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유 럽/노르웨이
노르웨이의 국기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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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Kingdom of Norway 정치체제:입헌군주제 수 도:오슬로(Oslo) 인 구:454만 6,123명(2003) 면 적:38만 6,963㎢ 소 득:1인당 GDP 3만 7,850달러(2002) 공 용 어 :노르웨이어 화폐단위 :노르웨이크로네(NKr) 주생산물 :가축 / 감자 / 고등어
노르웨이의 자연
[편집]Norway-自然
남북으로는 약 1,700㎞로 길게 뻗쳐 있으나 동서는 가늘며, 가장 좁은 곳이 몇 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다. 국토의 72%는 빙식(氷蝕)을 받은 평탄한 꼭대기를 지닌 산지(山地)이다. 삼림(森林)이 24%를 차지하며 경지는 매우 적다. 해발 2,000m 이상에는 만년설(萬年雪)이나 빙하(氷河)가 지금도 남아 있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은 북부·중부에서는 스웨덴과의 국경으로 되어 있으나, 남부는 노르웨이 안에 펼쳐져 있으며, 이곳이 가장 높고 폭도 가장 넓다. 곧 요텐헤임(2,452m), 요스테달스브렌(2,083m) 및 도브레페르(2,286m) 등의 산이 있고 빙모(氷帽)와 빙하가 있다.서해안은 피오르드가 발달해 있다. 남쪽 덴마크와의 사이는 스카게라크 해협이라고 부른다. 북쪽에는 로포텐 제도(諸島), 베스텔롤렌 제도 등이 있어서 좋은 어장으로 되어 있다.
노르웨이의 기후
[편집]난류인 멕시코 만류(灣流)가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므로, 높은 위도에 비하면 온도가 낮지 않고 강우량이 많다. 예를 들면 남부 서해안의 베르겐은 겨울의 월평균 기온이 1.3∼1.5
이며, 여름에는 약 15
, 1년 강우량은 1,900㎜에 이른다. 북쪽일수록 강우량은 적어져 북부에서는 연강우량이 400㎜ 이하이다.
피오르드 협만
[편집]fjord峽灣
옛날 빙하로 말미암아 생긴 U자 모양의 골짜기에 바닷물이 침입한 것이다. 베르겐의 북쪽에 있는 송네 피오르드는 안쪽까지의 길이가 200㎞나 되며, 100㎞까지도 나비가 몇 킬로미터나 된다. 이 피오르드는 양쪽 육지가 가파른 절벽이며, 물 깊이는 깊을 뿐만 아니라 경치가 좋다.
스발바르(스피츠베르겐) 제도
[편집]Svalbard(Spitsbergen)諸島
면적 6만2,422 ㎢. 탄전(炭田)이 개발되어 1년 산출량은 50만 t 이다. 육지의 태반은 빙하로 덮여 있고 여름과 겨울의 3개월은 밤과 낮의 구별이 없다.
노르웨이의 역사·주민
[편집]-歷史·住民
800∼900년 무렵은 바이킹의 활동이 성하였는데, 노르웨이 농민의 작은 집단이 차차 큰 정치적·군사적 지역으로 모였다. 1,000년 무렵 그린란드와 미국이 발견되어 기독교가 노르웨이에 들어갔다. 1164년 최초의 국왕(國王)을 맞이했고, 1217∼1263년에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지배하여 노르웨이의 국력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문화적으로도 개화(開花)를 한 시대였다.그 뒤 스웨덴과 동맹, 한자(Hansa) 상인(商人)의 활약에 의한 노르웨이의 경제의 쇠퇴, 덴마크와의 400년 이상에 걸친 동맹 등의 시대가 있었다. 더구나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전란의 시대를 걸쳐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다. 1866년에서 1873년에 이르기까지는 제1기의 대규모 이민(移民)시대로서 미국에 약 10만 명, 그리고 1900∼1910년 제2기의 대규모 이민시대로서 20만 명이 바다를 건너갔다. 1905년에 스웨덴과의 동맹이 끝나고 독립하여 호콘 7세가 즉위하였으며 1차대전 후의 경제 불황, 2차 대전중의 독일군의 침입 등을 거쳐 1945년 다시 자유를 찾았다.노르웨이 주민은 아름다운 금발(金髮)과 파란눈을 지니며 키가 훤칠하게 큰 사람이 많다. 또 장수(長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수명은 남자는 73.6세이며, 여자는 80.3세이다. 그리고 랩(Lapp)족은 북부 노르웨이에만 살며 용모, 언어, 문화가 모두 이색적이다.노르웨이 언어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지방어에 의해 1850년 새로운 말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의 한 공용어와 둘이 현재 쓰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으며 주민의 대다수는 루터파의 복음교도이다.
