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이 넘어질 때
起因[기인]
[편집]"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 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웃 나라 신라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백제와 겨룰 수가 없으므로 비열하게도 당나라 군사까지 청하여 들여서 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 처음 한동안은 용케 당하기는 하였지만 원체 군사의 수효가 대상 부동이라 드디어 의자왕(義慈王)은 태자와 함께 서울을 피해서 북비(北鄙)로 도망하였다.
왕이 이미 몽진한 도성으로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들의 난폭한 행동에 왕궁의 궁녀들은 모두 욕을 면하고자 대왕포(大王浦) 벼랑 위로 달려올라가서 아래 흐르는 사자수(泗?水)에 몸을 던져서 욕을 면하였다.
관주도 궁녀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궁녀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려 하였다.
함께 대왕포 바위 위에까지 달려올라갔다.
그러나 이 총망한 가운데서도 그의 동료 한 사람이 관주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관주를 피신하게 한 것이었다.
"복중의 왕자를 생각하세요. 상감께서 일이 그릇되어 불행한 일을 당하시면 그 뒷일도 생각해 주세요."
그때 관주의 뱃속에는 다섯 달 된 용종(龍種)이 들어 있었다. 아드님이 될지 따님이 될지는 알 바이 없지만 만약 이 백제라는 나라 위에 천우(天祐)가 벼락같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서는 왕와 태자와 각 왕자는 반드시 불행한 최후를 보실 것이다. 지금의 형세로는 무슨 기적적 천우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 불행은 반드시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후 이 칠백 년의 거룩한 사직을 위하여 칼을 들고 일어서서 신라와 당나라에 원수를 갚을 사람은 지금 관주의 복중에 숨어 있는 용종(龍種) 하나 밖에는 없다.
본 바 보고 또 들은 바 신라 장군 김유신은 백제의 서울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왕족이란 왕족은 모두 잡아 내어 죽이지 않았는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백제의 왕족은 아마 씨도 없이 잔멸시켰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관주의 복중에 들어 있는 한 개 고깃덩이 밖에는, 백제 종실을 위하여 칼을 뽑아들고 나설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중하세요. 몸을 피하세요. 따르는 군사가 급하외다."
이리하여 관주는 물로 향하여 몸을 던지려던 발을 돌이켜서, 창황히 숲속으로 숨어 버렸다.
많은 동료들이 바위 위에서 통곡을 하며 몸을 던질 때 관주의 마음은 우겨내는 듯하였다. 그러나 복중의 왕종을 생각하고 강잉히 그곳을 떠나서 차차 깊은 숲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옷을 바꾸어 입고 몸을 숨겨서 산길을 배회하기 사흘 ― 그의 나약하고 연연한 몸은 자기가 짊어진 중대한 임무만 아니면 도저히 겪어 내지 못할 쓰라린 고초를 맛보면서, 오로지 복중의 귀한 씨를 생각하여 피하고 피하여, 서울서 백여 리가 넘는 지금의 삼림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수라장의 왕도를 도망하여 많은 동료들이 수중 원귀가 되는 것을 눈앞에 보고 그 길로 이곳까지 피해 온 관주는 저녁이 기울기까지 실없이 넘어져 있었다. 그 근처에 떨어져 있는 과일들로 겨우 요기는 하였다. 그러나 태중 오 개월의 무거운 몸에 넘치는 피곤은 삭일 바이 없었다.
날이 기운 뒤에 관주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마을로 내려왔다.
거기서 그가 안 바 그것은 이미 각오는 하였던 바이지만 놀라운 소식이었다.
북비로 몸을 피하였던 왕과 태자도 드디어 당병의 손에 붙들리었다는 것이었다. 왕과 태자와 대신들 팔십여 명과 백성 일만삼천 인이 당나라 군사에게 잡히어서 지금 당나라로 길을 떠났다 하는 것이었다.
무론 잡힐 것이다. 그리고 잡히기만 하면 그 생명은 부지되지 못 할지니, 왕가와 먼 친척이 되는 사람까지 모두 죽여 버린 김유신의 방침을 보아서 지금 당나라에 잡혀가는 왕의 일행은, 그 마지막 길을 백제 땅에서 밟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꿈틀!
뱃속에서 움직이는 한 개 고깃덩이. 비록 그것이 한 개의 고깃덩이에 지나지 못하나 그 고깃덩이는 또한 칠백 년 백제 왕자의 유일의 봉사손이요, 백제 시조 온조대왕의 유일의 직손인 것을 생각할 때에, 관주는 그 왕손을 배고 있는 자기의 몸의 커다란 책무를 새삼스러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꿈틀꿈틀!
피곤한 모체(母體)의 속에서도 기운차게 움직이는 이 고깃덩이의 장래의 활약을 위하여, 그리고 그 어린 몸이 장차 칼을 뽑아들고 신라와 당나라에게 대하여 크게는 나라의 원수요 작게는 일가의 원수를 갚는 장거를 도모케 하기 위해서, 결코 허수로이 하지 못할 자기의 몸이다.
"하느님 맙시사."
젊은 꼴꾼으로 옷을 차린 관주는 가련하신 왕의 운명과 자기의 중대한 책무 때문에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로부터 수일 후 당나라 군사에게 호위된 백제 왕이며 태자 왕자 대신 백성들이 어떤 촌락을 지나갈 때에, 그 촌락 뒤 어떤 나무 아래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한 초동이 있었다.
무론 왕의 최후의 길을 우러러보고자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당당하게 뽐내며 지나가는 당병의 최후의 한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종내 초부는 머리조차 들어 보지 못하였다.
거기서 포구까지 가는 동안 이 초부는 십 리쯤 뒤떨어진 먼발로 끝끝내 당병의 일행을 쫓아갔다. 밤에는 왕이 수금되어 있는 집 근처에서 배회 하며 틈을 엿보고 하였다. 엄중한 당병의 감시의 눈에 숨어서 왕께 뵈올 수는 도저히 없는 바지만 행여 하는 요행심으로 배회하는 것이었다.
왕이 당병에게 끄을리어 배에 오르기까지 왕을 뵈올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왕을 태운 배가 멀리 한바다로 떠나가서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 초부는 해변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이 초부는 무론 변복한 관주였다.
거기서 왕께 먼발로나마 하직을 한 뒤에는, 관주의 자취도 이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왕이 당나라 서울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백제라 하는 나라는 소멸되어 버리고, 이리하여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서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백제는 완전히 망하였다.
후일 백제 회복을 위해서 칼을 들고 나설 만한 왕족까지도 모두 잔멸시켜 버렸는지라, 백제라 하는 것은 한 개 역사상의 과거의 일로 무시하여 버려도 좋을 만치 되었다.
이백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짧지 않은 날짜가 흐르는 동안 무론 사람사람의 일신상의 변동도 이루 셀 수가 없다. 그 위에 국체(國體)상의 변동도 놀랄 만하다.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어서 백제를 없이한 뒤에 거기 자미를 보고 후일 당나라가 고구려와 싸우는 기회를 보아 가지고 고구려까지 없이 하여 버렸다.
대륙에서 동해 바다로 늘어져 있는 반도(半島)에 솥발같이 나란히 하여 각축을 하던 세 국가 가운데 둘은 신라에게 망한 바 되고 신라 하나이 둥그렇게 남았다.
백제를 없이한 지 팔 년 뒤에 고구려조차 없이하여 버린 신라는 인제는 이반 도의 유일의 국가였다.
이리하여 표면으로는 반도 유일의 국가 ― 이면으로는 당나라의 제재를 받는 한 개 비열한 국가 ― 이러한 표리가 다른 국가 생활을 계속하기 이백 수십 년, 사실에 있어서 백제와 고구려를 집어삼킨 데는 아무 그럴 만한 근터리가 없었다. 단지 당나라가 도와 주려니 집어삼킨 것이지 그 이상 아무 원인이며 이유가 없었다. 그랬는지라 집어삼키기는 삼키었지만 그 나라의 강토들은 아낌없이 내어버렸다.
집어삼킨 뒤 한동안은 그래도 명색이나마 지방관들을 파견하고 경질하고 하여서 그래도 자기네 땅인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그 긴장의 몇 해가 지난 뒤에는, 그 강토는 다시 돌보지도 않았다.
백제의 옛 강역은 그래도 좀 거리가 가까왔더니만치 얼마만치 돌보는 흉내나마 내었지만 고구려의 구역(舊域)은 완전히 주인 없는 땅으로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이백 년간에 옛날 김유신이 백제를 삼키고 뒤이어 고구려를 삼킬 때는 그래도 뒷일을 근심하여 장차 조국을 위하여 칼을 뽑아들고 나설 만한 지위를 가진 사람은 종자까지 없이 하여 버렸으나 명장 한 번 저승으로 간 뒤에는 다시는 그런 먼 후의 일까지 생각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자주 변경을 침노하던 무서운 고구려와 백제가 인제는 없어졌는지라 마음 놓고 팔다리 길게 뻗치고 살 수가 있게 되었느니만치 지금 남은 것은 안일과 권태의 꿈뿐이었다.
먼저 궁중이 난잡하여 가고 뒤따라 백성들도 난잡한 꿈에 빠지기 시작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지 이백여 년이 지나서는 신라라 하는 일개 국가는 난정과 음일로 싸인 한 개 더러운 인간 단체로 화하여 버렸다.
이러는 동안 이백여 년 전 대왕포 바위 위에서 몸을 물로 던지려다가 독심을 품고 발을 돌이켜서 종적을 감추어 버린 당년의 의자왕의 총희 관주와 그의 뱃속에 들어 있던 백제 왕족의 유일의 씨인 한 개 고깃덩이는 어떻게 되었나?
무론 그 새 흐른 세월은 덧없이도 벌써 이백여 년이니 대가 바뀌고 손이 갈리기도 벌써 여러 번씩일 것이다.
그러나 그 초지(初志) 뿐은 지금껏 후손들이 계승하고 있는지, 혹은 하도 긴 세월이라 인제는 선량한 한 개의 시민으로 변하여 버렸는지?
세월은 여전히 흐른다. 그 흐르는 세월 아래는 별의별 것이 다 감추여 있나니 내가 이러한 서두 아래서 적어 내려가려는 한 개 기구한 운명의 구인의 이야기도 그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눈감아 줄 동안에 생장하고 계승된 한 개 가련한 이야기다.
자 ― 그러면 인제부터 나는 나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 앞에 펴놓자.
장차 어떤 것이 나오려는지?
皇星壇[황성단]
[편집]세월은 흐르고 흘러서 백제 망한 지 이백 수십 년이라는 날짜가 흘러갔다.
양주 가은현(陽州 加恩縣) 한가한 농촌에 가을빛이 완연히 이르러서 천하는 장차 올 겨울을 맞이하려고 고요한 가운데도 분망한 어떤 날 밤이었다.
나지막한 산이 병풍같이 북쪽으로 둘리운 이 근방 일대는 아늑한 꿈속에 벌써 들었고 좀 성급한 닭들은 홰를 치려고 우리 속에서 준비를 할 때 ― 시각은 정히 자시(子時)였다.
번쩍!
