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빛을 기리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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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별도 없는 밤에
홀로 빈 뜰에 서성대
밤의 ‘마아야’ 내 손목을 잡는다

잠잣거라 가슴아 나는 미쳤어라
지금이 어느 때라 나는 빛을 찾는가
어둠의 우리 속에 둘러싸이어
나는야 굶은 이리 되었어라

찬 서리 내리어 내리어
촉촉히 젖어 서린 나뭇잎 밟고
쉴 데도 없는 몸 어찌 하리까

물 가에로나 가볼까
물 가에 가서 넓은 물 위에
배 띄워 타고 배 띄워 타고
끝 모를 바다로나 가볼까

뫼에로나 가볼까 가볼까
뫼에 가서 觀音님께 무릎 꿇고 빌까
觀音님은 이 내 속 아시오리

설운 마음 술집에나 찾아 갈까
술집 가시내 정다운 양 내 손목 잡으면
가신 임 다시 본 듯 품고 노닐까

아서라 아서라 그리 말아라
벼락이 내려치는 無門地獄에 떨어지리
가신 임 여의었은들 믿음이야 그치리이까
구슬이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그 구슬 꾀은 끈이야 끊이리이까

아으 속절없어라 내 몸은
미친 바람에 지는 꽃잎답게
덧없이 예는 길 애달파라

아니어라 아니어라
차라리 나는 돌아가리로다
미더운 봉당자리에 반듯이 누워
찬 이불로 이 몸 덮어 누워
사향각시 품은 듯 잠이나 자리라

새벽이라 기름때 묻은 베갯맡에
식은 눈물이 젖어 배어
相思戀情도 애닲게 눈을 뜨면
짐짓 듣는 먼 절의 쇠북소리

놀라 깨어 자리 차고 일어
문 박차 열고 뜰로 나가면
반가와라 동녘 하늘에 번히 틔는 빛
아으 이제야 나는 빛을 안으리로다

빛아, 빛아 돋으시라
새 햇빛 밝아오면
온 누리 너울너울 춤추고
내사 밝은 빛이 탐나
눈 비비며 눈 비비며 쫓아가리로다

빛아, 밝고 빛나는 아침 햇빛아
시들은 언덕에 새싹 돋아나고
마른 나뭇가지 위에 꾀꼬리소리 들리고
골짜기마다 옹달샘이 솟아나고
얼굴 들어 고개 숙인 열매나 따 먹고
너풀대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사오리라
빛을 안고 밝은 햇빛 안아 사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