살인 부모없는 고아지만 옳은 자를 도울줄 알고 의협심이 강해서 고아원에서는 원생들에게 뿐만 아니라, 원장 선생에게도 사랑을 받는 모범생이기도 하다. 한 달 전에 들어온 백희라는 소녀의 부처에 얽힌 사건을 도와 인도인들에게 납치도 되고 고생 고생해 가면서 끝내는 많은 보물을 찾아내어 부처에 얽힌 사건을 용감하게 해결해 나가는 착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백희… 금년 14세의 소녀로 역시 학준 소년과 같이 부모도 친척도 없는 고아이다. 한달 전 아버지께 물려받은 이상한 부처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심마저 갖고 있었으나 학준 소년과 상의끝에 어느날 밤 부처의 귀에서 암호문을 찾아낸다. 그러나 이것을 노리고 있던 인도인 도둑에게 부처를 빼앗긴 후 오랜 시일에 걸친 노력 끝에 학준소년, 유 탐정, 여러 친구들의 협조로 마침내는 비밀을 찾아낸다.
네리… 백회의 부처를 빼앗기 위하여 권투 시합을 구실로 내한한 인도인들 중의 하나로써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자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인들 도둑과 합세하여 부처를 뺏으려고 온갖 만행을 부리지만 결국은 황금관에 있는 굴속에서 요행을 바라다가 뜻하지 않게 뱀에 물려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용감한 소년
[편집]여기에 무척 재미있고, 무척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있읍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하고도 이상야릇한 황금굴(黃金窟)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 보면 황금굴이란 대체 무엇이며,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학준(學準)이란 소년은 금년 열 여섯 살인 부모 없는 고아(孤兒)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곱 살 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고아원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학준 소년이 살고 있는 고아원에는 학준이와 같이 부모도 없고, 의지할 친척도 없는 불쌍한 소년 소녀들이 한 삼십 명 가량 되는 가운데서 학준이처럼 본받을만 한 애는 적었읍니다. 그는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용감히 싸울 뿐만 아니라, 약하고 옳은 자를 도와 주고, 강하고 나쁜 자를 용서치 않고 부셔대는 의용심(義勇心)이 남보다 한층 더 굳세였읍니다.
그래서 학준 소년은 원장(院長) 선생님으로부터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 애들은 그를 자기 친 형제와도 같이 따르고 좋아했읍니다.
그런데, 지금 학준이가 있는 고아원에는 바로 한달 전에 백희(白姬)라는 무척 귀여운 소녀가 들어왔읍니다.
백희는 금년 열 네 살, 역시 부모 친척도 없는 불쌍한 애인데, 한달 전까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백희는 그만 사정 없는 병마에 아버지를 빼앗기고 보니 가난한 살림살이라, 부득이 고아원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이 재미나고 무서운 이야기는, 그 때 백희가 가지고 온 조그마한 부처(佛像)를 빼앗고자 매일 밤처럼 시꺼먼 그림자가 백희의 신변에 나타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학준이는 백희가 고아원으로 오는 날, 얌전하고 귀여운 백희의 얼굴도 퍽 사랑스러웠으나, 그 보다도 한층 더 학준이의 마음을 끈 것은 백희의 품 안에 안기어 있는 조그마한 부처님이었읍니다. 아니, 학준이만이 아니였읍니다. 고아원 뜰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소년 소녀들은 이 새로 들어온 백희를 쭉 둘러싸고 백희가 안고 있는 이상한 부처를 쳐다보았읍니다.
그것은 구리(銅)로 만든 것인데, 키가 한 뼘이나 될락 말락한 조그마한 부처님입니다. 여러 아이들은 부처님을 안고 갓 들어온 백희를 이상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 들여다 보다가,
“너 절에서 왔구나.”
하고 물었으나, 백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눈만 말뚱말뚱 빼앗기지 않을 셈으로 더 한층 꽉 부처를 붙안았읍니다.
그 때, 산동(山童)이라는 그 중 키가 큰 사내 아이가 여러 아이들을 휘둘러 보면서,
“얘들아, 얘는 절에서 왔다. 얘 아버지는 중인가 봐. 중의 딸! 아아, 중의 딸!”
하고 놀려댔읍니다. 여러 아이들도 산동이와 같이,
“아아, 중의 딸! 아아, 중의 딸!”
하고, 떠들면서 백희의 품에서 부처를 빼앗아 가지고는 공을 던지듯이 이리저리로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뒤뜰로 뛰어갔읍니다.
백희는,
“으와.”
하고 울면서 달라고 졸랐으나, 아이들은 좀체로 부처를 백희에게 돌려줄 생각은 안 하였읍니다.
그 때, 안으로 들어갔던 학준이가 뛰어나와 보니 백희가 외로이 서서 울고 있지 않겠읍니까.
“울지 말아. 내가 네 부처를 빼앗아 주마.”
학준이는 훌쩍훌쩍 우는 백희를 데리고 뒤뜰로 뛰어갔읍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부처를 가지고 떠들고 있었읍니다.
“산동아, 그 부처는 백희의 것이니 이리 내라.”
하고, 학준이는 점잖게 말했읍니다. 산동이는 잠간 동안 잠자코 학준이를 흘겨보더니,
“흥, 백희의 것을 네가 어째 가로 맡아 가지고 그러는 거야? 또 원장님께 칭찬 받고 싶은가 봐. 흥, 건방지게!”
산동이는 항상 학준이를 싫어하였읍니다. 자기는 학준이보다 나이도 한 살 위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원장 선생님은 학준이만을 모범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척 얄미웠읍니다.
“빨리 이리 내라.”
“못 내겠다.”
“정말 안 낼 테니?”
“못 내겠다.”
그 순간, 앞에 서 있던 백희는 온 몸이 오싹 하였읍니다. 학준이의 몸뚱이와 산동이의 몸뚱이가 서로 한테 얽히어진채 땅 위에 넘어져서 이리 부대끼고, 저리 부대끼는 것을 눈 앞에 볼 때, 자기를 위해서 싸워주는 학준이가 마치 무슨 이야기에 나오는 용사(勇土)와도 같이 보이었읍니다. 백희의 가슴은 자못 기쁨과 흥분에 떨릴 뿐이었읍니다.
그러나, 두 아이의 싸움은 곧 끝났읍니다. 원장 선생님이 뒤뜰로 나오시는 것을 본 산동이가 부처를 내던지고 앞뜰로 달아나고 만 까닭입니다.
학준이는 부처를 백희에게로 내주며,
“그런데, 이 부처는 어디서 났니?”
백희는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약간 숙이며 대답하였읍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내게 준 건데…… 이 부처님에는 이상하고도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단다.”
“무서운 이야기?”
학준이는 몸이 오싹해졌읍니다.
백희의 이야기
[편집]백희가 가지고 있는 이 부처님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니 대체 어떠한 이야길까?…… 하고 학준 소년은 한편으로는 듣기가 무척 무서웠읍니다.
“무서운 이야기라니, 어떤 이야기냐?”
종내 학준이는 묻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백희를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데리고 갔읍니다.
“응, 무척 무섭고도 이상한 이야기란다.”
학준이와 백희는 느티나무 아래에 나란히 앉아서 그 무서운 이야기가 서리어 있다는 조그만 부처를 앞에다 세워 놓았읍니다.
“어디 이야기해 봐.”
“응, 그럼 이야기하마. 그런데, 이것은 누구보구도 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천번 만번 당부한 이야긴데…… 그래도 학준아,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이야기 할테야.”
“그럼 이 부처에 무슨 비밀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말인가?”
“응, 만일 이런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어 지면 큰 일 난대. 그렇게 되면 이 부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단히 위태롭대. 잘 못하면 누구한테 칼에 찔려 죽기 쉽다고, 아버지께서 그러셨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백희도 몸을 부르르 떨었으며, 그런 이야기를 듣는 학준이도 몸에 소름이 돋았읍니다.
“그럼 그렇게 위태로운 것을 뭣하러 가지구 다녀? 한시 바삐 버리지 않구……”
“응, 그렇긴 그래두 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이 부처를 잘 공경하고 위하면 우리 나라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된다는데. —자아, 좀 들어 봐. 내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할테니…… 이상한 이야기야.”
백희가 학준이에게 한 이상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읍니다.
백희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외국으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메리카로 해서 구주(歐洲)를 거쳐 아라비아와 인도를 지나 (여러분 수고로운대로 세계 지도를 펴 보시면 똑똑히 알 것입니다) 바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히말라야 산맥까지 다달았을 때였지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히말라야 산맥은 남 쪽과 서 쪽이 인도, 북쪽이 서장(西藏……티베트), 그리고 동쪽이 버어마입니다. 지금은 독립을 하였지만 그때는 버어마가 영국 영토(領土)로 되어 있던 사실도 여러분은 지리 시간에 벌써 배웠을 줄 믿습니다.
그것은 그만하고 백희의 아버지가 바로 이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지나 본부(支那本部)를 향하여 걷고 있던 어떤 날 저녁 때였읍니다. 해는 서산을 향하여 뉘엇뉘엇 넘어 가고 있었으나, 이 험준한 산골에는 하룻밤을 쉬어 갈만한 인가(人家)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읍니다. 하는 수 없이 백희의 아버지는 어떤 커다란 나무 아래다 짐을 내려 놓고 하룻밤을 쉬일 셈으로 누워 있노라니까 황혼이 보얗게 깔린 저녁 산 비탈 길을 어떤 부인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이 편으로 쫓겨오는 것이 보이며, 그 뒤로 역시 말을 탄 사나이들이 따라 오고 있지를 않겠읍니까.
그 인도 부인은 백희 아버지가 누워 있는 옆까지 달려오더니 그만 기진맥진하여 말에서 툭 떨어졌읍니다. 보니, 부인의 가슴에서는 새빨간 핏줄기가 마치 샘물과 같이 쿨렁쿨렁 용솟음치고 있었읍니다.
그 인도 부인은 나이가 이십 오륙 세 가량이나 되었을까, 얼굴은 비록 검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찬란한 의복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보매 결코 수다라족(首陀族)―(인도에서 제일 천대를 받는 계급)은 아니었읍니다. 틀림없는 왕족(王族)이라고 백희의 아버지는 생각했읍니다.
그 부인은 처음에는 인도 말로 무엇이라고 중얼거렸으나, 백희 아버지가 인도 말을 모르는 줄을 알고 다음에는 영어로,
“저를 구해 주시오. 저는 지금 무서운 산적(山賊)에게 쫓기고 있읍니다!”
하고 애원을 하였읍니다. 그 가엾은 소리를 듣자마자 용감한 백희의 아버지는 달려 가서 그 부인을 안아 일으킨 다음에 역시 영어로,
“당신은 권총을 가지고 있읍니까?”
하고, 물었더니, 부인은 주머니에서 한 자루의 권총을 꺼내 주었읍니다.
권총을 받아 쥔 백희의 아버지는 빠른 솜씨로 자기의 의복을 벗어서 부인에게 입히고, 부인의 의복을 벗기어 자기가 입은 후, 나무가지를 꺾어서 쓰러져 있는 부인의 몸을 보이지 않게 덮어 버렸읍니다. 그리고는 부인의 말을 타고 이편 쪽으로 달아났읍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산적들은 백희의 아버지를 그 인도 부인인 줄로만 알고 어디까지나 백희의 아버지를 따르고 있었지요. 해는 어느덧 히말라야 산맥 저편 쪽으로 떨어져 버리고 캄캄한 어둠의 장막이 산 골짜기를 덮어 누를 때, 백희의 아버지는 산적들을 피하여 다시 그 인도 부인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돌아왔읍니다.
돌아와 보니 아아, 이 얼마나 딱한 일입니까! 산적의 총에 맞은 그 부인은 백희의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읍니다.
그 죽어 버린 시체 옆에 한 장의 편지와 아울러 지금 백희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부처가 놓여 있었읍니다.
백희의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먼저 부인이 써 놓은 편지를 읽어 보았읍니다.
“―누구신지 알지는 못하오나 저를 구하고자 있는 힘을 다하여 주시는 당신께 저는 저 인도양(印度洋)보다도 더 깊은 감사를 드리나이다. 그 깊고 깊은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을 작정으로 저는 이 조그만 부처를 당신께 올립니다. 저 무서운 산적들이 저를 죽일려고 따라온 것도 사실은 이 부처를 빼앗고자 한 것에 틀림이 없읍니다. 저의 조상은 쿠샤토리야(刹帝利―인도의 왕족)입니다. 그런데, 저의 선조가 수 많은 금은 보배를 어떤 섬에다 묻어놓고, 그 장소(場所)를 가리키는 어떤 암호(暗號)가 이 부처 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데, 제가 아무리 그 암호를 찾아낼려고 애를 썼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읍니다. 만일 당신께서 특이한 재주를 가지셨다면 그 암호를 발견하여 저의 선조가 감추어둔 수 많은 금은 보배를 파내어 가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하실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부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신변에는 항상 위험과 두려움이 떠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할아버지와 저의 아버지도 무서운 산적의 손에 죽었으며, 지금 저 역시 산적의 총알을 가슴에 받고 몇 시간 후에는 죽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백희의 아버지는 그 귀중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부처를 가지고 서울로 돌아와 지금까지 그 암호를 발견하고자 갖은 애를 다 썼으나 종래 찾지를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백희는 눈물을 흘리며서 이 기나긴 이야기를 처음 만난 학준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이야기 하였읍니다.
바로 그 때였지요. 수상한 인도 사람의 그림자가 고아원 문 앞으로 얼씬하고 지나가는 것을 본 백희는 그만
“악!”
하고, 고함을 쳤읍니다.
부처님의 귀
[편집]“백희야, 너 왜 그러니?”
학준 소년도 놀래서 백회의 팔목을 부여잡으면서 물었읍니다.
“인도 사람이…… 수상한 인도 사람이 인제 방금 저 대문 앞으로 지나갔어! 우리들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뭐? 인도 사람이?”
