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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별/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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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을 받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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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事) 부란트리가 서재에서 침실로 들어간 것은 바로 밤 열두 시였다. 그는 양복을 벗고 비단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불을 끄고 고요한 오월의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그리고는 향기로운 엽초를 피우면서 오늘 하루의 일을 회상하여 보는 것이다.

부란트리는 금년 40세, 고학을 하여 법률학교를 졸업하자 낡은 빌딩에 방 하나를 빌려 가지고 변호사 간판을 걸었다. 그리고 그의 굳세인 의지력으로서 최초의 의뢰자를 얻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 번 길이 열리자 그 다음에 오는 것은 이 부란트리와 같은 인물에게 있어서는 비교적 수월하였다. 그는 소송에 승리를 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는 무척 노력하였다. 그의 명성은 높아갔다. 그는 이 도시의 유력자의 딸과 결혼을 하고 이 도시의 고문 변호사가 되었다가 다시금 검사로 추천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부란트리 검사에게는 좀 더 커다란 욕망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소란하게 한 검은 별이라는 악당에게 최대의 형벌을 주어 세상의 찬사를 받고자 하는 그것이었다. 그날 오후, 그는 재판정에서 여러 배심원에 대하여 검은 별을 처형하는 데 관하여 당당한 웅변을 토하였다. 도하의 각 신문은 그의 웅변 결과로서 최대의 괴적 검은 별은 적어도 20년 내지 4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검은 별을 처단하기 위하여 부란트리 검사는 실로 무서운 투쟁을 하여 왔던 것이다. 생각하면 검은 별의 그 무시무시한 활약, 경찰 당국의 무능, 로오쟈 바베크와 막스의 활동, 그리고 마침내 검은 별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란트리 검사의 활약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매일처럼 공소 준비(公訴準備)에 바빠 돌아갔다. 세상에서는 악당 검은 별을 극형에 처하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검은 별이 가진 단체의 세력은 여전히 부란트리 검사에게 압력을 가하여 왔다. 생명에 대한 협박을 비롯하여 모든 공격이 부란트리 검사에게로 쏠려왔다. 그러나 부란트리 검사는 그 온갖 위험을 물리치고 검은 별을 기소하여 공판에 회부하였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검은 별의 반항은 멎었다. 검은 별은 유명 형사 전문 변호사 수 명에게 변론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24시간 후에는 검은 별은 극형의 선고를 받을 것이다.”

부란트리 검사는 그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검은 별은 장구한 시일을 캄캄한 감옥에서 보내야만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부란트리 검사는 세상의 칭찬을 무수히 받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여 부란트리는 담배 불을 끄고 침대로 걸어갔다. 그의 아내는 두 어린 것을 데리고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없었다. 하인들은 벌써 잠자리에 들어갔다.

“인제부터 다섯 시간만 자고……”

그리고는 아침을 먹고 재판소로 나가서 검은 별에게 유죄의 판결을 선언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곧 잠이 들었다. 멀리 어디선가 한 시를 치는 시계 소리가 들리어 왔다. 그러나 그때였다. 캄캄한 빨코니에 시꺼먼 그림자가 하나 불쑥 나타났다. 그것이 다시금 두 개가 되고, 세 개로 변하였다. 그중 하나는 벽을 끼고 바깥문 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또 하나는 기둥을 기어 올라가자 이층 들창가에 다달았다. 셋째 번의 검은 그림자는 집 옆을 삥 둘러 아까까지 부란트리가 앉아 있던 들창가로 다가갔다.

그러는데 다른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빨코니에 나타났다. 기둥을 기어 올라간 그림자는 들창을 넘어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복도를 꿰어 넓은 층계를 내려와 부란트리의 침실까지 다달았다. 거기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문을 방싯 열고 침대로 가만가만 걸어갔다. 뒤이어 까스 피스톨이 깊이 잠든 검사의 코 밑에서 발사되었다.

부란트리 검사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빨간 불똥이 눈앞에서 뛰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앞에는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 버려져 있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손으로 눈을 부벼 보려 하였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두 손목은 등 뒤에서 동여 매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몸뚱이는 무거운 걸상에 비끄러매져 있었다. 그 걸상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들창은 모두 잠겨져 있었고 커어튼이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방 안의 전등은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오오! 그대들은……?”

방 안에는 여섯 사람의 사나이가 우뚝우뚝 서 있었다. 모두가 다 검은 까운을 걸치고 머리와 눈에는 검은 두건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반원을 그리면서 부란트리 검사 앞에 돌부처처럼 서 있었다. 마스크 사이로 그들의 눈초리가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부란트리 검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커다란 공포가 전신을 다름박질하는 것이다. 식은땀이 솟았다. 검사는 결코 비겁한 인간은 아니었으나 그 순간적인 공포를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이건 틀림없는 검은 별의 부하로구나!”

검사는 조금도 주저 없이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최근 검사에 대하여 적대 행동을 중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 지나치게 안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 탈이었다. 경비 경관을 물리친 것이 크나큰 실책이었다.

“도대체 나를 어떠할 셈이냐?”

검사는 될 수 있는 대로 여유를 가진 태도로 물었다.

그때 그중 하나가 벽으로 걸어가자 검은 종이로 만든 칠판을 펼쳐 벽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는 빨간 분필로 다음과 같이 썼다.

“잠자코 있어라. 인제 훌륭하신 분이 한 분 오신다.”

검사는 실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동여맨 손목에 힘을 주어 보았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검사는 눈앞에 둘러선 그들을 무섭게 흘겨 주었다. 그리고 이 시련을 침묵으로써 감당해 보고자 하였으나 점점 신경이 약해져 무엇이든지 떠들어대지 않고는 견뎌 배길 수가 없었다.

“나를 대체 어떻게 할 셈이냐? 왜 잠자코만 있는가?— 입을 열기가 싫으면 그 칠판에다 무엇이든지 써라. 그렇지 않으면 소리를 쳐서 사람을 부를 테다.”

그랬더니 그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이 칠판에다 썼다.

“소리를 치면 자갈을 물릴 테다. 너의 하인은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네가 아무리 떠들어도 한길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이 집 안팎은 우리들의 동료가 경비를 하고 있다. 인제 한 이삼 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검은 까운을 입은 작자가 하나 들어왔다. 그는 칠판 앞에 선 사나이에게로 걸어와서 무엇인가 속삭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동은 또다시 복도로 통하는 문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었다. 문이 또 열렸다. 역시 마스크와 까운의 사나이 하나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부란트리 검사는 또 한 번 식은땀을 등골에 흘렸다. 복장은 다른 작자들과 똑같았으나 이 새로 들어온 사나이의 이마에는 검은 별이 하나 눈부시게 번쩍이고 있었다.

그 때 검사가 돌연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생각컨대 새로운 수령을 추대한 모양이지? 진짜 검은 별이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그 후임을 다시 뽑아서…… 하하하하…… 그리고 보니 너희들의 단체는 또다시 나쁜 일을 계속할 셈이로구나. 그러나 우리는 너희들의 새로 뽑은 수령을 진짜 검은 별이 있는 감옥으로 넣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자아, 마음대로들 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너희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이마에 번쩍거리는 검은 별을 붙인 사나이는 검사 앞으로 한 발 선듯 나서면서 얼굴에 썼던 마스크를 획 벗겼다.

“앗! 너는 너는?”

검사는 놀람과 함께 부르짖었다.

“그렇다.”

상대편의 대답은 태연자약,

“새로 뽑힌 검은 별이 아니다. 진짜 검은 별이다. 다만 나는 나의 동료들이 신용을 고쳐 가지고 새로운 우리들의 본부를 준비할 때까지 비교적 기분이 나쁘지 않은 미결감(未決監)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는 순간에 나는 이처럼 감방에서 나왔을 따름이다.— 정확히 말하면 약 한 시간 전에 나는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내가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일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 될 만큼 사소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 검은 별을 저 더러운 감옥으로 잡아넣겠다는 생각은 아예 해서는 안 돼. 될 법한 일이 아닌 것이요, 검사 선생!”

그는 다시금 마스크를 쓰고 부하를 향하였다.

“입에 자갈을 물려 가지고 데려 오라! 시간을 약간 잡아먹었다. 내가 명령한 대로 즉시 실행하라.”

검은 별과 바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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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가 왜 자꾸만 짖을까?”

막스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재밤중 새로 두 시였다. 그는 옆방으로 통하는 문을 향하여 걸어갔다.

지금으로부터 석 달 전 어떤 날, 개장수 영감이 바베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바베크 선생, 선생님은 검은 별을 체포하기 위하여 무척 고생을 하시지만 이 탐정개를 한 번 사용해 보시오. 아주 영리한 개입니다.”

그러나 바베크는 웃으면서,

“그것은 이미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개 같은 걸 사용해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막스는 그 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바베크에게 졸라 개를 사게 하였던 것이다. 개의 이름은 캬챔이라고 불렀다.

막스는 지금 그 캬챔이 짖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개 짖는 소리가 어느 때에 비하여 약간 수상했기 때문이다.

“캬챔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모른다.”

막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뜰로 내려서서 개집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리고 개집 문을 열고 불을 켜 보았다.

“응?”

막스는 거기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캬챔의 목에는 굵다란 밧줄이 동여 매져 있었고 그것을 풀어 달라는 것처럼 무섭게 짖으면서 발밑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오냐, 오냐, 인제 풀어 주마.”

막스는 손을 뻗쳐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였다. 그러나 막스의 손이 채 개의 머리에 가 닿기 전에 캬챔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오오, 캬챔!”

그러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의 코끝에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지 않는가.

“앗! 검은 별—”

막스는 외치다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는 냉정해야만 하였다. 그의 두 눈은 날카로워지고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검은 별이 다시금 바베크 선생을 노리고 있구나!”

아니, 검은 별은 이 아파아트에 숨어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지금쯤은 바베크 선생이 놈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막스는 불을 끄고 자기 침실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금 좁다란 복도로 나가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지고 바베크의 방문 앞까지 왔다.

문은 닫혀 있었다. 막스는 손잡이를 가만가만 돌려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였다. 방안은 캄캄하다. 달빛 한 점 비쳐 들지 않는 캄캄한 방이다. 이 사실은 한층 더 막스를 불안하게 하였다. 바베크는 항상 들창과 커어튼을 열어젖히고 자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베크는 침대 위에서 살해를 당한 것이나 아닐까?…… 검은 별을 체포한 바베크를 그의 부하들이 살해한 것이 아닐까?……

막스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좀처럼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는 불을 켜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자기 주인의 참혹한 시체를 보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는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반대편 쪽 열쇠 구멍으로 실오리 같은 한 줄기 가느다란 불빛이 새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서재에 불이 켜 있다.”

