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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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衣의聖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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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못하는 마음 것잡을길없어서 인숙은 발길을 어느편으 로 옴겨놓았으면 좋을지 몰랐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깨끗 이 청산하고 신변의 루(累)를 훌훌 털어버리고나니 (아아 인제는 천상천하에 나한몸뿐이로구나!) 하는 외침이 저절로 입밖을 새여 나오는동시에 날을것처럼 제몸이 가볍고 홀가분한 것이 느껴젔다. 그러나 인숙은 그 다지도 목마르게 바라던 자유를 얻고보니 어둡고 갑갑한 조 롱속을 벗어나기는 했어도 쭉지 떨어진 새처럼 넓은 천지에 어느편으로 날러야 할지 헤매이지 않을수없고 회호리바람에 떨어진 도토리 같기도 하여서 외톨로 어디를 굴러야 할지 난감하였다.

삼청동으로 올라가기고 싫고 봉희를 찾자니 내외가 다 집 에 없을때요 그렇다고 무슨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허의사를 찾아가서 리혼수속을 하고 오는길이라고 보고를 하기도 싫 였다.

그는 내키지않는 걸음거리로 '전동'으로 들어서 맥없이 걷 자니 '수송동' 골목으로부터

"동동 당당 도드랑 동당"

하고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자못 유쾌한 행진곡은 골목안 의 유치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인숙은 피아노소리에 저도모르게 끌려들어갔다. 대문간에 비켜서서 들여다보니 유치원 마당에는 명랑한 아침볕이 따 뜻이 나려쪼이는데 원아들이 한 사오십명가량이나 보모의 뒤를따러 손짓 발짓을하며 유희실에서 나온다. 울긋불긋한 때때옷을 입고 귓머리에 리봉을 나비같이 꽂인 계집아이들 사이에는 해군복이나 조그만 짜켙을 앙징스럽게 입은 사내 아이들이 섞여서 활발스러히 답보를 한다.

등뒤에서 다른 보모가 창밖을 내여다보며 치는 피아노소리 가 컸다 적었다 하는대로 아이들은 그 어여쁘고 귀여운 얼 굴과 등어리에 햇볕을 눈이 부시게 받으며 유쾌해서 견딜수 가 없다는 듯이 창가를 부른다. 서로서로 손을잡고 잔디깔 린 마당에 원(圓)을 그리면서 보모가 피아노곡조를 따러 노 래를 먹이는대로

<뒷동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싹날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꽃'할때에는 아이들의 조그만 입들이 일제히 제비주둥이 처럼 오무라 젔다가 '할'할때에는 고 빨간 입술들이 화판처 럼 일제히 버러진다.

보모는 한복판에 서서 빙빙 맴을 돌 듯 하면서 자기도 노 래를 부르고 손벽을 처가며 박자를마처준다.

<천만가지 꽃중에 무슨꽃이 못되어 가시돋고 등곱은 할미꽃이 되었나 아 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한참이나 그 광경을 바라다 보자니 인숙은 눈이 황홀해젔다. 눈보다도 마음속이 차츰차츰 황홀해젔다.

(이땅우에도 이러헌 낙원이 있었든가. 저다지도 자유롭고 질거운 세계가 있었든가) 싶어서 몇번이나 손을 대지않고 마음의 눈을 부볏다. 유치원구경을 이제까지 못해본 것이 아니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다시없이 귀여운 것을 몰랐 든 것이 아니었만 오늘날 이때를 당하야는 유난히 어린이들 이 귀엽고 유치원이 참 정말 지상의 낙원과같이 보여진 것 이다.

응달에 비켜서서 엿보듯하는 인숙은 아이들이 '할미꽃' '할 미꽃' 할 때마다 저를 손가락질하여 젊어서도 가시돋고 등곱 은 할미꽃이라고 놀려대는것같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수 십명이나 되는 어린이들이 모다 일남이같은 젖멕이들이 자 라서 뛰노는것이로구나 하니 인숙은 뛰여들어가 조무래기들 을 한아름씩 끄러안고 뺨을 부벼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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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저도 모르는 겨를에 한걸음 두걸음씩 가까이 들어 갔다.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는 파-란 칠을한 층층대가 있는 데까지 가서 유희하는 것을 보고섰으니까 해군복장을한 아 이가 저이들 틈에서 빠저나와 인숙의 앞으로 쭈루루 달려온다.

(저애가 누굴가) 하고 바라보는데 그 아이는 오질앞을 두손으로 웅켜쥐고 쩔쩔 매다가

"선생니-ㅁ"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른다. 인숙은 그아이에게 로 달려갔다. 조그만 병정은

"오줌 오줌"

하더니 어찌 급한지 그대로 싸는 모양이다. 인숙은

"잠간만 참어라 참어. 내 뉘여주마"

하고 대들어 양복바지에 꼭꼭 끼인 단추를 끌르고 붓끝같 은 고초자지를 끄내여 입속으로 쉬- 쉬- 해가며 오줌을 뉘 여주었다. 인숙은 탐스럽게 생긴 그 아이의 발그스름한 뺨 에 가벼이 입을 맞추어주고 머리를 드는데 마주친 것은 뒤 따러온 보모의 얼굴이다.

"아이고 이게 누구요?"

보모는 인숙인줄을 알자 반색을하며 손을 잡는다. 인숙이도

"난 누구라구 아이들만 정신없이 바라보고 섰느라고 선생 님은 똑똑이 보지도 못했구료"

하고 반겼다. 보모는 다른사람이 아니라 인숙이가 다니던 학교를 삼년전에 졸업한 사람인데 성은 그도 이가요 '딸고만 '이란 부르기 까다로운 이름을가진 여자다. 인숙이가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그는 졸업반이었는데 인숙이가 자수 에 솜씨가 훌륭한 것을 알고 한번은 수틀을 가지고 일부러 찾아와서 밤늦도록 둘이서 산수를 그린바탕에 수를놓면서 그의 사정을 들은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딸을 오형제 나 줄달어 뽑아내니까 그의 아버지가 홧김에 딸은 고만 처 질러 나라고 '딸고만'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한다. 열여섯에 시집을 갔다가 소박을받고 쫓겨와서 인숙이처럼 뒤늦게 학 교에 다니든 여자로 미인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게생겼다.

