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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맘때였다. 김장을 겨우 끝낸 뒤쯤이니까…….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큰방과 건넌방 밖에, 비워둔 뜰아랫방이 하나 있다.

도대체 사글세를 주면 귀찮고 시끄럽고 집 더러워지는 위에 만약 불행히 술 먹는 사람이라도 들게 되면 그야말로 집안이 꼴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자라 나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되겠는지라, 우리는 빈방이 있을지라도 사글세를 놓지를 않았다. 한 달에 단 몇 원과 바꿀 수 없는 무형적 손해가 많기 때문 에······.

그랬는데 그해따라 웬 까닭인지 아내도 사글세를 놓아볼 생각이 났었고, 나도 또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승낙을 한 것이었다.

집주릅은 연방 사글세 후보자를 데려왔다. 그러나 그 후보자들이 방을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 전에 도리어 우리 쪽에서 후보자의 인물 선택을 엄히 하여 들게 되는 사람이 쉽사리 나서지 않았다. 가족이 많으니 안 되었다, 애들이 여럿이 달렸으니 안 되었다. 사람이 보기에 더럽게 생겼으니 안 되었다, 술을 먹는다니 안 되었다, 다변(多辯)할 듯이 생겼으니 안 되었다…… 별의별 구실을 다 잡아가지고 그것을 마치 방을 세를 놓으려 한다는 것보다 안 놓기 위한 선택과 비슷하였다.

그 어떤 날, 또 한 후보자가 왔다. 후보자의 선택이며 응대는 일체로 아내에게 맡겼는지라 아내가 또 나갔다.

이번에 온 후보자라는 것은, 십육칠 세쯤 난 처녀 단 혼자였다. 뉘와 함께 왔는가 하였더니, 함께 온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마음에 퀘스천마크를 붙이고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다.

검정 세루 치마에 초콜릿빛 구두를 신은 것으로 보아서는 학생 같았다. 그러나 머리가 너무도 길었다. 대체 지금의 여학생은 단발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머리끝 단 한 치라도 자르는 법이다. 난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은 전 혀 없다. 그렇거늘 이 처녀는 머리에 가위가 닿아본 일이 분명히 없었다.

얼굴은(입이 약간 넓었으나) 중쯤은 되는 편이었다. 키는 후리후리 컸다.

목소리는 가늘고 작고 느릿느릿하였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학생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학생에게는 분명히 학생의 티가 있어서, 첫눈으로 학생이라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점원인가 하면 점원도 아니었다. 다른 점은 그만두고라도 어느 점원이 지금 시대에 있어서 머리를 단 한 치라도 자르지 않고 그냥 기르는 자가 있으 랴.

그 얼굴은 아직 성性을 모르는 여인이었다. 체격도 이성을 맛보지 못한 여인이었다.

십육칠 세로 이성을 모르는 여인…… 그러매 카페 여급으로도 볼 수가 없 었다. 나카이로도 볼 수가 없었다. 기생의 알[卵]로도 볼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무엇이라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종류의 여인이었다.

아내는 ‘혼자 있겠는가, 동거자가 있느냐’ 물어보고 자기 혼자만이라는 대답을 들은 뒤에, 나한테로 들어왔다. 둘지 안 둘지를 결정하고자…….

우리는 협의한 결과, 방문객(더욱이 남자 방문객)이 적어야 할 것, 저녁 후에는 대문을 걸으니까 밤출입이 없어야 할 것, 떠들지 말아야 할 것, 깨끗하여야 할 것…… 등등의 조건을 내어 그 승낙을 받은 뒤에 두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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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매 매우 순진한 여성이었다.

차차 그 정체도 알았다.

그의 본집은 애오개 어디 있다 한다.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기괴한 부모였다.

어머니는 홀어머니였다. 아버지는 홀어머니의 훗남편이었다. 그런지라 전혀 혈족적 관계는 없었다.

이러한 부모 아닌 부모 아래서 길러나다가 금년 봄에 누구의 소개로 마산 어떤 카페에 여급으로 갔다.

거기서 어떤 젊은이를 알게 되었다. 어느 부잣집 소실의 아들이었다. 그 소년은 이 처녀(이름은 우정자라 한다)에게 연애를 하자 청하였다. 이런 사 회에서의 연애라 하는 것은 물론 성적 교섭을 뜻함이다.

정자는 성격이 비교적 견실하였다.