그는 다음 방인 바베크의 서재를 향하여 가만가만 걸어갔다. 그 순간, 누군가가 돌연 어둠 속에서 막스의 어깨를 꽉 부여잡았다. 뒤이어 고약한 냄새가 막스의 코를 찔렀다. 까스•피스톨이다. 막스는 마침내 목구멍을 쿨럭거리면서 그 자리에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어둠 속에 잠복하고 있던 두 사람의 사나이는 기절한 막스를 메고 서재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바베크가 역시 걸상에 걸터앉은 채 포박을 당해 있었다. 방안에는 오륙 명의 검은 까운의 사나이들이 삥 둘러서 있었다. 긴 테이블 한쪽에는 수령, 검은 별이 태연히 앉아 있었다.

“막스를 걸상에 앉히고 동여매 놓아라.”

검은 별은 그렇게 명령을 한 후에,

“그러면 바베크 군, 이리하여 우리들은 오늘 밤 또다시 만나 보게 되었다. 지나간 날 우리들은 서로 지혜 내기를 하여 붙들어도 보고 붙들리어도 보고 하면서 갖은 술책을 써가면서 서로 대항을 하였다. 그리고 군은 일시 나를 붙들어 넣었다. 그러나 어떠한 감옥도 이 검은 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지금 군이 눈앞에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다시 감옥 밖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들의 단체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그 단체를 통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나대로 너를 체포하면 된다. 네가 전법을 달리하여 나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지 않는 한(限)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폭력을 배척한다. 그러나 때로는 어느 정도의 폭력을 하는 수 없이 쓰지만 살인을 할 만큼 나는 타락하지는 않았다. 나는 너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어서 복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것보다도 훨씬 더 통쾌한 방법으로 너를 괴롭힐 작정이다. 다시 말하면 너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나의 새로운 본부는 이미 준비가 되었다. 단체는 재조직을 보았다. 나는 감옥에 있을 때도 명령을 발하고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 도시를 뒤집어 놓을만한 굉장한 계획은 이미 충분히 익었다. 너는 나의 얼굴을 알고 있지만 새로 들어온 단원의 얼굴은 하나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만큼 그들은 언제든지 네 옆에서 너의 행동을 감시하여 나에게 보고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단원 중에는 우리가 여왕이라고 부르는 어여쁜 여성도 있다.”

거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금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하였다.

“그 여왕은 젊은 미인이다. 그리고 대단히 영리한 여자다. 세상 물계를 알고 더구나 외교에 능하다. 그 여성은 나의 계획에는 없어서는 아니 될 인간이다. 너는 후일 그 여왕과도 부딪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좀처럼 경찰의 힘을 빌릴 수도 없는 것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경찰에서도 물론 그 여자의 얼굴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잔말이 많은데, 도대체 나를 어쩔 셈인가?”

“이야기를 할까? 다행히 막스 군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니까.”

검은 별은 막스를 향하여,

“막스 군, 어때? 약간은 놀랐는가? 나는 지금까지 너라는 인간을 다소 정중히 취급해 왔지만 인제부터는 너 같은 인간은 문제도 삼지를 않을 셈이야. 그래서 오늘 밤도 바베크 군은 우리가 데리고 가지만 너는 이마빼기에 검은 별이나 하나 붙여서 여기에 남겨둘 작정이다. 나는 바베크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놀 셈이다. 그래서 얼굴을 들고는 도저히 거리로 나다니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셈이다.”

“만일 선생님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기만 해봐라. 그대로 두지는 않을 테니까.”

막스는 화를 냈다.

“이거 봐. 막스! 나는 바베크에게 육체적 박해를 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바베크를 비롯하여 나의 일을 방해하려는 자에게 망신을 줄 따름이다. 그러면 제군!”

검은 별은 부하 일동을 둘러보며,

“막스의 포승을 잘 검사하라. 이따 나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서 경찰관으로 하여금 포승을 풀어 주도록 할 테니 이마빼기에 검은 별이나 한 개 선물로 붙여 줘라. 그리고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입에다 재갈을 물려 놓아라.”

사실 막스는 소리를 쳐서 사람들을 부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베크가 왜 아직까지도 잠자코 있는가를 처음에는 수상히 생각하였으나 그러나 생각하면 알 법한 노릇이기도 하였다. 바베크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체면 문제다. 적어도 검은 별과 바베크의 승부가 아닌가.

막스는 다음 순간, 바베크가 까스•피스톨로 기절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검은 별의 부하 한 사람이 바베크의 포승을 끄르고 침실로부터 양복을 가져다가 바베크에게 입혔다. 그리고는 바베크를 메고 복도로 나갔다. 다른 일동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 막스, 잘 있게.”

검은 별은 빙그레 웃으면서 문을 잠그고 나가 버렸다.

막스는 포승을 끊으려고 손목을 비틀면서 지금까지 검은 별이 서 있던 방바닥을 열심히 바라다보고 있었다. 막스는 사랑하는 개 캬챔을 불러다가 검은 별의 발자국 냄새를 맡게 하여 검은 별의 행적을 더듬을 생각을 골돌히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여튼, 미결 감옥에 들어가 있던 검은 별은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또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인제 그 경로를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검은 별의 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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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치고는 턱없이 무더운 날이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이런 때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돌발하여 경관들이 골치를 앓는 법이다.

이 도시 변방에 있는 유원지는 그날 밤 대단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오후 일곱 시경쯤 해서 어떤 40객이 청년 하나를 향하여 권총을 발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유흥객들은 놀랐다. 여자들은 비명을 내고 남자들은 뻰취 밑이나 나무 뒤에 숨었다. 청년은 무척 당황하게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구원을 청했다. 40객은 흥분하여 있었기 때문에 총알은 맞지 않고 나무 가지를 쏘기도 하고 쫓기는 청년의 발밑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자기 딸을 유혹한 청년을 아버지 되는 40객이 지금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곧 경찰관들이 달려와서 두 사람을 다 감옥으로 데리고 갔다. 청년은 자기 이름을 대고 고소한다고 떠들었다. 40객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이름도 대지 않고 보석(保釋)의 수속을 할 생각도 않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별이 갇히어 있는 미결 감방 근처에 수감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한 시간 후, 유원지에서는 또 칼부림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 다른 또 두 사람을 경찰관이 붙들어다가 미결 감방에 쓸어 넣었다. 그것도 역시 검은 별의 감방 근처였다.

권총을 발사한 40객이나 또 칼부림을 한 사나이들도 서로가 다 같은 검은 별의 동지이면서도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 별은 자기 방에서 신문에 게재된 자기 자신의 기사를 읽고 있었다.

아홉 시가 되자, 권총을 발사한 40 객은 어지간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간수에게 전화를 좀 걸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라고 했더니, 그는 교외에 사는 친구 한 사람을 전화로 불러내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보석에 필요한 돈을 좀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있는 그의 친구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지금 곧은 돈이 안 되니까, 열한 시 반이나 열두 시 반에 보석금을 갖고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던 간수는 자기가 직접 전화통에 서서, 〈그렇게 밤늦은 시간에 피고를 방문하는 것은 감옥 규칙에 어그러지는 일이지만, 특별 취급을 하겠다. 더구나 권총을 발사한 이 성실해 보이는 40객을 동정한다〉고 대답하였다. 전화가 끝나자 40객은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검은 별의 감방 앞을 지나면서 수령에게 눈을 한 번 껌벅해 보였다.

그러는데 저편에서 칼부림을 하던 두 사나이가 또다시 서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소리로 떠들면서 서로 욕지거리를 하였다. 사람들의 주의가 모두 그리로 쏠리기 시작했다.

감방 안의 검은 별은 잘 준비를 할려는 것처럼 저고리 단추를 끄르고 있었다. 40객도 자기 감방에서 옷을 벗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걸터앉으면서 구두 뒷바닥을 떼고 거기서 조그만 아교 덩어리 하나를 끄냈다. 그리고는 빗으로 머리를 한가운데서 곱게 쪼개 빗었다.

한편 검은 별은 간수가 보이지 않는 틈을 타서 손에 침칠을 해가지고 벽돌 가루를 손과 얼굴에 발랐다. 그는 벌써부터 미결감에서 법정으로 통하는 굴속을 지나갈 때마다 벽돌 가루를 조금씩 모아 두었던 것이다. 희미한 불빛 밑에서 보는 그의 손과 얼굴은 어지간히 검으티티하게 보였다.

옆방에 있는 40객이 두 번 기침을 하였다. 검은 별도 기침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전체 감방의 문을 닫는 30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30분 동안은 간수의 순찰이 없는 것이다. 검은 별은 될 수 있는 한 감방 맨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옆방 사나이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가서 복도를 내다보았다.

복도 맨 끝 방에서는 여전히 칼부림을 하던 두 사나이의 싸움 소리가 소란하였다. 옆방 40객은 그때 몰래 자기 감방을 나와 검은 별의 감방 앞으로 뛰어갔다. 그는 사방을 한 번 휘이 둘러 본 후에 알맞은 열쇠를 끄내 검은 별의 감방 문을 열고 재빠르게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거기서 검은 별과 사나이는 예정대로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검은 별에게는 수염이 없었지만 사나이에게는 수염이 있었다. 사나이는 곧 자기 수염을 떼서 아까 그 아교와 함께 검은 별에게 내주었다. 검은 별은 곧 자기 감방을 나와 옆방인 사나이의 감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나이는 그냥 그대로 검은 별의 침대 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나이는 다시금 구두 뒷바닥 속에서 분가루가 들어 있는 조그만 금속성 상자를 끄냈다. 그의 혈색 좋은 얼굴빛은 이윽고 분을 발라 창백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 머리를 검은 별의 그것처럼 갈랐다.

한편 검은 별도 사나이의 머리처럼 갈랐다. 이리하여 검은 별이 사나이의 중절모자를 푹 눌러 썼을 때는 그는 어디로 보든지 새로 들어온 죄수 같았다.

검은 별 대신으로 들어간 40객은 이윽고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갔다. 이불을 덮었기 때문에 설사 순찰 간수가 들여다 보더라도 그의 머리밖에는 보지 못할 것이었다. 한편 진짜 검은 별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얼굴을 두 팔 속에 파묻고 있었다.

마침 시간이 와서 감방 전부는 엄중히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검은 별을 비롯한 중대 범죄자의 감방은 하루 종일 잠을쇠를 잠거 두고 간수는 그것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 보면서 돌아다녔다. 그래, 지금 간수가 검은 별의 감방을 들여다보았더니 침대에 누워서 자는 것이 보였다. 검은 별은 공판이 시작된 이후 언제든지 일찌감치 자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간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간수는 다음 옆방에서 새로 들어온 죄수가 머리를 숙이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네 친구는 인제 한 시간만 있으면 보석금을 가지고 온다고 아까 전화가 왔었다. 그때까지는 규칙대로 문을 잠거야만 하기 때문에 ……”

그 말에 사나이는 그저 머리를 끄덕거려 보였을 따름이다.

