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와 도깨비
어떤 산골에 돌쇠라는 나무 장사가 살고 있었읍니다. 나이 삼십(三十)이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또 부모도 일가 친척도 없는 혈혈 단신이라 먹을 것이나 있는 동안은 핀둥 핀둥 놀고 그리다가 정 궁하면 나무를 팔러 나갑니다.
어디서 해오는지 아름드리 장작이나 솔나무를 황소 등에다 듬뿍 싣고 장터나 읍으로 팔러 갑니다. 아침 일찌기 해도 뜨기 전에 방울 달린 소를 끌고 이려 이려‥‥‥ 딸랑 딸랑‥‥‥ 이려 이려ㅡ 이렇게 몇 십(十)리씩 되는 장터로 읍으로 팔릴 때까지 끌고 다니다가 해 저물녘이라야 겨우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방울 달은 황소가 또 돌쇠의 큰 자랑거리였읍니다. 돌쇠에게는 그 황소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재산이었읍니다. 자기 앞으로 있던 몇 마지기 토지를 팔아서 돌쇠는 그 황소를 산 것입니다. 그 황소는 아직 나이는 어리었으나 키가 훨씬 크고 골격도 튼튼하고 털이 또 유난스럽게 고왔읍니다. 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뭇짐을 잔뜩 지고 텁석텁석 걸어가는 양은 보기에도 훌륭했읍니다. 그 동리에서 으뜸가는 이 황소를 돌쇠는 퍽 귀애하고 위했읍니다.
어느 해 겨울 맑게 개인 날 돌쇠는 전과 같이 장작을 한 바리 잔뜩 싣고 읍을 향해서 길을 떠났읍니다. 읍에 도착한 것이 오정때쯤이었읍니다. 그날은 운수가 좋았던지 살 사람이 얼른 나서서 돌쇠는 그리 애쓰지 않고 장작을 팔 수가 있었읍니다. 돌쇠는 마음에 대단히 흡족해서 자기는 맛있는 점심을 사먹고 소에게도 배불리 죽을 먹였읍니다. 그러고 나서 잠깐 쉬이고 그날은 일찍 돌아올 작정이었읍니다.
얼마쯤 돌아오려니까 별안간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고 북풍이 내리불더니 히뜩히뜩 진눈깨비까지 뿌리기 시작합니다. 돌쇠는 소중한 황소가 눈을 맞을까 겁이 나서 길가에 있는 주막에 들어가서 두어 시간 쉬웠읍니다. 그랬더니 다행히 눈은 얼마 아니 오고 그치고 말았읍니다.
아직 저물지는 않았는 고로 돌쇠는 황소를 끌고 급히 길을 떠났읍니다. 빨리 가면 어둡기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짧은 겨울해는 반도 못 와서 어느덧 저물기 시작했읍니다. 날이 흐렸기 때문에 더 일찍 어두웠는지도 모릅니다.
「야단났구나」
하고 돌쇠는 야속한 하늘을 쳐다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가만히 소 등을 쓰다듬었읍니다.
「날은 춥구 길은 어둡구 그렇지만 헐 수 있나 자 어서, 가자」
돌쇠가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는 말을 소도 알아들었는지 딸랑 딸랑 뚜벅 뚜벅 걸음을 빨리 합니다.
이렇게 얼마를 오다가 어느 산허리를 돌아서려니까 별안간 길 옆 숲속에서 고양이만한 새카만 놈이 깡창 뛰어 나오며 눈 위에 가 엎데어 무릎을 꿇고 자꾸 절을 합니다.
「돌쇠 아저씨 제발 살려주십시오」
처음에는 깜짝 놀래인 돌쇠도 이렇게 말을 붙이는 고로 발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까 사람인지 원숭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굴에 몸에 비해서는 좀 기름한 팔다리 살결은 까뭇까뭇하고 귀가 우뚝 솟고 적은 꼬리까지 달려서 원숭이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개같기도 했읍니다.
「얘 요게 뭐냐」
돌쇠는 약간 놀래면서 소리쳤읍니다.