하늘에서 한 개의 불덩이가 튀었다. 그 다음 순간은 와지끈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온 천하가 화광(火光)으로 충일되고 땅이 뒤집힐 듯이 흔들리고 잠시 동안은 땅이 그냥 흔들리었다.
이런 뒤에는 다시 온 세상은 고요한 가을 밤에 잠겨 버렸다.
세상은 다시 고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소란통에 잠에서 깨인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서 눈을 크게 하고 숨도 크게 못 쉬고 모두들 와들와들 떨면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어떤 집에서 문이 열리고 그 문으로는 노인 한 사람이 나왔다. 백 살이 넘었으면 넘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을 노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기골이 장대하고 허리가 곧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뜰에 내렸다. 내려서 잠시 사방을 휘둘러본 뒤에 뒷짐을 지고 천천히 발을 옮겨서 제 집을 나섰다.
이 동리를 보호하는 듯이 병풍같이 둘리어 있는 산(알메라 하는 산이다)으로 노인은 곁눈질도 않고 일직선으로 갔다.
별빛과 달빛이 명랑한 가을밤이었다. 이 비교적 어둡지 않은 하늘 아래서 노인이 발견한 것은?
그 근처 일대에 무성하였던 마른 잡초들이 불타서 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노인은 노인답지 않은 활기 있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언덕길로 올라갔다.
그가 한참을 올라가다가 발을 멈춘 곳 ―.
"으 ― 아."
발을 멈추는 동시에 노인의 입에서는 환희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그 의 늙은 두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창천이여. 이백여 년이로소이다. 이백여 년이로소이다."
마치 미친 사람같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노인.
그 노인의 앞에는 사면 두 간 넓이쯤 되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천연암(天然岩)이지만 천연암답지 않게 꼭 네모반듯한 바위로서 어떤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그 바위를 이 근방 일대에서는 황성단(皇星壇)이라 불러 왔다. 언제부터 그런 칭호로 불리었는지는 모르나 지금 백 살이 넘은 이 노인이 어렸을 때도 역시 황성단이라 한 것을 보면 꽤 오래 전부터 이렇게 불리어 온 모양이었다.
그 바위의 정남(正南)향에 한 개의 구멍이 뚫렸다. 아까의 괴변 때에 뚫린 구멍으로서 말하자면 하늘에서 별이 하나 그곳에 떨어진 것이었다. 좀 더 적절히 말하자면 황성이 떨어진 것이었다.
아까 천하에 충일되었던 화광은 별이 떨어질 때에 생긴 빛이었다. 아까의 지동(地動)도 별이 떨어지느라고 생겼던 것이었다. 마른 풀이며 곁 나무가 모두 탄 것도 별의 열기 때문이었다.
별이 황성단 앞에 떨어졌다.
다시 고요한 잠에 잠긴 가을의 밤하늘 아래서 흘리고 또 흘리는 노인의 눈물과 ― 또한 기쁨과 흥분과 환희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마을에서는 들려 오는 닭의 소리. 하늘을 찢는 개의 한소리.
"창천이여. 창천이여."
노인의 읍열성과 아울러서 고요한 가을 밤의 대지로 퍼져나간다.
노인이 황성단 앞에서 너무도 기뻐서 울고 있을 동안 이 노인의 집에서는 인생의 가장 엄숙한 사건 하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집 주인 아자개(阿慈介)의 안해가 방금 해산을 하려고 앓고 있었다.
저녁부터 산기가 보이던 것이 차차 그 진통의 돗수가 잦아 오고 이 밤 안으로는 분명히 해산을 할 모양이었다.
아자개의 집안은 이 근처에 가장 큰 호농(豪農)이었다. 하인배며 어멈, 할멈이 그즈런히 있었다.
그러나 이 인생의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사건인 해산에도 하인배는 안방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몸이 무겁다고 신음하는 산모와 그의 그 지아비 아자개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소?"
꽤 날이 선선한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을 뚝뚝 흘리며 고민 하는 안해를 보고 아자개는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안해는 눈을 들었다. 몸이 아프기보다 마음이 더 아픈 모이었다. 공포의 그림자조차 그의 얼굴에 넘치어 있었다.
"이번은 온…."
"글쎄."
또 계속되는 무거운 침묵….
최후의 진통이 있기는 밤이 깊어서 축시도 지난 때였다. 이 최후의 진통과 함께 무섭게 몸을 떨면서 손발에 힘을 준 때에 산모의 몸에서는 한 개의 새로운 생명이 우렁찬 울음소리를 치며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 힘까지 다 들여서 대사를 치른 뒤에 기운 없이 산모가 덜썩 엎으러질 때에 와락 달려든 것은 그의 남편 아자개였다.
아자개는 넘어진 제 안해를 보지 않았다. 와락 달려들면서 방금 세상에 떨어져서 몸이 새파랗게 되어 떨며 우는 갓난애를 움켜 쳐들었다. 쳐 들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의 샅을 들여다 보았다.
갓난애의 샅을 보아서 거기 달려야 할 것이 척 늘어져 있는 것을 본 뒤에 다시 갓난애의 얼굴을 들여다볼 동안 침울하던 아자개의 얼굴에도 차차 차차 음침한 기운이 사라지고 그 밑으로부터 명랑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여보! 여보!"
"…."
"여보."
"…."
기운이 없이 넘어진 안해에게서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자개는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안해가 대답을 하였는지 안하였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였다.
"사내놈이오. 얼굴도 준수는 허군."
갓난애의 얼굴은 준수하다기보다 오히려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입을 쩍쩍 벌리며 우렁차게 우는 갓난애의 얼굴은 마치 십만 대군을 호령하는 대장군과 같았다.
이때에 이 방을 향하여 오는 누구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댓돌 위까지 덥썩 올라섰다.
"몸을 풀었느냐?"
"한아버님이셔요?"
"오, 몸은 풀었느냐?"
"네이."
"무에냐?"
"황장손(皇長孫)이올시다."
"오 사내냐? 준수하냐?"
"준수하기에 장손이 아니옵니까?"
"그러리라. 알메에 황성(皇星)이 내렸더라."
"네?"
"아까 소란한 소리가 황성단에 별 내리는 소리다."
"네?"
하마터면 아기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멀거니 뜬 눈으로 잠시 허공을 쳐다보던 아자개는 아기를 그 자리에 눕히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기마마, 아기마마, 이 징조가 과연 맞소리까?"
자기의 갓난 아기의 앞에 꿇어 엎드린 아자개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을 밤이 고스란히 깊어 가는 가운데서… 아자개의 집안의 내력을 이 가은현 일대는커녕 온 세상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근처의 호농(豪農)이었다. 하인이며 작인들도 그 집에 많이 드나들었지만 그 집 내력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누구든 아자개의 집안과 대하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늘어지고 머리가 수그러졌다. 그만치 어딘지 모를 위엄이 있었다.
아자개뿐 아니라 아자개의 아버지 한아버지 대대로 남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그렇다고 위엄성을 부린다든가 한 것도 아니건만.
그 근처에 전하는 말에 의지하건대 아자개의 칠대조 되는 사람이 하늘에서 강탄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본시 천상의 선녀(仙女)로서 어떤 천관과 눈이 맞아서 잉태하게 되매 상제가 세상에 내치셔서 이 인간 세상에서 한 집안을 창립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또 일설에는, 어떤 부자집 딸이 이름 모를 어떤 미소년과 사괴어 잉태하게 되매 엄격한 아버지가 죽이려는 것을 그의 어머니가 몰래 돈을 많이 주어 도망시켜서 이곳에 와서 한 집안을 창설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여하간 아자개의 집안은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 한 개 꽃다운 젊은 여인으로 시조되어 일곱 대를 내려와서 오늘날의 아자개의 대까지 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일곱 대를 한곳에서 살았으면 그 후손도 상당히 많이 퍼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집안은 대대로 딸도 없는 외아들로 내려왔다. 한 번도 딸을 낳아 본 일이 없고 외아들 이외의 다른 아들을 낳은 일이 없다. 더우기 기괴한 일은 그 집의 마누라가 배가 불러서 만삭이 되었다가도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해산한 기색은 없고 아기도 보이지 않고 그냥 배가 도로 작아지고 하였다. 그리고 그 근방의 호농으로서 많은 하인이 있지만 주인 안해가 몸을 풀 때는 하인은 그 근처에는 얼씬을 하지 못하게 하고 꼭 남편 되는 당주(當主)가 해산 간호를 하고 하였다.
대대로 외아들이라 하나 단순한 외아들이 아니었다. 아들이 두셋씩 될 때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아들이 두셋씩 되다가라도 아들들 이 장가들 때가 가까와 오면 그 몇 명 아들 중에 가장 준수하고 건장한 한 아들만 남고 다른 아들은 어디로 없어지는지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거기 대하여 그 새 몇 대를 물어 본 사람도 많지만 확실한 대답을 들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자개의 대 적에도 아자개에게는 이 년 맏이 되는 형이 있었다. 아자개는 사람이 무거운 데 반하여 형은 좀 경한 편이었다.
아자개의 형은 어떤 날 어찌어찌하다가 동리 애들과 싸움을 하였다. 그때에 좀 경한 이 소년은 열김에 다른 소년들을 욕하느라고,
"이 자식들 우리는 너희 천인배와는 근본이 다르다."
고 고함질렀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자개의 아버지가 집에서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뛰쳐나오기 때문에 얼굴이 창백하게 되는 소년을 아버지는 두 말 없이 마치 닭을 채는 수리와 같이 움켜잡고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형 되는 소년은 이 세상에서 종적이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아자개가 형을 대신하여 이 집안의 봉사손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이 집안의 주인이 된 아자개는 안해를 맞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집안을 맡았지만 불행히 사십이 지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 날 난 이 아이야말로 이 집안의 유일의 봉사손이요 이백 년 이래 일곱 대째 한 개 아리따운 여인을 선조로 한 이 가문의 다만 한 사람의 혈손이었다.
알메 황성단에 별이 내리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이 세상에 튀어져 나온 한 아이 ― 아자개의 가문의 단 한 사람인 이 귀여운 아기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무럭무럭 자랐다. 갓났을 때부터 벌써 기골이 장대하던 그 아이는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갈수록 보기 놀랍게 건강하여 가고 얼굴 체격 등이 모두 갓난애답지 않게 굵어 갔다.
그 겨울도 훌쩍 지나고 벌판에 뿌리는 봄비 한 소나기로서 천하에 봄이 이르렀다. 이때는 난 지 반 년 조금 남짓한 이 아이가 마치 체격으로는 두 돌을 지난 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체격은 장대하나 다른 방면으로는 더디기 짝이 없었다. 아직 뒤지도 못하였다. 평생 가야 우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웃는 일도 없었다. 어린애답지 않은 침울한 얼굴로 눈을 꺼벅꺼벅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봄날 아자개의 집안은 통틀어 나서 벌에 나갔다. 금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밭귀에 서서 하인배들을 지휘하고 그의 안해는 메켠 아래 앉아서 갓난애를 어르고 있었다.
봄날 포근한 햇볕 아래서 갓난애를 젖을 먹이고 있을 동안 산모 특유의 피곤함으로서 견디지 못하도록 졸음이 왔다.
