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찾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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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집]

어떠한 장질부사 많이 돌아다니던 겨울이었다. 방앗간에 가서 쌀을 고르고 일급을 받아서 겨우 그날 그날을 지내가는 수님(守任)이는 오늘도 전과 같이 하루종일 일을 하고 자기집에 돌아왔다.

자기 집이란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안방 주인인 철도 직공의 식구가 들어 있고 건넌방에는 재깜장사<野菜行商> 식구가 들어 있고 수님이의 어머니와 수님이가 난 지 몇 달 안되는 사내 갓난아이와 세 식구는 그 아랫방에 쟁개비를 걸고서 밥을 해먹으면서 살아간다.

수님이는 몇 달 전까지는 삼대 같은 머리를 충충 땋고서 후리후리한 키에 환하게 생긴 얼굴로 아침저녁 돈벌이를 하러 방앗간에를 다니는, 바닷가에 나와서 뛰어다니는 해녀 같은 처녀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는 그는 소문도 없이 머리를 쪽찌었다. 그리고 머리 쪽찐 지 두서너달이 되자 또 옥동 같은 아들을 순산하였다. 아들을 낳고 몇 달 동안은 그 정미소에 직공 감독으로 있는 나이 스물 칠팔 세쯤 되고 머리에 기름을 많이 발라 착 달라붙여 빤빤하게 윤기가 흐르게 갈라붙이고 금니 해박은 얼굴빛이 오래 된 동전빛같이 붉고도 젊은 사람 하나이 아침 저녁으로 출입하며 식량도 대어주고 용돈량도 갖다 주며 어떤 날은 수님이와 같이 자고 가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그 동리에 새 소문 하나가 떠돌기 시작하였다.

“수님이는 처녀 때 서방질을 해서 자식을 낳아다지!”

“어쩌면 소문 없이 시집을 가?”

“그러나 저러나 그나마 남편 되는 사람이 뒤를 보아주지 않는다데.”

“벌써 도망간 지가 언제라고. 방앗간 돈을 2백 원이나 쓰고서 뒤가 몰리니까 도망을 갔다든데.”

하는 소문이 나기는 그애 아버지 되는 직공 감독이 수님이 집에 발을 끊은 지 1주일쯤 되어서였다.

수님이는 집에 들어와 머리수건을 벗어놓고 방문을 열며,

“어머니 어린애가 또 울지 않았어요?”

하고 아랫목에 누더기 포대기를 덮어서 뉘어 놓은 어린애 앞으로 바싹 가서 앉아 눈 감고 자는 애의 새큰한 젖내 나는 입에다 제 입을 대어보더니,

“에게 어쩌면 이렇게두 몸이 더울까, 아주 청동 화로 같으이.”

하고는 다시 아래위를 매만져준다.

옆에 앉아 있는 그의 어머니란 나이 50이 넘어 60을 바라보는 노파는 가뜩이나 주름살이 많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실룩하게 삼각진 눈을 더욱 실룩하게 해 가지고 무엇이 그리 시덥지 않은지 삐죽한 입을 내밀고서 귀먹장이처럼 아무 말이 없이 한참 앉았더니 잠깐 체머리를 흔드는 듯하더니 말이 나온다.

“얘 말 마라. 아까 나는 그 애가 죽는 줄 알았다. 점심때가 좀 넘어서 헛소리를 하더니 두 눈을 허옇게 뒤집어쓰고서 제 얼굴을 제 손으로 쥐어뜯는데……에 무서! 나는 꼭 죽으려는 줄 알았어.”

수님이는 걱정이 더럭 나고 또 죽는다는 말에 무서운 생각이 나서,

“그래 어떻게 하셨소?”

“무얼 어떻게 해. 어저께 네가 지어다 둔 그 가루약을 물에다 타 먹였더니 지금은 조금 덜한지 잠이 들어 자나보다.”

“그래 그 약을 다 먹이셨소?”

“다 먹였지? 어디 얼마 남았더냐. 눈꼽짹이만큼 남었든걸.”

“그래 아주 없어요?”

“다 먹였다니까 그러네.”

수님이는 조금 야윈 얼굴에 봄철에 늘어진 버들가지같이 이리저리 겨묻은 머리털이 두서너 줄 섬세하게 내리덮힌 두 눈에 근심스러운 빛을 띠우고서 다시 쌔근쌔근 코가 메어서 숨소리가 높은 어린애를 보더니,

“그럼 어떻게 하나. 돈이 있어야 또 약을 지어오지. 오늘 번 돈이라고는 어저께보다 쌀이 나빠서 어떻게 뉘와 돌이 많은지 40전밖에 못 벌었는데. 이것으로 약을 또 지어오면 내일 아침 쌀 못 팔 텐데.”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자기 어머니를 쳐다보다가 어머니 얼굴이 불쾌해 보이니까 다시 고개를 어린애 편으로 돌리자 어린애는 무엇에 놀래었는지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두 손을 공중으로 대고 산약(山藥) 같은 손가락을 벌리고서 바늘에 찔린 듯이 와 하고 운다.

수님이는 우는 소리를 듣더니 질겁을 해서 어린애를 끼어안고 허리춤에서 젖을 꺼내어 물려주며,

“오, 오, 우지 마, 우지 마.”

하며 어린애를 달래면서 추슬린다. 젖꼭지가 입에 들어가니까 조금 애는 울음을 그치었다.

수님이는 한 손으로 어린애가 문 젖을 가위 집듯 집어서 지그시 누르면서,

“어멈이 종일 없어서 많이 울었지? 배가 고파서. 에그 가엾어라. 자 인제는 실컷 먹어라. 그리고 얼른 병이 나서 잘 자거라.”

하며 혼잣소리로 말도 못 알아듣는 어린애와 수작을 한다.

어린애는 젖꼭지를 물기는 물었으나 젖도 잘 먹지 못하면서 보채기만 한다.

“어머니 오늘 예배당 목사님은 오지 않으셨어요?”

하며 방 한구석에 앉아서 어린애 기저귀를 개키는 자기 어머니를 보면서 다시 수님이는 물었다.

