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유혹
강의 유혹 ─ 5월의 불만…(하)
시절은 원래가 자연의 배경 속에 숨어드는 것이어서 녹음이 없고 밀화 부리의 노래가 없다면 사실 어떻게 해서 밀려드는 5월의 숨결인들 느낄 수 있으랴.
거리는 5월의 거리나 3월의 거리나 매일반, 백화점의 의상부가 아무리 빛엷은 시절의 옷감을 내걸고 자랑을 한대야 거리를 왕래하는 여인들의 맵시란 거개가 휘줄그레하고 시원치 못하다. 미색(美色)의 곳으로 이름만이 높을 뿐 이렇게 졸색이 흔한 곳도 처음 본다. 몇 해를 있어도 수려한 미인을 보았던지 못 보았던지 기억에 없다. 결국 아름다운 것이란 극히 귀한 것인 듯하며 그러기에 같이 있는 모양이다.
거리의 여인도(女人圖)같이 옹졸하고 빈한한 것이 없다. 교양의 윤택이 없고 독창의 발견이 없는 그들의 맵시는 기껏하여 가게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레코드의 노래 격에 밖에는 못 간다.
대로상에 범람하는 이 저열하고 시끄런 노래, 등줄기를 간지르고 신경을 쑤시는 이 요란한 노래 ─ 시청은 왜 그것을 취체(取締)하고 금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 두는지를 모르겠다. 이 열등한 소리판은 민중의 미의식과 감식안을 저하시킴이 막심하다.
시중에 대청결을 베풀듯이 이런 종류의 음가(淫歌)는 모름지기 거리에서 일소해 버려야 할 것이다. 취체리(取締吏)의 손이 부족하다면 위생과 감독쯤으로도 족하다. 집집의 불결한 것을 들어가듯 그런 레코드를 모조리 압수해 가기를 바란다. 그 속에 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것을 원한다. 그렇게 품이 높고 살기 좋은 거리가 어디 있으랴만 현재 거리의 규모라는 것은 저급하기 짝이 없다.
공공연히 허락되던 것으로 시민의 감성을 상하고 해하는 것은 이루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첫 것으로 나는 레코드의 숙청을 드는 것이며, 다음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방이나 음식점을 좀더 청결하게 했으면 하는 것이다.
바람과 먼지가 5월의 날이 아니듯이 불결한 것은 다방이되 다방이 아니며 굴속이나 창고 속인 것이다. 아무리 자원해서 들어가는 손님이기로 이를 컴컴한 굴속에다 가두어 놓고는 잔돈푼을 우려내는 것은 시민도덕으로서도 공죄가 아닐 수 없다. 일부러 컴컴하게 해놓고 대낮에도 불을 켜놓는 데가 다방이 아닌 것이다. 깨끗하고 밝고 건강하게 ─ 5월을 잡아들었으면 탁자에 정한보도 펴놓고 때묻은 의자에 흰 덮개도 씌워 보고 화병에 꽃도 갈아 보고 해서 부단의 계획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호의가 아니오 의무이다. 이 정도의 각자의 논리성을 전제로 할 때, 거리의 문화는 참으로 향상해서 거리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때마침 어수선한 부회의원(府會議員) 선거 풍경에다가 불결한 휴식소, 저열한 음악 등등으로 거리는 진저리나는 곳이다. 요행 거리 아래 맑은 강을 끼고 있게 망정이지 이런 자연의 혜택조차 벗어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살기 삭막한 곳일까.
강에는 물이 흐르되 고요하고 수목이 우거져서 물 위에 푸른 그림자를 던졌고 ─ 유유한 그 자태가 살아 있는 짐승 같아서 마주만 서도 흐르는 물은 감정 문답을 걸어오는 듯싶다.
조급한 축들은 군데군데에서 보트를 젓기 시작했고, 강의 시절이 좀 있으면 시작되려고 한다.
여름이 되면 많은 시민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강과 함께 살며 거기서 근심을 씻고 건강을 얻고들 한다.
불행한 5월이 얼른 지나 불결한 가두에서들 해방되어 강과 함께 살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