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예술·스포츠·취미/영화/영화의 감상/한국영화의 감상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한국영화의 감상〔개설〕[편집]

韓國映畵-鑑賞〔槪說〕

한국영화도 이제 반세기가 넘는 연륜(年輪)을 쌓았고, 그 동안에 제작된 영화 편수만도 수천을 헤아리고 있는 실정에 있다. 더구나 오락이나 취미생활이 다극화(多極化)되기 이전의 대중들에겐 영화 매체(映畵媒體)가 주는 영향력(影響力)의 종류를 구분할 때, 극영화(dramatic film)·기록영화(documentary film)·전위영화(前衛映畵:avant­garde experimental film)·만화영화(anim­ated cartoon film)로 대별되며, 요즈음은 문화영화라든가 소형영화(小型映畵:home movie) 등을 기록영화 부분에서 독립시켜 논하기도 하지만, '한국영화'의 감상에 속한 영화들은 주로 극영화에 한해서 언급되는 것이다.

극영화의 경우에도 다시 장르별로 본다면, 대략 ① 통속극(通俗劇:melo­drama) ② 가정극(家庭劇:home­drama) ③ 사극(史劇:historical­drama) ④ 활극(活劇:action­drama) ⑤ 희극(喜劇:comedy) ⑥ 음악극(音樂劇:musical drama) ⑦ 추리극(推理劇:mystery) 등으로 대별할 수 있고, 다시 세분하여 '드릴러'(thriller)·'심리극'(心理劇:psychological drama)·'상황극'(狀況劇:situation drama)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멜로드라마(melo­drama)라 하여 통속극과 홈드라마(home drama)를 함께 취급하는 예가 많고, 액션드라마(action drama) 속에 스릴러(thriller), 미스터리(mystery), 전쟁극영화(戰爭劇映畵) 등을 한데 묶기도 하고, 사회극 속에 상황극(situation drama)·심리극(psychological drama) 등을 함께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문예영화라 하여,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을 통틀어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런 용어는 일본에서만 사용하고 외국에서는 특별히 '문예영화'라는 부문(部門)을 두지는 않는다.

1970년까지의 통계숫자를 살펴보면 1919년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 이래로 1945년 광복까지 제작된 편수가 166편, 광복 후부터 환도기(1953년)까지에 제작된 편수가 86편, 1954년 이후부터 1970년까지 이른바 한국영화 전성기(全盛期)에 제작된 편수가 무려 2,021편이나 된다. 결국, 영화초창기에서 70년도까지 제작된 총편수를 보면 총 2,273편이 되는 셈이다. 물론 다소의 오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적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다.

이 많은 영화가 과연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졌을까 하는 문제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꾸어서 영화를 선택해 보았던 관객의 입장에서도, 과연 저 많은 영화중 내가 감명깊게 본 영화는 몇 편이나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한국영화를 감상(鑑賞)함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 선택 기준은 영화 초창기일수록 '이야기 중심'이었고, 다음 단계로는 '배우중심', 그리고 현대로 옮아 올수록 '감독중심'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시 부연해서 말한다면, 한국영화 초창기의 영화들이란 대부분 고대소설이나 민간설화(民間說話), 야담류에서 소재(素材)를 취해 왔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춘향전(春香傳)>, <심청전(沈淸傳)>,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등이 그러한 예였는데, 관객들은 늘 듣고 아는 줄거리였지만 일종의 친근감을 가지고 활동사진으로 된 '이야기'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 다음, '배우중심' 감상이란 나운규, 신일선, 복혜숙(卜惠淑), 전옥(全玉) 같은 이른바 톱스타가 등장함에 따라, 무조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선택하는, 일종의 '반사적심리(反射的心理)'로서 실컷 울거나 실컷 웃고 나옴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catharsis) 작용을 하는 경우이다. 끝으로, 영화감독을 보고 작품을 선택하여 감상(鑑賞)하는 이른바 '감독중심'의 감상법인데, 이 경우의 감상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가령, 나운규, 이규환(李圭煥), 최인규(崔寅奎) 같은 명장(名匠)들이 광복 전, 또는 광복 초의 관객들로부터 신임장을 받았었다면, 4·19혁명 후 영화 전성시기의 유현목(兪贅穆)·신상옥(申相玉)·김기영(金綺泳)·박상호(朴商昊)·김수용(金洙容)·이만희(李晩熙)·이성구(李星究) 등의 이름은 수준 높은 영화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공신력(公信力)이 있고, 그들의 영화를 선택하여 감상했음이 분명하다.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한때 정소영(鄭素影) 감독은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공전(空前)의 흥행기록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쯤되면, 그 방면의 취향을 가진 이른바 '슬픈영화 관객'들이란, 그 감독의 이름만 나오면 늦을세라 하고 극장으로 몰려갔을 법하다. 그런데 정소영 감독이 막상 작품 성향을 바꾸어 통속물(通俗物)이 아닌 본격적인 예술취향의 영화 <필녀(必女)>를 만들자, 결과적으로는 큰 손실을 보고 만 것을 보면, 관객의 심리란 가늠하기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결국 영화란 오락성과 예술성을 함께 지니며, 동시에 기업적인 면에서 볼 때는 상품(商品)이고, 예술적인 차원(次元)에서 볼 때는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어디까지나 대중과 함께 사는 매스 미디어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대중, 곧 관객들이란, 이와 같은 영화예술을 감상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인생과 보다 고차원적인 정서생활에 접하게 된다.

대체로 한국영화란 리얼리즘을 주조(主調)로 한 이른바 예술영화 계통과 통속적인 소재를 내용으로 한 멜로드라마로 그 특징을 삼을 수 있으며, 관객들은 각자 기호(嗜好)나 취미에 따라, 한국영화를 통해 예술적 감상작용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邊 仁 植>

작품 감상[편집]

월하의 맹세[편집]

月下-盟誓

각본·감독 윤백남(尹白南), 주연 이월화(李月華)·권일청(權日晴).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3년 제작.

<내용> 영득과 정순은 정혼한 사이였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득은 노름판과 술집에서 나날을 허송한다. 그의 방탕성은 결국 패가망신(敗家亡身)의 지경까지 몰고 간다. 이때 정순의 부친이 알뜰하게 저축해 두었던 돈을 찾아 영득의 부채를 갚아 준다. 영득은 크게 뉘우쳐 마음을 바로 잡았고, 그 후 새 사람이 되어 정순과 단란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감상>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무성영화 시대를 개막하는 것과 같은 성격을 띤 영화다.

다만 일제시 조선총독부 내 체신국에서 저축장려를 위해 만든 일종의 문화영화였다는 점과, 전국에 무료상연을 했다는 점은 특기할 수 있겠다. 작품의 성격은 계몽영화에 속했고, 이 영화로 인해 이월화·권일청이 처음으로 은막에 등장했다. 1919년에 김도산(金陶山)이 감독한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가 연쇄극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한 영화였기 때문에 어느 의미에서는 <월하의 맹세>부터를 한국영화의 첫번째 작품으로 꼽을 만큼 사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운영전[편집]

雲英傳

각본·감독 윤백남, 주연 김우연(金雨燕)·안종화(安鍾和)·이채전(李彩田).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5년 제작.

<내용> 세종(世宗)의 넷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사랑을 받는 운영(雲英)을 문재(文才)가 뛰어난 김진사가 연모함으로써 일어나는 이른바 삼각관계로, 끝내 김진사와 운영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하다가 비상을 먹고 정사(情死)로 끝을 맺는다.

<감상> 이 영화는 일종의 시대물(時代物)로서, 궁중의 비화(秘話)를 소재(素材)로 삼은 영화였는데, 제작 및 촬영·편집 등은 일본인들이 담당했다. 안종화의 소개로 '조선키네마사(社)'에 입사한 나운규가 교군(轎軍:가마메는 사람 역할)으로 감격적인 데뷔를 한 영화였다. 개봉결과 흥행 성적은 부진했었다.

농중조[편집]

籠中鳥

감독 이규설(李圭卨), 주연 이규설·복혜숙·나운규.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6년 제작.

<내용> 한쌍의 사랑하는 연인들이 있다. 그러나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뿌리깊은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시대였던 만큼, 그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의 신세가 되어 버린다. 남자가 여자를 끈덕지게 불러내려고 노력하고 여자도 끝내는 그 남자를 따라가 사랑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감상> 흥행 성적이 좋았고, 복혜숙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일본 냄새가 너무 짙어서 흠이 되기도 했다.

당시 문단에선 육당(六堂)과 춘원(春園)이 '자유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었는데, 영화에서 주로 필름을 통해 그와 같은 연애관을 피력했던 것으로 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일대 성공을 거두었다.

아리랑[편집]

각본·감독 나운규, 주연 나운규·신일선(申一仙)·남궁운(南宮雲).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6년 제작.

<내용> 생략 ('한국영화의 역사' 참조).

<감상> 나운규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사상(史上) 불멸의 명작으로 꼽히는 <아리랑>은, 한마디로 해서 일제에 억눌렸던 한국 민족의 잠재적(潛在的)인 민족애(民族愛)를 표방한 레지스탕스 영화였다. '고양이와 개'로 상징되는 프롤로그부터가 속박당한 민족과 속박하는 민족의 대립을 암시하기도 했으며, 특히 주인공 영진을 광인(狂人)으로 설정한 것은, 왜곡된 현실에 대한 철저한 반항심리의 간접적인 표현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무튼 영화 <아리랑>은 전국 방방곡곡에 걸쳐 물결쳐서, 다시 우리 민족의 가슴에 뜨거운 감격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나운규가 각본·감독·주연을 맡았음은 물론, 신일선(申一仙)이 처음 등장하였다.

풍운아[편집]

風雲兒

각본·감독 나운규, 주연 나운규·김정숙(金靜淑)·임운학(林雲鶴).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6년 제작.

<내용> 니콜라이 박(朴)이라는 정체불명(正體不明)의 사나이가 외국에서 돌아와 불우한 친우들을 돕고 살아간다. 그때 친구의 애인을 가로채어 파렴치하게 살고 있는 갑부가 그 고장에 있었다. 니콜라이 박은 아편 밀수단의 청부를 받고 거액의 돈을 마련하여 친구의 애인을 마(魔)의 손길에서 구해준다. 그리고는 표연히 방랑의 길을 떠나간다.

<감상> 조선키네마사 제작, 이 영화에서도 나운규는 각본·감독·주연·편집 등 1인 4역을 담당, 전능적(全能的) 영화인임을 과시했는데, 작품의 성격은 <아리랑>에 이어 '방랑하는 넋'의 사나이, 즉 니콜라이 박이라는 청년을 부각시키고 있다. 나운규 스스로가 만주의 북간도에서 부산까지 오르내리는 방랑벽을 타고났기에 니콜라이 박의 실체(實體)는 더욱 생동감이 있다. 물론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소재를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풍운(風雲) 속에 사는 한 사나이의 굵직한 삶을 스크린 이미지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들쥐[편집]

각본·감독 나운규, 주연 나운규·신일선·주삼손(朱三孫)·윤봉춘(尹逢春).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27년 제작.

<내용> 들쥐라고 불리는 방랑자(放浪者)들이, 악독하며 호색적(好色的)인 부자가 주삼손의 애인(신일선)을 그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데 대해 일제히 도전(挑戰)하여, 그로부터 여인을 구해 내어 본래의 애인에게 돌려준다는 액션드라마.

<감상> 나운규의 초기작품인 <아리랑> <풍운아(風雲兒)> <들쥐> 등의 내용을 훑어보면, 서로 일맥상통하는 테마가 있다. 즉, 한쌍의 연인이 있고, 그 중 여인을 가로채려드는 갑부가 나타나서 갈등이 벌어지고, 위기일발(危機一髮)에서 여인은 선인(善人)에 의해 구출된다. 그러나 그 선인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진리를 일깨워 줬을 뿐…또 자기의 길을 떠나 버린다는 줄거리를 기둥으로 깔고 있다. 이 <들쥐> 역시 그와 같은 패턴에 속하는 작품이었으나, 한가지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점은 나운규 자신의 천재적인 연기력과 그의 연출에서 보여지는 영화 표현상의 재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먼동이 틀 때[편집]

원작·각색·감독 심훈(沈薰), 주연 심훈·신일선·한병룡(韓炳龍)·강홍식. 흑백 35밀리. 1927년 제작.

<내용> 감옥(監獄)에서 나온 강홍식이 신일선이 일하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 식당에서 그는 출감할 때 받은 돈뭉텅이를 떨어뜨린다. 그 돈을 주운 사람은 바로 신일선의 오빠였는데, 아편 중독에 걸린 사람이었다. 그는 돈을 돌려 주라는 동생의 말을 묵살한 채 달아나 버린다. 할 수 없이 동생이 그 돈을 마련하여 강홍식에게 주었다. 강홍식으로서는 신일선의 이와 같이 착한 마음씨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신일선은 한병룡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때 신일선을 가로채려는 깡패 주인규가 나타나고, 결국 주인규와 한병룡 사이에 처절한 격투가 벌어진다. 한병룡이 위급하게 됐을 때, 강홍식은 주인규를 살해하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또다시 철창신세를 지러 떠나고 만다.

<감상> 심훈 하면, 소설가로서 <상록수(常綠樹)> <직녀성> 같은 작품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에도 대단히 열성을 보여, <장한몽(長恨夢)>이란 영화에서는 주연까지 했었다. <먼동이 틀 때>는 심훈 스스로 각본·감독·출연을 겸한 작품으로, 내용은 멜로드라마풍에 속한다고 하겠으나, 작가 출신 감독답게 문학적인 향기를 작품에 풍기고 있었고, 특히 신일선의 연기가 뛰어났다.

사랑을 찾아서[편집]

각본·감독 나운규, 주연 나운규·이금룡(李錦龍)·전옥(全玉). 흑백 35밀리. 무성. 1928년 제작.