“안 왔더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우 마땅치가 않은 모양이다. 하루종일 앓는 애를 달래고 약 먹이고 할 적에 귀찮은 생각이 날 적마다,

“원수엣 자식, 원수엣 자식.”

하며 혼자 중얼대니까 자기 딸을 보자 더욱 화가 치밀며,

(무슨 업원으로 자식은 나 가지고 구차한 살림에 저 혼자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요, 늙은 에미까지 이 고생을 시키는고?)

하는 생각이 나서 차마 인정에, 산 자식 죽으라고는 못하지마는 어떻든 원수 같은 생각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다.

수님이는 오늘도 목사 오기를 기다린다.

“어째 여태까지 오시지를 않을까요?”

“내가 아니? 못 오게 되니까 못 오는 게지.”

수님이는 어머니의 성미를 알므로 거슬릴 필요는 없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어서 저녁이나 해먹읍시다. 기저귀는 내 개킬께 어서 나가셔서 쌀이나 씻으시우.”

어머니는 화풀이로 하다못해 잔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말마다 불복이다.

“무슨 밥을 벌써 해. 두부장수도 가지 않았는데. 그리고 오늘만 먹으면 제일이냐. 내일 생각은 하지 않고……”

“그럼 어떻게 하우. 어떻든지 저녁을 해먹고 내일을 걱정이라도 해야 하지 않소.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 저녁은 오늘 저녁이지오.”

“듣기 싫다. 내일은 무슨 뾰족한 수가 나니? 굶으면 굶었지 무슨 도리가 있어야지.”

“글쎄 산사람 입에 거미줄 치리까. 왜 글쎄 그러시우.”

“뭘 그러느냐고? 내가 나쁜 말한 게 무엇이냐. 조금이라도 경우에 틀린 말 했니?”

“누가 경우에 틀린 말 했댔소. 이왕 일이 그렇게 된 걸 자꾸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란 말씀이오?”

이러자 다시 어린애는 어디가 아픈지 불로 지지는 것같이 파랗게 질리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운다.

수님이는 어린애 입에 이쪽 젖꼭지를 갈아 물리면서,

“우왜, 우왜.”

하며 달래는데 그 어머니는 그 옆에서 이 꼴을 보더니,

“망할 자식, 죽으려거든 얼른 죽어버리지 애비 없는 자식이 살아서 무슨 수가 있겠다고 남 고생만 시키니. 에미나 고생하지 않게 죽으려거든 진작 죽어라.”

하며 옆의 담뱃대를 질화로 전에다가 탁탁 턴다. 수님이는 누가 자기 아들을 잡으러 오는 듯이 어린애를 옆으로 안고 돌면서,

“어머니는 그게 무슨 말이요? 남들은 자식이 없어서 불공을 한다, 경을 읽는다, 돈을 푹푹 써 가면서 자식을 비는 사람들도 있는데 난 자식을 죽으라고 그래요? 이 애가 죽어서 어머니에게 금방 큰 복이 내릴 듯싶소?”

“복이 내리지 않고. 내가 하루 잠을 자도 다리를 펴고 자겠다.”

“잘도 다리를 펴고 주무시겠소? 마음을 그렇게 먹으면 하나님이 내릴 복도 도로 가져 가신다우.”

“듣기 싫다. 하나님이 무슨 웅뎅이가 부러질 하나님이냐? 누가 하나님을 보았다더냐? 너 암만 하나님을 믿어 보려므나. 하나님 믿는다고 죽을 녀석이 산다드냐? 모두 팔자야, 팔자. 이 고생하는 것도 내 팔자지마는 늙게 딸 하나 두었다가 덕은 못 보아도 요 모양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수님이도 계집 마음에 참을 수가 없는지 까만 눈에서 불 같은 광채가 나며 입술이 뾰족해지며 목소리가 높아간다.

“그래 어머니는 딸 길러서 덕 보려 했습디까?”

“덕 보지 않고? 핏덩이서부터 열 팔구 세 거의 스무 살이나 되두룩 기를 적에야 무슨 그래도 여망이 있기를 바라고 그 갖은 고생을 다해가면서 길렀지. 그래 어디서 어떻게 빌어먹는지도 모르는 방앗간 놈에게 몸을 더럽히게 하려고 하였드냐? 내 그놈 생각을 할 적마다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린다.”

“왜 그이만 잘못했오? 그렇게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거든 나를 잡어잡숫구려? 그것도 나를 방앗간에 다니게 한 덕분이죠. 나를 방앗간에만 다니지 않게 했더라믄 그런 짓을 하래도 하지 않았다우.”

어머니는 잡아먹으려는 짐승을 어르는 암사자 모양으로 웅얼대며,

“응 그래도 서방녀석 역성을 드는구나? 어디 얼마나 드나 보자. 네가 그 녀석 믿고 살다가 덩이나 탈 듯싶으냐? 그렇게도 찰떡같이 든 정을 왜 다 풀지 못하고 요 모양으로 요 고생이냐? 네 눈에는 보이는 게 없고 어미년이 사람 같지도 않지?”

수님이는 성미를 못 이기는 중에 어머니 말이 야속하기도 하고 또 자기 신세가 어쩐지 비참한 듯하여 갑자기 눈물이 복받치며 울음이 터진다.

“왜 날마다 나를 잡아잡숫지 못해서 이렇게 못 살게 굴우? 그렇게 보기 싫거든 다른 데로 가시구려.”

하고 감은 눈을 감았다 뜰 때 이슬 같은 눈물이 두 뺨 위로 대르륵 굴러 젖꼭지를 문 어린애 뺨 위에 떨어진다.