키는 늘려재어도 넉자가웃이 될락말락하고 두눈은 얼굴가죽 이 모자라서 빠끔이 뚫어논것처럼 작은 여자다.

"××보육을 졸업했단 말은 누구헌텐가 들었지만 내란 사람 이 이제나 저제나 누굴 찾아 다녀야죠. 여기서 만나긴 참말 뜻밖이구료"

동무하나 없는 인숙은 딸고만이가 정말 반가웠다. 몇해전 에는 줄창 울상이 되어서 다니던 사람이 직업을얻고 재미있 는 생활을해서 그런지 두었다보아도 어여쁜 구석은 찾을수 없으나 양미간이 훨신티이고 매우 활기가 있어보였다.

"저-리 들어가서 잠간만 기다려주. 이번 시간만 끝나면 고 만이니 우리 얘끼나헙시다"

딸고만이는 인숙을 운동장이 내여다보이는 사무실로 안내 하고 마당으로 나려가 보든일을 계속한다. 만국기와 가화로 색스러이 꾸며논 유희실에는 조금 큰아이들이 옹기 종기 모 여앉어서 종이로 곡갈같은것과 삼각관같은 것을 만들고 또 한 무데기는 머리를 마조모으고 둘러앉어서 무어라고 재절 거리면서 나무토막으로 산도쌓고 집도짓는다. 아이들 틈에 는 그야말로 할미꽃처럼 꼬부라진 할머니와 유모인듯한 여 편네들이 섞여서 다 가끔 데리고 온 아이를 보호하는데 어 떤 마누라는 손녀가하는 은물을 훈수하다가

"저이들 의사대로 허게 내버려 두시라니깐요"

하고 담임 보모에게 핀잔을 맞고는 멀쑥해서 물러앉기도 한다.

인숙은 한구퉁이에 놓인 걸상에가 잠잫고 걸터앉어서 이아 이 저아이들이 희희 락락하며 노는 꼴을 바라다보느라고 시 간가는줄을 몰랐다. 그저 아침도 못먹었건만 몹시 시장하든 것도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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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고만이는 장국밥을 시켜다가 인숙을 대접하였다. 달은 보모들과 같은 식탁에서 점심을 먹어가며 원아들의 생활과 보육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한시간동안이나 주고 받었다. 집 이 먼 아이들은 털실로 짠 망태기에 우유통보다도 적은 벤 도를 담어가지고 와서 반찬 다툼을 해가며 얌얌거리고 먹는 데 보모들은 물을 먹여주고 코를 씻겨주고 우는 아이를 달 래주고 하느라고 일어섰다 앉었다 하것만 조금도 싫여하지 를 않는다.

"보모노릇을 허기가 참 정말 귀찮기는 해요. 그렇지만 우리 같은 사람헌테는 이사업 처럼 재미있는건 없을 것 같어요.

저애들허구 섞여서 뛰놀면 세상 근심은 저절로 잊어버려지 거든요."

하고 입에 침이 말르도록 유치원사업을 예찬하더니

"댁의 사정은 몰으지만 인숙씨도 기왕 나선김이니 보모노 릇이나 허구료"

하고 열심히 권고도 한다. 말하는 눈치를 가만히 살펴보니 귀가 여렀이라 터놓고 말은 아니하여도 딸고만이 역시 신문 에서 봉환의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인숙은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 더 앉어있고 싶지가 않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언제까지나 바라다 보고 제손으로 그들의 시중까지 들어 주고는 싶것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저의 사정을 몰을가 보아,

"참 고만 가봐야겠어요.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줄 몰은 다더니 아이들헌테 홀려서 너무 오래 방해를 했어요"

하고는 더 놀다가 이야기나 하자고 붙잡는 딸고만이의 손 을 뿌리치듯하고 유치원을 나왔다.

골목 밖으로 빠저서 큰길로 나올때까지 원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들을 까댁이며 저를 불르는 것같어서 인숙은 무엇이 지남철 기운처럼 끌어 다리는 것을 등뒤에 느꼈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 밤깊도록 다시금 저의 살어나갈 길을 곰곰 생각하다가 이튼날 아츰 인숙은 조용한 시간을 타서 허의사를 찾어 갔다.

"아우님이 점잖은 사람 노릇은 못하겠소. 호랑이가 제말을 하면 온다더니......."

하고 허의사는 진찰실로 인숙을 맞어드리어 (그렇지 않어 도 어째 안오나 또 한강가는 전차나타지않었나) 하고 간호 부와 이야기를 하는판이였다고 너스레를 논다.

인숙은 일남이 생각이 불현 듯이 나서 간호부의 얼굴을 보 나 유리창속의 주사기를 보나 눈이 달리는데마다 기억이 새 로워서 마음이 언짠은 것을 간신히 참고 앉었다.

"아 봉환이가 그-예 한미를 단단이 마젔습니다 그려. 어찌 나 고소헌지 몰랐소. 그깐놈은 백번 천번 그런 일을 당해두 싸지"

하는 허의사도 신문을 읽고 그일을 알고 앉었다.

인숙은 한참만에야 작구만 눈에 밟히는 일남의 환영을 쫓 이며 설레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하느라고 애를 쓰다가

"인전 아주 이혼을 했어요!"

하고 그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해 들려 주었다.

허의사는

"그래서? 아 그래서?"

