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현대사회의 대중과 사상/현대대중사회/현대의 사회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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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사회사상[편집]

現代-社會思想

사회사상이란 광의에 있어서는 일정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간의 그 사회에 대한 태도 내지 생활방법을 의미하며 이 경우 그것은 사회관(社會觀)과 동의어로 쓰인다. 또한 사회사상의 개념을 협의로 파악할 때에는 일정한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제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사상을 가리킨다. 전자가 비체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면 후자는 체계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광의에 있어서의 사회사상은 어떤 특정의 분야에서만 표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회과학에 침투하고 있으며 나아가 문학·예술·종교·도덕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한 인간의 모든 사상은 많든 적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회적 생활조건에서 형성되고 그것과 관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을 위한 예술' '과학을 위한 과학'을 주장하는 예술지상주의나 학문지상주의도 결국은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의 사회적 태도의 표현이며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의 초사회적(超社會的)일 수는 없는 것이다. 주술(呪術)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광의에 있어서의 파악이 아니라 협의의 사회사상을 파악코자 한다.이미 밝힌 바와 같이 협의의 사회사상은 일정한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사회문제의 존재가 사회사상 존립의 논리적 전제가 됨을 의미한다. 하나의 사회는 그것이 여하한 시대, 여하한 장소일지라도 많든 적든 각종의 사회문제를 내포하기 마련이며 사회문제가 없는 완전한 사회란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각시대의 사회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 사회발전의 과정이며 그 이념적 구성이 사회사상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불가피적으로 요청되었던 원시공동사회가 문명의 발달과 함께 해체과정을 밟으면서부터, 사회는 그 사회적 역할을 달리하는 각종의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게 되었으며, 이러한 역할 배분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복잡다기해지고 심화되어 왔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사상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회문제해결에 관한 사상'이라면, 그것은 위와 같은 다양한 계층으로서 구성된 사회에 있어서는 동일한 사회, 동일한 사회문제해결에 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회적 지위·이해관계 여하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사회의 계층구성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사상 또한 보다 복잡하게 대립·분열되고, 사회 각 계층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심화되면 될 수록 사회사상 또한 그 대립이 심화되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은 사회사상사를 더듬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사상의 발전사는 사회의 존립(存立)이나 그 이상형(理想型)에 관한 하나의 사상이 직선적으로 성숙·발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서로 상이한 여러 입장이나 사상의 대립·성쇠의 역사였음을 보여 준다. 그것은 이미 얻은 이익을 견지하려는 현상유지의 사상과 신흥의 이익을 주장하려는 개혁사상, 이 양자의 이해를 절충·조정하려는 중도적인 사상의 대립·착종(錯綜)의 역사이다. 그리하여 고대에서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소피스트 사상의 대립이 있었고, 중세에서는 교의상(敎義上)의 대립과 농민반란으로서, 근세초기에는 교권(敎權)과 왕권(王權)의 대립으로서, 17-18세기에 들어와서는 군주권(君主權)과 시민권(市民權)의 대립으로서 나타났었으며 18세기 이후에는 경제학 중심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서 나타났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사상을 문제로 하는 경우, 여하한 사회사상도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소란스럽게 엉켜 있는 상황, 그 배후에서 사회사상이 힘을 잃어 사회 심리의 측면이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다.왜 이런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인가? 사회사상이란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 일관된 의식의 체계이다. 인간은 그에 따라서 자기의 위치를 알고, 이 인식에 의해 역으로 세계에 작용을 한다. 사회사상은 원래 이러한 의미에서 추구되어야 하고 아울러 이러한 기능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사회가 발전함과 동시에 일반 사람에게는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분업의 발달에 의하여 마치 생산공정(生産工程) 중의 한 점에 핀으로 고정된 것과 같은 존재로 되어 버린다. 또는 뷰로크라시(bureaucracy, 官僚制)의 한 톱니바퀴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한정된 위치로부터 사회전체를 나아가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곤란하며, 그에 기여하고 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그것을 변혁해 나가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그들은 기존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을 요구 당한다. 거기에서는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갖는다는 것은 도리어 이 적응에 저해되는 것이 되고 만다.이러한 사정은 생활목적의 상실, 혹은 극히 한정된 비근한 범위 내에서만 생활목적을 설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거기에서 또한 많은 사회병리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과 자연발생적인 의식을 '사회심리(社會心理)'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사회사상이 개개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제각기의 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심리와의 결합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매스컴의 발달에 의한 이데올로기들의 대중계도(大衆啓導)가 아니라 그와 반대로 인기를 얻기 위해서 대중의 일상적인 의식에 뛰어 들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그만큼 점점 더 사회 심리의 측면이 사회사상을 고찰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李 鐘 仁>

토대와 상부구조[편집]