<내용> 구한말(舊韓末)의 군(軍)의 나팔수로 있었던 금룡은 일제의 등쌀에 못이겨 북간도로 떠나간다. 살림살이는 다 팔아 정리했어도 나팔만은 가지고 가다가 나운규라는 젊은 지사와 총 잘 쏘는 윤봉춘, 그의 애인 전옥을 만난다. 이들은 어느 마을에 주저앉는다. 그 후 그 마을을 개척하기로 합의하고, 한편 교육에도 힘을 기울인다. 어느날 그들은 마적들의 습격을 받아,쫓겨서 두만강을 건너오게 되었다. 일본 수비대들은 그들을 독립군으로 착각하고 사격을 가하여 모두 죽인다. 금룡은 동료들의 사기를 높이려고 끝까지 나팔을 불다가 죽는다. 나운규가 다시 그 나팔을 주워 불며, 동지들을 찾아 눈내리는 두만강을 헤맨다. 그러다가 나운규마저 총을 맞고 최후의 순간까지 나팔을 불다가 죽는다.

그 나팔소리는 말 못하는 백의민족의 저항 의식(抵抗意識)을 밑바닥에 깔고 있었다.

<감상> '나운규 프로덕션' 제3회작으로, 원명은 <두만강을 건너서>였었는데 검열에서 내용이 불순하다고 하여 <저 강을 건너서>로 개제(改題)하여 겨우 극장에 붙였으나, 상영도중 재검열을 받아 결국 <사랑을 찾아서>로 재개제(再改題) 당했던 파란 많은 영화였다. 고향(조국)을 버리고 북간도로 떠나는 실향민(失鄕民)의 비참한 상황을 리얼리즘적인 입장에서 묘사한 작품으로, 나운규가 <아리랑> 이래 최대의 야심을 갖고 제작한 장편(14권) 서사시였다.

임자 없는 나룻배[편집]

각본·감독 이규환(李圭煥), 주연 나운규·문예봉(文藝峰). 흑백 35밀리. 무성(無聲). 1932년 제작.

<내용> 농부 수삼(壽三)이는 극심한 수재로 인하여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와 인력거꾼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입원 중인 병약한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하려다가 부득이 도둑질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간다. 옥에서 풀려 나온 수삼(壽三)은 그 사이에 자기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간통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체념으로 바꾼 수삼은 어린 딸을 데리고 귀향하여 나룻터의 뱃사공이 된다. 10년 후, 나룻배가 오가던 강 위에는 철교가 버젓이 가설되었다. 결국 나룻배 사공인 수삼은 일터를 잃고 말았다. 이 무렵 철교 공사를 하던 기사가 딸을 욕보이려 한다. 격노한 수삼은 철교 놓은 기사를 찾아가 피투성이의 격투를 벌인다. 그 사이에 딸은 불타는 집 속에서 고스란히 타죽고, 강가에는 임자없는 나룻배만이 무심히 물결따라 일렁거리고 있었다.

<감상> 여러 말 필요없이 이 작품은 근대영화사에 빛나는 수작(秀作)이다. 이미 줄거리 자체가 거의 도식화(圖式化)되던 고대 소설적인 '권선징악' 내지는 '해피엔드'로 끝내곤 하던 그 이전의 영화에서 완전히 탈피하였다. 엄격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영화부터를 한국적 사실주의의 점화기(點火期)로 보아야 될 것이다.

나그네[편집]

각본·감독 이규환, 주연 문예봉·박재행(朴齊行). 흑백 35밀리. 발성(發聲). 1937년 제작.

<내용> 어느 어장에서 품팔이로 일하고 있는 복룡(福龍)은, 한 해의 두 철, 즉 한창 바쁠 때에 고기잡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젊고 아리따운 아내와 귀염둥이 자식을 보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의 아버지 성팔(成八)은 밀양강의 나룻배꾼 노릇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완고하고 인색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몹시 미워하고 업신여겼다. 그것이 젊은 복룡으로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고, 때로는 부자(父子)간에 의견 대립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이러한 아버지 성팔이가 어느날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돈마저 빼앗겼다. 남편 복룡이 일하러 어장에 간 사이여서, 홀로 남겨진 며느리 옥희(玉姬)는 어린애의 약값도 치르지 못하고 심한 곤경에서 허덕여야 했다.

바로 그럴 즈음, 평소에 옥희를 넘보던 이발사 삼수(三壽)는 옥희에게 어린애 약값을 주면서 슬쩍 자기 집으로 유혹한다.

바야흐로 옥희의 정조가 깨어지려는 순간, 남편 복룡이가 고향 마을에 들어서서 아내를 찾는다. 아내가 삼수네 집에 갔음을 알자 허겁지겁 달려가 아내를 구한다. 삼수와 격투끝에 그를 죽이고 만다. 알고 본즉 아버지 성팔을 죽인 범인도 삼수였다. 그러나 복룡은 살인을 저지른 몸이기에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머나먼 인생의 나그네길에 오른다. 아내 옥희는 눈물에 젖은 채 남편을 배웅하고 있었다.

<감상> 이규환이 다섯번째로 연출한 작품으로, 그가 일본에서 영화 수업을 했을 때의 일본인 스승 스즈키(鈴木重吉)와 제휴하여 합작형식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규환은 <임자없는 나룻배>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서민층의 애환을 한층 더 서정적으로 표현했으며, 인간의 내면적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발성영화 시대의 최고 수작(秀作)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수업료[편집]

授業料

감독 최인규(崔寅奎), 주연 복혜숙·김신재(金信哉)·문예봉. 흑백 35밀리. 발성. 1940년 제작.<내용> 주인공 우영달(禹榮達)은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학급에서 늘 수업료를 못내는 마지막 학생으로 남게 된다. 영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놋수저를 파는 행상(行商)으로 몇 달이 되도록 편지 한장이 없었다. 넝마주이를 하던 할머니마저 몸져 눕고 말았다. 이러한 가난 속에서 영달은 때론 밥을 얻으러 다녀야 했고, 부자집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밥과 반찬을 얻기도 했다. 그 후 평택에 있는 고모집에 학비를 조달하러 60리길을 내려갔다가 올라와 보니, 담임 선생님이 조용히 부르신다. "학교 동무들이 너를 위해서 급우회를 열었더구나. 그래서는 우정함(友情函)이라는 것을 만들었지. 급우들이 이제부턴 푼돈을 여기다 넣어서 너의 수업료로 쓰게 한다는 거야……" 이 말을 듣고, 영달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를 만큼 감격하게 되었는데, 며칠 후에는 소식이 끊어졌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돈 2원을 가지고 곧 귀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영달의 고민인 수업료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감상> 이 작품은 일제 말기 경일소학생 신문사(京日小學生新聞社)에서 모집한 소년 수기에서 당선된 우수영(禹壽榮)이라는 소학교 4학년생의 글을 소재로, 일종의 나라타주(narratage) 형식으로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감독 최인규는, 당시 남들은 손도 못댔던 평범한 소재를 통해서, '소년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한 눈동자에 비쳐진 현실'을 담담하게, 그러나 비판적으로 묘사하여, 예술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성공을 거두었다.

복지만리[편집]

福地萬里

각본·감독 전창근(全昌根), 주연 전창근·유계선(劉桂仙). 흑백 35밀리. 발성. 1941년 제작.

<내용> 만주로 이민간 한국인들은 집단 생활을 하며 벌목 작업을 한다. 그들은 두고 온 산하(山河), 즉 고국에 대한 복받쳐 오르는 향수를 오직 협동이라는 두 글자로 달래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마을에 작부들이 들어왔다. 그녀들도 한국인이건만 벌목(伐木)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족인 한국인들을 멸시한다. 청년 전창근은 그녀들을 차례로 설득시킨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창근은 시범적으로 어느 작부와 결혼까지 한다. 마침내 작부들도 자연스럽게 이민집단(移民集團)의 자활(自活) 대열 속에 서게 되었다.

<감상>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귀국한 전창근의 데뷔 작품으로, 만주 벌판에서 삶을 개척하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만리(萬里)가 넘는 넓고 넓은 만주당을 복지(福地)로 바꾸어 놓자고 하는 '대지(大地)에의 강렬한 의지(意志)'가 서려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로 인해 감독 전창근은 100일 간의 옥고를 치렀다.

반도의 봄[편집]

半島-

감독 이병일(李炳逸), 주연 김소원(金素苑)·김일해(金一海). 흑백 35밀리. 발성. 1941년 제작.

<내용> 영화 제작자 김일해(金一海)는 무대 출신 신인 배우 김소원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는 영화를 만들다가 실패하여 옥고(獄苦)를 치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된 김소원은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기로 했던 김일해와의 약속을 어기고 또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 뒤 옥에서 풀려나온 김일해가 객석에 앉아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 도중, 객석에 앉아 있는 김일해를 본 순간 김소원은 졸도하고 만다.

김일해가 무대에 뛰어 오른다. 서로의 오해를 푼 두 사람은 재기하여 끝내 작품을 완성시킨다.

<감상> 이병일의 데뷔작으로, 당시 영화 제작자와 가수 즉 연예인을 모델로 해서 만든 영화라는 데에 흥미가 간다고 해 둘 만하다.

자유만세[편집]

自由萬歲

각본 전창근, 감독 최인규(崔寅奎). 주연 황려희·전창근. 흑백 35밀리. 1946년 제작.

<내용> 일제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지하공작을 하던 전창근이, 어느날 일경에 쫓기다가 총상을 입고 엉겁결에 아무 집이고 막 뛰어들어가 숨게 된다. 간호원인 그 집 딸 황려희가 그를 숨겨 주어 위기에서 구출된다. 두 사람은 어느새 사랑으로 발전해 갔지만, 전창근은 이미 조국 광복에 몸바친 몸이기에 사랑도 외면해야 될 신세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일경에게 발각되어 최후까지 분전하다가 조국광복을 눈앞에 두고 장렬하게 죽고 만다.

<감상> 광복 후 제작된 본격적인 극영화로서, 흥행에 있어서 큰 기록을 수립한 작품이었다. 36년 간이라는 식민지 치하에서 자유를 갈구해 왔던 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편의 영화에 깊이 감동해 버렸기 때문이다. 신상옥이 이때 미술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광복기를 장식하는 가장 괄목할 만한 영화였다.

애국자의 아들[편집]

愛國者-

원작 안석영(安夕影), 각색 이구영·윤봉춘, 감독 윤봉춘, 주연 김석구(金錫九)·유계선. 흑백 16밀리. 1949년 제작.

<내용> 독립투사의 아들 태영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굳세어 공부도 잘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더없는 낙(樂)이 된다. 동네 아이들은 태영을 가난한 집 아이라고 조롱하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태영은 조국 광복에 몸바친 아버지를 생각하고는 모든 굴욕을 '애국자의 아들'이란 긍지로 참고 견딘다.

결국 동네 아이들도, 그가 애국자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저희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서로 협동하며 우의를 더욱 두텁게 하는 것이었다.

<감상> 광복 이후 애국·애족에 대한 테마를 다룬 영화가 많이 쏟아져 나왔음은 당연한 소치라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윤봉춘 감독은 <윤봉길 의사> <유관순> 등을 통하여 이 땅의 '애국자상(愛國者像)'을 스크린에 영상화(映像化)하는 일에 앞장섰다. <애국자의 아들> 역시 그러한 계열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애국자의 아들이 겪는 심적 갈등과 당시 사회 세태를 그렸다는 데에 더욱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영화였다.

성벽을 뚫고[편집]

城壁-

각본 김영수(金永壽), 감독 한형모(韓瀅模), 주연 이집길(李集吉)·구종석(具宗石)·황해(黃海). 흑백 35밀리. 1949년 제작.

<내용> 이집길과 권영팔은 대학 동기 동창이자 처남 매부간이다. 그런데 매부 영팔은 공산주의자요, 처남 집길은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다. 매부는 처남을 매수하려 했고, 처남은 매부를 설득시키려고 애썼다.

이때 여순 반란사건이 터졌다. 처남 매부는 숙명적인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피차간에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물론 최후까지 처남은 매부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먼저 총을 겨누는 매부의 살벌한 행동……여기에 맞서 총구(銃口)의 불을 뿜는 처남. 결국 공산주의자인 매부는 천륜도 저버린 채 최후를 맞는다.

<감상> 1949년 10월에 개봉됐던 <성벽을 뚫고>는 박진감(迫進感) 넘치는 반공영화였다. 당시의 인기는 대단했다. 영화적인 면에서 볼 때 카메라맨 출신인 한형모의 연출은 구도(構圖)면에서 짜임새를 보여주었다.

파시[편집]

波市

각본 전창근(全昌根), 감독 최인규(崔寅奎), 주연 최지애(崔芝愛)·최혜성(崔惠盛)·황정순(黃貞順)·황남(黃男). 흑백 16밀리. 1949년 제작.

<내용> 뭍을 동경하면서도 끝내 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어민(漁民)들의 삶을,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따라 묘사한 멜로드라마. 즉, 흑산도(黑山島)에는 성어기(盛漁期)에 두 차례의 장이 선다. 그 장을 일컬어 파시(波市). 그곳 방언으로는 '파수'라고 한다.

<감상> 무엇보다도 최인규가 이 작품을 촬영하기 위하여 흑산도(黑山島) 현지에서 1개월간 체류하면서 전편을 올로케이션 했다는 점을 특기할 수 있는 영화로, 이때부터 영화는 고리타분한 신극에서 소재를 찾는다거나 고대 소설류에서 이야기거리를 캐내는 방법을 지양하고, 가장 현실적인 의미에서 어민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아 일종의 사실주의적인 시도를 보인 작품이었다는 점을 높이 살 수 있겠다.

춘향전[편집]

春香傳

감독·각본 이규환, 주연 이민(李敏)·조미령(趙美鈴). 흑백 35밀리. 1955년 제작.

<내용> 전라도 남원 땅에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 살고 있었다.어느날 광한루에 구경나온 이진사(李進士)의 아들 이도령이 방자를 시켜 춘향과 만나기를 청한다. 두 사람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와져 화촉동방(華燭洞房)까지 꾸며 인연을 맺었으나, 뜻하지 않던 이진사의 전임으로 춘향과 도령은 슬픈 이별을 고한다.