수님이는 우는 중에도 어린애 위에 떨어진 눈물을 씻어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살 위에 떨어진 눈물을 씻으면 또 떨어지고 씻으면 또 떨어져 어머니의 따뜻한 눈물은 애기의 얼굴을 곱게 씻어놓았다. 그리고 가슴에서 뭉클한 감정이 울음에 씻겨 녹아 눈물이 되어 어린애 얼굴에 떨어질수록 귀여운 애기는 수님이를 울린다. 부드러운 손, 귀여운 얼굴, 조그마한 몸뚱이가 눈물어린 그것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이다가 눈물이 그 애기 뺨 위에 떨어지고 다시 똑똑하게 까만 머리, 까만 눈썹이 보이고 입과 코와 두 눈이 보일 때 수님이는 다시 어린애를 자기 가슴에 꼭 끼어안아 가슴 복판에 어리고 서린 만단정회를 다만 어린애로 눌러서 짜내고 녹여내는 것 외에는 그에게 아무 위로가 없었다. 모습이 아버지와 같은 그 어린애를 자기 가슴에 안을 때 눈물의 하소연이 그 아이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여기 없는 그의 아버지에게 하는 것 같고 눈물 고인 흐릿한 눈으로 윤곽이 비슷한 그 애를 볼 때 그는 그 애 아버지가 그 사내다운 얼굴에 애정이 넘치는 웃음을 띠우고 자기를 어루만져 위로하는 듯하였다. 그는 그 애의 이름을 부르려 할 적마다 그 애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고 그 아이를 자기 가슴에 안을 때 그 애가 안겨 울 곳 없는 것이 얼마나 자기에게 외로움을 주는지 알지 못하였다.

“너의 아버지가 있었드면?”

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지마는 그 말 밑에는 모든 해결과 끝없는 행복이 달린 것 같았다.

수님이는 떨리는 긴 한숨을 쉬고 땅이 꺼져 사라질 듯이 가슴을 내려앉히었다. 우는 꼴을 보는 어머니는 속으로는 가엾은 생각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마는 짖궂은 고집을 풀지 못하고서 다시 응얼대는 소리로,

“울기는 다 저녁때 왜 여우같이 쪽쪽 우니? 계집년이 그러고서 집안이 흥할 줄 아느냐? 얘, 될 것도 안되겠다, 울지나 마라. 방자스럽다.”

그러나 수님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흐르다 남은 눈물방울이 기름한 속눈썹 위에 떨어지려다가 걸친 두 눈으로 먼산만 바라보고 앉아서 콧물만 마시고 앉아 있다.

그때 누구인지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수님이 있니?”

하는 사람은 그의 오라버니였다. 수님이는 얼른 눈물을 씻고 방문을 열면서,

“오라버니 오세요?”

하는 소리는 아직까지도 목메인 소리다. 오라버니라는 사람은 나이가 30이 남짓해보이는 노동자로 깎은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무명저고리 위에는 까만 조끼를 입고 짚세기 신은 발에 종아리에는 누런 각반을 쳤다. 얼굴이 둥글넙적한데다가 눈이 조금 큼직하나 결코 불량하여 보이지는 않고 두 뺨에는 술기운이 돌아 검붉게 익었다.

방안으로 들어앉으며 어머니(서모)를 보고 인사를 하고 윗목에 가 쭈그리고 앉으며,

“애가 좀 어떠냐?”

하고 수님이가 안고 앉은 어린애를 구부정하고 들여다본다.

수님이는 뻘건 눈을 부벼 눈물을 씻고 코를 풀면서,

“마찬가지여요. 점점 더해가는 모양이어요.”

하고 또 한번 떠는 한숨을 쉰다. 오라버니는 속마음으로 어린 계집애가 자식이 앓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우는 줄 알고,

“울기는 왜 울었니? 울기는 왜 울어. 운다고 어린애 병이 낫는다더냐! 어떻게 주선을 해서라도 고칠 도리를 해야지. 남의 자식을 낳았다가 기르지도 못하고 죽이면 그런 면목도 없고 넌들……”

말이 채 그치지도 않아서 그의 어머니가 그래도 양심이 간지럽던지,

“아니라네, 내가 하도 화가 나서 잔말을 좀 했드니 그렇게 쪽쪽 울고 앉았다네.”

하며 자기 허물을 자백이나 하는 듯이 말을 한다. 오라버니는 주머니에서 마코 한 갑을 꺼내서 대물뿌리에 담배를 끼워 붙여 물더니,

“어머니 걱정을 듣고서 울기는 무얼 울어? 나는 무슨 일인가 했지.”

하고 시비곡직을 그대로 쓸어버리는 듯이 말머리를 돌려서,

“어린애 약은 먹였니?”

“먹였어요.”

“무슨 약을? 그 약국에서 지어오는 조선약?”

“네?”

“안 된다, 그것을 먹여서는. 요새는 양약을 먹여야 한다. 요새 시대에는 서양 의술이 제일이야. 나는 하도 신기한 일을 보았기에 말이지, 참, 내 그렇게도 신기한 일은 처음 보았어.”

옆에 앉았던 어머니가 얼른 말 틈을 타서 빗대놓고 수님이를 책망 비슷하게 수님의 오라버니더러 들어보라는 듯이,

“약은 먹여 무얼 해. 예배당인지 빌어먹는 데인지 있는 목사나 불러다가 날마다 엎드려서 기도만 하면 거기서 밥도 나오고 떡도 나오고 모든 일이 다 만사형통할걸!”

하고서 입을 삐쭉 하고서 고개를 숙인다.

“너 예수 믿니?”

하고 오라버니는 수님을 보더니,

“허허, 그것도 하는 것이 좋기는 좋지마는 나는 그 속을 모르겠더라. 무엇이든지 믿으면 안 믿는 것보담은 낫겠지마는. 예수, 예수, 남들은 하느님 앞에 기도하면 병도 낫는다고 그러드라마는 나는 서양 의술만큼 신기하게 알지는 못하니까. 글쎄 나 다니는 일본사람의 집 와다나베상이라고 하는 이의 여편네가 첫애를 낳는데 어린애가 손부터 나오고는 그대로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는구나. 지금 나이가 스물셋 된 여편넨데. 그래서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 꼭 죽었나보다 하고 속으로 죽을 줄로만 알고 있지를 않았겠니?”

늙은 노파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저런 그래, 어떻게 했어!”

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담뱃대를 놓으면서 말하는 수님이 오라버니를 쳐다본다.