그 위에 그의 생장이 생장이니만치, ‘자기 보호’의 비술을 체득한 사람이었다. 남의 말은 절대로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체득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직 연애가 무엇인지 알 만한 나이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 소년(청년이라는 편이 옳겠지)에게 연애 연기를 청하였다. 약혼을 하고 그 뒤 결혼을 하고 그 뒤에 비로소 연애(육적 교섭)를 하자고 연기를 하였다.

그 청년은 그 근처에서는 비교적 이름난 전형적 방탕아였던 모양이었다.

부잣집 아들. 더욱이 소실의 아들이니만치 버릇없이 길러났고, 돈에 부자유가 없이 놀아나니만치 ‘금전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의 놀아난 무대가 비교적 작은 무대 마산 ( )였더니만치 기고만장을 지나서 기고백만 장은 되었을 것이고……. 이런 성격의 사람으로서 그가 놀아나는 무대인 마산의 매녀(賣女)라는 매녀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집어 세어오던 그가, 여기서 뜻밖에, 한 개 암초에 걸린 것이었다. 그 위에 그가 아직껏 교섭 있는 여인들은 모두 이런 사회의 여인이라 따라서 비처녀였는데 지금 교섭하는 자는 진정한 처녀였다.

자기 손에 걸려든 진정한 처녀…… 이 점에 이 방탕아의 호기심이 부쩍 돗수가 높아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교섭은 진행되었다.

그럼 결혼하자. 결혼하는 이상에야 구태여 이 시골 마산에서 하랴. 서울 올라가 있거라. 생활비는 내가 달라는 대로 보내주마. 그리고 얼마 뒤 자기 도 서울 올라가서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하자. 이리하여 정자는 상경하여…… 상경하여서도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사글셋방을 얻노라는 것이 우리 집에 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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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에는 눈 못 뜨고, 연애라는 것도 모르는 소녀였다.

따라서 사내가 상경하는 것도 기다리는 듯싶지 않았다. 그러나 편지는 무척이도 기다렸다. 편지에는 가와 세(爲替[위체])가 있을 것이니까…….

그다지 나다니는 일도 없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몇 번 그의 아버지 (?)가 돈을 달래러 찾아온뿐이었다.

아내는 가끔 그 방에 건너가서 말동무로 몇 시간씩을 보냈다. 카페의 여급으로 얼마 있었다 하지만 그런 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는지라, 나도 아내가 건너가 노는 것을 마음 놓고 버려두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아내의 의견으로 머리를 틀게 하였다. 머리를 틀고 수수하게 세루 치마를 입은 꼴은 영락없는 학생이었다.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이고 다니면 정체 모를 계집으로서 우리 집 대문으로 출입하는 것이 체면 상에도 관계되었다.

사람됨이 그만치 조용하고 천스럽지 않고 침중하니만치 아내도 퍽 귀엽게 여겨, 간혹 저녁때 미처 그가 못 들어오면 그 방에 불도 때어주며, 들어올지라도 춥지 않도록 해주고, 내가 없을 때에는 우리 방에 불러들여 놀고 하 였다. 나를 퍽 무서워하여, 내가 집에 있는 동안은 웃음소리 한번 크게 못 내고 중문 출입에도 문 여닫는 소리도 안 나게 조심조심히 지냈다.

겨울…… 음력 연말이 되어, 사내 되는 사람이 상경하였다.

나는 퍽 호기심을 갖고 인제 전개될 장면을 관찰하려 하였다.

정자는 사내를 위하여 저녁을 짓고 스키야키를 만들고 하였다. 그 태도를 나는 관찰한 것이었다.

그 태도는, 반가운 사람을 맞아서 대접한다기보다, 반가워해야 할 사람을 맞아서 반가워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대접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마음에 없 는 역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한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 도 아니었다. 그러나 또한 반가워하는 듯하기는 하였다.

이러한 저녁이 끝난 뒤 밤이 이르렀다. 이 밤이야말로, 나는 커다란 호기심으로 보려는 바였다.

초저녁에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간간 들리는 눈치로, 그새 지낸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이러는 동안 밤도 차차 깊어서 자정이 가까웠다. 우리 집안 식구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불면증이 있어서 약을 쓰지를 않으면 못 드는 사람으로서, 이 밤은 부러 최면약을 안 먹었는지라 잠에 들지 못하였다.

