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언어I·한국문학·논술/현대 문학/현대 후기 문학/전후 문학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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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문학[편집]

戰後文學

6·25전쟁이 멎은 1953년 휴전으로부터 1960년 4·19 민주혁명까지는 6·25의 물질적·정신적인 피해를 수습하고 새로운 모색을 시작한 시기이며, 문학사적으로 앞의 시대와 구별되는 전후 문학기(戰後文學期)의 특질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국문학에서의 전후 문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전후적인 의미보다는 역사적인 광복이라는 특수한 여건이 있었고, 따라서 우리 문학의 경우는 6·25 이후부터 전후 문학의 특성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의 전후 문학에서 절망의 의식, 죽음의 의미, 불안 사상 같은 것이 하나의 주조를 나타낸 것은 세계문학적인 의미에서 6·25 이후부터의 일이다. 6·25전쟁은 1950년대의 한국문학을 이룩하는 데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전후다운 문학작품이 나오는 데에 현실적인 배경이 되었다. 우리는 6·25 중 종군문학 또는 전시문학이라 불려지는 한 시기를 체험했고 휴전 이후부터 전쟁에 대한 반성과 그 체험이 문학작품에 반영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게 되었다.

휴전 이후 4·19까지의 우리 문학은 전쟁으로 입은 피해(被害)를 반영하고 아물게 하는 과정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문화적으로는 전쟁으로 입은 정신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전후에 등장한 손창섭(孫昌涉), 서기원(徐基源), 오상원(吳尙源), 장용학(張龍學), 선우휘(鮮于輝), 송병수(宋炳洙), 하근찬(河瑾燦), 이호철(李浩哲) 등의 작품에 반영된 전쟁에서 얻은 허망감(虛妄感)·고독감·억압감·배신감(背信感) 그리고 휴머니스틱한 경향은 이 전후 문학의 특질을 그대로 잘 설명해 준다.

특히 전후에 등장한 젊은 세대의 문학은 윤리의식(倫理意識)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하나의 파격성(破格性)을 드러내고 있는데, 전시 중 부산 피난지에서 신문 소설인 정비석의 <자유부인(自由夫人)>이 크게 일반에 인기를 끈 것도 그것이 새로운 성(性)모럴을 내세웠다는 점에서였다. 여류 작가인 손소희의 <태양의 계 곡>, 한말숙(韓末淑)의 <신화(神話)의 단애(斷崖)> 등에서도 전후의 새로운 성모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특이성이 발견된다. 특히 1950년대 후반기부터 세대론(世代論)이 빈번하게 대두되었고, 광복 이전에 등장한 작가와 6·25 이후에 등장한 젊은 작가 사이에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문학적인 차이가 크게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세대의 문학은 하나의 반항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가치에 반항한다는 뜻과 기성문학의 낡은 작품 조건을 부정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또한 젊은 작가·시인·평론가 사이에서 사르트르, 카뮈 등의 이름과 실존주의가 빈번히 입에 오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서구적인 실존주의 문학이 세계대전 후에 크게 번성한 사실과 그 사조가 6·25전쟁 이후에 젊은 세대에게 크게 공감될 수 있었던 것도 전후 우리 사회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1950년대에 끼친 서구 문예사조 가운데서 실존주의는 젊은 세대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으며, 또 작품에도 실의·절망·허무 의식 등과 새로운 성모럴이 나타났다.

상실과 좌절의 문학[편집]

喪失-挫折-文學

휴전 후 문단(文壇)에는 하나의 전쟁소설이 나타났는데, 젊은 작가에 의해 씌어진 소설들은 대개 전쟁에 대한 반성적인 의미로서 허망성·휴머니즘·인간성의 탐구가 그 주제로 나타난다. 먼저 신인 작품으로서는 선우휘의<불꽃>, 오상원(吳尙源)의 <황선지대>, 하근찬(河瑾燦)의 <수난 2대>, 김성한의 <귀환(歸還)> 등을 들 수 있다. 선우휘의 <불꽃>은 그 주제 전체가 전쟁에 관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지는 않지만 후반이 전쟁 장면들로, 여기에서 주인공 '현'은 인간적인 성실성에서 현실과 대결하는데 이 작품에는 휴머니스틱한 것이 크게 강조되었다.

오상원의 <황선지대(黃線地帶)>는 전쟁의 직접체험보다 미군부대 주변의 범죄조직을 파헤치고 있으며, 오유권의 <방앗골 혁명>은 광복 직후 좌·우 투쟁이 극심했던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수난을 그렸고, 전쟁에서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니지만 하근찬의 <수난 2대>도 2차 대전과 6·25전쟁의 2차에 걸친 민족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한편 황순원은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전쟁의 상처와 그 피해의식을 보여주었고 앞에 든 <일식>과 함께 이범선(李範宣)의 <오발탄(誤發彈)>도 주인공의 피해 망상과 함께 어두운 현실의 비극을 보여주었다. 어두운 현실의 단면(斷面)과 함께 등장인물의 상실감(喪失感)과 좌절감은 전후 문학의 특성으로 나타나는데, 손창섭의 <비오는 날> <미해결(未解決)의 장(章)>, 송병수의 <쑈리 김>, 박경리(朴景利)의 <불신시대(不信時代)>, 서기원의 <암사 지도(暗射地圖)>, 오상원의 <모반(謀叛)>, 장용학의 <요한 시집> <비인 탄생(非人誕生)>, 김성한의 <암야행(暗夜行)>, 이호철의 <파열구(破裂口)> <무너앉는 소 리> 등은 전후 문학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이다.

먼저 현실과 인간에 대한 부정(否定)과 불신(不信)의 태도를 인물에서 반영시킨 것이 손창섭의 작품세계이다. 그의 전기의 작품들 <혈서(血書)> <미해결의 장> <설중행(雪中行)> 등은 1955년에서 1956년 사이에 발표된 것으로, 수인(囚人)과 같이 생활하는 부정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실의·패배감·무기력·타성적인 생활, 그리고 비정적(非情的)인 인물들이 모두 그의 전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데, 이 작가의 후기작 <잉여인간(剩餘人間)> <낙서족(落書族)> 등에도 이러한 인물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장용학의 작품들 <부활 미수(復活未遂)> <요한 시집> <비인 탄생> 등도 어두운 불신의 현실, 기성의 모럴에 대하여 부정적 태도를 표시한 것과 아울러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과 절망의식을 상징과 비유를 통해 내세웠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고, 그리하여 1950년대 전후 작가로서의 이질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했다.