“그러자 주인 되는 사람이 전화를 해요. 전화한 지 30분쯤 되어서 XX병원 의사 한 사람하고 간호부라고 하는 일본 여편네 둘이 인력거를 타고 오더니 조금 있다가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나지 않겠읍니까. 그저 의원이 들어가자 잠깐 사이예요. 그래서 하도 신기하기에 그 집 하인더러 물으니까 기계로 끄집어내서 아주 산모두 괜찮고 어린애도 괜찮다고. 나는 이 소리를 듣고 거짓말같이 생각이 되지 않겠니.”

하고 다시 수님쪽으로 말머리를 향한다. 노파는 고개를 끄떡끄떡 하며,

“엉 저런, 참 요새는 사람을 기계로 꺼낸다! 그런데 그 난 것이 딸야 아들야?”

“아들예요.”

“저런 그 자식이야말로 두 번 산 놈이로군!”

“참 세상이란 알 수 없는 세상이에요. 서양서는 기계로 사람을 다 만든답니다그려……”

“옛기 그럴 수가 있나? 거짓말이지. 아뭏튼 타국 사람들은 재주가 좋아 못하는 것이 없이 허다 못해 공중을 날아다니지마는 어떻게 기계로 사람을 만드나? 거짓말인 게지.”

“아녜요, 정말이요 신문에도 났어요.”

“신문에! 신문인들 어디 똑바른 말만 내나. 거기도 거짓말이 섞였지.”

하는 노파의 성미가 조금 풀어진 모양인지 말소리에 부드러운 맛과 웃음 냄새가 약간 섞여서,

“그러나 저러나 저것 때문에 나는 큰 걱정일세. 애비도 없는 자식을 낳아가지고는 그나마 성하게 자랐으면 좋겠지마는 저렇게 앓기만 하니, 참 형세나 넉넉했으면 또 모르지. 구차하기란 더 말할 수 없는 집에서 이 모양을 하고 사네그려. 자식이나 없으면 얼핏 마땅한 데가 있거든 다시 시집을 가서라도 그저 저 고생하지나 말고 살며는 늙은 내 마음이라도 놀 테야. 저 모양으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것을 끼고만 앉았으니 참 딱해서 볼 수가 없네그려. 저도 전정이 구만리 같은 새파랗게 젊은 년이 어디 가면 서방 없겠나. 그저 허구헌날 어디로 들고 사렸는지는 모르는 그놈만 생각을 하고 앉았으니 어림없는 수작이지. 벌써 싫증나서 잊어버린 지가 오랜 놈을 생각만 하면 무얼 하나? 자식은 저의 할미가 서울 살아 있다니까 아범 집으로 보내버리고 나는 저 애를 다른 데로 보내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오라버니는 무슨 엄숙한 사실을 당한 것처럼 한참 눈 하나 깜짝거리지 않고 그 말을 듣고 있더니 무슨 사리를 분명히 해석할 줄 안다는 어조로,

“글쎄, 그렇지 않아도 나도 날마다 생각을 하고 언제든지 걱정을 하는 바이지마는 일이 너무나 어렵게 되어서. 어떻든 어린애는 고쳐야 할 것이니까 병이 낫거든 자기 애비의 집이 있으니까 그리로 보내고 다른 데로 보낼 도리를 해야죠.”

하니까 노파는 걱정스럽고 시원치 못한 상으로,

“그렇지만 여기서야 어린애 병을 고칠 수 있어야지. 날마다 밥도 못 끓여먹는 형편에 어린애 약인들 먹일 수 있나. 이건 참 죽기보다도 어려우이그려. 암만 생각을 하니 옴치고 뛸 수가 있어야지.”

오라버니는 모든 일을 내가 해결할 만큼 세상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까 내 말을 들으라는 듯이 수님이를 향하여,

“수님아, 네 생각은 어떠냐? 너도 나이가 열아홉이나 된 것이 그만하면 시집살이할 나이가 넘었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이렇게 그야말로 닭 쫓는 개 지붕 쳐다보기지 이러고 앉았기만 하면 어떻게 하니…… 그런데 대관절 네 생각은 어떠냐? 그래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앉았을 모양이냐. 다른 데로 갈 마음이 있니?”

수님이는 한참이나 맥없이 앉았다가 휭 하고 모든 말이 시덥지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한번 웃더니,

“아무데도 가기는 싫어요. 모세(어린애의 세례 이름) 아버지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기는 싫어요.”

하는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힘 있는 목소리다. 모든 신앙과 자기의 희생을 결심한 뜨겁고도 매운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아따, 그래도 모세 아버지야?”

노파는 자기 딸을 흘겨보며 비웃는 듯이 말을 한다.

“네 오라버니 말이 조금도 그르지 않으니라. 설마 너를 잘되라고는 못할망정 못되라고 할 듯싶으냐!”

“그래도 나는 다른 데로 가기는 싫어요. 나 혼자 평생 지내더래도 또 다른 사람에게 가기는 싫어요.”

오라버니는 타이르는 어조로,

“그야 낸들 다시 다른 곳으로 가라기가 좋아서 그러는 것은 아냐. 그렇지만 너도 늙은 어머니 생각도 해야 하지 않니. 서양에는 부모를 위하여 몸을 파는 계집애들도 있는데. 또 너의 전정 생각을 해야지. 그것도 모세 아비가 지금이라도 너를 생각하고, 또 다음에라도 만나 살 여망이 있으면 오래비된 나래도 왜 이런 말을 하겠니. 그렇지만 모세 애비는 발써 너를 잊어버린 사람야. 사내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들 욕심들만 가진 개 같은 놈들야.”

수님이는 그래도 부인(否認)한다는 듯이,

“그래도 제가 한 말이 있으니까 설마 나를 내버리기야 할까요.”

“저런 딱한 애가 있나. 그것 참 말할 수가 없네. 글쎄, 그런 놈의 말을 어떻게 믿니?”

“믿어야죠. 지가 비 오던 날 방앗간 모퉁이에서 날더러 하는 말이 일평생 나를 잊지 못하겠다 하였는데요. 저도 그이를 잊을 수 없어요.”