그 뒤 남원 사또로 부임해 온 변학도(卞學道)는 욕심이 많고 주색(酒色)에 밝은 위인으로, 춘향에게 수청(守廳)들기를 강권한다. 춘향은 이미 언약한 바 있는 몸이라, 이를 거부한다. 변사또는 이를 괘씸하게 여겨서 곤장을 친 후 옥에 가둔다. 한편, 한양 갔던 이도령은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짐짓 거지 행각을 하고 내려와 변학도의 생일 잔칫날 "금잔에 철철 넘치는 옥주(玉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운운"하는 글귀를 지어 장내는 수라장이 되고, 결국 춘향은 이도령의 구원을 받는다.

<감상> 이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한 우리나라 고전(古典)이었다. 한국영화 초기에 일본인이 <춘향전>을 제작했고, 1935년에는 이명우(李明雨)가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로서 감독했던 작품이었다. 이규환은, 이 영화 한편으로 환도 후 침체했던 영화계에 활기를 되찾아 주는, 일종의 영화 중흥(映畵中興)의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춘향역의 조미령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청초하였고, 변학도역의 이예춘의 연기도 천하일품(天下一品)이었다.

피아골[편집]

감독 이강천(李康天), 주연 김진규(金振奎)·노경희(盧耕姬)·이예춘(李藝春). 흑백 35밀리. 1955년 제작.

<내용> 지리산 속에서 벌어지는 파르티잔들의 비인도적인 만행(蠻行)을 그린 영화로, 여대원 노경희를 둘러싸고 아가리(이예춘)·허장강 등의 암투가 벌어진다. 이 중 몸서리치는 살육, 방화, 겁탈 등 비인도적인 파르티잔들의 행동 속에서 자신을 회오(悔悟)하는 대원(김진규)이 끝내 자유를 찾아 탈주를 기도한다.

<감상> 파르티잔들이 성에 굶주린 나머지 죽은 여대원을 시간(屍姦)하는 장면이 충격적이며, 지리산 피아골에서 벌어지는 원색적(原色的)인 인간의 본능과 맹목적인 공산주의자들의 말로를 리얼리즘 수법으로 날카롭게 묘사한 반공영화(反共映畵)였다. 한때 파르티잔 묘사의 용공성(容共性) 문제로 지상논쟁(紙上論爭)을 야기시키기까지 했던 문제작이다.

처녀 별[편집]

處女-

각본 유치진(柳致眞), 감독 윤봉춘, 주연 김진규·하연남(河燕南). 흑백 35밀리. 1956년 제작.

<내용> 별아기는 아버지가 대감 벼슬까지 지낸 쟁쟁한 집안의 규수로서, 어린 시절 소꿉 친구인 도령과는 짝지어진 사이였으나 당파싸움의 희생자로 별아기의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다. 별아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도령집에 잠입한다. 그러나 도령을 사랑하는 별아기의 마음은 결행(決行) 직전에 인간적인 고민을 겪는다. 사랑이냐 혹은 복수냐의 양자 택일(兩者擇一)의 기로(岐路)에서 마침내 별아기는 사랑을 선택하여 도령과 더불어 멀리 행복을 찾아 떠난다.

<감상> 유치진의 희곡(戱曲) <별>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김진규는 <피아골> 이후 사극물(史劇物)에서 좋은 연기를 보였고, 하연남도 가냘픈 몸매로 별아기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시집가는 날[편집]

각본 오영진(吳泳鎭), 감독 이병일, 주연 조미령·김승호(金勝鎬). 흑백 35밀리. 1956년 제작.

<내용> 딸을 가진 맹진사(孟進士)는 판사댁 아들 미언을 사위로 맞아 당대의 세도가(勢道家)와 사돈을 맺게 되었다고 하며 몹시 뽐낸다. 그런데 판사댁 아들 미언이는 절름발이였다. 세도가와 인연을 맺는 것도 좋지만, 딸을 절름발이한테 시집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는 결국 잔꾀를 부려 딸의 몸종을 대신 시집보내기로 한다. 혼인날, 정작 혼례식에 나타난 미언은 절름발이가 아닌 늠름하고 잘생긴 사나이였다. 순간 당혹한 맹진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고, 이미 때는 늦어, 몸종이 좋은 곳으로 시집가게 되고 만다.

<감상> 오영진의 대표작인 희곡 <맹진사댁(孟進士宅) 경사(慶事)>를 영화화한 것으로, 이병일 감독은 <반도(半島)의 봄>으로 데뷔한 이래 수작(秀作)을 내놓았다 .특히 우리나라 모든 예술의 정서(情緖)가 '눈물과 탄식조(嘆息調)'였는 데 비하여 영화 <시집가는 날>에서는 원작의 풍자와 해학미(諧謔味)를 잘 살려 훌륭한 희극물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특별 희극상(喜劇賞)을 수상했다.

잃어버린 청춘[편집]

-靑春

각본 유두연(劉斗演), 감독 유현목(兪贅穆), 주연 최무룡(崔戊龍)·이경희(李璟姬) 흑백 35밀리. 1957년 제작.

<내용> 젊은 전공(電工)이 과실로 인하여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로 인하여 청춘의 불안과 좌절을 맛본 전공은 술집에 가서 신(神)을 의지하는 이경희에게서 구원을 찾아 보려고 노력한다. 끝내 전공은 자수를 하여 경찰차에 실려가는데, 애인의 따뜻한 위로와 눈물만으로는 '잃어버린 자아(自我)'를 돌이켜 찾을 수 없었다는 절망감을 안게 된다.

<감상> 6·25전쟁 후의 허무와 실존적 고독이 전편에 짙게 깔려 있는 영화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 영화감독 유현목은 비로소 한 사람의 작가의 위치에 서게 됐는데, 종래까지의 리얼리즘이 민족적인 반항 의식을 기초로 해서 출발한 점에 비해, <잃어버린 청춘>의 경우는 그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해 쫓기고 있는 현대인의 불안 의식에 리얼리즘의 앵글을 맞춘 작품이었다. 제1회 부일 영화상(釜日映畵賞)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악녀[편집]

-惡女

각본 박종호(朴宗鎬), 감독 이강천, 주연 조항(趙恒)·최지희(崔智姬). 흑백 35밀리. 1958년 제작.

<내용> 화가 조항은 창녀 지희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새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화가 조항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를 창녀의 소굴에서 구출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모멸(侮蔑)과 열등 의식으로 인하여 일부러 화가에게 빗나가는 행동만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비극으로 사랑을 청산하고 만다.

<감상> 이 영화에서 최지희가 처음 은막(銀幕)에 선을 보였는데, 신인치고는 대담한 연기를 해내었다. 그 당시 모더니즘 계열의 감각적인 시인·화가 등이 풍미(風靡)하던 속칭 '명동왕국시대(明洞王國時代)'의 데카당스한 어느 화가와 위악적(僞惡的)이리만큼 사랑스러움이 강하게 풍기는 여인과의 사랑을 그렸다. 한국영화 가운데서 가장 음영(陰影)이 짙은 애정영화 계열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편집]

각본 손기현(孫基鉉), 감독 김소동(金蘇東), 주연 김승호·최은희(崔銀姬)·최남현(崔南鉉). 흑백 35밀리. 1958년 제작.

<내용> 신도리(新道里)라는 마을에 사는 우직(愚直)하고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봉수(김승호)는 송아지를 사다가 키워서 큰소로 파는, 이를테면 수전노였다.

어느날 봉수가 사기꾼·고리대금업자인 억조(최남현) 때문에 노름에서 재산을 다 날리고, 하나 남은 밑천인 송아지를 팔아서 서울로 올라간다. 싸구려 구제 물자라도 사다가 장사를 해 볼 속셈에서였다.

그러나 그것마저 모조리 사기당해 버린 봉수는 마을에 다시 내려와 실의(失意)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것은, 억조가 그의 며느리감인 옥경(최은희)에게 덤벼들다가 흘려 버린 돈 5만원이었다. 결국 봉수와 억조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억조는 제칼에 찔려 죽고만다. 하지만 이 일 때문에 영호와 옥경은 잡혀서 서울로 압성되고 봉수도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 돈의 허망함을 뒤에 남기고서…….

<감상> 이 영화에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보편화된 윤리와 금전 사상을 주제로 잡고 있다. 돈으로 인해서 빚어지는 서민 사회의 갈등을 비교적 사실적인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의 얼굴이 찍힌 돈을 신발로 밟는 장면의 클로즈업은 일종의 사회적 모순을 정치적 부조리(不條理)에까지 소급해 보는 작가의 날카로운 고발정신의 소산이라고 보아도 좋은 문제작이었다.

십대의 반항[편집]

十代-反抗

각본 오영진, 감독 김기영(金綺泳), 주연 황해남(黃海男)·엄앵란(嚴鶯蘭)·조미령. 흑백 35밀리. 1959년 제작.

<내용> 어느 악질적인 깡패 두목밑에서 10대의 불량아들이 모여 집단적인 조직으로 소매치기와 절도를 일삼는다.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그들 세계에도 한가닥 따뜻한 인정(人情)의 꽃이 핀다. 이들 불량아 집단을 끈질기게 수사하던 민완 형사에 의하여 악질 두목은 체포되고, 10대의 불량아들은 악의 소굴에서 벗어나 광명을 찾게 된다.

<감상> 동란 후의 무질서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불량아들과 깡패 집단의 폭력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김기영 감독 특유의 과학적인 사건 분석과 추리가 때론 섬뜩할 정도로 긴장감을 자아내게끔 한다. 황해남은 신인으로서 아직 연기가 몸에 배지 않은 흠은 있었지만, 참신한 이미지를 주었다. 안성기(安聖基)의 꼬마연기가 특히 볼 만했고, 역시 전시에 잃은 아들을 찾는 어느 여인과의 대화는 전쟁의 아픔을 전달해준다. 제2회 교육부(구 문교부) 제정 최우수 국산 영화상·남우 주연상(황해남)·제4회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소년 특별 연기상을 수상했다.

육체의 길[편집]

肉體-

각본·감독 조긍하(趙肯夏), 주연 김승호·김지미(金芝美)·최무룡. 흑백 35밀리, 1959년 제작.

<내용>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 한 사나이(김승호)가 깡패의 앞잡이가 된 가련한 여인을 (김지미) 동정한 나머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더불어 유랑(流浪)서커스단의 일원으로 전전하다가 끝내 여인이 죽자, 자신도 폐인이 되다시피 한다. 세월이 흘러서, 폐인이 된 몸을 끌고, 자기가 살던 화목했던 집을 찾으나, 차마 발을 못 들여놓고 먼발치에서 집안의 동정만 살핀다. 사랑하던 아내와 장성한 자식들의 모습을 볼 때, 한편으론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흐뭇한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그는, 자신의 잘못 산 인생을 참회하는 눈물을 흘리며 정처없는 방랑의 길로 발을 옮긴다.

<감상> 이 작품은 신파적인 소재로서, 이른바 통속물(通俗物)에 속한다고 하겠으나, 대중들에게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로맨스 빠빠[편집]

감독 신상옥, 주연 최은희(崔銀姬)·김진규·김승호. 흑백 35밀리. 1960년 제작.

<내용> 보험 회사 사원인 김승호는 2남 3녀의 아버지다. 보험회사에 감원 바람이 인다. 김승호는 원래가 건실한 사원이었지만 나이가 많은 탓으로 부득이 감원대상에 들어 퇴직하게 된다. 그러나 실망할 가족들을 생각하여 차마 실직되었음을 실토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모르는 체하는 가운데에 은근히 아버지를 위로한다. 이렇게 온 집안이 화기(和氣)에 찬 가운데, 잇따라 경사(慶事)가 벌어진다. 특히, 깨질뻔했던 둘째딸의 혼사(婚事)가 이루어짐으로 해서 집안은 온통 웃음꽃이 핀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언제나 사랑과 멋을 아는 로맨스 빠빠로서의 권위를 회복한다.

<감상> 홈 드라마로서 손색 없는 우수작이다. 특히 김승호의 연기는 빼어나서, 제2회 교육부 제정 최우수 국산영화 남우 주연상과 제4회 아시아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획득했다.

이 영화에서 신성일(申星一)이 고교생인 아들로 데뷔하였다. 이 밖에 제4회 부일 영화상에서 작품상을 탔는데, 소시민 사회의 애환을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몰고 간 연출 솜씨가 산뜻한 영화다.

[편집]

원작 이광수(李光洙), 감독 권영순(權寧純), 주연 김진규(金振奎)·문정숙(文貞淑). 흑백 35밀리. 1960년 제작.

<내용> 변호사가 된 허숭은 은인의 딸인 도시 여성 윤정선과 결혼한다. 결혼 후 허숭은 고향 살여울에 내려가, 이른바 농촌 계몽운동에 정열을 기울인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아내는 서울에서 남편의 친구인 오변호사와 정을 통한다.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상경한 허숭에게 많은 여성들이 접근해온다. 그러나, 허숭은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제서야 자신을 뉘우친 아내는 기차에 몸을 부딪쳐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다리를 절단한다. 불구의 몸이 된 정선은 '살여울'로 내려가 허숭에게 용서를 빌고 일생을 농촌을 위해 몸바칠 것을 맹세한다.

<감상> 이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한 춘원 이광수의 <흙>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허숭역의 김진규나 정선역의 문정숙이 차분한 연기를 했고,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탔다.

박서방[편집]

朴書房

원작 김영수, 각색 조남사(趙南史), 감독 강대진(姜大振), 주연 김승호·조미령. 흑백 35밀리. 1960년 제작.

<내용> 박서방은 연탄 아궁이를 수리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집에는 남매가 있으며, 딸은 순종하는 성품이나 아들놈은 가끔 말썽을 일으킨다. 그러나 박서방의 성실한 가정 교육에 의하여 마침내 아들도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공부하여 고등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또한 딸은 부유한 가정의 며느리로 시집을 간다. 결국 자식들의 행복은 곧 박서방이 연탄 아궁이를 고치는 노동을 하면서도 보람으로 여기고 있는 점이다. 오늘도 박서방은 연탄 아궁이의 수리를 위해 집을 나선다.

