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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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陰謨)[편집]

“오빠 웨 요새는 술도 안 마시고 이렇게 얌전하우”

연순이는 사촌오빠인 창선(昌善)이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요전날 밤에 실수한 다음부터는 술도 먹을 생각이 없더라”

“그것이 실수인 줄 아시는 이가 웨 전일에는 종로로 비틀거리며 다니셨어요”

“아! 내가 언제!”

“내가 보았다우 어떤이와 손목을 마주 잡고 뒤떠드시며 가시는 것을 보았어요”

창선이는 별안간에 손을 내저으며

“야― 웨 이렇게 떠드니 명순이가 들으면 큰일 나라고……”

이 말을 들은 연순이는 속으로 퍽 우습게 생각하였다. 그러지 않어도 요지음 오빠의 마음이 명순이게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짐작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연순이는 일부러 시침이를 딱 떼이고

“명순이가 들으면 어때요 오빠가 모주병정인것을 다 알고 있는데”

“뭐야? 어디서 들어서 아니?”

“참 오전날 밤 말이오 오빠도 이야기 안했우?

창선이는 낯을 찡그리며

“그날 저녁 내가 퍽 취하여 보이더냐”

이렇게 말하였다.

“퍽 취하신게 무어요 아주 농창이 되어서 들어오셨던데!”

창선이는 그날 저녁 술을 많이 먹었으되 명순이를 대할 때에는 정신을 똑똑이 차린 것 같은데 농창이 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연순이가 거짓말로 꾸며 대는 것 같다.

“그런 거짓말은 그만 하고 그래 명순이가 그 날 밤 내가 들어간 다음 무에라고 하더냐”

연순이는 오빠를 놀려주는 것이 퍽 자미가 있었따. 명순의 마음을 알려고 애쓰는 것이 더욱 흥미가 있었다.

“젊은 청년이 술이 취하여 다니신다고 흉을 봐요 술 마시는 이는 꿈에 보아도 싫다고 해요”

연순이는 일부러 이렇게 말하고 오빠의 낯을 보았다. 그 말을 들은 오빠의 낯에는 낙마으이 기분이 떠돌았다. 아무 말도 없이 힘없이 앉았다. 마음이 괴로워 하는 모양이다.

아닌게 아니라 창선의 마음은 답답하였다. 명순이를 처음 대할 때부터 그 아름다운 용모에 취하여 정열에 불붙는 청춘의 마음 그것을 금치 못하였다.

그 후 삼사일 동안 그 마음은점점 자라서 조용한 기회만 있으면 연순에게서 명순에게 대한 모든 것을 물어보자고 하였던 것이 연순의 말을 들어보니 다 틀린 것을 깨닫고 실망을 하였다. 첫마디에 퇴짜를 마진 셈이었다.

연순이는 오빠가 실망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반갑게 생각하였다.

“나의 생각하던 기회가 왔고나 명순이를 오빠늬 손에 들어가게하자 그러면 철하는 나의 것이다. 오빠의 태도를 보면 명순이를 퍽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고 나서

“오빠 웨 그렇게 힘 없이 앉았어요 어디 편치 않수”

연순이는 능청스럽게 말하였다.

“다 듣기 싫다. 술을 마서야 좋단 말이야 그 놈의 것이”

이렇게 말을 하고는 일어서서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연순이는 나가려고 하는 오빠를 가로 막으며

“어디로 가우”

“술 마시러 가지”

“대 낮에 약주를 마시다니요”

“언제든지 좋지”

창선이는 이렇게 말하고 문을 열려고 한다.

연순이는 오빠의 옷자락을 잡으며

“오빠! 좀 앉으세요 할이야기가 있으니”

창선이는 선채로 연순이를 내려다 보면서

“할 말이라니 무슨 말이야”

“아니 그렇게 잠깐 동안에 할 말이 못됩니다. 오빠에게 유익한 말인데요 앉으서야 말을 하지요”

그 때에야 창선이는 자리에 도루 앉으며

“무슨 말이냐”

이렇게 말하고 연순이를 바라본다.

“오빠 장가들 생각이 있우 없수”

이 말에는 창선이도 귀가 번쩍 뚫렸다.

연순이가 자기의 눈치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창선이는 연순이를 보고 중매를 서달라고 할 생각은 있었지만 참아 입이 떨어지지 아니하여 말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연순이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오니 무슨 수나 난 듯이

“말이 났으니 말이지 명순이는 참 똑똑하더라 아즉 결혼은 안한 여자냐?”

