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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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세상이다.

목적과 겉과 의사와 사후(事後)가 이렇듯 어그러지는 지금 세상은 말세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세상이다.

여는 살인을 하였다. 한 표랑객을…….

‘그대의 장래에는 암담이 놓여 있을 뿐이외다. 삶이라 하는 것은 그대에게 있어서는 고(苦)라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사외다. 낙(樂)? 희(喜)? 안 (安)? 그대는 그대의 장래에서 이런 것을 몽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여는 단언하노니, 그대의 장래에는 암(暗)과 고(苦)와 신(辛)이 있을 뿐이외다.

이 문간에서 저 문간으로 또 그다음 문간으로, 한 덩이의 밥을 구하기 위하여…… 혹은 한 푼의 동전을 얻기 위하여, 그대의 그 해진 신을 종신토록 끄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겠사외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의 죽음조차 모욕하는 행동이외다.’ 여는 이러한 동정심으로 그 표랑객을 죽였던가.

‘그대의 존재는 세상의 암종이외다. 그대가 뉘 집 문간에 설 때에 그 집 주부는 가계부에 일전 한 닢을 더 적어넣지 않을 수가 없사외다. 그대가 어느 집을 다녀간 뒤에 그 집에서는 그대가 먹은 그릇을 부시기 위하여 소독약의 얼마를 소비하지 않을 수 없사외다. 그대가 잠을 잔 근처에는 무수한 이가 배회합니다. 많은 며느리들은 그대를 위하여 두 벌설거지를 합니다.

그대의 곁은 사람들이 피하는지라 그대 한 사람의 존재는 가뜩이나 좁은 이 지구를 더욱 좁게 합니다. 존재하여서 세상에 아무 이익도 주지 못하는 그 대는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많은 불편을 줍니다. 따라서 그대의‘존재’는‘소멸’만 같지 못하외다.’ 여는 이러한 활세적(活世的) 의미로 그 표랑객을 죽였던가.

집 안은 통 비었다. 행랑아범은 벌이를 나갔다. 어멈은 주부(여의 아내)와 함께 예배당에 갔다. 아이들은 놀러 나갔다. 집 안에는 여 혼자밖에는 아무 도 없었다. 본시 아내는 여와 동반을 하여 이 일요일을 이용하여 산보를 갈 예산이었지만, 여의 감기 기미로 중지된 것이었다.

집을 혼자서 지키기는 무시무시하였다. 더구나 이것을 처음 겪어보는 여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문간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나도 귀가 바싹 하였다. 뜰을 고양이가 달아나도 여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무슨 소리가 난 듯하여 나가서 구석구석을 검분 해본 일까지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 여는 여의 아내의 장부적 일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고소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리고. 얼른 예배가 끝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삐꺽! 문득 대문 소리가 조금 났다. 누워 있던 여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베개에서 들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귀로 모았다. 또 삐꺽! 대문은 조금 또 열렸다.

여는 그것이 아내의 돌아옴이 아님을 알았다. 활발한 발걸음의 주인인 아 내는 이렇듯 기운없이 대문을 열지 않을 것이므로.

그 뒤에는 대문간으로 들어서는 발소리도 작으나마 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무슨 흥얼흥얼하는 사람의 소리가 대문 안에서 났다.

여는 벌컥 일어나서 나가보았다. 그리고 대문 안에서 한 사람, 표량객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적절히 말하자면 사람의 모양을 한 어떤 물건 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기이한 동물에 대하여 여가 경이와 불안의 눈을 던질 때에 그의 입에서는 또 무슨 알아듣기 힘든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서 지갑에서 일전 한 닢을 꺼내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그 선물을 던지려다가 극도로 쇠약하여 몸의 동작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듯한 그의 모양을 보고 좀 그에게 가까이 가서 팔을 길게 해가지고 그의 앞으로 적선품을 내밀었다.

그는 그 돈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받으려도 아니하였다. 또 무엇이라 흥얼흥얼하였다.

“무얼?”

여는 반문하였다.

