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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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집]

딱한 일이었다.

과연 딱하였다.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왕이 감기로써 몸이 좀 불편해 누워 있을 때에 세자가 문병을 왔다. 수양도 문병을 왔다.

그 때 또 조그만 충돌이 있었다.

문병을 한 뒤에 세자와 수양, 이 형제가 대청에 물러나가서 한담을 할 때에, 수양은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조각에 무슨 글을 끼적이고 있었다.

이 장난을 들여다보다가 세자가 문득 질색을 하였다.

『이게 무에란 말인가?』

종이에는 소학(小學)의 한 구절,

〈舅姑若使价婦母敢敵耦於家婦〉

라는 글이 적히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耦」자가 「偶」자로 되어 있었다. 세자는 그것을 지적하였다.

『왜요?』

수양이 반문하였다.

『「우」자의 변이 틀렸네.』

『「짝 우」자 아닙니까?』

『「짝 우」자는 「짝 우」자지만 인(人)변에 쓴 자가 아니라 뢰(耒)변에 쓴 자라네.』

『뢰변이오? 뢰변이라면 무슨─밭을 간다든가 가래를 어떡헌다든가 하는 자가 아닐까요? 「밭길 우」라든가 「가래질할 우」라든가……』

『에이!』

세자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입술까지 파들파들 떨었다.

『왕가에 태어나서 그렇듯 무식해서 무엇에 쓴단 말인가.

가래뢰(耒)변에 쓴 자는 본시는 「따비 우」자지만 여기서는 「짝 우」자로 되는 법이야. 그런 것도 모른담. 그런……』

『「耦」자가 본시 따비(따비가 무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따비 우」자고 「짝 우」자가 따로이 있으면 「짝 우」자를 쓸 경우에 따비 우 자를 쓴 것이 실수가 아닐까요? 「짝 우」자를 쓰는 게 옳지 않을까요?』

수양은 그냥 벙글벙글 웃으면서 이렇게 반문하였다. 거기 대해서 세자는 기가 막히는 듯이 입을 떨었다.

『에익! 무식한! 옛날 성현이……』

『성현도 아마 저같이 무식해서 오자(誤字)를 쓰신 모양입지요.』

세자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그러나 수양은 그냥 벙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이 웃지 못할 희극─정침(正寢)에 누워서 이 다툼을 들은 왕은 뜻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에 있어서 수양은 맹자(孟子)한 구절만 따로 바치라 해도 정확히 바치지 못한다. 뜻만 통할 것 같으면 글자 개개는 얼마를 고칠지라도 기탄함이 없을 인물이었다. 거기 반하여 세자는, 뜻은 통하건 말건 (수양의 말마따나) 옛날 성현이 무식해서 잘못 쓴 딴 자로라도 원문대로 고대로 지키려는 사람이었다.

이 활달한 둘째아드님과 소소한 맏아드님

(아아, 왜 순서가 바뀌었느냐!)

『형님. 부탁이올시다. 만일에 내가 먼저 불행케 된 뒤라도 동궁의 장래를 형님께 부탁합니다. 동궁은 본시 심약해서 백부님께는 비록 자기가 군왕일지라도 거역을 못하리다. 형님께서 잘 감시하셔서 유와 불화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동생으로서 연로하신 형님께 후사를 부탁한다는 것은 일이 거꾸로 되었습니다마는 지금 상태로 보아서 아마 이 부탁을 해 두어야 할까 봅니다.』

이 왕의 간곡한 부탁에 대하여 양녕은 절하여 응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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