「대체 너는 누구냐」
「제 이름은 산오뚜기예요」
「뭐? 산오뚜기?」
그때 돌쇠는 얼른 어떤 책 속에서 본 그림을 하나 생각해냈읍니다. 그 책 속에는 얼굴은 사람과 원숭이의 중간이요 꼬리가 달리고 팔다리가 길고 귀가 오뚝 일어선 것을 그려 놓고 그 옆에다 도깨비라고 씌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말 말어 요눔아」
하고 돌쇠는 소리를 버럭 질렀읍니다.
「너 요눔 도깨비 새끼지」
「네 정말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산오뚜기라구두 합니다」
「하하하하 역시 도깨비 새끼였구나」
돌쇠는 껄껄 웃으면서 허리를 굽히고 물었읍니다.
「그래 대체 도깨비가 초저녁에 왜 나왔으며 또 살려 달라는 건 무슨 소리냐?」
도깨비 새끼의 이야기는 이러했읍니다.
지금부터 한 일주일 전에 날이 따뜻하길래 도깨비 새끼들은 오(五) 육(六)마리가 떼를 지어 인가 근처로 놀러 나왔더랍니다. 하루 온종일 재미있게 놀고 막 돌아가려 할 때에 마침 동리의 사냥개한테 붙들려 꼬리를 물리고 말았읍니다. 겨우 몸은 빠져 나왔으나 개한테 물린 꼬리가 반동강으로 툭 잘려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조를 못 피게 되고 말았읍니다. 그뿐 아니라 동무들도 다 잊어버리고 혼자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입때껏 그 산허리 숲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도깨비에겐 꼬리가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꼬리가 없으면 첫째 재조를 피일 수 없는 고로 먼 산 속에 있는 집에도 갈 수 없고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려니 사냥개가 무섭습니다.
날이 추우면 꼬리의 상처가 쑤시고 아프고ㅡ그래서 꼼짝 못하고 일주일 동안이나 숲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 돌쇠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살려 달라고 뛰어 나온 것입니다.
「제발 이번만 살려 주십시오.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읍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도깨비 새끼는 머리를 땅 속에 틀어박고 두 손으로 싹싹 빕니다.
이야기를 듣고 자세히 보니까 과연 살이 바싹 빠지고 꼬리에는 아직도 상처가 생생하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온몸을 바들 바들 떨고 있읍니다. 돌쇠는 그 정경을 보고 아무리 도깨비 새끼로 소니 ‥‥‥ 하는 측은한 생각이 나서
「살려 주기야 어렵지 않다만은 대체 어떻게 해 달라는 말이냐」
하고 물었읍니다.
「돌쇠 아저씨의 황소는 참 훌륭한 소입니다. 그 황소 뱃속을 꼭 두 달 동안만 저에게 빌려 주십시오. 더두 싫습니다. 꼭 두 달입니다. 두 달만 지나면 날두 따뜻해지구 또 상처두 나을 테구 하니깐 그때는 제 맘대루 돌아다닐 수 있읍니다. 그 동안만 이 황소 뱃속에서 살두룩 해 주십시오. 절대루 거짓말 아닙니다. 거짓말을 해서 아저씨를 속이기커녕은 지가 이 소 뱃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은 이 소를 지금버덤 열 갑절이나 기운이 세이게 해 드리겠읍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돌쇠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읍니다. 귀엽고 소중한 황소 뱃속에다 도깨비 새끼를 넣고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거절하면 도깨비 새끼는 필경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도깨비라기로 그렇게 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도 없고 또 소의 힘을 지금보다 십(十)배나 강하게 해 준다니 그리 해로운 일은 아닙니다.
생각다 못해서 돌쇠는 그 소의 등을 두드리며「어떡허면 좋겠니」하고 물어보니까 소는 그 말귀를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그럼 너 허구 싶은대루 해라. 그러면 꼭 두 달 동안만이다」
돌쇠는 도깨비 새끼를 보고 이렇게 다짐했읍니다.
도깨비 새끼는 좋아라고 펄펄 뛰면서 백번 치사하고 깡창 뛰어서 황소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 읍니다.
돌쇠는 껄껄 웃고 다시 소를 몰기 시작했읍니다. 그랬더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까보다 십(十)배나 소는 걸음이 빨라져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읍니다. 할 수 없이 소 등에 올라 탔더니 소는 연방 딸랑 딸랑 방울 소리를 내이며 순식간에 마을까지 뛰어 돌아왔읍니다.