<감상> 서민층 사회의 에피소드를 퍽도 정석적(定石的)인 표현으로 끌고 간 영화로서, 제3회 부일영화상(釜日映畵賞)에서 남우 주연상(김승호), 제8회 아시아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획득했다.

성춘향[편집]

成春香

각본 임희재(任熙宰), 감독 신상옥, 주연 최은희·김진규. 색채 35밀리. 시네마스코프. 1961년 제작.

<내용>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 참조.

<감상> 이 영화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컬러시네마스코프 작품이란 점과, 같은 형식으로 홍성기(洪性麒) 감독이 만든 <춘향전>과 심한 경작(競作)을 벌였던 점으로 해서 개봉 당시 화제가 되었었다. 개봉 결과, 35만명이라는 흥행상의 대성공을 거두어, 신상옥이 창설한 '신필름'을 대메이커로 올려놓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춘향이란 '이팔 청춘'이라 하여, 16세 정도의 어린 처녀라야 하는데, 당시 30세가 넘은 최은희가 춘향으로 분한 것과, 역시 이도령역인 김진규가 적역이 아니었다는 평도 있었으나, 일단 흥행상의 성공은 이러한 배역문제를 완전히 덮어 버리고도 남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어쨌든, 이때부터 <춘향전>이란 레퍼토리는 한국영화 흥행사(史)상 지울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마부[편집]

馬夫

각본 임희재, 감독 강대진, 주연 김승호·신영균(申榮均). 흑백 35밀리. 1961년 제작.

<내용> 고시 공부를 하는 큰아들과 동네에서 말썽만 일으키는 작은 아들, 그리고 벙어리인 딸 등, 이렇게 3남매를 데리고 살아가는 김승호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김승호는 홀아비인 자신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는 이웃집 식모 덕분에 그나마 기운을 얻곤 한다. 그런데, 시집갔던 벙어리딸은 쫓겨오고, 작은 아들은 허구한 날 말썽만 부리며 그의 속을 썩인다.

그런 중에서나마 '고생끝의 낙'이라고, 큰아들이 고등고시에 합격한다. 속만 썩이던 작은아들도 마음을 잡아 새사람이 되어 간다. 큰아들은 외로운 아버지와 이웃집 식모와의 재혼을 주선한다. 마부 김승호의 가정엔 다시 밝은 웃음꽃이 핀다.

<감상> 흥행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었지만, 내용적으로도 알찬 면이 있다. 마치, 전후 이탈리안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흐뭇한 인정담과 더불어, 현실을 직시하는 '카메라의 눈'이 있다.

그것은 허구(虛構)만이 아닌, 우리들 주변의 진실이었기에 더 큰 공감력을 지니고 있다. 같은 강대진 감독의 <박서방>에서 '아시아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탄 바 있는 김승호의 연기가 역시 뛰어났다. 이 영화는 제11회 '백림영화제'에서 크게 호평을 받은 명작이다.

오발탄[편집]

誤發彈

원작 이범선(李範宣), 각색 나소운·이종기(李鍾璣), 감독 유현목, 주연 최무룡·김진규·문정숙(文貞淑). 흑백 35밀리. 1961년 제작.

<내용> 정신이상(精神異常)이 생긴 어머니는 단말마(斷末魔)적으로 '가자! 가자!'를 외치고, 영양 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와 상이군인인 동생(최무룡), 그리고 양공주가 된 여동생……또한 고무신을 사달라고 매일같이 성화를 부리는 자식 등, 이렇게 처자 권속을 거느린 채 박봉으로 살아가는 계리사(김진규)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치통으로 고생하면서도 그것 하나 고칠 심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몸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동생은 은행을 털다가 들키고, 여동생마저 오빠의 가슴에 못질을 한다.

쥐꼬리만한 월급 봉투를 손에 든 김진규는, 우선 앓던 이부터 뽑는다. 그리고 딸에게 줄 고무신 한 켤레를 산다. 남은 돈으로 술을 마셨다. 잔뜩 취한 그는 택시에 올라탄다. "어디로 모실까요?"라는 택시운전사의 물음에 대해 김진규는, "마음대로 가라"고 지시한다. 이미,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감상> 첫째, 동일화면(同一畵面) 속에서 시간성(時間性)과 공간성을 강조하는 입체적인 몽타주, 즉 단일 몽타주 속에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수법을 썼고, 둘째,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에서 벗어나 화면 그 자체를 응시(凝視)하는 데서 오는 분위기 설정(設定), 셋째, 대사가 배제된 대신, 영상(映像)의 시각성(視覺性)에 주력한 점 등, 영화 <오발탄>이 나옴으로써 한국영화는 비로소 영상시대(映像時代)의 막(幕)을 열게 되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편집]

원작 주요섭(朱耀燮), 각색 임희재, 감독 신상옥, 주연 최은희·김진규. 흑백 35밀리. 1961년 제작.

<내용>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살고 있는 어느 시골집 사랑방에 서울에서 내려온 화가(김진규)가 손님으로 들게 된다. 그 손님은 며느리 남편의 친구였다. 과부인 며느리와 그 손님 사이엔 피차 연모의 정이 오간다. 과부의 어린 딸(전영선)이 손님을 아빠처럼 따르며 '매개체'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완고한 집안과 동네의 이목 때문에 끝내 맺어지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만다.

<감상>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잊혀졌던 사랑의 정서(情緖)가 과부와 손님 사이에 살며시 되살아 오르다가 자지러져버린, 그런 아쉬움과 미련이 있는 소품(小品)이었다. 아역(兒役) 전영선의 연기가 뛰어났고, 김진규·최은희의 '은근한 사랑'의 연기도 호감이 갔다. 문자 그대로 문예영화의 가작(佳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1회 대종상(大鍾賞)에서 각본·감독·아역상, 제9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탔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편집]

玄海灘-

원작 한운사(韓雲史), 각색·감독 김기영, 주연 공미도리(孔美都里)·김운하(金雲夏). 흑백 35밀리. 1961년 제작.

<내용>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 청년으로 남방 전선에 끌려간 아로운(김운하). 군국주의를 표방한 일본군의 군대 생활이란, 학대와 변태적인 기합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국인인 아로운에 대한 박해는 극심해서, 심지어는 더러운 군화발을 코앞에 대며 핥으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내성적이며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항시 박해를 받는 아로운에게도 유일한 정우인 이노우에(이상사)와 일본인 처녀 공미도리가 있어 위로를 받는다. 일본인 처녀는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어머니를 설득시켜 냉수만 떠 놓고 휴가차 나온 아로운과 결혼한다. 아로운은 귀대한 후에도 혹독한 군대 생활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미군 폭격기들의 대공습이 감행된다. 폭음과 연기 속에서, 아로운을 탄압하던 군국주의의 실체(實體)는 산산조각이 나고, 시체더미 속에서도 불사조(不死鳥)인 양 아로운만이 살아 남는다.

<감상> 김기영 감독은 작품 <하녀(下女)> 이후부터 인간의 근원적(根源的)인 본능을 추적하고 있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에서는, 집단적인 권력본능(權力本能)을 상징하는 일본 군벌과, 이에 맞서서 소아(小我)를 고집하는 아로운의 저항을 그리고 있다. 작품 성격상 멜로드라마 범주에 속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로 김기영은 프로듀서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연산군[편집]

燕山君

원작 박종화(朴鍾和), 각색 임희재, 감독 신상옥, 주연 신영균(申榮均)·이민자(李民子)·최은희. 천연색 35밀리. 1961년 제작.

<내용> 왕위에 오른 연산군(신영균)은 폐비가 된 윤씨의 소생이다. 그는 선왕(성종)의 사약을 받고 목숨을 버린 생모(生母)의 원한을 풀어 주려고, 다시 비(妃)로 복위(復位)시킬 것을 시도하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연산은 자신이 왕이라는 것을 잊고, 차차 방탕한 생활 속에 몸을 던진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원한 속에 죽어간 생모의 생각이 하루도 떠날 날이 없었다. 이리하여 즉위 후, 선정(善政)을 베풀던 연산이 폭군(暴君)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감상> 월탄 박종화의 장편소설 <금삼의 피>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인간 연산의 고독과 비극적인 삶에 포커스(focus)를 맞추었다. 연산으로 분한 신영균이 일종의 오버액션을 하는 것이 다소 눈에 거슬리지만 그런대로 열연을 한 작품이다. 특히 화려한 의상, 궁중(宮中) 세트신(set scene)의 처리는 미술전공자 신상옥의 예술적 취향(趣向)을 십분 짐작케 했다.

제1회 '대종상'에서 작품상·남우 주연상, 제9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미술상을 수상했다.

또순이[편집]

원작 김희창(金熙昌), 각색 유일수(劉一秀), 감독 박상호(朴商昊), 주연 도금봉(都琴峰)·이대엽(李大燁). 흑백 35밀리. 1963년 제작.

<내용> 생활력이 강인한 또순이(도금봉), 그녀는 함경도 태생이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강한 생활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택시 운수업에 손을 댄다.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 운수업을 한다는 건 도시 만만한 사업이 못 되었다. 그러나, 억척같은 함경도 또순이 기질로 모든 애로를 극복하는 한편, 듬직한 신랑(이대엽)까지 얻어, 행복의 보금자리를 꾸민다.

<감상> 박상호 감독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주제는, 한 여인의 강인한 생활력과, 여기에 덧붙여 소시민 사회의 애환이 구수하게 그려져 있다. 강대진 감독의 <마부(馬夫)>와 더불어, 서민층을 모델로 해서 성공한 작품 케이스다. 도금봉·최남현 부녀(父女)의 함경도 사투리가 시종 웃음을 자아냈고, 이대엽의 활발한 성품도 작품의 성격을 잘 소화시켰다. 이 영화로 도금봉은 제10회 아시아영화제 여우 주연상을 획득했다.

고려장[편집]

高麗葬

각본·감독 김기영, 주연 김진규·주증녀. 흑백 35밀리. 1963년 제작.

<내용>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굶주림에 허덕이는 마을. 원시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미신에 얽매여 사는 그 마을에는 무당(巫堂)이 절대자(絶對者)로 군림(君臨)하고 있다. 또한 그 마을에서는, 사람의 나이 70만 되면 산 채로 업어다 버리는 폐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폐습이라기보다는, 워낙 식량난에 봉착한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하나의 계율이었다. 이 엄한 계율과 효심의 틈바귀 속에서 방황하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김진규. 그가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고 갔던 지게를 내어 던진다. 이 지게를 다시 주워다 어깨에 걸쳐메는 어린 아들은 이렇게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도 70이 되면 이 지게로 제가 업어다 버려야 하니까요……."

<감상> 김기영 감독의 강렬한 영상미(映像美)가 구사된 영화로서, 인간이 갖는 생명에 대한 집착(본능)에 대해 그리고 있다. 또한 비정(非情)하리만큼 삶에 몰두하는 인간들의 무지와 미신 등에 대해 퍽 연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준 영화였다. 제7회 부일영화상(釜日映畵賞)에서 작품·감독·미술상을 획득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편집]

-海兵

각본 장국진(張國鎭), 윤색 한우정(韓佑政), 감독 이만희(李晩熙), 주연 장동휘(張東輝)·최무룡·구봉서(具鳳書)·이대엽(李大燁). 흑백 35밀리. 1963년 제작.

<내용> 용감무쌍한 해병 일개 분대원들의 싸우는 모습을 통하여 전쟁의 참혹상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본능·좌절·투쟁 등을 그렸다. 특히 포연 자욱한 전쟁터에서 나누는 눈물겨운 전우애(戰友愛)와 휴머니티속에 청춘을 바치는 해병들을 퍽 감동적으로 그린 스펙터클한 전쟁명화였다.

<감상> 해병대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완성시킨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전쟁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박력있는 연기, 치밀한 연출, 대담한 촬영 등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전쟁이라고 하는 특수상황(特殊狀況) 속에서 젊은이들은 어떻게 싸웠고, 또 어떻게 죽어 갔는가를 그려 준 영화였다. 제3회 대종상(大鍾賞)에서 감독·녹음·촬영(신인)상을, 제1회 청룡상(靑龍賞)에서 감독상, 제7회 부일영화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벙어리 삼룡이[편집]

-三龍-

원작 나도향(羅稻香), 각색 김강윤(金剛潤), 감독 신상옥, 주연 김진규·최은희. 흑백 35밀리. 1964년 제작.

<내용> 봉건지주(封建地主) 밑에서 머슴살이하는 벙어리 삼룡(三龍)이가 주인댁 며느리를 짝사랑하게 된다. 어느날 언덕위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며느리(최은희)앞에서 삼룡이(김진규)가 뎅그르르 몸을 굴르며 재주를 넘자, 며느리는 배를 잡고 웃는다. "재미있는냐?"는 표시를 손짓·발짓으로 보이던 삼룡은 신이 나서 자꾸 뒹군다. 물론 그 다음날은 허리를 삐어서 고생을 했지만, 사랑하는 마님의 웃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까짓 아픈 것이 대수랴! 그 뒤 며느리는 동네 남자의 유혹을 받지만, 그때마다 뿌리치다가 어느날 아파서 누워 있을 때 불이 났다. 이미 사세가 틀렸다고 사람들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삼룡은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 며느리를 업고 나온다.

결국 불에 덴 삼룡은, 며느리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끝까지 숭고한 사랑을 간직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감상> 이 작품은 1927년에 나운규가 감독한, 그 당시로서는 촬영하기가 힘들었을 라스트신 즉, 집에 불타는 장면을 찍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상옥 감독은 이 작품을 더욱 현대적인 감각으로 처리하되, 일종의 리얼리즘 수법을 사용하여 흥행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제4회 대종상에서 작품·감독·음악상을 받고 제12회 아시아 영화제 남우 주연상(김진규)을 받았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편집]

원작 이윤복(李潤福), 각색 신봉승(辛奉承), 감독 김수용(金洙容), 주연 신영균·김천만(金千萬)·김용연(金龍淵). 흑백 35밀리. 1965년 제작.

<내용> 초등학교 4학년생인 이윤복은 가난한 가정에서 살아간다. 그런데다, 아버지는 노름판에서 세월을 보내며,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운 끝에 집을 나갔다.