나는 비록 아직 안 자고 있다 하나, 보통 상식으로 보아서 시간이 잠잘 때요, 사면이 고요하게 되었으니까, 그들은 물론 안방에서는 다 잠든 줄 알았을 것이다.

차차 사내는 그것을 조르는 것이 분명하였다. 여인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 이 분명하였다.

간간 위협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완력을 쓰려는지 때때로 쿠덩쿠덩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넓지 않은 뜰을 건너서 큰방이 있는지라, 위협도 크게 못하고 완력도 마음껏 못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대하여 여인은 끝끝내 거절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하기를 두세 시간…… 그 뒤에는 그 방에서도 고요해졌다.

그 방이 고요해진 때로 비롯하여 겨울의 긴 밤이 밝기까지, 짧지 않은 동안을 나는 생각하였다. 이 고요해진 것은 성공을 뜻함일까, 실패를 뜻함일까……고.

그러나 날이 밝자 알았다. 실패한 것이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사내는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뛰쳐나왔다. 여인은 따라 나오면서, 못 가리라고 말린다. 그러나, 그러나 안방에서들 모두 아직 자고 있는지라 힘 있게 붙들지도 못하고 종내 사내를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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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낮, 여인은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아내는 꽤 좀 건너가보고 싶은 모양이었고, 나도 건너보내보고 싶었지만, 가보기도 이상하여서 그냥 버려두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아직껏 유행가를 입 밖에 내어본 적이 없 는 그가 이날은 작은 소리로, 진일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기뻐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언짢아서 부르는 것이었다.

사내는 진일을 오지 않았다.

이날은 바람이 몹시 불어서, 대문이 좀 있다가는 찌그걱하고 또 좀 있다가는 찌그걱하고 하였다.

그 대문 소리가 날 때마다 아랫방에서 나는 유행가 소리가 뚝 끊어지고 하 는 것을 보니, 마음으로는 사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내는 밤에도 안 왔다. 진일을 굶고 저녁에 불도 안 때므로 내 아내가 불을 때어주었지만 내다보지도 않고, 점심 들여보낸 것도 밤까지도 안 먹고 그냥 두었다.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종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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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날이 밝자, 여인은 집을 뛰쳐나갔다.

어디서 어떻게 붙들었는지, 종내 사내를 붙들어가지고, 오후 서너 시쯤 집으로 왔다.

작은 소리로나마 언쟁이 시작되었다. 작은 소리로 하는 언쟁이라 들을 수는 없지만, 간간 들리는 말을 종합해보건데, 사내는 어제 모 카페에서 놀고 무슨 ‘코’라는 여급을 데리고 종로 모 여관에서 자고 오늘 밤도 또 그렇게 할 것이고 수일간을 그렇게 지내다가 결혼식을 거행할 것이고, 결혼식을 거행한 뒤에는 서울에다가 문화주택을 하나 장만하고 함께 살 터이고…… 이리하여 연애결혼 생활이 시작될 것이라 하는 것이다.

거기 대하여 여인은, 그럼 자기와의 약속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항의를 제출하였다.

사내의 답변은…… 대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약속은 무효라, 사랑 하지 않는 증거로는 그젯밤의 지낸 일이 가장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육체를 제공하는 것이 연애의 증거이고, 사랑 없는 결혼은 무의미한 일이니, 어찌 너와 결혼을 하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언쟁이 잠시 계속된 뒤에 사내는 또 연애하는 여자를 찾아가야겠다 고 일어서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심은 이편 방에 있는 나로서도 번히 알 수가 있었다. 여인이 붙들기를 기대하고 일어서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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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소위 사내의 말하는 바 연애는 성취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다.

첫째로 카페에 단 몇 달, 동안이라도 있었던 여인이 그렇듯 성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도 좀 상식 이상의 일이다.

둘째로, 그러한 부모 아래서 자라난 그가 어떻게 대체 ‘정조는 지켜야 할 것이라. 함부로 내던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는가.