그는 또 무엇이라 흥얼거렸다.

“무얼?”

여는 재차 반문하였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서 겨우 알아들은 바는 돈보다도 한 덩이의 찬밥을 달라는 것이었다.

여는 그를 다시 보았다. 아직 익숙지 않은 표랑객이었다. 혹은 오늘의 이 길이 그에게 있어서 처녀 구걸인지도 알 수 없었다. 40이 조금 넘었음직한 아직 건장한 사나이지만, 주림과 영양 불량으로 혈색이 몹시 나쁘고 허리가 굽었다. 그는 걸인에게 특유한 애원적 비명을 내지 않았다. 비열한 눈자위를 보이지 않았다.

“나흘을…… 굶었습니다.”

“ 일자리를…… 떼었습니다.”

주림으로 인하여 그 발음은 비록 분명하지 못하나마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끊어서 말하는 그의 호소는 현대에 처한 사람의 공통적 애소로서 그것은 여 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는 내밀었던 일전을 도로 움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부엌에 익숙지 못한 여는 무엇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렁, 찬장 등을 모두 뒤졌다. 그리고 시렁에서 무슨 찌개를 얻어내고 찬장에서 여의 먹다 남은 밥을 발견하였다. 여는 그것을 그대로 내다줄까 하였으나 다시 생각을 돌이켜서 밥그릇에다가 찌개를 절반쯤 부어서 비비기 좋게 해가지고 숟갈을 꽂아다가 그 표랑객에게 내다 주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 쥐고 덜컥 주저앉았다. 그 다음 순간 그는 무서운 속력으로 밥을 입으로 옮겨갔다. 그것을 보면서 여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와서 50전짜리 은전 한 닢 내다가 그의 곁에 던져주었다.

여는 얼른 방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사실에 있어서 여는 전속력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현대인의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여는 그 표랑객에게 호의를 표하면서도 경계하는 마음은 풀지를 못하였다. 여는 몇 푼짜리 되지 않는 숟갈과 그릇을 감시하기 위하여 도로 나와서도 아닌 듯이 그의 위에 경계의 눈을 붓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그로서(10전짜리밖에 되지 않는)그 숟갈을 몰래 허리춤에라도 넣었으면 여는 달려가서 그의 따귀에 여의손을 붙이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표랑객은 정직한 사나이였다. 한참을 먹을 것에만 열중하던 그는 먹기를 끝낸 뒤에 처음으로 아까 여가 던져준 돈에 눈을 부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 서 뜻밖에 50전짜리 은전을 발견하였다. 그는 머밋머밋 그것을 집어가지고 두어 번 여와 돈을 번갈아 본 뒤에,

“나리.”

하고 여를 찾았다.

여는 그의 마음을 알았다. 여는 순간 전의 기괴한 경계심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염려 말고 50전짜리를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는 몇 번을 사례를 하였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는 판이하게 힘있는 걸음으로 돌아갔다.

여는 그를 보내고 도로 방 안으로 들어와서 이불을 쓰고 누웠다. 자선, 구조, 동정, 이런 것에서 느끼는 열락을 맛보면서…….

아내가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는 대로 옷을 갈아입은 뒤에 무엇이 바쁜지 곧 부엌으로 뛰어나갔다.

“먹었는지…….”

여에게는 뜻을 알지 못할 기괴한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나갔던 그는 곧 도로 들어왔다.

“절반이나 먹었군.”

역시 여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혼잣말을 하면서…….

“먹기는 무얼?”

여는 누워서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 아니 쥐가 너무 성했기에 찌개에 아비산(亞砒酸)을 섞어두었더니 절반이나 먹었구려. 언제나 먹었는지 지금쯤은 몰살을 했을 게지…….”

무얼? 여는 힘 있게 눈을 감았다. 여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느 찌개에?”

“시렁의 쇠고기 찌개에…….”

아아, 여는 표랑객에게 아비산을 먹였다. 여는 다리를 들었다가 놓았다.