하며 얼굴빛이 조금 불그레해지며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어린애 머리만 쓰다듬는다.

“아따, 빌어먹을 년, 믿기는 신주 믿듯 잘도 믿는다. 쪽박을 차고 빌어먹으러 나가도 그녀석만 믿으면 제일이냐?”

어미는 열화가 벌컥 나서 덤벼들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에 어머니 품에 안겨 편안히 잠들었던 어린애가 눈을 갑자기 뜨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까르르 쟁개비에 찌개 끓듯이 운다. 수님이는 어린애를 뭉뚱그려 안고 일어서며,

“우지마, 우지마.”

하며 달래면서 서성거린다. 어린애는 다시 보채면서 눈동자를 허옇게 뒤집어쓰며 죽어가는 듯이 운다.

“에구, 오라버니 이애 눈좀 보시우. 왜 이렇게 허옇소. 아마 죽으려나 보.”

하며 오라버니 편으로 어린애를 내밀면서,

“죽으면 어떻게 해요.”

하면서 또다시 눈물이 비오듯 한다. 오라버니는 어린애를 들여다보더니,

“에구, 애가 대단하구나! 약도 없니? 의원이 무슨 병이라 하든. 요새 염병(장질부사)이 매우 돌아다닌다는데, 그 병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하고 다시 몸을 만져보더니,

“에구, 이 몸 좀 보게. 열이 대단하이.”

하며 우는 애를 한참 들여다본다. 노파는,

“약이 다 무언가, 의원을 보였어야 무슨 병인지 알지. 그저 약국에 가서 말만 하고 약을 지어다 먹이니까 병명인들 알 수가 있나!”

“그러면 안 되었습니다그려. 어떻게 해서든지 의원을 보여야죠.”

“의원도 거저 봐주나. 돈 들어야 할 일이지. 밥도 못해 먹는 집에서 의원이 다 무어야.”

“그래서 되나요. 우선 산사람은 살리고 볼 일이니까 가만히 계십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서양 의술 하는 의원을 불러오지요.”

“그러면 돈이 많이 들걸! 넉넉지 않은 형세에 돈을 써서야.”

“무얼요, 어떻든 살리고 보아야죠.”

하며 오라버니는 황망히 밖으로 나간다. 수님이는 속으로 다행하기도 하고 미안하지마는 어떻든 자기의 모든 해결과 행복의 실오라기인 이 모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첫째 의무인 동시에 또한 급무(急務)이다. 그리고 자기 오라버니가 그렇게까지 신기함을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의원만 오면은 모세는 곧 나을 줄로 믿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오라버니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방안은 조금 고요하였다. 수님이는 조금 울음을 그치고서 깽깽 앓는 소리를 하고 누워 있는 어린애를 앞에다 놓고 꿇어앉았다. 그리고는 괴로와하는 어린애를 내려다보며 두 주먹을 쥐고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지마는 입속으로, ‘모세야 죽지 말고 살아라.’ 하고 온전신의 모든 정성과 힘을 합하여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그 말이 떨어지며 기적과 같이 그 아이가 낫기를 바랐다. 그는 주먹을 쥐고 몸을 떨면서 다시 하늘을 치어다보고 또다시 모든 정성과 힘을 합하여, ‘하느님, 모세를 데려가지 마시고 이 죄인의 품에 안겨 두옵소서.’ 하는 비는 말이 떨어지자 그 아이의 병이 기적과 같이 물러가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에게 기적을 하느님은 내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못 믿었다. 그가 기적처럼 어린아이의 병이 낫기를 바랐으나 그것이 기적처럼 낫지 않을 때 수님이는 다시 목사를 기다리었다.

‘목사가 오셔서 하느님께 기도를 하여주시면 이 아이의 병이 얼른 날걸! 예수가 앉은뱅이와 문둥병자를 고친 것처럼 이 아이의 병이 목사의 기도와 함께 날 수가 있을걸!’

하고 그는 목사 오기만 기다리었다. 혈루병자가 예수의 옷 한번 만져보기를 애씀과 같은 그만한 믿음으로써 목사를 기다리었다.

“어째 오실 시간이 늦었는데 어찌 오지를 않나.”

막달라 마리아가 자기 오라비의 죽음을 다시 살게 할 수 있을 줄을 믿음과 같이 수님이는 목사 오기를 기다리었다.

그런데 어린애는 또 울기 시작하였다. 어린애 울음소리는 우중충한 방안에 흐리터분한 공기를 날카롭게 울리면서 자기의 참담한 현상을 정해논 곳 없이 부르짖어 호소하는 듯하였다. 털부털부하는 문구녕, 거미줄 걸린 천장, 신문지로 바른 담벼락, 못이 다 빠지고 장식이 물러난 다 깨어진 석유궤짝으로 만든 농장까지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스칠 적마다 더러운 개천물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결처럼 모든 가난과 불행과 질병과 탄식이 한꺼번에 춤을 추고 일제히 그 작은 방 가운데서 움직거리는 것 같았다. 평화와 행복의 여신은 눈물을 흘리고 그 자리를 떠난 지가 오래고 줄기차게 오랜 생명을 가진 마신(魔神)이 이 집 문과 장과 구석과 모퉁이에 서고, 안고, 드러눕고, 기대인 것 같았다.

간난과 질고는 노파의 얼굴에 주름살과 증오로 탈을 씌워 놓은 것같이 보기 싫은 얼굴로 한참이나 앉았다가 부시시 일어서며,

“에그, 난 모르겠다. 죽든지 살든지 마음대로들 해라.”

하고는 밥을 하려는지 바깥으로 나아간다.

30 분쯤 지내었다. 서산으로 넘는 해는 가뜩이나 우중충한 방을 어둠침침하게 만들어놓았다. 수님이는 방에 어린애를 안고서 오라버니 오기만 기다린다.

그때 누구인지 문 앞에 와 서며 불을 때는 노파에게,

“모세 어머니 있어요?”

하는 나이 스물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목소리로 묻는 소리가 난다.

“있소.”

하는 어머니의 소리와 함께,

“쇠(劍) 어머니요?”