이런 한심한 사정이지만 윤복은 구두닦기 등을 하면서 어린 동생들을 보살핀다.

때로는 사과로 한 끼를 때우는 등, 피눈물 나는 생활 속에서도 윤복은 그날그날의 감상을 일기(日記)로 남긴다. 그 동안에 윤복은 텃세하는 구두닦기 애들한테 뭇매를 맞는 등 곤경을 치르지만, 그가 쓴 일기가 마침내 담임 선생의 호의로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일기책은 곧 매진되었으며, 각계로부터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이들 가정에 몰려온다. 그 뒤, 노름꾼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깨달아 집으로 돌아오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온다.

<감상> 이윤복군의 수기(手記)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멀리는 최인규의 <수업료>, 가깝게는 유현목의 <구름은 흘러도>를 떠오르게 할 만큼, 이른바 '소년 소녀들의 눈을 통해 본 이 세상'을 소담하게 그려주었다.

김천만·김용연의 연기는 기성 연기자를 무색하게 하리만큼 뛰어났다. 제3회 청룡상에서 감독상 및 특별상(김용연), 제5회 대종상에서 특별 장려상(김용연), 제9회 부일상, 특별상(김천만)을 수상하였다.

순교자[편집]

殉敎者

원작 김은국(金恩國), 각색 이진섭(李眞燮)·김강윤(金剛潤), 감독 유현목, 주연 김진규·남궁원(南宮遠). 흑백 35밀리. 1965년 제작.

<내용> 1950년 한국에는 전쟁이 일어났다. 주인공인 나와 박은 그 해 10월 제2주에 적도(赤都) 평양을 탈환한다. 이곳에선 열 네 명의 목사가 공산군에게 끌려가 처형을 당하게 됐는데, 그 중 열 두 명의 목사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하나님을 비난하면서 개처럼 비굴하게 죽었고, 한목사(韓牧師)는 처형의 순간 발광(發狂)했고, 신목사(申牧師)만이 꿋꿋했기에 북한군들이 살려주었는데, 막상 신도들로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목사를 의심하며, 심지어는 '가룟 유다'에 비유, 핍박하기까지 한다.

사실은 신목사 자신도 내심으론 부활(復活)이라든가 천당을 믿고 있지 않다. 결국 신목사마저 신을 위한 순교자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 순교한 셈이다. 종군목사였던 고군목(高軍牧)이 어느새 거제도로 내려와 피난민 신도를 위한 판자집 교회를 짓고 있다. 결국 나(이대위)는 실존적인 입장에서 기독교 순교자들의 허상(虛像)을 잠시나마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감상>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소재-즉 신(神)과 인간의 문제를 유현목 감독은 다루었지만 원작의 간결한 문장이 설득력(說得力)을 가졌었던 데 비해, 난해한 화면 처리로 작품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실존주의적인 소설을 다루었다는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는데, 이미 외국에는 잉그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처녀의 샘> 등을 비롯하여 신(神)의 문제를 영화의 테마로 삼은 작품이 많았다. 제5회 대종상에서 감독·음악·녹음·미술상, 제2회 한국연극영화 예술상·촬영상, 제9회 부일상에서 미술상 등을 수상.

갯마을[편집]

원작 오영수(吳永壽), 각색 신봉승, 감독 김수용, 주연 신영균·고은아(高銀兒). 흑백 35밀리. 1965년 제작.

<내용> 갯마을의 고기잡이 배가 출어(出漁)했다가 귀항(歸港)하지 못하자 마을은 온통 초상집이 된다. 해순(고은아)도 결혼한 지 1주일이 못되어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된 것이다. 시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날 동네 청년 성구(신영균)에게 몸을 빼앗기고, 그에게 다시 시집을 간다. 성구와 재혼하여 뭍으로 나갔지만 비극의 싸앗은 그녀를 그냥 놓아 두지를 않아, 끝내 그녀는 갯마을로 다시 돌아간다.

<감상> 프로듀서 호현찬(扈賢贊)이 기획한 작품으로, 김수용은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도 착실하게 영상미(映像美)를 구축해 나갔다. 고은아가 이 영화에서부터 주목을 받는 연기를 시작했고 신영균의 연기도 인상에 남는다. 바다에다 남편을 장사지낸 과부들이 모여 산다는 갯마을의 삶을 숙명론적인 입장에서 처리했고, 특히 전조명(田朝明)의 촬영이 뛰어났다. 제5회 대종상에서 작품·여우 조연·촬영·편집상, 제13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흑백촬영상, 에스파냐 카르타헤나의 제1회 국제해양영화제에서 작품상 수상.

비무장지대[편집]

非武裝地帶

각본 변하영(邊夏榮), 감독 박상호, 주연 조미령·주빈아(朱嬪兒)·이영관(李榮寬). 흑백 35밀리. 1965년 제작.

<내용> D.M.Z. 155마일. 이것은 한국전쟁이 빚어낸 비극의 상징이기도 했다. 잡초가 우거지고 녹슨 탱크와 기차가 넘어져 있는 그곳 비무장 지대 속에는 엄마를 잃고 헤매는 어린 남매가 있었다. 어린 남매는 분명히 남으로 갔을 것 같은 엄마를 찾아 무작정 월남할 것을 작정한다. 그리고 그들은 중간에 간첩을 만난다거나 지뢰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슬아슬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국군 전초 진지 앞 철조망까지 오지만, 끝내는 지뢰를 밟아 생명을 잃고, 어머니는 어린 딸을 껴안고 울부짖는다.

<감상> 박상호 감독의 역작(力作)으로, 이 작품을 촬영하기 위하여 직접 지뢰의 위험을 무릅쓰고 '비무장지대'에서 로케를 감행했었다고 한다. 민족 분단의 뼈아픔을 필름마다 인각(印刻)한 이 작품은, 일종의 우화적(寓話的)인 화면 처리와 시정(詩情)을 곁들여서, '차단(遮斷)된 역사'의 증언을 영상(映像)으로 시도(試圖)했던 것이다. 제13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비극영화부문(悲劇映畵部門) 작품 대상을 수상했다.

초우[편집]

草雨

각본 나한봉(羅漢鳳), 감독 정진우(鄭鎭宇), 주연 신성일·문희(文姬). 흑백 35밀리. 1966년 제작.

<내용> 자동차 세차공인 신성일은 출세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어느날 우연한 인연으로 주불 한국공사의 외동딸 (문희)과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정체를 숨겼을 뿐, 실은 그댁의 식모에 불과했다.

비가 와야만 멋진 레인코트를 입고 나갈 수 있기에, 멀쩡한 날에도 비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여자였다. 신성일도 명문가(名門家)의 후예(後裔)로 위장(僞裝)한 후, 둘은 가슴부푼 나날을 보낸다. 드디어 동거할 것을 결심하고 살림을 장만하려는 때, 양심에 가책을 느낀 문희가 먼저 자신의 정체를 고백한다. 모든 것이 수포화되자 신성일은 자신의 위장마저 주저함이 없이 벗어던진 채, 자기의 꿈을 깬 여인을 사정없이 후려갈긴 후 표연히 사라진다.

<감상> 풋내기 연애에 불과한 소재였지만 정진우는 깔끔한 대사 처리와 더불어 영상적 화면 조성에 힘써서, 일단 소품(小品)으로선 가작(佳作)을 만들었다. 허망(虛妄)하리만큼 깜찍한 청춘의 위장심리를 풍자한 멜로드라마였다.

만추[편집]

晩秋

각본 김지헌(金志軒), 감독 이만희, 주연 신성일·문정숙(文貞淑). 흑백 35밀리. 1966년 제작.

<내용> 모범수로 잠시 휴가를 얻은 문정숙과, 형사의 쫓김을 당하는 위조 지폐범 신성일이 우연히 서울행 열차 안에서 마주 앉게 된다. 똑같이 시간과 사람에 쫓기는 불안한 사람끼리 곧 친숙해지고, 그것은 억제되었던 욕정으로 발전된다. 다음날 창경원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썰렁한 인천의 갯가를 거닐기도 한다.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낸 후 여인은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신성일은 못내 서운해하며 내의(內衣) 한 벌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경찰에 체포되어 간다. 여인이 출감하는 날, 창경원 그 벤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그 남자는 안 나타나고, 여인만이 흩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고 있었다.

<감상> 호현찬이 기획하고 이만희가 감독한 이 영화의 특징은, 종래의 한국영화가 가졌던 형식인 '이야기 중심'에서 탈피하여 영상위주(映像爲主)로 작품을 몰고간 점이다. 다시 말하면, 대사를 가급적 배제하고 영화 언어(映畵言語)로 이미지를 전달했다는 점을 높이 살 수 있는 한국영화 60년대의 수작(秀作)으로 꼽을 수 있다. 제5회 청룡상에서 촬영상, 제10회 부일상에서 작품·여우 주연상, 제3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대상 및 연출·연기·각본·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편집]

恨 각본 이상현(李相泫), 감독 유현목, 주연 문희(文姬)·이순재(李純才). 천연색 35밀리. 1967년 제작.

<내용> 백일기도 끝에 얻은 낭군(이순재)과 사별한 것이 한(恨)이 되어, 그 낭군마저 죽음으로 이끄는 여인의 혼백을 다룬 제1화 '연(緣)의 장', 남편과 작부와의 관계를 투기하여 그들을 불태워 죽이는 광대 부인이었던 아내의 혼령과 모성애를 다룬 제2화 '정(情)의 장', 그리고 열녀(烈女)의 절개(節介)를 시험하는 한 남자의 혼령을 다룬 제3화 '원(願)의 장' 등 3편으로 된 옴니버스(omnibus) 영화였다.

<감상>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試圖)한 옴니버스 영화였고, 유현목 감독으로선 최초의 천연색영화였다. 물론 괴담(怪談)조의 이야기를 고대 설화(古代說話)에서 발췌하여 엮은 내용이었지만, 그 표현의 유현(幽玄)함과 색감(色感)이 단연 압권이었고, 연기면에서는 문희와 이순재가 애틋한 부부애를 그린, 다시 말해서 고전적인 인간상에 어울리는 차분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제6회 대종상에서 촬영상, 제4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촬영상, 제5회 청룡상 미술·기술(조명)상, 제11회 부일상에서 미술상 등 수상.

안개[편집]

원작·각색 김승옥(金承鈺), 감독 김수용(金洙容), 주연 신성일·윤정희(尹靜姬). 흑백 35밀리. 1967년 제작.

<내용> 장인 회사의 상무로 있는 신성일은 휴양차 고향에 내려간다. 그는 6·25 때 징병을 기피했던 사실이 새삼스럽게 비굴하게 느껴지며, 고향의 분위기 자체가 뽀얀 안개 속처럼 인간의 의식을 혼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서 내려와 음악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윤정희를 만나 무료한 시간을 메우곤 한다. 서울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는 윤정희도 이 고장에 와서는 동료 직원들과 어울려 젓가락장단이나 하며 저속(低俗)한 유행가를 읊고 있는게 아닌가? 어느 대낮에 신성일은 그녀와 욕정을 불사른다. 그 후, 서울로 꼭 데려가겠다면서 사랑을 다짐했건만, 장인(丈人) 회사의 전무로 승진되었으니 급히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 한 장을 받고는 실리(實利)를 좇아 서울로 떠나버린다. 이런 일일랑은 한번쯤 용서해달라는식의 에고이즘을 남용하면서.

<감상> 황혜미(黃惠美) 기획, 김승옥 각본을 김수용이 연출한 만큼, 작품은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세련미가 넘친다. 이른바 '공간성(空間性)'과 '시간성(時間性)'을 자유자재로 '의식(意識)'의 세계'로 도입(導入)한 연출 수법은 생경한 대목도 없지 않았으나, 대체로 성공한 편이었다. 윤정희의 대담한 베드신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제6회 대종상에서 감독·편집·신인상(윤정희), 제11회 부일상에서 감독·신인상(윤정희), 제14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막차로 온 손님들[편집]

-車-

원작 홍성원(洪盛源), 각색 이은성(李恩成)·이상현(李相泫). 감독 유현목, 주연 이순재·문희(文姬). 천연색 35밀리. 1967년 제작.

<내용> 폐장 육종 환자로 이미 죽음을 선고(宣告)받은 시한부 인생 동민(이순재)이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보영(문희)이란 아가씨의 따뜻한 사랑으로 아파트에다 보금자리를 차리고 재생(再生)을 다짐한다. 한편 전위화가(前衛畵家)인 김성옥(金聲玉)은 미워했던 여인을 엘리베이터 속에서 목졸라 죽이는 등, 살인도 해프닝식이다. 또한 돈을 많이 벌어 큰 파티를 베풀었지만, 공허감만 남는 성훈 등 현대인의 사랑과 좌절(挫折)을 묘사한 작품이다.

<감상> 유현목 감독으로서는 <오발탄> <잉여인간> 등에 이어지는 소외당한 현대인에 대한 집요한 응시(凝視)를 영상(映像)을 통해 보인 작품. 통금 사이렌이 되기 얼마 전 거의 막차를 타고 귀가(歸家)해야 하는 주인공 이순재와 성훈·김성옥의 입장은 고생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인 우수를 던져준다.

제11회 부일영화상에서 촬영상. 제4회 한국연극영화상에 연기상(문희)·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편집]

(1편) 각본 이성재(李聖載), 감독 정소영(鄭素影), 주연 신영균·문희·전계현(全桂賢). 천연색 35밀리. 1968년 제작.

<내용> 혜영(문희)은 신호(신영균)와 처녀의 몸으로 연애를 하여 자식까지 낳았다. 어느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던 신호의 집에 조용히 찾아온 혜영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부양해 달라는 말과 함께 한 번 만나기를 청한다. 낙엽이 깔린 교정의 벤치에 앉아, 옛애인과 얼굴도 모르던 아들과 해후(邂逅)하는 신호의 마음은 괴로움과 기쁨의 교차로(交叉路)이다. 혜영은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 아버지에게 돌려주지만, 아이는 이복형제 틈에서 늘 외톨이 신세다. 어느 비오는 날, 집안에서 쫓김을 받아 대문에서 떨고 있는 아들을 훔쳐본 혜영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가 길러야 된다면서 다시 시골로 데리고 내려간다.