노르웨이의 정치
[편집]-政治
1814년 헌법에 의해서 노르웨이 왕국의 기초가 섰으며,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으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맹하였고, 충실한 사회보장제도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또 국민 1인당의 수출입액은 베네룩스(Benelux) 다음가는 세계의 정상급에 속하고 있다. 이것을 보더라도 이 나라 정치의 방침을 알 수 있다.
노르웨이의 산업·무역
[편집]-産業·貿易
전국토의 겨우 3% 정도가 경지(耕地)이며 산업인구의 11.9%가 제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은 자급자족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어업은 활발하여 대구·청어·정어리 등의 어획고는 세계 수위를 다툰다. 이 나라에서 발달한 원양 포경업(捕鯨業)은 최근에는 쇠퇴해 버렸지만, 북부 르흐딘에 포경기지가 있다. 1971년부터 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1975년 산유국 대열에 진입하였으며 수력발전과 어류 및 산림·광물자원이 풍부하다.이 나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국 무역을 높이는 방법 이외에는 없으며, 현재 세계에서 제7위의 무역액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의 상선보유는 세계 제4위로서 세계 제9위의 해운 수입(海運收入)을 올리고 있어 이 나라의 수입 초과(輸入超過)에 대한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의 교통·도시
[편집]-交通·都市
국내 교통은 육상 ·해상 양면에 있어서 이 나라 지형이 남북으로 길 뿐 아니라 산과 피오르드의 장애 때문에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철도(태반이 국영임)의 건설은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역시 수상 교통의 역할이 크며, 이 나라의 대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또 서해안을 따라 북부까지 도시가 있는데, 함메르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이며, 특히 어획물(漁獲物)의 거래가 성하다.스웨덴의 키루나 등지에서 나는 철광석(鐵鑛石)은 나르비크항을 통해 수출된다. 나르비크는 1880년대에 철도가 시설된 당시에는 인구가 겨우 50명이었으나, 100여년 동안에 약 1만 9,000명의 도시가 되었다.
오슬로
[편집]Oslo
노르웨이의 수도. 1048년에 바이킹왕 하랄드에 의해 건설되었다. 13세기 호콘 5세에 의하여 수도로 정해져셔 한자(Hansa)동맹의 항구로서 번영했다. 17세기의 대화재 후에 재건되었으며 그 당시의 덴마크왕 크리스천 4세에 의하여 크리스처니아라고 명명되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오슬로란 본명으로 되돌아갔다. 도시의 크기는 남북 약 40㎞, 동서 약 20㎞로서 면적이 매우 넓다. 그리고 도시 안에는 녹지(綠地)와 숲과 공원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또 피오르드가 들어와 있어서 경치가 아름답다. 인구 48만.
트론헤임
[편집]Trondheim
오라프 트리그바슨이 997년에 왕실의 영지(領地)와 교회를 여기에 가지고 있던 것이 이 도시의 기원이라고 한다. 12세기에는 노르웨이 정신(精神)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681년 큰 화재로 도시의 대부분이 타버렸으나 재건되어 아름다운 건축물이 거리에 넘친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편집]Bergen
인구 약 22만(2000)으로서, 이 나라 제3의 도시. 노르웨이 남서부에 있으며 12∼13세기에는 이 나라 수도였다. 중세(中世)에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중에서는 최대의 항구이며 무역의 중심이었다. 피요르드식 해안관광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베르겐은 화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각종 미술관·박물관이 있는 문화도시이다.
스타방게르
[편집]Stavanger
이 나라 제4의 도시. 노르웨이 남부에 있으며 상업, 조선(造船), 그 밖의 공업이 성하다.
노르웨이의 관광명소
[편집]-觀光名所
백야의 나라, 피오르드의 나라, 바이킹의 역사를 지닌 노르웨이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눈덮인 봉우리 등 아름다운 장관을 가진 명소가 많이 있다.
시청사
[편집]Radhuset
오슬로의 상징인 시청사는 왕궁과 의회건물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해안가에 위치, 오슬로 피오르드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1915년 오슬로의 시장이 오래된 오슬로 항구에 새로운 시청사 건물을 건립함으로써 이 지역을 새롭게 단장하고자 하여, 1920년 공사에 착수하였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가 적절히 결합된 이 건물은 1950년에 이르러서야 완성이 되었다. 2개의 탑을 가진 이 건물의 내외벽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에 의한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칼 요한 거리
[편집]Karl Johan Street
약 1.3㎞에 이르는 거리로 오슬로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는 최대의 번화가이다. 이 거리의 끝 언덕 위에 왕궁을 건립한 ‘칼 요한’왕의 이름을 땄다. 상점과 레스토랑이 즐비하며 중앙역과 왕궁을 연결하고, 거리의 중심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다. 거리의 서쪽에는 입센과 뵈른손의 동상이 서 있는 국립극장이 있다.