“응, 수상한 인도 사람이…… 얼굴이 시커멓고…… 아이 무서워!”
“가만, 거기 있거라. 내 나가 보구 오마.”
학준이는 부처를 백희의 치마 속에다 감춘 후에 나는 듯이 대문 밖으로 달음박질 해 나갔읍니다. 그러나, 백희가 보았다고 하는 그 수상한 인도인의 그림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읍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 고아원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읍니다. 누구는 달 밤에 고아원 뒤뜰에서 괴상한 인도인을 보았다고도 하며, 또 누구는 밤에 자다가 가만히 눈을 떠 보니까 수염이 덥수룩하니 난 인도 사람이 깊이 잠들어 있는 백희의 옆에서 두룩두룩 하면서서 있더라는 말이 떠돌았읍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백희는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었읍니다.
그런데 어떤 날 밤, 학준이와 백희는 여러 아이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없는 옆 방으로 들어갔읍니다. 전등을 켜 놓고 들창 옆에 놓여 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끼고 마주 앉아서 그 이상한 부처를 자세히 조사해 보기로 하였읍니다.
이리하여 학준이와 백희는 밤이 깊도록 부처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여 보았읍니다만 거기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던 중 학준이가 문득,
“가만 있자. 이 부처님의 오른편 귀가 약간 움직이누나!”
하고, 백희의 얼굴을 쳐다보았읍니다.
“뭐, 귀가 움직여? 어디 봐.”
하고 백희는 목을 늘였읍니다.
“자아, 이것 좀 봐. 부처님의 귀가 움직일 줄이야 누가 알아?”
“정말 차츰 차츰 귀가 나오는구나.”
학준이가 부처의 오른편 귀를 쥐고 마치 나사못을 비틀어 빼듯이 읜 편으로 자꾸만 틀수록 귀는 점점 머리에서부터 빠져 나왔읍니다.
아아, 여러분, 이 이상한 부처님 속에서 대관절 무엇이 나올 것이며 어떠한 기적이 생기겠읍니까? 저 히말라야 산 골짜기에서 무서운 산적의 손에 죽은 그 인도 부인이 남겨 놓고 간 편지는 과연 사실이었던가, 거짓말이었던가?……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합니다. 불쌍한 소년 소녀들은 지금 옆 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꿈결에 만나 가슴에 서리었던 만단 사연을 주고 받고 할 것이며, 기쁨에 웃는 애도 있고, 슬픔에 우는 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준이와 백희만은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이 부처님의 오른 편 귀에서 무엇이 나오나?…… 하고 떨리는 가슴을 억제해 가면서 묵묵히 앉아 있었읍니다.
그 순간― 나사못 같이 생긴 부처님의 귀가 쑥 하고 빠져 나오자마자 연거푸 딸딸 말린 조그만 종이 조각이 딸랑하고 테이블 위에 떨어지지 않겠읍니까.
“아아, 암호다. 암호다! 그 인도 부인의 조상이 써 놓은 암호문이다.”
학준이는 미친 듯이 부르짖었읍니다.
“백희야, 백희야! 이것만 있으면 너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될 것이다.”
“정말일까?”
“정말이구 말구.”
아아,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랐읍니다. 영어처럼 가로 쓴 글인데, 아마 인도 말이겠지요.
인도의 도적
[편집]“아아, 인도 말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원장 선생님께 인도 말을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물어볼까?”
“응 그래, 내일 아침에 물어보자.”
이리하여 학준이는 다른 종이 조각에다 그 암호문과 꼭 같이 써 가지고 그것을 내일 원장 선생님께 뵈일 셈으로 주머니에 잘 넣었읍니다. 그리고 부처에서 나온 암호문은 다시 부처 속에다 넣은 후에 나사못을 비틀듯이 귀를 부벼서 꼭 맞추어 두었읍니다.
아아, 백희의 아버지가 일생을 두고도 발견하지 못한 이 암호문을 드디어 발견하였으니 백희와 학준이의 마음이야 오죽이나 기쁘겠읍니까. 부처의 귀가 나사못 같이 되어 있을 줄이야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읍니까.
“아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시나 보다!”
하고 둘이는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읍니다.
“백희야, 너 인제 산더미 같은 돈이 네 것이 되면 어떡할테야?”
“난 절반은 나라에 바치고 그리고 절반은 우리들과 같이 부모 없는 불쌍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테야.”
“옳지, 국방 헌금을 하고 남은 돈을 가지고 훌륭한 고아원을 세우자. 백화점처럼 커다란 집을 지어 놓구, 그리고 전국에서 불쌍한 아이들을 죄다 모아다가 공부도 시키고, 운동도 시키고…… 아아, 그러고 백희야, 너는 여자 반의 모범생이 되고, 나는 남자 반의 모범생이 되고……”
“아아, 참 기쁘다. 난 좋아! 학준이 너두 기쁘지!”
바로 그 때였읍니다. 들창 문이 획하고 열리자마자 수염이 부스스 난 무서운 인도인이 쑥 나타나서 테이블 위에 놓였던 부처를 독수리처럼 커다란 손으로 덥썩 잡아 쥐고 달 빛이 희미한 대문 밖으로 달아났읍니다.
“앗!”
하고, 학준이와 백희는 고함을 치고는 그만 얼빠진 사람처럼 잠시 동안을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다가 다음 순간, 용감한 학준은
“백희야, 저놈은 저 히말라야 산 골짜기에서 그 인도 부인을 죽인 무서운 도적이다. 만일 저 놈의 손에서 부처를 빼앗아 오지 않으면 저 놈이 우리들보다 먼저 그 수 많은 금은 보배를 파낼 것이 아닌가. 나는 저놈을 따라가서 부처를 빼앗아 올테니 백희야, 너는 이것을 잘 건사했다가 내일 아침이 되면 한시 바삐 원장 선생님께 보여라.”
하고 종이 조각에 써 놓았던 암호문을 백희에게 내 주었읍니다.
“학준아, 가지 말아. 잘못하면 그놈한테 죽을지도 몰라. 응, 가지 말아!”
그러나, 그 때는 벌써 문을 박차고 뛰어나간 학준이의 뒷 모양이 환하게 비치는 달 빛을 등지고 대문 밖으로 달아나고 있었읍니다.
“아아, 학준의 몸에 불행이 없기를……”
백희는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저도 아지 못할 무슨 큰 힘 앞에 머리를 숙였읍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밝기 쉬운 여름 밤이 어느덧 새었으나, 무서운 산적을 따라 간 학준이는 도무지 돌아올 줄을 몰랐읍니다.
“언제나, 돌아올까, 언제나 돌아올까?”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더욱 안타까워가고 저 흉악한 도적들에게 붙들리어 시퍼런 칼에 찔리우는 가련한 학준의 신세를 눈 감고 상상할 때, 백희는 목을 놓아 울고 싶었으며, 제가 대신 칼에 찔려 죽고도 싶었읍니다.
학준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학준아, 학준아! 무사히 돌아오너라!”
날이 밝자 백희는 기다리다 못하여 사무실로 원장 선생님을 찾아 들어갔읍니다.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를 찬찬히 말한 후에 한시 바삐 학준이를 찾아 달라고 애원을 하였읍니다.
원래 원장 선생님은 학준이를 대단히 귀여워하던 터이라, 백희의 말에 크게 놀라면서,
“음, 그런가! 언젠가 나도 수상한 인도인을 근방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면 그 놈이 부처를…… 음, 큰일났구나!”
원장 선생님은 자비심이 대단히 많으신 분이며, 불쌍한 고아들을 마치 자기 아들과 같이 사랑하였읍니다. 오십이 가까운 중늙은이었읍니다.
“원장 선생님, 학준이를 빨리 구해 주세요. 무서운 인도인 도적이 학준이를 붙들어 갔나 봐요.”
백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걸을 하며 원장 선생님 팔목에 매달렸읍니다.
원장 선생님은 한참 동안 묵묵히 앉아서 백희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보더니,
“어디, 그 암호문을 보자.”
“네, 여기 있읍니다.”
하고 백희는 학준이가 적어 놓은 종이 조각을 꺼냈읍니 다.
“음, 이것은 인도 글자니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그 때, 원장 선생님은 인도 말을 잘하는 친구― 저 유명한 탐정인 유 불란(劉不亂)씨의 생각이 문뜩 머리에 떠올랐읍니다.
“아, 그렇다. 유 불란 씨를 찾아가자.”
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분주스레 앞뜰로 뛰어 내려갔읍니다. 뛰어 나가서 여러 아이들을 모아 놓고 대강 이야기를 한 다음에 학준이를 찾아 보라고 명령을 하였지요. 아이들은 으와 으아 떠들면서 대문 밖으로 뛰어 나갔읍니다.
“자아, 백희야, 너는 나하고 곧 유 불란 탐정을 찾아가자.”
하고, 백희의 손목을 잡아 끌었읍니다.
유 불란 선생
[편집]명탐정 유 불란 선생은 시내 태평동에 계십니다. 백희와 원장 선생님은 광화문 앞에서 전차를 내려 남대문쪽 으로 한참 걸어가다가 오른 편 골목을 조금 들어가면 눈 앞에 커다란 양옥이 보입니다.
“저 것이 유명한 유 불란 선생님의 댁이다.”
원장 선생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백희를 앞세우고 정문을 들어섰읍니다. 현관까지 가서 원장 선생님이 초인종을 누르니 늙은 할멈이 나와서,
“누구십니까? 선생님은 아침 산책에게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뎁쇼.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오실 겁니다.”
“아 그러면 기다리지요. 나는 유 불란 씨의 친구요.”
“그럼 이리 들어오시지요.”
할멈의 인도로 원장 선생님과 백희는 호화로운 응접실로 들어가서 명탐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읍니다.
백희는 가슴이 조마조마했읍니다. 자기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유 불란 선생이라는 명탐정은 과연 저 무서운 인도인의 손으로부터 부처를 빼앗을 수가 있으며 학준이를 무사히 구해낼 수가 있을 것인가?……
“유 불란 선생이란 어떻게 생기신 분이예요?”
하고, 백희가 물었읍니다.
“음, 키가 늠름한 훌륭한 분이다.”
하고, 원장 선생님이 설명하던 바로 그 때였읍니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응접실 문이 벙싯 열리지 않았겠읍니까. 그 순간 백희와 원장 선생님은,
“앗―!”
하고,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여러분, 보시요. 두 사람 앞에 지금 나타난 사람, 그것은 기다리던 유 불란 선생이 아니고 어젯밤 부처를 빼앗아간 시꺼먼 인도인이었읍니다.
“저 놈이 부처를……”
백희는 원장 선생님의 품 안에 안기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인도인을 가리켰읍니다만, 그 인도인의 도적은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듯이 그 표정 없는 얼굴로 방 안을 한 번 휘이 둘러보았읍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은 용감하셨읍니다. 백희를 품에 꼭 껴안고 인도인 앞으로 두어 걸음 선뜻 나서면서 부르짖었읍니다.
“네가 백희의 부처를 도적한 놈이면 이 자리에서 곧 부처를 내 놓아라!”
그러나, 인도인은 아무 대답도 없이 한참 동안 묵묵히 서 있더니 인도 말로 무엇이라고 중얼거렸읍니다만 백희는 한 마디도 알아 듣지를 못했읍니다.
“원장 선생님, 저 놈이 히말라야 산골짜기에서 그 불쌍한 인도 부인을 죽인 무서운 도적……”
떨리는 목소리로 백희가 그렇게 외쳤을 때, 어찌 된 일인지, 인도의 도적은 한 번 빙그레 웃고 나서 한국 말로
“네가 부처를 도적 맞은 백희라는 애로구나.”
하고, 이번에는 원장 선생님을 향하여,
“원장 선생님, 수고로이 오셨읍니다. 원아(院兒)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원장 선생님께서 학준이라는 소년이 돌아오지를 않으니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이겠읍니까. 그래 절더러 부처와 학준이를 찾아오라는 말씀입니까?”
그 때서야 원장 선생님도 그것이 명탐정 유 불란 씨인 줄을 알고 크게 놀랐읍니다.
“아니, 사람을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다니, 에이 나쁜 사람이로군.”
“하하하하 원장 선생님, 노하셨군요. 용서하시오. 사실은 어느 때나 한 번은 원장 선생님이 저를 찾아 와서 인도인으로 변장(變裝)을 하여 그 도적들의 소굴로 들어가 부처와 학준이를 찾아오라는 분부가 있을 듯 싶어서 미리 한번 시험을 해 본 것입니다.”
유 불란 탐정은 그리고 또,
“하하하하하……”
하는 웃음을 남겨 놓고 밖으로 나갔읍니다.
아마 세수를 하고 의복을 갈아 입을 작정이겠지요.
백희는 참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탐정은 변장을 잘 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렇게 신통하게도 똑 같이 변장 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겠읍니까. 유 불란 탐정은 기필코 학준이를 구해 내리라 백희는 굳게 굳게 믿었읍니다.
그 때, 유 탐정이 의복을 갈아 입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키가 후리후리한, 허우대가 대단히 좋은 훌륭한 신사였읍니다.
원장 선생님은 유 탐정과 마주 앉으며,
“그런데, 대관절 어떻게 된 셈이요? 부처가 도적 맞은 줄은 어떻게 알았소?”
하고, 물었읍니다. 탐정은,
“하하……”
하고 웃으며,
“그거야 내 직업이니 만큼 모를 리가 있겠읍니까?…… 그러나 사실은 아까 삼청동 공원 옆으로 산책을 하고 있노라니까 고아원 애들이 숲 속으로 무엇을 찾아 다니겠지요. 이상해서 물었더니, 학준이라는 용감한 소년이 부처를 빼앗을려고 수상한 인도인을 따라 가서 아직도 돌아오지를 않는다고요. 그래 기필코 원장 선생님께서 저를 찾아오실 줄 알고― 하하하하하.”
그랬던가! 그 때야 백희도 모든 것을 알았읍니다.