하고 수님이는,

“들어오시우. 웬일요? 저녁은 해먹었소?”

하며 반가이 맞아들였다. 그 쇠 어머니는,

“애가 좀 어떻소?”

하며 어린애를 들여다보니까 수님이는 새삼스럽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점점 더한 모양예요. 그래서 제 외삼춘이 의원을 부르러 가셨어요.”

하며 내놓았던 젖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 쇠 어머니는 코를 손으로 이리 쓱 씻고 한번 들여마시고, 저리 한번 쓱 씻고 들여마시면서,

“오늘 목사님이 오지 않으셨지?”

하며 목사님 오시지 않았느냔 말을 물으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바깥에서 부산한 소리가 나더니 수님의 오라버니가 문을 열며,

“이 방이올시다.”

하고 가방을 옆에 들고 양복 입은 의사에게 말을 한 후 제가 먼저 들어와 방에 놓여 있는 것을 이 구석 저 구석에다 쓸어박으면서 의원에게 들어오기를 청한다.

수님이와 쇠 어머니는 부산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의원이 들어와 앉은 뒤에 수님이 혼자 저만큼 비켜앉아 의원의 거동만 본다.

의원은 들어와 앉더니 누워 있는 어린애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두말없이,

“이 애가 언제부터 이렇소?”

하고 수님의 오라버니를 돌아본다. 수님의 오라버니는 다시 수님에게 물어보는 듯이 수님을 보았다. 수님은 얼른,

“한 대엿새 되었어요.”

의사는 어린애 몸을 풀으라 하더니 가방을 열고 기계를 꺼내더니 진찰을 다 마친 뒤에,

“다 보았소.”

하고 방안을 둘러보며,

“요새 이 병이 퍽 많은데 병원으로 데려다 치료를 해야지 이대로 이런 데 두면은 어린애에게도 이롭지 못하거니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이 되니까 병원으로 데려가게 해야겠오.”

하고 일어서니까 수님오라버니는 그저 멀거니,

“네.”

하고 서 있고 수님이는,

“데려가요?”

하고 의사와 싸움이라도 할 듯한 살기 있는 눈으로 의원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어린애 편으로 달려들어 어린애를 휩싸안고서 아무말 없이 돌아앉더니 눈물 고인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죽여도 내 품에서 죽일 터예요.”

하고는 어린애 위에 엎드려져 운다.

2[편집]

모세를 병원으로 데려간 지 열흘 되던 날이다. 아침부터 퍼부은 눈이 저녁때나 되어서 겨우 끝났다. 수님이는 날마다 병원에를 갔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수님이에게 모세를 보이지 않았다. 병원 문간에 서서 하루종일을 지내다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고 그대로 온 날도 있었다.

오늘도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병원으로 향하여 간다. 전차도 타지 못하고 10리나 되는 병원으로 가는 길은 자기 오라버니가 일을 하는 일본사람 집 앞을 지나게 되므로 갈 적 올 적 들른다.

오라버니를 찾아가니 마침 곳간(庫間)에서 숯을 쌓고 있었다. 수님이는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서 둘둘 말아 옆에다 끼고서,

“오라버니.”

하고 곳간 옆에 가서 부르니까 오라버니는 얼굴과 콧구멍과 두 손이 숯가루가 묻어서 새까매가지고서 자기 누이를 보더니,

“가만 있거라. 요것 마저 쌓고……”

하고 쌓던 것을 마저 쌓고 나오면서,

“병원에 가니?”

하고서 몸을 탁탁 턴다.

“네 병원에 가요. 그런데 오라버니, 당최 병원에서 어린애를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예요.”

“어저께는 무엇이라고 그러든?”

“어저께요? 어저께는 아무도 만나보지 못했어요. 그저 아무 염려 말고 가라구만 하는데 그래도 그대로 올 수가 있어야죠. 하루종일 병원 문간에서 서성대다 늦어서야 왔어요. 날이 어두워서 집에 들어오면 어린애 우는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하고 밤에 잠을 자도 꿈마다 모세가 와서 어머니를 부르는데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아마 죽을려나 봐.”

“예라, 미친 애. 죽기는 왜 죽어. 어떻든 염려 말어라. 의원이 오죽 잘 생각하고 잘 고치겠니? 너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것이 전염병이니까 옮을까 봐서 그러는 것이야. 염려말고 있어. 그러면 내 뒷담당은 해줄게……”

“그래도 내 생각 같아서는 아무리 해도 못 믿겠어요. 나는 걔가 죽으면 나도 따라죽을 터이야. 모세를 죽이고는 모세 아버지에게도 이 뒤에 만나서 얼굴을 들 수 없거니와 나도 살아갈 재미가 없어요. 세상에서는 나를 망한 년, 더러운 년, 서방질한 년이라고 욕들만 하고 어머니는 날마다 다른 데로 시집가지 않는다고 구박만 하고, 다만 그것 하나만 믿고 사는데 만일 그것이 죽으면 나는 살아서 무엇하우.”

하고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는다. 오라버니는 선웃음을 껄껄 웃으며,

“허허, 왜 마음을 그렇게 먹고서 자꾸 속을 졸여. 그까짓 남이 무엇이라고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할 게 무어며 어머니신들 오죽 화가 나셔야 그러시겠나? 너를 미워서 그러실 리가 없으니까 아무 염려마라. 그리고 어린애는 아무 걱정이 없어. 병원에서 그까짓 병쯤 고치기를 그러니. 그 이상 가는 병이라도 제꺽제꺽 고치는데. 해 묵은 병 아주 못 고친다고 단념한 병을 고치고 완인(完人)이 된 사람이 얼만지 모른다. 아무 염려 마라……”

수님이는 또다시 오라버니를 믿었다. 그리고 오라버니는 모든 것이 저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고 세상 격난을 많이 해본 사람이니까 믿음직한 사람인 동시에 근자에 모세가 병원으로 간 뒤에 집안 식량과 살림 일체를 대어주는데 얼마나 많은 감사와 믿음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수님이는 조금 생각을 하는 듯이 땅만 내려다보고 섰다가,

“그러면 나는 오라버니 말씀을 믿어요.”