불은 약 절반이나 꺼져서 잠이 들어 있는 미결수들의 무거운 숨소리밖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밤 열두 시 30분경에 풍채가 그리 추하지 않은 사나이 하나가 감옥으로 찾아왔다. 그는 보석금을 바치고 이처럼 늦은 시간에 친구를 석방해 주는 동정적인 처사를 간수에게 깊이 감사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 친구가 권총을 휘둘은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었으나 사정을 들어보니 동정할 만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거기서 간수장은 사나이를 석방하기 위하여 복도로 걸어갔다.

검은 별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보석금을 내어준 친구의 인사도 변변히 받지 않고 간수장이 문을 여는 동안 돌아서 있었다. 이윽고, 검은 별은 간수장을 따라 복도로 나갔다.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쓸어 넣고 머리를 숙이고 간수장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 순간, 복도 맨 끝 방에서 소란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칼부림을 하던 두 사나이가 감방 문을 흔들면서 소리를 높여 떠들고 꾸짖고 하였다.

“떠들지들 마!”

간수장은 고함을 쳤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다른 간수들도 달려왔다. 칼부림을 한 두 사나이는 간수장의 제지도 들은 척 만 척이다. 간수장은 하는 수 없이 복도 저편으로 달려가 감옥 안을 소란스럽게 하는 불량패들을 진압시킬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이 사나이는 보석이 되었으니까—”

간수장은 검은 별을 가리키며 다른 간수 한 사람에게 명령을 하였다.

“군이 데리고 나가라. 나는 저 불량패들을 처리하고 올 테니까—”

이리하여 간수장은 복도 저편으로 가 버리고 검은 별과 그의 친구라고 하는 사나이는 낯선 간수 한 사람의 뒤를 따라 사무소까지 왔다.

간수는 한시바삐 소란한 현관으로 달려갈 생각으로 검은 별과 그의 친구를 쉽사리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이리하여 검은 별의 탈옥은 무사히 성공하였다. 감방에서는 가짜 검은 별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또다시 구두 뒷바닥 구멍 속에서 자기 자신의 정신을 잃게 하는 마취약을 끄내 먹었다. 그는 이튿날 아침,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버틸 셈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검은 별이 이상한 방법으로 그에게 마취제를 먹이고 옷을 바꾸어 입은 다음에 수염을 붙이고 교묘히 탈옥해 버린 줄로 알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간수장과 간수들은 서로 협력하여, 싸우고 있는 두 사나이를 진정시키고 하나를 다른 감방으로 옮겨 버렸다. 그리고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신문을 읽고 규정대로 시간이 되면 감옥 안을 순찰하였다.

그러는데 밤 세 시 경에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간수장은 수화기를 들고,

“여보시요. 어디십니까?”

하고 물었다.

“간수장! 내 말을 주의해서 듣게. 나는 검은 별이다.”

검은 별의 유쾌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뭐, 검은 별?—”

“그처럼 놀랄 건 없구…… 전화를 끊어선 안 돼. 장난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깍쟁이 같은 너희들의 감옥에서 열두 시 경에 출옥하였다. 나는 어리석은 사나이에게 마취제를 먹였다. 그리고는 옷을 바꾸어 입고 수염을 붙인 후에 당당히 출옥을 한 것이다.”

“응?……”

“나는 너희들에게 오늘 밤부터 나의 복수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벌써 로오챠 바베크와 브란트리 검사를 손에 넣었다. 만일 너희들이 바베크의 아파아트에 가본달 것 같으면 막스가 재갈을 깨물며 걸상에 비끄러매져 있는 광경을 발견할 것이다. 약간 괴로울 것 같으니 어서 가서 포승을 풀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장난을 하면 그대로 둘 수 ……”

간수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난이 아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거든 한시바삐 검은 별의 감방을 조사해 보아라.”

그 말을 최후로 전화는 끊기었다. 간수장은 푸푸 하면서 복도로 걸어 나갔다. 확실히 누구의 장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을 위하여 조사를 해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로부터 오분 후…… 감옥 안은 또다시 소란해졌다. 상관의 거치른 명령이 복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검찰청과 경찰에 전화가 날아갔다.

“검은 별의 탈옥!”

그 한 마디는 다시금 이 도시 전체를 뒤집어 놓고 시민들을 놀라게 하였다.

경관을 가득 실은 자동차가 바베크의 아파아트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아파아트 사무소에는 사무원이 기절해 있었다. 그 뿐인가, 사무원의 이마에는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었다. 야간 근무를 하던 문지기도 마찬가지의 봉변이었다.

절반은 미쳐나간 경찰부장은 오, 륙 명의 그의 부하를 거느리고 바베크의 서재로 뛰어 들어갔다. 막스가 재갈을 물고 걸상과 함께 손발을 비끄러매여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경관들은 막스의 포승을 풀어 주고 화살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막스의 마음은 그 어떤 한 점에 열중되어 있었다.

“거기를 밟으면 안 된다. 검은 별은 30분 전까지도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냄새를 굉장히 잘 맡는 사냥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곧 캬챔을 데리고 왔다.

“캬챔, 검은 별의 냄새를 잘 맡고 그 놈을 꼭 찾아 내야만 한다.”

경찰부장의 질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이 막스는 부르짖었다.

캬챔은 막스가 시키는 대로 검은 별이 서 있던 장소에다 코를 대고 기쁜 듯이 멍멍 짖었다. 그리고는 귀를 뾰족 세우고, 머리털을 뒤로 젖혀 세웠다.

“자아, 그러면 가자!”

막스가 부르짖었다.

캬챔은 다시금 짖었다. 그리고는 코를 방바닥에 대고 하나하나씩 맡아 가면서 복도로 나가 넓은 층계로 내려갔다.

막스는 가죽끈을 쥐고 긴장한 마음으로 개의 뒤를 따라갔다.

유괴 당한 배심원(陪審員)

[편집]

예전과 같은 정연한 방법으로 검은 별은 면밀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단체는 바베크가 검은 별을 체포할 때 공교롭게 법망을 벗어난 한 사람의 단원이 새로이 조직한 것이다. 검은 별은 감옥 안에 앉아 있으면서 매일처럼 단원의 보고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별의 탈옥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날 밤의 검사 유괴 사건도 미리부터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일이었다. 검은 별의 목적은 단지 탈옥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시금 이 도시 전체를 위협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검사 브란트리를 유괴하여 전도시를 공포 속에 몰아넣을 작정인 것이다. 바베크를 유괴한 것도 똑같은 목적에서였다. 그는 바베크와 같은 아파아트에 묵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인사 불성상태로 만들어 그들의 이마에다 검은 별을 하나씩 붙혀 놓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시민들은 다시금 검은 별의 이름만 듣고도 전률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검은 별은 바베크와 브란트리 검사의 유괴라든지, 사람들의 이마에 검은 별을 붙여 주는 이상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의 복수를 하룻밤에 완성하고자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의 단원은 이리하여 남자나 여자나 검은 별의 명령 아래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단원 중의 두목은 최근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프린세스(여왕)였다. 저번 날 검은 별이 바베크에게 한 이야기는 결코 과장한 소리가 아니었다. 프린세스는 금년 스물 네 살 되는 절세의 미인으로서 화려한 의복과 값진 보석으로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떠한 상류계급의 사회에 내세워도 결코 손색이 없는 기품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프린세스는 이 도시에 온 이래, 쭈욱 칸티넨탈•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대 실업가의 미망인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였다. 이 호텔은 검은 별의 공판이 열린 재판소 바로 옆이어서 이 사건의 배심원(陪審員)은 전부가 그 호텔에서 숙박하였다.

배심원들은 이 칸티넨탈•호텔에서 만찬회를 한 맨 첫날 밤부터 벌써 미모의 여인 프린세스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프린세스의 미모는 남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 후부터 프린세스는 배심원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하곤 하였다. 그리고 때때로는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다. 법정에서 매일처럼 검사 변호사들의 까다로운 법리론(法理論)을 듣고 싫증이 난 배심원들은 프린세스의 어여쁜 미모를 보는 것을 무척 즐겨하였다.

검은 별의 배심원들은 맨 윗층에 묵고 있었다. 그들은 한 방에 네 사람씩 들어 있었다. 방과 방 사이에는 문이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 잠겨져 있었다. 맨 가운데 방에는 비상용 층층대로 나가는 출입구가 있었다. 거기에는 문지기가 두 사람 서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문지기는 배심원들이 모두 잠든 후에는 복도에서 담배도 피우고 책도 읽고 트럼프도 하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불침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프린세스의 자태를 보았다. 프린세스의 방은 같은 층의 맨 끝에 있었기 때문이다. 프린세스는 때때로 극장 같은 데서 돌아올 무렵에 이 문지기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였다. 검은 별 때문에 밤잠도 못자는 그들의 신세에 동정을 하곤 하였다.

이리하여 검은 별이 탈옥을 하는 날 밤, 프린세스는 재밤 한 시 경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빨리 자야겠지만, 잠간 옥상으로 올라가서 거리의 등불을 바라보면서 신선한 공기를 좀 마셔야겠어요.”

하고 문지기 한 사람에게 말을 하였다.

“밤이 좀 늦지 않습니까? 지금은 아무도 없을 텐데요.”

다른 하나가 말을 하였다.

“괜찮아요. 아무도 없음 어때요? 난 사람이 없는 데가 좋은 걸요.”

프린세스는 그러면서 방긋 한 번 웃어 보이면서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

문지기들은 이 어여쁜 남아메리카의 부인이 언제나 취침 전에 옥상에 한 번씩 올라가는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 칸티넨탈•호텔 옥상에는 커다란 옥상 정원(屋上庭園)이 있어서 손님들이 거기서 거리를 내려다보도록 설비를 해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프린세스가 자기 방으로 한 번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았다. 프린세스는 모자를 벗고 엷은 목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하녀가 문밖까지 전송을 하였다.

그러나 약 오 분 쯤 지났을 무렵 프린세스는 당황한 걸음으로 층층대를 뛰어 내려왔다. 분노에 찬 눈을 하고 가슴에 갖다 대인 두 손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두 사람의 문지기는 놀라 일어섰다.

“빨리 여러분!”

프린세스는 숨가쁜 목소리로,

“당신네들은…… 분명히 신사인 줄 알지만요…… 옥상에…… 옥상에 누군지 사나이가 한 사람 있어요! 실례 막심한 녀석같은 이! 내 팔을 붙들고 잡아당기지 않겠어요?”

“나쁜 자식이!”

문지기 하나가 고함을 쳤다.

그들은 검은 별 사건의 배심원들 생각을 깜짝 잊어버리고 곧장 층층대로 뛰어 올라갔다. 여자는 그들의 뒤를 따라 올라가면서 자기를 모욕한 사나이에 대하여 욕을 했다. 문지기 둘이는 이처럼 예쁘고 상냥한 부인을 모욕한 녀석을 두들겨 주려고 무서운 기세로 뛰어 올라갔다.