<감상> 한국적인 의미의 멜로드라마의 전형(典型). 통속적인 소재(素材)로 이만큼 흥행에 성공하기도 드물었다. 제12회 부일상에서 감독·여우 조연상(전계현) 수상.

장군의 수염[편집]

將軍-

원작 이어령(李御寧), 각색 김승옥, 감독 이성구(李星究), 주연 신성일·윤정희·김승호. 천연색 35밀리. 1968년 제작.

<내용> 사진기사 김철훈(신성일)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에 노련한 민완형사 김승호가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나선다.

그는 우선 김철훈 생존시에 접촉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한때 김과 동거생활까지 했던 댄서출신의 신혜(윤정희)를 만난다. 결국 그녀의 입을 통하여 김은 '고해(告解)놀이'를 비롯한 비현실적인 망집(妄執)의 사나이였음을 알고, 그가 현실에 적응할 수 없자 자살을 택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수사의 마무리를 짓는다. <감상> 이성구는 이 영화에서 애니메이션(animation)을 사용하여 극적 분위기를 일전(一轉)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試圖)를 보였다. 김승호의 노형사역이 장 가방을 연상케 하는 무게가 있었던 작품이다. 제7회 대종상에서 각본상, 제5회 한국연극영화상에서 작품·연출·음악상, 제12회 부일상에서 미술·촬영상, 제2회 서울신문문화대상에서 특별상(촬영) 등 수상.

독짓는 늙은이[편집]

원작 황순원(黃順元), 각색 신봉승, 감독 최하원(崔夏園), 주연 황해·윤정희. 천연색 35밀리. 1969년 제작.

<내용> 움막 속에 살면서 독을 구우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송영감(황해)이, 하루는 눈 속에 쓰러져 신음하는 젊은 여인 옥수(윤정희)를 살려낸다. 50대 노총각인 송 영감은 황혼의 고독을 젊은 부인 옥수로 달래다가 당손(김정훈)이라는 아들까지 얻는다. 그 무렵 옥수를 찾아 헤매던 석현(남궁원)이 나타나서 송영감집에 머물러 독짓는 일을 거든다. 그러나 속셈은 자기의 옛 애인인 옥수에게 있고, 옥수도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이따금 물방앗간에서 밀회(密會)를 한다. 드디어 옥수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애인과 멀리 달아난다. 송영감은 독짓는 일마저 실패하자, 비탄 속에 자살해 버린다.

<감상> 한국적 전통미(韓國的傳統美)를 추구한 작품으로, 최하원은 새로운 영상미(映像美)를 창조했다. 제6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연기상(윤정희·황해), 제7회 청룡상에서 작품·감독·미술상, 제4회 인도영화제에서 인기상(윤정희) 등 수상.

화녀[편집]

火女

각본·감독 김기영, 주연 윤여정(尹汝貞)·남궁원(南宮遠). 천연색 35밀리. 1971년 제작.

<내용> 대중가요 작곡가인 남궁원은 사랑하는 아내 전계현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어느날 하녀(下女)를 직업 소개소에서 구해온다. 이 하녀(윤여정)는 깜찍한 아가씨여서, 어쩌다가 주인 남자가 가수 지망생과 놀아나는 것과, 또는 주인 내외의 방사(房事)를 엿본다.

어느날 만취한 남궁원이 가수 지망생인 애인으로 착각하여 윤여정을 범한다. 그로부터 윤여정은 주인 아주머니와의 대등(對等)한 대접을 요구한다. 그 뒤 쥐약을 써서 아이들을 모조리 독살한 후 주인 아저씨와의 정사(情死)를 기도하다가 끝내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죽는 순간에나마 아내 곁으로 간신히 기어간 남궁원. 허탈하게 집을 나온 전계현의 벗겨진 하이힐 한짝이 물위로 미끄러져 흘러간다.

<감상> 전작 <하녀(下女)>에서 소재(素材)를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차원의 영상적 실험을 보인 영화로서, 정일성(鄭一成)의 촬영이 뛰어났다. 제8회 청룡상에서 감독상·여우 주연상·여우조연상·미술상, 제10회 대종상에서 촬영상·조명상·미술상·신인상 등 수상.

화분[편집]

花粉

원작 이효석(李孝石), 각색·감독 하길종(河吉鍾), 주연 하명중(河明中)·최지희(崔智姬)·윤소라(尹素羅)·남궁원(南宮遠). 색채 35밀리. 1972년 제작.

<내용> 어느날 푸른집에 현마(남궁원)가 단주(하명중)를 데리고 들어온다. 현마의 처제인 미란(윤소라)은 단주와 눈이 맞아 한강변을 거닐다가 폭우를 맞고, 단주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현마는 단주가 거리의 고아였던 것을 데려다 키워줬는데 자기를 배신한 것으로 여긴다.

단주는 미란과 해변으로 도피하나 현마는 단주를 잡아다 사형(私刑)을 한다. 그 뒤 울 안에 유폐(幽閉)된 단주는 옥녀(여운계)와도 이상한 관계에 빠진다. 애란(최지희)은 애란대로 단주와의 화끈거리는 욕정의 환상을 더듬는다.

그 뒤 현마가 베푼 파티장은 빚장이들의 습격으로 일대 수라장이 된다. 이리하여 푸른집의 허상(虛像)은 무너지고 애란은 딸꾹질을 하면서 최후를 맞는다. 단주는 패덕한 의상을 벗어 던지고 집을 나선다.

<감상> 사회적인 부조리를 해부한 영화로서 종래의 문예영화스타일과는 매우 이질적(異質的)인 개성을 가진 영화. 즉 세계적인 영화사조에 접근하려는 실험적(實驗的)인 영화다.

별들의 고향[편집]

-故鄕

원작 최인호(崔仁浩), 각본 이희우(李憙雨), 감독 이장호(李長鎬), 주연 안인숙(安仁淑)·신성일(申星一). 1974년 제작.

<내용> 경아(안인숙)는 티없이 맑고 착한 품성을 가진 아가씨였다. 첫 남자(하용수)에게 순결을 빼앗긴 후, 중년의 두번째 남자(윤일봉)와 결혼하지만 괴퍅한 남편의 성격 때문에 곧 파탄이 나고, 건달인 세번째 남자(백일섭)를 거쳐 마지막이자 진심으로 사랑했던 네번째 남자(신성일)를 만난다. 화가이며 대학강사인 마지막 애인마저 호스테스 생활로 서서히 시들어 가는 경아의 안스러운 삶을 보다못해 슬그머니 종이 쪽지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며칠 후 어느 선술집에서 만난 못생긴 남자에게 선심 쓰듯 몸을 맡긴 후, 눈 덮인 한강 사장 위에 엎드러져서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물 대신 눈덩이를 뭉쳐 마시면서 도시의 뭇남성들의 마지막 꿈이었던 '경아'는 그렇게 해서 짧은 인생의 막을 내리고 만다.

<감상> 70년대의 인기작가인 최인호(崔仁浩)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것인데, 당시 불황의 벽(壁)을 뚫고 46만 5천이라는 최고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그것은 이 영화가 갖는 새로운 젊음의 풍속도 따위가 산뜻한 영상처리와 감상적인 대사, 음악 등에 힘입어 대중들에게 크게 호응을 받은 때문이라고 본다. 1974년도 '현대영화비평가 그룹'에서 남우 주연·여우 주연·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바보들의 행진[편집]

-行進

최인호(崔仁浩) 원작·각본, 하길종(河吉鍾) 감독. 주연 윤문섭·하재영·이영옥. 1975년 제작.

<내용> 대학 철학과에 다니는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은 그들 나름의 꿈과 이상을 키우면서 젊은 대학 시절을 보낸다. 어느날 미팅에서 서로 알게 된 병태와 영자(이영옥)는 싱그러운 대화 속에서 우정과 애정 사이를 넘나든다. 한편 영철은 여자친구와의 만남도 시들하여 그의 꿈인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난다. 현실의 질식할 것 같은 폐쇄성에 대항이라도 하듯 그는 한없이 넓은 바닷가 벼랑 위에서 자전거를 탄 채 바다를 향해 돌진한다. 그는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는 그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늪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병태는 머리를 빡빡 깎고 군에 입대하는 열차에 오른다. 역 플랫폼으로 달려나온 영자는 갑자기 문어 대가리 모양으로 깎인 병태의 머리를 보고는 눈물짓는다. 차가 떠날 무렵 차창으로 상반신을 숙인 병태에게 입맞춤을 하려고 발돋움을 자꾸 하는 영자를 보다못해 순찰 헌병이 살짝 받쳐주어 연인의 이별을 아릅답게 장식하여 주었다.

<감상> 이 영화에서 특징은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를 세미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영상처리를 해나간 점과 모든 엑스트라까지도 아마추어 냄새가 날 만큼 신선감을 불러주는 '캠퍼스 생활'을 필름에 담았다는 점일 것이다.

삼포 가는 길[편집]

森浦-

원작 황석영(黃晳暎), 유동훈(柳東勳) 각색, 이만희(李晩熙) 감독. 주연 문숙(文淑)·김진규(金振奎)·백일섭(白一燮). 1975년 제작.

<내용> 산야(山野)가 온통 백설로 뒤덮인 추운 겨울날 떠돌이 장사꾼인 백일섭과 출옥한 지 얼마 안 된 김진규가 눈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이 된다. 둘이 주막에 들렀을 때 마침 백화(白花)라는 작부가 도망쳤다고 주모가 말하면서 붙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호기심도 있고 하여 두 남자가 그러마 약속하고 부지런히 눈길을 걸어 나가다가 문제의 여인인 백화(문숙)를 만난다. 그러나 그녀의 성품이나 배짱에 감탄한 두 남자는 함께 어울려 정처도 없이 눈길을 걸어나간다. 도중에 초상집에 들러 한바탕 난리를 치기도 하고 탈춤 추는 패와 어울려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한다. 셋은 각기 다른 유행가를 삼중창(三重唱)으로 구성지게 부르기도 하면서 고향을 찾아 막연히 걸어가지만, 뾰족하게 내세울 만한 고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티격태격하며 싸우던 작부와 떠돌이 장사치가 정이 통하여서 어느 빈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시골역 대합실에서 끝내 눈물을 찔끔거리며 셋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감상> 황석영(黃晳暎)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이만희(李晩熙) 감독이 한동안의 슬럼프에서 벗어나 모처럼의 문제작을 내놓고 세상을 떠나 글자 그대로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다. 오서독스한 김덕진(金德珍)의 촬영기법이 화면을 더욱 아름답게 했으며, 인생파적인 연출 솜씨가 빛났던 역작이었다.

1975년도 제14회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감독상·촬영상·남우 조연상·음악상·편집상·신인상을, 1975년 '현대영화비평가 그룹'에서 남우상·신인상·특별상 등을 수상하였다.

왕십리[편집]

往十里

조해일(趙海一) 원작, 이희우(李憙雨) 각색, 임권택(林權澤) 감독, 신성일·김영애 주연. 1976년 제작.

<내용> 서울 왕십리가 고향인 신성일이 오랜 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십여년 만에 귀국한다. 모든 환경이 변해 있었고, 사랑했던 여인 김영애도 결국 남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신성일은 김영애를 만나 깊은 후회와 더불어 야릇한 감회에 잠기게 된다. 한편 철부지 아가씨인 전영선은 중년의 멋장이인 신성일에게 의지하려고 적극적인 공세를 펴기도 하지만 신성일의 의식은 십여년 전으로 자꾸 거슬러만 간다. 결국 이 정든 고장에 정착하려 할 무렵 어두운 그의 과거의 그림자가 불의의 침입객들에 의해 드러나게 되고, 신성일은 그들과 처절한 격투를 마치고 스스로의 인생행로를 다시 점검해 본다.

<감상> 전쟁물 또는 액션 위주의 폭력물을 즐겨 다루던 임권택(林權澤) 감독이 오랜만에 문예물 영화에 손대어 수작(秀作)을 만든 영화였다. 1976년도 제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집념[편집]

執念

이은성(李恩成) 각본, 최인현(崔寅炫) 감독, 이순재·김창숙·박병호 주연. 1977년 제작.

<내용> 천한 종이었던 손씨를 어머니로, 용천부사 허륜을 아버지로 태어난 허준은 천첩의 자식은 과거를 볼 수 없는 국법 때문에 어디론가 자기들의 신분을 모르는 새 고장을 찾아 인생을 재출발하려 고향을 떠난다. 그래서 흘러든 곳이 경상도 산청. 여기서 허준은 삼적대사의 권고로 당시의 명의 유의태에게 사사(師事), 마침내 스승을 뛰어넘는 신진기예의 명의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어 나라에서 실시하는 의원 취재에 장원급제, 내의원 내의가 된다. 온갖 모함과 주위의 질시 속에서도 차츰 두각을 나타낸 허준은 마침내 그 당시의 어의 양례수도 못고친 광해군의 어려운 병을 완쾌시켜 선조의 신임을 획득, 어의가 된다. 때마침 불어닥친 임진왜란 7년기간 동안 임금과 왕실의 시탕에 전념한 공로로 정일품 보국숭록대부에 양평군이 된다. 허나 양반이 아닌 그의 신분 때문에 끊임없는 상소사태를 빚게 되고 끝내 모든 작록을 박탈당한다. 더구나 임금의 약을 잘못 지었다는 죄목으로 거제도로 유배까지 당한다. 유배 2년 만에 새 임금 광해군의 특지로 한양에 돌아와 의서(醫書) 국역에 착수하던 중 때마침 평안도 일대에 맹렬한 전염병(흑사병)이 돌아 그곳에 달려가 많은 동포의 목숨을 구하다가 그 또한 죽음을 당하게 되고 한때 환수당했던 보국숭록대부와 양평군의 작호를 묘 앞에 추증받는다.

<감상> 역사 속에 숨겨져 있었던 인물을 발굴하여 영화 속에 재현시킨 알찬 사극물이며, 1977년 제16회 대종상 시상에서 우수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겨울여자[편집]

-女子

조해일(趙海一) 원작, 김승옥(金承鈺) 각색, 김호선(金鎬善) 감독. 주연에 장미희(張美姬)·신성일(申星一)·김추련(金秋鍊). 1977년 제작.