하고 의자를 들고 벗썩 벗썩 닥어앉이며 인숙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눈앞에 논 체온기가 뛰어 올르도록 책상 모 소리를 치면서

"잘됐소. 참 잘됐서. 인젠 종문서까지 뽑아 버렸구료!"

하고 자기의 일처럼 감격해 하다가

"그야말로 앓는 니 빠진 것 버덤두 더 시원허겠소. 그렇지 만 좀 섭섭두 헐걸. 그게 인정이니까......"

하고 인숙이 대신으로 처량한 표정을 짓더니

"그래 어떻거기로 했소? 그동안 많이 생각을 해봤겠구료?"

하고 인숙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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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보모노릇을 하구싶어요!"

다시 한참동안을 생각해보던 인숙의 대답이였다.

허의사는 자기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는 듯이 손벽을 치며

"그거 참 잘생각했소. 어쩌면 그렇게 내생각 허구 꼭 들어 맞는단말요?"

하고 맛장구를 친다. 실상 허의사는 세철이나 봉희가 추측 한 바와 같이 인숙을 자기 병원에 두고 산파나 그렇지 않으 면 간호부로라도 견습을 시켜서 자기의 조수를 말들 생각을 해 보았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취미가 없고 고되일뿐더 러 인숙이처럼 마음의 상처가 깊이난 사람을 남의 아이를 받어 주거나 어린 환자의 간호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 가엾 었다. 도리어 참혹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인숙에게는 좀 더 조촐하고 인생의 재미를 붙여서 제 설음을 잊을만한 직업을 구해줄 궁리를 하든차에 보육학교에 가서 생리학시간을 보 다가 (원악 영리하고 얌전한 사람이니까 보모노릇을 하면 썩잘 헐걸) 하는 생각이 언뜻 났었다.

"어적게 부청에 다녀오는길에 우연히 ××유치원엘 들렀다 가 보모노릇을 하는 것이 나같은 여자헌테 알마진 천직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밤새도록 궁리를 해봤는데요....."

"그래서요?"

"평생을 선생님처럼 독신으로 지내면서 남의 아들딸- 이라 느니버덤 우리 조선의 귀엾고 조그만 싹들을 어루만저 주고 북돋아주는데 나한몸을 바칠결심을 했어요! 누구의 자녀든 지 일남이처럼만 소중허게 역이면 아들 하나는 잃어버렸어 도 그대신 수없는 아들딸을 얻는셈이 아니겠어요?"

"옳은 말이요. 암 그렇구말구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이들이 야말로 우리 조선의 별이요 꽃이지요. 우리의 희망의 전부 니까......"

허의사는 환자가 온것도 대합실에다 앉어놓고 인숙의 말에 매우 감탄을 하며

"나는 아우님이 누구버덤두 보모될 자격이 훌륭헌줄 아우.

창가나 률등이니 하는것따위는 실은 사람만치 못헐는지 몰 라두 보모로서의 고결한 인격과 정신적 교양으로는 아우님 을 딸을사람이 없을줄아우. 보모가될 학생들을 내손으로 가 르치면서 노 느끼는바지만 겨우 스무살쯤 되거나 조금 넘었 거나 한 옷모양이나 낼줄아는 애송이 계집애들이 어떻게 남 의 귀중한 자녀들을 맡어서 보육을 식히나하니 한심합니다.

학과공부도 공부려니와 엄정한 의미로보면 보모가 되려는 여자일수록 세상 경난을 많이허구 적어도 어린애 하나쯤은 제배로 나어본 체험이 있어야만 비로소 남의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줄을 알것같어요"

하면서 보육사업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한바탕 늘어놓드니

"요새와서 유치원이 필요하냐 필요치 않으냐 하는 문제까 지 일어납디다. 만은 가정교육이 여간 미비허지가 않은 조 선에있어서는 어린이들을 맡어서 천품대로 가르치고 남류달 른 환경속에서 자라서 짓눌린 정서(情緖)를 마음껏 펴주는 유치원이 더욱 필요할줄 알어요. 지금처럼 유치원이라면 돈 있는 자녀들의 노리터나 재롱을 가르치는데로 알게되니까 걱정이지만 그럴수록 정말 자격이 상당하고 인격있는 보모 들을 양성할 필요가있어요"

하고 근래에 보육사업을하는 사람이나 나이젊고 철없는 보 모들이 타락해가는데 얼굴을 붉히며 분개한다. 인숙은 그의 말을 명심하고 듣다가

"그렇지만 보육학교에 들어가야 허지 않겠어요? 이태동안 이나 댕겨야 헐텐데 어떻겠으면 좋을지 난감해요"

한다. 허의사는 청진기를 들고 벌떡 일어서며

"걱정마우 걱정말어요. 뒷일은 그저 나헌테만 맡겨주 그렇 지만 한가지 조건은 들어줘야해요"

하고 쓸쓸한 웃음을 띠우며 인숙의 얼굴을 처다본다.

"무슨 조건이야요?"

인숙은 딸어 일어섰다.

"나는 인숙씨를 입때 '아우님'이라구 불러왔것만 아우님은 언제 한번이나 나더러 '형님'이라구 불러봤소? 피차에 의좋 은 사람인데........"

...........그리하야 인숙은 허의사의 주선으로 ××보육학교에 무시험으로 입학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광산에서 신문을보 고 놀라서 누이의 신변을 염려하고 급히 올라온 경직의 도 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전과같이 틈틈이 바누질품을 팔어서 근근히 학비를 계속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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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또한번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여논데 없는 세월은 인간의 모-든 오노와 비극을 겻눈으로 흘기며 흘러만 간다.

이태 뒤 사월초승 어느 명랑히 개인 이른 야츰에 인숙은 경성역에서 경원선을 탓다. 기차가 떠나기 조금전이라, 차창 을 열고 전송나온 사람들을 내여다보며 인사를 주고받는 인 숙은 알어보지 못할만치나 건강해지고 살이올랐는데 얼굴가 득이 화색을 띠웠다.