“그런데, 원장 선생님. 좀 자세한 이야기를 하여 주십시요. 대체 부처는 어디서 난 부처며, 구리로 만들었다는 조그마한 부처가 무엇이 그리 귀중하길래……”
그래서 원장 선생님은 백희의 아버지가 히말라야 산골짜기에서 어떤 인도 부인에게서 얻었다는 데서부터 세세히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읍니까. 그랬더니 탐정은,
“허어, 참 재미 있는 이야기로군요. 어디 그 암호문이 쓰여 있는 종이 조각을 좀 보여 주시지요.”
이상한 암호문
[편집]원장 선생님은 학준이가 적은 암호문을 탐정에게 내주었읍니다. 탐정은 받아 들고 한참 동안이나 묵묵히 들여다 보며 이상한 듯이 머리를 끄덕끄덕 하였읍니다. 원장 선생님이,
“인도 말이지요?”
하고, 안타까운 듯이 물었읍니다.
“네, 글자는 물론 인도 글자인데, 도무지 말이 붙지를 않는군요.”
탐정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읍니다. 원장 선생님은 눈썹을 모으며,
“대관절 뭐라고 쓰여 있소?”
“이렇게 쓰여 있읍니다. 내가 인제 우리 나라 말로 번역을 해 드릴테니 원장 선생님께서는 수첩에다 적어두시오. 이 원문(原文)까지 또 잃어서는 안 될테니까요.”
원장 선생님은 만년필과 수첩을 꺼내 들고 탐정의 입술을 바라봅니다.
“자아, 읽을테니 적으시오.”
“네에.”
성천(聖川)이 흐르는 바다,
용(龍)을 탄 닭(鷄)이,
적도(赤道)를 걸어가니,
달은 어디 있느냐,
닭의 머리 위에,
주둥이의 그림자가 내리는 곳,
거기서 남으로 백보(百步)
거기서 동으로 삼십 보,
거기서 북으로 십 보,
거기서 서로 이 보,
그것은 누구의 것이냐,
발견하는 사람의 것.
“적었읍니까?”
유 불란 탐정이 물었읍니다.
“네, 적기는 했소만 이게 대체 무슨 뜻이요?”
“아직 똑똑히는 알 수 없읍니다만, 아마 그 수 많은 보배를 감추어 둔 곳을 가리키는 암호겠지요.”
“허어, 그러면 그 인도 부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말이요?”
“참,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이라고 믿을 수 밖에는 없읍니다.”
“네, 마치 무슨 재미 있는 탐정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구먼요.”
“탐정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고,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는지도 모르지요.”
암호문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 보는 유 불란 탐정의 두 동자에는 타는 듯한 호기심이 이글이글 타 올랐읍니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 모양으로 중얼거리면서,
“―성천이 흐르는 바다?…… 음, 그것은 그렇고…… 그런데, 대체 용을 탄 닭이란 무엇인가?…… 알 수 없다.…… 달은 어디 있느냐? 닭의 머리 위에…… 주둥이의 그림자가 내리는 곳…… 음―.”
탐정은 혼자 말로 암호문을 외우듯이 읽습니다. 그리고,
“용을 탄 닭? 용을 탄 닭?….”
하고, 두어 번 외치더니 원장을 향하여,
“장 선생님, 나는 인제 곧 도서관에를 다녀와야겠읍니다.”
하고 의자에서 일어난 바로 그 때, 할멈이 산동이를 데리고 들어왔읍니다.
산동이는 목이 마른 듯이 헐떡거리면서,
“원장 선생님께서 여기 오셨다는 말을 듣고 곧 달려왔읍니다. 우리들은 셋씩 패를 지어 학준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아주 이상한 것을 보았읍니다.”
“뭐, 이상한 것?……”
탐정과 원장 선생님은 동시에 물었읍니다.
백희는 학준이가 무사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면서 자기를 그처럼 놀려 먹기를 좋아하던 산동이가 지금 보니 본 마음으로 나쁜 아이는 아닌듯 싶었읍니다.
“이상한 것이라니 빨리 말을 해 봐라.”
부리나케 재촉하는 유 불란 탐정.
산동이는 두어번,
“후우―”
하고, 숨을 내쉬인 후에 입을 열었읍니다.
“저하구 영길(永吉)이하구 인애(仁愛)하고― 그렇게 셋이서 종로 거리를 뒤지기로 정하고 이리 저리로 뒤졌는데 말씀이죠. 바로 종로 네거리 종각(閣) 앞에까지 가 보니 한길에 분필(白墨)로 학준―이라구 쓰여 있겠지요.”
“음, 그래서?”
“그래서 하도 이상하길래 남대문 앞으로 또 한참 걸어가 보니, 한국 은행 앞에 학준이라는 이름이 또 쓰여 있었읍니다. 그러구는 남대문 앞에 또 하나 쓰여 있고, 맨 나중에는 서울역 개찰구(開札口) 앞에서 또 하나 발견했읍니다. 아마 학준이는 자기가 걸어간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그렇게 제 이름을 써 놓으면서 인도인을 따라 간 모양이 아닐까요?……”
하고, 산동이가 탐장과 원장을 쳐다보았을 때였읍니다.
유 불란 탐정은 돌연 테이블 위의 전화기를 들더니, 바삐 다이알을 돌렸다.
“아, 한국 호텔이요?…… 그런데 수일 전부터 당신네 호텔에 인도서 온 권투 선수들이 들어 있지 않았소? 그래 그들이 아직도 당신네 호텔에 묵고 있읍니까?…… 뭐, 떠났다―?…… 어젯밤에…… 음―.”
탐정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구름처럼 떠돌았읍니다.
“인도서 온 권투 선수라니?……”
하고, 원장이 묻는 말에 유 탐정은,
“두 주일 전 홍콩서부터 인도인 직업 권투 선수(職業拳鬪選手)들이 와서 사흘 동안 서울 운동장 링에서 시합을 했는데, 그 놈들이 바로 저 무서운 도적들이었읍니다. 그리고 용감한 학준 군이 제 이름을 한길에다 써 놓은 것을 보면 물론 그들에게 붙들리어 간 것이 아니고, 그들의 뒤를 따라 간 것이 틀림 없지요.”
괴상한 전보 한 장
[편집]유 불란 탐정의 설명을 듣고 원장 선생님은 일층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럼 그 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하고, 백희와 산동이가 물었읍니다.
“글쎄, 그것이 문제다. 학준이가 서울역 개찰구 앞에 제 이름을 써 놓은 것을 보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탄 것은 확실하다. 아, 가만 있자! 내가 역장(驛長)에게 전화로 물어 보마.”
유 탐정은 또 다시 전화기를 들었읍니다.
“아, 역장이시오? 그런데, 어젯밤 인도인 일행이 서울역에서 차를 탔을텐데 어디로 가는 차를 탔는지, 알 수 없읍니까? 네네, 인천 가는 차를 탔을 것 같은데, 수고롭지만 좀 조사해 주시오…… 아, 그래요? 역시 인천 가는 차를 탔어요? 분주하신데 대단히 고맙습니 다.”
탐정은 전화기를 놓으며 명령하듯이,
“원장 선생님, 그 놈들은 인천서 홍콩(香港)가는 기선을 타고 우리 나라를 떠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홍콩 가는 기선은 내일 오후 세 시에 출범하게 되니까 그 때까지는 그 놈들이 인천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학준이도 물론 인천까지 따라 갔겠지요. 그러니까 원 장 선생님은 곧 인천으로 가셔서……”
바로 그 때였읍니다. 영길이와 인애가 뛰어 들어오면서
“원장 선생님, 백희에게 전보가 왔어요. 학준이 한테서……”
하고, 한 장의 전보를 내놓았읍니다.
“뭐, 학준이 한테서…… 전보가?……”
하고, 유 탐정은 크게 놀라며 전보지를 받아서 급히 펼쳐 보더니, 얼굴 빛이 갑자기 새파랗게 변하며 이마에는 수심이 가득 찬 두 줄기의 주름 살이 잡혀졌읍니다. 원장도 근심스러워서,
“대체 무슨 전보요?”
하고, 물었으나 유 불란 탐정은 아무 대답이 없었읍니다.
학준이가 백희에게 보낸 전보는 다음과 같았읍니다.
- ―백희야, 내가 어젯밤에 적어 준 그 암호문의 종이 조각을 아무한테도 보이지 말고 곧 인천으로 오너라. 오늘 밤, 아홉 시 반에 월미도(月尾島)로 건너 가는 방파제(防波堤) 옆에서 만나자. 꼭 오너라. 학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셈이요?”
하고, 원장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유 탐정을 쳐다보았읍니다. 유 탐정은,
“학준 소년이 어젯밤에 이 암호문을 종이 조각에 따로 적은 것은 원장 선생님께 보이려고 한 것이 분명한데…… 이제 와서는 아무한테도 보이지 말라고 했으니 이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음! 참 이상한 일이로군!”
“하여튼 원장 선생님은 이제 곧 애들을 데리고 인천으로 가서 학준 소년을 찾아 보시요. 나는 백희와 함께 오후 다섯 시 차로 갈테니 인천 정거장에서 만납시다. 한 시라도 아니, 일분 일초라도 빨리 가야 합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학준 소년의 몸이 위험하니까요.”
그 때, 백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선생님, 그럼 학준이가 그 놈들에게 붙들렸나요?…… 선생님, 좀 알으켜 주세요. 그리구 학준이를 빨리 구해 주세요!”
하고,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애원을 하였읍니다.
“오냐, 오냐, 아무 걱정 말아. 너는 나하고 이따 다섯시 차로 인천 구경을 가자. 인천은 참 놀기 좋은 곳이다.”
유 탐정은 그렇게 백희를 달랬읍니다만 백희의 가슴은 무서움과 슬픔에 터질 것 같았읍니다.
이리하여 백희와 유 불란 탐정은 다섯 시 차로 가기로 하고 원장 선생님은 먼저 산동이, 영길이, 인애― 이렇게 세 아이를 데리고 서울역 정거장에서 인천 가는 차를 탔읍니다. 학준이는 인천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선 태양호
[편집]원장 선생님이 세 아이들을 데리고 인천역에 내린 것은 열 두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읍니다. 그러나 월미도 해변도 찾아 보고, 축항(築港) 근처도 모조리 뒤져 보았으나 학준이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오늘 밤, 아홉 시 반에는 학준이가 백희를 만나려고 방파제 옆까지 나오겠다는 전보가 온 것을 생각하니 원장 선생님은 다소 안심이 되어 밤 아홉 시 반만 되기를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읍니다.
그런데, 오후 다섯 시 차로 오겠다는 유 불란 탐정이 다섯 시가 지나도 오지를 아니 하니 또 한편 걱정이었읍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학준이가 백희와 만나자는 아홉 시 반이 점점 가까워 옵니다. 여섯 시가 되어도 보이지 않고 일곱 시가 지나도 유 불란 탐정은 오지를 않습니다.
해가 지고 달이 떴읍니다. 달은 구름에 싸였다, 나타났다 합니다. 여덟 시가 되었읍니다. 과연 아홉 시 반에는 학준 소년이 백희를 만나러 나타날는지, 안 나타날는지?
그 때였읍니다. 서울서 오는 기차가 한 대 우르렁 소리를 내면서 정거장 구내(構內)로 들어오겠지요. 사람들이 물결처럼 흐느적흐느적 하는 가운데 키가 후리 후리한 유 불란 탐정과 백희가 이리로 뛰어 오는 것이 보입니다.
원장 선생님은 기쁜 얼굴로,
“어찌 그리 늦었소?”
하고, 물으니 탐정은 죄송한 듯이,
“좀 늦어서 미안합니다. 암호문을 풀려고 도서관에를 들어가서 좀 지체되었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밤 인도양을 향하여 금은 보배를 찾으러 떠나야겠읍니다.”
하고 말하는 유 탐정의 얼굴에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읍니다. 이 꿈과 같은 이야기에 원장은,
“그래 그 수 많은 보배가 어디 있는지를 아신다는 말이요?”
하고, 조급하게 물었읍니다.
“네, 압니다!― 그러나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하기로 하고 우리는 한시 바삐 학준 소년을 구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 벌써 여덟 시 반― 학준 소년이 백희와 만나자는 시간까지는 인제 한 시간 밖에 없으니, 자아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축항으로 나가서 태양호(太陽號)이라는 배를 타고 기다리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선장(船長)께 보이면 선장은 모든 일을 친절하게 보아 줄 것입니다.”
하고 대단히 바쁜 듯이 주머니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서 원장에게 주었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정말 오늘 밤에 기선을 타고 보배를 찾으러 떠난다는 말이요?”
하고 원장은 편지를 받아 쥐면서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원장 선생님은 빨리 가서 기선을 타시오. 나는 백회와 함께 학준이를 찾아 가지고 나중에 갈테니 모든 준비를 하여 놓고 우리들이 가기를 기다리시오.”
“몇 시쯤이나 되어서 올테요?”
“밤 열시까지는 꼭 가겠읍니다.”
“그러면 될 수 있는대로 몸을 주의해서 다녀 오시오.― 자아, 산동아, 영길아, 빨리 축항으로 가서 기선을 타자.”
하고, 원장 선생님이 명령을 하였읍니다. 아이들은,
“으와 으와―”
하고, 좋아서 떠들면서 저마다 빨리 가려는 듯이 달음질을 쳤읍니다.
아아, 인제부터 커다란 기선을 타고 파도 높은 바다로 금은 보배를 찾으러 떠난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며 꿈과 같은 일인가!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 무시무시하기가 짝이 없었읍니다.
이리하여 유 탐정은 백희와 함께 어디론가 가버리고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축항으로 나와서 태양호라는 기선을 탔읍니다.
기선 태양호의 선장은 아래 턱에 수염을 시꺼멓게 기른 분인데, 하얀 양복에다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망원경을 메었읍니다. 원장 선생님이 편지를 내주었더니 선장은 그것을 받아 들고 겉봉을 찢었읍니다.