<내용> 이화(장미희)라는 소녀는 기독교 목사의 딸로 구김살없이 자라던중 여고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상한 인연으로 한 청년을 알게 되어 연애감정을 갖는다. 요섭(신광일)은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어느날 별장에서 이화를 순간적인 욕구에 의해서 껴안으려다가 강한 거부를 당하고 스스로 번민하다가 자살해 버린다.

이화는 생전 처음 큰 충격을 받아 괴로와하던 차 쾌활한 대학생 우석기(김추련)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이번에는 자진해서 남자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고 마치 모성애를 발휘하듯 남성을 감싸주기도 한다.

그러나 두번째 남자마저 군에 입대한 후 사고로 죽었다는 비보(悲報)가 날아 든다. 절망에 빠졌던 이화가 세번째로 만나는 남성은 바로 고교시절의 은사로서 지금은 아내와 이혼하고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허민(신성일)이다.

이화는 허민과도 뜨거운 관계를 맺지만 그와의 결혼은 승낙하지 않는다. 오히려 헤어졌던 여성을 다시 허민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하고는 호젓이 허민의 곁을 떠나가 버린다.

<감상> 현대 여성들의 애정 모랄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대담한 소재를 퍽 감각적인 영상미(映像美)로 묘사, 60만 5천명이라는 한국 극장사상 최고의 관객 동원 기록을 수립하였다.

1977년도 '현대영화비평가 그룹' 시상에서 작품상·감독상·촬영상을 수상하였다.

[편집]

門 김지헌(金志軒) 각본. 유현목 감독. 최불암·이영하·방희 주연. 1977년 제작.

<내용> 일본의 전통악기인 고또(琴)의 명인인 세이징(박근형)은 어느날 한국 가야금 연주를 듣다가 심취되어 그 음악의 원류(源流)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마침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는 가야금의 대가인 우단 선생(최불암)이 자신의 기량을 물려준 딸 가실(방희)과 함께 살고 있었다. 세이징이 몇 번이나 신청한 면회를 끝내 사절하던 우단도 단검을 빼어놓곤 가야금 탄주를 못듣고 갈 바엔 자결하겠다는 일본인다운 끈질긴 집념에 하는 수 없이 탄주를 한다. 손 마디마디에서는 피가 흐른다. 일제의 고문으로 인한 파상풍으로 손을 앓고 있는 처지였던 것이다. 우단이 적어 준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은박지에 쓴 문구를 꼬옥 쥔 채 밖으로 뒤쳐나간 세이징은 한라산 백록담 근처에서 끝내 목숨을 잃는 수수께끼 같은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은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어 세이징의 아들 준(이영하)이 한국에 나와서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던 끝에 그 의문의 해답을 구하게 된다. 그동안 가실과 교류되었던 정분도 일본서 뒤따라 온 약혼녀(조영숙)로 인하여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된다.

<감상> <만추(晩秋)> 등 명작 시나리오로 일본·중국 등지에 알려진 김지헌(金志軒)의 역작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유현(幽玄)한 한국의 풍치(風致) 속에서 그려낸 오서독스한 영화로서 유현목(兪賢穆)의 치밀한 연출과 정일성(鄭一成) 카메라맨의 구도(構圖)가 앙상블을 이룬 수작(秀作)이었다.

<邊 仁 植>

깊고 푸른 밤[편집]

최인호(崔仁浩) 원작·각본. 배창호 감독. 주연에 안성기·장미희. 1984년 제작.

<내용> 백호빈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부와 기회를 꿈꾸는 야망의 사나이다. 그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제인과 계약결혼을 한다. 제인은 삭막하고, 이기화된 미국이라는 문명사회에 고독하게 소외된 여인이다. 백호빈과 동거인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제인은 호빈에게 그녀의 삶속에서 마지막으로 찾아온 빛과도 같은 사랑을 느낀다. 마침내 호빈이 미국시민의 자격을 얻게 되고 결혼 계약이 끝나갈 무렵, 호빈의 욕망과 제인의 사랑이 대립된다.

제인은 계약을 위반하며 호빈에게 사랑을 호소하지만 호빈은 본국의 부인과 아이에 대한 일념뿐이다. 결국 호빈의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며 광적인 난폭성이 폭발, 제인의 인간성을 짓밟고 만다. 드디어 두 사람은 이혼여행 길에 오르며 죽음과 같은 사막 위에 허망한 인간의 욕망과 사랑의 결말이 보여진다.

길소뜸[편집]

송길한 각본. 임권택 감독. 주연 김지미·신성일. 1985년 제작.

<내용> 이산가족찾기가 한창인 1983년 여름. 화영은 남편의 권유로 아들을 찾으러 가던 중 회상에 젖는다. 광복과 함께 길소뜸으로 이사가 고아가 되고, 아버지의 친구 김병도씨와 함께 살던 중 김씨의 아들 동진과의 사랑 등.

그러나 화영은 우연히 여의도 만남의 광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했음에도 화영을 기다리는 동진을 만나, 아들 석철을 함께 찾는다. 석철을 만나자 핏줄의 끌림에 아들임을 알게 되지만 법의학을 통해서도 완전한 확증을 얻지 못하자, 33년이란 세월의 이질감에 의해 다시 헤어지며 화영은 석철이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눈물을 흘린다.

씨받이[편집]

송길한(宋吉漢) 각색. 임권택(林權澤) 감독. 주연 강수연·이구순·윤양하·김형자. 1986년 제작.

<내용> 조선시대 대가집 종손 신상규와 그의 부인 윤씨 사이에 손이 없자,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가 숙의끝에 씨받이 여인을 들일 것을 결정, 씨받이 여인이었던 필녀의 딸 옥녀를 간택하여 집안으로 들인다.

합방날, 옥녀를 대면한 상규가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사로잡혀 옥녀를 총애하게 되자 부인 윤씨는 옥녀를 투기하게 된다. 드디어 옥녀에게 태기가 있자 온 집안은 옥녀를 떠받들게 되며 옥녀도 잠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필녀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옥녀를 타이르나 옥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옥녀가 아들을 낳자 그 아이는 곧장 윤씨의 품에 안기며 신씨 종가는 경사를 맞는다.

옥녀는 아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그밤으로 떠날 것을 종용받자 자신의 한많은 생을 죽음으로 끝냄으로써 패륜에 항거한다.

아다다[편집]

계용묵 원작. 윤삼육(尹三六) 각색. 임권택(林權澤) 감독. 주연 신혜수·한지일. 1987년 제작.

<내용> 벙어리인 아다다는 순결한 정신세계를 가진 여인이다.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생활에서 도외시당하는 일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으며, 부여된 생의 순간 순간을 적극적으로 임한다. 몰락한 양반 집안의 후예인 영환은 아다다를 신부로 맞아들여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부유한 생활을 꿈꾼다.

영환이 얄팍한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절대가치를 상실하게 되자 아다다는 반발하게 된다. 자신을 구속했던 무가치한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어린 시절부터 평온의 대상이었던 수룡을 찾아간다. 그러나 수룡 역시, 현실적 욕구의 노예가 되어 아다다를 수단으로 삼고 만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편집]

이제하 원작. 이장호 각색·감독. 주연 김명곤·이보희. 1987년 제작.

<내용> 계해년이 다 저물어가는 어느날, 사내는 벽장 구석진 곳에 두었던 3년 전에 죽은 아내의 유골을 꺼내든다. 그는 유골을 뿌릴 곳을 물색하기 위해 막연히 떠난 동해에서, 문득 부딪친 바다에의 충동으로 '물치'라는 곳에 내린다. 여행중 우연히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대화와 흐르는 듯한 풍경들이, 사내의 머릿속에 각인된 지나간 기억들과 환영들을 상기시킨다. 우연히 만난 하마터면 함께 살림을 차릴 뻔했으나 마지막 순간, 운명적인 헤어짐을 맛보았던 어느 간호원과의 짧은 인연이 기억 속에 떠오르기도 한다. 사내는 사흘 동안 죽은 아내의 환영을 따라 낯선 고장을 마치 운명의 여로를 밟듯 떠돌아다닌다.

기쁜 우리 젊은날[편집]

배창호(裵昶浩) 각색·감독. 주연에 안성기·황신혜·전무송·최불암. 1987년 제작.

<내용> 영민은 연극공연 때마다 혜린에게 익명으로 꽃과 공연사진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혜린은 욕망이란 전차를 타기 위해 산부인과 전문의와 결혼을 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그 후 어느날 영민은 지하철에서 이혼녀인 혜린을 발견한다. 혜린의 상처와 슬픔이 클수록 영민의 사랑은 깊어져 혜린은 결혼을 승낙한다. 하지만 혜린이 임신중독 증세로 위독해지자 영민은 수술을 권하나, 혜린은 진정으로 사랑한 영민의 아이를 낳고자 소망한다.

칠수와 만수[편집]

박광수 감독. 주연에 안성기·박중훈·배종옥. 1988년 제작.

<감상> 얼핏 보면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을 그리고 있다. 간판일을 하며 먹고 사는 박만수(안성기)와 그에 빌붙는 장칠수(박중훈)가 그들이다. 그들은 일감이 있으면 일당을 벌고, 없으면 하릴없이 애꿏은 시간만 죽이는 삶의 소유자들이다. 지금 이 땅에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아도 저절로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만수와 칠수의 과거 속엔 현재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원형적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만수의 아버지는 27년째 징역을 사는 장기수이고, 칠수의 아버지는 동두천 포주에게 얹혀사는 '폐차'인생인 것이다.

만수는 그런 아버지를 증오한다. 광고탑 위에서 "높은 곳에 있을 때 큰 소리 좀 쳐보자"는 행동은, 따라서 우연적이고 돌발적이지만 그것이 분단조국의 피할 수 없는 한 모습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편 칠수는 만수보다 훨씬 덜 '사회적'이다. '버러지' 같은 아버지 때문에 가출을 하여 여기저기서 빈대 붙으며 사는 것도 그렇지만 여대생 지나(배종옥)와의 연애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는 점도 그렇다.

더욱이 광고철탑 위에서의 칠수는 경찰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오자 "춥고 배고프고 뒈지겠네"라며 결국 붙들려 내려가고 만다. 요컨대 그들의 큰소리는 단지 높은 곳에 있을 때 외쳐대는 일상적 함성일 뿐이다.

그것이 심각성을 띠게 되는 것은 행인들과 경찰들, 그리고 매스컴에 의해서이다. 단순한 소주병이 화염병으로 전달되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생활의 답답함들이 노사문제로 와전, 확대된다. 이것들은 바로 진실이 외면당하고 정의가 외로운 시대의 징후이자 표상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범죄자가 되고 더할 수 없는 고통의 늪에 빠져드는, 정치의 민주화가 덜 된 이 땅에서의 뒤틀린 모습을 <칠수와 만수>를 통해 새삼 목격할 수 있음은 우리영화사상 커다란 수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편집]

정지영 감독. 안정효 소설 각색. 주연 최민수·독고영재

<감상>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영화에 미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옛 극장문화나 옛 영화에 대한 추억이나 향수를 달래고자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정감독이 연출의 변을 밝혔듯 영화라는 외래문화가 이 땅의 물질적·정신적 가난 속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을 얼마나 황폐화시켰는가를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임병석(최민수)의 인생유전을 통해 그 점이 비교적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미쳐 있던 '천재' 임병석은 작부와 살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이 윤명길(독고영재)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대히트를 하지만, 그러나 그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교묘한 표절이었음이 밝혀진다. 결국 임병석은 자살한다.

한 영화광의 인생유전이지만 그것의 상징성은 위에서 말한 대로 크고 의미심장하다. 외래문화의 이식 ―― 외세에 의해 쇄국의 빗장이 열린 이 땅의 사정을 영화라는 상징물을 통해 고찰, 반성해 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과거지향적인, 추억을 향수하자는 영화가 아니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1960년대를 배경과 소재로 했을망정,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과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한 영화이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갖는 건 관객의 자유지만,

"영화 말고는 좋아할 그 무엇이 없던 시절, 누추한 극장의 추억조차도 아름답고 소중한 것으로 되살려보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재서는 안 될 것이다.

당연히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패배의 나르시즘이며, 절망의 판타지이고, 꿈 없는 세대의 꿈에 관한 60년대 방식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할리우드 키대의 생애>는 흘러가버린 '서글픈 문화사'를 축으로 그것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뼈있는 자아성찰의 영화인 것이다.

세상 밖으로[편집]

여균동 감독. 주연 문성근·이경영·심혜진

<감상> 살임범 성근(문성근)과 좀도둑 경영(이경영)이 이송 도중 뜻밖에 탈옥하게 되어 죽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맛깔스럽게'하려고, 그 와중에 창녀 혜진(심혜진)이 가세한다.

여기서 '뜻밖에'는 전체 맥락과 관련하여 그 의미가 크다. 탈옥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탈옥수들(그들은 몇 년 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의 주인공들이다)에 의해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근 등의 좌충우돌에서 번득이는 사회풍자는 우연스러운 것일 뿐이다. 한 평론가의 지적처럼 그들이 "남한의 욕망과 타락과 부도덕과 무책임과 파렴치가 만들어낸 거대한 암사지도"라 하더라도 모든 것이 만사가 허수고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부딪침들은 어쩐지 후련하고 개운한 느낌을 안겨준다. 다소 황당하기는 할망정 가령 폭주족을 굴복시키는 권총의 위협과 혜진의 보복적 응수를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일상의 온갖 폭력에 시달리는 평범한 시민들이 잠재적으로 지닐 수 있는 욕구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그때 성근·경영·혜진 등이 경쟁적으로 뱉어대는 욕지거리는 참으로 아름답게 들린다. 유독 전라도에 '욕설문화'가 발달했던 것은 그만큼 수탈이 심했다는 증거이자 무력한 피압박민들의 한풀이에 다름 아니라는 전제에서 가능한 말이다.