그의 <요한 시집>은 포로수용소에서 취재한 것으로 우화적인 것, 즉 동굴(洞窟)과 토끼 이야기를 통해 현대의 메커니즘에 대한 비판과 거기서 오는 인간 비극을 그렸다.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절망은 김광식(金光植)의 <213호 주택> <의자(椅子)의 풍경> 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전후 현실을 불안의 시대, 상실의 시대, 불신의 시대로 파악한 것은 전후 작가들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여류 작가인 박경리의 <불신시대>도 작가의 현실관을 반영한 것으로, 다른 젊은 작가들도 여러 각도에서 시대에 대한 반응을 나타낸다. 우선 반항의식을 그대로 부정·부패·허위적인 현실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으로 내세운 것으로는 김성한의 <암야행>을 비롯한 <바비도> <방황(彷徨)>, 선우휘의 <화재(火災)> <테러리스트> <도전(挑戰)> 등이 그 예이다. 또 암흑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행동과 휴머니즘을 강조한 것으로 선우휘의 작품과 오상원의 <모반> <증인(證人)> <파편(破片)> 등이 있으며, 유주현의 <언덕을 향하여> 등도 부정·부패의 현실에 대한 행동과 실존을 강조한 작품이다.

다음 어둡고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작가의 반응은 풍자성(諷刺性)과 상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풍자적인 것은 1950년대 문학의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특히 김성한, 장용학, 오상원, 손창섭의 여러 작품들과 유주현의 <장씨 일가(張氏一家)>, 전광용(全光鏞)의 <G·M·C>, 이호철의 <파열구(破裂口)>, 남정현(南廷賢)의 <인간 플래카드> 등의 작품에는 특히 풍자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이 풍자성과 아울러 장용학의 여러 작품과 김성한의 <제우스의 자살(自殺)> <5분간>, 김동립(金東立)의 <영웅(英雄)>, 최인훈(崔仁勳)의 <그레이 구락부(俱樂部) 전말기(顚末記)> 등은 비유와 상징적인 수법을 활용한 작품들이다.

결론적으로 전후 작품의 특질은 먼저 작품세계가 부정적인 암흑세계란 것과, 주로 불행·불안의 현대의식이 작품세계에 공통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후 작가들이 추구한 것은 상실과 좌절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기성문학과 구별되는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작품들이 진행되는 도상(途上)에서 한국문학은 1960년대의 4·19혁명을 맞이하였고, 따라서 1950년대의 문학은 하나의 진통기(陣痛期)의 문학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험의 시정신[편집]

實驗-詩精神

한국 시에 있어서 1950년대는 실험의 연대(年代)였다. 6·25 이후 지난날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시기로서 기성의 것에 대한 재검토·반성·회의가 대두되었다. 대략 1950년대 시인들이 모색한 시의 방향은 대략 다음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종래의 인생파, 자연파, 생명파가 추구한 전통적인 세계를 참신한 현대감각으로 노래한 이원섭(李元燮), 이동주(李東柱), 김관식(金冠植), 이형기(李炯基) 등과 후기에 등장한 박재삼(朴在森), 구자운(具滋雲), 이성교(李姓敎) 등을 들 수 있다. 김관식과 박재삼을 제외한 다른 시인은 모두 1940년대 말에 등장한 사람들이다. 이원섭은 초기의 노장적(老將的)인 세계에서 1950년대 초에는 기독교적인 작품세계로 변화했고, 이동주는 품위 있는 풍속의 세계를, 이형기는 다한(多恨)과 음영의 현대적 영탄을, 김관식은 동양적인 달관(達觀)의 인생관을, 박재삼은 전통적인 가락과 정(情)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둘째 경향은 현대 서구시의 방법을 채택하여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보여준 김춘수(金春洙), 김윤성(金潤成)과 초기의 김수영(金洙暎), 김광림(金光林), 김종삼(金宗三), 박성룡(朴成龍), 박희진(朴喜璡)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전통파에 비하여 관념적인 요소와 지적인 특색을 나타낸 시인들이다. 김춘수는 초기의 감각적이며 사유적인 것에서 관념의 베일을 벗기는 지혜의 형상(形象)을 보여주었는데, 이 시인의 시 정신은 1950년대에 활동한 시인들 중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윤성은 평범하고 미세한 것을 소재로 하여 평면적이면서도 짜임새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며, 김수영은 모더니즘에서 출발하여 문명 비판 또는 생활의 시로서 엄숙성과 진실을 보여준 시인으로서,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끈질긴 실험정신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시인이다. 1950년대 후기에 등장한 김광림과 김종삼·박성룡도 그 세련된 정서와 관념의 깊이를 각각 보여준 시인이었다.

셋째 경향은 현대적 감각으로 문명과 도시와 사회적 모럴을 보여준 일군의 모더니스트들인 박인환, 조병화, 김규동(金奎東) 등을 들 수 있다. 박인환은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서 출발한 시인으로 요절하기 전에 발간한 시집 <박인환 선시집>에서 비평성과 서정성의 조화를 나타냈고, 조병화는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이후 순정적(純情的)인 감성으로 현대의 풍속을 노래했다. 김규동도 1950년대 모더니스트의 집단인 '후반기(後半期)' 동인으로 출발한 시인인데, 시집 <나비와 광장>에서 일상 회화의 언어를 시에 사용함으로써 현대의 감상을 노래했다. 이와 함께 협의의 모더니즘 정통파(正統派)의 일단을 지지하는 시인으로는 조향(趙鄕)·김종문(金宗文)·김차영(金次榮)·이활(李活) 등이 1950년대의 이 경향을 대표한다. 조향은 서구의 1930년대의 쉬르레알리슴에 영향을 받은 시인이고, 김종문, 김차영, 이활도 1차대전 전후 아방가르드의 흐름에 영향받은 시인들이나 뚜렷하게 성공한 흔적은 없다. 부산 피난 중에 모였다가 환도 후에 해산한 모더니스트의 집단 '후반기'의 동인은 조향, 김경린, 박인환, 이봉래, 김차영, 김규동이었다.