“지금 문제가 많은 여자예요”

창선이는 눈이 둥글애져서

“문제라니 무슨 문제”

“어머니가 시집을 가라해서 시집가기 싫다고 집을 아주 나왔답니다”

“웨 시집을 가라는데 집을 나오다니 마음이 맞지 아니한 곳으로 가라고 해서?”

연순이는 한번 웃고나서

“그렇답니다”

창선이는 명순에게 가장 동정하는 듯이

“그렇지 그래야되지 마음이 없는데로 어떻게 가나 어머니도 망령이지 지금이 어느 때라고 십년전이나 이십년전 세상과 똑 같이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어머니나 아버지가 결혼을 주장하던 때는 벌써 옛날이었는데”

이렇게 말 하였다. 집을 아주 나왔다는 말을 들으니 명순이가 금방 자기의 것이 된 것 같이 생각이 나며 독안에 든 쥐와 같이 생각이 났다.

“집을 아주 나왔다니 이제부터 어떻게 살어가겠다는겐구”

“어디 취직을 하겠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얼른 될까”

“명순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감옥으로 들어갔는데 그 사람이 이년반이면 나온대요 그동안은 어떻게 하여서라도 먹고 살어가겠다고 합니다. 직공이 되던지 거지노릇을 하던지”

연순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명순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하나도 빼여놓지 않고 낱낱이 이야기 하였다.

연순의 말을 듣고 있던 창선이는

“참 마음이 강한 여자인데”

이렇게 말하고 명순이를 수중에 넣기가 용이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사나이가 되어가지고 그만한 여자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내가 만일 사나이라면 그까짓 것쯤이야”

연순이는 오빠가 낙망이 돈 것을 알고 그의 용기를 내여주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던지 오빠를 축여서 명순이를 타락시키려고 하는 것이 연순의 유일한 목적이었는데 오빠가 자신 없는 소리를 할 때면 마음이 갑갑하였다.

“오빠 힘써 보십시오 먼저 내가 소개를 하여 드릴 터이니 명순이와 대면하여 가지고 어빠의 수단대로 하여 보세요”

창선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아무 말도 없이 읹았다가

“다 틀렸다. 술 마시는 사람을 싫여한다는데 내가 수단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신용할 리가 있니 그 날 밤 내가 승거워 웨 그 방문을 열었을까 그것참”

“아니 오빠 술 하시는 것쯤이야 내가 명순이에게 잘 말하여 오빠가 그렇게 방탕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암시하여 드릴 터이니 그 후에 일을 잘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창선이는 여자에게는 어떠한 일을 하던지 자신이 있다는 듯이 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

“그것만 해결이 되면 그 다음의 일은 냉수에 꿀 타먹기보다 더 쉬웁지 어떠한 연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넘어가지 더욱이 명순의 지금 환경이 그러한 것만큼 내 수중에 넣기는 아무거도 아니다”

이말을 들은 연순이는 자기가 계획하는 일이 쉬웁게 진행이 될 것을 알고 마은이 퍽 기뻤다.

“자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예요”

연순이는 알고 싶었다.

“쉬웁지 쉬워 내가 얌전한 사람이라는 것만 명순의게 알려주기만 하여다우”

아니 그래도 나는 걸리게 하지 마세요 나만 걸리게 되는 날에는 큰 탈이 납니다”

연순이는 자기의 신변이 무서웠다. 만일 자기의 오빠가 공모를 하여가지고 명순이를 마굴에 넣었다는 것을 이 다음 철하가 알게만 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연순이도 철하에게 버림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도리어 안한이만 못한 일이라고 연순이는 생각하였다.

“그까지것은 걱정말아! 네가 지을 내려간다음 어떠한 기회를 보아 내 수단 것 할터이니 두고봐라”

“참 그렇게 합시다. 아무쭈록 내 이름이 세상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지 마서야 해요”

연순이는 재삼 부탁삼아 당부를 하였다.

방탕한 오빠를 괴여서 명순이를 마굴로 집어넣자고 하는 연순의 추한 행동, 흉계, 음모 이것이 인생을 저주하려는 악마들이 아니고 무엇일까?