굽어보매 어린애는 먹던 젖을 놓고 고요히 잠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것을 본 뒤에 조심스러이 애를 무릎에서 내려서 곱게 자라나는 잔디밭 위에 눕혔다. 그리고 자기도 그냥 앉은 채로 곤한 잠에 빠졌다.
곤한 잠에 빠진 동안 그는 꿈결같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한 번 들었다. 듣고 본능적으로 손을 저어서 아기를 두드려 주면서 그냥 잠을 계속하였다.
한참 동안을 앉은잠을 잤다. 그러다가 무엇이 선뜻하는 바람에 깜짝 놀래어 깨었다. 깨어서 눈을 번떡 뜨다가 그는 기절하게 놀랐다.
"아! 아!"
날카롭고도 짧은 부르짖음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와 있는 것이었다. 와서 있을 뿐 아니라 엉거주춤하고 앉아서 아기에게 제 젖을 빨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심한 갓난애는 호랑이의 젖을 빨면서 싱글벙글하는 것이었다.
눈이 아득하였다. 온 천하가 캄캄하였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아아아!"
좌우간 정신없이 기괴한 비명성을 내며 일어서려 하는 그때에 호랑이는 그 커다란 머리를 돌려서 한 번 아기 어머니를 본 뒤 천천히 일어서서 인제는 자기의 임무를 다하였다는 듯이 꼬리를 끄을며 뒷수풀로 들어가 버렸다.
호랑이의 젖을 빼앗긴 아기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젖을 찾을 동안 한참은 아기 어머니는 너무도 가슴이 서늘하게 몸이 떨려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날 밤 아기 어머니는 낮에 겪은 놀라운 사건을 제 시한아버니와 남편에게 말하였다. 그러매 그 두 사람은 한결같이 '말을 절대로 소문내지 말라' 하고 기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 소문은 드디어 동리에 퍼졌다. 시한아버니와 남편에게서 함 구령은 들었지만 제 아이를 자랑하고 싶은 아기 어머니의 욕심으로 어떻게 한 번 발설한 것이 하도 기괴한 일이라 삽시간에 동리에 퍼졌다.
이 소문이 동리에 퍼진 것을 안 날 저녁 아자개와 그의 한아버니는 사랑에서 문을 굳이 닫고 무슨 중대한 의논을 하였다.
그 이튿날부터 아기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종적이 사라져 버렸다.
간간 동리 늙은이들이 아기 어머니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언제든,
"친정 나들이 갔소이다."
하고는 뒤를 흐려 버리고 하였다.
그러나 나들이 갔던 사람은 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 소년은 일곱 살 난 때에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고쳤다. 이 아무개라고 지금껏 아자개의 집안이 써 내려오던 성씨를 벗어 버리고 스스로 성을 견(甄)이라 정하고 이름을 훤(萱)이라 하였다.
지금 그의 가문에 생존하여 있는 단 두 사람인 증조부와 아버지도 말리지 않았다.
"성명을 고치겠읍니다."
고 말할 때에 순순히 승낙하였다. 그리고 고치려는 까닭을 물으매 소년은,
"평범한 성명을 쓰지 않겠읍니다."
할 뿐이었다.
소년 견훤(甄萱)은 이 아늑한 가은현 일대의 한 경이적 존재였다.
어렸을 때에 호랑이가 젖을 먹였다는 소문도 전지전지하여 모두들 외었다.
여섯 살 때에 벌써 멧도야지를 주먹으로 때려 죽여서 부로(父老)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소년 견훤의 신변에는 기괴한 일이 연방 생겼다.
소년은 늘 혼자 돌아다녔다. 이런 시절의 소년들은 대개 동무를 사괴어 가지고 함께 노는 것이어늘 견훤은 동무를 사괴고자 아니하였다. 음침한 얼굴을 하고 늘 혼자 돌아다녔다. 그런데 때때로 봉황이며 두루미가 날아 내려와서는 혹은 소년의 머리 위를 돌고 돌아다니고 혹은 소년의 어깨에 내려앉아서 길게 소리를 외치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철없는 시절의 소년은 그 짐승들을 잡아서 장난할 것인데 견훤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들이 와서 노는 것을 관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침울한 얼굴로 홀로 이 산골짜기 묏등성을 왔다 갔다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활과 살과 검을 받았다. 그러나 소년은 그것을 연습하는 기색이 없었다.
하루는 아버지 되는 아자개가 소년이 혼자서 우두머니 바윗등성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물었다.
"너 활을 연습하느냐?"
소년은 대답치 않았다. 웬만한 일에는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소년은 대답 대신으로 거기 놓아두었던 활을 들었다. 들어서는 거기다 살을 먹였다. 살을 먹이고 하늘을 우러러볼 때에 요행히 하늘에는 한 쌍의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소년은 기러기를 향하여 살을 놓았다. 다음 순간 한 마리의 기러기는 한번 하늘을 핑 돈 뒤에 펄럭펄럭 하며 땅으로 떨어졌다.
자기의 아들의 놀라운 궁술에 입을 딱 벌린 아버지에게 향하여 소년은 잠시 아무 표정도 없는 눈을 던지고 있다가 활을 휙하니 내버렸다.
아버지 아자개도 눈이 퀭하여 자기 아들을 굽어볼 뿐이었다.
웬만치 배워서도 달하기 힘든 궁술의 오체까지 견훤 소년은 달한 것이었다.
궁술뿐 아니라 검술에도 언제 연습하였는지 놀랄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누구한테도 자랑하지 않았다. 소년의 입은 마치 봉쇄 당한 듯이 웬만한 일에는 열려 보지를 않았다. 꾹 입을 다물고 음침한 얼굴로 한없이 한없이 저편을 내다보는 소년의 양은 어떻게 보면 한 칠십이 넘는 늙은이 같았다.
이 음침한 소년 견훤은 스스로 고독을 취하며 고독한 가운데서 한없이 한없이 무슨 생각을 하며 아늑한 이 동네에서 고이 자라났다.
이 소년이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도 아들이 너무도 침울하므로 아들을 도리어 저퍼하였다. 소년이 무슨 일을 하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자기의 할아버지와 얼굴을 서로 마주 보고는 만족히 웃고 할 뿐이었다. 이 소년의 하는 일거일동이 모두 아버지 아자개에게는 만족하게 보일 뿐이었다.
"황성은 내렸건만…."
혼자서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하는 아버지였다.
여덟 살 나는 해에 견훤 소년은 살인을 하였다.
무슨 큰 원혐이 있어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동리 소년들은 견훤을 '지렁이'라 별명을 지었다. 견훤이라는 그의 이름이 얼른 발음하자면 '지렁이'와 비슷하므로 지렁이라 별명을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소년이고 견훤을 면대하여 놀려 대지는 못하였다. 자기네끼리 놀면서 그런 소리를 하다가라도 견훤이 멀리서 보이기만 하면 모두가 겁을 내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중에 입이 못된 소년들은 더 흉악스러운 말까지 지어내어서 서로 수근거리고는 웃어 대고 하였다.
― 옛날 어느 부자집에 외딸이 있었구나. 그 외딸이 나이가 바야흐로 방년이 되매 밤마다 웬 미소년이 이 처녀를 찾아다녔구나. 그러니깐 제 아무리 겉으로는 처녀지만 속살이 굴러먹은 이상에 아이를 왜 안 배겠느냐. 배가 차차 불러오기 시작했구나.
― 그것도 두석 달은 감출 수도 있지만 만삭이 된 뒤에야 어찌 감추겠느냐. 그만 부모에게 들켜서 하릴없이 자초지종을 다 말했구나. 그러니까 부모는 그 미소년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구 제 딸에게 바늘에 기다란 실을 꿰어서 오늘 미소년이 다녀갈 때에 그의 옷자락에 걸어서 소년이 어딧 사람인지 알아보려구 했구나. 부모의 명령으로 이 난봉 처녀는 제 비밀서방이 밤에 다녀갈 때에 옷자락에 바늘을 꿰어 놓았구나. 이튿날 그 실바람을 쫓아가니까 북쪽 담 밑에까지 그 실이 연달렸구 거기를 들치니까 지렁이가 한 마리 바늘에 허리가 꿰어서 죽어 있었구나 ―.
― 난봉 처녀는 만삭이 돼서 아들을 낳았는데 지렁이 아들 역시 지렁이, 지렁이 아들 지너니 견훤이 하하하하.
이런 소리를 하면서 웃어 대고 하였다.
그러다가 어떤 날 한창 이러고 떠들다가 그만 견훤에게 들켰다.
본시 웬만하여서는 입을 열지 않는 견훤은 이 말을 듣고도 음침한 얼굴로 소년들의 맞은편에 가서 딱 버티고 설 뿐이었다.
그러나 죄가 있는 소년들은 질겁을 하였다. 질겁을 하여 모두 도망치려 하였다.
견훤은 한 번 뛰었다. 도망치려던 첫 소년이 잡혔다. 잡힌 소년은 어떻게 된 셈인지 한 번 하늘 높이 공중걸이를 친 다음에는 기다랗게 땅에 자빠져 버렸다. 둘째 소년, 세째 소년, 모두 같은 운명 아래 기다랗게 넘어졌다.
소년 넷이 가지런히 나가 넘어졌다. 굽어보매 벌써 숨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죽은 소년들을 굽어보다가 견훤은,
"외람 된 자식들!"
한 마디 휙 내어던지고는 먼지를 한 번 툭툭 털고 거기서 발을 떼었다.
그 날 견훤이 동네 소년 넷을 둘러메치어 죽였다는 소문이 굉장히 났다. 그러나 아자개의 집에 그 일에 대하여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 죽은 소년들의 부모들도 입맛만 쩍쩍 다실 뿐 아자개의 집을 찾아가지를 못하였다. 아자개의 집안은 그 근방 일대에서 일종의 외포의 염을 받아오고 접근치 못할 위엄을 가지고 있었더니만치 서로 저희끼리 수근거릴 뿐이었다.
그날 저녁도 꽤 늦어서야 견훤은 제 집에 돌아왔다.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너 오늘 아이들 넷을 죽였느냐?"
고 물을 때에 견훤은,
"외람된 소리를 하기에 벌했읍니다."
고 대답하였다.
"외람된 소리란 무슨 소리냐?"
"어머님을 욕합디다."
"음 ―."
아자개도 머리를 끄덕끄덕 하였다. 더 묻지 않았다.
견훤의 증조할아버지는 견훤이 열한 살 되는 해 이른 봄에 저 세상으로 갔다.
임종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증손자를 앞에 불러 앉힌 이 노인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서 묵연히 손자의 앞에 한참 동안을 무릎을 꿇고 입 속으로 무엇이라 숭얼숭얼 하다가 앉은 채로 저 세상으로 갔다.
이제는 이 너른 우주에 아자개의 혈속이라고는 아자개와 그의 어린 아들밖에는 남은 자가 없었다.