土臺-上部構造

마르크스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입장에 서서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경제를 토대로 하여 그 위에 세워지는 가구물(假構物)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모든 의식활동은 경제관계의 필연성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고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인간의 의지와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산력의 발전에 있다고 본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서 일정한 생산관계와 경제구조의 총체가 형성되며 이것이 사회의 토대(또는 하부구조)가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적 활동은 이 토대에 의해서 규정되고 전개되는 것이라고 파악하고 이를 상부구조라고 하였다. 이데올로기가 한 시대를 리드하고 나아가서 모든 인간의 활동에 주도적(主導的)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생산활동, 특히 그에 관련된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규정된다고 하였다.이러한 발상(發想)은 마르크스가 헤겔철학을 비롯하여서 일체의 관념론을 '관념의 유형'이라고 하고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이름 붙여 그것에 비난과 경멸을 던졌던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이라고 하는 데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19세기 풍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20세기의 초두에 들어와서 러시아라고 하는 저개발국의 엘리트가 마르크스주의를 자국의 근대화를 위한 사상적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입장에 본질적인 변질을 가져왔던 것이다. 요컨대 마르크스의 생각과는 달리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에는 포지티브(positive)한 의미가 부여되고 그것이 인간의 현실생활을 적극적인 방향으로 컨트롤하는 역할이 주어졌으며, 이에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가 그러한 의미와 그 기능에 있어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체계화되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에 대하여 경멸의 대상이었던 것이 존중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부정적이었던 것이 긍정적인 것으로 전도(顚倒)되었던 것이다.

문화와 사회사상[편집]

文化-社會思想

사회사상 형성의 배경으로서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은 문화와의 관계이다. 어떤 사회이든 그 고유한 전통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회사상 역시 문화현상의 하나인 만큼 그 사회의 문화적 전통의 영향에서 벗어 날 수 없으며 또한 문화적 전통과 단절된 외래의 사회사상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통문화와의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 해결에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가끔 후진국에 있어서 외래사상(外來思想)의 무비판적인 수용이 빚어내는 결과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일상생활의식[편집]

日常生活意識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생활을 통해서 여러 가지 지혜를 몸에 익혀 나간다. 이와 같은 지혜는 역으로 말하면 이데올로기 형성의 기반이고, 또 이데올로기 선택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같이 체계화되지는 않으나 격언(格言)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목숨 있고 돈 있다'는 말은 전시(戰時)의 대중에게 잠겨있는 의식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이러한 의식의 중요성은 충분히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지 않는 이상 당장의 문제를 처리하는 지혜는 될 수 있으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일상생활의식이 비대해지고 이데올로기의 힘이 약화돼 가는 데 현대의 문제가 있다.

가치관[편집]

價値觀

사회사상과 일상생활의 의식의 결합 속에서 개개인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가치관 내지는 가치의식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의

측면을 내포하는 것이다. 즉 첫째는 그것은 어떠한 행위가 옳고 어떠한 행위가 틀린 것이냐 하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다. 둘째는 어떠한 상태가 행복하고, 어떠한 상태가 불행한가를 판단하는 가치관이다. 양자는 서로 함께 생활이나 행동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일상생활의식에 눌리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어 여기에서도 현대의 커다란 혼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악(善惡)의 판단은 현대에서는 입장을 달리하는데 따라서 아주 역전(逆轉)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좋고 나쁜 것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는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다만 '나'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만 생활의 기준을 찾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의 결합관계를 잃은 가운데서 구하는 이 기준은 불안정한 것이고, 그만큼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성격[편집]

社會的性格

한 사람의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면 될수록 그것은 그와 불가분의 것이 된다. 특히 유아기로부터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당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즉 인간은 어떤 이데올로기를 몸에 간직하는 것으로 인하여 자기의 생활을 규율하고 그 속에서 욕구까지도 개조(改造)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성격이 된다. 그러므로 개인이 어떠한 의식을 갖고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한편에서는 그의 자질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사회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즉 어떤 시대에 어떤 나라의 어떤 계층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그가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택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의, 어느 계층의 사람들은 다소의 편차는 있더라도 공통의 성격을 몸에 지닐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 성격'이다. 그것은 예컨대 뷰로크라시(官僚制)가 완성된 현대에 있어서 화이트 칼라에 바람직한 성격은 자기 주장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고서라도 결정에 따라가는 것이라는 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현대의 이데올로기를 고찰함에 있어서 각 계층이 나타내는 사회의 성격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물신숭배[편집]

物神崇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자립적(自立的)인 힘을 갖고 그 영향력에 의해서 거꾸로 인간이 그것에 지배당하게 될적에 거기에 물신숭배라는 현상이 생겨난다. 즉 상품경제가 확립되는 것과 더불어 사회에서 주체적인 것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 되는 경향이 있게 된다. 상품 교환은 인간의 자의적(恣意的)인 감정이나 의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 자체가 갖는 법칙, 결국 가치법칙에 따라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다만 상품의 대표자라는 위치를 갖는 데 지나지 않는다.이와 같이 상품이 주체적으로 되었을 때 인간은 자기가 공상으로 만들어낸 신을 숭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낳은 상품을 숭배하게 된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폐를 숭배하는 경향이다.물신숭배는 현대사회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화폐에 대한 숭배가 그렇다. 그 밖에도 예컨대 매스컴의 발달과 더불어 활자와 영상(映像)에 대한 숭배의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주체성의 상실[편집]

主體性-喪失

주체성이란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무엇인가의 대상에 작용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현대에서는 작용에서 일할 대상은 거의 모두가 자립적인 것으로 되어서 거대한 힘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인간은 역으로 대상에 종속하고 대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기자신을 바꾸는 것만이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자본·상품·뷰로크라시·국가·교조적 이데올로기 등이 주체적으로 되면 될수록 인간은 주체성을 잃는 것이 된다. 인간이 주체적일 수 있는 것은 아주 제한된 범위, 결국 사생활의 내부에 있어서뿐이다.