전송을 나온사람은 경직과 허의사와 딸고만이와 그리고 올 봄에 ○○보육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창생이 대여섰 그네들 은 차창으로 꽃다발을 들여밀고 과일보구니와 과자상자를 차ㅅ간으로들고 들어와 얹어주며 여러 승객들틈을 부비면서 부산을떤다.

경직은 그동안 광산에서 돈을 잡어가지고 올라와서 제힘껏 은 멀리떠나가는 누이를 치송할 수가 있었다. 로자는 물론, 담뇨와 가방등속을 사주고 시집이나 가는것처럼 금침까지 새로 작만을 하여서 따로히 부처주었다. 다만 하나뿐인 누 이를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무한히 섭섭하였든 것이다.

"따르르......."

하고 발차할 전령(電鈴)이 정거장안을 울렸다. 모자끈을 턱 에다 느린 차장은 손을 들어 신호를한다.

"오빠 안녕이 게서요!"

"오냐, 잘가거라. 네리는대로 곧편지 해라"

긔차는 움쭉움쭉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ㅅ바퀴가 천천히 미끄러저 나간다.

"아우님 잘 가우. 여름에 꼭 가리라"

허의사는 차창에 붙어서 인숙의 손을 잡고 따러가며 참아 노치를 못한다.

"형님! 안녕히 게서요. 좋은사업 많이 허서요"

인숙은 알에ㅅ입살을 깨물며 눈물을 삼킨다. 그는 그동안 허의사를 그의 소청대로 형님이라고 불으고 정말 친형처럼 더한층 자별히 지내오든 터이라 오늘날의 영광스러운 길도 그가 열어준 생각을 하니 참아 그의손을 놀수가 없었다. 허 의사는

"언짠어 허지 마우. 언짠어 허지 말아요. 좋은 길을 떠나며 서....."

하면서도 기차가 푸-파푸-파-하고 속력을 놓기 시작해서 인숙의 손을 놀 수밖에 없을 때, 그의 안경속에도 구름이 끼었다.

"인숙이 잘가아-"

"꿋빠-이!"

동창생들은 일제히 손을 들고 다름질을 해서 따러오며 작 별의 인사를 합창한다. 그러나 인숙은 차창으로 머리를 내 밀고 뒤를 돌려다보면서 조금식 손을 흔들어 보일뿐. 가슴 속에서 감격의 뭉치가 치밀어 올라서 인사대답은 할수없었다.

기차는 '풀랠폼'을 버서났다. 차체에 가리웠던 아츰햇발이 정거장구내로 눈이부시도록 퍼지자 여러사람이 흔드는 손수 건이 어른거리는 인숙의 눈에 번득 번득 보이더니 그것조차 점점 멀어간다. 아득히 멀어간다.

그러나 누이를 떠나보낸 경직이가 돌아서서 쇠기둥을 붓안 고 이마를 부비며 흐느끼는 것은 보지못했으리라.

기차는 한강의 강변을 끼고 달린다. 인숙은 차창에 턱을 고이고 앉었다. 햇빛에닦어논 거울같이 번득이는 물결! 그러 나 그 물결은 어름이 풀려 성애ㅅ장이 떠밀려 나려오는 깊 은밤에 인도교우에서 나려다 보든때와같이 달빛에 번득이던 것과는 달렀다. 힌 어름장 사이로 들어나던 충충한 물결, 사 람을 집어삼키려고 늠실거려 몸서리가 처지던 그 시풀은 물 결은 주야로 흘르고 흘러 끝없는 바다로 영원히 흘러가고 말었다. 지금 인숙의눈알에에 깔린 것은 낙시질 거루가서 너척 둥싯 둥싯 떠있는 한가하고 평화스러운 븜물결이다.

손수건을 담것다 끄내면 옥색물이 곱다랗게 들 듯이 맑고 깨끗한 강물이다. 산골재기와 들판 몇백리를 구비처 흘러나 리면서 연안의 만들을 소생시기고 산천초목의 마른목을 축 여주는 생명수지!

강건너로 아다랑이속에 아득히 바라다보이는 것은 관악산 (冠岳山)이요, 그중에 오뚝하게 소슨 것은 상투봉이 아닌가.

인숙이가 소녀시대에 아츰저녁으로 우러러보든 과천의 관악 산 아버지가 쓰신 삼각관속에 상투같고나 하든 상투봉이 아 닌가?

인숙이가 눈을 나려감고 고향산천을 생각하고 어버이를 그 리워하는 동안에 기차는 서빙고를 지나고 뚝섬 나루터를 끼 고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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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철은 서울살림에 진력이나고 구명도생으로 그날 그날 밤이나 얻어먹는 생활에 환멸을 느껴, 저의 나아갈길 을 찾느라고 몹시 고민하든 끝에, '원산'서도 몇백리나 더 북족인 해변의 조그만도회로 떠났다. 고학당시대에 친하게 지내든 동지의 한사람이, 저의 고장에 나려가서 동지들을 규합해 가지고 로동조합을 만들고 활동을 하다가 비합법운 동으로 몰려서 다수한 동지들과 부자유한몸이 된후에 그네 들의 일의 뒤를 이여주기위해서 분연히 일어섰다. 그가 원 산방면에 다녀온것도 (일남이가 죽기전 봉희가 인숙이를 저 의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네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함이 였다.

그러나 표면운동은 할수없게 되었어도, 그 단체에 소속된 그지방에 하나밖에 없는 교육기관이 문을 닫게되어 근 이백 이나 되는 무산아동들이 거리로 방황하게 되는 것을 참아 보고만 있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봉희가 졸업 을 하기전에

"우리들은 떨어저서 있드래두 나는 그사람들이 허든일을 몰은체 할 수가 없우!"

