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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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脫獄

다시 없는 기회였다!

만일 하늘이 봉룡으로 하여금 이 다시 없는 기회를 놓치게 하신다면 하늘이야 말로 악한 자를 돕고 착한 자를 배반하는것 밖에 아모것도 아닐것이다.

우월대사의 시체를 끄내 자기 방으로 갔다 눕히고 그대신 자기가 그 커다란 포대 속에 들어간 봉룡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두손으로 꽉 붙잡고 신령하신 신명에 기도를 올렸다.

「신이여! 만일 봉룡의 과거가 추악한 그것이라면 가혹히 벌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거던 봉룡으로 하여금 다시한번 세상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봉룡은 우월대사가 쇠꼬치로 일년을 걸려서 만들었다는 조그만 칼을 손아구에 힘껏 부여잡았다.

만일 도중에서 발각이 되는 날에는 이 조그만 무기로 난을 피하리라 하였다. 그리고 아직 죄수들의 무덤이 저 흐느적거리는 황해바다인 줄을 모르고있는 봉룡은 만일 땅속에 자기를 파묻거던 포대를 찢고 흙을 헤치고 나오리라고 생각하였다.

이윽고 밤 열시가 되였을 때, 사람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었다. 마침내 올때가 왔다. 봉룡은 숨을 꼭 죽이고 온 정신을 귀로 모았다. 만일 이런때 사람의 혈맥(血脈)까지라도 정지시키는 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였다.

사람은 셋이었다. 두 사람은 인부였고 한 사람은 손에 등불을 든 안내인인 모양이었다. 인부는 각각 봉룡이의 머리와 다리를 양편에서 들었다.

『그놈의 미치광이 영감, 무겁긴 또 상당히 무거운걸.』

봉룡은 시체인것 처럼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윽고 봉룡이의 몸둥이는 담가(擔架)에 실리었다.

이리하여 선봉을 선는 등불을 든 사나이의 뒤를 따라 층층대를 얼마동안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바닷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밖으로 나왔다.

「인제 살았고나!」

하는 말할수 없는 기쁨이 물밀처럼 욹하고 전신을 습격해 왔다. 그러나 다음순간 봉룡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멀리 발밑으로부터 거세인 파도 소리가 들리고 해풍이 쏴아쏴아 불어오는 그어떤 절벽 위에서

『자아, 여기서 추를 달세.』

그러면서 봉룡이의 발목에다 설흔여섯 근(斤)이나 된다는 철추를 동여매는 것이었다. 봉룡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자네, 이번에는 잘 던지세. 저번처럼 중도 바윗돌에 걸려서 보기숭한 장사를 지내게 되면 또 전옥에게 꾸중을 받어야 하지 않겠나?』

『염녀 말래두 글세. 힘껏 한번 전줄렀다가 획 하고 던지면 되는 것이야.』

이윽코 봉룡이의 몸둥이는 마치 그네를 탄듯이 서너번 흔들리자

『하나, 둘, 셋!』

하는 부르짖음과 함께 획 하고 허공중에 내던저 졌다.

눈앞이 핑핑 돌았다. 설흔 여섯근짜리 철추가 봉룡의 다리를 무서운 기세로 끌고 내려가다가 이윽고 고막(鼓膜)이 터저나갈것 같은 무서운 물소리와 함께 바닷밑으로, 바닷밑으로 자꾸만 끌리어 들어가는 봉룡이의 몸둥이!

아아, 얼마나 깊이 들어갔을 때였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채 무거운 철추를 따라 바닷밑으로 자꾸만 끌리여 들어가던 봉룡은 비로소 자기 손아귀에 쥐여진 조그만 칼을 생각하고 온갓 기력을 다하여 포대를 찢고 다리에 매여달린 철추의 끈을 끊어 버렸던 것이니, 아아, 행운이여! 바다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살아온 봉룡이 아니였던고! 태양환의 선장 이봉룡은 황해바다가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봉룡은 일단 물밖으로 나와서 숨을 힘껏 들이키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시 물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동안에 감감히 바라다 보이던 절벽 위의 등불이 인제는 완전히 보이지 않을만한 먼 거리로 헤엄쳐 나올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밤처름 풍랑이 거세인 날씨를 一년가야 한두번 밖에는 보지못한 봉룡이었다. 하늘을 처다보니,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르고 새파란 번갯불이 무연한 바다위를 도깨비불인 양 환하게 비쳤다가는 다시 캄캄한 암흑의 세계로 변하곤 하였다. 이러한 날씨에 곧잘 난파선(難破船)이 생기는 사실을 봉룡은 잘 알고 있다. 잘못하면 산떼미같은 물결과 함께 바다속으로 짚오락처럼 끌리여 들어갈려는 봉룡이의 피로한 몸둥이였다.

봉룡은 가만히 생각하였다. 남포 쪽으로 헤여가기는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고 황해도 쪽으로 건너가는 것은, 이 무서운 풍랑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아, 하늘이여! 제가 받은 고통이 아직도 불충분 하오니까?......」

봉룡은 마음속으로 하늘의 도우심을 기원하면서 마침내 황해도쪽으로 건너가기를 결심하고 무서운 풍랑과 싸우기를 무려 다섯 시간— 그러나 일진일퇴(一進一退), 기진맥진한 봉룡은 인제는 더 헤염쳐 나갈수가 없으리만큼 힘이 쪽 빠저버리고 말았다. 물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다만 물위에 떠 있기가 간신의 노력이었다.

「하늘은 나를 버리시였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불쌍한 아버지의 얼굴이 망막에 떠오른다. 옥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봉룡은 다시 눈을 떴다.

