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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조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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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낚시질를 좋아한다. 지금도 내가 만일 고향에 있는 몸이라면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바로 송가포반(宋哥浦畔)의 그 소위 ‘섬배미뚝’이라는 갈밭 속 회돌아진 모롱고지의 애기버들 밑에 한가히 풀방석을 깔고 앉아 바람 좇아 굽이치는 물결 위에 자리를 못 잡는 낚시 깃의 동정에서 고깃쩔을 찾아 내려고 온 정신을 시선에 모으고 있을 그러한 시간에 틀림없을 게다.

한여름의 한낮 볕이 지글지글 내려 눌러, 개구리조차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죽은 듯이 두 다리를 쭉 뻐드러지고 물 위에 두웅둥 떠도는 그러한 더위인데도 이때만은 더운 줄을 모른다.

실로 내게 있어,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한바다에 낚시를 던지고 고기를 노리는 그 순간일 것이다. 창작을 할 때의 그 한 순간이 낚시질 그것보다 못지않은 행복한 순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순간과 상반하여 속을 태워 주는 한동안 한동안의 괴로운 그 순간마다 한근씩이나 살을 깎아 내리는 듯한 실로 참기 어려운 역한 순간이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을 살찌워 주는 점에 있어선 낚시질이 오히려 창작의 위에 놓여진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어쨌든 낚시질 철만 되면 나는 보던 책도 쓰던 글도 다 집어던지고 한여름 동안을 줄곧 낚시질로 지나 보내게 된다. 이것이 그 어느 한 해의 여름 동안의 그 짓이 아니었고 십 년 가까이를 계속해 온 때가 나의 과거에는 있다.

집에 일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은 굽실거리는 푸른 물결이요, 그 물결 위에 곤드라 선 낚시 깃대. 그리고 하얀 비늘을 번득이며 요동치는 손바닥 같은 붕어―.

이 유혹은 날이 새기가 바쁘게 나를 강가로 이끌어 낸다. 홰에서 닭이 푸득푸득 내리는 깃부춤 소리가 들이면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는 낚시 도구를 매고 떠난다. 그래선 해를 지우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강변에 미련을 두고 이튿날을 혼자 마음에 약속하곤 날이 어두움을 못내 탄식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낚시질 그것에의 신밀(神密)한 제호미(醍醐味)에 취하면 잠시라도 강변을 떠나기가 싫은 데다 고기란 놈이 물기를 또 아침저녁으로 잘 물리는 것이어서 그 유혹이 이렇게 나를 날마다 진종일을 강변에 붙들어 놓는다.

참으로 해가 솟을락말락 동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어 오를 때, 그리고 해가 질락말락 서쪽 하늘에 붉은 놀이 길이 퍼질 때, 이때야말로 낚시질의 그날의 계절인 것이다. 어쩌다 아침잠이 늦어서 해가 올라오게만 되면 아침도 미처 못 먹고 떠난다. 그래서는 저녁 한동안을 또 기다리기에 한 종일을 굶는 일도 있다.

그런데 나의 낚시질 취미에는 남다른 이상한 것이 있다. 남들은 크나 적으나 고기가 쉴 새 없이 물어야 재미가 있다고들 하나, 나는 적은 놈이 물리면 그만 화가 버쩍 나서 못 한다. 적어도 손바닥만큼이나 한 놈이 물려야 정신이 낚시에 쏠린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큰 놈을 잡기에 애를 쓴다. 그러나 큰 놈이 그리 쉬이 물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잡는 수는 남보다 언제든지 떨어지기 쉬우나 잡히는 놈이면 그것은 굵다. 낚시질 취미란 물론 고기를 낚는 데 있을 것이나 그저 낚는 것만으로는 묘미가 없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낚싯대도 휘지 않고 겅뚱 달려 올라오는 작은 놈은 아무 낚을 맛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일 척 내외의 큰 놈이라야 물 밖을 나오지 않으려고 물속을 왔다 갔다 물살을 찢으며 요동을 쳐서 낚시대가 부러질 염려가 있을 만큼 수고스럽게 낚아내는 데 묘미가 있는 것이니, 이 순간이야말로 유현한 진리 속에 자기를 잊는 그 일순이다. 실로 낚시질 취미란 큰 놈을 낚는 데 있다. 그러나 메기라든가, 뱀장어 같은 놈은 아무리 굵은 놈이라 해도 낚을 맛이 없다. 물살을 찢고 달아나는 힘이 없이 그저 무겁게만 달려 올라오기 때문에 그것은 싱겁기가 짝이 없다. 차라리 술쪽 같은 적은 붕어만치도 그것은 낚을 맛이 없다. 낚시질엔 붕어 낚시질이 본격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고기를 낚아도 재미있게 낚기 위하여 붕어 낚시질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붕어가 서식하는 곳에는 메기도 의례히 같이 살고 있어 도저히 붕어만을 낚을 수는 없으나 고기의 습성을 알고 낚시를 주는 그 방법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이 메기를 피하고 붕어만을 낚아낼 수가 있다. 어떠한 고기나 작은 놈은 대개 물 위에서 놀기를 좋아하고 큰 놈은 물 깊이 있기를 좋아한다. 그러기 때문에 낚시의 지혜를 깊이 주어 물 위에 뜨는 것이 겨우 곤드라서게 낚시를 주면 문제없이 큰 붕어를 낚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연히 또한 메기는 못 물리게 하는 방지도 되는 것이니 메기란 놈은 크나 작으나 물속 깊이보다는 물 위에서 늘 떠돌아다니며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 습성을 가졌기 때문에 작은 놈들이 노는 옅은 물 속에서 대개는 지나고 있음으로 지혜가 깊으면 메기가 잘 물리지를 않는다. 그래 이렇게 깊이 지혜를 주어 놓고 노리다가 꿈물하고 깃에 이상이 있을 때엔 바짝 정신이 긴장되며 가슴이 두근두근하여진다. 그것은 지혜가 깊으니 만큼 의례히 붕어일 것이요. 또 붕어라도 보통 낚을 수 있는 평범한 작은 놈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 맥에서 고물거리는 깃이 동작으로 두말없이 큰 놈인 것을 짐작해 내기까지 할 때에는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정신은 거기에 빼앗기고 법열의 무아경 속에서 진맥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맥과 같이 과연 굵은 놈이 채여 낚싯대를 쥐인 손끝이 뭇줄 하고 낚싯줄이 모로 뻗을 때의 그 순간의 묘미란 여기 붓끝으로 형용하기에 족한 그러한 성질의 평범한 묘미가 아니다.

사람이란 성질에 따라 취미를 달리 가지거니와 나는 과거의 생활에 있어 맛보아 온 온갖 취미 가운데서 낚시질의 신묘한 맛에 족히 비겨 볼 그러한 취미를 일찍이 맛보아 본 일이 없다.

지금도 나는 백화점 같은 곳을 들렸다가 낚시도구가 눈에 뜨이게 되면 불현듯 낚시질의 충동을 받고 잊을 수 없는 부세(浮世)의 시름에 더한층 마음이 우울하여짐을 느끼나, 낚시질의 그 절묘한 취미로 한동안이나마 시름을 잊어 볼 그러한 시간의 여유에 군색함을 혼자 속으로 극히 애달파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