하고 아직도 단맛이 가시지않은 결혼생활을 제손으로 깨트 리고 떠났었다.

그러자 사범과를 졸업한 봉희는 뒤미처 남편이 가있는곳에 서 십리쯤밖에 봉희는 일부러 먼시골로 지원을 했기 때문에 도(道)가 달러도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었고 마침 그보통학 교는 새로히 육학년제가 실시되기 때문에 훈도한 사람을 더 쓰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간판까지 떼어버리고 수축하는 사람이없어 비바람 에 다 쓸어지게 된 청년회관을 세철은 그의 무쇠골격과 돌 근육으로 버티고 있다. 한편으로는

"조선의젊은 인테리들은 어느때 무슨일을 당하던지 한가지 전문기술은 배워야 한다. 남에게 의식을 의뢰해서는 안된다"

하는 그의 평소의 주장대로 회관결에다가 조그만 '라디오' 상회를 내고 근처 지방의 주문을맞고 기계의 수선도 하러 다녀서 저의 검소한 생활비만은 안해의 월급을 기대지 않었다. 두어달전에 복순이 마저 감옥에서 나왔다. 의지할데없는 그는 나오는대로 인숙에게와 허의사 에게서 며칠동안 묵다 가 세철을 찾어 나려갔다. 한달쯤 바다ㅅ가에서 정양한후 전과같이 건강해진 그는 세철과 함께힘을 합해서 ××학원의 일을 보살피며 주야학을 겸하야 가르치고 팔을 것고 나서서 아이들의 구들까지 치느라고 눈코 뜰사이 없이 바쁘게 지낸다.

학부형과 연락을 취하고 지방유지들을 찾어다니면서 학원 의 기부금을 모집해 들이는데는 복순을 당할 남자가 없다.

그런 경험이 풍부할뿐 아니라 입담 좋고 교제수단이 능란한 그는 돈있는 사람에게 한번부터 당기기만 하면 우거지 같은 떼를 써서라도 돈을 빼았어 오고야 만다. 그 고장 사람들은

"저런 험상스런 딱정때가 어디서 왔어"

하고 복순과 만나기를 딱 질색을 하면서도

"아무튼 여걸이야. 여중에 호걸이거든"

하고 감탄을 하고 기부금을 빼아낀다.

그러자 그곳의 예수교회에서 경영하는 조그만 유치원이 있 는데 보모한사람이 아이를 배고 돌어앉게 되어서 (옳다꾸나) 하고 복순과 세철의 내외가 주선을 하여서 그들이 '백퍼- 센트'로 선전을 한 대로 새로 졸업한 얌전하고 인자하고 나 이찬 보모! 즉 리인숙을 후임으로 다려 나려오기로 한것이 었다.

졸업은 했으나 인숙은 그러지 않어도 어디로 갈지를 몰라 서 걱정중이든 차에 천행으로 저와 이세상에서 가장친하고 인연깊은 사람들이 모혀있는 곳으로 든든하고 의지성있게 가 있기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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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운지도 한참 만에 기차는 ○○역 못및어 정거장에 서 그 지처 늘어진듯한 차체를 잠시 가로 눕혔다. 인숙은 차ㅅ멀미를 하는데다가 어찌나 지리하였는지

"인전 요 다음이로구나"

하고 행장을 수습하는데 누군지 앞으로 뛰어오는 구두소리 가 나더니

"새언니!"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것은 봉희였다. 그리웁고 그리우다 가 이태만에 낯을 대하는 봉희였다.

"자근아씨!"

하는 불으짖음과함께 두사람은 곁에ㅅ사람도 불계하고 서 로 끌어안었다. 힘껏 끌어안고는 반가움에 눈물이 글성글성 한 얼굴을 부비며 '새언니' '자근아씨'밖에는 피차에 말을 못 한다.

한덩이로 뭉첬던 두몸이 떨어저 앉어서도, 지나치게 반갑 고 감격에 겨워서 둘이 다 처음보는 사람처럼 멀거니 눈에 손수건을 대였다 떼였다 하는동안에 기차는 마지막 정거장 에 다다렀다.

창밖은 으스름 달밤인데 등불을 켜들은 사람들이 정거장 구내에 수십명이나 늘어났다.

봉희는 차창을 열고 손을 내둘으며

"이리들 오서요-"

하고 소리를 첬다.

복순은 차ㅅ간으로 뛰어올라 인숙의 손을잡고 쩔레쩔레 흔 들며

"차ㅅ멀미를 했구료? 새생활의 첫 번걸음이 넘우 쓰겠수"

하고 인숙의 어깨를 뚜드려 준다. 세철이도 올라와서

"퍽 지리 허섰지요?"

하고 짐을 나려준다. 저녁이되여서 유치원의 원아들은 마 중을 나오지 못했으나 교회의 관계자며 학부형들이 나와서, 인숙을 에워싸고 인사를 주고 받었다.

인숙은 생후처음 해보는 호강이었만 정신이 얼떨떨해서 새 로 인사한 사람의 일홈은, 저와같은 유치원에서 일을 할 나 이 사십도 넘어보이는 보모 한사람밖에는 기억할수 없었다.

아직 전등의 설비가 없어서 여기저기 남포불이 빤짝이는 동해변 조고만 동회의 저녁거리는 침침하고 쓸쓸하였다. 그 러나 인숙은 앞뒤에 등불을 든 사람의 호위를 받고, 봉희내 외와 복순이가 좌우에서 떠밧들어 주듯하여서 인숙은 바로 큰 벼슬을하고 부임이나 하는 것 같었다.

(옵바나 허선생이나 서울 동창생들이 이광경을 보아주었으 면) 할만치 자랑스러웠다.