사위는 이렇듯 끊임없이 변하여 가지만 견훤 소년의 기거 동작에는 추호도 변동이 없었다. 늘 음침한 얼굴로 그 근처의 산야를 편답하는 것이었다. 소년다운 명랑한 빛과 활기가 없는 대신에 차차 날카로와 가는 눈을 푹 내려 뜨고 양손을 젓는 듯 마는 듯하며 묵묵히 산과 벌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남국 정취를 풍부히 띤 이 근방에서 소년은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맡고 무엇을 듣는가, 아무도 그것을 아는 자가 없었다. 소년 자신도 몰랐다. 소년이 다른 아이 몇을 때려 죽인 뒤부터는 그 근처에서는 어떤 아이를 무론하고 견훤과는 일체로 교제를 하지 않았는지라 저절로 외톨이로 난 견훤 소년은 뜻없이 산야를 편답하면서 그의 호기를 기르는 것이었다. 아버지 아자개가 아들을 위하여 사 준 한 마리 준마에 높이 올라앉아서 묵묵히 산야를 돌아다니다가 때때로 눈을 들어서 사면을 휘살필 때에는 소년의 눈에서는 난란한 빛이 흐르고 하였다. 무슨 까닭인지는 스스로도 몰랐지만 가슴이 꾹 메며, '천하가 왜 이다지도 좁다라냐?' 하는 느낌이 무럭무럭 일어나고 하였다.
동네 아이들이 자기와 짝하여 주지 않는 것을 견훤은 탓하지 않았다. 변변치도 않은 장난들을 하면서 마치 천하라도 얻은 듯이 기뻐 날뛰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는 가련히 여기는 생각조차 일어나고 하였다.
이리하여 음침하고 고독을 즐겨하는 이 소년의 나이도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되었다.
소년기에서 청년기에 들어서는 귀중한 시기였다. 그 어느날 소년은 예에의 지하여, 혼자서 말을 타고 이리저리 편답을 하고 있다가 알메 황성 단에 자기 아버지가 우두머니 앉아서 자기를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고삐를 그리로 돌려서 황성단 앞으로 갔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풀밭에 돋아나는 잔디는 빛을 자랑하고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 봄을 찬미하는 온화한 봄날이었다.
"어디 갔었느냐?"
"여기저기 돌아다녔읍니다."
"응 거기 와서 앉아라."
소년을 앞에 불러 앉힌 아자개,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야."
"네?"
"너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
"알메 황성단이올시다."
"아니 이 근처 말이다."
"상주 가은현이올시다."
"어느 나라의 땅이냐 말이다?"
"신라 땅이올시다."
아비의 눈이 번쩍 하였다. 번쩍 하였다가 다시 눈을 고요히 닫았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위에 다시 연 아자개의 입.
"너 백제가 무엇인지 아느냐?"
"백제? 백제란 무엇이오니까?"
"오 모르리라.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알 까닭이 없으리라. 거기 앉아서 아비의 하는 말을 명심해 들어라. 백제라는 것은 나라의 이름. ― 여기는 백제의 낡은 강토 ― 우리 집안은 백제의 유민 ― 그 그 그 ―."
좀 주저하다가,
"왕손이로다."
한 뒤에 창황히 사면을 둘러보았다.
황성단 앞에 자기의 아들을 불러 앉히고 다스한 봄볕 아래서 아자개가 풀어 낸 아야기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이 반도의 정기를 한몸에 지니고 멀리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던 장백산이 한 군데 맺힌 곳 ― 거기는 지금부터 천 년 전에 부여(扶餘)라는 나라이 있었다.
그 부여라는 나라의 금와왕(金蛙王) 때에 왕이 신하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웬 한 기이한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그때 태중이었다. 여인의 말을 믿자면 그 여인은 하백(河伯)의 딸로서 어느 날 자칭 천신(天神)의 아들이라는 사람과 사랑을 속삭였다. 이 때문에 잉태를 하고 잉태하기 때문에 자기 부모에게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왕은 이 여인을 대궐로 데려다 두었다. 이윽고 여인이 만삭이 되어 한 아이를 낳았는데 사람됨이 장자(長者)답고 골격이 준수하였다.
이 아이가 고주몽(高朱蒙)이었다. 주몽은 자라면 자랄수록 사람됨이 훌륭하여 가고 장자다와 갔다. 장백산 논 벌판에서 말을 달리며 때때로는 산에 올라서 멀리서 남쪽으로 뻗은 무변 산야를 바라보면서는 그의 웅심(雄心)을 기르고 있었다.
드디어 이 눈치를 왕이 채었다. 그래서 주몽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 기미를 안 주몽은 즉시로 동부여 나라를 탈출하였다.
"사내 어디를 가면 입국성지(立國成志) 못하랴. 구태여 남이 일찌기 얻은 작은 땅에서 남의 의심의 눈을 받지 말고 하늘이 내게 주신 땅으로 가자."
이리하여 동부여를 탈출한 주몽은 신하 세 사람을 데리고 멀리 서쪽 비류 강까지 이르러서 거기 한 개의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임군이 되었다.
이리하여 고구려라는 나라가 창건되었다. 고구려 임군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 유리(琉璃)는 일찌기 주몽 임군이 동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이었다.
둘째 아들 비류(沸流)와 세째 아들 온조(溫祚)는 고구려국을 창건한 뒤에 낳은 왕자였다.
잠저(潛邸) 시대에 낳은 맏아들과 왕이 된 뒤에 낳은 작은 아들 ― 만약 이 뒤 주몽 임군이 승하하면 맏아들이 왕통을 이을 것이냐 왕자가 왕통을 이을 것이냐.
이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하여 맏아들 유리는 동생에게 왕통을 사양하고 비류와 온조는 형에게 사양하고 서로 사양하다가 끝이 없으므로 비류와 온조는 의논하고 몰래 고구려국을 도망하였다. 이 고구려국은 이복형님인 유리에게 잇게 하고 자기네들은 이곳을 피해서 그 주인 없는 땅을 얻어 다시 새로운 나라를 창건하려는 커다란 우애와 야망으로써. 이리하여 고국을 탈출한 비류와 온조는 후에 제각기 한 나라씩을 세웠다가 비류는 자기 나라를 들어서 동생 온조에 내어 맡겨서 온조 한 사람이 왕이 되었다. 북쪽에는 이복형 유리가 고구려의 임군이요 남쪽에는 온조가 새 나라 백제의 왕, 그의 아버지 주몽 ― 변하여 동명성제의 끼친 유업은 북쪽에 고구려, 남쪽에 백제, 이러한 두 개의 국가라는 열매가 맺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다르나마 한 아버지에게서 생겨 난 두 개 국가 ― 서로 화목히 지내고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고 고이고이 지냈다.
이리하여 두 나라이 창건된 지 수년 후에 반도의 동남쪽에 또 한 개의 국가가 생겨났다. 박혁거세라는 사람이 건국한 신라(新羅)였다.
반도에 세 개의 나라가 생겼다. 고구려와 백제는 골육지간이었다. 신라는 타인이었다.
자연히 고구려와 백제는 친하였다. 신라는 늘 외톨이였다.
이리하여 칠팔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칠팔백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외교상, 혹은 군사상 고구려와 백제의 새에도 때때로 분규가 없는 바는 아니었다. 자기네끼리의 분규는 있을지라도 만약 외국과 대항하는 경우에는 혈족으로서 단결하여 힘을 아울러 외국을 치는 것이었다. 더우기 북쪽 무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고구려는 나라이 기름지고 백성이 용맹스러워서 외국이 감히 덤비어들지를 못하였다.
수나라 양제, 당나라 태종, 중원에 일어선 커다란 국가의 임군들이 동남쪽의 세 나라(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켜 보고자 백만 대군을 일으켜 가지고 왔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왔다가 돌아갈 때는 십만 대군은 겨우 수백 명으로 줄고 장수 꺾이고 자기네의 강토까지 도로혀 얼마씩 빼앗기고 하였다.
고구려는 이 반도의 북쪽에 웅거하여 남쪽의 두 나라를 보호하는 웃 동생의 구실을 하였다. 중원 군사들이 고구려를 치려다 실패만 하고 이번은 남쪽으로 백제를 치러 보내면 고구려는 역시 백제를 도와서 외국 군사가 이 땅에 발을 올려놓을 기회를 주지를 않았다.
이러한 귀중한 보호벽(保護壁)임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고구려를 미워하였다. 신라가 백제를 치고자 하여도 고구려 때문에 움쩍할 수가 없었다. 고구려를 친다는 것은 염두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때때로 계교를 내어서 백제에게 향하여,
"함께 고구려 정벌하자."
고 하여도 보았지만 백제에서는,
"고구려가 망하는 날이면 백제와 신라도 그냥 붙어나지 못한다."
하여 대척도 안 했다.
신라 태종왕 때에 신라는 드디어 최후의 수단을 썼다. 당나라의 힘을 빌기로 한 것이었다.
"우리 신라는 당신네 당나라의 한 번방(藩邦)이 될 터이니 그 대신 고구려를 처벌하여 주십쇼."
하고 나라를 들어서 당나라에 바친 것이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역시 고구려를 처벌하기를 꺼리었다. 그 새 수없이 맛본 쓴 경험 때문에 고구려 처벌은 과연 끔찍하였다. 그래서 신라를 타일러서 고구려 처벌의 생각을 잠시 보류하게 하도록 하였다.
"지금 백제 왕실이 바야흐로 어지럽고 더우기 백제는 너의 나라 대야성을 빼앗은 원수지간이니 백제부터 정벌하자."
사리는 그럴듯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고구려는 인젠 진저리가 난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은 고구려를 피하여 수로(水路)로 백제로 들어서서 고구려에서 손 쓸 겨를이 없이 백제를 때려부쉈다. 그리고 고구려의 구원병이 이르기 전에 당나라 군사는 백제 왕과 왕족을 잡아 가지고 황황히 제 나라로 도망하여 돌아갔다.
백제는 이리하여 망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아직 불만족이었다. 고구려를 꼭 없이하고 싶었다.
당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라를 번방이라 정하였으나 그 북쪽에 고구려가 웅거해 있는 동안은 신라를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었다.
이 신라와 당나라의 의사가 서로 합하여 재차 이번은 고구려 정벌의 군사를 일으켰다.
인제는 백제라는 나라이 없어졌으므로 나당(羅唐)군이 연합하면 고구려를 남북에서 끼고 칠 수가 있었다. 더우기 그때는 불행히도 고구려에서는 천합소문의 아들 형제 중에 분규가 있어서 국력이 얼마간 해이된 때였다.
나당 연합군은 이 기회에 고구려를 징벌하였다. 남북으로 적군을 맞은 위에 형제지간의 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였던 고구려는 만추의 원을 품고 그만 망하였다.
신라는 세 나라를 통일하였다. 통일한 은혜를 갚기 위하여 당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고 스스로 신국(臣國) 행세를 달게 받았다.
백제가 망하고 뒤따라 고구려가 망하여 이 반도에는 신라 한 나라이 겨우 남아서 나라를 다스리기 이백 년, 북쪽에서 보호하던 고구려가 이미 없고 서쪽에서 경쟁하던 백제 또한 없는지라 신라는 차차 쇠약하고 어지러워 갔다.