자아의 상실[편집]

自我-喪失

자아는 본래 자기인식을 기초로 형성되는 것이다. 자기인식은 자기외화(自己外化)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자기의 의지와 의식에 기초해서 자기외화의 활동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자기인식도 또한 곤란하게 되었다. 이 상황과 외화된 자기가 존재하느냐 안하느냐는 것은 실은 표리의 관계에 있다. 자기인식이 곤란하기 때문에 자기형성·자기변혁이 곤란하며, 자기형성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관된 요구를 가질 수도 없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부터 자아의 상실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인 풍조이며 또 이데올로기의 실권(失權)을 가져오는 원인이기도 하다.

불안[편집]

不安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 언제나 사회의 파동이 그치지 않는 상태,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현대인에게 불안을 안겨 주는 것이다.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구조를 자아 '자아(ego)'와 성본능(性本能)의 욕구를 대변하는 '에스(es)와 그리고 문화의 욕구를 대변하는 '초자아(超自我, super ego)'의

세 부분으로 나눈 뒤 자아는 에스, 초자아, 및 외계(外界)의 세 가지 방향에서 오는 욕구와를

화해시키려고 해서 불안에 빠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본능은 억누르기 힘든 것이며, 그것이 사회규범이나 또는 보다 현실적인 이해(利害)가 대립할 때에 이 대립을 조정하려고 하여 자아가 불안에 빠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불안의 개념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정립한 점에서 프로히트의 이 주장은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성본능을 절대화하기 쉽다는 점에는 문제가 있으나 그것을 성(性)이 아닌 생(生)의 욕구로 바꿔 놓는다면 그의 주장에 현대적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즉 인간은 예컨대 아무리 소외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내부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욕구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적응만을 요구하는 독점단계의 사회는 이러한 욕구를 억압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의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 자기의 인간적인 욕구를 억압하지 않으면 안되고, 반대로 자기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면 사회로부터 규탄받는다는 모순, 이것이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확고한 자아를 갖고 어느 종교나 사상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이 불안은 상관이 없거나 쉽게 해결된다. 거기에서는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욕구도, 문화도, 현실도 모두가 일원적(一元的)인 기준에 의해서 배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위치를 설정하지 못하는 상태야말로 불안의 원인인 것이다.

도피[편집]

逃避

불안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도피라고 하는 길을 택한다. '도피'란 자기 자신임을 전면적으로 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에 의해서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도피의 방향은 크게는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자기자신을 보다 큰 집단에 맡겨 버리는 길이 있다. 그것은 국가라도 좋고, 가정이라도 좋고, 기업이라고 해도 좋으며 조직이라도 좋다. 어떻든 무엇인가의 집단과 일체화하는 것으로 해서 자기를 전면적으로 보다 큰 집단에 맡겨 버리고 말아서 그에 따라 자기의 책임을 방기(放棄)하는 것이다. 둘째는 일상적으로 자기의 마음을 끄는 것에 의해서 자아라든가 이데올로기와 같은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를 잊어버리는 길이 있다. 찰나적 향락이 이러한 도피의 일반적 형태이다. 셋째는 어느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주체성을 찾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을 찾아내는 길이다.

이 한정된 범위 안에서는 그는 자기자신을 버리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을 한걸음 넘어섰을 때는 그는 자기를 상실하고 파동(波動)에 몸을 맡기고 만다. 소위 마이홈(my home) 주의 등이 이 예인 것이다. 물론 도피의 이러한 방향은 현실생활에서는 서로 중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마이홈 주의자는 어느 의미에서는 찰나적 향락을 가정에 찾고 있는 것이며 또한 밖에서는 용이하게 기업과 일체화하고 있는 것과 같다.

자유로부터의 도주[편집]

自由-逃走

중세 봉건사회의 인간을 연결하여 묶어 놓고 있던 여러 가지 속박과 제약에서 풀려 자유롭게 되었을 때 근대인은 의지할 곳을 잃고 불안에 빠졌던 것이라고 프롬은

생각한다. 이것을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주'라고 하는 말로서 묘사하고 있다(도피의 제1의 형태). 이 불안은 정확하게는 근대에 와서 획득한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해소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그렇지 않다――또한 그렇게 될 사회적 조건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사람들에게는 이 자유는 오히려 고통일 따름이다. 거기에서 중세의 공동체가 갖고 있던 것과 같은 강한 속박을 찾아서 자유로부터 도주하는 인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프롬에 의하면 독일의 중산계급이 파시즘을 지지하는 방향을 택한 심리적 과정은 이와 같이 '자유로부터의 도주'를 기초로 한 데에 있었다.