마중나왔던 사람들은

"내일 뵙겠습니다"

하고 하나씩 둘씩 떨어저서 이골목 저골목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이면 우선 유치원 구경부터 헙시다"

"뭘 밝는 날 보지, 그리 급허우"

하면서도 인숙의 청대로 복순은 앞을서서 꼬불랑 꼬불랑한 산길을 걸어 올라 가다가

"저기 저거라우"

하고 가르치는데를 보니, 생철집웅에 검언 판장으로 둘러 싼 것이 예배당이다. 불을켜고 들여다보니 피아노는커녕 발 틀 재봉기계만한 풍금 하나가 동그마니 놓이고 칠도 아니한 조그만 걸상이 한 사오십개 벌려노인 것이 유치원 이었다.

복순은

"서울 안목으로 보아서는 안되우. 이 아무 설비도 없는 유 치원 하나를 유지하느라고 죽을 애들을 쓰는중이라우"

하고는 예배당 마당으로 나와서

"저 바다를 좀 보우"

하고 가르치는 편짝을 나려다보았다. 으슴츠레한 달빛알에 게 훠-ㄴ하게 티인 것은 끝단데 없는 동해였다.

"어쩌면, 저기가 바루 바다로구료!"

인숙의 가슴은 연기가 자욱하게 든 방문을 활짝 열어제친 것처럼 시원하였다. 그는 한두번 폐량(肺量)껏 심호흡을 하 고 복순을 따러나려와 세사람이 동거하는 청년회곁에 조그 만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어와 정지깐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봉희가 팔을 걷 은채 내닫더니

"오죽이나 시장허겠수? 어서 방으로 들어가우. 우리도 그저 저녁을 안먹었는데!"

하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방문을 막어 서면서

"내 새 언니가 제일 반가워 헐 사람을 보혀주리까? 눈 꼭 감고 섰어요"

하더니 인숙의 앞을 비켜서며 방문을 살그머니 연다.

(내가 제일 반가워할 사람이 누구람) 하고 호기심에 빛나는 인숙의 눈이 남포불을 환하게 켜논 방안을 둘러 살피자

"아 저게 누구야?"

하는 불으짖음과 함께, 그는 누가 등이나 떠다 미는것처럼 구두를 버서던지며 방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편집]

인숙에게 가장 반가운 사람이란 과연 누구였던가? 그는 누 구헌테나 말은 하지않고 지냈으나 마음속에 항상 못잊치고 (어디가서 어떻게 사나)하고 길에서라도 한번 만났으면 하 던, 옛날의 오라버댁도 아니요, (그가 경직과 작별한후 어느 장사하는 사람의 후취로 팔자를고처 전 남편의딸 이외에 아 들딸 낳고 참다케 사는줄은 알리없었다) 그렇다고 여러해 소식이 끊친 것으로 보아 벌서 세상을 하 직하고 백골만 청산에 묻첬으리라고 생각되는 유모가 살어 와 앉었을리도 없었다.

지금 인숙에게 세상에 가장 반가운 사람은 세철과, 봉희가 창작한 사랑의 결정체인 생질이였다.

백설같은 융포대기에 쌓여 외숙모를 (이혼을 하였어도)언제 보았다고 방싯방싯 웃으며 흑진주 같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처다보는 것은 일남이가 다시 살어와서 누은듯한, 꼭 고만 터수의 옥동자 였다.

"아이구 어쩌면 자근아씨두 나한텐 입때 통기두 안했드란 말요? 어쩌면 어느틈에 이런 금자동이를 낳었단 말요?"

인숙은 어찌나 신기하고 귀여운지 어린애의 토실토실한 손 을 쥐어보며 젖살이 뽀얗게 찐 이뺨저뺨의 입을마추며 어쩔 줄을 몰은다. 방안에 세간이 어떻게 놓였는지 둘러볼 사이 도 없이, 하로종일 기차에 시달린 피곤도 잊은 듯이,

"편지를 허려구 몇번이나 별렀지만 일남이 생각을 허구 되 려 얹짢어헐가바 어디 참아 알리고 싶읍디까 언제든지 한번 깜짝 놀낼려고 감쪽같이 속여왔다우"

봉희의 변명이 그럴듯도 하였다.

"그래 첫아들을 낳었으니 얼마나 기쁘서요? 한턱 내서요"

인숙은 옷간에 가 앉어서 싱글벙글하고 제 아들을 바라다 보는 세철을 보고 축하겸 놀리듯이 물었다. 세철은 눈을 꿈 적하더니

"그렇지만 그애는 벌서 제임자가 있는걸요"

하고 시침을 딱 갈긴다.

"아, 임자가 있다뇨?"

인숙의 눈은 동그래젔다. 그판에 복순이가 들어오며

"한턱은 인숙씨가 내아 경우가 옳을걸"

하고 세철의 얼굴을 처다보며 눈짓을 슬쩍 한다.

"내가 한턱을 내다뇨?"

인숙은 수수꺼끼를 얼른 풀지못해서 이사람 저사람의 눈치 만 본다. 그러자 봉희가 정지에서 방으로 통한문을 열고 들 여다 보며

"내 시원허게 말허리까? 우리는 앞으로 자꾸 날테니깐, 첫 아들은 새언니 아람치로 바치자구 약속을 했다우"

하는데 복순이가

"무수거, 문여리르 작은이 아주망이께 바치능게 앙이라, 강 아지처리 노나 준다는 수작 이랑이"

하고 함경도 사투리를 서툴르게 흉내를 내어서 인숙과 세 철이 내외는 허리를 잡으며 웃었다.

그런말을 듣고보니 인숙은 정말 일남이 보다도 더잘 생기 고 튼튼한 아들 하나를 힘안들이고 얻은 듯 싶었다. 입모습 이 일남이와 흡사한 것이 당장에 뀌여차고 싶도록 귀여워서

"아들 하나가 하늘에서 툭 떨어젔구료!"