고구려를 삼키기는 삼켰지만, 고구려의 구역(舊域)을 지킬 만한 실력이 없었다. 백제를 삼키기는 삼켰지만, 백제의 구역까지 돌볼 힘이 없었다.
커다란 고구려의 구역은 지금은 한낱 군웅(群雄)의 난무장이 되고 백제의 구역은 치자(治者) 없는 땅이 되었다.
그것뿐 아니라 신라 자체의 내치도 지금 극도로 어지러워서 스스로 자기의 나라를 다스릴 힘까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대략 자기 아들 견훤에게 들려준 아자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훤아."
"?"
"우리 집안은 ― 명심해 들어라. 우리 집안은 백제 왕실의 후예다."
"?"
훤은 눈을 치뜨고 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음침하고 무거운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표정은 없었다. 그러나 훤의 마음은 한순간 무슨 엄숙한 사실 앞에 직면한 것 같이 긴장되었다.
"이백 년 전 신라의 폭군(暴軍)에게 조국이 망한 때에 외로이 당나라로 붙들려 갇혀서 거기서 최후를 보신 선왕의 ― 우리는 유일의 혈손이다.
"…."
"알겠느냐? 조국을 위해서, 조상을 위해서 칼을 잡고 일어설 사람은 이 너른 세상에 너와 나 밖에는 없다. 나는 이미 몸이 다 쇠약해서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여기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라이 망한 지 이백 년, 그 새 대대로 벼르기만 하면서도 착수 못한 일을 지금 실행할 때가 왔지만 나는 이미 늙고 너 한 사람 밖에는 여기 나설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이 없구나. 네 의견은 어떠냐?"
"…."
소년은 역시 대답이 없었다. 소년답지 않은 무서운 표정, 무서운 눈으로 한없이 멀리 바라보고 있을 뿐, 그의 입은 봉쇄당한 듯이 열리지를 않았다.
낮에서 저녁으로, 다시 황혼으로 날은 점점 기울어 갔다. 그러나 이 점잖은 부자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그 자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날이 꽤 어두운 뒤에야 소년 견훤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왜냐?"
"황성(皇星)이 내렸읍니다. 어찌든 안 되리까. 저는 아무 생각도 나는 것이 없읍니다. 며칠을 잘 생각해서 말씀드리리다."
"그래라."
부자는 황성단에서 내렸다. 아비는 앞서고 아들은 말고삐를 모을고 뒤를 따르고 묵묵히 제 집까지 돌아왔다. 제 집 문밖까지 이르러선 아비는 아들을 돌아보고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대어서 오늘 한 말을 절대로 누설치 말라는 뜻을 보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에는 이 부자는 여전히 다시 이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였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농가의 생활 ― 이러한 가운데서 음침한 얼굴의 아비와 응큼한 얼굴의 아들은 서로 아무 이야기도 하는 것이 없이 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다시 계속되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생활의 여름도 가고 가을도 무르익은 어떤 밤이었다.
곤한 잠에 깊이 빠져 있던 아자개는 누가 자기의 몸을 흔드는 바람에 몽롱한 잠에서 깨었다.
"응? 응?"
"아버님."
깨우는 것은 그의 아들 견훤이었다.
"응, 왜 그러느냐?"
"아버님 좀 여쭐 말씀이 있어서…."
"응 그래 ―."
아자개는 그냥 졸음에 취한 눈을 부비며 아들을 보았다.
?―
길 떠나려는 차림이었다.
아자개는 펄떡 정신이 쇄락하여졌다.
"어디 가려느냐?"
"네, 하직을 고하러 왔읍니다."
"쉬 ―."
아자개는 몸을 일으켰다. 황황히 옷을 주워 입고 아들의 손목을 덜레덜레 끄을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부자는 사립문 밖으로 나섰다. 가을달 교교히 비치는 아래를 아비와 아들은 빠른 걸음으로 뒷산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끊치고 때때로는 풀 맹수도 다니는 으슥한 수풀에 깊이 들어가서야 아비는 아들의 손을 놓고 앉았다.
"말해라."
"네…."
"어디로 가려느냐?"
"정처가 없읍니다."
"무얼 하러 가려느냐?"
"아버님! 아버님이라 마지막 부릅니다."
"마지막! 옳다. 마지막으로 나도 믿고 너도 그렇게 알아라. 이 뒤에 다시 올 생각을 말아라. 와도 만나지도 않는다. 만약 이 뒤에 너와 나와 만날 날이 있다 하면 그때는 너는 용상에 앉고 나는 그 앞에 꿇어 엎디어 '전하'라고 우러르게 되어야 할 줄 알아라."
"네. 저도 아버님께 '경'이라 부르기 전에는 결코 안 돌아오겠읍니다."
"왕을 꿈꾸지 말아라. 백제 황손이 오를 자리는 황위(皇位)느니라. 네가 왕이 될지라도 나는 너를 보지 않는다."
"황성이 내린 날 이 세상에 나온 저올시다. 구구히 왕이나 되려고 떠날 소인이 아니올시다."
"응, 가거라. 타사암(墮死岩)의 원수를 갚아라."
"십 배 하여 갚겠읍니다. 우리 조상님을 당나라로 보낸 품갚음으로는 신라 여왕(女王)을 궁녀로 삼겠읍니다. 타사암의 많은 주검의 품 갚음으로는 신라 궁실의 비빈(妃嬪)들을 폭민으로 강간케 하겠읍니다. 나날이 열리는 포석정 질탕치는 잔치를 엿보아서 잔치를 수라장으로 만들고 부여성 원수를 십 배 백 배 하여 갚겠읍니다."
"네 사람됨을 믿고 네 힘을 믿으니 다시 무슨 말이 있으랴만 한 가지 당부는 네 몸을 조심해라 하는 것이다. 네 몸에 실수가 있으면 대(代)가 끊친다. 조국을 위해서 일어설 사람이 없어진다."
"그 점도 생각했읍니다. 먼저 좋은 짝을 구해서 자식을 본 뒤에 일에 착수하려 합니다."
"구애되지 않겠느냐?"
소년은 아비를 보았다. 그게 무슨 지각 없는 말씀이오니까 하는 눈치였다.
그 밤 소년은 행방을 감추었다.
밝는 날 아자개는 아들을 잃었다고 하인들이며 품삯 주어 사람을 사기까지 하여 그 근처 일대를 수색하였다. 그러나 소년의 행방은 영 없어지고 말았다.
이틀 사흘 열흘 보름 연하여 찾아보고 알아보고 하였지만 일단 자취를 감춘 소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갔나 보다. 이것이 마지막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로써 동리 사람들이 조상을 하면 아자개는 입맛이 쓴 듯이 입을 쩍쩍 다시는 뿐이었다.
사람의 세상의 보통 아이들이면 아직 응석이나 부릴 나이에 제 홀 아버지의 슬하를 떠나서 정처없는 길을 떠난 견훤은 여전한 음울하고 음산한 얼굴로 사랑하는 백마에 높이 올라서 눈을 푹 내려뜨고 가을날 시골길을 더듬어가고 있었다.
목적한 곳은 어디?
그도 몰랐다. 그의 탄 말도 몰랐다. 그저 길이 난 데로 무정처하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말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몽롱히 정한 방향은 서북쪽이었다.
이리하여 밤에는 들에서 자고 낮에는 길을 계속하며 주리면 빌어먹고 먹을것이 없으면 굶고 ― 이렇게 닷새 동안을 갔다.
닷새 후에 그의 발이 이르른 곳은 이백 년 전에 망한 백제 구도(舊都) 부여였다. 말이 저 혼자서 여기까지 왔는지 혹은 견훤 자기가 말고삐를 이리로 끌었는지조차 알지 못하였다.
"여기가 어디오니까?"
지나가는 행인에게 이렇게 물어 보아서 지금 이곳이 부여의 교외인 것을 안 때에 견훤의 음산한 얼굴은 한순간 길끗한 뿐이었다. 그러고는 또다시 말을 재촉하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백 년 전에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바 되고 그 뒤 이백 년간을 주인 없이 지낸 이 성은 한 개 황폐한 도시에 지나지 못하였다.
견훤은 하루 종일을 일없이 성내를 빙빙 돌았다. 머리를 들지도 않고 무엇을 살피지도 않고 다만 눈 아래서 벌떡거리는 말의 두 귀만 굽어보면서 왔던 길을 다시 가고 갔던 길을 다시 오고 같은 길을 반복할 뿐이었다.
이렇게 수없이 왕래하며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음산한 얼굴의 소년에게 부여 시민들은 의아한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갔다가는 다시 오고 왔다가는 다시 가고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아나 이애."
어떤 노인이 이 소년을 불러 보았다. 그때 소년은 여전한 음산한 얼굴로 이 앞을 지나가다가 부르는 소리에 약간 눈을 들었다.
불러 본 노인은 이 소년의 너무도 음산한 눈찌에 그만 몸서리쳤다. 그리고 물어 보려는 말은 물어 보지도 못하고 어름어름 돌아서고 말았다.
노인이 부르는 바람에 말을 멈추고 섰던 소년은 노인이 말없이 돌아서는 것도 탓하지 않고 잠시 노인의 뒷등을 역시 음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고삐를 채어서 길을 떠났다.
이 소년의 그림자는 이튿날은 타사암 위에 나타났다. 이백 년 전 백제 망하는 날 많은 비빈 궁녀들이 물에 몸을 던져서 죽은 그 자리에 올라가서 하루종일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지금 이 아래를 흐르는 푸르른 물 ― 물은 흐르고 흘러서 이백 년간 옛날의 그 물은 지금 어느 바다로 갔는지 알 수도 없는 바이다. 물과 함께 흐르는 세월도 어느덧 이백 년 ― 그 날에 원한을 품고 죽은 수많은 생명들의 가련한 넋은 어디서 헤매나.
어제도 본 바 부여성 안의 백성들은 태평건곤에 잠겨서 지나간 날의 원한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모양이다. 견훤은 자기의 품을 뒤적여서 깊이 감추어 두었던 한 개의 칼을 꺼내었다.
쭉 뽑아 보매 가을 햇볕 아래서 푸르른 날은 날카로운 광휘를 발한다.
이백여 년 전 명공(名工)의 손으로 만든 이 명도 ― 장차 어느 날 이 칼이 신라 왕의 가슴에 박힐 것이냐.
얼굴을 숙여서 칼날을 들여다보는 견훤의 얼굴은 어떻게 보면 칠팔십에 난 노인으로 볼 수가 있도록 음침하였다.
奇緣[기연]
[편집]덧없는 세월은 온갖 인간 사회의 복잡한 위로 여전히 고요히 흘렀다. 그것은 마치 강바닥에는 수없는 물건이 잠겨 있지만 그 위로 여전히 물은 고요히 아래로 아래로 흐름과도 같이….
이리하여 삼 년이라는 날짜가 고요히 흘렀다. 그동안 견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백마에 올라앉은 한 음울한 소년이 백제 구도 부여를 다녀간 지도 어언 한 삼 년, 그 소년이 다녀갈 때는 기이한 그 꼴에 눈을 크게 하였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 기억도 인젠 사라진 삼 년 뒤였다.