프린세스와 문지기는 함께 뛰어 다니면서 어두운 옥상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수상한 사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프린세스는 자기 방으로 뛰쳐 내려와 호텔 사무소에다 전화를 걸고 항의를 하였다. 문지기들도 하는 수 없이 다시 자기 자리로 내려왔다. 그 때 그들은 야간 근무를 하는 호텔 사무원이 프린세스의 방으로 들어가는 자태를 멀리서 보았다.

문지기들은 자기 자리를 단지 십분 밖에는 더 떠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것으로서 충분하였다. 그들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자 프린세스의 방문이 다시금 열리면서 하녀의 얼굴이 복도로 나타났다. 거기서 하녀는 사방을 휘이 돌아본 후에 몸을 비키어 자기 등 뒤에 서 있는 사나이에게 길을 내주었다.

하녀의 등 뒤에는 아홉 사람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방에서 복도로 주루루 뛰어 나왔다. 그들은 아까 낮에 각각 바로 이 호텔로 와서 감쪽같이 프린세스의 방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활동할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 세 사람은 검은 별 재판의 배심원들이 자고 있는 방 앞에서 멎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소리 나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자 다시 문을 가만히 닫았다.

뒤 이어 배심원들이 묵고 있는 세 방에서 각각 까스 피스톨 소리가 났다. 그 중 한 방에서 상당히 저항이 있었으나 소리를 내기 전에 까스•피스톨이 발사되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의 문지기가 옥상에서 내려 왔을 때는 이미 배심원들은 전부가 기절을 하고 있었다.

배심원들이 점령하고 있던 방과 방 사이의 샛문을 그들은 전부 열어 놓았다. 그들은 배심원들을 모두 담요로 쌌다. 그리고 비상용 층층대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단원 하나가 들창으로 몸을 내밀고 수상한 휘파람을 불었다. 그 휘파람 소리를 듣고 호텔 뒷뜰에 배치되었던 세 사람의 단원이 움직이었다. 맞은편 높다란 건물이 비상용 층층대에 검은 그림자를 던져 주고 있었다.

그 때 대형 화물 자동차 한대가 스름스름 다가오다가 비상용 층층대 아래서 멎었다. 그것을 보자 아홉 사람의 단원들은 전신을 털담요로 묶은 배심원을 하나씩 메고 층층대를 내려왔다.

이리하여 대형 화물 자동차는 배심원들과 단원을 싣고 다시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이니, 검은 별 사건의 배심원 전부가 도리어 그들이 재판하고자 하는 검은 별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 지음 칸티넨탈•호텔 맨 윗층 복도에서는 두 사람의 문지기가 아무도 없는 배심원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습격 받은 경찰 본부

[편집]

검은 별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장은 로울런드 판사였다. 그는 대 단히 엄격한 판사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재판은 어디까지나 공평했지만 그는 이 검은 별과 같은 인간은 극형으로 처리할 것이라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판사 로울런드가 그 날 재밤 두 시경에 문득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 옆에는 검은 까운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쓴 세 사람의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들의 괴상한 모양은 판사를 저으기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그가 소리를 쳐서 사람을 부르기 전에 그는 이미 결박을 당하고 재갈을 물리었다.

“우리들은 검은 별의 부하요.”

그들 중의 하나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가족과 하인들도 지금 모두 기절을 하고 있읍니다. 이마에 검은 별 하나씩 붙이고 깊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요.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오. 몇 시간 후에는 정신을 차릴 테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그 말을 끊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을 보자 다른 두 사람은 까운 밑으로 밧줄을 꺼내 판사의 손발을 묶어 버렸다. 판사는 공포를 느끼고 필사적으로 저항을 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세 사람의 부하는 판사를 메고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자동차에 실었다. 자동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하였다.

30분 후, 질주하던 자동차가 공원 부근의 컴컴한 장소까지 도달했을 때, 저편으로부터 두 대의 자동차가 달려왔다.

이리하여 세대의 자동차가 한데 모여서 무엇을 잠간 동안 수근거리더니 이윽고 판사의 차는 움직였다. 다른 두 대의 자동차가 앞장을 서서 판사의 차를 인도하였다.

그들은 주택지를 지나 빈민굴까지 다달았다. 그러는 동안에 창고가 드문드문 서 있는 쓸쓸한 장소로 빠져 나갔다. 깊이 잠든 밤거리라 통행인은 거지반 없었다. 때때로 야경의 발자취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들은 이윽고 밤새도록 장사를 하는 어떤 식당 앞에서 멎었다. 맨 앞장 선 자동차에서 사나이 하나가 뛰어 내리더니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그는 곧 전화를 걸고 경찰 본부를 불러냈다. 그는 최근 몇 주일 동안, 경찰부장에 접근해 왔었기 때문에 부장의 목소리와 말투를 교묘히 흉내 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각에 본부 근무를 하고 있는 경찰관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아, 군은 스팀슨이냐?”

사나이는 당황한 어조로 경찰부장의 흉내를 내면서,

“나다. 부장이다! 곧 경찰관을 총동원시켜라! 군과 수부계원(受付係員)을 제외하고는 전부다. 검은 별을 지금 〈컨트리•클럽〉 바로 앞 집까지 따라가서 포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전원을 곧 출동시켜라! 알겠나?”

“네, 네, 잘 알아 모셨읍니다. 부장님!”

스팀슨의 대답을 듣자 사나이는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경찰 본부의 전화선은 돌아가면서 모조리 끊어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경찰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검은 별은 미리부터 부하를 경찰 본부 안에 숨겨 두었다가 전화선을 끊도록 명령해 놓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경찰 본부에 남아 있던 경찰관들이 총출동을 한지 얼 마 후에, 검은 별의 단원이 운전하는 세대의 자동차가 경찰 본부 앞에서 먹었다. 열다섯 명의 괴한들이 자동차에서 내리자 본부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모두가 다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아, 그들의 맨 선봉을 서서 뛰어 들어가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 아닌 검은 별 그 사람이었다.

남아 있던 스팀슨 경사와 순사부장이 깜짝 놀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벼락같이 달려든 까스•피스톨을 한 방씩 얻어 먹고 당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검은 별은 미리부터 온갖 준비를 해 놓았던 것이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사무실 금고로 달려갔다. 그 금고에는 피의자들에게서 압수한 귀중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 금고를 여는 비밀 암호까지 알고 있었다. 금고는 쉽사리 열리었다. 금고에서 꺼낸 현금과 귀중품은 옆에 섰던 사나이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현관은 다른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나머지 열명은 사방으로 흩어져 사무실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산더미같은 보고서를 방 한가운데 쌓아 놓았다. 테이블과 걸상이 모두 쓰러졌다. 전화통은 파괴되고 조그만 검은 별을 여기 저기 붙여 놓았다. 스팀슨 경부와 순사부장의 이마에도 검은 별을 하나씩 붙여 주었다.

“판사를 데려오라!”

수령 검은 별은 명령을 하였다.

두 사람의 부하가 뛰어 나가자 로울런드 판사를 메고 들어왔다. 판사는 치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법정에서 보이던 위엄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그는 잠옷을 입은 채였다.

“똑똑히 보아 두어라! 검은 별은 지금 경찰 본부를 습격하였다!”

검은 별은 그리고 나서,

“이 광경을 보면 우리들이 너를 어떻게 처분할려는가— 쯤은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스팀슨 경부와 순사부장은 결박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하여 코 밑에 해면을 댔다.

“굳•모—닝, 경부 나리!”

검은 별은 말을 이어,

“군에 대하여 개인적인 원한이 없는 것은 군을 위하여 행복된 일이다. 우리들은 지금 금고 속에서 수천 불의 현금과 목거리, 시계를 대여섯 개 손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이 보고서들을 전부 불살러 버릴 작정이다.”

부하 한 사람이 방 한가운데 쌓아 놓은 보고서 뭉치에다 불을 살렀다.

스팀슨 경부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검은 별을 증오에 찬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그러는데 형사 한 사람이 뛰어 들어오고 있는 자태를 들창 넘어로 바라보고 경부는 기뻐하였다. 구원대가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검은 별의 단원들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수상한 휘파람을 불었다. 그것을 신호로 검은 별과 그의 부하는 잠옷을 입은 로오란드 판사를 둘러메고 밖으로 재빨리 빠져 나가는 데 성공하였다.

탕—탕—탕—

사격전이 맹렬히 벌어졌다. 뛰어오던 형사는 검은 별의 가슴을 향하여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그러나 총알은 빗나가 담벼락을 쏘았다. 또 한 방—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형사의 코 앞에는 까스•피스톨이 발사된 때였다. 다른 형사 한 명도 똑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검은 별과 부하들은 뭐라고 떠들어 대면서 세대의 자동차에 성큼 성큼 올라 탔다.

총소리를 듣고 길거리 가게에서 사람들이 뛰쳐 나왔다. 경관대가 사방에서 본부로 모여 들었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세 대의 자동차는 거리 모퉁이를 꺾어서 무서운 속력으로 내닫고 있었다.

이리하여 검은 별은 그날 밤의 계획에 완전히 성공을 하였던 것 이다. 그는 검사와 판사와 배심원들을 유괴하였고 바베크를 손에 넣었다. 그 뿐만인가, 그는 경찰 본부를 습격하여 귀중품을 탈취하고 숙직 경관을 습격하였다. 본부 안에는 조그만 검은 별을 어디든지 붙여 놓았고 보고서를 불살라 버렸다. 이것은 검은 별이 그 얼마나 경찰 당국을 얕잡아 보는가를 말하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었다.

가긍한 신세

[편집]

경찰 본부에서 한참 떨어진 네거리까지 다달았을 때, 검은 별의 세 대의 자동차는 예정대로 서로 뿔뿔이 헤어졌다. 판사 로울런드는 검은 별과 같은 차에 타고 있었다. 그는 공포로 말미암아 말이 아닐 정도로 자신을 잃고 있었다.

판사 로울런드는 자기 목덜미에 권총부리가 와 닿아 있는 것을 아까부터 느꼈다. 그러나 판사는 조금도 도망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필요 없었다.

어디선가 자동차는 멎었다. 컴컴한 거리였다. 판사는 두 팔을 양쪽에 꽉 붙잡힌 채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끌리어 들어갔다. 뒷덜미에는 여전히 싸늘한 강철 구멍이 따라오고 있었다.

무슨 집인지 알 수가 없다. 한참 동안 복도를 걸어 오다가 어떤 조그만 방으로 끌리어 들어갔다. 공기가 탁해서 메슥메슥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기서 잠간 동안 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회중전등이 켜지며,

“너는 이제부터 어떤 하나의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하고 검은 별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제일 국민 신탁 은행 지하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금고가 있는 곳으로 간다.”

거기서 또다시 층층대를 내려갔다. 회중전등의 불빛이 번쩍 번쩍 앞을 비춰 주었다. 층층대를 내려가니 거기에 단원 하나가 지켜 서 있다가 검은 별과 판사를 맞이하였다.

방으로 들어가자 판사는 의자에 앉히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순간, 스윗치 누르는 소리가 채칵하고 나더니 방안에 화안하게 불이 켜졌다.