왕궁
[편집]Det Kongelige Slottet
칼 요한스 거리 끝의 언덕에 있는 이 왕궁은 1858년 칼 요한이 완성한 것이다. 나폴레옹의 전사이며, 원래이름은 장 밥티스테 베르나도테(Jean Baptiste Bernadotte)인 칼 요한은 1818년 당시 스웨덴 왕인 동시에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왕으로서, 왕궁 앞에 그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다. 궁전의 내부는 비공개이다.
오슬로 대학
[편집]Oslo 大學
오슬로 대학은 노르웨이의 국립대학으로, 1811년 덴마크령(1397∼1814)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노르웨이인들의 요망에 따라 프리드리히 6세가 창설하였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며, 대강당의 E. 뭉크의 벽화가 유명하다.
오슬로 대성당
[편집]Oslo Domkidrken
칼 요한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복음주의 루터파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1694년에 처음 착공된 후, 여러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청록색 탑이 있는 고전양식풍의 모습이 되었다. 18세기에 제작된 6,000개의 파이프와 음계가 104단인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다.
비겔란드 조각공원
[편집]Vigeland parken
노르웨이의 조각가, 비겔란드(Vigeland, Adolf Gustav)가 1915년부터 오슬로 시의 지원으로 지은 세계 최대의 조각원이다. 비겔란드는 사람의 일생과 갖가지 희비를 수백 개의 청동과 화강암의 조각들로 나타내려고 했으나, 완성은 하지 못하고 죽었다.총면적 32만 3,700㎡에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모든 삶의 모습과 감정 등이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높이 17m의 하나의 화강암으로 조각한 121명의 인간 군상인 모노리트는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20년에 걸쳐 완성한 걸작이다.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조각으로 공원에서 가장 명물로 꼽히고 있다.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parken)이라고도 불린다.
노르웨이 민속박물관
[편집]Norsk Folkmuseum
1894년 설립된 노르웨이 최대의 야외 문화·역사 박물관이다. 노르웨이 각 지방의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140여 개의 목조가옥 및 옛 건축물들과 실내의 가구와 집기까지 전시되어 있어,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는 노르웨이인의 생활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12세기에 세워진 목조건물인 스타브 교회(Stavkirke)와 오슬로에서 옮겨온 극작가 입센의 집이 유명하다.
바이킹 배 박물관
[편집]Vikinghuset
오슬로 피요르드에서 발견된 3척의 바이킹 배(오세베르그호, 고크스타호, 투네호)의 복원품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9세기초에 건조된 오세베르그호는 이중 가장 크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던 이 배는 만들어진 지 50년 정도 사용된 후 오사 여왕의 관으로 사용되었다. 길이 30m, 최대 폭 6m의 이 배에는 각종 장식품, 부엌용품, 가구류 등의 부장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고크스타호는 32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으로 항해한 전형적인 바이킹 선으로 12두의 말과 6두의 개, 짐승머리로 장식된 침대, 3척의 보트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투네호는 배 밑바닥만이 발견되었는데,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어지고 있다. 배들의 이름은 발견된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
송네 피요르드
[편집]Sognefyord
송네 피요르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피요르드로 총길이 205㎞, 깊이는 약 1300m에 이른다. 빙하시대에 빙하의 압력으로 깎여진 U자형 협곡으로 계곡상단에서 떨어지는 길이 93m인 키오스포스 폭포는 북극의 오로라를 연상시킬 정도로 환상적이다.
한자 박물관
[편집]Hanseatisk Museum
베르겐 시는 항구도시로서, 예부터 어업과 해외무역이 발달, 14세기에는 한자동맹에 가세하여 더욱 발전을 거듭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다. 시장 북쪽 브리겐 거리에 위치하며, 1702년 건립된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마리아 교회
[편집]Mariakirken
브리겐 거리 북서쪽에 위치한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내부에는 바로크풍의 선교단이 있다.
그리그의 집
[편집]Troldhaugen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의 집이다. 트롤하우겐(Troldhaugen)이라고도 불리는데, 트롤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선인과 악인으로 변하는 숲속의 요정으로 트롤 하우겐은 트롤이 살고 있는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그가 사용했던 피아노, 악보,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베르겐 수족관
[편집]Bergen Aquarium
노르네스 반도 서쪽 끝에 있는 노르웨이 최대의 수족관으로, 9개의 큰 수족관과 42개의 작은 수족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표범, 해수어, 펭귄, 바다새를 볼 수 있다.
스타브 교회
[편집]Fantoft Stave Church
베르겐 교외의 판토프트(Fantoft)에 있는 독특한 목조교회이다. 1150년에 처음 송네표르에 세워졌던 것인데, 보존을 위해 1883년 이곳으로 이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7년 6월 6일 재건축했다. 지붕이 5층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