아늑하고 유수한 지리산 산속에도 봄볕이 내려 비치고 개나리 진달래가 제 꽃을 자랑하는 한가스러운 봄날, 이 인적이 끊어진 산골에 난데없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뚜거덕뚜거덕, 산에는 바위요 바위 틈에는 나무와 잡초가 우거진 이 산 새를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정체가 무엇일까. 말도 쉽지 않은 명마가 아니면 이런 곳을 다닐 수가 없을 것이요. 기수 또한 명기수가 아니면 이런 바윗길에 말을 몰 수가 없을 것이다.
번쩍! 바위와 나무 틈으로 말의 그림자가 비치었다.
백마(白馬)였다. 눈결같이 흰 말이 나무 틈으로 걸핏 보이고는 사라졌다.
그 나무 수풀을 휘돌아서 나타난 말과 말 위의 사람, 얼른 보면 그 체격 이 장대하고 무르익은 얼굴이며 말타는 솜씨 등으로 삼사십에 난 청년인 듯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얼굴을 검분하면 아직 겨우 젖비린내나 면한 십 오륙 세의 소년이었다.
마상객은 수풀에 벗어나서 좀 광명한 곳에 나와서는 무거운 머리를 들어서 사면을 둘러보았다. 둘러보아야 산첩첩 임중중의 심산, 앞도 뒤도 산에 둘리고 수풀에 둘린 심산, 볼 만한 데가 없었다.
마상객은 잠시 무거운 눈으로 사면을 살펴보다가 다시 말고삐를 낚으려 하였다.
그때였다. 어디서 무슨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
우 ― ㅇ 으 ― ㅇ, 나뭇가지를 부는 바람의 소리일까?
먹을 것을 찾는 맹수의 소리일까?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어디서 들려오는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마상객은 손을 들어서 말갈기를 한 번 쓸면서 몸을 날렸다. 보기에 장대하고 육중하던 그 육체가 마치 티끌과 같이 가볍게 말등에서 땅으로 내려섰다. 말에서 내린 그는 다시 한번 손으로 말의 콧등을 두드려서 그곳에 서 있으라는 뜻을 나타낸 뒤에 수상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더듬어서 갔다.
그곳을 찾기에 적지 않게 애를 썼다. 동쪽에서 들리는 듯하다가도 동쪽 바위를 넘어서면 소리는 북쪽에서 나고 북쪽으로 가면 그 소리는 남쪽에서 나고, 이리하여 여우에게 홀린 듯이 동서남북으로 헤매던 그는 한참 뒤에 산줄기를 얼마 내려가서야 겨우 그 기괴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내었다.
한 개의 인물이 바위틈 샘물 가에 엎드려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지를 비꼬고 들먹거리고 앞뒤로 공중걸이를 하며 신음하고 있는 품이 몸이 몹시 아픈 모양이었다.
그는 그 사람에게로 가까이 갔다. 허리를 굽혔다. 팔을 펴서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여보시우."
신음하던 사람은 이 무인지경에 뜻 안 한 사람이 자기를 흔들므로 깜짝 놀라서 신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애꾸눈이었다. 역시 한 개 소년이었다. 애꾸눈이 소년이 외딴 산골에서 신병을 얻어 만나서 신음하고 있던 것이었다.
"여보시우."
"아이구, 아이구 배야."
"왜 그러시우?"
"아이구."
다시 곤두박질을 하며 신음하는 애꾸눈이 소년.
연하여 아프다고 공중걸이를 하는 애꾸눈이와 그것을 무표정한 얼굴로 굽어보고 있는 행객.
한참 굽어보고 있던 행객은 다시 한번 애꾸눈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시우."
그러나 몹시 아픈 애꾸눈이는 거의 응하지 못하고 그냥 신음만 하고 있다.
행객은 드디어 역정을 내었다. 그의 커다란 얼굴이 찌푸려졌다. 눈썹이 푸들푸들 떨렸다.
"에익 ― 사내자식이!"
휙 몸을 돌이키려 하였다. 이 욕설이 신음하던 애꾸눈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신음성이 뚝 끊어졌다. 신음이 끊어지면서 지금껏 가슴에 묻고 있던 머리도 들렸다. 번쩍 크게 뜬 눈으로 행객을 쳐다보았다.
행객은 몸서리쳤다. 한편 눈은 굳게 감기고 나머지 눈으로 행객을 쳐다보는 애꾸눈이의 눈은 지독히도 무서웠다.
굽어보는 행객과 쳐다보는 애꾸 ― 두 눈은 잠시를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애꾸의 눈은 연하여 찡그러졌다. 몸이 매우 아픈 모양이었다. 행객은 그냥 음침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굽어보고 있었다.
드디어 행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시우."
"왜?"
반말이었다. 그러나 행객은 탓하지 않고 뒷말을 계속하였다.
"어디가 편찮으시우?"
"아랑곳할 것 있나?"
"자식두. 사내자식이 그렇듯 속이 좁담? 한 번 욕설이 그렇게 뼈에 사무치느냐?"
한 뒤에는 몸을 온전히 휙 돌리고서,
"눈깔의 독기(毒氣)가 아깝다."
하고는 다시 말도 없이 더벅더벅 갔다.
애꾸를 산골짜기에 그냥 버려 두고 그곳을 떠난 행객은 자기의 백마를 멈추어 두었던 곳을 더듬어 돌아왔다. 거기서 한 번 귀찮은 듯이 침을 탁 땅에 뱉은 그는 몸을 날려서 말 위에 올라탔다.
― 흥얼흥얼.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콧노래 ― 그의 음침한 표정에는 조화되지 않은 노래가 그의 코에서 새어 나왔다.
"이랴! 네 발굽이 향하는 대로 가자."
한 번 말의 배를 찰 때에 자기 주인의 심리를 잘 아는 말은 그의 기다란 얼굴을 들어서 사면을 살핀 뒤에 한 번 소리쳐 울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밤이 깊어서야 기마의 행객은 어떤 자그마한 암자에 찾아들었다. 심심산중에서 한 개 암자를 발견하면 그야말로 무척이도 기쁠 터인데 그의 얼굴에는 그다지 기쁜 듯한 표정도 없었다. 그냥 말께서 내리지도 아니하고,
"여보시우, 여보시우."
두어 마디 불러 보았다. 그는 '여보시우'라는 말 밖에는 사람을 부르는 다른 말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여보시우."
또 불러 보았다. 그래도 그냥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분명히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불빛이 어른거렸다.
"여보시우."
다시 한번 역정내는 소리로 고함질러 본 행객은 그래도 응답이 없으므로 그냥 말에서 뛰쳐내렸다. 그러고는 눈썹을 한 번 푸들푸들 떤 뒤에 성큼성큼 걸어가서 문고리를 잡아 낚았다.
문은 잠그지도 않았다. 잡아 낚는 바람에 확하니 열렸다.
"여보!"
보매 불 앞에는 한 늙은 중이 단연히 꿇어앉아서 일심불란히 독경을 하고 있었다.
"여보시우."
또 한번 불러 보았다. 그러나 노승은 그냥 합장을 하고 명목을 하고 누가 왔는지 가는지 알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행객은 두어 번 더 불러 보았다. 기침도 몇 번 하여보았다. 발로 땅을 굴러 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냥 도승은 알지 못하고 있으므로 마지막에는 행객도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신을 벗어 버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간 그는 마치 자기의 집인 듯이 여기저기 뒤적이어서 노승이 지어 놓은 밥을 얻어내어 훌훌 단숨에 다 먹어 버렸다. 다 먹기는 먹었으나 그래도 양에 차지 않는 듯이 두세 번 더 여기저기 찾아보고 인제는 먹을 것이 더 없음을 분명히 안 뒤에 이번은 노승의 이부자리인 듯한 그 집의 단 한 벌의 이부자리를 내리어서 노승이 경을 외고 있는 꼭 등 뒤 ― 말하자면 방 복판 가운데 쫙 펴 놓았다.
"좀 곤한걸…."
마치 이 방은 자기의 방인 듯이 이 방에는 다른 사람은 없는 듯이 웃옷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다음 순간은 천지가 진동할 듯이 코를 구르며 잠에 빠졌다. 그럴 동안도 노승은 자기의 등 뒤에서 실행되고 있는 방약무인한 침입자의 행동을 알지 못하는 듯이 합장 명목하고 경만 그냥 외고 있었다.
심산(深山)의 밤 ― 고스란히 깊어 가는 밤, 그 밤이 꽤 깊도록 코를 구르는 행객과 경을 외는 노승은 그냥 그대로 있었다.
밤이 얼마나 들었는지 닭도 없는 산골이라 짐작 가지도 않지만 삼경도 훨씬 지나서 길지 못한 봄날이 산 너머에서 아마 약간 밝아졌을 때쯤 해서야 노승은 자기의 할 일을 다한 모양이었다.
눈을 고요히 떴다. 합장하였던 손을 내리었다. 그런 뒤에 천천히 돌아 앉았다. 돌아앉아서 천지가 진동할 듯이 코를 구르며 자고 있는 염치없는 행객의 잠든 얼굴을 비로소 굽어보았다. 한참을 묵묵히 굽어볼 동안 노승의 표정은 차차 움직였다. 처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굽어보았다. 거기 잠시 호기심의 표정이 움직였다. 그 뒤를 이어서 곧 호기심에서 경이의 표정으로 변하였다. 경이에서 경동의 표정으로 변하였다.
놀란 표정으로 잠시 행객의 얼굴을 굽어보던 노승은 고요히 손을 들어서 행객의 이마에 덮인 머리털을 젖혀 놓고 이편으로 돌아가서 행객의 얼굴을 정면으로 굽어보았다. 굽어보기 한참 뒤에 다시 손을 더듬어서 행객의 머리를 만져 보고 손금을 가만히 펴보고 한참을 이리한 뒤에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서 목침을 갖다 놓고 몸을 눕히려 하였다.
노승이 바야흐로 몸을 뉘려 할 때에 암자 밖에서는 또 무슨 자취 소리가 났다. 몸을 눕히려는 노승이 다시 머리를 들고 귀를 기울일 때에 바깥의 소리는 차차 암자 문까지 이르러서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여보세요."
사람의 소리였다.
노승은 누우려던 몸을 다시 일으켜서 가만가만 문으로 갔다. 그때에 암 자문이 밖에서 열렸다. 그 틈으로는 애꾸눈이 소년의 기진맥진한 얼굴이 나타났다.
"여보세요. 길 가던 사람이 산중에서 병을 얻어 만났읍니다. 좀 쉬게 해주십쇼."
"어서 들어오시오."
이리하여 애꾸눈이 소년도 그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남의 암자에서 마치 제 집이듯이 네 활개를 펴고 잔 행객이 이튿날 잠에서 깬 것은 이 산골에도 벌써 아침 해가 꽤 높이 오른 때였다.
"으 ― ㅁ 으 ― ㅁ."
기지개를 서너 번 하여서 몸의 원기를 세우면서 그의 커다란 눈을 번쩍 뜬 행객은 그냥 일어나서 부슬부슬 옷을 다 주워입었다. 입은 뒤에 비로소 살폈다.