그것은 태양 기선 회사(太陽汽船會社)의 사장이 선장께 보낸 명령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읍니다.
- ―아메리카 행은 중지하고 나의 친구 유 불란 탐정과 그의 일행을 모시고 오늘 밤 곧 인도양을 향하여 출범하라. 자세한 이야기는 유 탐정 자신으로부터 들으라.―
선장은 편지를 읽더니 공손한 태도로 원장과 애들을 선실로 인도하였읍니다. 그래서 원장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서 눈이 둥그래진 선장에게 대강 이야기를 한 다음에,
“그래서 오늘 밤, 인도양 어떤 섬에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것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선장은 유쾌한 듯이,
“허어,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로군요. 그래 오늘 밤 유 탐정이 학준이와 백희를 데리고 이리로 온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열 시가 지나고, 열한 시가 지나도, 유 불란 탐정은 오지를 않습니다.
“그 무서운 인도인에게 유 탐정이 붙들리지나 않았을까? ……”
하고 선장과 원장 이하 여러 애들은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 가고 바다 위에는 밤 바람이 출렁출렁 파도치고 있는데 학준이를 찾으러 간 백희와 유 탐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꼭 아홉 시 반
[편집]원장 선생님과 헤어진 유 불란 탐정과 백희는 곧 월미도 방파제 옆으로 나가서 학준이가 오겠다는 아홉시 반을 기다렸읍니다.
방파제 위에는 달 빛이 고요히 흐르고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았으나 여기서 출렁, 저기서 철썩, 물 소리는 쉴 새 없이 들려옵니다.
백희는 방파제 옆에 우두커니 서서 학준이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유 탐정은 이편 재목 더미 뒤에다 몸을 감추었읍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홉 시 반이 되자마자 컴컴한 골목에서 학준 소년이 사방을 조심조심 살피면서 백희가 홀로 서 있는 옆으로 가까이 걸어 오지를 않겠읍니까! 그 때 재목 더미 뒤에 숨어 있던 유 탐정은 학준 소년의 뒤로 천천히 걸어오는 한 사람의 이상한 사나이를 발견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읍니다.
과연 유 탐정의 생각은 틀림이 없었읍니다. 백희와 만나자고 전보를 친 것은 학준 소년이 아니고 학준 소년을 붙들어 간 무서운 도적들의 장난이었읍니다.
그들은 백희의 손으로부터 그 암호문이 적혀 있는 종이 조각을 빼앗고 저희들이 먼저, 그리고 저희들만이 그 수 많은 금은 보배를 얻을 셈이었읍니다.
아, 그 순간이었읍니다. 비조와도 같이 빠른 솜씨로 재목 더미 뒤에서 뛰어 나간 유 불란 탐정은,
“흑!”
하고 이편으로 돌아서는 인도인을 향하여 쏜살같이 덤벼 들었읍니다. 두 사람의 몸뚱이는 서로 붙잡고 잡힌 채 그만 땅 위에 쓰러졌읍니다. 쓰러지면서 인도인은 주머니에서 시퍼런 비수를 끄집어 냈읍니다.
“선생님! 아, 아, 저 놈이 칼을……!”
하고 백희는 부들부들 떨면서,
“학준아! 빨리 칼을…… 칼을 빼앗아라!”
그 때야 학준이도 그 재목 더미 뒤에서 뛰어 나온 사나이가 적(敵)이 아니고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인 줄을 짐작하였읍니다. 백희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저 분은 학준아, 너를 구하러 오신 유명한 탐정이다. 빨리 저 놈에게서 칼을……”
하고, 고함을 치며 학준이에게 매달렸읍니다. 지금 탐정과 인도인은 이리 굴렀다, 저리 굴렀다 하면서 무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읍니다. 아, 인도인의 시퍼런 칼을 쥔 손이 번쩍 들리지를 않았읍니까. 백희는,
“아, 악!”
하고, 두 손으로 눈을 가리었읍니다.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가 없는 무서운 광경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옆에 있던 학준 소년은 휙하고 달려 가자 칼을 든 인도인의 손목을 부서져라 하고 힘껏 물어 뜯었읍니다. 그랬더니 인도인은,
“으, 응―”
하고 한 번 길게 신음을 하면서 쥐었던 칼을 놓았읍니다. 그 틈을 타서 유 불란 탐정은,
“이 녀석, 힘두 세다!”
하고 고함을 치더니 마치 도리깨질을 하듯이 그 놈을 잡아서 두 길, 세 길이나 되는 물 가운데에 던졌읍니다. 달 빛을 등에 지고 물로 기어 들어가는 인도인의 시커먼 몸둥이―
“선생님, 어디 다치지나 않았어요?”
학준이와 백희는 일시에 물었읍니다.
“아무 데도 다친 데는 없으나 그 녀석이 칼을 뽑아 쥐었을 때는 조금 무서웠다. 학준이가 없었던들 큰 일날 번 했는걸.― 아, 벌써 열 한 시! 자아, 백희야, 학준아, 속히 가서 기선을 타자! 원장 선생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무척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리하여 그들은 기선 태양호를 향하여 달 빛이 무르녹은 해안선을 달음박질 쳤읍니다.
축항까지 달음박질 쳐 온 그들은 조그만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멀리 바다 가운데 머물러 있는 태양호에 다달으니 선장과 원장 선생님은 학준 소년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무척 기뻐하며,
“그런데 유 탐정, 오늘 밤으로 떠나야 합니까?”
하고 물었읍니다. 유 탐정은,
“그렇습니다. 선장, 지금 곧 떠나야 합니다. 한시라도 늦어서는 안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할테니 자아, 지금 곧 떠납시다.”
하고 재촉하였읍니다. 선장은 여러 선원들을 향하여,
“돛을 걷어라!”
하고 명령을 하였읍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돛을 걷는 사람, 기관실(機關室)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 달 빛이 낮과 같이 내리는 갑판 위에서 선원들은 한참 동안 분주스럽게 뛰어 다니었읍니다.
이리하여 기선 태양호는,
“앙―”
하고 길게 기적 소리를 남겨 놓고 파도 높은 황해(黃海) 한 복판을 향하여 인천 항구를 천천히 떠나 버렸읍니다.
학준이, 산동이, 영길이, 백희, 인애― 이 다섯 명의 소년 소녀는 지금 보배를 찾으러 멀리 인도양까지 간다는 이 꿈과도 같은 이야기에 울렁거리는 가슴을 억제할 바 없이 난간에 몸을 기대이고 점점 사라지는 인천 항구의 울긋불긋한 불 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읍니다.
그 때, 영길이가 학준이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읍니다.
“너, 어떻게 붙들리었니? 한길에다 이름을 써 놓은 것은 너지?”
“응, 내가 써 놓았지. 너희들 그것을 보았니?”
“보구 말구!”
산동이가 대답하였읍니다.
학준 소년이 그 무서운 도적들에게 붙들려 간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읍니다.
배는 떠난다
[편집]그 날 밤― 용감한 학준 소년은 인도인의 뒤를 따라 한길에다 자기 이름을 써 놓으면서 서울역까지 갔읍니다. 그랬더니 정거장에는 다른 인도인이 또 오륙 명 기다리고 있다가 인천 가는 기차를 탔으므로 학준 소년은 몇푼 되지 않는 지갑을 털어 역시 인천 가는 차표를 사 가지고 기차를 탔읍니다.
그 도적 떼들은 한편 구석에 모여서 무엇이라고 수근거렸으나, 학준이는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몰랐지요. 때때로 자기를 힐끗힐끗 돌아볼 때마다 학준이는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 앉았읍니다. 그 놈들은 학준이가 저희들을 따라오는 줄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인천까지는 무사히 갔읍니다. 그러나 역에서 해변으로 나가는 컴컴한 어떤 골목까지 따라 갔을 때, 그 놈들은 획하고 뒤로 돌아 서서 학준 소년의 팔목을 꽉 붙잡고 어떤 수상한 집으로 끌고 들어갔읍니다. 그 집 주인도 역시 인도인이었읍니다.
그들은 서로 뭐라고 숙덕숙덕 하더니 학준이를 컴컴한 지하실로 끌고 들어 가서, 만일 아까 백희에게 적어 준 암호문의 종이 조각을 가져오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면서, 저희들도 그 부처 속에 들어 있던 암호문을 꺼내여 놓고 그것을 풀려고 애들을 썼읍니다.
학준이는 죽어도 못 가져 오겠다고 고함을 쳤으나, 그 중 한국 말을 할 줄 아는 ‘네리’라는 놈이, 그러면 아홉시 반에 백희가 너를 데릴러 월미도 방파제 옆까지 올테니 같이 서울로 돌아가라고 권하였읍니다.
그러나, 사실은 백희가 가지고 있는 암호문을 빼앗을려고 전보를 쳤던 것이 그만 뜻하지 않은 유 불란 탐정 때문에 학준이를 놓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학준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희는,
“너, 나 때문에 하마트면 죽을번 했구나.”
하고 위로의 말을 하였더니 학준이는,
“뭘, 괜찮어.― 그런데, 유 불란 탐정이 정말 그 수많은 보배가 들어 있는 곳을 안다던?”
하고, 물었읍니다.
“응, 아신대. 탐정 선생은 오늘 나하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무슨 책인지 산더미 같이 쌓 놓구 한참 동안 연구하셨단다. 그리구 아, 알았다. 알았다. 보배를 감추어 둔 곳을 알았다! 인도양, 인도양!― 하구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치면서 자아, 백희야, 빨리 인천으로 가서 기선을 타자! 너는 인제 백만 장자가 될 것이다 하고 나를 붙잡고 도서관을 뛰어 나왔단다.― 아, 저기 탐정 선생님 이리로 오신다.”
백희는 뱃머리를 가리켰읍니다. 유 불란 탐정이 망원경을 어깨에 메인 선장과 이리로 천천히 걸어 오면서,
“학준군, 군은 용감한 소년이다. 군은 나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다.”
하고 칭찬을 하며 학준이의 손을 힘있게 쥐었읍니다. 학준은 거북한 듯이,
“선생님,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던들 저는 그 흉악한 놈들에게 죽었을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선생님, 그 암호문에 무엇이 쓰여 있읍니까!”
하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선장과 원장도 한시 바삐 그것이 알고 싶어서,
“아, 유 탐정, 그 암호문을 어떻게 풀었는지, 그것을 좀 가르쳐 주시오. 인도양인 줄은 어떻게 알아 냈읍니까?”
하고 사면에서 화살과 같은 질문을 받은 유 불란 탐정은 한 번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였읍니다.
“자아, 그러면 인제 그것을 아르켜 드리리다.”
풀리는 암호문
[편집]밤은 거의 새벽에 가까와 오고 동편 하늘에 먼 동이 훤하게 텄을 때, 기선 태양호는 황해의 거치러운 물결을 좌우로 헤치면서 우렁찬 엔진 소리와 아울러, 나는 듯이 닫고 있었읍니다.
유 불란 탐정은 암호문이 적힌 종이 조각을 꺼내어 희미한 달 빛에 비치어 보면서,
“자아, 내가 어떻게 이 암호문을 풀었는가, 그것을 설명하여 봅시다.”
하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흥미 진진한 암호문 풀기를 시작하였읍니다. 탐정을 둘러 싸고 여기 저기 앉아 있는 여러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을 달 빛에 번쩍거리며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기다릴 뿐이었읍니다.
“자아, 내 인제 암호문을 한 번 더 읽을테니 자세히 들으시오.― 성천이 흐르는 바다, 용을 탄 닭이 적도(赤道)를 걸어가니, 닭은 어디 있느냐, 닭의 머리 위에, 주둥이의 그림자가 내리는 곳, 거기서 남으로 백 보, 거기서 동으로 삼십 보, 거기서 북으로 십 보, 거기서 서로 이 보, 그것은 누구의 것이나, 발견하는 사람의 것― 이것이 암호문의 전부입니다.”
유 불란 탐정은 신이 나는 듯이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 보았읍니다. 그 때,
“어떻게 그 섬이 인도양에 있는 줄을 알았읍니까?”
하고 선장이 물었읍니다.
“그것은 이 암호문의 맨 첫 구절이 인도양이라고 가르친 까닭입니다. 성천(聖川)이 흐르는 바다― 이 '성천'이란 대체 무엇이냐?…… 여러분은 학교에서 지리 시간에 배웠을 줄 믿습니다만 성천이란 더럽힘이 없는 제일 깨끗하고 신령(神靈)한 개천이란 말인데, 인도에 서 제일 깨끗하다고 말하는 강은 어느 것입니까?”
하고 원장과 선장 이하 여러 아이들을 휘둘러보았지요.
(독자 여러분, 지도를 펴 놓으시오. 그러면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옆에 섰던 학준 소년이,
“인도에서 제일 깨끗하고 신선한 강은 벤갈 만(灣)으로 흘러 내리는 간디스란 강입니다.”
하고 대답을 하였읍니다. 유 탐정은,
“그렇다. 간디스라는 강이다.”
하고 가장 유쾌한 듯이 외쳤읍니다.
독자 제군, 제군은 학교에서 지리 시간에 가야라든가 베나레스라든가 아라하바아드라는 도시(都市)가 모두 이 간디스 강변에 있는 것을 배웠을 것이며, 따라서 이 가야, 베나레스, 아라하바아드가 모두 인도교(印度敎)의 성지(聖地)라는 사실도 선생님께 배웠을 것입니다. 거기는 인도교의 절(寺)이 수천 개나 되고, 그 절에 기도하러 각처에서 모이는 사람이 연년 수백 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유 불란 탐정은 이런 이야기를 한참 동안 설명한 다음에,
“그래 그 절간에 기도를 드리러 모이는 사람들은 먼저 이 간디스 강물에 목욕을 하고 몸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기도를 드리는 법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 간디스 강을 대단히 신성하게 생각하고 가장 깨끗한 강이라고 부르지요. 이 암호문에 ‘성천’이라고 쓰인 것은 두 말도 할 것 없이 간디스 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허어, 간디스 강! 그러면 간디스 강은 벤갈 만에 흐르는데 어떻게 인도양으로 가야 합니까?”
