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 처녀작 발표 당시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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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떠한 것을 처녀작이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맨 처음 지은 것이 처녀작일 터인데 맨 처음 지었다고만 할 것 같으면 그대로 지어서 휴지 뭉텅이로 내버린 것 중에도 처녀작이 있을 것이요 그렇지 않고 맨 먼저 지어서 발표한 것이 처녀작이라고 하면 어떠한 문학청년이 선외 가작으로라도 발표가 되었으면 그것도 처녀작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가장 자신 있게 생각하는 것 중에 맨 처음 발표한 것이 처녀작이라 하면 그 자신의 「메돌」을 어떻게 정해야 할는지 모를 것이 아닌가? 그러면 책이 많이 팔린다고 세인의 인기를 얻었다고 그것이 반드시 처녀작으로 문단의 가치를 평정할 수 있을 것도 아니다.

여하간 평론가가 없는 우리 문단에서 처녀작을 평정할 수 없으매 다시 말할 수 없으나 나의 생각과 나의 자신과 또는 세상 사람이 나에게 일러 주는 것으로 보아서 나는 「환희」를 나의 처녀작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그 글을 쓰기는 내가 스무 살 되는 해 겨울 11월? 인지 시작하여 그 이듬해 2월? 에 끝을 마치었다. 그때 그 글을 쓸 적에는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지금 날더러 하루에 원고지 20매를 쓰라 하면 목을 잘라도 못 쓰겠다 할 것이나 그때에는 아침 열 시부터 오정 칠 때까지 날마다 4, 50매 씩은 누워서 엿 먹는 셈이었다.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경망스러웁고 무성실하고 또는 사색과 구상에 들어서는 조금도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생각나는 대로 붓이 내려가는 대로 줄줄 써놓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센치멘탈」하고 통속에 가까운 소설이나 그럼으로써 그것이 발표되자 조선과 같이 문예의 감상 정도가 얕은 데서 다소간에 환영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을 지금 펴놓고 보면 부끄러운 곳이 없는 게 아니지마는 어찌하였든 그것은 내 것이다. 그 서문에도 쓴 바와 마찬가지로 나의 창작 생활의 어떠한 시기를 구분하여 놓는 획선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그것을 몹시 귀중히 여긴다. 감상이라고는 별로 없다. 지면에 관계도 있고 또는 언제든지 부질없이 바쁜 사람이라 두어 자로 책임을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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