넷째 경향은 지성적인 서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대해 역설과 야유를 퍼붓고 문명 비평적인 일군의 시인들로, 전봉건(全鳳健), 송욱, 김구용(金丘庸) 또한 후기에 등장한 민재식(閔在植)·신동문(辛東門) 등이 이에 속한다. 전봉건은 장미꽃의 가시로 비유되는 지적인 서정시인으로, 6·25 이후 모더니즘의 한국적 전개에 대한 자각이 엿보였다. 송욱은 <하여지향(何如之鄕)> 등에서 문명 비평의 알맹이에 전통적 가락, 한자음(漢字音)의 마술성을 통한 야유 등 전통적인 한국 시의 새로운 실험을 의도한 시인이다. 김구용은 초기 시에서 깊이 있는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1950년대 후기부터 시의 완전 해체, 장시(長詩)에의 기도, 이야기의 전개를 실험했는데, 지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인 그의 혁신은 충분히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앞의 경향에서도 언급된 1950년대 후기에 등장한 구자운·김관식·박재삼은 전통파로, 박희진·박성룡·민재식은 신서정파로, 김광림·김종삼·신동문 등은 모더니즘의 변환적 계승으로, 박봉우(朴鳳宇) 등은 민족의식을 내세워 195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 시인들이었다.

한편 이들의 경향과는 달리 '사회파'라 불릴 수 있는 김용호, 구상, 설창수(薛昌洙), 이영순(李永純), 이인석(李仁石) 등과 모더니즘의 일단에서 영향받은 고원(高遠), 장호(章湖), 김요섭(金耀燮), 생활의 깊이와 사랑의 꿈을 노래한 유정(柳呈), 정한모(鄭漢模), 김남조(金南祚), 서구적인 관념과 지성으로 시세계를 이룬 신동집(申瞳集), 박양균(朴陽均), 한성기(韓性棋) 등도 1950년대에 활약한 시인들이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침묵하다가 1950년대부터 다시 활동한 신석초(申石艸), 김현승, 장서언(張瑞彦), 박재륜(朴載崙) 등, 특히 신석초의 <바라춤>은 기억할 만한 재기(再起)의 작품이었다. 특히 조지훈은 초기의 고유 정서에서 역사감각으로 변모되었고, 서정주의 원숙하고 신비적인 시 세계, 박목월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서술적 경향은 1950년대에 괄목할 만한 특색을 보여주었고, 유치환, 박두진, 김상옥(金相沃)도 뚜렷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6·25 이후에 월남한 박남수는 새로운 서정과 지적 태도로 젊은 시인들과 발맞추어 꾸준한 작품활동을 했다.

50년대의 소설[편집]

-年代-小說

먼저 광복 전에 등장하여 50년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황순원의 장편 <카인의 후예(後裔)> <나무들 비탈에 서다>, 안수길의 단편 <제3 인간

형>, 김동리의 장편 <사반의 십자가(十字架)>, 단편 <실존무(實存舞)> 등이 있고, 6·25 전에 등장한 손소희의 장편 <태양의 계곡>, 김성한의 <암야행> <바비도의 최후> <제우스의 자살> <5분간>,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 유주현의 <언덕을 향하여>

<장씨 일가> 등이 있다.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전쟁으로 인한 지식인의 피해의식과 자학(自虐)을 나타낸 것이며, 안수길의 <제3 인간형>은 6·25를 체험한 변모된 인간형을, 그러나 김동리의 <실존무>는 주관적 진리와 객관적 진리를 혼동한 착각된 작가의식이 반영되었다.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은 이미 <바바리 코트>나 <어떤 해체(解體)> 같은 작품에서 치열한 정신을 보여준 작가가 한층 개성을 발휘한 작품이고, 유주현은 <언덕을 향하여>와 <장씨 일가>에서 어둡고 불의(不義)가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실존적인 상황과 저항적인 풍자성을 반영했다.

한편 6·25 후 등장한 작가와 작품들을 보면, 손창섭의 <혈서> <미해결의 장> <인간동물원초(人間動物園抄)> <비오는 날> <잉여 인간> <낙서족> 등 현실에 대한 실의(失意)와 부정적인 인물을 통해 이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고, 장용학은 <부활 미수> <요한 시집> <비인 탄생>을 통해 상징과 우화를 써서 현실에 대한 절망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을 반영했다. 김성한은 <방황> <암야행> <5분간> <바비도의 최후> 등에서 일상적인 현실과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및 고발을 시도했고, 오상원의 <모반> <증인(證人)>, 선우휘의 <불꽃> <테러리스트> <화재>, 이범선의 <오발탄> 등은 광복 이후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과 기성인의 무책임, 이기주의에 대한 젊은이의 분노(憤怒)를 그렸다. 송병수의 <쑈리 김> <22번형> 등은 전후의 현실 속에서 휴머니티와 따뜻한 인정(人情)의 세계를 그렸고, 서기원의 <암사 지도>, 한말숙의 <신화의 단애> 등은 전후의 변모된 윤리의식을 보여주었다. <탈향(脫鄕)>으로 문단에 등장한 이호철은 <나상(裸像)> <살인> <파열구(破裂口)> 등 다양한 작품의 체계와 작가로서의 발전을 꾀했고, 추식(秋湜)의 <인간 제대(人間除隊)>는 패배한 인간의 군상(群像)을 통해서 현대적 사회성을 강조했으며, 박경리의 <불신시대>는 불신의 현실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생활을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하근찬의 <수난 2대>는 2차대전과 6·25전쟁 2차의 수난을 겪은 민족의 비극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작가의 역사의식이 잘 반영되었고, 강용준(姜龍俊)의

<철조망(鐵條網)>은 거제도(巨濟島) 포로수용소 내에서 일어난 민족적 비극과 휴머니즘을 반영한 작품이다. 그 밖에 남정현(南廷賢)의 <인간 플래카드> <너는 뭐냐> 등의 풍자성과, 박경수(朴敬洙)의 <이빨과 발톱>에서 보인 내면의식의 탐구, 김광식의 <213호 주택>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들이다.

한편 이러한 전후 작가의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반응과는 달리 오영수(吳永壽)는 <후조(候鳥)> <춘한(春寒)> <제비> 등에서 서정적이고 따뜻한 온실(溫室)의 세계를 보여주었고, 오유권은

<돌방구네> 등에서 지방성이 강렬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손창섭[편집]

孫昌涉 (1922-1973)

소설가.평양 출생. 일본 니혼 대학에서 수업. 1925년 <문예>에 <공휴일(公休日)>이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는데, 그의 작품세계는 착실한 사실적 필치로 비정상적 인물을 그림으로써 현대의 불안·절망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195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1955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1958년 단편 <잉여 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집에 <비오는 날>(1959) <낙서족>(1959), 장편에 <부부(夫婦)>(1962) 등이 있다.