하고 선장의 묻는 말에 탐정은,
“그렇지요. 그러나, 벤갈 만은 인도양에 접하지 않았읍니까? 그리고 다음 구절―용을 탄 닭이 적도(赤道)를 걸어 간다는, 이 적도란 말을 생각하면 그 보물을 감춘 섬이 인도양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왜 그러냐 하면, 적도는 벤갈 만에서 퍽 떨어진 인도양을 지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다음 용을 탄 닭이란 말이 대단히 어려웠읍니다.”
“응, 용을 탄 닭이란 말이 대체 무엇입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로구먼요.”
하고 선장이 물었지요. 유 탐정은 잠시 동안 묵묵히 앉아 있다가 대답을 하였읍니다.
“나는 처음에 이 용을 탄 닭이란 말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났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로 닭이 용을 타고 간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섬을 가리킨다는 것 쯤은 가히 짐작하였지요. 그 순간, 얼른 생각나는 것이 언젠가 옛적 한문 책에서 본 적이 있는 어떤 섬의 이름이었읍니다. 그래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지리에 관한 책이란 책은 모조리 꺼내 놓고 펼쳐보았더니만 아아 내가 찾고자 하는 책이 있었읍니다.”
“무슨 섬인데요.”
하고 사람들은 일시에 물었읍니다.
“계룡도(鷄龍島)라는 섬입니다.”
“계룡도?……”
“네, 계룡도!”
“인도양에 계룡도라는 섬이 있다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소. 그런 섬이 어디 있다는 말이요?”
하고 수십 년이나 배를 타고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닌 선장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읍니다.
“물론 지도에 기록이 될만한 그리 큰 섬은 아니겠지요. 내가 도서관에서 본 책은 중국 청조(淸朝) 때에 어떤 사공이 인도양을 건느다가 난선을 당하여 하는 수 없이 어떤 섬에 올라갔는데, 그 섬의 생김이 마치 닭이 용을 탄 모양이므로 그 섬을 계룡도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면 그 계룡도가 바로 인도양 적도 아래에 있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하고 선장은 재미난다는 듯이 연방 물었읍니다.
유 탐정의 설명을 들어 보니 학준이와 백희도 무척 재미가 있었읍니다. 어쩌면 유 탐정은 저렇게도 지식이 많고 머리가 좋을까?…… 하고 부럽기 짝이 없었읍니다.
“빨리 설명해 주세요.”
하고, 백희가 재촉을 했더니 유 탐정은,
“음, 그 다음―달은 어디 있느냐, 닭의 머리 위에, 주둥이의 그림자가 내리는 곳―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닭 모양으로 된 섬의 머리 위까지 바로 달이 떠 올라 왔을 때, 닭의 주둥이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곳에서부터 남으로 백 보 가고, 거기서 동으로 삼십 보 또 가고, 거기서 북으로 십 보 가고, 거기서 서로 두 발자국만 걸어 가면 그 수 많은 보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그 보배를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이다.”
폭풍의 밤
[편집]유 불란 탐정의 재미 있는 암호문 풀기가 끝난 것은 바로 저 불덩어리와 같은 웅장한 태양이 무연한 바다 동편 쪽에서 무륵무륵 바다 위로 솟아 오르고 있을 때였읍니다.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양 손을 가슴 앞에 읍하고 이 웅대하고 위엄 있는 대자연(大自然) 앞에 머리를 숙이면서 어째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저 숫익은 봉숭아 같은 태양, 황금색의 찬란한 물결을 실은 끝 없는 바다, 한가스러이 바다 위로 훨훨 날아 다니는 갈매기 떼, 그리고 맑은 하늘을 우럴어 깨끗한 공기를 마실 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감사의 마음과 끝 없는 행복을 온 몸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도 없고, 의지할 친척도 없는 자기네 신세를 항상 쓸쓸히 생각해 오던 그들도 오늘 아침만은 부모의 은혜보다도 더 크고, 부모의 사랑보다 한층 더 굳세인 힘을 이 대자연 속에서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조금도 불쌍하지 않다!”
“우리들은 결코 자기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다!”
“저 찬란한 태양을 보라! 이 무연한 황해를 보라!”
그들은 저마다 마음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읍니다. 실상 저 태양의 위대함과 끝 없는 황해의 넓이를 눈 앞에 볼 때, 그들의 쓸쓸하던 가슴 속에 어느덧 희망과 광명의 세계가 움트기 시작했읍니다.
이리하여 기선 태양환은 모진 풍파를 겪어 가면서 황해를 남으로 쉬임 없이 달리고 있지요. 하루 바삐 그 계룡도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고 한 주일, 두 주일, 석 주일―과연 닭이 용을 탄 모양으로 생긴 계룡도라는 섬이 있는지, 없는지?……
황해를 나선 태양호은 홍콩(香港)에 잠간 머물러서 식료품과 연료(燃料)를 다시 싣고 동지나해(東支那海)로 나왔읍니다. 거기서 대만 해협(臺灣海峽)을 지나 남지나해(南支那海)로 들어가기 까지는 일기가 좋아서 그리 곤난을 받지 않았으나, 남지나해를 절반 쯤 건너 왔을 때였읍니다.
돌연 난데 없는 검은 구름이 남쪽에서 뭉게뭉게 떠돌고 있더니 점점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더니 무서운 폭풍우가 갑자기,
“좌악 좌악……”
하고 내리지 않았겠읍니까.
순간― 사방은 컴컴해 지고 무연한 바다 위에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어났읍니다. 갑판 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결, 기선은 마치 술취한 미치광이처럼 이리로 쓰러졌다, 저리로 넘어졌다 합니다.
사람들은 콩알처럼 이리로 굴렀다 저리로 굴렀다― 그것은 바로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진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이었읍니다.
“위험하니 선원 이외에는 절대로 갑판에 나와서는 아니 된다!”
“속력을 늦추어라!”
“뱃 머리를 삼십도 동으로 돌려라!”
선장은 미친 사람처럼 명령을 내리면서 바닷물이 폭포와 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갑판 위를 이리 왔다, 저리갔다 합니다. 선원들은 무엇이라고 서로 떠들고 부르짖었으나 쏴아 쏴아 하고 퍼붓는 듯이 내리는 폭풍우 소리에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읍니다.
학준이와 백희, 그리고 산동이, 영길이, 인애― 그들은 넓은 선실에서 콩튀듯이 굴러 다니며 유 탐정과 원장 선생님의 팔목을 꼭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읍니다.
“걱정 말아, 걱정 말아!”
하고 달래는 유 탐정과 원장의 얼굴은 종이장처럼 새파랗게 변했읍니다.
“아, 선실에 물이 새여 들어 온다!”
하고 그 때, 학준이가 고함을 쳤읍니다.
과연 천장 한 구석에서 팔뚝 같은 물 줄기가 줄줄 새어들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쭈르렁 쭈르렁 하고 떨어지던 물 줄기가 다음 순간에는 마치 샘 구멍이 터진 것처럼 촬촬 퍼붓는 듯이 들어오지 않겠읍니까. 그러더니 드디어 발등이 잠기고, 종아리가 잠기고, 다음에는 무릎까지 물이 기어 올라왔읍니다.
유 탐정과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갑판으로 올라가는 층층대로 뛰어 나왔읍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배는 뒤집힐 것 같이 이리 쏠렸다, 저리 쏠렸다 하면서 몰려 오는 거치른 파도를 헤치고 동남―보르네오 섬을 향하여 닫고 있읍니다.
“이 일을 어찌 하노? 야단났구나!”
하고 늙은 원장 선생님이 외치는 말에 탐정은,
“하는 수 없지요. 운명을 하늘에 맡길 수 밖에는 없읍니다.”
하고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품 안에 꼭 껴안았읍니다.
그 때, 갑판 위에서 미친 듯이 선원들에게 명령을 하고 있던 선장이 비장한 얼굴로 뛰어 들어오면서 부르짖었읍니다.
“여러분! 태양호은 마침내 침몰(沈沒)하게 되었읍니다. 이 배는 인제부터 한 시간 이상 더 물에 떠 있을 수가 없읍니다. 모든 책임은 이 어리석은 나에게 있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이 구명기(救命機)를 타고 사는데까지 살아 봅시다!”
그리고 콜크로 만든 둥그런 구명기를 하나씩 던져 주었읍니다. 아아, 기선 태양호은 인제부터 한 시간 이내에 이 컴컴한 한밤중, 저 깊고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면 아니될 무섭고도 저릿저릿한 운명에 빠졌읍니다. 획획 불어오는 사정없는 바다 바람, 총알 같이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집채와 같이 몰려 와서 기선을 덮어 버리는 파도― 사람들의 목숨은 나머지 단 한 시간!
무서운 해적선
[편집]전신실(室)에서 SOS (에스·오·에스·―위험하니 구해 달라는 신호)가 쉬임 없이 발송되었으나, 기선 태양호을 구하러 오는 배는 한 척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일 분 일 초도 머물지 않고 지나갑니다. 아아, 절망! 도저히 이 무서운 사지(死地)에서 벗어 날 희망은 조금도 없읍니다.
“선생님, 우리들은 여기서 꼼짝 달싹도 못하고 이대로 죽어야 하나요?”
하고 백희와 여러 아이들은 탐정과 원장 선생님을 쳐다 보았읍니다. 아아, 무서움에 찬 그들의 새파란 얼굴을 바라볼 때, 유 불란 탐정의 가슴은 안타까웠읍니다.
“오냐 오냐, 걱정 말아! 죽긴 왜 죽어?”
하고 달래 보았으나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결은 점점 그들이 서 있는 층층대로 따라 올라오고 있읍니다.
삼십 분― 삼십 분만 지나면 배는 사람들을 실은 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설혹 구명기를 붙잡고 물 위에 뜬다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산과 같은 물결, 게다가 무서운 물고기들이 그들을 한 입에 들여 마실 테지요.
아아, 죽음은 눈 앞에 보이는듯 합니다.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기선과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릴 자기네 운명을 생각해 볼 때, 눈 앞은 아찔해 지고 온 몸에 소름이 선뜻선뜻 끼쳐집니다.
바로 그 때였읍니다. 선원들의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갑판 위에서 마치 모기 소리처럼 가늘게 들려오지 않겠읍니까. 그러더니 문이 획하고 열리면서 기쁨에 찬 선장의 번쩍거리는 얼굴이 쑥 나타났읍니다.
“여러분, 걱정 마시오! 섬이 보입니다. 우리를 구해 줄 조그만 섬이 보입니다! 우리들은 삼십 분 이내에 그 섬에 무사히 도착할 것입니다. 만세! 만세!”
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읍니다.
“뭐, 섬이 보인다?”
“으아, 섬! 인제는 살았구나!”
“만세, 만세, 만만세!”
탐정 이하 여러 사람들은 희색이 만면하여 선장과 함께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불렀읍니다.
“영길아, 산동아, 인애야!”
“백희야, 학준아!”
기쁨에 날뛰는 마음을 억제할 바 없이 아이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꽉 붙잡고 뛰었읍니다.
이리하여 반 시간이 지난 후에 기선 태양호는 겨우 조그만 섬에 도착하여 사람들은 그 무서운 폭풍우에서 벗어 날 수가 있었읍니다.
이튿 날 아침이 되었읍니다. 폭풍우는 어느듯 사라지고 높고 높은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태양환은 곧 이 섬을 떠날 수가 없었읍니다. 어젯밤 폭풍우에 기선은 여기 저기 상한 데가 많고 그것을 고칠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려야 한다고 선장은 말했읍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한달 동안을 이 섬에 머물러 있었읍니다.
선원들은 매일처럼 기선을 수리하기에 분주합니다. 백희와 학준이랑은 이 처음 보는 남해(南海)의 섬에서 여러 가지 이상스러운 식물(植物)을 구경하며 이리 저리 싸돌아 다녔읍니다.
그러던 어떤 날 아침― 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다 위에 수상한 어선이 한척 나타났읍니다. 그 기선도 역시 태양호가 가려고 하는 남 쪽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리고 있지 않겠읍니까.
그 때, 망원경으로 멀리 그 기선을 바라보고 있던 선장은 돌연 외쳤읍니다.
“유 탐정, 저 기선에… 이상한 사람들이 타고 있읍니다! 부처를 빼앗아 간 그 도적들이 아닙니까?”
“뭐, 수상한 사람들이?……”
하고 탐정은 부리나케 고함을 쳤읍니다.
“자아, 이 망원경으로 바라보시오.”
하고 선장이 망원경을 탐정에게 벗어 주었읍니다. 탐정은 그것을 눈에 대고 한참 동안이나 잠자코 바라보더니,
“음, 수상한 인도인들이다. 저 놈들이 만일 그 흉악한 도적들이라면 우리들보다 먼저 그 계룡도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한시 바삐 여기서 떠나야 하겠읍니다.― 그런데 선장, 얼마나 있으면 떠나게 되겠읍니다?”
“아직 한 대엿새 있어야 떠나겠읍니다.”
“대엿새?……”
하고 반문한 유 불란 탐정은 어쩔 줄을 모른는 듯이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묵묵히 기선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읍니다.
이리하여 태양호는 한 주일 후, 이 섬을 다시 출발하였읍니다.
때는 11월 중순― 그러나 이 남해 지방의 기후는 대단히 온화하였읍니다.