하고 어린애를 안어들고 다시한번 이마에 뜨거운 입술을 대었다.

"일음은 뭐라구 지었어요?"

"나허구 둘이 낳것만 어미가 더 애를 썼다구 일음의 끝엣 자를 각구루 붙였세요. 희윤이라구요"

세철은 여전히 이죽거린다. 인숙은 웃음을 참으며

"희윤이 희윤이! 불르기두 좋구나"

하고 희윤을 연겊어 불르며 얼러주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봉희와 복순이가 그야말로 원님의 도임상 같은 밥상을 마주 들고 들어왔다.

"새언니가 조와허는 채소는 귀해두, 생선은 얼마든지 있다 우"

하는 주부의 말에 상을 들여다보니 증류가 달르기는 하여 도 지지고 조리고 붙이고 구어논 것이 말끔 생선이다.

"우린 벌서 생선 비린내에 코가 젔었지만......"

하고 봉희는 새로 담근새빨간 깍두기 보시기를 인숙의 앞 에 닥어 놓는다.

세철이가 잠간 일어섰다가 앉자 별안간 천장에서 웅장한 관현악이 하늘나라의 음악인 듯 울려 나려온다. 여기까지 끌고온 라듸오통에서 쏟아지는 '씸포늬 오-케스트라'는 듣는 사람의 억개가 읏슥읏슥 해지도록 유쾌하고 활발한 행진곡 이었다.

(방송하는 시간이 지냈을텐데.......) 하고 인숙이가 팔뚝시계를 들추어 보니까

"새언니가 저런 음악을 들어봤겠수. 이만저만 헌게아니라, 해삼위 방송국에서 오는 아라사음악 이라우"

하고 봉희는 박자를 맞추어 저ㅅ가락을 '컨떡터'의 지휘봉 (指揮棒)처럼 내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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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질거히 끝났다. 이 고장의 형편과 인정풍속을 이야 기 하고 또한 여러식구가 소임은 각각 달르나 앞으로 한마 음 한뜻으로 활동해 나아갈 것을 의논하느라고 밤이 이슥해 가는 줄을 몰랐다. 다각기 적으나마 벌어 드리는대로 공평 히 추념을 내어서 생활을 하여나갈것과 될 수있는데까지 생 활비를 절약해서 여유를 만들어 ××학원과 유치원에 바칠것 이며 (인숙의 월급은 삼십원으로 정하였다하나 이십원만 받 으리라)하였다. 조그만 나라를 다스리듯이 이 공동 가정의 내 표자로는 복순을 내세워 외교를 맡게하고, 살림을 주장 해 하는것과 어린애를 양육하는 책임은 인숙이가지고, 회계 위원 노릇은 봉희가 하는데 세철은 몸을 몇으로 쪼개고 싶 도록 바쁜터이라 무임소대신(無任所大臣)격으로 대두리 일을 통찰하게 하기로 약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봉희가 십리나되는 학교로간 동안이나 다녀온 뒤라 도 희윤은 이웃집 여편네에게 맡겨 젖을 먹이고 보아주게 한후, 밤에도 쉬지를 말고 집안식구가 청년회관으로 총동원 을 하여서 오즉 공공한 사람으로써 글눈이먼 아이들과 어른 들과 여자들을 반을 나누어 가르치고 지도 하기로 의론이 귀일하였다.

세철은 '라디오'의 '시우치'를 끊고 식구를 앞으로 닥어 앉 히며

"이만일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은 아니예요.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 반이라구 적은 일버텀 착수해 나가야지요.

큰일을 한꺼번에 성공하려는 공상만 허는 것이 조선사람의 큰결점이니까요. 요행수를 바라거나 남을 의뢰허거나 공평 하고 행복헌 사회가 별안간 닥처오기를 바라고 이리 저리하 는 기회주의(機會主義)는 우리에게 있어서 비상 한가지예요.

사회의 한 단 위인 우리의 생활부터 이상적으로 허가려고 제각기 노력허는 것으로 적으나마 위안을 받고 지내야지요.

××학원하나를 끈기있게 구준이 부뜰고 나아가는것만 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벅찬 일인줄 알어요"

하고 그검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진다.

"아는건 없지만 내힘껏은 허지요. 남을위해서 한몸을 바치 려는 결심을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깐요"

하는 것이 조금도 피곤한 빛을 보이지않는 인숙의 대답이 었다.

복순은 이사람 저사람의 얼굴을 무엇이 묻기나 한것처럼 번차레로 쳐다보더니

"참 각계급의 인물들이 골고루 한집에 모였구료. ××가의 아들에, 귀족의 따님에 인숙씨같은 양반의 며느님이 없나 나같은 아비도 모르는 계집종의 사생녀가 없나...."

하고 그 건순이 진 두툼한 입술을 실룩거리며 호걸웃음을 웃는다.

사실로 이집의 같은 지붕아래서 한솥에 밥을 먹게된 식구 들은 각인각색이였만 한마음과 같은 주의로 뭉처진 것이 여 러사람에게 새삼스러히 인식되었다. 상전도 없고 종도없고 부자도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다. 오즉 옛날의 도덕과 전통 과 또한 그러한 관념까지도 깨끗이 벗어버린 오즉 발가벗은 사람과 사람들끼리 남녀의 구별조차 없이 똑같은 목적을 가 지고 한몸둥이로 뭉쳤을 뿐이다.

복순은 하품을 두어번 하더니

"여간 곤허지 않을텐데 우리 호라비끼리 가서잡시다"

하고 쌔근쌔근 잠이깊이든 희윤의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 보는 인숙을 딴채처럼 돌아앉은 뒤ㅅ방으로 더리고 갔다.