하고 조금 근심이 풀린 것처럼 두 눈에 따뜻한 광채로 자기 오라버니를 치어다보았다.

“글쎄 염려 마라……”

하고 오라버니는 다시 곳간 옆으로 비켜서더니,

“그런데 수님아, 내 잘 봤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저께 저녁에 친구들과 술을 먹고 너의 집으로 가려니까 웬 사람 하나가 너의 집 앞에서 서성서성하더니 나를 보고는 줄달음질을 해가지 않겠니……”

수님이 눈이 뚱그레지며,

“그래서요, 도둑놈이든 게지. 어떻게 됐어요?”

“도둑놈은. 너의 집이 무엇이 그리 집어갈 것이 많아서 도둑놈이 엿을 봐. 글쎄 내 말을 들어. 그래 하도 수상하기에 흥넣게 쫓아가지를 않았겠니……”

“네.”

“쫓아가다가 거의 다 쫓아가서 골목쟁이 하나를 휙 돌아서는데 눈결에 흘끗 보니까 암만해도 모세 애비 같지 않겠니. 그래서 더 속히 따라가 보니까 어디로 갔는지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헤맨들 찾을 수가 있어야지……”

수님이는 무슨 경이(驚異)나 당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하고 온몸을 옹송그리고 오라버니의 입에서 떨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말의 순서를 기다린다.

“그래 온통 큰길로, 골목으로 헤매면서 돌아다니나 어디 있어야지. 그래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바로 가서 자 버렸어.”

수님이는 거짓말과 참말, 믿음과 의심 그 경계선을 밟고서 이리 기울어져보기도 하고, 저리 기울어져보기도 하는 듯한 감정으로,

“그럼 그게 모세 아버질까요? 모세 아버지 같으면 들어오기라도 하였을 터인데. 오라버니가 잘못 보신 게지.”

하고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좋은 희망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오라버니에게 그것이 모세 아버지니 믿으라는 단정(斷定)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섰다.

“글쎄 나도 알 수는 없어. 어떻든 알 수 없는 일야. 일전에도 누구한테 들으니까 모세 애비가 전라도 목포 항구에서 일본사람의 방앗간에서 일을 하면서 너의 소식을 묻고 모세도 잘 자라느냐고 묻고 며칠 안되면 서울로 다시 오겠다 하더란 말을 들었는데 서울로 왔는지도 모르지……”

“왔으면 집에 올 텐데 오지 않았길래 오지 않았죠.”

수님이는 아무말이 없다가 또다시 말머리를 돌려서,

“그런데 오라버니, 나는 예수 믿은 것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헛짓을 한 것 같애. 우리 집에 와서 기도해주던 목사 있지 않아요……”

“그래.”

“그 목사도 모세 병처럼 앓는데 죽게 되었대요.”

“그런 것야 그 병은 전염병인 까닭에 옮겨가기가 쉬운 것야. 그러게 병원에서는 너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지 않니?”

“그런가봐. 그 목사는 약도 쓰지 않고 날마다 모여서 기도들만 하는데 점점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낫지를 않는대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집 청원들을 하면서 죄인 아들이 되어서 하느님이 벌을 주실려고 그런다고……”

“다 쓸데없는 갸야. 병은 의술로 고쳐야하는 짓이지 기도가 무슨 기도냐 글쎄.”

“그렇지만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시원한 듯해서 나도 날마다 기도는 하지요.”

오라버니는 픽 웃더니,

“시원하기는 무엇이 시원해. 대관절 또 병원으로 가는 길이냐?”

“네.”

“가서는 무엇 하니. 가서 보지도 못하는걸.”

“그래도 문간에 섰다 오더래도 가지 않으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아무 염려말어 글쎄. 병원에 가기만 하면 낫는다니까 그러니. 집에 가 있거라. 내 이따가 전화로 물어 봐다 줄게……”

“그래도 난 가볼 테야. 차삯이나 좀 주시우.”

오라버니는 백통 쇠사슬 달린 가죽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

“갈 것이 없다니까 그러네. 정 가고 싶은 것 억지로 막을 수는 없지마는……”

하고 수님에게 차삯을 주었다.

3[편집]

또 닷새가 지났다. 어저께 목사의 죽은 장례가 나갔다. 수님이는 한번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그 놀라운 가슴이 가라앉기 전에 수님에게는 세상에 가장 엄숙하고 자기에게 가장 절망되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모세가 병원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오라버니가 다 저녁때 힘없이 수님의 집으로 들어오더니,

“수님아.”

하고 차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는 벌써 번개불같이 수님의 머리에 무슨 불상사를 이르는 듯하였다.

“네.”

하는 수님이는 다른 날보다도 더 무서운 사실을 당하는 것처럼 달려나갔다. 그리고 오라버니의 기운 없고 낙망하는 얼굴을 치어다보며,

“왜 그러세요? 병원에서 무슨 소식이 왔어요?”

하며 달려들 듯이 오라버니 앞에 섰었다. 오라버니는 한참이나 말이 없이 방에 들어와 쓰러지듯이 앉더니,

“놀라지 마라.”

하고,

“모세가 죽었단다.”

하였다. 수님이의 가슴은 그 소리가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찌르는 듯한 것이 변하여 다시 그 사실을 부인하는 듯이 자기 오라버니를 치어다보며 깔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거짓말, 오라버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우. 남 놀라게.”

할 만치 그에게는 그 사실이 너무나 거짓말 같았다. 그리고 만일 그 사실이 참말이라 할지라도 수님이는 그 사실을 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 말을 들은 그 옆에 앉아 있는 노파는 도리어 그 사실을 그 사실대로 들었다.

“저런.”

노파의 눈에는 가엾은 일은 일이지마는 숙명적으로 그 사실이 있을 것이요, 또는 그 사실이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다만 입맛만 다시면서,

“가엾기는 하지마는 팔자좋게 잘 죽었느니라.”

하였다. 수님이는 다시 물었다.

“정말에요 오라버니?”