종교심[편집]

宗敎心

자기자신을 버리는 길은 예로부터 종교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거기에서는 공상에 의한 산물이 절대화되고 인간은 이 절대자에게 자기를 양도(讓渡)하는 것에 의하여 정신상의 안정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기독교에서는 개인이 직접 절대자(신)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그러한 형태의 종교심이 아주 약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종교는 절대자와의 관련보다는 교단(敎團)의 집단활동에서 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여러 가지 신흥종교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가고 있는 것도 소외되고, 고독한 불안에 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신앙으로 결합된 집단활동이 매우 큰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군중[편집]

孤獨-群衆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사회적 성격을 전통지향형·내부지향형·타인지향형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전통지향형'은 중세의 인간유형(人間類型)이며, 어릴 때부터 전통과 관습을 주입받아서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느끼지 않는 인간이다.

'내부지향형'의 인간은 어릴 때의 교육을 통해서 일정한 가치관 내지는 이데올로기를 몸에 지니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이다. 이 인간상은 근대시민사회의 인간상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타인지향형'이란 그러한 일정의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을 지표(指標)로 해서, 즉 세상의 파동에 자기를 맞추어서 살아가는 인간이다.이와 같이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세상 일반에 자기를 맡겨 버리는 것으로도 도피는 가능하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기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생각해서 매스컴에 의해서 흘러나오는 생활을 모방하고 , 세상의 평판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도 도피의 한 가지 형태이다. 리스먼은 현대의 미국사회에 타인지향형의 인간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나 이 성격은 단순히 미국뿐만의 것이 아니라 자아의 확립이 곤란하게 된 시대, 적응만이 요구되는 시대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성격이 급격하게 증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타인지향형과 유행[편집]

他人志向型-流行

타인지향형의 인간은 유행에 민감한 인간이다. 그들은 자아를 버리고 타인과는 일체화하려고 한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스타들, 거리를 거니는 젊은 여자들 등등을 모방하려고 한다. 유행에 뒤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이 이러한 심리에 사로잡힌 인간의 생활이며, 안심감(安心感)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대량생산·대량소비에서 이익을 찾는 기업의 선전이 판을 치고 있는 이때 유행의 심리는 현대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유행의 심리는 현대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유행은 단순히 복장이나 생활양식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는 이데올로기까지도 유행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은 시류(時流)에 편승한 학자나 학생에게는 '연구부족', '공부부족'인 것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유행에 따라서 받아들이고 입에 오르내리는 이데올로기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찰나적 향락[편집]

刹那的享樂 '타인지향'은 도피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집단에의 일체화에 의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안정을 갖지는 못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평판에 신경을 쓰고, 자기의 행동이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불안에 싸이게 되는 것이다. 이 불안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그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에 의해 '망아(忘我)'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타인지향'의 인간에게 있어서는 무엇인가 목적을 위해 장기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 그 활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한정된 그 시시(時時)에 '망아'에 빠질 수 있는 무엇인가를 구하게 마련이다. 계속성이 없는 만큼 그것은 강렬한 자극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관능(官能)이나 사행심(射倖心)을 자극하는 오락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현대의 레저산업의 부분은 이와 같은 찰나적 향락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 그것은 문화의 퇴폐적인 표현이며 이러한 찰나적 표현 속에서 생활해나가는 퇴폐한 인간을 재생산(再生産)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홈 주의[편집]

my-home 主義

도피는 사회에 대한 주체성을 방기(放棄)하고, 자기가 간신히 주체적일 수 있는 영역에서 도망치는 형태로도 성립된다. 결국 작은 상황에 매몰하고 큰 상황에는 무관심하게 되는 방법이다. 그 전형을 소위 마이홈 주의에서 볼 수가 있다.여기에서는 가정만이 목적이 되어 일가의 단란함과 자식의 성장이 유일한 생활목적이라는 상태가 되었다. 노동이나 다른 무엇이나 모든 사회적인 활동은 가정을 유지한다는 점에 있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정치적 무관심의 대부분은 이러한 마이홈 주의가 그 배후에 깔려 있는 것이다.그러나 작은 상황에의 몰두에 의해 얻어지는 행복이 얼마나 애매한 것인가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의 단란한 가정이라는 것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만 하면 명백해진다. 생활설계 그 자체가 '지금의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게 된다면……‥'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전제에 대해서 그들은 무력하며 다만 '큰 잘못 없이 근무한다'는 형태로서의 적응을 요구받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마이홈 주의의 절정(絶頂)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는 소위 치맛바람(교육과열 學姉母)일 것이다. 다같이 작은 상황에 몰두한다고 하더라도 남자는 직장에서 일을 갖고 있는 관계로 다소라도 사회와의 연관관계를 갖고 있으나 중산계급의 부인들은 종일 집안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의 주체성을 오직 가정이라는 한정된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하게 된다. 그 경우 그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는 어린 아이들이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서 마치 인형을 만들듯이 자식을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 내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때에 기준이 되는 것은 현존의 사회체제이고 자기 남편의 학력에 의한 히에라르키(hierarchy)밖에는 없다. 이것이 치맛바람을 낳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세상이 무엇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거기서밖에 생의 보람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부인들은 이 심리에서 해방되고 있다. 그것이 경제적 빈곤에 의해 강제된 맞벌이일지라도 그렇다.