그 여인이 그 사내와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직 사랑이라든가 그런 문제를 이해할 만한 능력은 분명히 부족하였다. 그가 그 사내를 붙든 유일의 이유는, 생활 문제 해결이었다. 그의 자라난 환경이 환경이니만치 ‘자활책을 강구하여야겠다’는 관념은 비교적 일찍부터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여인이 자활하기 위해서는 생활이 안정된 그 지아비를 얻는 것이 가장 경편하고 안전한 방식’이라는 판단이 그의 마음에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부잣집 아들을 하나 골라낸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의 여인들의 보통 가지는 관념이란 것은, ‘만나는 저녁은 부 부요 이튿날 아침은 남남끼리라’, ‘이 사내에게서 5원 저 사내에게서 7 원, 내일 일은 생각할 바가 아니라’, 이러한 종류의 것으로서, 말하자면 ‘자기’라 하는 한 개의 아내가 있고, ‘연애’라는 수레를 타고 그 ‘아내’를 통과하는 부지기수의 남편이 있다. 법률상으로든 도덕상으로든 습관상으로든 남편은 아내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이니, ‘자기’라는 아내를 부양할 의무를 가진 남편의 부양으로 자기는 생활을 유지해나갈 것이다…… 이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가진 관념은 그와 달랐다.

‘연애’는 ‘부처’라는 뜻이다. 자기가 아내가 되려면, 즉 자기가 연애를 하려면 그 상대자가 한사람(단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 남편은 자기를 늙도록 거느려주어야 하고 자기 한 사람을 거느려야 한다. 말하자면 조선의 전통적 부처관 혹은 결혼관이었다.

이러한 한 개의 여인과 이날 밤 여기서 성적 교섭을 결행한 사내라는 사람은 또한 가장 전형적인 방탕아였다.

자기와 성적 교섭이 있는 여인의 수효를 자랑하며, 가령 여행을 간다 하면 하차하는 지방 혹은 숙박하는 지방에는 반드시 한 계집과의 교섭을 남겨놓아야 하지 그렇지 못하면 불명예로 생각하며, 한 계집과 여러 날을 두고 좋게 지낸다는 것을 유치하다 보며……. 이러한 이 사내가 이 여인에게 대해서는 좀 관심이 컸다 하는 그 이유는 이 여인이 아직 처녀라 하는 점이었다.

그가 지금껏 통과해온 여인사를 돌아보면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는 종류의 여인이었더니만치, 진정한 처녀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조금 사술(詐術)을 희롱하고 약간 돈을 쓰면 꺾을 수 있는 처녀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왼편에 앉은 여인에게 추파를 던져 보아서 곧 응낙이 안 되면 즉시로 오른편에 앉은 여인에게로 추파를 옮길 만한 융통성을 가진 그가, 부러 마산에서 서울까지 쫓아다니며 야단한 그 유일의 이유가 처녀라 하는 점에 있었다.

이날 밤 그는 이 처녀를 드디어 꺾었다.

날이 밝았다.

집주인이 집주인이니만치 사내도 좀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좀체 얼굴을 보 이지 않았다.

여인은 부끄러워 죽겠는 모양이었다. 조반을 지으러 부득이 나왔다. 그러 나 얼굴은 이쪽으로 돌려본 일이 없었다. 그 뒤에도 부득이 뜰에 나올 일이 있으면 외투를 입고, 에리를 세워 얼굴을 감추고, 그러고도 부족하여 꼭 저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러기를 사오 일…… 우리도 그가 너무 부끄러워하므로 할 수 있는껏 못 본 체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내심 늘 생각하고 있었다. 장차 어떻게 전개되려는 가고.

여인은 인제는 정조까지 제공하였는지라 저 사람은 자기의 남편이거니 든든히 믿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물론 그러한 경사스러운 결과는 안 생겨날 것으로, 그때 이 여인의 실망과 비통이 어떠할까. 실망과 비통이라는 무형(無形) 상태가 어떠한 유형(有形)상태로 나타날까? 자살? 발광? 적어도 수 일간 울고 부르짖고…… 소란스러운 비극이 생겨날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근심스럽고 민망하였다. 아늑하고 평화로워 낙원과 같던 우리 집에 그런 소란이 생겨나면 귀찮기도 하였다.

사오 일 뒤, 사내는 오래간만에 외출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돌아왔다. 술에 잔뜩 취한 모양이었다.

사내가 돌아오기까지 여인은 꽤 초조히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내는 좀 건너가서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은 모양이나, 사내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고 그 위에 여인이 너무도 부끄러워하여 건너가지 않았다.

밤새도록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오후에 사내가 또 외출을 하는데 이번은 여인도 함께 나갔다.

그러나 밤 8시쯤 여인이 혼자서 돌아왔다. 화신백화점에서 사내를 잃었다 하는 것이었다.