머리를 들었다가 놓았다. 여의 입에서는 기이한 신음이 나왔다.

“왜 그러세요?”

“음…….”

“열기가 나세요?”

“아—니.”

“그럼?”

“냉수를 좀 주우.”

찌개에는 아비산을 두그램을 두었다 한다. 그러면 표랑객은 적어도 한 그램은 먹었을 것이다. 탱탱 비었던 위 속에서 아비산은 그의 위력을 다할 테지. 지금쯤은 그는 벌써 송장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의 몸이란 이상한 것이다. 비록 감기 기미는 있다 하나 열기도 보이지 않던 몸이 갑자기 열기가 나기 시작하였다. 순간순간 열기는 더하였다. 조금 뒤에 여는 중병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런 가운데서 여는 끊임없이 아까의 그 표랑객의 여위고 혈색이 나쁘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리고 죽으려면 여의 모르는 곳에 가서 여의 모르는 동안에 죽어다오. 죽은 뒤에도 그 소문 이 여의 귀에 오지 않게 해다오. 연하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득 여는 무엇이 재재하니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다. 열기에 들뜬 여는 어느덧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펄떡 정신이 들면서 들으니 그것은 놀러 나갔던 아이들이 온 모양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열세 살 난 큰아이가 지껄이며 들어왔다.

“쉬, 조용해라. 아버님께서 몸이 고달파하신다.”

아내는 지껄이는 아이를 막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네가 가지고 온 진귀한 보고를 그냥 둘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은 일곱 . 살 난 계집아이가 속살거림(이라하나 숨찬 그들의 목소리는 속살거림이 아니었다)으로 또 찾았다.

“어머니! 어머니!”

“왜 그래?”

“저기서 사람이 죽었어.”

“어떤 사람이?”

“거지가.”

무얼? 여는 벌떡 일어났다.

“어디? 어디?”

“아버지, 사람이…… 거지가…….”

“어디야, 어디?”

“조 — 기. 요 앞에…….”

여는 일어서면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놀라서 어디를 가느냐고 따라오는 아내를 돌아보지도 않고.

여는 발견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의 떼가 멀리 둘러선 것을.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순사의 모자가 걸핏걸핏 보이는 것을. 몇 사람의 위생부가 소독약 을 펌프로 뿌리며 돌아가는 것을.

달려가서 보니 사람의 담장의 복판 가운데에는 아까의 표랑객이 거적 아래 고요히 누워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소독약에 젖은 구토물이 널려 있었다.

“주소 성명 미상.”

“소지품은 50전 은화 한 닢. 일전 동화 네 닢.”

“의사 호열자.”

“추정 연령 42세.”

여의 귀에는 단편적으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좀 뒤에 시체는 가매장에 부치러 가져갔다. 그 뒤에는 구경꾼들도 헤어졌다. 그러나 여는 그냥 멍멍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누가 여의 어깨를 툭 쳤다. 돌아다보니 순사였다.

“왜 이렇게 서 계시우?”

“아니, 너무도 참담한 운명이기에.”

“당신은 그 사람을 아시오?”

“네.”

“누구요? 어디 사는 사람이오?”

“그건 모릅니다. 아까 우리 집에 동냥을 왔기에 50전짜리 은전을 한 닢 줘 보냈소. 소지품 가운데 50전 은전이 그것이오.”

여는 이 자리에서도 그에게 밥을 주었다는 말을 못하였다. 순사는 여를 쳐다보았다. 그런 뒤에 두어 번 머리를 저었다.

“적선하신 50전도 국고로 들어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을까 보우다. 웬 친척이 있겠소? 있기로서니 장비(葬費)를 부담할 각오로 나설 사람이 웬걸 있겠소? 항용 있는 일이지요.”

하고는 저 갈 길로 가버렸다.

여가의 그의 주림을 동정하여 준 밥은 그의 생명을 빼앗았다. 여가 그의 곤궁을 동정하여 준 돈은 국고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 여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동정조차 엄밀한 음미(吟味)하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인은 진실로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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