이데올로기의 종언[편집]

ideology- 終焉

현대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이데올로기는 점차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자연발생적인 일상생활의식만이 비대화(肥大化)하고, 그것이 체계화되지 않은 채 사람들은 그때그때의 한정된 상황 속에서 임기응변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경향을 강하게 갖고 있다. 본래 장기적인 전망이나 그에 입각한 인생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까지도 이러한 일상성(日常性)에 굴복하고, 민중은 단기적이며 당장의 요구에 맞추어 자기를 형성해 나가려고 한다.이러한 상황에 대응해서 현대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는 이미 그 힘을 잃고만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 불리는 이 주장은 현대생활의, 특히 정치의 지침으로서, 오로지 과학 ―― 그것도 컴퓨터에 맡기는 과학 ―― 만이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대중이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없게 된 상태, 그리고 정치 역시 이상을 잃고 다만 최대의 이윤추구와 그 지배의 유지에 봉사하는 일종의 기술이 되고 만 상태에 대응하는 것이다.확실히 종교는 형식화(形式化)했고, 자유주의는 그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지 못한 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이데올로기는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적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어 그것이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이후 사회주의 진영 및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반체제운동(反體制運動)의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있는가 하면 자유진영의 반공노선도 완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문제는 이데올기가 종언되었느냐에 있으며, 여하히 이데올로기 본래의 힘을 복원시키느냐 하는 점에 있다고 하겠다.

자유주의[편집]

自由主義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이념은 정치적으로는 17-18세기의 근대자연법사상, 특히 존 로크의 사상에 의해 확립되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주인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어떠한 짓을 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는 그보다 늦게 아담 스미스에 의해 주창된 자유방임주의에 근거해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확립되었다. 자기자신의 이익에 관해서는 각자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각인에게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게 하였을 때 국부(國富)도 최대로 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와 같이 성립기의 자유주의는 국가에 의한 개인에의 간섭배제를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야경국가론(夜警國家論:자유방임적 국가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야간에만 도움이 되는 불침번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하는 독일의 라살이 한 말)에서 연유한 주장이었다. 그것은 각 개인의 동질성을 전제로 하는 원자론적 사회관(原子論的社會觀)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간섭의 배제라는 요구에 명백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자유주의는 그 성립기에는 싸울 상대를 갖고 있었다. 중세 봉건사회의 여러 제도, 그것을 지지하는 절대왕제(絶對王制),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 등이 이것이었다. 이 시대의 자유주의는 단순한 이념만이 아니고 구체적인 운동방침이었던 것이다. 자본가의 지배권이 확립됨에 따라서 자유주의는 싸울 대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진보적인 역할은 끝을 맺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패배가 아니라 승리에 의한 의미상실인 이상 현실사회는 로크나 스미스가 이상으로 했던 '자유로운 개인'으로부터 성립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변질을 끊임없이 계속하면서도 오늘날에 있어서의 자유주의는 역시 현대사상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개인주의[편집]

個人主義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각 개인을 불가침의 인격으로서 존중하려는 주장이 생긴다. 내면으로 향했을 때에는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인격으로 완성시키려는 노력, 독립정신 등의 형태를 나타내게 된다.

이기주의[편집]

利己主義

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로 형태화(形態化)되어 가는 것과 대응해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전환해 간다. 개인주의는 자기 중심적인 생활방식을 긍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자기중심성은 타인의 인격도 동등하게 존중한다는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해서 인정되었던 것이다. 이 상호 이해가 무시되고 자기만 좋으면 남이야 어찌되어도 상관 없다는 형태로 자기 중심성이 철저하게 되었을 때 이기주의가 생기는 것이다. 이기주의는 거의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는 자기보존본능(自己保存本能)의 생생한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주의(主義)'라는 말이 붙어 있기는 하더라도 그것은 체계화된 이데올로기는 아닌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모든 인간이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 사회심리는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많거나 적거나 존재하고 있다.

니힐리즘(허무주의)[편집]

nihilism(虛無主義)

이기주의적인 철저한 인간에게는 세계의 모든 것은 '나'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어야 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나'는 유한(有限)한 존재이다. '나'의 죽음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은 의미를 잃고 말게 된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현실의 세계도 또한 객관적으로 보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 마음을 쓰게 될 때 인간은 절망한다. 이 절망은 인간이 이기주의적이라는 것에서 생기게 되는 절망이다. 여기에 니힐니즘이 성립한다.니힐니즘은 현존하는 모든 것에 대한 부정(否定)의 사상이다. 기존하는 가치관을 부정하는데 머물지 않고 가치관 그 자체의 부정인 것이다. 나아가서는 위치를 찾을 수 없게 된 '나'자신의 부정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체계화된 이데올로기로서의 니힐니즘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니힐니스틱(허무적인)한 사회심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많아지고 있다. 이기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제하면서 그 이기적인 생활을 파괴해 나가고 있는 사회가 그런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심리는 현실을 파괴하려는 충동이 되고 파시즘을 낳는 기반이 되기도 한 것이다.

무정부주의(아나키즘)[편집]

無政府主義(anarchism) 국가의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바쿠닌, 크로포트킨의 사상에서 유래되는 것으로 폭력에 의하여 국가의 존재를 없앨 것을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국가를 악(惡)으로 보는 폭력을 부정하였다. 이 사상은 19세기에 일어난 자유주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지극히 공상적이고 실천면에 있어서의 계획성이라든가 역사적 안식(眼識)이 결여되어 있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구별된다. 공산주의라는 것은 사회주의 단계를 거친 다음에는 자연적으로 소멸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이나, 무정부주의는 현재의 시점에서 국가권력을 부정하고 폭탄, 살인 따위의 테러리즘을 사용하는 것을 긍정한다. 주로 인텔리겐차의 공상과 결합되기 쉽고 세속적인 권력을 부정하며 정치를 경시하는 점에서 예술가에게 친근감을 주는 경향이 있다.