그순간, 번쩍하고 번갯불이 비첬다.

『아, 배다! 틀림없는 한 척의 배가 풍랑과 싸우고 있는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봉룡은

『오오, 하늘이여!』

하고 미칠듯이 외쳤을 때, 번갯불이 또 번쩍하고 비첬다.

약 천메돌 가량 떨어진 곳에 돛을 거둡고 모진 파도와 싸우고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떠 있지를 않는가!!

『사람을 살리시요! 사람을 구하시요!』

봉룡은 목구멍에서 피가 나오도록 고함을 치며 있는 기력을 다하여 헤염을 쳤다. 그때 배에서도 모기소리와 같은 사람의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아아, 하늘은 마침내 봉룡을 저바리지는 않았던 것이니, 정신을 잃은 봉룡이의 몸둥이가 배에 끌리어 오른것은 그로부터 약 십오 분 후의 일이었다.

아니, 하늘이 또 한가지 봉룡을 도우신 일이 있다. 그것은 무려 다섯 시간이나 파도와 싸우는 동안, 봉룡이가 입었던 죄수의 복장이 물결에 벼껴저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이튼날 아침 봉룡이가 선실 자리속에서 눈을 떴을 때는 거의 벌거벗었던 자기 몸에 비록 더럽히긴 했으나 퉁퉁한 솜바지 저고리가 입혀저 있었다.

『인제야 정신을 채렸나보군.』

선장인듯한 사람이 웃는 얼굴로 봉룡을 바라보았다. 선장을 둘러싸듯이 세 사람의 선원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 대관절 어떻게 된 노릇인가?』

『어젯밤 풍랑에 배가 까라 앉았습니다.』

『그러면 자네도 뱃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황해바다에서 자라난 뱃놈이지요.』

봉룡은 어젯밤 풍랑에 배가 까라앉았다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한 후에 감사의 뜻을 진심으로 표하였다. 선장을 비롯하여 선원들은 봉룡의 신분을 별로 의심하지도 않고

『그래 뱃놈이 배를 잃어 먹었으니 이제부터 뭘할 작정인가?』

수길(水吉)이라고 불리우는 친절한 선원이 봉룡이에게 먹을것을 갖다주며 동정을 표하였다.

『글세 뭘 했으면 좋을런지, 나두 알수 없소.』

하고 온순히 대답하였을 때, 선장이

『그래 황해바다의 지리(地理)는 잘 아는가?』

『황해바다는 우리집 마당처럼 잘 알지요.』

『응, 그래?』

하고 선장이 다음 말을 잇기도 전에 수길이는

『아, 선장, 그럼 우리 배에서 일을 시키면 어떻습니까?』

『글세, 어디 밖으로 나가서 한번 치를 잡아 보게.』

이리하여 봉룡은 선장과 선원이 보는 앞에서 치를 잡았다. 선장이 가끔가다 이렇게라 저렇게라 명령을 하는대로 봉룡은 태양환의 선장의 역량을 충분히 보였을 때, 선장은 만족한 얼굴을 지었다.

『그만하면 상당한 역량일세. 당분간 우리 배에서 일을 보도록 하게.』

『고맙습니다. 선장! 뱃일이라면 무슨 일이던지 사양치 않고 하겠습니다.』

그날부터 봉룡은 이 황해환(黃海丸)의 일등가는 치잡이가 되었다. 사람된 품이 무척 순진하고 친절한 수길은 봉룡이의 그 능난한 치잡이를 무척 칭찬하였다.

봉룡은 치를 잡고 멀리 진남포 쪽을 물끄럼이 바라다 보면서 수길에게 물었다.

『오늘이 대체 며칠인가?』

『二월 二十八일이 아닌가.』

『二월 二十八일?』

그렇다. 봉룡이가 경관에게 부뜰려 간것이 바루 二월 二十八일이었다.

『그래 올이 몇년인가?』

『아니, 소화 八년이지, 자네 그런 것두 모르나?』

『소화 八년?...... 아니, 그러면 저 대정은 죽었나?』

『하아, 이 사람이 정말 혼이 나갔나보네 그려.』

『어젯밤 풍랑에 정신을 차릴수가 없어서.......』

봉룡은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 나이를 따져 보았다. 설흔 셋이다. 그러면 그동안 十四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셈이다.

아아, 二월 二十八일년! 그순간, 지금 쯤은 자기를 황천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계옥분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기를 저 무서운 해상감옥으로 쓰러넣은 장현도와 송춘식과 유동운의 얼굴이 번개같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복수! 복수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고 있을때, 수길은 담배를 퍽퍽 피우면서

『내일은 三월 초하루...... 우리 나라가 독립을 할려다가 못한 날이야.』

『뭐, 독립이라구?』

『아니, 이 사람이 三一운동을 모른다는 말인가?』

『三一운동?』

『아니, 지금으로부터 十...... 十一...... 十二...... 그게 기미년이니까 옳지, 바루 十四년 전 三월 一일에 대한독립만세 부르던 생각이 안나는가?』

봉룡은 눈만 껌벅거리며 수길이의 얼굴만 덤덤히 처다볼 뿐이다.

「그럼 저 도산선생이 유민세씨에게 보내던 편지의 내용이 바루 그것이었던가?......」

봉룡은 인제야 모든것을 알것 같았다. 우리민중의 역사를 영원히 빛내일 三一운동에 있어서 태양환의 일선원 이봉룡은 가장 큰 역할을 하였건만 봉룡 자신은 三一운동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아아, 이 너무나 가혹한 사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