과연 도깨비 새끼가 말한 대로 돌쇠의 황소는 전보다 십(十)배나 힘이 세어졌던 것입니다. 그 이튿날부터는 장작을 산더미같이 실은 구루마라도 끄는지 마는지 줄곧 줄달음질을 쳐서 내뺍니다. 그전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장터를 이튿날부터는 아무리 장작을 많이 실었어도 하루 세 번씩을 왕래했읍니다.
돌쇠는 걸어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새로 구루마를 하나 사서 밤낮 그 위에 올라타고 다녔읍니다. 얘ㅡ이건 참 굉장하다‥‥‥ 하고 돌쇠는 하늘에나 오른 듯이 기뻐했읍니다. 따라서 전보다도 훨씬 더 소를 귀애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읍니다.
자ㅡ이러고 보니 동리에서나 읍에서나 큰 야단입니다. 돌쇠의 황소가 산더미같이 장작을 싣고 하루에 장터를 세 번씩 왕래하는 것을 보고 모두 눈이 뚱그랬읍니다. 그중에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황소의 힘이 세어졌는지 부득부득 알려는 사람도 있고 또 달래는 대로 돈을 줄터이니 제발 팔아 달라고 청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돌쇠는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도 하지 않았읍니다.
「어쩐 말이냐 우리 소가 제일이다」
그럴 적마다 돌쇠는 이렇게 생각하고 더욱 맛있는 죽을 먹이고 딸랑 딸랑 이려 이려ㅡ하고 신이 나서 소를 몰았습니다.
원래 게으름뱅이 돌쇠입니다만은 이튿날부터는 소 모는데 고만 재미가 나서 장작을 팔러 다녀서 돈도 많이 모았읍니다. 눈이 오거나 아주 추운 날은 좀 편히 쉬어 보려도 소가 말을 안 들었읍니다. 첫 새벽부터 오양간 속에서 발을 구르고 구슬을 내 흔들고ㅡ넘쳐 흐르는 기운을 참지 못해 껑정껑정 뜁니다. 그러면 돌쇠는 할 수 없이 또 황소를 끌어내이고 맙니다.
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두 달이 거진 다 지나가고 삼(三)월 그믐께가 다가왔읍니다. 그때부터 웬일인지 자꾸 소의 배가 부르기 시작했읍니다. 돌쇠는 깜짝 놀래어 틈 있는 대로 커다란 배를 문질러 주기도 하고 또 약을 써보고 했으나 도무지 효력이 없읍니다. 노인네들에게 보여도 무슨 때문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돌쇠는 매일을 걱정과 근심으로 지냈읍니다. 아마 이것이 필경 뱃속에 있는 도깨비 장난인가 보다 하는 것은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으나 처음에 꼭 두 달 동안이라고 약속한 일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뿐아니라 소는 다만 배가 불러 올 뿐이지 별로 기운도 줄지 않고 앓지도 않는 고로
「제기 그냥 두어라. 며칠 더 기대리면 결말이 나겠지. 죽을 것 살려주었는데 설마 나쁜 짓이야 하겠니」
이렇게 생각하고 사(四)월이 되기만 고대했읍니다.
소는 여전히 기운차게 이 구루마를 끌고 산이든 언덕이든 평지같이 달렸읍니다.
그예 삼(三)월 그믐이 다가왔읍니다.
돌쇠는 겨우 후ㅡ하고 한숨을 내쉬이고 그날 하루만은 황소를 편히 쉬이게 했읍니다. 그리고 이왕이니 오늘 하루만 더 도깨비를 두어두기로 결심하고 소를 오양간에다 매인 후 맛있는 죽을 먹이고 자기는 일찍부터 자고 말았읍니다.
이튿날 사(四)월 초하룻날 첫 새벽입니다. 문득 돌쇠가 잠을 깨이니까 오양간에서 쿵쾅쿵쾅하고 야단스런 소리가 났읍니다. 돌쇠는 깜짝 놀래어 금방 잠이 깨어서 뛰쳐 일어났읍니다.