실존주의[편집]

實存主義

19세기 중엽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하여 주창된 이 사상은 후에는 야스퍼스, 가브리엘 마르셀 등으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하이데거, 사르트르, 멜를로 폰티, 보부아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사고양태(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그들에게 모두 공통되고 있는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제일 첫째이고 그와 같은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자아(自我)'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실존주의다. 즉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역전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 그러나 인간이 거대한 사회체제 속의 하나의 보잘것 없는 톱니바퀴로 전락한 현대에 있어서는 이러한 확인작업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이로부터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不條理)'라고 하는 반(反)사회적 행위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아보려는 경향도 나타나게 된다.일반적으로 말해서 실존주의의 이와 같은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내가 존재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동의반복(同義反復)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를 고립시키고 나아가서는 절대화시키는 사회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자아'에 대한 의미 부여를 추구하는 이 사상은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끌게 될 것이다.

공리주의[편집]

功利主義

19세기 이래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사회사상이다. 공리주의의 체계화는 18세기 말 영국의 벤담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공리(功利)의 크고 작음을 입법(立法) 및 도덕의 유일한 기준으로 생각했다. 즉 쾌락은 선(善)이고 고통은 악(惡)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쾌락을 증대하고 고통을 감소시키는 행위는 옳고, 그 반대의 행위는 옳지 않다. 벤담은 각자가 자기 공리의 최대를 구할 때 그 총계로서 사회 전체의 공리도 최대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산업혁명 후 자본주의의 모순에 직면해서 밀(J. S. Mill)은 벤담의 이론의 후반 부분을 '최대다수(最大多數)의 최대행복(最大幸福)'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결국 각 개인은 자기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사회 전체의 공리의 최대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공리의 원리에 있어서도 도덕의 기준은 변함이 없었다.공리주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윤리화(倫理化)한 것이다. 그것은 가지각색의 대상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을 동일한 기준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하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다. 예컨대 시(詩)와 빵은 본래적으로 이질적인 기쁨을 준다. 어느 쪽이 공리가 큰가는 잴 수 없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그것을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모든 인간이 같은 기준에 따라서 그것을 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경제를 그대로 윤리화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나 빵도 일정한 가격으로 팔린다. 사람들은 그 가격에 의해서 그것이 인간에 대하여 갖는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아서 공리주의란 실은 가격을 쾌락과 고통이라고 하는 인간적인 기준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그러나 쾌락과 고통이 문제로 되는 한에 있어서는 공리를 감득(感得)하는 주체는 더욱 명확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인 '나'가 공리의 대소에 대한 판정자이며 이 판정에 따라서 '나'는 세계에 일정한 형태로 질서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편집]

pragmatism

프래그머티즘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퍼스와 제임스에 의하여서 주창되었다. 그것은 공리주의를 20세기에 적합한 이데올로기로 개변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쾌락과 고통이라는 기준이 '도움이 된다'라는 기준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도움이 되는 것은 진리이다'라는 인식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공리주의에서의 쾌락과 고통이라는 기준이 주로 물질에 적용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도움이 된다'라는 기준은 물질 이외의 여러 가지 대상, 예를 들면 이데올로기나 사회조직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 경우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판단하는 주체는 기본적으로는 각 개인이다. 그러나 '실용주의(實用主義)'라고 번역되고 있는 점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프래그머티즘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라는 의미는 일상생활적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현존의 사회질서에 적합한 지식만이 '도움이 되며'그것을 근본적으로 캐내려고 하는 따위의 지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리하여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진리'로서 몸에 익혀 나가는 가운데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현존의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프래그머티즘의 본질적인 당착(撞着)이 생기게 된다. 즉 프래그머티즘은 현실적으로는 인간을 현존하는 사회에 '도움이 되게'하려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거기에서는 '도움이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이며, 인간은 그 판단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개개인이 가치관을 상실하고 '타인지향'적으로 살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당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에 있어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2차 대전 후 듀이 등의 프래그머티즘 교육론의 영향으로 프래그매틱(실용적)한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에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은 또한 현대사회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일상생활의식에도 적합한 것이다. 굳이 체계화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사회심리 가운데 깔려 있는 프래그머티즘의 기반은 매우 넓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맨티시즘[편집]

romanticism

19세기 중엽에 성립된 로맨티시즘은 그 이상을 중세 봉건사회에서 찾고 있다. 그 주요한 동기는 사회의 분열과 이기주의의 만연을 부정하고, 중세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원망(願望)이다. 때로는 중세에서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완성이 가능했었다고 해서 그것을 재흥(再興)하려고 한다. 후자는 개인을 절대화하는 것에 의해 현실적으로는 니힐리즘으로 발전해 간다. 이에 대해 전자로부터는 사회를 개인보다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그것은 사회유기체론(社會有機體論)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상은 사회를 절대화하려는 내셔널리즘으로 그 맥락(脈絡)이 이어지게 된다.