장용학[편집]

張龍鶴 (1921-1999)

소설가.함북 부령(富寧)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 경기고교 교사. 경향신문 논설위원·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낸 지적 작가이다. 1950년 단편 <지동설(地動說)>이 <문예>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상징과 우화, 그리고 순수한 관념세계를 설정, 유동적 문체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그는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실존주의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대표작에 <지동설> <요한 시집>, 중편 <비인 탄생> <현대의 야(夜)>, 장편에 <원형(圓形)의 전설>(1962) <태양의 아들> 등이 있다.

전광용[편집]

全光鏞 (1919-1988)

소설가·국문학자.호는 백사(白史).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및 대학원을 졸업,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 193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별나라 공주와 토끼>가 입선되었고, 1955년 <흑산도(黑山島)>가 조선일보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고, 대표작에 <진개권(塵介圈)> <G,M,C> <사수(射手)> <꺼삐딴 리> 등이 있고, 단편집에 <흑산도>가 있다. 1962년 <꺼삐딴 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김광식[편집]

金光植 (1921- )

소설가.평북 용천(龍川) 출생. 일본 메이지(明治) 대학 졸업. 1954년 <사상계>에 <환상곡(幻想曲)>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대표적 단편에 <의자의 풍경> <213호 주택>이 있고, 장편으로 <식민지(植民地)> 등이 있는데, 현대문명에 대한 풍자와 고발이 그의 작품세계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범선[편집]

李範宣 (1920-1982)

소설가.평남 신안주(新安州) 출생. 1955년 단편 <암표(暗票)> <일요 일>이 <현대 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1958년 현대문학상 신인상, 1961년 <오발탄>으로 제5회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수상했으며, 1970년 <동대문 집 개>로 제5회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사회성이라는 저변을 향한 예리한 관찰로 휴머니즘을 구축하였다. 작품집에 <오발탄> <피해자> 등이 있다.

오발탄(誤發彈)[편집]

이범선의 단편소설. 1959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작품이다. 계리사(計理士)의 사무실의 서기로 일하면서 양심과 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주인공 철호와 양심 따위는 아랑곳없이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사는 것이 옳다고 자포자기한 동생 영호, 미쳐 있는 어머니, 만삭의 아내, 양공주로 일가의 생활에 보탬을 주는 누이동생, 이러한 가족상황이 빚어내는 사건의 연속 끝에 끝내 아내는 병원에서 죽고, 남동생은 강도죄로 경찰에 잡혀간다. 철호는 허탈감에 빠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내뱉는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는 불행한 인간들에 대한 고발과 증언이 무리없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작자는 이 작품으로 제5회 동인문학상 후보작 수상과 제1회 5월문예상 등을 수상했다.

오상원[편집]

吳尙源 (1933-1985)

소설가.평북 선천 출생.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졸업. 1953년 극협(劇協) 희곡 현상모집에 <녹스는 파편>이 당선된 이래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유예(猶豫)>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1958년 단편 <모반>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에

<백지(白紙)의 기록>이 있고, 중편으로 <황선 지대(黃線地帶)>

<무명기(無明記)>, 희곡 <묵살된 사람들> 등이 있다.

선우휘[편집]

鮮于輝 (1922-1987)

소설가·언론인.평북 정주 출생. 경성사범 졸업. 이후 신문기자를 거쳐 육군에 입대, 대령으로 제대. <조선일보> 논설위원 및 편집국장·주필을 지냈고, 1957년 <문학예술>지에 <불꽃>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이 작품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에 <불 꽃>, 중편 <깃발 없는 기수(旗手)>, 장편 <아아 산하여>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행동과 휴머니즘이 강조되어 있다.

불꽃[편집]

선우휘의 단편소설. 1957년 <문학예술> 신인 특집에 당선된 작품으로, 작자는 이 작품으로 제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초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3·1운동부터 6·25전쟁까지의 30여년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이다. 한민족의 이지러진 반세기를 점철한 서사시적인 이 작품은 두 개의 인간형을 제시해 놓고 그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과도기의 인간을 그린 역사의식이 투철한 단편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유권[편집]

吳有權 (1928- )

소설가.전남 영산포 출생. 1955년 단편 <두 나그네> <참외>가 <현대 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건실한 필법으로 토속적인 농촌 속에서 현실인식을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 작품에 <돌방구네> <어떤 노인의 죽음> <분노> 등이 있고, 장편에 <유형족(流刑族)> <대지의 학대> <방앗골 혁명> 등이 있다.

박경리[편집]

朴景利 (1927- )

여류 소설가. 경남충무 출생. 진주여고 졸업. 1955년 <계산>과 1956년 <흑흑백백(黑黑白白)>이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대표적인 단편에 <불신시대> <귀족(貴族)> 등이 있고, 장편에 <시장(市場)과 전장(戰場)> <김약국의 딸들> <표류도(漂流島)> <파시(波市)> <토지(土地)> 등이 있다. 1956년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토지(土地)[편집]

박경리의 장편 소설. 1969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대하소설(大河小說)로서 '평사리'라고 하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을 무대로 파란 많던 구한말을 배경으로 서술하고 있다. 춘원(春園)의 <무정(無情)> 이후 가장 탁월한 작품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은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고 요약할 수 있다.

동학혁명으로부터 국권상실의 암흑시기를 재구성하고 있는 이 소설은 한국인의 삶의 터전이며 상징인 '토지'라는 대지적 이미지를, 각양의 인간상이 펼치는 숱한 삶의 형태와 사건·가치관·인생관을 통해서 종합하고 있다. 이 소설을 한국 최초의 총체소설이라 이름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김약국의 딸들(金藥局―)[편집]

박경리의 전작 장편소설. 1962년에 간행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김약국으로 불리는 한 가문이 3대에 걸쳐 자살하고, 미치고, 물에 빠져 죽고, 매맞아 죽는 등의 죽음의 그림자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감돌고 있다. 그 알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힘없이 몰락해 가는가 하는 비극적인 숙명론을 보여준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3대에 걸쳐 몰락해 가는 한 가문을 그려낸, 기구한 운명의 서사시와도 같은 작품이다.