암자에는 노승이 한편 모퉁이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웬 다른 사람이 하나 누워 있었다.
행객은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노승의 곁으로 가서 거기 누운 사람을 굽어보았다.
거기 누워서 노승의 간호로 이젠 안정이 된 애꾸눈이를 굽어볼 동안 행객의 얼굴에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가 없는 기괴한 표정이 흘러 지나갔다. 그것도 한순간뿐이고 그 순간 뒤에는 벌써 흥미를 잃은 듯이 다시 돌아서서 무엇을 찾는 듯이 휘살폈다.
"여보시우."
또 여보시우다. 남을 찾는데 이 말 밖에는 할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노승이 이 부르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어젯밤 그만치 불러도 모르는 체하던 이 노승이…
"여보시우."
"왜 그러시우?"
"조반 어디 있소?"
"조반?"
노승의 얼굴에는 고소(苦笑)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인제 지어야겠소."
"아직 안 지었소?"
"못 지었소."
"식은밥은?"
"당신이 어제 저녁 내 밥까지 다 먹지 않았소? 나는 굶고 지냈소."
"그럼 어서 나가 지어야겠구료."
"지어야지요."
"어서 나가 지으시우."
"…."
노승은 번번히 행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어젯밤 당신이 잠든 뒤에 병인이 하나 찾아와서 지금 겨우 좀 안돈은 됐지만 좀 더 배를 쓸어 주어야겠소."
하면서 앞에 누워 있는 애꾸를 굽어보았다.
"그 애꾸 말이오?"
"그러오."
"사람 되다가 만 것은 내버려두고 밥이나 어서 지으우."
"그래도 그렇질 못하니 당신 좀 나가서 지으시우."
"그럽시다."
두 말이 없었다. 선선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행객이 머리를 들어서 사면을 살필 때에 그에게로 달려온 것은 어젯밤 그냥 버려두고 들어갔던 그의 백마였다.
달려온 백마의 콧등을 행객은 무표정한 얼굴로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런 뒤에는 말을 끌고 뒤로 돌아갔다.
행객에게 밥을 지으라고 당부를 한 뒤에 그냥 애꾸눈이의 배를 쓸어주고 있던 노승은 하도 오랫동안 행객이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밥짓는 소리는 나지 않으므로 애꾸가 잠든 것을 본 뒤에 가만가만 나와 보았다.
노승은 입을 딱 벌렸다. 노승이 준비하여 두었던 마른 산채(山菜) 들이며 쌀이며를 뜰에 쏟아놓고 자기의 백마에게 그것을 먹이며 행객은 무표정한 얼굴로 꺼벅꺼벅 서 있는 것이었다.
"여보시우."
행객의 말본을 이번은 노승이 배워서 불렀다. 이 부르는 소리에 행객은 천천히 머리를 노승에게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노승의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자기의 말에게 준 일에 대하여 열적어하는 기색도 없이 왜 불렀느냐는 듯이 돌아본다.
"조반 지으셨수?"
"말 조반을 먹이고 짓지요."
"내 지을께 들어가시오."
"그럼 시장하니 어서 지어 주시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말의 콧등을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행객은 노승에게 조반 짓기를 당부하고 자기는 암자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 보매 애꾸는 고스란히 잠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행객은 애꾸의 머리맡에 가 앉았다. 애꾸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한참을 굽어 보다가,
"아까운 녀석, 크게는 못 될 녀석이로구."
하고는 그냥 물러앉으려 하였다.
그 서슬에 애꾸가 잠에서 깨었다. 깨면서 눈을 들어서 행객을 우러러 보았다.
처음에는 무심히 우러러보았다. 무심히 보다가 행객올 알아볼 때는 얼굴에 증오의 표정이 분명히 나타나며 휙 돌아누워 버렸다.
"좀 나으시우?"
행객은 애꾸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애꾸는 대답도 안 하였다.
"좀 어떠시우?"
"아랑곳 말어."
이 악의로 찬 애꾸의 말에 행객은 웃어 버렸다.
"병신 고운 데 없다고 참 괴벽한 녀석이로구. 이 녀석아 샅에 차고 있는 것이 아깝다. 즉시 떼 버리고 여복을 입고 침선이나 하거라. 좀된 녀석 같으니."
그러고는 자기도 물러앉고 말았다.
노승이 조반을 지어 가지고 들어온 때도 애꾸눈이 몸이 아프다고 그냥 누워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시장하였던 모양으로 노승에게 누룽지를 청 하여 먹고 그 먹는 꼴이 시장한 듯하므로 노승이 짐작하고 밥을 또 주매 '못 먹는다, 못 먹는다' 하면서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조반 후 조금 지나서 애꾸는 이제는 다 나았노라고 다시 길을 떠났다.
행객도 당연히 길을 떠날 것이로되 애꾸가 떠나는 바람에 자기는 그냥 안 떠나고 있다가 애꾸가 떠난 지 반 각경쯤 지나서 노승에게 하직을 하고 떠났다.
노승에게 이름도 물어 보지 않았다.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다음 다시 만날 때가 있으면 서로 신분을 말합시다."
한 뒤에는 말께 올라서 채찍을 쳤다.
노승은 이 소년 행객이 떠나는 것을 암자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길을 가려면 당연히 산을 내려갈 것이어늘 소년 행객은 산비탈 길을 기어올라간다.
명마에 명기수 ― 사람의 발로도 기어오르기 힘든 비탈길을 한 번 까딱 안하고 올라가는 모양을 노승은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 행객은 얼마만치 올라가서는 말을 멈추고 돌아서서 이마에 손을 대 고산 골짜기를 두루두루 굽어 살피고 있다.
무엇을 찾는 모양이었다. 아까 먼저 떠난 애꾸를 찾는지도 모를 것이다.
한참을 굽어 두루두루 살피던 행객은 다시 말을 돌려서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온다. 말에 오른 채로는 산을 오르기보다 내리기는 더욱 힘든 일로서 희대의 명마가 아니면 도저히 못하는 노릇이다. 소년 행객이 탄 백마는 이 어려운 일을 어렵지 않게 하였다.
산을 내려가서는 골짜기 틈으로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노승이 호기심으로서 암자 뒤의 등성이에 올라가서 골짜기를 찬찬히 살펴보매 어떤 골짜기 바위 위에 소년 행객과 소년 애꾸가 마주 앉아서 무엇을 다투는 듯한 양이 조그맣게 보였다. 소년 행객의 백마는 그 곁에서 무심히 풀만 뜯어먹고 있다.
노승은 미소하였다.
"기특한 소년이여, 장래 크게 됩시사."
봄볕이 따스로이 내려 비치는 아래서 골짜기를 굽어보고 있는 노승의 눈가에는 한 줄기의 눈물까지 어리어 흘렀다.
산새가 기이한 소리로 길게 울면서 이 골짜기를 건너간다.
암자를 나서서 산등성에 올라 한참 굽어살핀 뒤에 말을 채찍질하여 아래로 내려간 소년 행객이 찾아간 것은 무론 애꾸 소년이었다.
"여보시우."
뒤에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에 돌아보는 애꾸에게 향하여 마상의 행객은 또 여보시우를 불렀다.
애꾸는 모른 체하였다. 모른 체하고 그냥 가려 하였다. 그때 행객은 말에서 몸을 날려서 내려 애꾸에게로 갔다.
"여보시우."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애꾸는 홱 한 번 어깨를 흔든 뒤에 그냥 길을 가려 하였다.
"여보시우, 애꾸."
"뭐얼?"
힐끈 돌아보았다.
한 눈은 굳게 감겼지만 나머지의 한 눈으로 흘기는 그 양은 몸서리칠 만하였다.
"무에라? 별 후레자식 다 보겠네."
흘기는 눈 ―. 딱 마주 서서 그 눈을 바라볼 동안 소년 행객의 얼굴에는 점점 탄상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여보게 애꾸."
이번은 여보게다.
그 순간 애꾸가 발을 굴렀다.
"옛다 받아라."
애꾸의 몸뚱이가 마치 공과 같이 되어 홱 튀어나서 소년 행객에게로 날아왔다.
그러나 소년 행객의 몸이 애꾸보다 더 빨랐다. 날아온 애꾸는 소년 행객의 품 안에 붙안겼다. 품안에서 빠져나려고 버둥거리는 애꾸를 행객은 꽤 높이 쳐들었다.
"이 자식아 눈깔의 정기는 천하를 삼킬 만하다마는 왜 그다지도 속이 작단 말이냐?"
"놓아라 이 자식아."
"놓구말구."
행객은 애꾸를 가만히 땅 위에 내려놓았다. 내려놓이는 순간 애꾸는 또 다시 행객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번도 역시 행객에게 잡힌 바 되어 높이 쳐 들린 데 지나지 못하였다.
"놓아라."
"놓구말구."
행객은 다시 애꾸를 내려놓았다.
"제갈양이 칠종칠금을 했다더니 인젠 그만두어라."
두 번 덤비어들었다가 두 번 쳐들리었던 애꾸는 인제는 다시 덤벼들 용기를 잃은 모양이었다.
"야 애꾸야."
"…."
대답이 없다.
"애꾸라는 말이 듣기 싫으냐? 그러니 네 이름을 모르니 할 수 있느냐? 음, 먼저 내 이름부터 말하마. 나는 상주 사람 견훤이로다. 네 이름은 뭐냐?"
애꾸는 힐끗 눈을 들어서 행객 ― 견훤을 쳐다보았다.
"지너니? 자식 이름도 더럽긴 하구."
혼잣말같이….
"더러워도 할 수 있느냐? 네 이름은 뭐냐?"
"이름을 듣고 놀라지 마라. 나는 금지옥엽 ― 너 같은 자식과는 마주 서지를 않을 신분이다."
"?"
견훤의 눈이 찡긋하였다. 좀체 놀라는 일이 없고 놀랄지라도 그 안색이 변하는 일이 없는 견훤의 눈이 이 말에 분명히 놀랐다.
"이름은? 이름은?"
묻는 말도 약간 조급하여졌다.
"이름은 미륵 ―."
번히 애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의 무표정한 얼굴로 참아 가며 마치 혼잣말같이,
"경솔한 자식. 그렇게 쉽사리 신분을 말한담? 지금이 어느 때라구."
한 뒤에 이번은 자칭 신라 왕손이라는 애꾸에게 향하여,
"야, 혹은 그렇지 않은가 해서 여기까지 부러 너를 따라왔다. 앉아라. 우리 이야기나 좀 하자."
하고는 자기가 먼저 덥썩 앉아 버렸다.
미륵이도 뒤따라 앉았다. 봄볕이 줄기줄기 내려 비치는 아래 두 소년 ― 하나는 백제의 왕손, 하나는 신라의 왕손은 나란히 하여 앉았다.
마주 앉은 두 소년. 하나는 신라 왕손, 또 하나는 백제 왕손.
견훤은 마주 앉아서 한참을 무표정한 얼굴로 미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 우리가 서로 아직 장가 못 든 아이들이다. 서로 오냐를 하자."
"…."
"너는 왕손이라 하면 무슨 까닭으로 대궐에서 고이고이 자라지 못하고 굶으며 헐벗으며 돌아다니느냐?"