“오빠 그러면 저는 나가겠습니다. 명순이가 홀로 기다릴 모양이니 오빠 기회를 보아 오늘밤이든지 내일이든지 명순이를 소개하야 드릴터이니 약주를 마시지 마십시오 약주만 마시면 다 틀립니다”

연순이는 이렇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외로이 남은 창선이는 마음이 공연이 울렁거리었다.

"그것을 거저 그냥……”

이렇게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쓴다.

창선이라 하면 서울안에서도 둘째로 가라면 설어할만한 불량배이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침착한 사람이던 것이 전문학교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뒤로는 술, 계집, 도박 이러한 짓만 하여 가산을 탕패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이 돌아간 원인도 세상에서는 아들의 불량한 것을 비관하여 자살하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연순의 아버지가 딸 자식 밖에 없으므로 장선이가 당연히 계자로 들어가 수만금의 상속자가 될 것인데도 너무 방탕한 행동을 하여 연순의 아버지도 계자를 삼을 것을 단념하고 있었다. 여러번 충고를 하였지만 도리어 반항을 하며 매일 매야 술로 세상을 보내었다.

그러나 사람이 영리하게 생기고 상식도 상당이 있으므로 협잡배의 꾀임에는 쉬웁게 떨어지지 않았다. 경숭 안에서도 유슈한 사기단들이 연순의 아버지 재산에 탐이 나서 그 상속자인 창선이를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꾀이려고 하였으나 영리한 창선이는 쉽사리 넘어가지를 않았다.

“하하…… 이사람들 아직 때가 못되었네”

이렇게 핑계를 하며 그들의 요리를 수삼차나 공짜로 얻어 먹었을 뿐이다.

“이놈들 내가 누구라고 이렇게 술을 먹고 농창을 부리니 세상 부자의 귀동자로 아나 안될걸 너히들이 도리어 넘어가는 것을 봐라”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될듯될듯한 말을 하여 그 헙잡배들의 술을 발라먹기가 일수이었다.

창선이는 귀를 기우려 사랑방에서 새새거리는 말소리를 귀담아 들어려고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 이따금 명순이의 옥을 부시는 듯한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창선이는 그 웃음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봄날 같이 화창하여 본 명순의 아름다운 자태를 눈앞에 그리어보고 두 손을 들어 안아보기도 하였다.

창선의 마음은 확실히 미쳤다. 명순이라는 여자 그보다도 남달리 아름다운 그 모양이 창선의 마음을 도취시키었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뒤에서 어떠한 계획을 하고 있는 줄도 알지 못하고 연순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앉았다.

“웨 그런말을 하였니 만나는 동무들에게 내 말을 하면 어떻게 하겠니”

“아 오빠는 비록 술을 마셔도 그렇게 경솔한 사람은 아니라우 속상하는 일이 있어서 술을 마시는 것이지 아지 얌전한 이요”

“얌전하고 무애고 글쎄 웨 그런 말을 하였어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니”

“오빠에게 말한 것도 오빤 발이 넓으니 언니의 취직할 곳이나 주선하여 줄까 해서 그런 말을 했지 무얼”

명순이는 취직이라는 바람에 귀가 번쩍 열렸다.

“그래 어디 취직하염즉한 곳이 있다더냐”

“오빠도 형님의 신변을 퍽 걱정합데다. 아무쭈록 취직할 곳을 살펴보아서 좋은 곳에 취직을 시키도록 주선을 하시겠다고 하던데요”

연순이는 명순이가 솔깃하도록만 말하였다. 그러고 명순의 태도를 엿보았다. 명순이는 연순의 말만 들어도 앞길이 열린것 같기도 하였다.

“연순아 참말이냐”

“내가 거짓말 하겠우”

“그렇다면 나는 서울 안에서는 취직할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니 서울에 있으면 어머니 성화에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러면 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오빠와 말씀하여 보지요 그러면 어떤 시골이든지 좋겠우”

연순이는 능칭그럽게 고개를 개웃거리며 묻는다.

“굶어 죽을 데가 아니면 어디든지 좋다. 이년반 동안만 고생하면 될걸 ―― 상관있니 철하씨는 감옥에서도 고생하고 계신데”

명순의 입에서는 언제든지 철하의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순이는 속으로

“암만 그래도 철하는 내 것이다”

이렇게 부르짖고서

“잘 되도록 오빠와 말씀하여 보지요”

명순이는 연순의 말이 퍽도 고마웠다.

“무엇이고 무엇이고 하여도 우정에서 더한 것이 없고나”

이렇게까지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