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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면극의 무대·의상·소도구〔개설〕[편집]

韓國假面劇-舞臺·衣裳·小道具〔槪說〕

우리나라 탈놀음에 있어서 탈판(극장형식 또는 무대형식)을 말할 때 '마당굿'이란 용어를 쓴다.

마당굿의 '마당'은 놀음판의 조건이 어떤 무대양식(舞臺樣式)으로 규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엄격히 객석과 무대를 분간하지 않는 평평한(연속된 또는 동등한) 마당을 뜻하는 것이고 '굿'은 극(劇) 또는 그것을 위한 모임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탈복(服)으로 통하는 탈놀음의 의상은 정형화된 탈놀음 의상으로서 양주별산대놀이·봉산탈춤·강령탈춤·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동래야유(들놀음)·수영야유(들놀음) 등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유랑 예인집단인 남사당패의 탈놀이인 덧보기에서는 특별한 탈복이 없고 서민들의 평상복인 등거리·잠뱅이가 그대로 쓰여지고 있다.

소도구로는 양반역의 지팡이·담뱃대·부채 등을 거의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말뚝이의 채찍 막대, 무당의 방울과 부채, 그리고 중(僧)의 목탁·염주·지팡이 등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 밖에 가마(乘轎)와 그 밖의 탈 것, 인형 등이 있다.

한국 가면극의 무대(탈판)[편집]

韓國假面劇-舞臺

탈놀음의 탈판(舞臺) 형식이 서구의 원형무대 형식과 유사하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의견을 같이하는 것이나 어느 면에서는 '리빙 시어터'나 '스트리트 시어터'의 성격도 같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탈놀음은 주로 마을의 언덕이나 큰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놀이판을 이루는데 봉산탈춤의 경우 봉산에서 사리원(沙里院)으로 탈판이 옮겨진 후에 경암루(景岩樓) 앞에서 다락방이란 특별 관람석을 세우고 놀게 된 때부터 상업적인 의미에서의 극장형식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본래 우리나라 탈놀음의 탈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탈놀음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탈꾼과 잽이(樂士)들이 앞장을 서고 고을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벌이는 앞놀이(길놀이)의 놀이판이 있고 이 앞놀이가 끝난 다음에 지정된 탈판(舞臺)에서 갖는 탈놀음, 즉 '판놀음'의 놀이판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도 통영(統營)·고성(固城)·진주(晋州)·부산진(釜山鎭)·수영(水營)·동래 등 경남 일대에서 세습적으로 놀아온 탈판에는 변모된 상태이긴 하나 그러한 형태가 남아 있다.

우리의 탈판에는 서구의 근대극 형식에서 보이는 양면(上手 下手)의 '프로시니엄 아치'를 극복한 4면·8면·전면의 무대형식이 있어 노는 자(戱者)와 보는 자(觀衆)가 한 호흡을 이루는 우리나름의 동양적 무대형식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보는 자가 편안히 앉아 즐기는 서구식 무대형식이 아닌 우리 민속극의 무대형식은 서구극 개념의 원형무대·스트리트 시어터·리빙 시어터 등을 모두 지닌 민중놀이의 놀이판이라는 데에 특징이 있다 하겠다.

한국 가면극의 의상(탈복)[편집]

韓國假面劇-衣裳

의상이나 머리를 볼 때 오늘날 전하는 복식(服飾)은 조선왕조 말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탈놀이 중에서 대표적인 '양주별산대놀이'를 예로 들기로 한다.

양주별산대놀이의 의상[편집]

楊州別山臺-衣裳

(1) 상좌(上佐)-쾌자(快子) 위에다 흰 도포를 입고 붉은 띠에 흰 고깔을 쓰고 흰 행전을 친다.

(2) 옴(여드름)-등에다 용을 그린 장삼을 입고 회색 행전에 옴(노)벙거지를 쓰고, 새끼줄로 된 띠를 띤다. 손에 작은 막대기 두 개를 들고 제금(提琴)을 꽁무니에 찼다. 새끼띠는 옴방망이로도 쓰인다.

(3) 목중(墨僧)-용 장삼(長衫)을 입고 붉은 띠에 회색 행전을 친다.

(4) 연(蓮)잎-등에다 학(鶴)을 그린 청창의에 붉은 띠, 푸른 행전에 화선을 들었다.

(5) 눈끔적이-등에다 호랑이를 그린 장삼을 입고 붉은 띠에 회색 행전을 친다.

(6) 완보(完甫)-등에다 용을 그린 장삼에 붉은 띠, 회색관을 쓰고 꽹과리를 들었다.

(7) 신주부(新主簿)-흰(옥색) 두루마기에다 관(冠)을 썼다.

(8) 왜장녀-옥색치마 저고리, 흰 단속곳, 용장삼에다 붉은 띠, 홍색 큰머리, 봇짐을 지고 있다.

(9) 노장(老長)-등에다 호랑이를 그린 회색 장삼을 입고 붉은 띠에 회색 행전, 송낙을 썼다. 목에는 긴 염주(念珠)를, 손목에는 작은 염주를 걸었다. 손에 화선(晝扁)을 들고 지팡이를 짚었다. 주머니에 투전을 넣고 나온다.

(10) 소무(小巫)-연두색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입은 한 여자와 노란 저고리에 남치마를 입고 그 위에 푸른 쾌자, 붉은 띠를 맨 여자가 검정색의 큰 트레머리를 얹었다.

(11) 말뚝이-청창의(연두색 쾌자)에다 붉은 띠, 패랭이 갓을 쓰고 푸른색(연두색) 행전을 치고 채찍을 들었다.

(12) 원숭이-붉은 쾌자에 붉은 행전을 친다.

(13) 취발(醉發)이-등에다 학을 그린 청창의에 붉은 띠, 푸른 행전에 푸른 생나무 가지를 들었다.

(14) 샌님(언청샌님)-흰 도포에다 회색 유건(儒巾)을 쓰고, 회색 행전, 붉은 띠에 부채를 들었다.

(15) 포도부장(捕盜部將)-흰(옥색) 두루마기에다 갓을 썼다.

(16) 신할아비-흰 도포에다 붉은 띠, 유건을 썼다. 지노귀굿을 할 때는 꽃부채를 들고 장고를 멘다.

(17) 미얄할미-흰 치마 저고리에다 지팡이를 짚었다.

이상이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보이는 복식의 대체적인 윤곽인 바, 이 밖에도 봉산탈춤·강령탈춤·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동래들놀음·수영들놀음 등의 복식이 이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모두가 산대계(山臺系)라는 동계성(同系性)에서 오는 이유일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가면극의 소도구[편집]

韓國假面劇-小道具

극 내용 전달에 가장 설명적인 효과를 갖는 배역의 신분에 따른 필수의 것들이 동원될 뿐이지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소무(小巫)가 갖는 무구(巫具) 일체와 목중이 갖는 승구(僧具)들은 모조품이 아닌 진품들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그 나머지 것만이 따로 만들어지고 있다.

탈·탈복·소도구 등 모두가 옛 것이 전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고증을 얻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沈 雨 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