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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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

말을 좋아하는 진평이 그 때의 함길도 체찰사(咸吉道體察使) 황보인(皇甫仁)에게 당부하고 당부해서 구해온 몽고말(蒙古馬)을 시험하여 보러 진평은 말게 높이 올라앉았다.

마침 그 날은 친경일(親耕日)로서 저편 경농제(慶農齊)에서는 우아한 풍류 소리가 바람결에 따라서 이곳까지 날아온다. 진평은 배경(陪耕)차로 한 몫 끼었었지만 이 말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몰래 빠져 나온 것이었다.

『휙─』

말께 높이 올라앉아서 발로 배를 한 번 찰 때에 말은 땅을 차면서 닫기 시작하였다.

진평은 말 등에 납작 엎드려서 연하여 말 배를 찼다. 찰 때마다 속력은 차차 더하여 마지막에는 살과 같이 빠르게 되었다.

꽤 넓은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았다. 말코에서는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꽤 놓아졌다.

『어디 몇 바퀴나 도나 보자.』

말의 기운을 시험해 보고자 그는 이 씨근거리는 말을 그냥 돌리려 하였다. 그러면서 걸핏 보매 친경장 쪽에서 웬 사람 하나이 이편으로 향하여 온다.

말을 그냥 달리면서 곁눈으로 보니 그 사람은 정녕 백부 양녕대군이었다.

『하하! 백부는 나를 데리러 오시는구나.』

모든 왕자 중에서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는 백부라 자기가 보이지 않으니까 찾으러 나온 것이 분명하였다.

삼촌은 조카를 본 모양이었다. 곧추 경무대 쪽을 향하여 온다. 그것을 보고 진평은 말을 달려서 광장을 벗어나서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삼촌의 오는 쪽을 향하여 달렸다.

어쩌나 보자 이만한 심사로 말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삼촌의 편으로 향하여 가지만 삼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무심히 온다. 말이 꽤 가까이 이르도록 삼촌을 말을 비키려 하지도 않고 마주 말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온다.

삼촌의 앞 세 결음에 이르러서 진평은 비로소 말고삐를 낚아채었다. 거기서 말이 뒷발을 구르며 공중으로 날아 올라 갈 때에 진평은 안장에서 올라 뛰어서 길에 떨어졌다. 떨어진 곳은 삼촌의 꼭 두 발자국 앞이었다.

『버릇없는 짐승이 어른의 머리 위를 넘었습니다. 참(斬)하리까?』

진평이 벙글벙글 웃으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할 때에 삼촌 양녕은

『말보다 네가 더 버릇없다. 고약한 녀석─』

하고 호령하였다.

『그럼 저를 참하리까?』

『그래라!』

『그럽지요. 그렇지만 저를 참하면 백부께서 애통해 하실 걸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평은 무릎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왜 몰래 빠져 나왔느냐?』

『네?』

『왜 몰래 이리로 왔느냐 말이다.』

『네……』

문득 진평은 적적한 듯이 머리를 숙였다.

『제가 있으면 무얼 합니까?』

『없으면 무얼 하느냐?』

『말을 탑지오. 그것은 인군(人君)의 놀이지 저 같은 야인(野人)이 섞여서 무얼 합니까?』

양녕은 잠시 사랑하는 조카의 얼굴만 뚫어지도록 들여다보다가

『가자!』

한 마디만 하고는 돌아서서 친경장 쪽으로 향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진평도 뒤를 따라갔다.

양녕과 조카가 친경장으로 돌아온 때는 방금 친경이 시작 되는 때였다. 왕 이하로 고관 거족들이 모두 야복(野服)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까지 동이고, 동서반으로 나누어서 갈라서고, 커다란 황소에 보습을 메우고 회색 옷을 입히고 왕이 맨 앞서서 보습을 잡고, 한편은 대군(大君), 한편은 군(君)이 대신들과 함께 배경(陪耕)을 하고 관풍각에는, 특별히 배관의 허락을 받은 비빈(妃嬪)이며 고관 부인들이 발 뒤에서 보고 있고, 경농재에서는 아악이 부드러이 울리어 나왔다.

그 음악을 따라서 동창 서창(東唱西唱)이 노래를 부르며 노래에 좇아 주마제조(走馬提調)의 끄는 소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간다.

선왕에게서 광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양녕은 좀 예사롭지 못한 일이라도 할 만한 특권이 있으리만큼 조카를 끌고, 바야흐로 소의 발이 첫 걸음을 내어 디딜 때에 대군 열에 끼어 들어갔다. 안평대군 용(安平大君 瑢) (세자의 둘째동생)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안색을 하며 혀를 채는 것을 모른 체하고 세자의 뒤에 두 사람은 들어가 끼었다.

진평은 처음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그 틈에 끼었다. 아까 타던 말을 좀더 타보고 싶었다. 말을 길 가 소나무에 매고 왔지만 마음이 그리로만 쏠렸다. 이 친경이라는 것이 도대체 우스웠다. 공잔가 맹잔가의 소견에 좇아서 임금도 농부들의 고초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한다 하지만, 도대체 이것으로 과연 농부의 땀을 알 수가 있을까. 좌우편에서는 노래와 음악이 흥을 돋우며 대궐에서 이 곳까지 보련을 타고 오고 전후 좌우에서 부액을 하고 보습 끝에 손만 약간 대는 듯이 하고, 인제 몇 걸음만 나가면 친경을 끝낼 터이며 그러고 대궐로 돌아가서는 몸을 모두 씻고 닦고 내관들이 부채질을 하여 드리고─이런 일로써 백성의 고초가 알아지랴─이런 생각으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축에 끼었다. 시원치 않은 듯이 한 걸음 두 걸음 나가면서 앞에 아버님 왕의 등을 바라보았다.

왕은 엄숙한 태도였다. 보습을 잡은 손에 일어선 핏대로써 왕이 힘있게 보습을 잡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보습 잡은 솜씨가 서투른지라 연해 한 편으로 쏠리려는 몸을 바로잡으며 엄숙한 태도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이것을 보며 따라갈 동안, 진평의 마음에 생겨서 차차 자라난 생각은

『왕이 엄숙한 마음으로 애쓴다.』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알았다. 이 친경이라는 것은 결코 왕이 몸소 농부의 고초를 맛본다는 단순한 의미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좀더 다른 뜻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즉, 왕이 백성들의 고초를 알려고 애쓴다 하는 점을 재상들에게 보이어서 재상들로 하여금 안일에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려는 군왕의 무언의 훈시였다.

진평은 재상들을 둘러보았다. 재상들은 모두 한결같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있었다.

진평은 비로소 미소하였다. 그리고 그의 완강한 팔을 펴서 보습의 한 편 채를 힘있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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