파시즘[편집]

fascism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정치 운동과 그의 이론을 말하며 이것이 후에는 같은 종류의 다른 국가주의 운동을 총칭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탈리아어의 파시오(fascio)는 단결을 의미하는 나무의 다발을 뜻하며 이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무솔리니는 1922년 파시스트 당에 의한 정부를 수립하고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부정하여 일당 독재체제를 폈다. 이 시기에 독일에 있어서도 히틀러가 나치즘을 주장하여 정치적으로 일당독재의 국가주의가 대두되었다. 나치즘(Nazism)이란 국민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약칭인데 나치스라고 불리는 것은 독일어의 National Socialism 가운데서 4개의 문자로 축소한 것이다. 이리하여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등이 일괄적으로 파시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그러나 파시즘에 관한 한 문제의 핵심은 나치즘 가운데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독일이 유럽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달하였으며 학문과 예술의 위대한 전통을 가진 독일 국민이 파시즘을 선택하고 그것에 의해서 수십년 동안 세계가 온통 휘말려 들어갔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파시즘을 말할 때에는 독일의 나치즘에 그 핵심이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에 있어서의 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독일의 파시즘에 의해서 후에 그 의미가 부여된 부록에 불과한 것이다.첫째로 나치즘의 출현은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가 무력하였음을 웅변으로 증언해 주는 것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공황은 자유주의 파산과 자본주의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여기에 마르크스가 예언하였던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에 나치즘이 대두하였던 것이다.둘째로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조건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독일에 강요하였던 베르사유 조약과 그에 따른 엄청난 전쟁 배상금이었다. 이것은 바로 독일 국민의 절멸(絶滅)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었다.나치즘은 전후의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 심각하던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제공황의 중압과 이것이 빚어낸 심각한 니힐니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며 여기에 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l interest)를 바탕으로 한 독일의 내셔널리즘이 결합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셔널리즘[편집]

nationalism

이것은 네이션(nation)-국가 또는 민족-을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즉 민족 내지는 국가를 하나의 공동체로 삼고 이 공동체의 이익을 각 개인의 이익보다도 중하게 여기는 것, 대외적으로는 자기가 속하는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은 강대국처럼 배타적 국수주의나 제국주의로 전개되기도 하고, 약소 민족의 경우처럼 독립운동·자주노선 등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애국심[편집]

愛國心

국가(國家)라는 개념과는 별도로 '나라'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 내지는 민족은 내부의 계급대립이 극복되었을 때 진정한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집단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집단에 대한 사랑(愛)은 어느 의미에서는 인간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프랑스어에는 이러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파트리오티즘(patriotisme·愛國心·祖國心)'이라는 말이 있다.오늘날 애국심에 관해서 많은 논의가 있으나 대개의 경우 정부가 국민에게 요구하고 있는 애국심은 파트리오티즘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다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에게 자연 발생적으로 우러나오는 파트리오티즘을 내셔널리즘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편집]

Marx主義

마르크스주의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체계화된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제까지의 역사발전의 기초를 생산활동(生産活動)에서 찾았다. 그것은 어떠한 사회에도 불가결한, 따라서 공통된 활동이고, 또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지표(指標)를 추출해냄으로써 그 역사를 개개인의 주관적인 원망(願望)과 우연이 만든 연속으로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의지나 의식과는 관계가 없는 자연사적 과정(自然史的過程)으로서 파악하였다. 즉 그는 생산활동을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두 개의 요소가 조합되는 데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전자는 내용이고 후자는 형식이다. 생산력이 발전함과 동시에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모순이 생기고, 낡은 생산관계가 파괴되고 새로운 생산관계가 생겨난다. 이 변화를 이룩하는 현실적인 힘을 계급투쟁이라고 보고 있다.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私的性格)의 모순에서 찾고 있다. 이 모순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의 승리에 의해서 즉 소유의 사적 성격의 부정에 의해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 사회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이 부정을 실현할 역사적 사명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조개혁론[편집]

構造改革論

온건한 사회주의 노선의 하나. 그것은 경제적인 개량(改良)을 쌓아 올리는 것에서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사회주의에의 이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구조개혁론은 생산의 사회화가 대규모로 진전하여 이미 대기업(大企業)이 하나의 자본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없게 된 현상에 대응한 이데올로기이다.이에 대해서 구조개혁론은 본질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고,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수정주의라고 배격한다. 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현대에 있어서 국가의 의미와 역할에 따라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경제주의·조합주의[편집]

經濟主義·組合主義

정치상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응해서 노동조합 운동에 있어서도 경제주의·조합주의가 등장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관계를 긍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전적으로 노동자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데에 노동조합 운동의 의의를 찾는 이데올로기이다.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은 긍정되지만 정치투쟁은 부정된다. 이 사상은 기업이익이 높아지면 노동자의 임금도 좋아진다는 '노사협조주의(勞使協調主義)'와도 관련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편집]

