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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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성[편집]

1[편집]

기다리는 트럭은 한 주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행은 회양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회양서 하사관 두 명과 세 사람의 하졸이 그들을 데리러 왔다. 여기서 비로소 영민은 수송관의 극심한 감시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망망대해처럼 끝이 없고 일망무제의 사막처럼 무연한 평원이다. 하루 가도 이틀 가도 모두가 보리밭으로 된 넓은 평야가 무한히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영원히 단조로운 보리밭의 연속이다. 개미가 쳇바퀴를 도는 격이다.

때때로 우차나 마차가 지나 갔다. 중국 소년이 조그만 부삽과 광우리를 들고 반드시 그 뒤를 따른다. 처음에는 우마차와 무슨 관계가 있는 소년인가 하였으나 알고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 소년은 하루 종일 우마차 뒤를 따라 다니면서 소나 말이 똥을 누기나 기다리는 것이다. 똥을 누면 삽으로 떠서 광우리에 담는다. 안 누는 때도 있을 것이나 안 누면 안누는 대로 그것을 걱정할 줄을 모르는 듯이 하루 종일 따라 다니면 그만인 것이다. 마분이나 우분은 비료로 쓴다.

나흘 만에 일행은 회양에 도착하였다. 회양은 옛날 복희씨(伏羲氏)가 도읍을 했던 곳으로서 지금도 성 서편에 인조묘(人祖廟)라고 부르는 복희씨의 분묘가 있어 봄절기가 되면 참배자가 연락부절이다. 성호(城壕)에 임하여 현가대 라는 (弦歌台) 정자가 있는데 이것이 진(陳) 나라 땅이 되었던 춘추(春秋)시대에 공자(孔子)가 이 현가대에서 식량이 결핍하여 굶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회양은 일본군의 최전선으로서 적정(敵情)을 탐색하고 척후(斥候)의 임무를 띤 첨병중대(尖兵中隊)의 소재지다. 그러니까 일본군의 점령지대는 이 회양에서 끝나는 것이다. 조선 잇수로 회양 남방 四十[사십]리 되는 곳을 신황하(新黃河)가 흐르고 있었다. 회양에서 일본 첨병부대는 신황하를 사이에 끼고 중국군과 마주 서 있었다.

중국군의 첨병부대는 신황하에 임한 주가구(周家口)라는 촌락이 있었다.

회양과 주가구 사이는 약 七十[칠십]리 길이다.

이 신황하는 하남성 성회(省會) 소재지인 개봉(開封)과 정현(鄭懸) 사이에서 본류인 황하와 갈라저 회양 남방을 우불꾸불 거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황하라는 것은 중국사변 초년에 장개석의 중국군이 물밀 듯이 처들어 오는 일본군을 막을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자기네 손으로 황하의 제방을 과괴하여 대홍수를 일으킴으로서 간신히 일본군을 제지하였는 데 그때 생긴 것이 신황하인 것이다.

중국군은 주가구를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병력을 집중시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황하는 당시 완전히 중국군의 세력 범위에 있었기 때문에 평복으로 가장한 정찰대가 자주 강을 건너 왔고 때때로 소규모의 습격이 있었다. 필연적으로 주가구와 회양 사이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 주민들은 장 개석 정부와 왕 정위 정부에 다같이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일본군이 회양을 점령한 지가 거의 六[육]년이나 되었으나 실제로 점령한 것은 회양 성내 뿐이었다. 아니 그 회양 성내 조차 치안유지의 완전한 확보를 보지 못하였다. 성문 위에 선 일본 보초병이 백주에 사격을 받는 일이 있곤 하였다.

「이 근방을 잘 보아 둡시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보리밭의 연속도 마침내 끝나서 회양성에 도착하였을 때, 성 밖에서 영민은 칠성의 귓속 말을 들었다.

검은 벽돌로 깍은 듯이 쌓아 올린 까마득한 성벽이 회양시를 네모나게 둘러 싸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무딘 톱니를 세워 놓은 것 같이 성벽 위는 울툭불툭 하였다.

성벽 밖에는 약 二十[이십]메타 넓이를 가진 「크리 ─ 크」(못)가 역시 네모나게 성벽을 삥 둘러 싸고 있었다.

물은 썩어질대로 썩어서 암록색을 이루고 있었고 「크리 ─ 크」가장자리에는 갈대같은 키 큰 풀이 무성해서 흡사 「쟝글」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성벽과 「크리 ─ 크」사이에는 약 十[십]메타 가량의 간격이 있었다.

성벽에는 동서남북 사방에 네 개의 성문(城門)이 있었고 성문 위에는 청기와로 지붕을 이은 이층 망루(望樓)가 각각 한 채씩 서 있었다. 성문에는 이중의 완강한 철문이 달려 있었다. 일동은 보초병의 경례를 받으며 이 완강한 철문을 들어 섰다.