하루 바삐 계룡도까지 다달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천을 떠난지 달 반이 거지반 되어 갑니다. 인천을 떠날 때는 달이 밝았으나, 그 후 달이 뜨지 않는 밤이 또 쭉 계속되었읍니다. 그러던 것이 며칠 전부터 달이 뜨기 시작하였지요. 달이 뜨지 않으면 그 보배를 감추어 둔 장소를 찾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달이 있을 때에 계룡도에 도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섬을 떠난 태양호가 마레이 반도 남단(南端)에 있는 싱가폴에서 다시 식량과 석탄을 싣고 마락카 해협을 빠져나간 것은 이럭 저럭 십 여 일 후였지요. 거기서 약 십 여 일 걸려서 인도 남단 셀론도에 있는 코롬보까지 왔읍니다. 계룡도라는 섬은 대체 어디 있을까? 사실 그런 섬이 있는가, 없는가? 암호문에는 그 계룡도가 적도 아래 있다고 하였다. 적도 아래라 할지라도 이 넓고 넓은 인도양 어느 쪽에 있을까? 그리고 저 도적들을 실은 수상한 기선이 우리들보다 먼저 그 계룡도를 발견하면 어떡허나?
계룡도
[편집]이리하여 희망과 근심을 실은 태양호는 셀론도를 떠나 적도를 바라보며 남으로 달리고 있었읍니다.
이 근방은 수 많은 섬이 별과 같이 바다 위에 떠 있었읍니다. 그 수 많은 가운데 과연 계룡도라는 섬이 있는지, 없는지?……
적도에 가까이 옴에 따라 망망한 바다 위에는 어느덧 짙은 안개가 자욱히 깔리기 시작했읍니다. 전후 좌우에 섬들은 무수히 널려 있으나 안개로 말미암아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달이 없는 밤에는 보물을 감추어 둔 장소를 못 찾는다. 달이 지기 전에 이삼 일 안으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계룡 도를 찾아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유 불란 탐정은 갑판 위를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망원경으로 사방을 휘둘러 보았으나 아아, 이 얄미운 안개는 언제나 개일는지?…….
그러나 다행히도 오후에 이르자 해상에 깔리었던 안개의 장막은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여 저녁 노을이 곱게 깔린 맑은 하늘을 머리 위에 다시 우럴어 볼 수가 있었읍니다.
그 때였읍니다. 백희, 학준이, 산동이랑 뱃 머리에서 무엇이라고 와아와아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읍니까. 그러더니 학준의 높은 목소리가,
“선생님, 선생님! 빨리 망원경을 가지고 이리로 오세요.”
하고 부르짖는 바람에 유 탐정은 나는 듯이 뱃 머리로 뛰어 갔읍니다.
“왜 불렀니?”
“저기 저 큰 섬 뒤에 닭이 용을 탄 모양으로 된 조그만 섬이 보입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과연 용을 탄 닭 모양으로 생긴 섬이 보이었읍니다.
“그렇다! 저것이 계룡도로구나!”
“으와으와, 계룡도, 계룡도! 만세!”
아이들과 어른들은 ‘계룡도 만세’를 부르면서 갑판 위로 뛰어다닙니다. 기쁨과 희망과 호기심에 번쩍거리는 그들의 얼굴, 얼굴, 얼굴들!
보라! 황금이 가득 찬 섬 계룡도는 지금 눈 앞에 보이지 않는가! 무서운 도적들과 싸우며 거칠은 풍랑을 넘어 가면서 찾아온 신기로운 섬 계룡도는 눈 앞 오백미터 밖에서 그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듯이 바다 위에 묵묵히 떠 있읍니다.
계룡도는 찾았다! 그러나 과연 수 많은 보배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흥분과 호기심에 찬 사람들의 가슴은 자못 바람 앞에 등불처럼 펄럭거렸읍니다.
이리하여 어둑어둑한 황혼이 바다 위를 덮어 누르고 있을 때, 기선 태양호는 계룡도 가까이 다달았읍니다.
그러나 그 때, 백희와 인애가 일시에 고함을 쳤읍니다.
“아, 선생님! 섬 뒤에 이상한 기선이 하나 보입니다!”
“뭐, 기선이?……”
선장과 탐정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백희와 인애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한 달 전 폭풍을 만났을 때, 섬 위에서 본 수상한 인도인들이 타고 있던 기선임에 틀림이 없었읍니다.
“음―”
하고 신음하는 유 탐정의 얼굴은 비상히도 긴장했읍니다.
“틀림없는 그 놈들이다.”
그리고 선장께,
“선장,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저 도적들과 한바탕 싸워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저 놈들을 죽이든지, 둘 중에 한편은 죽어야겠지요. 그런데 선장, 무기(武器)는 몇 개나 가지고 있읍니까?”
“권총이 전부 열 개.”
“하여튼 배를 갖다 대시오. 발견되기 전에 속히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달은 구름에 가리워 사면은 캄캄한 어둠의 장막입니다. 기선 태양호를 내린 일행은 어둠 속에 몸을 감추어 가면서 해변을 지나 숲이 무성한 어떤 언덕까지 다달았읍니다.
거기서 잠간 동안 쉬었다가 또 다시 컴컴한 비탈 길로 어떤 큰 바위 밑까지 올라 갔을 때, 선봉 섰던 유 불란 탐정은 가는 목소리로 속삭이었읍니다.
“자아, 여기서 우리는 오늘 하룻밤을 쉬어야 합니다. 저 놈들은 이 산 저편 골짜기에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그 놈들도 오늘 밤 달이 구름 속에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리고 만일……”
그 순간― 어디선가 한 방의 총소리가 탕하고 나더니 외잉하고 총알이 유 불란 탐정의 귀 밑으로 빠져 나가지 않겠읍니까.
“앗! 빨리 땅 위에 엎드려라!”
하고 가느다라나마 힘 있는 목소리로 유 탐정이 외쳤읍니다.
“도적들이다! 선장, 빨리 권총을 꺼내시오. 저 놈들은 우리가 등지고 있는 이 바위 바로 저 편에 숨어 있읍니다.”
그 때, 또 한 방의 총 소리가 외잉하고 날아 왔읍니다.
“자아, 선장! 우리 편은 선원들까지 모두 합하여 열 다섯명이니, 이와 같이 한 곳에 모이어 있을 것이 아니라, 세 명씩 다섯 부대(部隊)에 나누어 가지고 저놈들을 둥그렇게 둘러 싸버립시다.”
“아, 그러는 게 좋소. 그러면 아이들은 한 부대에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그렇지요. 한 명씩 우리들이 차지하고, 그리고 권총이 전부 열 자루니 한 부대에 두 자루씩 나눕시다. 자아, 빨리 ……”
이리하여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다섯 패로 갈라졌읍니다. 그 놈들은 전부 합해서 대체 몇명이나 되는지?……
무서운 그림자
[편집]영길이와 인애는 각각 두 명씩의 선원들과 함께 해안을 뺑 돌아 도적들의 기선이 떠 있는 동편 쪽으로 가고 산동이는 선장과 또한 사람의 선원을 따라 남쪽으로 갔읍니다.
그리고 다음 늙은 원장은 학준 소년과 무전사(無電士)를 데리고 섬 북 편을 지키게 하고, 나중 유 불란 탐정은 백희와 기관사(機關士) 한 사람과 지금 있는 바위 밑에 남아 있기로 하였읍니다.
달은 아직 구름 속에 있읍니다. 욱―욱― 소리를 내면서 사면에서 몰려오는 거칠은 파도 소리와 이름 모를 물새 소리가 재재짹 재재짹 하고 들릴 뿐이었읍니다.
“탕……탕……탕……”
하고 총 소리가 또 들렸읍니다. 백희는 숨을 죽여 가면서 탐정의 품 안에 꼭 안겼읍니다.
아, 그 때였읍니다. 백희네들이 숨어 있는 바위 위에 굴뚝같이 시커먼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지를 않았겠읍니까.
“아, 선생님, 사람의 그림자가……”
하고 외치려고 하는 백희의 입을 탐정은 한 손으로 꼭 막으며,
“말하면 안 된다! 잠자코 있어야 한다!”
하고 백희의 귀 밑에 속삭이었읍니다.
그 때, 백희는 오들오들 떨면서 점점 이 편으로 다가드는 무서운 그림자를 말똥말똥 쳐다 볼 뿐이지요. 그러더니 그 무서운 그림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지, 바위 위에서 밑으로 툭하고 뛰어 내렸읍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기관사가 쏜살 같이 일어 서더니 시꺼먼 그림자에게 덤벼 들었읍니다. 도적은 쓰러지면서 뭐라고 서너번 꿰액꿰액하고 외치자 마자 바위 위에서 또 다시 시꺼먼 그림자가 쑥하고 나타나지를 않았겠읍니까. 하나, 둘, 셋, 넷― 유 불란 탐정은 권총을 겨누었읍니다.
“백희야, 자세히 봐라. 지금 바위 위에서 밑으로 뛰어 내릴려고 몸을 웅크러뜨리고 있는 놈이 있지. 저놈을 쏠테니 똑똑히 봐. 자아, 탕―”
총 소리에 화다닥 놀래면서 백희가 자세히 보니, 커다랗고, 시꺼먼 몸뚱이가 아래로 딩굴 딩굴 딩굴어 내려옵니다. 그러더니 백희 옆에 툭 하고 떨어졌읍니다. 백희는 무서워서 유 탐정의 몸을 꽉 붙안았읍니다.
“재미 있지? 백희야.”
“무서워요, 저는―”
“뭐가 무서워. 자아, 또 한 놈 쏠까?―”
그러나 바위 위에 나타났던 시꺼먼 그림자들은 겁이났는지 그만 바위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그 때까지 도적과 싸우고 있던 기관사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 놈한테 주먹으로 한 대 얻어 맞았더니 꽤 얼얼한걸.”
하고 뒷짐을 지워서 꽁꽁 동여맨 도적을 끌어다 놓았읍니다.
“어, 기관사 상당하오. 이 놈들이 권투 선수들인 만큼 주먹 힘은 꽤 셀 걸요.”
하고 이번에는 도적에게 향하여 인도 말로 물었읍니다.
“야, 네가 만일 내 말을 잘 들으면 너의 목숨을 구해 줄테니 듣겠느냐?”
그러나 뒷짐을 진 도적은 아무 대답도 없었읍니다.
“듣겠느냐, 못 듣겠느냐?”
그 때, 그 도적은 머리를 번쩍 들며,
“죽어도 못 듣겠다!”
하고 부르짖었읍니다.
그 때였지요. 산동이가 헐떡거리면서 뛰어오더니,
“선장이, 선장이 총에 맞았읍니다!”
하고 보고를 하였읍니다.
“뭐, 선장이?……”
탐정과 기관사는 놀랬습니다.
“그래 상처는 과한가?”
“총알이 어깨를 꿰어 나갔어요.”
“선장은 지금 어디 있느냐?”
“저편 숲 새에 선원이 부축하고 있어요.”
총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려옵니다. 어느덧 달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놓았읍니다. 캄캄하던 사면은 달 빛에 훤하게 밝아졌읍니다.
유 탐정은 우두머니 서서 뭣인가 잠간 동안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기관사!”
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불렀읍니다.
“왜 그러시우?”
“당신은 백희와 산동이를 데리고 선장이 쓰러져 있는 데로 가서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주시요.”
“탐정께서는 어떡할 작정입니까?”
“나는 인제부터 할 일이 태산 같지요.― 그런데 내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오늘 밤, 달이 저 닭 모양으로 된 바위 꼭대기까지 떠올라 오기는 아마 밤 새로 세 시나, 네 시쯤이지요. 그 때 저 놈들은 두 패로 헤져서 한 패는 저 닭의 머리 모양으로 된 바위 위에서 달이 자기네들 머리 위까지 떠올라 오기를 기다릴 것이며, 또 한 패는 그 때 닭의 주둥이의 그림자가 어디쯤 내리는가, 살필 셈으로 아마 그 근방에 모일 것입니다. 알겠소?”
“네 잘 알겠읍니다.”
“그러니 우리 편도 두 패로 나누어서 한 패는 바위 위에 숨어 있고, 한 패는 역시 이 근방에 숨어 있다가 한 방의 총 소리가 탕 하고 들릴 터이니 그 때 일시에 뛰어 나오시오. 알겠소?”
“알겠읍니다. 그러면 탐정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내 걱정은 마시요. 하여튼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그 총 소리를 신호로 당신네들과 다시 만날 것입니다. 자아, 빨리 가시오.”
“네 그럼 후에 다시 만납시다.”
피묻은 학준 소년
[편집]이리하여 유 불란 탐정을 혼자 남겨 두고 백희와 산동이는 기관수와 함께 선장이 쓰러져 있는 저편 숲 사이로 기어갔읍니다. 달 빛에 비치어 보니 선장의 어깨에서는 시꺼먼 핏줄기가 뚝뚝 흐르고 있었읍니다.
“선장, 과히 상치 않았으니 낙심 마시오!”
하고 용기를 돋우어 주며 기관수는 가지고 있던 가방을 열고 약과 붕대를 꺼내 동여 주었읍니다.
그러자 선장은 고통을 참으면서,
“나는 괜찮다. 군들이나 잘 주의하게! 오오, 백희도 있고, 산동이도 있구나! 그런데 학준이, 영길이, 인애는 어떻게 되었나?”
하고 말을 끊자마자 오른 편 숲새 길에서 피투성이가 된 학준 소년이 비틀비틀 하면서 뛰어 오지 않겠읍니까.
“학준아, 이게 웬 일이냐?”
하고 산동이와 백희가 마주 달려 가서 붙들고 왔읍니다. 학준이는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백희와 산동이의 품 안에 부비면서,
“원장 선생님과 무전사가…… 저 놈들에게 붙들리어…… 붙들리어 갔단다. 나는 나는 그것을 막으려다 그만 그 놈들이 쥐인 권총 대가리로 머리를 한데 얻어 맞았서…… 그런데, 너희들은 아무런 데도 상한데는 없지?…… 앗, 선장님이……”
학준이는 자기의 상처도 돌보지 않고 쓰러져 있는 선장 편으로 기어갔읍니다.
“선장님!”
“학준인가?”