미륵은 대답치 않았다. 견훤의 묻는 말에 대답하기가 싫음인지 혹은 마음에 꺼리는 바가 있어서 대답을 안 하는지는 알 바가 아니되 그의 못보는 눈은 굳게 감고 뜬 눈은 불쾌한 듯이 꺼벅거리며 멀거니 앉아 있다.
견훤은 잠시 대답을 기다렸다.
그것은 제삼자의 눈으로 보자면 기괴한 장면이었다. 우직(愚直)하고 음침하게 생긴 한 소년과 애꾸눈의 한 소년이 묵묵히 인적 없는 산골에 마주 앉아 있고 그들의 뒤에서는 흰 말 한 마리가 역시 음침히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서로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또 견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미륵아."
"…."
역시 대답치 않는 애꾸눈이.
"야, 네가 대답을 안 하면 내 혼자서 내 할 말을 할라. 듣고 싶으면 듣고 싫으면 그만두어라."
"…."
"네가 왕자라니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나는 신라 왕실에 원혐을 품은 사람. 원혐 먹은 집 기둥을 한 번 발로 차도 마음이 얼마만치 평안하느니라. 네가 신라 왕자일 것 같으면 내 주먹맛을 한 번 받아 보련?"
농담 비슷이 이렇게 말하면서도 견훤은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 말이 채 맺지 못하여 견훤의 주먹이 날아서 애꾸눈이 미륵의 어깨로 내려갔다.
미륵이 깜짝 놀라서 몸을 흠츠릴 때에,
"전번은 어깨지만 이번은 면상이다."
하면서 두 번째의 주먹이 애꾸의 얼굴로 날아왔다.
이 억센 주먹에 맞아서 미륵이 고꾸라졌다가 코피를 콸콸 쏟으며 몸을 일으킬 때는 견훤의 두 손은 어느덧 힘있게 미륵의 두 팔을 잡았다.
"미륵아, 아직도 대답 안 할 테냐?"
"…."
"안 했다가는 이번은 눈통이다. 성한 눈까지 없어질 줄 알아라."
다시 주먹이 올라가려 하였다.
만약 견훤의 주먹이 한 번 더 날아오면 미륵의 성한 눈까지 없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견훤도 미륵의 눈을 꿰뚫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입을 봉하고 있으므로 그의 입을 열게 하여보려고 이런 위협을 하여 보았지만 병신답게 마음이 비뚤어진 미륵은 위협이라고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비록 죽게 될지라도 그의 입은 열릴 듯싶지 않았다.
견훤은 주먹으로 위협을 하여보았으나 애꾸의 입이 열릴 듯싶지도 않고 이미 들었던 주먹을 처치하기도 곤란하여 그만 허허 웃고 말았다.
"이 자식아 눈깔이 아깝지도 않으냐?"
"이 자식 주먹을 왜 놓느냐?"
"놓지 않으면 네 눈깔이 없어진다."
"내 눈깔 없어지는 거 네게 무슨 상관이냐?"
"야 왜 사내자식이 그다지도 속이 좁으냐. 너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눈깔이 아까울 것이다. 아까우면 사내답게 항복을 하고 입을 열 것이지. 참 네가 계집애로 태어나지 않은 게 네 운수 불길이다."
"별 참견 다 하는 자식일세."
"자 우리 그럴 것이 없이 이 조용한 산간에서 서로 소년의 몸으로 집도 없이 방랑하는 같은 신분이야. 서로 신세타령이나 어디 해보자꾸나. 그것도 싫으냐?"
"…."
"자 싫으냐?"
견훤은 자칭 미륵이라는 애꾸눈이 소년을 이리 어르고 저리 어르고 위협하고 달래고 하여 드디어 그의 입을 열게 하였다.
애꾸눈이의 입에서 나온 그의 신세와 과거는 이러하였다.
때는 헌안대왕 말년 ―
왕이 임해전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재상과 왕족을 모아 놓고 즐길 적에 그 자리에 응렴(膺廉)이라는 왕족 소년이 있었다.
왕은 소년이 너무도 영특해 보이므로 시험삼아 문답을 하다가,
"네가 여행을 많이 했으니 견문한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던 일을 말 해봐라."
하였다. 그때 응렴은 서슴지 않고,
"세 가지의 아름다운 일을 보았읍니다."
고 하였다.
"무엇무엇이냐?"
"네이, 다름이 아니오라 웃사람으로서 거만치 않은 것과 부자로서 사치하지 않은 것과 권세 있는 사람으로 건방지지 않은 것을 보았읍니다."
이 영특한 말에 왕은 탄복하여 당신의 공주 두 분 가운데 마음에 있는 자 하나를 택하라는 반가운 하명을 하였다.
왕께는 두 따님이 있었다. 맏 따님 영화 공주는 얼굴 생김이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작은 따님 정화 공주는 아름다운 용모의 주인이었다.
왕께서 따님을 마음대로 택하라는 황송한 분부를 받은 응렴은 무론 재색 아름다운 작은 따님을 택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의 낭도 중의 범교사(範敎師)라는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와서,
"공께서는 어느 공주를 택하시렵니까?"
고 물었다.
"그야 무론 재색 좋은 작은 공주를 택할 것이 아닌가."
"네? 작은 공주요?"
"그럼."
"글쎄올시다. 소인 같아서는 맏공주를 택하시면 세 가지의 좋은 일이 있을 듯합니다."
"세 가지란?"
"그것은 이후에 보셔야 알지요."
응렴은 범교사의 지혜와 심려(心慮)를 깊이 믿는 바이 있었는지라 이 범교사의 말을 좇아서 큰 공주를 택하기로 하였다.
왕은 무론 응렴이 재색 아름다운 작은 공주를 택할 줄로 알았다. 그런데 맏공주를 택하므로 매우 기쁘게 여겼다.
그 뒤 왕이 승하한 뒤에 왕께는 세자가 없으므로 맏따님의 부마(駙馬) 되는 응렴이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그때 범교사가 와서 말하기를,
"소신이 일찌기 낭도로 있을 때에 맏공주를 취하시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있다고 여쭌 그 일이 다 실현되었읍니다."
한다.
"세 가지가 무엇무엇인가?"
"첫째로 대행왕께서 재색 좋지 못하신 맏공주를 취하시기 때문에 매우 흡족히 여기셨으니 좋은 일이옵고 둘째로는 맏공주를 택하셨기에 오늘날 이 용상의 주인이 되셨으니 좋은 일이옵고 세째로는 그때부터 마음에 계시던 작은 공주가 이젠 다만 어의(御意)에 달렸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오니까. 세 가지란 이것이올시다."
이리하여 일개 왕족에서 왕의 사랑하는 사위로, 또 다시는 신라의 왕으로 올라가게 된 이 새 임금 ― 그가 즉 경문대왕이란 시호를 받은 임군이었다.
미륵은 이 경문대왕의 아들이었다.
그러면 왕자로서의 이 소년은 어떤 까닭으로 이렇게 방랑을 하며, 그의 한 눈깔이 멀게 된 것은 또한 어떤 까닭인가.
고요한 산골짜기에서 두 소년은 마주 앉아서 하나는 말하고 하나는 음침한 얼굴로 묵묵히 듣고 있다.
얼굴이 아름답지 못한 맏공주를 택한 덕에 왕위에 오르게 된 신왕께는 일찌기 잠룡시(潛龍時)에 서로 사랑하던 한 처녀가 있었다. 설(薛)씨라는 처녀였다.
한낱 부마로 있을 적에는 그 처녀를 사모하는 마음은 그냥 있으나 아내 되는 공주를 꺼리어서 손을 쓰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인제는 당당한 임군이라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는 지위에 있고 보니 그 처녀를 그대로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설씨도 또한 후궁으로 들어와서 인제는 마음 놓고 지내게 되었다.
설씨가 잉태하였다. 만삭이 되어 왕자를 탄생하였다.
왕의 마음은 인제는 두 분 공주를 떠나서 완전히 설씨에게로 돌아와 있던 때라 설씨의 몸에서 난 아기를 여간 사랑하지 않았다.
그때는 영화왕후의 몸에서도 벌써 왕자가 탄생되어 있던 때라 영화왕비는 이 새 왕자의 탄생 때문에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이전에 형제분에서 한 그 지아비(왕)를 섬길 때는 서로 시기도 하고 밉게도 여겼지만 지금 왕의 총애를 다른 사람 설씨에게 빼앗긴 뒤에는 형제로서의 정애가 다시 소생하여 서로 공동전선을 펴고 설씨와 왕에게 대항하기로 되었다. 더우기 왕이 설씨를 총애하는 나머지에 설씨 탄생의 왕자를 세자로 책립치나 않을까 하는 눈치까지 본 뒤에는 이 전선을 더욱 굳게 하고 그때 재상이 영화 왕비와 그렇지 않게 지내던 연줄을 잡아서 재상을 충동하여 설씨를 모함하려 하였다.
설씨의 왕자는 교묘하게도 중오일(重五日―5월 5일)에 탄생하였다.
어떤 날 일관(日官)이 왕께 비밀히 배알하고,
"용덕 왕자(龍德―설씨 탄생의 왕자)는 탄일이 중오일이옵고 또한 안정이 심상치 못한 것을 주의합소서."
하고 상주하였다.
왕은 대척치 않았다. 설씨를 총애하고 그 왕자를 사랑하는 왕으로서는 이맛 말에 넘어갈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함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 이상에는 언제든 걸려들고야 마는 법이다. 첫 계교에 실패하였다고 그 모함을 중지할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정력 좋고 계집 좋아하는 재상 위홍의 필적으로 된 기괴한 편지가 어떤 날 설씨의 방에서 발견되었다. 그와 동시에 일관은 또 다시,
"용덕 왕자가 아룁기 죄송하오나 안정이 위홍과 흡사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고 하였다.
왕은 덜컥 의심을 하였다. 의심을 하고 보면 사람의 눈이란 변화무쌍한 것 ― 어찌 보면 또한 그럴듯한 점도 보였다.
이러한 때에 최후의 거탄이 드디어 던져졌다. 어떤 날 어떤 궁액이 수상히 궁정에서 어릿거리므로 잡아서 몸을 뒤지매 거기서는 수상한 편지가 나왔다.
설씨의 명의로 위홍에게 가는 편지였다. 거기는 어서어서 용덕왕자를 세자로 책립케 하고 이 일이 성사된 뒤에는 왕을 시하고 우리의 자식으로서 왕위에 오르게 하고 우리는 마음놓고 왕의 어버이로서 영화롭게 평안한 날을 보냅시다 하는 뜻의 글이 적히어 있었다.
왕은 앞뒤를 가릴 냉정을 잃었다. 그 편지의 필적을 좀더 자세히 보았더면 다른 조처가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이 편지에 냉정함을 잃은 왕은 즉각으로 무사들을 불러들였다.
왕이 몸소 무사들을 거느리고 설씨가 거처하는 뒷 대궐로 달려갔다. 불문 곡직하고 설씨의 모자를 죽여 버려서 화근을 제하고자 함이었다. 이리하여 대궐은 때아닌 전장을 이루었다.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