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대첩비/해석
해석문
[편집]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겸홍문관대제학(兼弘文館大提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성균관(知成均館) 동지경연춘추관사(同知經筵春秋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 신(臣) 김귀영(金貴榮)이 왕명을 받들어 지음.
봉헌대부(奉憲大夫) 여성군(礪城君) 신(臣) 송인(宋寅)이 왕명을 받들어 씀.
가선대봉(嘉善大奉) 호조참판(戶曹叅判) 겸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摠管) 신(臣) 남응운(南應雲)이 왕명을 받들어 전액(篆額)을 씀.
만력(萬曆) 3(선조 8, 1575년)년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박계현(朴啓賢)이 보고하기를 “운봉현(雲峰縣)의 동쪽 16리 되는 곳에 황산(荒山)이 있는데, 이곳은 바로 우리 태조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곳입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땅 이름도 엉뚱하게 바뀌고 길도 잘 알 수 없어 정확한 지점을 분별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수 천 수 백 년 후에 높은 산은 밋밋해지고 낮은 곳은 잠기게 되어 갈수록 더 희미해지면 아무도 그 장소를 모르게 될까보아 심히 두렵습니다. 원컨대 큰 돌 하나를 세워 이를 표시하기를 고을의 늙은이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청에 하소연하니,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로써 감히 보고하지 않을 수 없어 삼가 아룁니다.”고 하였다. 왕이 그 건의를 받아들여 그 도(道)에서 그 일을 주관하도록 하고, 이어 신(臣) 귀영(貴榮)에게 글을 짓도록 명하셨다.
신이 명을 받고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보니, 고려말(高麗末)에 나라는 갈수록 위태로워지는데 섬 오랑캐들이 그 틈을 타서 성읍(城邑)을 도륙내고 불싸지르니, 죽은 시체가 들판을 가득 채우고 지나가는 곳마다 유혈이 낭자하여 모든 산천이 쓸쓸하였다. 함양(咸陽) 사람을 모두 죽이고 운봉(雲峰)을 불싸지르고 인월(引月)에 주둔해 있으면서, 말을 배불리 먹여 북쪽으로 진격한다고 떠드니 나라 안팎이 크게 놀라 두려워하였다.
태조께서 남원을 출발하여 운봉을 넘어 황산(荒山)으로 치달려가 정봉(鼎峰)에 올라가서 형편을 살펴보고는, 날랜 군사들을 앞뒤에서 서로 호응하며 적을 공격하여 10배가 넘는 적을 모두 무찔렀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아 모두 소탕하여 버렸다. 그 후 200여 년 간 바다에 아무런 근심이 없고 영남(嶺南)과 호남(湖南) 지방이 편안한 것은 모두 이 때의 전공(戰功)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남쪽의 백성들이 모두 진심으로 우러러 추모(追募)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고 받들어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아. 우리 성조(聖朝)의 크고도 높은 공열(功烈)은 나라의 역사에 밝게 실려 있고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두로 미쳐서, 천지에 가득 차고 고금(古今)에 밝게 빛나는 것이 마치 이 산처럼 영원할 것이니, 굳이 이러한 사정을 돌에 새겨 형용하지 않더라도 후세에 영원토록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쪽의 산들 가운데 높고도 높이 우뚝 솟은 것이 무려 수 백에 이르는데 우리 성조(聖祖)의 커다란 공훈은 이 봉우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가히 하늘이 만든 높은 산과 그 아름다움을 짝할 만하다 하겠으며, 그 높고 험준한 산세는 영원토록 우러러 보는 바가 될 것이다.
아아, 옛날에 주나라의 선왕(宣王)이 기양(岐陽)으로 사냥 갔을 때에 따르는 수레와 군사들의 무리는 간소하게 하였으나 석고(石鼓)에 그 공적을 새겼으며, 회서(淮西) 지방을 평정하여 변경 지역을 안정시킴에 여러 신하들이 황제가 울타리를 깨끗이 한 공적을 기록하기를 청하므로 그 크고도 훌륭한 공적이 영원토록 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좋은 돌에 글자를 새겨 거북과 용으로 장식한 비각에 안치하여, 이곳에 사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고 조아리게 한다면, 또한 세상이 바뀌어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니 이 또한 올바른 일이 아니겠는가?
신 귀영(貴榮)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과 같이 칭송의 노래를 지어 바치노라.
고려의 운명이 다하여 간악하고 사특한 무리들로 인해 안에서부터 무너지자,
바깥의 적을 불러들인 꼴이 되어 섬나라 오랑캐들이 갑자기 몰려왔네.
세 번 씩이나 피해를 입어 온 나라가 어육(魚肉) 같은 신세가 되어버리니,
만백성의 뼈가 들판에 늘어져 있어 그 참상(慘狀)이 천리(千里)나 이어졌네.
그 어지러움을 바로 잡으려 우리 태조께서 장군의 도끼를 받으시고,
군대의 규율을 세우시니 그 위세가 천둥처럼 떨쳤네.
정성이 하늘에 미침에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니,
승전(勝戰)할 징조가 이미 나타난 것이니 이는 하늘도 함께 그들을 미워한 것이다.
땅도 그 이로움을 빌려주니 황산(荒山)의 이로움은 바로 땅의 신이 주신 것이라,
이에 한 번 크게 노하여 그 무위(武威)를 크게 떨쳤네.
우리 대장기 흔들리고 북소리 울리자 흉악한 무리들은 어린 새새끼처럼 버둥거리며,
호랑이에게 반항해 보려 하였지만 그저 스스로의 목숨만 갖다 바칠 뿐.
활을 쏘아 정수리를 맞히자 투구가 잠시 옆으로 기울었는데,
이미 날카로운 화살이 꿰뚫자 적들은 벌떼처럼 흩어지고 개미처럼 뒤엉켰네.
넋을 잃고 울부짖는 적의 병사들 일만 마리 소가 골짜기에 가득 찬 듯하니,
말을 채찍질하여 먼저 산등성이에 올라 사방으로 공격해 들어가네.
누가 감히 맞설 수 있으리오, 우뢰처럼 달리고 번개처럼 부딪히는데,
대나무처럼 쪼개지고 기와처럼 부서져서 살과 뇌(腦)가 낭자하게 흩어지네.
사람과 하늘이 힘을 합쳐 토벌하니 하루아침에 재빠르게도 소탕하였네.
삼한(三韓) 땅을 새로이 만드시니 면모를 일신하고 지난 잘못을 뉘우치게 하셨다네.
그 업적 바다까지 이어져 이백 여 년 간을 편안히 지내니,
남쪽 백성들 밭 갈고 우물 파서 배부르고 등따습게 부모 자식 모시고 길렀다네.
그 모두가 당시의 업적의 결과이니 이에 추모하고 이에 축원하며,
가슴과 배 속에 새겨두니 세월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
명나라 만력(萬曆) 5년에 돌을 캐어 기록하여 산의 기슭에 세우니
기울어지거나 벗겨짐이 없이 영원토록 변치 않음이 이 돌과 같을 진저.
만력(萬曆) 5년 정축(선조 10, 1577년) 8월 일에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운봉현감(行雲峰縣監) 남원진관병마절제도위(南原鎭管兵馬節制都尉) 겸춘추관기사관(兼春秋館記事官) 신(臣) 박광옥(朴光玉)이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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