두 사람의 손과 손은 꽉 부여잡고 언제까지나 놓아 줄 줄을 모르게 얽히어졌읍니다.
“선장님, 아프시지요?”
“아니, 네가 아프겠다. 빨리 약을 바르고 붕대로 동여라.”
백희는 제 손으로 학준이의 머리에 약을 발라 주었읍니다.
“그런데, 벌써 달이 퍽 많이 떠올라 왔는데, 탐정 선생은 어디 계시냐?”
하고 학준이가 백희 보고 물었을 때, 옆에 서 있던 기관사가 대신 대답하였읍니다.
“유 탐정은 아까 바위 밑에 혼자 남아서 말을 하시기를 오늘 밤 새로 세 시 쯤 저 닭 모양으로 생긴 바위 위에 한 패, 그리고 이 근방에 한 패 숨었다가 총 소리가 탕하고 들리면 일시에 뛰어 나오라고요……”
“그럼 지금 몇 시요?”
“열 두 시 반.”
“아직 세 시간이 남았구나.”
하고 학준이는 상처 받은 머리에 손을 대고 아픈 듯이 얼굴을 찌프렸읍니다.
그 때, 옆에 누워 있던 선장이,
“그러면 산동아, 너는 지금 곧 인애와 영길이한테 가서 선원들과 함께 저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 숨어 있다가 총소리가 나면 곧 뛰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 편에서 먼저 총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총을 쏘지 말고 있다가 유 탐정의 총 소리를 기다려라. 알았지?”
“네, 알았읍니다.”
산동이는 대답을 하자마자 달빛이 환하게 내리는 숲새 길로 해서 해변가로 달음질쳤읍니다.
달은 점점 바위 위로 떠올라 옵니다. 사방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도적들의 총 소리도 뚝 끊어지고 안 들립니다.
새로 한 시가 지났읍니다. 두 시가 지났읍니다. 숲 새에서 벌레 소리가 들릴 뿐, 지금 저 흉악한 도적들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혼자 남은 유 불란 탐정은 어떠한 계교를 가슴에 품고 저 악독 무쌍한 도적들을 물리치려는지?……
새로 세 시―달이 바위 위까지 떠 올라 오기를 기다리면서 학준이와 백희랑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았읍니다.
변장한 탐정
[편집]백희들과 헤어져 혼자 남은 유 불란 탐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유 탐정은 백희들을 보낸 후, 뒷짐을 지워 꽁꽁 동여맨 도적을 협박도 하고, 달래기도 하여 본 결과 도적이 전부 여덟 명이란 것과 부처님 귓속에 들어 있던 암호문을 보고 오늘 밤, 달이 저 닭 모양으로 된 바위까지 떠올라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세한 것을 알았읍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네 이름은 뭐냐?”
하고 물었지요.
“‘네리’입니다.”
“‘네리’! 음, 네 놈이 한국 말을 할줄 아는 놈이로구나! 그리고 이 놈은?……”
하고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놈을 가리켰읍니다.
“그의 이름은 ‘톰스’입니다.”
“그래?”
하고 탐정은 권총을 겨누고 포승을 풀어 준 다음에,
“‘네리’, 그러면 의복을 벗어라!”
하고 명령하여 의복을 벗긴 후에 다시 뒷짐을 지워 꽁꽁 동여매 가지고 옆에 있는 조그만 바위 구멍에다 쓸어 넣었읍니다.
“자아, ‘네리’, 그러면 여기서 하룻밤을 편히 쉬어라.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풀어주마.”
그리고 커다란 돌로 구멍을 막아 놓았읍니다.
이리하여 유 탐정은 ‘네리’의 웃옷을 입고 수염을 붙이고 변장을 하고 보니 아아, 참으로 신통한 일이었읍니다. ‘네리’와 꼭 같지 않겠읍니까! 탐정은 기쁜 듯이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 보았읍니다.
그리고 나서 탐정은―아니, ‘네리’로 변장한 탐정은 총에 맞은 ‘톰스’를 어깨에 메고 도적들이 모여 있는 무서운 소굴로 찾아갔읍니다.
도적들의 소굴은 커다란 언덕을 하나 넘어선 골짜구니였읍니다. 그 놈들은 달빛을 등지고 모여 앉아서 수군수군하며 무엇을 의논하고 있는 모양이었읍니다.
‘톰스’를 어깨에 멘 유 탐정은 언덕을 넘어 비틀비틀 걸어 내려 가면서 도적들을 향하여 인도 말로 고함을 쳤읍니다.
“‘톰스’가 총에 맞았다. 빨리 와서 좀 부축을 해 다오!”
물론 목소리도 ‘네리’의 목소리를 흉내 냈지요. 그랬더니 모여 있던 그 놈들이 이 편으로 뛰어오면서,
“뭐, ‘톰스’가 총에 맞았다! 죽었느냐, 살았느냐?”
하고 묻지 않겠읍니까. 그래서,
“아직 죽지는 않았다.”
하고 ‘톰스’를 땅 위에 내려 놓았읍니다.
그러나 도적들은 그가 유 탐정인 줄은 꿈에도 의심을 안하고 ‘네리’인 줄로만 알았읍니다. 탐정은 마음 속으로
“인제 됐다!”
하고 부르짖으며 그 중 제일 위엄있고 무섭게 생긴, 한 번 보아 그들의 수령인 듯한 사람 앞으로 다가 가서,
“수령, 그 밉살스런 한국 놈들은 전부 합해서 다섯 명밖에 안 되니 안심하시오. 그리고 제가 저 숲 새에 숨어서 그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놈들은 아직 그 암호문을 풀지도 못하고 그저 우리들을 따라서 이 계룡도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섯 명 중에 세 놈을 쏘아 죽였읍니다. 안심하시오.”
그랬더니 수령은 대단히 만족한 듯이,
“음, 그런가! ‘네리’는 용감하다. 다섯 명 가운데 세 놈은 죽고 두 놈은 붙들었으니 ‘네리’ 우리들은 안심해도 좋다!”
하고 수령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바라보니― 아아, 늙은 원장과 무전사의 공포에 찬 얼굴이 묵묵히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그 순간, 원장이 그 놈들에게 붙들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유 불란 탐정은 마음 속으로,
“앗! 원장이?……”
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조금도 얼굴에 그런 빛을 나타내지는 않았읍니다.
유 불란 탐정은 커다란 나무 그루에 매여 둔 원장과 무전사 옆으로 다가가서 발길로 한 번씩 툭툭 차면서,
“이놈, 괘씸한 놈들!”
하고 욕지거리를 한 후에,
“수령, 그런데 달도 많이 떠 올라 왔는데, 빨리 저 바위 위로 올라갑시다.”
하고 재촉을 하였더니 수령은 팔뚝 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음, 벌써 새로 두 시, 그러면 늦기 전에 속히 바위 위로 올라가자!”
하고 고함을 치면서 과연 유 탐정이 생각한 바와 같이 두 패로 나뉘어서 한 패는 바위 위로 올라 가고, 또 한 패는 바위 밑에서 기다리기로 되었는데, 유 탐정은 수령과 함께 바위 위로 올라갔지요. 올라 가기 전에 그는 원장과 전신수 앞으로 와서 두어 마디 인도 말로 뭐라고 꾸지람을 한 다음에,
“잠자코 두 시간만 더 참으시오.”
하고 한국 말로 가만히 속삭이었읍니다. 원장과 무전사는 깜짝 놀랐지요. 그 순간, 원장은 저번에 태평동 유 불란 탐정의 집을 백희와 둘이서 찾아갔을 때, 인도인으로 변장했던 유 탐정의 생각이 문득 나서 기쁨과 놀라움이 한꺼번에 복바쳐 올라옴을 전신에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 원장은 눈 짓을 하여 알았다는 표정을 탐정께 전하고 마음 속으로 빙그레 웃었읍니다.
이리하여 탐정은 도적들과 함께 가버리었읍니다. 원장과 무전사는 나무 그루에 매인채 어서 바삐 유 불란 탐정이 돌아오기를 목을 늘이고 기다릴 뿐이었읍니다.
위험은 닥쳐오고
[편집]그 때, 바위 밑 벼랑 아래서 몸을 감추고 도적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학준네 패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길 가운데 커다란 함정(陷穽)을 파고, 그 위에다 나무 가지를 덮어 놓은 후에 곧 산골짜기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아니나 다를까, 네 명의 인도 도적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며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읍니다.
“떠들지 말고 가만 있거라!”
백희와 학준이, 총에 맞은 선장, 그외 선원들이 세 명, 그들은 숨을 죽여 가면서 달빛을 등진 도적들이 점점 다가오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아아, 그러나 도적들은 함정이 가로 막힌 앞까지 오더니 그만 거기서 걸음을 멈추고 눈 앞에 높다랗게 솟아있는 벼랑 위를 쳐다보면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학준이들도 벼랑 위를 쳐다보니 훤하게 비치는 달 빛 속에서 세명의 인도인이 지금 높은 벼랑을 개미떼처럼 발발 기어 올라가는 양이 보이었읍니다.
“유 탐정은 어느 패에 섞여 있을까?”
하고 그들은 수군수군 하며,
“유 탐정은 언제 신호의 총을 쏠 것인가?”
하고 한 방의 총소리만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아직 총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 때, 인애와 영길이 산동이네 패가 지금 도적들이 발발 기어 올라오는 벼랑 중간에 숨어서 역시 유 탐정의 총 소리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눈 앞으로 지나가는 도적들 가운데, 어느 것이 유 불란 탐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읍니다.
그 순간― 영길이와 산동이들이 숨어 있는 바로 눈앞에서 이상한 광경이 하나 벌어졌읍니다. 그것은 ‘네리’로 변장했던 유 탐정의 정체가 그만 그 놈들에게 발각이 되는 무서운 광경이었읍니다.
그러면 유 불란 탐정은 대체 어떻게 발각이 되었을까?……
그 때까지 ‘네리’로 변장한 유 탐정은 수령과 한 사람의 부하와 같이 가파로운 벼랑 턱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만 붙잡었던 바위가 쑥 빠지는 바람에 탐정의 몸둥이는 서너 길이나 데굴데굴 굴러 내려 오다가 다행히도 어떤 커다란 나무에 걸렸읍니다. 그 때, 탐정은 제가 ‘네리’로 변장했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 버리고 그만 한국 말로,
“아그머니!”
하고 고함을 치지 않았읍니까. 그 순간 수령은,
“아 저 놈은 진짜 ‘네리’가 아니고 ‘네리’로 변장한 한국놈이다.”
하면서 나무에 걸린 유 불란 탐정을 향하여 번뜩 권총을 겨누었읍니다.
깜짝 놀래어 위를 쳐다보는 탐정과 달 빛에 번쩍거리는 권총을 들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인도인! 아아, 한 방의 총 소리와 아울러 유 불란 탐정의 목숨은 마치 아침 햇 빛에 늘어지는 이슬과도 같이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손을 들어라! 움직이면 쏠테다!”
하고 수령은 힘 있게 말했읍니다. 탐정은 눈 앞이 아찔했읍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산동이와 영길이가 선원들과 함께 도적들의 뒤로 쑥 나왔을 때, 죽은 줄 알았던 유 탐정이 얼마나 기뻤겠읍니까. 두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한다는 표적을 보이었지요. 그 순간이었읍니다.
“탕, 탕―”
하고 영길이와 산동이가 권총 쥔 도적의 손등을 쏘았읍니다. 그 놈들은 권총을 벼랑 아래 던지고,
“악!”
소리를 치면서 뒤를 돌아다 보았을 때는 벌써 선원들의 굵다란 팔목이 그의 목덜미를 꽉 누르고 있을 때였지요. 유 탐정은 무안한 듯이,
“너희들이 내 대신 신호의 총을 쏘았구나!”
하고 고마워 하였읍니다.
그런데, 벼랑 아래서 유 불란 탐정의 신호의 총 소리를 기다리던 학준이와 백희의 패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그 때 탕하고 고요한 밤하늘을 울리는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일시에 욱하고 도적들을 향하여 달려 갔읍니다. 그 놈들은 안심하고 있던 차라, 화닥닥 놀래어 서로 서로 뭐라고 떠들면서 몇 발자국씩 뒤로 움직이지를 않았겠읍 니까. 순간 그들은,
“악!”
하고 부르짖으면서 깊고 깊은 함정 밑으로 툭툭 떨어져 내려 갔읍니다. 함정 속에서 울어 나오는 도적들의 아우성을 들은 순간 백희, 학준이, 선장, 기관사 그 밖에 여러 선원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으와― 으와”
하고 기쁨에 날뛰는 것입니다.
저 흉악 무쌍한 도적들을 이리하여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붙들어 버렸읍니다.
“학―준―아! 어떻게 됐니?……”
하고 고함치는 목소리가 우르렁 우르렁 하면서 벼랑 밑으로 굴러 내려 왔읍니다. 그래 학준이도 목소리를 높여서,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함정 속에다 떨구어 놓았어요! 그런데 거기서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하고 물었읍니다.
“여기서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죄다 붙들었다!”
“그러세요?”
“그런데 빨리저 언덕을 넘어가서 산골짜기 나무 그루에 묶인 원장 선생님과 무전사를 풀어 드려라! 빨리 가거라!”
그래서 선원 두 사람이 원장을 데리러 언덕 위로 뛰어 올라갔지요. 그 때, 또 유 탐정의 목소리가 들렸읍니다.
“학준아! 너는 거기 있다가 이 닭의 주둥이 모양으로 된 바위의 그림자가 어디 쯤 떨어지는가, 자세히 보아 두어야 한다. 알겠니?”
“네, 잘 알겠읍니다.”
오오, 황금굴
[편집]한참 있다가 유 탐정은 또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을 쳤읍니다.
“달이 아직 닭의 머리 위까지 떠 올라 올려면 삼십 분 쯤 있어야 될께다. 그런데, 지금 주둥이 모양으로 된 바위의 그림자가 어디 쯤 되는가?”