「이 회양성은 하남에서도 제일 견고한 성이다. 길이가 약 八[팔]백 메타, 폭이 약 五[오]백 메타, 인구가 삼사천 명에 불과한 작은 고을이나 견고하기는 하남성 제일이다.」

하사관 하나가 일동에게 설명을 하였다. 하남성 제일 가는 성이란 한 마디가 영민의 눈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탈출의 희망이 이 최후 지점에 와서 완전히 끊어지는 것 같았다.

「성벽의 높이는 얼마나 됩니까?」

영민은 그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어서 슬그머니 물어 보았다.

「대여섯 길 ─ 그러니까 약 十[십]메타 가량이다.」

「十[십]메타!」

영민은 절망을 느끼면서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성 안으로 들어 서자 영민은 머리를 돌려 까마득한 성벽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수송관의 감시가 벗어나기가 바쁘게 영민은 다시금 하남성 제일의 견고한 성벽 속의 수인(囚人)이 된 것이다.

2[편집]

그들 학도병 여섯 명이 배속된 제 四[사]중대의 병영(兵營)은 성 북쪽 한편 구석에 있었다. 이전엔 사범학교이던 것을 일본군이 개조하여 병영으로 쓰고 있었다. 거므특특한 흙으로 지은 병사(兵舍)가 주루루 서 있었고 역시 검은 흙담이 병영을 쭉 둘려 싸고 있었다. 두 길 남짓한 흙담이다. 흙담 위에는 좁다란 기와지붕이 얹히어 있었다.

영문(營門)을 들어서 위병소(衛兵所) 앞을 지나 병정들이 산개전(散開戰)의 연습을 하고 있는 드넓은 영정(營庭) 한복판에 다달았을 때, 영민은 자기 몸이 여섯 길이 넘는 회양성 벽과 두 길이 넘는 이 병영 토벽으로 말미암아 이중의 견고한 울타리 속에 완전히 갇히어진 사실을 깨닫고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좀더 미리 탈주를 못했던고?」

수송관의 감시가 아무리 극심했다 치더래도 결사적으로 탈주를 기도 하였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우유부단한 탓으로 좀더 좋은 기회가 있기를 바란 것과 또 한 가지 최전선에서 탈주를 하는 것이 중국군 진지에 도달하는 거리가 가까와진다는 이유로서 결국 이 지경에까지 당도하고 만 것이었다.

여섯 명의 학도병 가운데 영민과 가나즈만이 같은 五[오]반에 편입이 되었을 뿐, 다른 네 명은 각기 다 딴 반으로 하나씩 갈라져서 편입이 되었다.

영민은 황 칠성이와 헤어진 것을 무척 서운히 생각하였으나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너희들은 내일부터 저 초년생(初年兵)들과 함께 훈련을 받는다. 모를 것이 있으면 반장에게 물어봐.」

지금 산개전 연습을 하는 것이 초년병들이었다.

영민은 가나즈와 함께 五[오]반 병실(兵室)로 가서 반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저녁 무렵이었다. 북향인 탓으로 어둑컴컴한 병실이다. 난로에는 타다 남은 불길이 껌벅거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사오 명의 병정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구석에서 양말을 깁고 있는 병정도 있었다.

얼굴이 대추알처럼 울긋불긋한 가와노 오장이 시선을 들었다. 五[오]반 반장이다. 四十[사십]의 고개를 훨씬 넘은 위인이었다.

「용산 제 二十五[이십오]부대에서 배속되어 온 학도병 백 영민입니다.」

똑같은 말을 가나즈도 하였다.

그러나 가와노는 대답이 없이 두 사람의 가슴에 붙은 이름표를 한참 동안 번갈아 보고 앉았다가

「기미와· 도오시데· 소오씨오· 시나인다네?(너는 왜 창씨를 안 했나?

─)」

너무나 갑자기 오는 질문이었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될는지 영민은 갑자기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했다.

「죠오센· 소오도꾸와· 소오씨오· 교오요· 시나깟다· 까라데쓰.(조선 총독은 창씨를 강요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

「죠오센· 소오두꾸가? ─ 각까또· 이헤각까또!(조선 총독이야? 각하라고 불러, 각하라고!)」

「핫, 각까떼· 아리마쓰!(네, 각하입니다) ─」

영민은 부동의 자세를 다시 한번 조심성스럽게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학교에서 왔나?」

「조도전 대학에서 왔읍니다.」

「와세다까?(조도전이야?) ─」

가와노는 빈정대며

「와세다노· 쿄오익구모· 모오· 낫죠란나!(조도전의 교육도 인젠 되먹지 않았어!) ─」

이상한데서 조도전의 교육이 비난을 받았다. 자기의 무식을 폭로시키는 한 마디임을 가와노 오장으로선 좀처럼 짐작을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