소를 누가 훔쳐가지나 않나 하는 근심에 돌쇠는 옷도 못 갈아 입고 맨발로 마당에 뛰어내려 단숨에 오양간 앞까지 다름질쳤읍니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돌쇠의 황소는 오양간 속에서 이를 악물고 괴로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미친 것 모양으로 겅중 겅중 뜁니다. 가엾게도 황소는 진땀을 잔뜩 흘리고 고개를 내저으며 기진역진한 모양입니다.
돌쇠는 깜짝 놀래어 미친듯이 날뛰는 황소 고삐를 붙잡고 늘어졌읍니다. 그러나 황소는 좀체로 진정치를 않고 더욱 힘을 내어 괴로운 듯이 날뜁니다.
「대체 이게 웬 영문야」
할 수 없이 돌쇠는 소의 고삐를 놓고 한숨을 내쉬이며 얼빠진 사람같이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읍니다.
「돌쇠 아저시 돌쇠 아저씨」
그때입니다. 어디서인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돌쇠는 확실히 들었읍니다. 돌쇠는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버쩍 나서 주위를 돌아보았읍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때 또 어디서인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 왔읍니다.
「돌쇠 아저씨 돌쇠 아저씨」
암만해도 그 소리는 황소 입 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돌쇠는 자세히 들으려고 소 입에다 귀를 갖다 대었읍니다.
「돌쇠 아저씨 저예요 저예요 저를 몰르세요?」
그때에야 겨우 돌쇠는 그 목소리를 생각해 내었읍니다.
「오ㅡ너는 도깨비 새끼로구나 날이 다 새었는데 왜 남의 소 뱃속에 입때 들어 있니 약속한 날짜가 지났으니 얼른 나와야 허지 않겠니」
그랬더니 황소 속에서 도깨비 새끼는 이렇게 대답했읍니다.
「나가야 헐 텐테 큰일 났읍니다. 돌쇠 아저씨 덕택으로 두 달 동안 편히 쉬인 건 참 고맙습니 다만은 매일 드러누워 아저씨가 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가 기한이 됐길래 나가려니까 그 동안에 굉장히 살이 쪘나봐요 소 모가지가 좁아서 빠져 나갈 수가 없게 됐단 말예요 억지루 나가려면 나갈 수는 있지만 소가 아픈지 막 뛰고 발광을 하는구먼요 야단났읍니다」
돌쇠는 그 말을 듣고 기가 탁 막히고 말았읍니다.
「그럼 어떡허면 좋단말이냐 그거 참 야단이로구나」
돌쇠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고 말았읍니다. 도깨비 새끼에게 황소 뱃속을 빌려준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인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무엇보다도 소가 불쌍해서 돌쇠는 고만 눈물이 글썽 글썽 하고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읍니다.
그때 또 도깨비 새끼 목소리가 들려 나왔읍니다.
「아 돌쇠 아저씨 좋은 수가 있읍니다. 어떻게든지 해서 이 소가 하품을 허두룩 해 주십시오.
입을 딱 벌리고 하품을 헐 때에 지가 얼른 뛰어 나갈 텝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평생 이 뱃속에서 살거나 또는 뱃가죽을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읍니다. 그 대신 하품만 허게 해 주시면 이 소의 힘을 지금버덤 백갑절이나 더 세이게 해드리겠읍니다」
「옳다. 참 그렇구나. 그럼 내 하품을 허게 헐 테니 가만이 기다려라」
소가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돌쇠는 얼른 이렇게 대답은 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은 딱합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소가 하품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그뿐 아니라 소가 하품하는 것을 돌쇠는 입때껏 한 번도 본 일이 없읍니다. 그래서 함부로 옆구리도 찔러보고 콧구녕에다 막대기도 꽂아보고 간질려도 보고 콧등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ㅡ별별 꾀를 다 내이나 소는 하품커녕은 귀찮은 듯이 몸을 피하고 도리질을 하고 한두어 번 연거푸 재채기를 했을 뿐입니다. 도무지 하품을 할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도깨비 새끼가 뱃속에서 자꾸 자라서 제절로 배가 터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물어 뜯기어 아까운 황소가 죽고 말 것입니다. 땅을 팔아서 산 황소요 세상에 다시 없이 애지중지하는 귀여운 황소가 그 꼴을 당한다면 그게 무슨 짝입니까. 돌쇠는 답답하고 분하고 슬퍼서 어쩔 줄을 모를 지경입니다.