서기원[편집]

徐基源 (1930- )

소설가.서울대 상대 중퇴. 동화통신·서울신문의 경제부 기자 등을 지냈으며, 1956년 <암사 지도>가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대표적인 단편에 <달빛과 기아(飢餓)> <오늘과 내일>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등이 있고, 장편에 <전야제(前夜祭)> <혁명> 등이 있다. 1960년 제5회 현대문학상을 수상, 1961년 <이 성숙한 밤의 포옹>으로 제5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초기작의 파격적인 윤리의식에서 출발하여 현실인식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송병수[편집]

宋炳洙 (1932- )

소설가.경기도 개풍 출생. 1957년 단편 <쑈리 김>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1964년 단편 <잔해(殘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단편에 <쑈리 김> <22번형> <환원기(還元期)> <잔해> 등이 있다.

하근찬[편집]

河瑾燦 (1931- )

소설가.경북 영천(永川) 출생. 전주사범 및 동아대학 수업.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수난 2대>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는데, 그의 작품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투철한 작가정신이 작용하여 1960년대 이후 몇 편의 문제작을 내었다. 주요 단편에 <수난 2대> <나룻배 이야기> <흰 종이 수염> <왕릉(王陵)과 주둔군> <삼각(三角)의 집> 등이 있다.

한말숙[편집]

韓末淑 (1931- )

소설가.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1956년 단편 <별빛 속의 계절>, 1957년 <신화의 단애>가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으며, 그 밖에 <노파와 고양이> <Q호텔> <방관자(傍觀者)> <장마>, 장편 <하얀 도정(道程)> 등이 있다.

남정현[편집]

南廷賢 (1933- )

소설가.충남 당진(唐津)출생. 1958년 단편 <경고구역(警告區域)>,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자유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직설적인 화법(話法)으로 보여주는 것이 특색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간 플래카드> <너는 뭐냐> <기상도(氣象圖)> <부주전상서(父主前上書)> <분지(糞地)> 등의 단편이 있다. 1961년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 후보상을 수상했고, 1965년 단편 <분지>로 반공법에 저촉되어 입건되기도 하였다.

강용준[편집]

姜龍俊 (1931- )

소설가.황해도 안악(安岳) 출생. 1950년부터 1953년까지 거제도 등지에서 3년간 포로 생활을 체험했다. 1960년 단편 <철조망>이 <사상계> 제1회 신인 문학상에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주요 단편에 <기습작전기(奇襲作戰記)> <겨울과 쇼> <둔주곡(遁走曲)> <이 울속은

> 등이 있다.

50년대의 시[편집]

-年代-詩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활약한 해방전파(解放前派)의 시인들로는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들 수 있다. <화사집>에서 생명의 갈등과 방향의 몸짓을 보여주었던 서정주는 50년대 초에 이르러 <국화 옆에서> <밀어(密語)> 등 고전적 격조의 가락을 보여주더니 <근업초(近業抄)> <마른 여울목> 등의 불교적 인생관을 거쳐 <꽃밭의 독백> <신라의 상품(商品)> <노인 헌화가(老人獻花歌)>

<파소(波蘇) 두 번째의 편지> 등에 이르러서는 신라정신이라는 고답적 에스프리로 변모되었다. 처음부터 관념과 사유를 시 정신으로 수용해 온 의지의 시인 유치환은 시집 <예루살렘의 닭>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등 다작(多作)의 활동을 통해 시 정신의 깊이를 더해갔다. 박목월은 시집 <난(蘭)·기타> 등에서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시로 변모하였고, 풍류정신을 밑바탕으로 한 조지훈은 <역사 앞에서>와 같이 역사의식을 전제로 한 우국(憂國)의 목청을 높였고, 묵시록적인 세계를 반복의 율조로 담은 박두진은 강렬한 현실인식과 정의감을 노래했다.

6·25 이후의 시인을 보면 박목월의 생활인적 애환에 대하여 청춘의 애환과 서정성으로 대응되어 있는 이형기는 <들길> <송가(頌歌)> <한일초(閑日抄)> <비> <무엇인가 말하는 것은>, 이동주는 시집 <혼야> <강강술래> 등을 발표했고, 세련된 토착어로 정한이 깃든 전통적 시세계를 보여준 박재삼은 <감나무 그늘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강> <흥부의 가난> <눈떠 새벽 한참은> 등의 시를 발표했다. 활달한 언어 구사가 특징이던 김관식은

<산중재상(山中宰相)> <아양곡(峨洋曲)> <나의 임종은> 등의 시편을 발표했고, 새로운 유미파(唯美派)의 구자운은 <우리들은 샘물에> <성(城)> <발가숭이 바다> 등의 시편을 남겼다. 전후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한 박인환은 <검은 강>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투명한 바라이에테> 등과 <선시집>을 통해 참신한 언어감각으로 전쟁과 문명의 그늘과 도시의 풍속을 노래했다. 김수영은 당돌한 이미지의 결합과 에피그램적인 직절성(直截性)이 교묘하게 배합된 파격적인 시인이었다. 그의 <반달> <만용에게> <눈> <적(敵)>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등은 속된 현실에 대한 시인의 분노를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그의 시는 퓨리터니즘에서 출발한다고 하겠다. 송욱은 재래의 한국시에 대하여 대담한 분쇄(粉碎)를 시도한 시인으로 위트·패러독스가 빚어내는 자기류의 시학에서 출발했는데, 그의 시 <하여 지향> <해인 연가(海印戀歌)> 등은 문명 비판적인 시인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이다.

전봉건은 처음 전쟁의 현장에서 철조망과 바흐의 협주곡을 병존시킴으로써 그의 옵티미즘의 시세계를 보여주었으며, 뒤에 쉬르레알리슴의 발상으로 <치맛자락> <장미의 미> <속의 바다>

<의식(儀式)> 등의 시편을 발표했다. 처음 <제3포복> 등 전쟁의 상흔(傷痕)을 비정의

스타일로 엮은 신동문은 뒤에 사회현실에 대한 저항과 참여의식을 보여 주었는데 <비닐 우산> <내 노동으로> <아아 내조국> 등의 시편을 발표했고, 조병화는 도시인의 페이소스를 나타낸 시인으로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조국으로 가는 길> <밤의 이야기> 등을 발표했고, 솜씨 있는 풍자시인의 면모를 보여준 민재식(閔在植)은 <속죄양(贖罪羊)> <미국서 만난 서구 여인상(女人像)> 등 지적인 시편들을 발표했다. 박희진은 신고전파(新古典派)의 시인으로 <새봄의 기도> <미아리 묘지> <기술사(奇術師)> <바닷가에서> 등 생의 외경(畏敬)을 노래한 50년대의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이며, 박성룡은 <풀잎> <어느 시골길에서> <어휘집(語彙集)> <바다에서> 등의 시편에서 새로운 서정을 노래한 시인이다. 김구용은 파격적인 실험을 기도하는 시인으로 <소인(消印)> <삼곡(三曲)> 등의 시편을 남겼고 성찬경(成贊慶)은 상극하는 이미지의 충동에서 독특한 심미감의 촉발을 노리고 있는 시인으로 <KIEE풍(風)> <의치(義齒)> <나의 제단(祭壇)> 등의 시를 발표했다.