“아아—”

판사는 놀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20여 명의 검은 별 단원이 벽을 등지고 팔짱을 낀 채 쭉 둘러 서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앞에는 십여 명의 포로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 때야 비로소 로울런드 판사는 자기가 이 수 많은 포로 중의 한 사람인 사실을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랐다. 판사 바로 옆 자리에는 브란트리 검사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줄로 잠옷들을 하나씩 걸친 십여 명의 배심원들이 쭈르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맨 저편에 바베크 탐정도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대단한 회합인걸!”

검은 별은 아주 재미있다는 말투로 휘이 한 번 둘러 보면서,

“오늘 밤, 이처럼 훌륭한 분들과 좌석을 같이 하는 것은 실로 영광스런 일이요. 모두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니까—”

그러면서 검은 별은 부하에게 눈으로 신호를 하였다. 단원들은 곧 활동을 개시하여 포로들을 하나씩 금고실로 메고 가서 커다란 금고 앞에다 주르르 앉히었다. 검은 별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판사 로울런드는 재갈을 물린 입 속으로 한두 번 신음을 했으나 다른 포로들은 신음할 기력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부하 하나가 금고 문을 열어 젖혔다. 다른 단원들은 아까 모양으로 묵묵히 팔짱을 끼고 쭉 둘러 섰다. 이윽고 금화가 들어 있는 포대가 손에서 손을 건너 복도로 옮겨져 나갔다.

“로울런드 판사, 이 은행은 당신이 거래하고 있는 은행이요. 자기가 거래하는 이 신탁 은행에서 당신의 손으로 금화 한 포대를 훔쳐낼 기회는 바루 지금이요! 나는 이제 당신의 결박을 풀어 줄 테니, 당신은 금고에 들어가서 금화 한 포대를 제손으로 훔쳐내 오시오. 그러나 만일 도망들을 치다가는 재판소 판사석이 하나 비일 줄만 아시오.”

판사의 포승은 이윽고 풀리었다. 공포로 말미암아 판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단원 하나가 권총부리를 판사의 뒷덜미에 갖다 대고 쿡 한 번 떠밀었다. 판사는 비틀비틀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무거운 돈 포대를 하나 간신히 들고 나와 복도에 서 있는 사나이에게 주었다.

검은 별은 그 광경을 보고 쿡 하고 웃었다.

“판사 나리가 도둑질을 한다! 하하하하……”

검은 별은 유쾌한 모양이었다.

바베크는 로울런드 판사의 비겁한 행동과 배심원들의 덜덜 떨고 있는 모양을 보고 적지 아니 불유쾌하였다. 그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검은 별을 상대로 한바탕 덤벼 보고 싶었으나 포로의 몸이라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최후의 돈 포대가 복도로 옮겨졌다. 그들은 금고의 문을 닫았다. 검은 별은 포로들을 향하여 또 한 번 빙글빙글 웃어 보이면서,

“나는 지금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 말이 있다. 우선 바베크, 너는 나를 체포하여 우리 단원을 해산시켰다. 다음 브란트리 검사, 너는 나를 기소하여 공판에 붙인 후, 나에게 극형을 구형하였다. 그 다음 로울런드 판사, 너는 내 공판의 재판장으로서 나에게 손톱만치도 동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배심원 제군, 너희들은 나에게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내리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감옥에서 빠져 나와 너희들 눈 앞에 건재하다! 나는 이 도시를 전율시키는 동시에 나에게 대적하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나의 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검은 별은 득의만만한 태도로 자기의 힘과 권력을 일동에게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미 기력을 잃고 입에는 재갈까지 물리운 포로들은 일언반구의 대답도 반항도 할 수 없는 가긍한 신세가 되어 있었다.

막스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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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야기는 다시금 바베크의 충복 막스로 돌아간다. 막스는 그즈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검은 별의 냄새를 맡은 영리한 사냥개 캬챔은 가죽 끈을 붙잡은 막스를 끌고 복도로 뛰어나가 아랫층으로 자꾸만 내려갔다. 영문을 모르는 경찰부장은 막스의 행동을 만류했으나 막스는 돌처럼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가만 계세요. 검은 별과 그의 부하 놈들은 30분 전에 여기에 와서 바베크 선생을 데려가고 나를 걸상에 동여매어 두었지요. 그것뿐이요. 그러나 나는 이 개를 데리고 그놈들의 뒤를 추격 할 테요. 이 놈들을 그저 붙들기만 하면—”

하고, 뛰어 내려가는 막스를,

“잠깐 기다려!”

하고 경찰부장은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그 개는 검은 별의 냄새는 맡아서 알지 몰라도 자동차 바퀴의 냄새는 모를 것이 아닌가? 그 놈들은 걸어간 것이 아니고 필경 자동차를 타고 갔을 것이니까.”

“아, 참 그렇군요.”

막스는 다소 부끄럽기도 해서 머리를 벅적벅적 긁었다. 그러나 빙글빙글 웃고 있는 형사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막스는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러는데 개는 자꾸만 가죽 끈을 잡아 당기지 않는가!

“하옇든 따라가 보겠소. 검은 별은 차를 타고 갔는지도 모르고 걸어갔는지도 모르지요. 그 놈은 보통과는 딴판인 행동을 하는 놈이니까.”

그러면서 막스는 개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형사들도 구경 삼아 막스를 따라 나가 보았다.

그러나 개는 코를 흥흥 거리면서 멎을 줄을 모르고 거리를 건너 강변으로 막스를 끌고 나갔다.

“어때요? 이래도 검은 별이 자동차를 타고 갔다는 말이요?”

형사들은 다소 놀라면서,

“흥, 다른 사람의 냄새를 따라가는지 누가 알어?”

“천만에! 캬챔은 검은 별이 서 있던 자리에다 코를 대고 오랫 동안 그 놈의 냄새를 맡았답니다. 다른 사람의 냄새는 내가 맡이질 않았으니까요.”

개는 열심히 냄새를 맡으면서 나무 밑으로 잔디밭으로, 그리고는 또 길 하나를 건너 저편으로 빠져 나갔다.

개는 막스를 강변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확실히 검은 별의 뒤를 따르고 있다!”

하고 막스는 중얼거리며,

“나는 이 개를 잘 알고 있다.”

그 때, 경찰부장은,

“막스는 어서 그 개 뒤나 따라가요. 나는 이런 부질없는 일로 시간 보낼 틈은 없어. 우리는 본부와 연락을 취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마음대로들 해요. 나와 바베크 선생은 경찰의 힘을 별반 빌지 않고 검은 별을 붙잡았읍죠.”

그 때야 부장도 다소 양보를 하면서,

“형사 두 사람을 데리고 가게.”

하였다. 그리고는 경찰 본부에 연락을 할 셈으로 아파아트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개는 또 네거리를 건너 공원으로 들어가는 철문 앞까지 왔다. 그리고 거기서 개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 때, 막스는 문 쇠창살에 무슨 흰 물건이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두 사람의 형사는 따라 갔다. 그랬더니 공원 문 쇠창살에 종이 한장이 끼여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 ×

네가 따라오는 것은 정확하다. 좀 더 자신을 가지고 열심히 따라오라!

검은 별

×

“이 자식이 나를 놀려 먹으려는구나.”

막스는 신음을 하며,

“놈은 모두 다 알고 있었구나. 내가 개를 앞세우고 따라올 줄을 짐작하고 이런 농담을……”

괘씸하지만 제가 분명히 검은 별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이 막스에게는 기뻤다.

막스는 이윽고 공원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개는 다시금 냄새를 맡으면서 공원으로 일단 들어갔다가 네거리로 돌아 나가다가 문득 골목으로 빠져서 교외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개는 길을 잃었는지 잠시 삥삥 돌더니, 다시금 막스를 끌고 시골풍의 주택이 즐비한 장소로 나섰다. 이윽고 개는 그 중의 한 집 앞에서 멎었다. 개는 일순간, 땅 위를 코로 열심히 맡고 있다가 얼른 머리를 들고 자꾸만 짖어 대면서 그 집을 향하여 달려갔다. 그러나 막스는 그것을 막았다.

“이 집이다! 놈들은 이 집으로 들어갔다.”

하고 막스는 형사들에게 속삭이었다.

이 시골풍의 주택 주변에는 상당히 넓은 잔디밭이 있고 커다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가등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나 수풀 아래는 캄캄하였다.

막스는 개를 형사에게 맡기고 들창 밑으로 숨어 들어갔다. 막스에게는 잠겨진 들창쯤 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여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창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리로 넘어 들어갔다.

그는 그림자처럼 벽에 몸을 납작 붙이며 귀를 기울였다.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닫고 복도로 들어섰다. 방은 다섯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방에서 사람의 신음 소리가 희미하게 나왔다. 다른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다시 들창가로 돌아와서 가만히 휘파람을 불었다. 형사가 뛰쳐왔다. 그도 이내 들창을 넘어 들어갔다. 형사는 막스의 뒤를 따라 사람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그 방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숨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이었다. 그 때, 형사는 막스에게 피스톨을 맡기고 문을 홱 열어 젖혔다. 뒤이어 회중전등이 휘익하고 방 안을 비치었다.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가구라고는 거의 없다.

“앗!”

형사는 고함을 쳤다.

방 한가운데 사나이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손발을 밧줄로 동여 매이고 입에는 재갈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 위에는 한 장의 종이 조각이 핀으로 꽂혀 있었다.

형사는 그 사나이의 얼굴에다 전등을 갖다 댔다. 그 순간, 형사는 또 한 번,

“앗!”

하고 부르짖었다.

“막스 빨리 스윗치를 눌러 불을 켜라!”

이윽고 방안에 불이 화안하니 켜졌다.

“앗! 시장 어른!”

형사는 고함을 치듯이 불렀다. 방바닥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은 이 도시의 시장(市長)이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형사도 들어왔다. 막스가 경계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에 형사들은 시장의 몸에서 박승을 풀고 손발을 만져 주고 물을 먹이고 걸상에 부축해 올렸다.

“무서운…… 실로 무서운 일이다!”

하고 시장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입니까! 자세한 것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읍니다.”

형사 하나가 물었다.

검은 별의 희생자

[편집]

“나는 나의 집 잔디밭을 거닐고 있었다. 맑은 공기를 마실 셈으로—”

하고 시장은 설명을 하며,

“바루 열한 시쯤 해서, 어디서 나타났는지 네 명의 괴한이 갑자기 달려 들어왔다. 모두들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나는 곧 기절을 하고 말았으니까—”

“까스•피스톨이다.”

하고 막스가 옆에서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여기다. 손발을 동여매이고 재갈이 물리어 있었다. 두 놈만이 남아 있다가 하는 말이, 우리들은 검은 별의 부하다. 검은 별은 오늘 밤 탈옥을 한다고 하였다.”

“놈은 탈옥을 했읍니다.”