밤 시가 12 지나도 사내는 안 돌아왔다. 1시…… 2시…… 사내는 그냥 안 돌아왔다.

여인은 드디어 참지 못하여, 소리를 감추어가지고 몰래 집을 나갔다.

날이 밝도록 사내도 여인도 안 들어왔다.

드디어 비극은 개막이 되었다.

저녁때가 거진 되어서, 여인은 어디서 사내를 잡았는지 종내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싸움이라 하나, 여인 혼자의 싸움이었다. 사내는 코웃음만 치고 있었다.

어서 결혼을 하자 하면 사내의 대답은 일전에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였으면 마산으로 부모님께 뵈러 가자 하면 사내의 대답은 부모가 받을 듯싶으냐 하는 것이었다.

그럼 서울의 살림을 하자 하면 ‘그렇게 할 만한 큰돈이 시하에 있는 몸으로 있을 듯싶으냐’하는 것이었다.

셋방 살림이라도 좋다.

그것도 안 되면, 몇 해 기다리라면 기다리기라도 하겠다.

싸움에서 시작하여 타협 조건으로 마지막에는 애원으로…… 차차 숙어들어 가는 여인에 대하여 사내는 시종일관 냉담한 코웃음으로 대하였다.

그날 밤 사내는 자기 가방을 가지고 우리 집을 나가서 종로 어떤 여관으로 갔다.

사내는 그 뒤 며칠을 여관에 묵으면서 카페 여급 몇 명과 결혼을 몇 번 더 하고 마산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여인은 방에 꾹 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끼니도 전혀 짓지 않으므로 내 아내가 민망하여 끼니를 들여보내주고 하지만, (간간 몇 술씩 먹는 때도 있기는 하였지만) 전혀 굶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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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 일이 지났다.

오래간만에 그 방에서 무엇이 부시럭부시럭 데걱데걱하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아내를 찾는다.

아내가 내려가보니, 오늘 집을 나가겠노라고 방세를 셈 치르는 것이었다.

벌써 짐은 죄 정리되어 있었다.

어디로 나가느냐. 나가서 어떻게 할 작정이냐. 이렇게 묻는 데 대하여, 자 기 본집(그의 의붓어머니와 의붓어머니의 훗남편이 사는 집)으로 가며, 장차 어떻게 지내리라고는 아직 아무 복안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만약 . 내 누이나 내 딸이 이런 딱한 일을 당하였다 하면 그는 자살을 하거나 발광을 하거나 할 것이었다.

만약 전형적 카페 여급이 이런 일을 당하였다 하면 다시 인사상담소(人事 相談所)를 찾아가서 다른 취직처를 구할 것이었다.

혹은 경찰로 달려가서 호소한 종류의 여인도 있을 것이었다.

혹은 끝끝내 사내에게 매달려서 하다못해 몇 백 원의 돈이라도 따내고야 말 종류의 여인도 있을 것이었다.

그도 이도 다 버리고, (자기와는 호적부 이외에는 아무 관계도 없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며, 그 돌아간다는 것이 얻어먹기를 위함이 아니요 단지 생활 방침을 새로 세우기까지 집세 안 내고 있을 장소를 택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일종의 여장부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인’이라는 점과 ‘미모’라는 점이 생활의 커다란 무기가 된다는 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리만치 단순하면서도 또한 사람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지는 넉넉히 아는 그가, 자기의 생활을 재출발함에 있 어서 아무 복안도 가지지 못하고도 또한 아무 공포도 없이 감연히 나서려 하는 것은 내게는 적지 않은 경이였다.

사람이란 생장한 환경에 따라서는 ‘생활’이라는 데 대하여 이렇듯 대담 혹은 무관심하게 되는 것인가.

이미 이성을 안 그인지라, 장차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기의 생활의 거대한 두 가지 무기(여인이라는 점과 미모라는 점)를 알게야 되겠지. 그때까지 그 는 자기 입에 무엇으로써 풀칠을 해가려나.

짐꾼을 불러서 많지 않은 짐을 지워 앞세우고 우리 집을 나가는 그의 뒷모양을 나는 유리창을 건너 내다보며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언 : 사실 소설(事實小說)이라 하면 흔히 사실 그대로 일점의 가감도 없는 듯이 생각한다. 이 소설도 얼거리는 비슷한 사실이 있지만,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5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