한편 6·25 전에 등장한 김춘수는 <꽃> <부재(不在)> 등에서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새로운 서정의 경지를 개척한 중견시인으로 발전했으며, 김윤성은 <원경(遠景)> <눈물의 강> <나의 노래>

<밤> 등에서 평범한 일상적 현실에서 경이를 표현했다. 또한 광복 전에 등장한 구상(具常)이 <초토의 시> <나는 혼자서 알아 낸다> <비의(秘儀)> 등 사회적 시세계를 보여주었으며, 박봉우는

<휴전선> <조선의 창호지> <조선독립선언문> <지성을 앓고 있는 공동묘지> 등 민족적 현실을 노래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고, 김종문의 <오리 공화국> <원초(原初)에의 문> <밤의 래프서디>

<노주점(露酒店)>, 김종삼의 <앙포르멜>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원정(園丁)> 등도 기억할 만한 시편들이다.

이호우[편집]

李鎬雨 (1912-1970)

시조시인. 호 이호우(爾豪愚). 경북 청도 출생. 경성제일고보 졸업. 1940년 <문장>에 <달밤>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대구에 기거, 주로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지방문화 창달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1955년 <이호우시조집>을 발간하여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했고, 그 후 누이동생 영도(永道)와 함께 발간한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休火山)>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는 종래의 시조에서 탈피, 제한된 시조형식을 고수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 데 성공한 시조시인으로, 의지를 주사상으로 하여 관념적 낭만주의를 개척, 시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기의 시조는 주로 연작형이었으나 후기로 오면서 대개 단수(單首)로 집약되었다. 주요 작품에

<개화(開化)> <별> <휴화산> <바위 앞에서> <시름> 등이 있다.

김춘수[편집]

金春洙 (1922- )

시인. 경남 충무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수학. 1948년 대구에서 발행되던 동인지 <죽순(竹筍)>에 <온실(溫室)> 외 1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이어 첫번째 시집 <구름과 장미>를 발간하고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사물(事物)의 사물성(事物性)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시에서의 언어의 특성을 다른 어떤 시인보다 날카롭게 응시하며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 <늪> <기(旗)>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으며 시론집도 다수 있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동주[편집]

李東柱 (1920-1979)

시인.전남 해남 출생. 혜화전문 졸업. 1950년 <황혼> <혼야> <새댁> 등이 <문예>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시집에 <혼야>(1951) <강강술래>(1957) 등이 있음. 1960년 제6회 한국문협상을 받았고, 1962년 5월문예상 장려상을 받았다.

이형기[편집]

李炯基 (1933- )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졸업. 1949년 <문예>에 <비 오는 날>이 추천되고, 다음해 <코스모스>, <강가에서>가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집으로 <적막 강산>, <돌베개의 시>, <꿈꾸는 한발>, <풍선심장>, <보물섬의 지도>, <그 해 겨울의 눈> 등이 있다. 한국문학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황금찬[편집]

黃錦燦 (1918- )

강원도 속초 출생. <문예>에 시 <경주를 지나며>(1953), <현대문학>에 <접동새> <여운>(1955)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월탄 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기독교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현장>, <5월의 나무>, <나비와 분수>, <구름과 바위>, <한강> 등 출간.

조병화[편집]

趙炳華 (1921-2003)

경기도 안성 출생. 1945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 이과 졸업.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을 발간하여 문단에 데뷔. 아시아자유문학상, 세계시인대회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시집으로 <하루만의 위안> <사랑이 가기 전에> <안개로 가는 길> <딸의 파이프> 등 출간. 보기 드문 다작의 시인인 그는 요란한 기교와 가식이 배제된 구체적인 시어로써 일상 세계에 향을 불어넣고 있다.

김종삼[편집]

金宗三 (1921-1984)

시인.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도요시마 상업학교 졸업. 1951년 시 <돌각담>을 발표한 후 시작에 전념. 1957년 김광림 등과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했다. 이후 초기의 <현대시>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종 달린 자전거>, <시사회>, <다리 밑>, <원색(原色)> 등을 발표했으며, 1968년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의 3인 연대시집

<본적지(本籍地)>, 이듬해 첫 개인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간행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동안(童眼)으로 보는 순수세계와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절박한 세계로 나눠볼 수 있으며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순수시들이다. 1971년 현대시학상,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이 있다.

이수복[편집]

李壽福 (1924-1986)

전남 함평 출생.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54년 <문예>에 <동백꽃> 발표로 문단에 데뷔. 1955년 <실솔>, <봄비>로 <현대문학> 추천 완료. 현대문학신인상, 전남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봄비> 출간.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그의 서정시는 전통시의 한 전형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천상병[편집]

(1930-1993)

시인·평론가.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학 상과대 수학. 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으로 추천을 받았고, 대학 재학시 송영택 등과 함께 동인지 <신작품(新作品)>을 발간하였다. 1952년 <문예>에 시 <강물>, <현대문학>에 평론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시 <덕수궁의 오후>, <새>, <귀천(歸天)> 등과 평론 <사실의 한계> <비평의 창법> 등을 발표하였다. 가난·무직·방랑·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피안(彼岸),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큰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으로 <새> <천상병은 천상 시인(詩人)이다> 등과 시선집 <주막에서>가 있다.

김관식[편집]

金冠植 (1924-1970)

시인.충남 논산 출생. 정인보, 최남선 등에게서 한학을 배웠으며, 1955년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 등이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고, 서울상고 교사, <세계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동양적인 인생관을 지닌 시인으로, 시집에 <낙화집(落花集)>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공저) <김관식 시선> 등이 있다.

김구용[편집]

金丘庸 (1922- )

시인.경북 상주(尙州) 출생. 성균관대학 국문과 졸업. 1949년 <산중야(山中夜)> <조혼(弔魂)> <해>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55년 현대문학사 제1회 신인상을 받았다.