막스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처럼 엄중한 감옥에서 탈옥을 하다니?”

“그뿐만 아니라, 바베크 선생을 아파아트에서 유괴하여 가고 집 안에는 돌아가면서 검은 별을 붙여 놓았답니다. 그리고 또 그놈은 당국에 전화를 걸고 검사 브란트리를 유괴해 갔다고 알렸읍니다.”

“음, 그 놈은 누구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 나를 이대로 이 집에 남겨 둔다고 했다. 나에게 해를 끼칠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다만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불을 끄고 나가 버렸다.”

“자동차를 불러다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읍니다.”

형사가 말했다.

“만일 검은 별이 정말로 탈옥을 했다면 나는 경찰 본부와 협력을 해서 놈을 체포할 테다!”

하고 시장은 힘차게 단언하였다.

“이번에는 정말 놓치지 않을 테다!”

그러면서 막스는 시장의 가슴에 붙여 있던 종이 조각을 불빛에 비쳐 보았다. 그것은 생각하던 것처럼 검은 별의 편지였다.

× ×

만일 군이 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기가 종점(終點)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두어라. 뒷문으로 나와서 다시 출발하여 나의 뒤를 따르라! 검은 별

×

“음—”

막스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개 캬챔을 끌어들여 검은 별의 냄새를 다시금 샅샅이 맡이었다. 두 사람의 형사와 시장은 그것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개는 기쁜 듯이 멍멍 짖으면서 가죽 끈을 끌고 밖으로 나가자 한길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단풍나무가 주르르 서 있었다.

일동은 사방에 주의를 하면서 막스와 개의 뒤를 따라갔다. 개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코로 땅을 맡으면서 한참 동안 걸어가다가 나무 그루와 풀을 베어 낸 빈 터를 건너려다가 캬챔은 문득 거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형사는 회중전등을 그 곳에 비췄다. 거기에는 또 한 사람의 몸뚱이가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아, 희생자가 또 한 사람!”

그것은 시회의장(市會議長)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시장의 그것과 마찬가지의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자기집 부근을 거닐고 있던 차에 습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음, 검은 별이다! 놈은 이 도시 전체를 협박하고 있는 거다!”

개는 다시금 냄새를 맡으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빈 터전을 꿰어 거리로 빠져나갔다. 형사와 시장과 시회의장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어떤 석탄 창고가 하나 우뚝 서 있었다. 그 앞에서 개는 멎었다.

형사는 무슨 함정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몰라서 날카로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들은 들창을 넘어 창고 안으로 들어가서 전등을 비춰 보았다. 그랬더니 세 번째의 희생자가 그 곳에 쓰러 져 있었다.

이 희생자는 이 거리의 유력한 은행가의 한 사람으로서 보통 사람은 쉽사리 면회도 할 수 없는 대실업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검은 별은 손쉽게 유괴해 온 것이었다.

그는 공포로 말미암아 절반은 미쳐 있었기 때문에 형사들이 박승을 풀어 줄 때는 그는 무섭게 저항을 하였다. 시장의 말을 듣고야 간신히 저항을 멈추었다. 은행가는 시장과 마찬가지로 자기 저택에서 유괴를 당한 것이다. 그 은행가는 제일 국민 신탁은행의 두취(頭取)였던 것이다.

일동은 다시 개를 따라 어떤 학교 교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소위 검은 별의 희생자는 보이지 않고 다만 검은 별의 종이 조각만이 하나 담벼락에 붙여져 있었다.

× ×

그렇다. 그렇게 해서 나의 뒤를 따라오면 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군은 실로 기상천외 (奇想天外)의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검은 별

교묘한 신호

그즈음 제일 국민 신탁 은행 지하실에 있는 금고실(金庫室)에서 바베크를 비롯한 검사 브란트리, 판사 로울런드, 그리고 십여 명의 배심원들이 검은 별의 엄중한 감시를 받아 가면서 각각 박승을 지워진 채 걸상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주르르 앉히어 놓고 보니 참으로 장관인 걸!”

검은 별은 의기양양하여 일동을 휘둘러보며 말을 계속하였다.

“나는 오늘 밤, 아주 괴상한 무기 하나를 가지고 일순간에 너희들을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은 소위 유독(有毒) 폭탄으로서 단 한 방으로 너희들의 생명은 사라진다.”

그러나 검은 별이 자기 말에 취해서 도도히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브란트리 검사는 뒷짐을 지워 동여매인 자기 손목의 밧줄을 죽어라 하고 풀기 시작하였다. 손목에서 피가 나도록 검사는 벌써 아까부터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바베크는 검은 별의 주의를 자기에게 집중시켜 검사 브란트리로 하여금 쉽사리 손목의 밧줄을 풀도록, 갑자기 허리를 꼬며 괴로운 듯이 결상과 함께 방바닥에 쓰러졌다.

“허어, 바베크 군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검은 별은 그러면서 부하를 시켜 쓰러진 바베크를 일으켜 앉히며,

“허어, 정신을 잃은 모양인데, 위스키를 한잔 갖다 먹여. 바베크가 보는 데서 우리의 최후의 연극을 해야만 한다. 저승엘 가더라도 모두 같이 가야지. 검사나리와 판사나리와 그리고 배심원 제군들과 같이 가야만 하거든.”

그러는데 부하 한 사람이 위스키 한 잔을 들고 들어와서 정신을 잃은 바베크의 입에다 부어넣었다.

그러는 동안에 브란트리 검사는 마침내 손목의 박승을 푸는데 성공하였다. 검사는 일동의 주의가 바베크로 쏠린 것을 보자 이번에는 발목의 포승을 재빨리 풀었다. 검사는 드디어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그는 가만히 몸을 일으켜 가지고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바로 눈 앞에는 권총을 가진 검은 별의 부하 하나가 바베크를 향하여 돌아서 있었다.

그 순간, 검사 브란트리는 그 사나이에게 비호처럼 달려들어 권총을 그의 손에서 빼앗아 쥐고,

“손을 들어라! 움직이지 말아!”

검사는 사나운 짐승처럼 고함을 쳤다.

“응?”

검은 별과 그의 부하들이 깜짝 놀라 검사를 향하여 돌아서는 순간, 바베크는 번쩍 눈을 떴다. 판사 로울런드와 배심원들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들은 어쩔 수 없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손을 들고 브란트리 검사를 증오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모두 벽을 등지고 서라! 단 한 치라도 손을 내리는 자가 있으면 쏜다! 알겠나! 나는 조금도 사양을 할 줄 모르는 사나이다.”

브란트리 검사의 이 명령에도 누구 하나 거역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뒷걸음을 쳐서 벽을 등지고 주르르 섰다.

그러나 복도와 들창 밖에 있는 검은 별의 단원이 다소 염려가 되었다. 그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모든 일은 처리해야만 하였다. 그는 권총을 겨눈 채 바베크 옆으로 달려가서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바베크의 손발을 동여맨 밧줄을 한 칼에 끊어 주었다. 그것을 본 검은 별은 그 때, 혼자서 쿡쿡 웃고 있었다.

“흥, 연극이 그만 했으면 상당한 걸. 검사 나리는 상당히 영리해. 더구나 바베크의 병은 이제 보니 가짜였군. 음, 괜찮아. 바베크와 재주 내기를 하는 것보다는 역시 영리한 인간과 내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거든. 그러나 그대들의 연극이 언제까지 계속 될는지, 그게 의문이라는 말이다.”

“쓸데 없는 말은 그만 해라!”

검사는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커다란 소리로 말을 해서 복도에 있는 너희 부하에게 알릴 셈이라면 이 총알이 단박에 네 가슴을 뚫는다!”

검은 별은 거기서 순순히 검사의 명령에 복종하며 적이 낮은 목소리로,

“흥, 그러나 아까 한 내 말을 잊어 버리지는 않았겠지? 나는 괴상한 무기를 가지고 너희들을 단번에 몰살시킬 셈이다! 유독 폭탄—”

과연 검은 별의 음성은 낮기는 했으나 그러나 말투가 다소 이상하였다. 그 이상한 말투는 문 밖 복도에 있는 부하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였던 것을 검사로서는 물론 알 리가 만무하였다.

그것은 어서 빨리 우선 까스•폭탄을 갖고 오라는 신호였다.

한편 손발이 풀린 바베크는 민첩한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는 손을 들고 있는 부하 한 사람의 몸을 뒤져 까스•피스톨과 자동 피스톨을 빼앗아 들었다.

“바베크 군, 다른 사람들도 빨리 풀어 주시오.”

검사는 재촉을 하였으나 바베크는,

“시간의 여유가 없오!”

하고 반대를 했다.

그는 지금 실로 곤란한 사실 앞에 당면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지금 검은 별을 비롯한 열세 사람의 인물을 제압하고 있기는 하지만 방 밖에 있는 여러 사람의 부하가 언제 어느 때 돌격해 들어오는지 누가 알랴? 그 때는 브란트리 검사와 협력하여 싸울 것을 결심하였으나 될 수만 있으면 검은 별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고 싶었다.

그는 탁상전화로 달려가서 경찰을 불러냈다. 경찰대가 도착할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밖에 있는 부하에게 발각되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전화 번호를 불렀다. 모두 끊기었던 전화선 중에 겨우 하나가 복구되어 있었다. 전화는 걸렸다. 경부 스팀슨이 전화에 나왔다. 그는 바베크의 음성을 알고 있었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를 제일 국민 신탁 은행 금고실에 가두어 놓았다. 그 놈들은 은행 금고에서 금화를 훔쳐냈다. 빨리 총동원을 시켜라! 경관대가 도착할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을 제압해 둘 것이다. 빨리 금고실로!”

바베크가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검은 별은 브란트리 검사의 총부리의 협박을 받으며 여전히 위협적인 연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베크는 수화기를 놓고 다시금 브란트리와 검은 별을 향하였다. 그리고 그가 복도로 통하는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 검은 까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한사람이 무슨 시꺼먼 물건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바베크는 연달아 두 방의 피스톨을,

“탕! 탕!”

하고 발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순간 괴한이 머리 위로 들고 있던 까스 폭탄이 휘익하고 던져졌다.

“쾅—”

폭탄은 바베크와 브란트리의 중간쯤 되는 대리석 방바닥에서 무섭게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던진 괴한은 바베크의 총탄을 가슴에 맞고 픽 쓰러졌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바베크는 비틀거리며 독까스를 마셨다. 브란트리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검은 별의 부하 세 사람도 쓰러졌다. 배심원 중의 네 사람도 까스를 마시고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에 바베크 자신도 마침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유독(有毒) 폭탄

[편집]

방 안에서 생긴 어지러운 폭탄 소리를 듣고 복도를 지키던 다섯 명의 부하가 뛰쳐 들어왔다. 그들의 눈은 수령이 습격을 당했다고 해서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쓰러진 검은 별을 일으켜 가지고 콧구멍에 해면(海綿)을 갖다 대어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다른 세 명은 쓰러진 바베크와 브란트리를 일으켜 걸상에 앉힌 후에 손과 발을 비끄러매었다.