그들이 무제한적으로 뱉어대는 욕지거리는 또한 이 영화를 코미디로 읽게 하는 힘이 있다. 화를 내거나 싸움을 할 때 뱉으면 순수한 욕인데도, 그리하여 혐오스러운데도 그들의 욕을 듣는관객들은 웃는다. 이를테면 <세상 밖으로>는 욕지거리를 아름답게 승화시킴으로써 웃게 하는 힘과 사회풍자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갖게 된 셈이다.

돈을 갖고 튀어라[편집]

김상진 감독. 주연 박중훈·정선경·최종원. 1995년 제작.

<감상> 남의 동원예비군 훈련을 대신 받아주고 일당을 받지만 거의 백수 건달인 천달수(박중훈)가 자신의 통장에 1백억원이 입금된 뒤 외상술값을 받기 위해 동행한 작부 은지(정선경)와 벌이는 해프닝으로 짜여 있다. 알고 보니 그 돈은 전직 대통령의 세탁을 거친 비자금쯤 되고, 살벌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도 전혀 그런 심각하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작품 전면에 흐르고 있는 코믹성 때문이다. 관객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전직 대통령의 전직 실장쯤 되는 사내(최종원)의 잦은 권총 꺼내기와 악쓰기만 빼면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이며 표정, 그리고 대사 등이 모두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련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그 세련됨은 황당하거나 억지스런 웃음이 아니라는 뜻이고, 섬세한 그리하여 흔히 간과해 버리기 쉬운 사소한 일상사의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려냄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돈치기를 하는데, 싹쓸이하게 된 달수는 말한다. "아니, 치사하게 50원짜리 낸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또 식사 중에 "왜 비닐을 까냐?"고 묻는 옆사람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 뒤 "동원훈련 처음 받아보나!"라며 혼잣말로 비꼰다. 그런 유머러스함은 그 외에도 달수 아버지(박인환)와 은지, 킬러인 장하사(명계남)와 뱁새(김승우), 심지어 중국집 종업원에게서까지 터져나온다. 그 중 장하사의 "큰일에 파출소 순경 오는 것 봤냐?"라는 대사는 세태풍자의 대사로서 특히 기억할만하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편집]

박광수 감독. 주연 문성근·홍경인·김선재

<감상> 영화는 1975년 시국사범으로 수배를 받은 운동권 학생 영수(문성근)가 전태일의 평전을 쓰기 위해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태일과 영수의 핍박받는 1970년대적 삶이 흑백과 칼라의 이원적 구조로 짜여져 있는 것이다.

특히 지극히 열악한 노동현장 등을 담은 흑백화면은 제작사가 자랑한 경이적 기록들 가운데 하나인 '완벽한 70년대 재현'에 값하고 있어 리얼리티와 함께 비장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과거, 우리의 자화상에 대한 공감인 셈이다.

그것은 근로기준법을 들먹이는 것이 '미친놈들 배부른 소리'로 매도되는 '하면 된다' 시대의 현장검증일 뿐 아니라 언제라도 노동 삼권이, 궁극적으로는 천부인권이 유린될 수 있는 실제상황에 대한 경계 표시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영화의 메시지는 드러난 셈이다. 영수의 시국사범으로서의 고통받는 모습과 여공 정순(김선재)이 당하는 갖가지 탄압도 절제된 영상으로 드러나거니와 전태일의 의미 있는 삶과 죽음은 대중의 깨어 있는 힘이 소중함을 환기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풍긴 홍경인이 직접 분신연기로 관심을 끌었지만 정순 역의 김선재 또한―스크린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핏기 없는 표정 등 내면연기를 펼쳐 70년대 재현에 한몫함으로써 영화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개 같은 날의 오후[편집]

이민용 감독. 주연 정선경·하유미·송옥숙.

<감상> 자동차 접촉사고와 공중전화 시비 등 일련의 세태비판을 담은 <개 같은 날의 오후>의 전반부 25분 정도는 장미 아파트 주민들의 수선거리는 모습들이 스피디하거나 산만하게 폭죽을 울린다.

다수의 주인공을 소개시키기 위한 밑그림으로 이해되는데, 빠른 화면 바뀜으로 인해 다소 산만하게 보이긴 할망정 그것들이 박진감 넘치는 현실적 진실의 모습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사건인 옥상 투쟁의 발단이라 할 정희(하유미) 남편에 대한 윤희(정선경)의 대거리와 영희 엄마(송옥숙), 은주 엄마(김보연) 등이 가세한 집단폭행 장면도 대단히 원시적인 동시에 지극히 현상적이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고 아차 하는 순간에 저질러진 집단폭행(이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일이었다)은 급기야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아내 구타사건으로 비화되고, 발빠르게 SBC 등 언론을 통해 여론을 들끓게 한다.

이것만으로도 첨예한 사회문제를 성공적으로 영상에 옮겼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성차별을 극복한답시고 남편과 막상막하의 실력으로 외간남자와 놀아나는 식의 영화들과는 분명히 변별된다는 점에서이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깔면서도 연방 터지는, 주로 대사에 의존한 코미디가 다채롭고 발랄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 같은 날의 오후>는 옛날의 영화적 주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코미디란 뜻의 '비주류 코미디'라 할 만하다. 특히 두 도둑 덕배(이경영)와 달수(김민종)가 내뱉는 "낮이나 밤이나 생 쇼를 하는구만" 등의 대사와 함께 술취해 부르는 노래는 긴박한 상황과 코믹한 분위기를 잘 조화시킨 절정론이다.

<개 같은 날의 오후>가 단연 돋보이는 까닭은, 끊임없이 웃기면서도 진지한 메시지를 담아내 콧등이 시큰거리게 한다는 데 있다.

투쟁을 지지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피켓 등을 들고 노도와 같이 몰아치며 시위하는 장면에서 그런 정서에 빠져들게 한다.

301·302[편집]

박철수 감독. 주연 황신혜·방은진

<감상> 301호에 사는 송희(방은진)는 탐식증, 맞은편인 302호의 윤희(황신혜)는 거식증 환자이다. 송희는 부지런히 음식을 장만하여 윤희에게 먹이려 하지만 번번히 구토를 하게 되고, 결국 윤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에 이른다.

음식을 소재로 하여 지평 확대를 꾀하지만 사람을 요리했다는 충격은 충분히 전율적이다. 벽이 보이는 소재의 한계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301·302>가 전혀 새로운 컬트 영화인 것은 그 때문이다.

남자가 가해자로 등장은 하지만 어떻게 보면 <301·302>는 실존적 고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소외문제를 그린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라스트 신의 자막 "그것으로 고독은 끝난 것일까, 두 여자가 해결한 것은 무엇일까"가 그런 느낌을 도와준다.

박감독은 한겨레 신문사가 발행하는 '씨네 21' 창간호 대담에서 밝혔듯이 어쨌거나 <301·302>는 우리영화의 소재영역을 확대한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거니와 황신혜·방은진의 연기가 컬트적 분위기를 십분 살리기도 했다.

축제[편집]

임권택 감독. 주연 안성기·오정해·정경순

<감상> 소설가 이청준의 동명소설 동반 창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축제>는 소설가 준섭(안성기)이 모친상을 당해 겪는 상가의 이야기다. 상가의 질박하고 리얼한 모습이 매우 한국적인 영상으로 펼쳐진다.

봉투를 들고 초상집에 한 번이라도 가본 관객들에겐 더없이 뭔가가 와닿는 그런 영화가 <축제>이다.

그 뭔가란 무엇인가? 솔직히 장례 절차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껍질에 불과할 뿐이다. 망자의 자녀들이 갖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들, 문상객들의 화투와 음주가 품어내는 것들 역시 표피적인 모습들이다.

그 껍질들은 효라는 내용물을 싸고 있다. 바꿔 말하면 그것들은 효라는 내용물을 풀어내기 위한 감독의 계산된 장치인 셈이다. 인물로는 준섭의 형이 외도하여 데리고 들어온 딸 용순(오정해)과 문학지 여기자 혜림(정경순)이 그것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들의 역할은 장례식의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를 반전시킴과 동시에 옛날 같지 않은 효 의식을 꼬집는 데서 두드러진다. 용순은 집안 식구들과 좌충우돌하며 그녀의 비꼬인 세상관만큼이나 장례식장을 극적재미로 몰아가고, 혜림은 용순과 함께 이름깨나 알려진 소설가의 이면적 모습을 까발리고 있다. 용순과 혜림 역의 오정해와 정경순은 <서편제>와 <태백산맥>에서의 캐릭터로부터 변신하는 데 성공하여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장례식이란 단순히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그리하여 회합의 새출발이 되는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투캅스 2[편집]

강우석 감독. 주연 박중훈·김보성·김예린

<감상> 전편의 조반장(안성기)은 퇴직했고, 그때의 신참 강형사(박중훈)가 역시 경찰대학 수석 졸업생 이형사(김보성)와 콤비를 이루고 있다. 캅스 걸 지수원은 강형사의 아내가 되어 있고, 그 자리를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로 데뷔한 김예린이 물려받았다.

<투캅스 2>는 코미디라는 기본 바탕에 액션을 복사한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경찰 비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올바른 경찰상 확립을 위한 세태풍자가 강화되어 있는 특징도 드러내고 있다. 또 신세대 원칙주의자 이형사를 보다 '화끈한' 인물로 그려내 전편에서의 조심스런 접근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경찰들은 물만 먹고 사나"라고 말하는 업주들의 겉다르고 속다른 행위(돈 뜯어낸다고 불평하다가도 막상 형사들을 만나니 두 배로 늘려 걷자 하는 따위)는 세태풍자의 절정이자 압권이라 할 만하다. 코믹액션 영화 속에 그 정도 따끔한 메시지를 담아내기란 우리 영화로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꽃잎[편집]

장선우 감독. 주연 문성근·이정현

<감상> 광주 현장에서의 최대의 몹 신(mob scene) 촬영 등 제작 때부터 많은 화제를 뿌렸던 <꽃잎>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소녀가 있을땐 학대하다가 마침내 사라져버리자 미쳐버리는 장의 모습이다. 소녀의 실성기의 정체를 알게 된 장의 그런 모습이 비극적 인식의 확산이자 공유가 되기 때문이다. 또 동료 인부들을 통해 광주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장의 무지가 소녀의 비극적 아픔에 가닿고 끝내 미쳐버림은 장중한 비극미와 함께 울림이 있다. 장의 캐릭터는 광주 피해자에 대한 제3자의 무관심과 학대가 잘못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배경음으로 깔린 국악의 애잔한 선율이 분위기를 돋구었고, 전경의 군화발이 노동자의 영정을 짓밟는 장면이 삭제당한 <구로 아리랑>에 비하면 탱크진격과 공수부대원의 무차별 난타 장면 등이 흑백화면으로 재현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은행나무 침대[편집]

강제규 감독. 주연 한석규·신현준·진희경·심혜진

<감상> 천년 전. 미단공주(진희경)와 악공 종문(한석규)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황장군(신현준)의 질투로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미단공주를 사랑하는 황장군이 종문을 죽이자 그녀 역시 자결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로 오자, 외과의사 선영(심혜진)의 애인인 석판화가 수현으로 환생한 종문이 우연히 은행나무 침대를 집에 들여놓게 되며, 미단공주는 영혼으로 다가와 사랑을 나누려 한다. 그러나 황장군은 거기까지 쫓아와 수현을 해치고 미단공주를 차지하려 한다. 결국 은행나무 침대가 불에 타게 되고, 황장군도 따라 죽음으로써 천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애절한 사랑은 그 막을 내린다.

쉬리[편집]

강제규 감독. 주연 한석규·최민식·송강호·김윤진

<감상>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인 O. P.의 특수 비밀요원 유중원(한석규)과 그의 친구 비밀요원 이장길(송강호)에게 무기 밀매상 보스인 임봉주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려다가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유중원은 현장에서 탄피 두 개를 발견하고 저격수가 특수 8군단 소속 이방희(김윤진)임을 알아챈다. 이방희가 임봉주를 통해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신소재 액체폭탄 CTX를 확보하려고 했음을 파악해낸 유중원과 이장길은 급히 연구소로 달려가지만 그때는 이미 이방희에 의해 담당연구원이 살해된 뒤였다. 북에서 침투한 박무영(최민식)과 특수 8군단의 정예요원은 군단사령부로 옮겨가던 CTX를 성공적으로 빼앗고, 유중원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한국형 블록 버스터 <쉬리>는 무려 2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함으로써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을 1년 만에 깨뜨렸다. 안타까운 분단 현실을 소재로 하여 CTX라고 하는 액체폭탄을 둘러싸고 북한의 특수 8군단과 우리나라의 정보기관 사이에 벌어지는 긴박한 대결을 그린 영화로서, 액션에 슬픈 사랑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국내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용가리[편집]

심형래 감독

<감상> 캠벨 박사는 자기가 어떤 인물인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화석을 이용하여 크게 돈벌이를 해보겠다는 야심에 부푼다. 그가 새로운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50배에 가까운 엄청난 공룡 화석이 있는 지점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중 화석이던 용가리가 하늘에서 내리친 녹색광선을 맞고 거대한 괴물로 변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도시 중심부로 날아가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때 캠벨의 계략에 말려들어 2년 전에 실종되었던 휴즈 박사는 용가리가 외계의 생명체에게 조종당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들이 핵폭발 이후에 발생하는 방사능을 얻기 위해 지구에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용가리를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 공군사령부와 힘을 합친다. 괴물 용가리가 핵발전소에 접근하고 있을 때 외계의 생명체로부터 조종받고 있던 용가리를 저지시킨다. 그러자 외계의 생명체는 용가리보다 훨씬 거대한 싸이커를 깨워 핵발전소를 공격하지만, 지구인의 갸륵한 희생정신에 감동받은 용가리가 오히려 싸이커를 막아낸다. 이리하여 용가리는 싸이커를 물리치고 위기에 싸인 지구를 구한 영웅으로 우뚝 선다.

한국의 신지식인이요, 21세기를 이끌어갈 밀레니엄 리더로 손꼽히는 심형래 감독이 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용가리> 제작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 영화의 해외진출에도 큰 몫을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