하는 말에 오라버니의 얼굴은 엄숙한 사실을 거짓말로는 꾸밀 수 없다는 듯이,

“정말야, 지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수님은 이제 몸부림해서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자기 오라버니에게 달려들었다.

“나를 죽여 주. 나를 죽여요. 죽여도 내 품에 안고 죽일걸 왜 오라버니는 병원으로 데려다가 죽는 것도 보지 못하게 하였소! 그렇게 잘 고친다는 병원에서 왜 죽였소. 내 아들 찾아 주. 그 자식이 어떤 자식인 줄 알구 그러우. 내 목숨보다도 중한 자식요.”

하고는 방바닥에 엎드러져 울면서,

“모세야, 모세야. 네 어미까지 마저 데리고 가거라. 죽을 적에 어미의 젖 한 방울 먹어보지 못하고 어미의 품에 한번 안겨보지 못하고, 모세야, 모세야……”

하며 우는 꼴을 옆에서 보는 노파도 인생의 죽음이란 그것은 가장 슬픈 것인 것을 느꼈는지 주름살 잡힌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오라버니도 좋지는 않은 얼굴로 멀거니 앉았다.

“아! 모세야, 나는 이제 죽는다. 나는 죽어야 한다.”

한참 울 때 오라버니는 수님을 달래려고,

“우지 마라! 이왕 죽은 자식을 울며는 어떻게 하니. 고만 그쳐. 시끄럽다.”

그렇지만 오라버니 입에는 수님이를 위로할 말이 없었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다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는 말이 있을 뿐이었다.

노파는 울음을 그치고 머리속으로는 하얀 관에 뭉친 어린애 주검을 장사할 걱정이 있고 또는 그 장사를 하려면 돈이 들 걱정이 있었으나 수님의 머리와 피와 마음속에는 모세를 다시 살릴 수가 이 세상에는 있으리라는 알 수 없는 의심과 또한 본능적으로 모세는 다시 살지 못하리라는 의식이 그를 몸부림과 가장 큰 비통속에 그의 모든 것을 집어 던지었다.

날이 저물고 눈 위에 달이 차게 비치었다. 수님이와 오라버니는 모세의 송장을 찾으러 가려고 문 밖으로 나섰다. 오라버니가 먼첨 돈을 변통하러 가고 수님이는 눈물 가린 눈으로 흰 눈을 밟으면서 걸어간다.

수님이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려 할 때 마침 저쪽에서 돌아들어오는 사람 하나와 딱 마주뜨리자 수님이는 얼굴을 쳐들어 그 사람을 보고는 그대로 멈칫 하고 서서 그 사람을 붙잡으려는 채 못 미쳐 동작으로 달려들 듯하더니,

“아, 모세 아버지!”

하고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 울었다. 모세 아버지란 그 사람도 껴안을 듯이,

“수님이.”

하고 덤벼들려 하다가 그대로 한참 서 있다. 수님이는 목메인 소리에 무슨 죄악을 고백하는 듯이,

“모세는 죽었어요.”

하고 울음소리는 더 높아졌다. 수님의 가슴은 죄지은 사람 모양으로 떨리고 할말 없기도 하고 또는 오래간만에 모세아버지를 만나매 반갑기도 하여 속에 있는 모든 감정이 실엉키듯 엉키어 순서를 차려먹었던 마음을 다 말할 수 없고 다만 울음으로써 그 모든 것을 애소도 하고 진정도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모세 아버지란 사람은 조금 창피함을 깨달은 듯이 골목 으슥한 곳으로 들어서며 검은 얼굴에 조금 더러운 웃음을 나타내며,

“모두 다 너 때문이다.”

하며 멸시하듯 수님이를 보더니,

“내가 오늘 이렇게 밤중에 골목으로만 다니게 된 것도 너 때문이요, 남의 눈을 속이고 다니게 된 것도 다 너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자식 생각을 하고서 서울 온 뒤 날마다 너의 집 앞에 와서 소식이나 들으려 하였더니, 모세가 죽었다니 이제는 너와 나와는 영 이별인 줄 알어라……”

하는 말을 듣자 수님이는 옆의 담에 가서 그대로 고꾸라지며,

“모세 아버지! 나는 그래도 여태까지 당신을 믿었었지요!”

하고 느껴 울면서,

“왜 모두 내 탓을 하시우. 나는 그래도 당신만 믿고 바라고 여태까지 어린것을 기르고 있었지요. 모세아버지, 정말 나를 버리실 터요?”

모세 아버지는 차디찬 목소리로,

“나는 너 때문에 몸을 버린 사람이다. 나는 나의 일생을 너 때문에 그르친 사람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떠날는지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잘 만났다. 자, 나는 간다.”

하고 모세 아버지는 가려 하니까 수님이는 모세 아버지를 붙잡으며,

“어디로 가시우. 왜 전에 그 방앗간 옆에서 비오는 날 나를 일평생 잊지 않는다 하셨지요? 지금은 왜 그때 말씀을 잊어버리셨소. 가시려거든 나를 데리고 가시우.”

하며 매달렸다. 모세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나는 그때 사람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아니란 말야. 자 놔라. 공연히 남에게 들키면 나는 내일부터 홍바지저고리를 입을 사람야.”

수님이는 끌려가면서,

“정말 가시우?”

하며 애원하듯이,

“정말이오?”

한다. 그때 저쪽에서 누구인지 이쪽으로 오는 기척이 나니까 모세 아버지는 수님을 뿌리치고 저쪽으로 가버리고 수님이는 눈 위에 엎드러져 운다.

수님이는 한참 울다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다시 목사의 상여가 보이고 어린애의 주검이 보이었다. 그리고 혼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 나에게는 예수도 없고 병원도 없고 모세 아버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하고는 다시 공중을 우러러보며,

“모세 아버지도 갔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소리를 지르고 사면을 돌아다볼 때 하얀 눈 위에 밝은 달이 차디차게 비치었는데 고요한 침묵으로 둘린 가운데 다만 자기 혼자 외로이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그렇게 분명히 그렇게 외로운 가운데서 자기를 찾아내기는 지금이 자기 일생에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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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