검은 별은 정신을 차렸으나 아직 채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모양으로 부하에게 조용하기를 명령하였다.

“저 놈들에게 정신을 차리도록 해 주어라”

하고 검은 별은 조용히 명령을 했다. 부하들은 브란트리와 바베크 콧구멍에다 역시 해면을 갖다 댔다. 두 사람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검은 별은 정신을 차린 두 사람 앞에 우뚝 마주섰다. 그의 눈초리는 마스크 사이로 무섭게 번쩍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러한 너희들의 행동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바베크, 너는 지금까지 여러 번 나의 하는 일을 방해하였다. 나는 이 이상 너희들의 방해를 용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검사 브란트리에 대한 나의 원한도 인제는 갑절이나 커졌다. 판사 로울런드와 배심원들도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는 팔짱을 끼고 포로들 앞을 왔다갔다 하였다. 판사와 배심원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브란트리는 별반 두려운 표정도 없이 검은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별의 성격이 변했다. 자기에게 대항하는 자를 이번에는 폭력으로 대할 작정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바베크는 내심 적지 않게 불안하였다.

“나는 너희들 전부를 몰살시킬 작정이다.”

하고 검은 별은 명백하게 선언을 했다.

“바베크, 너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대단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너희들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검은 별은 눈짓으로 부하 한 사람에게 무엇을 명령하였다. 명령을 받은 부하는 곧 복도로 나가서 이윽고 조그만 손가방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검은 별은 그 가방을 열고 그 속에서 네모난 상자 하나를 꺼냈다.

“나는 이러한 긴급한 때에 사용하기 위하여 이것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까스 폭탄이 아니다. 이 유독 폭탄은 단 한 방으로써 이 방 전체와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물체를 콩가루처럼 부숴 버리는 위력을 가진 폭탄이다. 나는 이 무서운 폭탄을 저 샨델리어(장식 전등)에 매달아 둘 것이다. 너희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 하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폭탄에 달린 도화선(導火線)에다 불을 붙여놓고 나가 버린다. 너희들은 한 치 두 치 불붙어 올라가는 도화선을 결상에 편안히 앉아서 구경을 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정확한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도화선이 다 타버리는 순간, 폭탄은 무서운 폭음과 함께 폭발하여 너희들의 몸뚱이는 조각조각 찢어져 버릴 것이다.”

“음—”

판사 로울런드는 재갈을 물린 입 속으로 신음을 했다. 배심원 중의 한 사람은 말만 듣고도 기절을 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얼굴이 새파래졌다.

“나는 이미 너희들에게 싫증이 났다. 나는 금후 너희들의 대적행동을 용서 안할 것이다. 나는 오늘 밤, 실물 교육을 하는 셈으로 이 도시의 유력한 인물 수명을 유괴하여 으슥한 장소에 갖다 두었다.

나는 또한 제군을 이곳으로 납치하여 은행의 금고를 약탈하는 현장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뭇사건에 이 도시 전체를 전율시키고 전 시민에게 대하여 검은 별의 공포를 인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하여 내일 아침, 전 시민은 그대들이 콩가루가 되어 죽어 버린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나는 또각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제군이 어떻게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는가를 상세히 설명할 것이다.”

검은 별은 거기서 폭탄을 높은 샨델리어에 매달고 결상에 동여 맨 포로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도화선을 짤막하니 베어 약 두자 가량만 남겨 놓았다. 그리고는 까운 속에서 성냥을 꺼내 들었다.

“바베크, 죽기 전에 무슨 유언 같은 것은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 때 바베크는,

“검은 별, 그러나 너는 이런 잔인한 행동을 할만큼 맘이 크지 못하다. 너는 이러한 폭력을 지금까지는 극력 배척해 왔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야만이라고 항상 말해 온 네가 우리들 십오 명을 한꺼번에 학살하겠다는 말이냐? 네가 지금까지 살인을 피해온 것은 도의(道義感)에서라기보다도 결국은 너의 맘이 크지 못한 때문이었다. 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너는 살인의 결과를 무서워한다. 형무소 사형장(死刑場)에 장치해 놓은 전기의자(電氣椅子)를 무서워한다. 너에게는 사람을 죽일만한 용기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군의 오해라는 사실을 멀지 않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부하를 향하여,

“바베크에게 재갈을 물려라. 그리고 브란트리에게도! 그리고 곧 경찰대가 도착할 테니 우물쭈물해서는 아니 된다……”

부하는 곧 명령대로 행동을 하였다. 검은 별은 둥그라니 둘러앉은 포로들 앞을 왔다갔다 하며,

“모두가 다 비겁한 놈들뿐이다! 거지반 기절을 할 지경들이다. 판사 로울런드, 군은 벌써 절반은 죽어 있다! 배심원 제군은 폭풍 속의 나무 잎사귀처럼 떨고 있다.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이 검은 별에게 유죄의 판결을 내리겠다는 말인가? 흥! 이런 비겁한 작자들을 죽이는 것은 별반 흥미도 없는 일이지만 시간이 없으니 빨리 해치울 수밖에”

그는 다시금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부하들은 전부 복도로 퇴각을 했다.

“자아, 이것은 말하자면 자비스러운 살해 방법이다. 아무런 고통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 폭탄은 실로 위대한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방 안에 있는 전부는 일찰나에 죽고 만다. 그러니까 조각조각, 산산히 찢어진 살과 뼈대를 주워서 따로 따로 장례식을 지낼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야. 합동 장례식을 지낼 수밖에……자아, 그러면 죽기 전에 이 위대한 검은 별의 얼굴이나 한 번 더 잘 보아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제군은 멀지 않아 폭탄도 무섭지 않고 검은 별도 무섭지 않은 천국으로 갈 손님들이니까—”

마침내 검은 별은 성냥을 그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도화선은 찍찍 소리를 내면서 타기 시작하였다.

“으, 음—”

배심원들이 무서운 신음을 했다. 십오 명의 포로들은 튀어 나올 것 같은 눈동자로 타 올라가는 도화선을 쳐다보았다. 도화선은 한 치 한 치 짧아져 갔다. 공포, 공포, 공포에 찬 얼굴들!

도화선(導火線)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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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검은 별은 회심의 웃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이윽고 문을 열고 복도로 총총히 사라지면서,

“그 도화선은 늦어도 오 분 동안은 탈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쓸데 없이 검은 별에게 대항을 했던 것을 뉘우치면 된다. 그리고 자기 일생을 회고하여 보면서 조용히 기도나 드리게. 그러면 최후의 순간까지 도화선에서 시선을 떼지 말 것!”

그 순간 방 안은 갑자기 캄캄해졌다. 검은 별이 스윗취를 끈 것이다.

무력한 포로들은 어둠 속에서 검은 별의 웃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복도의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었다. 무덤 속과도 같은 캄캄한 금고실에서 그들 열다섯 명의 포로들은 자기들의 무거운 한숨 소리와 도화선이 찍찍 타는 기미적은 불꽃 소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다만 타올라가는 도화선의 가는 불꽃만이 눈 앞 머리 위에 보일 따름이었다.

판사 로울러드는 또 신음 소리를 냈다. 검사 브란트리는 밧줄 을 풀려고 필사적 노력을 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 사람의 배심원은 도망을 치려고 하다가 걸상을 등진 채 방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재갈을 물린 입이라, 말은 못 하고 침만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도화선은 그냥 타 올라갔다. 불꽃은 점점 폭탄을 가까이 향하여 다가갔다.

바베크는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자유의 몸이 되고자 힘써 보았으나 모두가 다 허사였다.

“검은 별은 성격이 변했다. 그는 마침내 살인을 하기까지에 성격이 악화했다.”

바베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단념하였다. 두 달 후에 결혼식을 거행할 약혼자 포스티나•웬델의 자태가 눈 앞에 나타났다. 자기의 죽음은 약혼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타격을 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편 검은 별은 복도로 나와서 부하들과 의논을 하고 있었다.

“돈은 다 운반했는가?”

“네. 조금도 지장 없이 운반했읍니다.”

“제10호와 제12호만 남아 있고 다른 단원은 돌아가도 무방하다. 그리고 제6호는 특별 임무를 띠고 있으니까 명령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내일 밤 본부로 출두해야만 한다.”

“네.”

“그럼 다들 돌아가라.”

지명을 받은 두 사람만 남아 있고는 모두들 밖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밑층으로 내려가서 어둡고 좁은 골목을 빠져 한길로 나섰다.

거기에는 대형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 일곱 명의 단원을 싣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자동차 속에서 제가끔 마스크와 까운을 벗었다.

조금 후 다른 차가 와서 또 단원을 싣고 갔다. 그 중 세 사람은 마스크와 까운을 은행 안에 버리고 대담하게도 골목을 빠져 나와 모퉁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은행 뒷문으로 빠져 나간 놈도 몇 있었다. 이리하여 은행 안에는 검은 별과 두 사람의 부하만이 남아 있었다.

검은 별은 회중전등으로 팔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자아, 인제는 우리들도 여기서 빠져 나가야만 될 시간이 왔다. 경찰대가 곧 도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이곳에 남아 있겠다.”

“만일 수령이 붙잡히는 날에는……?”

부하 하나가 걱정을 했다.

“무슨 말을 함부로! 검은 별은 다시는 붙잡히지 않는다. 도망할 구멍은 벌써 다 만들어 놓았다. 절대로 틀림은 없다. 너희들도 내 명령만 지키면 조금도 위험이 없다. 그럼, 나갈 시간이 되었다. 금고실의 연극은 인제 2분만 지나면 끝난다. 한 걸음 먼저들 나가라.”

이 두 사람은 새로 가입한 단원이었다. 그들 두 사람의 단원은 뒷골목 세계에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린 작자들이었지만 검은 별의 힘을 절대로 믿을 만큼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경관대가 무서웠다. 그래서 하라는 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밑층으로 해서 골목으로 빠져 나가지는 않았다. 그들은 삼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마스크와 까운을 벗어 버렸다. 삼층에 도착하자 복도 한편 담벼락에 장치된 비밀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사라졌다.

그 비밀의 문은 은행 바로 옆 집의 삼층으로 통해 있었다. 그 삘딩 안에는 변호사 사무실과 토지 회사의 사무실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층계 입구에 서서 야경(夜警)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새로운 단원은 이 삘딩의 야경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약 한달 전에 이 빌딩의 야경으로서 고용되어 검은 별의 복수 계획의 일부를 비밀히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별이 도망을 할 비밀의 문을 만들어 놓는데 많은 힘을 써 온 단원이었다.