김수영[편집]

金洙暎 (1921-1968)

시인.서울 출생. 연희대학 영문과 졸업. 중학교 교원·통역·신문기자 등을 지냈으며, 1948년 시단에 등장하여 처음에는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통해 모더니즘 시운동에 가담했으나 점차 속된 현실에 대한 풍자와 청교도적인 예리한 역사감각의 시를 발표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1957년 한국시인협회 작품상을 받았다. 시집에 <달나라의 장난>이 있고, 주요 시작품에 <적> <눈> <거대한 뿌리> <원효대사> <말> <전향기> 등이 있으며 시론과 번역 작품도 있다.

구자운[편집]

具滋雲 (1926-1972)

시인. 부산 출생. 동양외국어전문대 노어과 졸업.

1957년 <현대문학>에 <균열(龜裂)> <청자수병(靑磁水甁) <매(梅)> 등으로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 이어 <묘비명(墓碑銘)>

<이향이수(異香二首)> 등을 발표하여 한국적인 전아한 시세계를 인류적 공감으로까지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4·19혁명 이후부터는 치열한 시대정신 및 가난과 실의에 찬 현실에의 저항으로 작품경향이 바뀌었다.

이 무렵 박희진(朴喜璡) 등과 <60년대 사화집>을 창간하였고, 이후 <벌거숭이 바다> <일하는 자의 손에 대하여> <실직(失職)> 등을 발표했다. 시집에 <청자수병>이 있다. 1958년 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김종문[편집]

金宗文 (1919-1981)

시인.황해도 출생으로 1942년 도쿄 아테네 프랑스 졸업. 1952년 시집 <벽(壁)>으로 시단에 등장, 이어서 <불안한 토요일>(1953), <시사시대(詩史時代)>(1955) 등의 시집을 출판했고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시집 <인간조형(人間造型)>으로 제1회 자유문협상을 받았고, 1965년 시집 <신시집(新詩集)>으로 제2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봉건[편집]

全鳳健 (1928-1988)

시인.평남 안주(安州) 출생. 1950년 <문예>지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여,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5), 시론집 <시를 찾아서>(1961) 등이 있다.

박봉우[편집]

朴鳳宇 (1934-1990)

시인.전남 광주 출생.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민족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시세계 속에서 추구했다. 1962년 제8회 현대 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에 <휴전선>(1957)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1959) <4월의 화요일>(1962) 등이 있다.

송욱[편집]

宋稶 (1926-1980)

시인·영문학자.서울 출생. 일본 교토(京都) 제대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6·25전쟁 직전 <문예>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하여 지성적인 태도로 현대문명에 대한 풍자를 시정신으로 수용했다. 시집에 <유혹>(1954) <하여지향>(1961) 등이 있고, 저서에 <시학 평전(詩學評傳)>(1963) <문학평전> 등이 있다.

박희진[편집]

朴喜璡 (1931- )

시인.경기도 연천(漣川)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대학원 수업. 1955년 <무제(無題)> <허(虛)> 등이 <문학 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관음보살> <미아리 묘지> 등을 발표하면서 신고전파적인 서정의 세계를 개척했으며, <60년대 시화집> 동인으로서 시집에 <실내악(室內樂)>(1960) <청동시대(靑銅時代)> 등이 있다.

박재삼[편집]

朴在森 (1933-1997)

시인.일본 도쿄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수업. 1955년 <섭리(攝 理)> <정적(靜寂)> 등이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전통적인 세련된 가락으로 정한(情恨)의 세계를 노래했다. 1956년 제2회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에 <춘향이 마음>(1962)이 있다.

신동문[편집]

辛東門 (1928-1993)

시인.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선기(風船期)>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는데, 그의 시에는 사회현실에 대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시집에 <풍선과 제3포복>(1956)이 있다.

박성룡[편집]

朴成龍 (1932- )

시인.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 졸업. 1956년 <교외(郊外)> <화병정경(花甁情景)>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1964년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조연현[편집]

趙演鉉 (1920-1981)

평론가. 시인. 호 서제(石濟). 경남 함안 출생. 배재고보를 거쳐 혜화전문 수학(1941). 1945년 순문예지 <예술부락(藝術部落)>을 창간하고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발표, 이 때부터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박종화(朴鐘和)·김동리(金東里) 등과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좌익계 문학가동맹측의 문인들과 민족문학론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전개, <논리(論理)>와 <생리(生理)>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순수문학 옹호에 앞장섰다. 1948년 언론계를 떠나 <문예사> 편집장을 맡고, 한국문학가협회를 창립했다. 같은해 첫번째 평론집 <문학과 사상>을 발간, 아울러 <백민>에 <고갈과 비평정신>

<문학과 사상> <애욕의 문학> 등과 <구국문학론의 정체> <희롱의 진실-김문집론> 등을 발표했고,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1949년 <문예>를 창간하고 편집했으며, 이듬해 <1949년도 문단총평> <도스토예프스키론> <문학계 1년의 회고>를 발표, 격동기 순수문학과 자유수호의 기수로서의 평론을 썼다. 1955년 <현대문학>의 창간회원으로 주간을 맡았으며 이 시기에 대표작인

<한국현대문학사>를 발표하여 방법론적 관점에서 문학활동 및 작가를 중심으로 갑오경장 이후의 신문학사를 정리했다. 1966년 <한국신문학고(韓國新文學考)>를 간행하여 문학의 학구적인 연구와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했으며, 1968년 <내가 살아온 한국문단>은 광복 후부터 1960년까지의 우리 문단사로서 귀중한 문헌으로 꼽히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현대문학사>를 포함, 20여권의 평론집과

수필집이 있으며, <조연헌문학전집>을 간행했다.