“저편 언덕 위야요.”
“그래 그러면 곧 그리로 가거라.”
그래서 기관사는 함정 속에 넣은 도적들을 지키기로 하고 저편 언덕 위로 달려갔읍니다. 그 때, 선원 두 사람이 원장과 무전사를 구해 가지고 이리로 걸어왔읍니다.
“아, 원장 선생님! 얼마나 고생을 하셨어요? 놈들은 죄다 붙들었읍니다.”
하고 학준이가 보고를 했더니 원장은,
“너, 머리를 상했구나! 어, 선장님도 어깨를…….”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 때 유 탐정이 또 벼랑 위에서 외쳤읍니다.
“학준아, 지금 바로 달이 닭의 머리 모양으로 된 바위 위까지 떠 올라왔다. 주둥이의 그림자는 어디 쯤 되느냐?”
“그림자가 크고 넓어서 어디라고 꼭 말은 못 하겠어요. 그러나 대강 이 커다란 야자 나무 밑입니다.”
“그래?…… 그러면 거기서 기다려라. 곧 그리로 내려 가마.”
유 불란 탐정이 포승을 지운 두 놈의 도적을 몰고 내러 온 것은 한 삼십 분 후의 일이었읍니다. 탐정은 학준이의 머리를 쓸어 보고, 선장의 어깨를 만져 보면서,
“괜찮소, 곧 낫겠읍니다.”
하고 위로를 한 다음에,
“자아, 이 놈들을 모두 함정에다 잡아 넣고 인제부터 저 수 많은 황금 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황금굴을 찾아가자!”
하고 부르짖었읍니다.
이리하여 도적들은 함정에다 몰아 넣은 다음에 유 탐정을 선봉으로 하고 소위 황금굴을 찾기 시작하였읍니다.
깊을 대로 깊은 고도(孤島)의 밤은 어느덧 안개가 자욱히 낀 새벽에 가까워 왔읍니다. 과연 저 이상한 암호문에 쓰여 있는 것과 같은 수 많은 황금 덩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는지?…… 사람들은 떨리는 흥분과 조마조마한 호기심에 가득 찼읍니다. 유 탐정은,
“자아, 여러분, 똑똑히 세시오. 이 야자 나무 밑에서부터 남으로 백 보를 걸어야 합니다. 자아, 하나, 둘, 셋, 넷……”
탐정은 나침판(羅針盤)을 들여다 보면서 야자 나무 밑에서 남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읍니다. 사람들도 따라가며
“다섯, 여섯, 일곱……”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셋읍니다.
언덕을 넘어서 골짜기로 내려갔읍니다. 거기서 다시 저편 산으로 조금 올라간 데가 꼭 백 보였읍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샘 옆이었읍니다.
“자아, 이 샘에서 다시 동으로 삼십 보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동으로 또 삼십 보를 걸어갔읍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무슨 비석(碑石)처럼 생긴 조그만 돌이 하나 서 있겠지요. 그 비석에서 다시 북으로 십 보를 걸어 가고 거기서 또 서쪽으로 이 보를 걸어 가니 아아, 이 어찌 된 일인가?……
그들 앞에는 커다란 돌 문(石門)이 하나 나타나지 않았겠읍니까.
“자아, 이 돌 문을 열어라!”
하고 유 탐정은 신이 나서 고함을 쳤읍니다. 그래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무거운 돌 문을 벙싯하니 열었읍니다. 컴컴한 굴 속이지요. 차디찬 공기가 획하고 몰려 나와서 사람들의 흥분된 얼굴을 씻는 듯이 스치고 지나갔읍니다.
“자아, 내 뒤를 따르라!”
하고 탐정이 선봉서서 컴컴한 굴 속으로 들어갔읍니다.
사람들은 층층대처럼 생긴 굴 속을 발과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자꾸만 땅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갔읍니다. 유 탐정은 회중 전등을 휘두르면서,
“서로 손목을 잡고 따라 오시오. 한 사람이라도 떨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우르릉 우르릉 굴 속을 울리지요. 머리 위에서 물 방울이 선뜻선뜻 떨어 집니다.
아이들은 무시무시하였읍니다. 이러다가 굴이 무너지면 어떻거나?…… 이 캄캄한 굴 속에서 귀신이 갑자기 악 하고 나타나면 어떻거나?…… 이 지옥과도 같은 땅 속―
이리하여 구불구불한 굴 속을 한참 동안 걸어 가노라니까 길이 두 갈래로 갈려졌읍니다.
“어느 길로 가나?”
하고 주저하다가 탐정은 왼 편 길로 걸어 들기 시작했읍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철석철석 하는 물결 소리가 가늘게 들려 왔읍니다.
“바다 밑이로구나?”
하고 학준이와 백희는 속삭이었읍니다.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주루룩 주루룩 떨어집니다. 그 때 선봉 섰던 유 탐정이,
“아, 여기 조그만 돌 문이 또 하나 있구나!”
하길래 달려 가서 회중 전등으로 비치어 보니, 돌문 위에는 인도 글자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읍니다.
황금굴(黃金窟)
그것은 누구의 것이냐.
발견하는 사람의 것,
“황금굴이다! 황금굴이다!”
“만세! 만세!”
사람들은 저마다 기뻐서 손벽을 치며 부르짖었읍니다.
찬란한 왕관
[편집]그러나 그 때, 유 불란 탐정은 떠들지 말라고 손짓을 하며 빙싯하게 열려진 돌 문에다 귀를 대고,
“가만들 있으시오. 이 안에서 뭣인가 버석버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지요. 아이들은 온 몸이 오싹해 졌읍니다. 이와 같이 깊은 굴 속에 무엇이 있는가?…… 귀신인가 사람인가?…… 아니,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실상 무시무시하였읍니다.
유 불란 탐정은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고 있더니,
“자아, 여러분, 권총들을 꺼내 드시오. 이 돌문 안에는 무엇인가 알 수 없으나 버석버석 움직이는 물건이 있읍니다.”
그 때 돌문 안에서 갑자기,
“음, 음”
하는 소리가 들려 오지 않겠읍니까.
사람들은 화닥닥 놀래며,
“이게 뭔가?……”
하고 저도 모르게 고함을 쳤읍니다. 그것은 사실 귀신의 울음 소리와도 같이 무시무시하고 저릿저릿했읍니다.
“귀신이다!”
하고 산동이는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지요. 그 때 유 탐정이,
“떠들지 말아! 귀신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다!”
“사람이라구요?…… 이런 굴 속에 사람이 살다니?……”
“그러나 사람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자아, 내가 갑자기 문을 열테니 여러분은 일시에 권총을 겨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의를 시킨 후에 유 탐정은 갑자기 문을 열어 젖혔지요. 그 순간,
“악!”
하고 사람들은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회중 전등의 불 빛이 비치는 곳― 거기에는 실로 무서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읍니다.
무서운 광경― 그것은 사실 무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읍니다.
여러분, 저 가느다란 회중 전등의 불 빛을 따라 자세히 보십시오. 그것은 사면이 울퉁불퉁한 바위로 쌓인 땅굴(地窟)인데 그 땅굴 한 복판에는 지금 벌거벗은 인도인 한 사람이 커다란 구렁이에 감기어 죽어 있지 않겠읍니까!
그 순간, 유 탐정은 구렁이 대가리를 겨누고 한방
“탕―”
하고 권총을 쏘았읍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구렁이 대가리에서 검으툭툭한 핏 줄기가 샘솟 듯이 뭉쿨뭉쿨 솟아 나옵니다. 그래도 구렁이는 인도인을 놓아 주지를 않으 므로 한 방 더 목덜미에다 놓았지요. 그랬더니 인도인의 몸둥이를 풀어 놓은 구렁이는 땅굴 안을 무섭게 헤매이다가 그만 기진 맥진하여 쓰러지고 말았읍니다.
“아, ‘네리’로구나!”
하고 외치면서 유 탐정은 네리의 몸둥이를 어루만져 보았으나 벌써 숨은 끊어져 버렸읍니다.
“‘네리’라니요?”
하고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탐정에게 물었읍니다.
“음, 이 놈의 이름이 ‘네리’입니다. 어젯밤 기관사가 붙들은 도적이지요. 나는 ‘네리’의 의복을 벗겨 입고 ‘네리’로 변장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네리’를 어떤 바위구멍에다 집어 넣었는데, 이놈이 어떻게 이리로 찾아들어 왔을까?…… 아, 아까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 데가 있지 않았읍니까?…… 그 오른 편 길이 그 바위 구멍으로 통했던 것입니다. 구렁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황금굴을 발견했다고 노상 기뻐했겠지요. 불쌍한 놈!”
그 때, 학준 소년이,
“선생님, 여기 이상한 상자가 하나 있어요.”
하고 고함을 쳤읍니다.
회중 전등에 비치어 보니, 과연 땅굴 한 편 구석에 역시 돌로 만든 이상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읍니다.
유탐정이 부리나케 그리로 뛰어가 보니, 물 방울이 흐르는 상자 뚜껑 위에 다음과 같은 인도 글자가 쓰여 있지요.
이 뚜껑을 여는 자여,
네 위에 행복이 있거라.
“이것이다. 이것이다! 이 속에 황금이 가득 찼을 것이다!”
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외치는 유 불란 탐정을 삥 둘러 싸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상한 상자를 들여다보는 눈동자, 눈동자, 눈동자!
“그러면 한 시 바삐 뚜껑을 열어 봅시다!”
하고 다가드는 늙은 원장 선생님의 말에,
“그럽시다. 자아, 그것을 잡으시오. 하나, 둘, 셋!”
뚜껑은 열리었읍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두 손을 번쩍 들었읍니다.
“야아, 이것 봐?”
“이것이 뭐냐?……”
“황금으로 만든 왕관(王冠)이로구나!”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놀라서 떠들기를 마지 않았읍니다.
아아, 보라! 어둠 속에 번쩍거리는 황금의 왕관을 보라! 왕관에는 돌아가면서 오색이 찬란한 보석들이 마치 별처럼 박혀 있지 않는가!
“이것은 옛적 인도의 어떤 임금님이 아니, 저 히말라야 산골짜기에서 산적들의 총에 맞아 죽은 그 부인의 조상의 것에 틀립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유 탐정은 황홀 찬란한 왕관을 상자에서 꺼내 들고,
“자아, 인제는 한시 바삐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고 명령하듯이 말했읍니다.
계룡도야, 잘 있거라
[편집]이리하여 일행이 ‘네리’의 시체를 메고 컴컴한 굴 속에서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은 신기로운 섬, 계룡도 동편 하늘에 황금색 태양이 무륵무륵 떠 올라오고 있을 때였읍니다.
함정 속에 강금을 당해 있는 도적들을 모두 끌어 내어 포승을 지우고 무기를 빼앗은 후에 ‘네리’의 시체와 함께 저희들이 타고 온 기선에 태워 주었읍니다.
“‘네리’를 죽인 것은 결코 우리들이 아니다. ‘네리’가 구렁이에게 감기어 죽은 것이다. 우리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텁석부리 수령님이여, 내내 안녕히 계시오. 인연이 있거던 후일에 다시 만나 봅시다.”
유 불란 탐정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하듯이 한 손을 가슴 위에 읍하고 공손히 경례를 하였읍니다. 아이들은 유 탐정의 하는 양이 너무나 우스워서,
“하하 하하……”
하고 웃었읍니다. 그러나 포승을 지인 수령은 성난 사자와 같이 눈을 흘기면서 탐정을 쳐다보며,
“이번에는 너희들이 이겼으나 결코 안심하여서는 안 된다. 후에 다시 그 왕관을 빼앗아 올 테다!”
하고 부르짖었읍니다.
“흥, 후에 보자는 놈 무섭지 않더라!”
하고 유 불란 탐정은 품에 안은 황금의 왕관을 비쭉 내보이면서,
“수령님, 쓸데 없는 수작은 그만하고 후일에 내가 너의 집을 찾아 갈테니, 그 때는 한턱 잘 해야만 합니다. 수령을 죽이지 않고 이처럼 공손히 돌려보내는 은혜를 잊어서야 되겠읍니까?”
그리고 탐정은 이 편으로 걸어오면서,
“자아, 여러분, 우리들도 인제는 계룡도를 떠납시다.”
하고 고함쳤읍니다. 이리하여 계룡도를 떠난 태양호는 아침 햇빛을 한 아름 안고 인도양의 푸른 물결을 힘차게 걷어 차면서 엔진 소리도 높다랗게 멀리 고국을 향하여 쉬임 없이 달리고 있을 때, 갑판 위에서는 지금 찬란히 빛나는 황금의 왕관을 둘러 싸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오늘의 성공을 마음 속으로 축복하였읍니다.
“백희야, 이 왕관은 네 것이다!”
하고 유 탐정은 왕관을 백희 앞으로 갖다 놓았읍니다. 백희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아냐요. 저는 학준이하고 약속을 했는데…… 이 왕관을 팔아서 절반은 나라에 바치고 절반으로는 커다란 고아원을 세울테야요. 그리구 전국에서 불쌍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하고 말은 채 끊기 전에,
“허어, 백희는 참 기특한 애로군!”
하고 옆에 앉았던 늙은 원장 선생님이 제일 먼저 기뻐하였읍니다.
“원장 선생님, 꼭 그렇게 해 주세요.”
하고 학준이도 졸랐읍니다.
“그럼, 그러마. 너희들 소원대로 하자!”
하고 유 탐정과 원장 선생님은 진심으로 찬성하기를 마지 않았읍니다.
“정말예요?”
“정말이구 말구!”
“아아, 기쁘다! 기쁘다!”
하면서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읍니다.
훌륭한 고아원을 세우자! 부모 없는 애, 배고픈 애, 학교 못가는 애―그런 애들을 죄다 데려다가 기르고, 공부를 시켜서 장래에 훌륭하고 씩씩한 사람들을 만들자! 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계룡도야, 잘 있거라!”
“계룡도야, 잘 있거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