간반쯤 되는 반듯한방은 도배장판을 깨끗이 해놓았는데 가 지고 온 것이 있는데도 봉희는 어느틈에 제가 새로 꾸민 이 부자리를 펴놓고 나갔다.

"참 오래간만에 한방에서 자보는 구료!"

두 외로운 여자는 피차에 감회가 깊었다. 그러나 인숙은 평생처음인 듯 마음을 턱놓고 두다리를 쭉-뻗고 꿈없는 잠 이 깊이 들었다.

서창을 물들였던 달도 기울고 동해의 파도소리조차 잠이든 듯 고요한 봄밤은 지새여 간다.

[편집]

그동안 봉환은 어찌 되었는가. 그는 지금 동경가서 있다.

그일이 한번 신문에 난후, 자작은 이제까지 살어온 것이 불찰이었다고 불인한 손에 주머니칼을 들고 자결을 하려다 가 그나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강보배의 집에서는 리혼을 하였어도 강경히 한걸름도 양보 를 아니하여서 자작은 하는수없이 들어있는 ××궁안채 마저 내여놓고 세간집물을 팔어 간신히 오천원을 변통하였다.

봉환은 변호사와 함께 그돈을 가지고 강보배의 집으로 가 서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진땀을 흘리며 손이 발이되도록 빌 어서 불행중 다행으로 재판소까지는 불려가지를 않게 되었 었다.

자작은 다시 울화병으로 몇 달동안을 신음하다가

"인제는 선영으로 가서 배골이 묻치는 날이나 기다리겠다"

하고 '김포'땅에 있는 묘막으로 나려갔다.

아직도 서울서 살겠다고 앙바티는 며느리들을 끌고 낙향을 하였다.

그동안 강보배가 낳어다가 개구녕바지 처럼 바친, 눈하나 가 멀어 나온 손녀를 안고 뻐쓰를 타는 대방마님과 백발이 성성한 대감을 전송해주는 사람도 몇사람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중국으로 피신을한 큰아들은 생사간 소식조차 전 하지를 않었든 것이다.

그뒤에 강보배는 어느 미두꾼의 첩이되어 인천으로 나려가 고 계도 구럭도 잃은 봉환은 신세가 겨우 노자만 변통해 가 지고 다시 동경으로 건너갔다.

유언과 같은 인숙의 간곡한 부탁을 저바리지 않으려함인지 전에 드나들든 선생의 집으로 찾어가서 그의 '아트리에'에서 등걸잠을 자고 구차히 조석을 얻어먹으며 다시 그림공부를 하는중이다. 전처럼 돈이 없으니 사요꼬같은 계집이야 수두 룩 하건만 거들떠볼 용기도 나지않고 박귀양과 장발은 오다 가다 길에서 한두번 만났으나 서로 원수처럼 고개를 돌렸다.

객창에 부술비 뿌리는 아침이나 별만 총총한 한밤중에 봉 환은 몇번이나 남유달리 현숙하고 적지아니 은혜를입은 조 강지처를 버린 것을 뉘우첬다. 아득히 먼 고향의 하늘을 바 라다보며 뜨거운 눈물로 벼개를 적시기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 × 동해바다를 건너 북녘나라의 하늘밑에서 첫날밤을 지낸 인 숙은 바다저편에 해가 붕그시 솟을 때에 곤한잠을 깨였다.

(오늘부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니 마음이 긴장되어 찬물에 세수를한후 건너가서 잠시 희윤을 안고 얼러주다가 이른아침을 억지로 먹었다.

세철과 봉희는 변또를 싸가지고

"일즉 돌아 오리다"

하고 각각 일터로 활발스러히 나간다. 복순은 신부의 뒤를 따르는 수모양으로 인숙을 앞세우고 유치원이 있는 예배당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날 인숙은 과거의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또는 지난날을 조상하는 듯이 힌저고리에 힌치마 를 입었다.

인숙은 유치원안을 한바탕 둘러보고 낡은 풍금을 몇곡조 처보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신록이 피어오르는 듯 한마당으 로 아침해는 쨍쨍이 나리쪼이는데 풍금소리를 들었는지 원 아들이 먼저있든 보모의 두팔과 치맛자락에 매어달려 올러 온다. 인숙을 가르치고 무어라고 재껄거리면서......

그뒤를 이어 유치원의 관계자며 부형들이 아들 딸을안고 혹은 업고 올러온다.

아이들은 마당가에 미소를 띠우고 선 인숙에게로 가까히 오더니 귀에 서틀른 '악센트'로

"선생님!"

"선생님!"

하고 줄창 보아오든 사람처럼 반기며 팔을 버리고 앞을 다 투어 오르르 달려든다. 인숙은 순식간에 사람의 꽃송이들에 게 에워 싸였다. 아이들은 서울애들처럼 꾸미지는 않었으나 부승부승하고 혈색이 좋다.

인숙은 사랑에 겨워 그중에 제일 키가 적고 인형처럼 귀엽 게 생긴 계집아이를 번쩍들어 가슴에 꼭 끌어안었다. 무어 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격에 눈두덩이 뜨끈 하였다.

"거기 그리고 스섰으니까. 힌옷을 입은 성모 마리아 같군 요!"

하는 것은 늙수구레한 보모의 감탄사였다.

하늘은 새파랗게 개여 구름한점 찾을수없다.

인숙은 눈을들어 하늘보다도 더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무한히 넓은 바다 끝다은데 없는 동해의 수평선으로 순풍 에 힌 돗을 단 어선 한최이 아침볕을 눈이 부시게 받으며 새로운 희망을 가득 실고 떠 나아 간다.

줄 끊어진 연 하나가 하늘바다를 헤염치며 깜박 깜박하고 떠올나 가다가 목동에게 붓들려 바람을 힘있게 받은 듯이-.

인숙은 잠자코 그힌돗을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바라 보고 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