50년대의 비평과 문예지[편집]

-年代-批評-文藝誌

광복 이후 비평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기를 그은 것은 환도(還都) 직후인 1955년경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에 의한 전후 문학이 활기를 띰에 따라 평단(評壇)에도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과 새 시대 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한 일군의 패기에 찬 신진 비평가들이 등장하게 되어 최일수(崔一洙), 이어령(李御寧), 유종호(柳宗鎬), 이철범(李哲範), 홍사중(洪思重), 김우종(金宇鍾), 원형갑(元亨甲), 천이두(千二斗) 등이 활약했다. 특히 전후 문학의 이론적 근거와 전통에 대한 부정 위에서 새로운 문학의 서구적 방법론을 역설한 것은 이어령, 유종호, 이철범 등 신진 비평가에 의해서였다. 이어령은 1957년 <시비평방법서설(詩批評方法序說)>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평단에 등장한 이래 신문·잡지 등 저널리즘을 통해 김동리, 서정주, 조연현 등의 관념적인 순수문학을 공격하고 기존의 우리 문학사의 전통을 부정, <현대 작가의 책임> <저항의 문학> <작가의 현실 참여> 등의 평론을 통해 서구적인 의미의 참여문학을 내세웠다. 유종호는 같은 무렵 <문학예술>지를 통해 등장한 신진 평론가로 성실하고도 설득력 있는 태도와 새로운 비평적 안목(眼目)으로 활약했다. 유종호는 <비평의 반성> <산문 정신고(散文精神考)> <비순수의 선언> 등의 평론을 통해 기성의 우리 문단의 가치관념을 크게 수정, 전후 문학의 동반적(同伴的)인 평론가로 1950년대에 크게 활약했다. 특히 이 시기의 젊은 평론가들이 그들의 이론적 근거를 수용한 것은 실존주의와 사르트르, 그리고 20세기 영미 문학의 T. S. 엘리엇, I. A. 리처드 등의 주지주의 시인과 비평가들의 이론이었다. 신진 평론가인 이철범이 영미문학의 이론을 활용했고, 원형갑 등이 실존철학의 이론을 원용한 것은 그 좋은 예였다. 아무튼 1950년대 후기는 비평의 방법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진 작가·시인들에 대한 창작의 방향을 주도(主導)했다는 점에서 비평활동은 활기를 띠었고, 자주 '비평의 시대'가 언급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한편 1955년 이후 우리 평단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것은 전통에 대한 정의와 계승문제, 우리 문학의 여건 등에 관해서였다. 이 전통론에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들이 제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를 들면 백철의 <전통론을 위한 서설>, 조연현의 <전통과 문학>, 문덕수(文德守)의 <전통론을 위한 각서>, 유종호의 <전통의 확립을 위하여>, 이형기의 <전통이란 무엇인가>, 최일수의 <문학의 세계성과 민족성>, 원형갑의 <표상성(表象性)과 전통의 문제> 등의 평론이 발표되었고, <사상계>지의 현대시 50년 심포지엄의 좌담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 문학에서 전통의 계승문제가 클로즈업되었다. 조지훈은 전통의 계승을 주장하는 입장이었고, 이어령·유종호는 우리 문학에서 전통의 근거와 계승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다. 이 문제는 마침내 더 확대되어 이형기, 정태용(鄭泰鎔)까지 동원되어 고전(古典)의 영향의 다과(多寡)를 묻지 않고 전통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고 적극적으로 전통 계승을 주장하였다.

한편 전후 문학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은 1955년을 전후하여 발간된 문예지 <문학예술> <현대문학> <자유문학>과 종합지인 <사상계(思想界)>의 역할이 큰 몫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예술>은 1954년에 창간되어 오영진(吳泳鎭)이 발행인이 되어 박남수가 편집을 맡아 보았는데, 새로운 해외 문학작품과 평론이 소개되고 또 유능한 많은 신진 작가·시인·평론가들을 문단에 등장시켰다. 그 일례를 들면 소설에 이호철, 선우휘, 송병수, 최상규(崔翔圭) 등과 시에는 박희진, 민재식, 박성룡, 성찬경·인태성(印泰星), 평론에는 이어령, 유종호 등이 모두 <문학예술>지를 통해 등장했던 것이다. <현대문학>지는 1955년 1월에 창간되어 국내 창작에 중점을 둔 편집으로 소설에 서기원, 박경리, 한말숙, 오유권 등, 시에 이성교(李姓敎), 김관식, 구자운 등, 평론에 김우종, 원형갑, 김양수(金良洙), 천이두 등이 등장했다. <자유문학>지는 1956년 <자유문협>의 기관지로 발간되어 소설에 남정현, 최인훈, 박용숙(朴容淑), 평론에 신동한(申東漢) 등의 신인을 발굴했다. 또한 종합지 <사상계>는 1953년에 창간된 이래 역량있는 신인 발굴과 무게있는 시·소설·평론을 게재하여 50년대 우리 문학의 주도적 역할을 제시했는데, 소설에 강용준, 박경수 등과 많은 신인들을 발굴했고, 권위있는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하여 역량있는 신진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무시켰다.

문학예술(文學藝術)[편집]

1954년 4월에 창간된 문예지. 주간에 오영진, 부주간에 원응서(元應瑞), 편집에 박남수가 활동. 통권 33호로 폐간. 외국 문학의 새로운 작품과 평론을 소개했고, 유능한 신인들을 발굴하여 1957년 12월 통권 32호로 종간.

현대문학(現代文學)[편집]

1955년 1월에 창간된 문예지. <문예>의 전통을 이은 월간지로 조연현이 주간으로 있으면서 우리 문학 사상 최장수(最長壽)의 문예지로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다. 주로 창작과 고전에 치중하며, 많은 작가·시인·평론가를 문단에 등장시켰다.

사상계(思想界)[편집]

1953년 4월에 창간된 종합지. 장준하가 주간이 되어 권위있는 편집으로 1950년대 우리 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함. 신인문학상 및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여 신인 등용에 힘썼다. 1970년 9월 폐간되었다.

이어령[편집]

李御寧 (1934- )

평론가.충남 온양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 1957년

<시비평 방법서설>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서구적인 문학이론과 비평방법론으로 1950년대 저널리즘을 화려하게 장식할 만큼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으며, 1950년대 후기에는 작가의 현실참여와 저항의식을 고취, 한때 평론가로서 크게 활동했으나 점차 저널리즘에 투신, 에세이로 베스트 셀러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화여대 교수 역임. 문학월간지 <문학사상>을 주관했다. 저서에 <저항의 문학>(1958), <지성의 오솔길>(1964),

<이어령 전작집>이 있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유종호[편집]

柳宗鎬 (1935- )

평론가.충북 충주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업. 청주교대 교수. 1950년대 후반기에 <문학예술>지를 통해 문단에 등장하여 건실한 비평방법과 이론으로 <언어의 유곡(幽谷)> <산문정신고> <현대시의 50년> <토착어의 인간상> 등 많은 평론을 발표했다. 1958년 제4회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받았고, 1962년 평론집 <비순수의 선언>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