社會民主主義·民主社會主義소위 노동자의 해방을 표방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수단으로써 혁명을 부정하고 의회를 통해서의 사회주의에의 이행(移行), 조합주의. 경제주의 등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1848년 프랑스에서 처음 쓰인 말로서 초기의 공산주의자는 이와 같은 이름 아래 행동하였으며 러시아 공산주의자도 당초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명칭상으로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가 공산주의와 명확하게 구별된 것은 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부정한 수정(修正)이론이 나오면서부터이며, 이로부터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주의로 통용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이론은 독일의 베른슈타인으로서, 그는 영국의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의 사상에 영향을 입어 의회정치를 긍정하고, 사회민주주의란 사회주의를 통치방식으로 한 민주주의, 즉 의회정치를 통해서의 그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운동 그 자체가 모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로써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상사회를 부인하였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로부터 사회민주주의는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나 오늘날에도 공산당 이외의 사회주의 정당은 적건 많건 간에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을 따르는 정당들인 것이다.위의 사회민주주의를 좌파(左派)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전혀 별개의 사상적 연원(淵源)을 갖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ety)가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와는 별개의 계통으로서 특히 영국의 페이비언주의자들에 의하여 형성된 사회주의 우파(右派)를 가리킨다. 1884년에 버나드 쇼, 시드니 웨브 등 영국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하여 설립된 페이비언 협회는 온건한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혁명론을 반대하며, 국가에 의한 점진적인 사회개혁을 통해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윤리적인 사회 개량주의로서,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복지국가의 실현을 추구하고 의회정치를 존중한다. 영국의 노동당, 서독의 사회민주당, 일본의 민주사회당이 이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서독의 사회민주당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론과 결별(訣別)하면서부터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유형에 속하는 주의 내지 정당은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형태로 귀결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절연(絶緣)되었다.

보수주의[편집]

保守主義

급진주의나 혁명적인 주장과 대립하는 주장 및 운동으로서 현상(現狀)의 유지를 고수하려고 한다. 보수적(conservation)이라고 하는 말은 프랑스의 외교가이며 평론가였던 샤토브리앙이 보급한 말이다. 보수주의에는 역사적 보수주의와 심리적 보수주의가 있다. 역사적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여 구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던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의 점진주의, 프랑스의 메이스트르의 사상, 독일의 도이치 로만티크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한 봉건시대의 복고(復古)운동 등, 급격한 변혁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나타났다. 오늘날 역사적 보수주의는 자본주의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으로서 그 목적은 구지배층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데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떠한 시대, 어떤 사회에 있어서도 노인은 청년보다 보수적이라는 의미로서의 심리적 보수주의가 있다. 급격한 개혁을 바라지 않는 심리는 어느 시대에도 있는 것으로서 정치적인 것이 문제가 될 적에는 각국의 보수당의 보수주의는 전자를 말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사회를 수호한다고 하는 역사적인 내용으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는 이와 같은 보수당이 존재할 수가 없으나 사회주의 국가에 있어서도 심리적인 보수주의와 이에 대한 진보주의는 그 존재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그러나 엄밀히 따져볼 때에 보수적인 생활방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보수주의라고 하는 특정한 이론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보수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그것은 기존의 체제 또는 이념을 개변(改變)하려고 하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존질서를 수구(守舊)하려는 자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파가 진보주의를 내세우듯이 보수파가 어떤 도그머를 신봉하고 집단을 형성해가지고 어떤 이데올로기로써 현실을 재단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러한 프로그램은 언제나 혁신파가 맡아서 하는 일이며 보수파는 이러한 혁신파에 의하여 규정받을 때 비로소 보수파임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보수주의는 수동적이며 자발적인 진보와 개혁에의 적극적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받기가 쉽다. 그러나 보수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해서 시대의 진보나 개혁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혁신파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모름지기 '보수와 혁신', '반동과 진보'라고 하는 대립 개념 자체가 혁신파들이 과거를 재판하기 위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낸 표어인 것이다. 이 따위 대립 도식(圖式) 같은 것으로 현실세계를 규정하려고 덤비는 자체가 무모한 일이며, 규정지어질 수 없는 것을 단순하게 규정하려고 드는 추상적 사고방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낙관적 합리주의 속에 깃들여 있는 허구(虛構)를 싫어하는 것이며, 오로지 진보만을 생애 최고의 가치, 사회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관념적 미래 숭배에 동조하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뉴 레프트[편집]

新左翼 new left

후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관리된 풍요한 사회'에 알맞는 인간혁명과 사회혁명의 동시 달성을 통해 인간주의적 사회주의의 건설을 지향하는 운동세력. 이 운동단체가 처음 태어난 것은 1950년대 후반의 프랑스와 영국에서였다. 프랑스의 경우는 부르데(C. Bourdet)가 체제내화(體制內化)한 노동자계급의 현실을 그대로 긍정하여 전투성을 상실해온 사회당과 권위주의화한 모스크바 노선에 종속되어 교조주의적 경직성을 나타내고 있는 공산당의 그 모두를 배제하여 반식민주의, 반스탈린주의, 독립된 유럽이라고 하는 3대 목표로서 맺어진 온건한 공동전선의 결성을 제창하여 이를 신좌익(nonvelle gauche)이라고 부른 것이 최초이다. 종래의 '조직인'형인 올드레프트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효율 제1의 변혁방식을 배척, 변혁방식 그 자체가 인간의 주체성·자립성의 확립과 결부되는 운동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