생각다 못해서 돌쇠는 옷을 갈아입고 동네로 뛰어 내려 왔읍니다.
「어떡허면 소가 하품 하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동네로 내려온 돌쇠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이렇게 외치며 물었읍니다만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읍니다.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고 무엇이든지 안다는 노인조차 고개를 기울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읍니다.
그렇게 얼마를 묻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빈 손으로 돌쇠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읍니다. 인제는 모든 일이 다 틀렸구나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고 기가 탁탁 막힙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서 길게 몇 번씩 한숨을 내쉬이며 돌쇠는 오양간 앞으로 돌아와서 얼빠진 사람같이 황소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몇 해 동안 힘도 많이 도웁고 애도 많이 쓴 귀여운 황소!
며칠 안되어 뱃속에 있는 도깨비 새끼 때문에 뱃가죽이 터져서 죽고 마를 귀여운 황소!
그것을 생각하니 사람이 죽는 것보다 지지 않게 불쌍하고 슬프고 원통합니다.
공연히 그놈에게 속아서 황소 뱃속을 빌려 주었구나 하고 후회도 하여 보고 또 그렇게 미련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매질도 해 보고ㅡ그러나 그것이 인제 와서 무슨 소용입니까. 얼마 안 있어 돌쇠의 둘도 없는 보배이던 황소는 죽고 마를 것이요 돌쇠 자신은 다시 외롭고 쓸쓸한 몸이 되리라는 그것만이 사실입니다.
참다 못해서 돌쇠는 눈물을 흘리고 소리내어 울며 간신히 고개를 쳐들고 다시 한 번 황소의 얼굴을 바라보았읍니다. 황소도 자기의 신세를 깨달았는지 또는 돌쇠의 마음 속을 짐작했는지 무겁고 육중한 몸을 뒤흔들며 역시 슬픈듯이 돌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꼼짝 않고 돌쇠는 오양간 앞에 꼬부리고 앉아서 황소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밥 먹을 생각도 없읍니다. 배도 고프지 않았읍니다. 다만 귀여운 황소와 이별하는 것이 슬펐읍니다. 오정 때 가까이 되도록 돌쇠는 이렇게 황소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그랬더니 차차 몸이 피곤해서 눈이 아프고 머리가 혼몽하고 졸려졌읍니다. 그래서 고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딱 벌리고 기다랗게 하품을 하고 말았읍니다.
그때입니다. 돌쇠가 하품을 하는 것을 본 황소도 따라서 기다란 하품을 하기 시작했읍니다.
「옳다 됐다」
그것을 본 돌쇠가 껑충 뛰어 일어나며 좋아라고 손뼉을 칠 때입니다. 벌린 황소 입으로 살이 통통히 찐 도깨비 새끼가 깡창 뛰어 나왔읍니다.
「돌쇠 아저씨 참 오랫동안 고맙습니다. 아저씨 덕택에 이렇게 살까지 쪘으니 아저씨 은혜가 참 백골난망입니다. 그대신 아저씨 소가 지금보다 백갑절이나 기운이 세이게 해 드리겠읍니다」
도깨비 새끼는 돌쇠 앞에 엎데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넙죽 절을 하더니 상처가 나은 꼬리를 저으며 두어 번 재주를 넘었읍니다. 그리고나서 어디로인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때에야 돌쇠는 겨우 정신을 차렸읍니다. 입때껏 일이 꿈인지 정말인지 잠깐 동안은 분간할 수 없었읍니다. 그리다가 고개를 들어 홀쭉해진 황소의 배를 바라보고 처음으로 모든 것을 깨닫고 하하하하 큰 소리를 내어 웃었읍니다. 그리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황소의 등을 쓰다듬었읍니다.
죽게 되었던 황소가 다시 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튿날부터는 입때보다 백갑절이나 힘이 세어져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었읍니다. 돌쇠는 더욱 부지런해져서 이른 아침부터 백마력(百馬力)의 소를 몰며「도깨비 아니라 귀신이라두 불쌍하거든 살려 주어야 하는 법야」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콧노래를 불렀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