그들 두 사람의 부하가 사라진 후, 검은 별은 발자취를 죽이고 가만히 금고실 문 밖으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그는 판사 로울런드의 신음 소리를 듣고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죽음 직전의 방안의 풍경이 검은 별에게는 마치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만족하였다. 판사의 신음 소리도 소리지만 결상을 등에 지고 방바닥에 굴러 다니면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엉엉 우는 것 같은 괴상한 목소리를 내는 배심원도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메마른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 무슨 짐승의 것처럼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 덜커덕거리는 걸상 소리, 발버둥치는 방 바닥 소리,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타 올라가는 도화선의 불꽃 소리가 찌지직, 찌지직……

“흥, 네 놈들 어디 한번 죽음의 맛을 톡톡히 보아라!”

그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획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앗! 경찰대가 벌써……?”

그렇다. 검은 별이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 캄캄한 복도 한 구석이 갑자기 화안해지며 어지럽게 달려드는 구두 소리!

하나, 둘, 셋, 넷, 다섯— 화안한 회중전등의 불빛 속에 나타난 경관들……

“아, 검은 별이다!”

“검은 별 거기 섰거라!”

“뛰면 쏜다!”

뒤 이어 어지러운 총성이 복도를 뒤흔들었다.

탕—탕—탕

검은 별의 귓전을 총알이 스치고 날아갔다.

검은 별은 너무 지나치게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관대는 이미 은행 안을 샅샅이 점령하고 있지 않는가!

검은 별도 마침내 무기를 빼 들었다.

금고실에는 여전히 도화선이 폭탄을 향하여 타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마침내 폭탄에서 한 치도 채 못 되는 거리까지 불꽃은 다가왔다. 일분, 아니 30초만 지나면 불꽃은 마침내 폭탄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무서운 유독 폭탄은 저릿저릿한 성능(性能)을 가지고 폭발할 것이다.

바베크 탐정, 브란트리 검사, 로울런드 판사, 그리고 수많은 배심원들—도합 열다섯 명의 생명은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실로 위기 일발의 순간은 왔다.

검은 별과 캬챔

[편집]

캬챔의 뒤를 따라 막스는 그냥 검은 별이 남겨 놓은 발자취의 냄새를 더듬어갔다. 그 뒤로 두 사람의 형사와 시장과 시회의원과 제일 국민 신탁 은행의 두취가 주르르 따라갔다.

학교 교사에서 나온 개는 그들을 컴컴한 골목으로 끌고 가, 거기서 다시 주택지를 빠져서 조그만 공원을 꿰어 조그만 못가를 걸어갔다. 그 근방에는 나무와 수풀이 무성해서 언제 어느 때 검은 별의 부하가 뛰쳐 나올는지 몰라 형사들은 겁을 집어 먹었다.

검은 별은 마지막 편지에서 굉장한 사건에 부딪치리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막스는 검은 별의 그 한 마디를 결코 과장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개는 거지반 한 바퀴 못 가를 삥 돌아 조그만 정자(亭子)까지 왔다. 그 정자 담벼락에 검은 벌의 쪽지가 또 붙어 있었다. 막스는 형사의 회중전등으로 그것을 읽어 보았다.

× ×

그냥 따라 오너라. 그러면 범죄의 현장에 도달할 것이다.

검은 별

×

“음, 그건 결코 거짓말이 아니다. 그 놈은 범죄 현장에 우리를 끌고 갈 작정이다. 캬챔, 어서 앞장을 서라!”

개는 멍멍하는 짖음으로 대답을 하며 공원을 나서자 큰 길을 상업 지구로 걸어갔다. 개는 막스가 쥐고 있는 가죽 끈을 힘차게 잡아당기며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였다. 막스는 뛰었다. 다른 사람들도 땀을 빨빨 흘리며 따라갔다.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어떤 요릿집 앞까지 왔을 때, 시장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 놓고 전화를 걸 셈으로 요릿집 안으 로 들어갔다. 곧 경찰 본부를 불러 내서 자기들의 행방을 상세히 알리고, 도와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경찰 본부에서는 검은 별의 마수에 걸린 피해가 여기 저기서 보고되어 왔었기 때문에 경찰부장을 비롯하여 본부 총동원으로 시장의 행방을 찾고 있던 참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다시 개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개는 잠깐 쉬고 있던 시간을 보충이나 하려는 것처럼 무턱대고 달렸다. 개는 재목을 쌓아 세운 어떤 마당을 꿰어 전진을 계속하였다.

“검은 별은 우리들이 시간을 허비하도록 만든 것이 분명하다.”

하고 막스가 말을 했을 때, 형사 하나가 나서며,

“자동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검은 별이 무슨 이유로 이처럼 거리 거리를 걸어 다녔는지 모르겠소. 분명 이것은 검은 별의 발자취가 아닐 것이요.”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노릇을 하는 것이 검은 별이다. 나는 그 놈이 서 있던 장소를 잘 보아 두었다. 그리고 개에게 그 장소를 맡히어 주었다. 그러니까 틀림 없이 이 길은 검은 별이 걸어간 길이다. 내기를 해도 좋다. 우리는 지금 확실히 검은 별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우리를 끌고 가는지, 그리고 거기서 대체 무엇을 우리들에게 보여 줄려는지, 그건 물론 알 수 없다.”

막스의 말이 너무 셌기 때문에 형사는 잠자코 있었다. 개는 이윽고 시멘트 창고 옆을 지났다. 거기서 다시 한길로 나서 언덕을 내려가자 거리 중심지로 걸어갔다.

거기까지 와서는 개는 다소 냄새를 맡는데 곤란을 느낀 모양이었다. 네길 어름 한 모퉁이까지 와서 개는 오랫동안 냄새를 찾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가 기다란 창고 옆으로 걸어 가다가 마침내 그 중 어떤 창고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멍멍 짖었다.

형사는 총알이 날아올 것을 예상하면서 문을 열고 권총을 든 채 들어갔다. 그러나 박승을 당한 희생자는 보이지 않았다. 총알도 독까스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회중전등으로 창고 안을 삥 둘러 비쳐 보았다. 너저분한 가장 즙물과 거미줄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담벼락에 또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 ×

냄새의 종점(終點)은 가까워 왔다. 그대의 개는 그 이상 더 나의 발자취 냄새를 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일 국민 신탁은행으로 가거라. 검은 별

×

“그 놈은 오늘 밤 은행을 습격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막스가 단언하였다. 이 말에 시장은,

“빨리 경찰에 연락을 하자!”

“그러나 냄새의 자취가 끝나는 데까지 가 보고 연락을 합시다.”

막스가 반대를 하였다.

“그러나 신탁 은행으로 가라고 씌어 있지 않는가?”

“그럼 시장 혼자서 그리로 가시오.”

막스는 감정을 상하여,

“나는 이 개의 뒤를 좀 더 따라가 보겠소. 당신은 시장일는지 몰라도 나의 주인은 바베크뿐이요.”

“아니,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지만……”

시장이 타협을 하여 왔다.

개는 다시금 냄새를 맡으면서 창고 밖으로 나섰다. 시장과 시회의원과 신탁 은행 두취는 은행으로 달려가고 막스 혼자가 남았다. 막스는 도리어 방해만 되던 그들을 떼 버린 것이 속 시원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개는 전차길에서 멎었다. 거기서 개는 그 이상 더 가지를 않고 전차길 한 군데에서 삥삥 돌아 가며 짖었다.

“음, 여기서 전차를 탔다는 말이로구나!”

이쯤 되고 보니, 막스도 신탁 은행으로 달려 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20분 동안이나 기다려야 전차가 오는 것을 알았다. 그처럼 오래 기다릴 수는 없다. 바베크는 검은 별의 수중에 들어가 있지 않느냐. 만일 검은 별이 정말로 은행을 습격한다면 바베크를 데리고 갔을 것이다. 막스는 한시바삐 바베크를 구해 내고 싶었다. 그는 어떤 약방으로 들어가서 택시를 불렀다.

조금 후에 택시는 왔다. 운전수는 개를 태우는 것을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막스가 무서워 하는 수 없이 승낙을 했다. 차는 이윽고 상업지대를 향하여 질주하였다. 운전수는 막스의 명령대로 은행 좀 못 미쳐서 멎었다. 막스는 대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막스는 은행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 때, 캬챔이 멍멍 짖으면서 가죽 끈을 힘차게 잡아 당겼다.

“냄새를 또 발견했구나!”

그렇다. 개는 일단 잃어 버렸던 냄새를 다시금 거기서 발견했던 것이다.

개는 골목을 들어가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 앞으로 막스를 끌고 갔다. 막스는 잠깐 주저하다가 이윽고 개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불빛이 번쩍하고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불빛 속에 마스크와 까운을 쓴 사나이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검은 별이다!”

가슴은 뛰고 전신에 피가 머리로 기어 올라 왔다. 이마에는 커다란 별이 한 개 번쩍이고 있었다.

그 검은 별을 향하여 개는 자꾸만 가죽 끈을 잡아 끌었다. 막스가 재빨리 개를 붙잡지 않았으면 멍멍하고 짖었을는지도 몰랐다.

막스는 가만히 형세를 살핀 후에 활동을 개시할 작정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대여섯 간 저편에 검은 별은 서 있었다. 그러나 막스는 그 옆에 부하가 몇 놈이나 모여 있는지, 그것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도 바베크 선생은 어디 있는고?

그 때 복도에 전등이 일제히 켜지며 전등 불이 대리석 방 속에 눈부시게 반사되었다. 막스는 그 순간, 검은 별이 획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저편에서 경관대가 들어왔다.

“탕—”

총소리가 났다. 검은 별과 경찰대가 복도에서 마침내 충돌을 한 것이다.

검은 별이 까스 폭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무섭게 돌진해오던 경관이 너댓 쓰러졌다. 나머지 경관은 그냥 권총을 발사하면서 검은 별에게 육박해 왔다.

순간 검은 별은 곧장 막스가 서 있는 곳을 향하여 뛰어 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보자 캬챔은 미친 듯이 짖어 대며 가죽 끈을 잡아 당겼다.

막스는 무기가 없다. 그러나 이 사나운 개가 있는 것이다. 개는 적을 물어 쓰러뜨릴 것이다. 막스는 그것을 개에게 잘 훈련시켜 왔었기 때문이다. 검은 별과의 사이가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막스는 개를 놓아 줄 셈이다. 개는 검은 별의 모가지를 물고 무섭게 흔들어 버릴 것이다.

또다시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검은 별은 아직도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있었다. 그는 또 까스 폭탄을 내던졌다. 그리고 세째번의 폭탄을 까운 밑에서 꺼내면서 검은 별은 막스 앞으로 쏜살 같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 때서야 비로소 검은 별은 막스와 개를 눈 앞에 발견하였던 것이다.

검은 별의 눈초리가 순간 번쩍 빛났다. 그 때에 그 눈초리의 이상한 표정을 막스는 일생을 통하여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검은 별은 뛰어 오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의 손길은 까운 밑에서 빠져 나오며 폭탄을 번쩍 쳐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자아, 캬! 덤벼라! 저놈의 모가지를 물고 늘어져라!”

막스는 고함을 치듯이 명령을 하면서 개의 끈을 마침내 놓아 주었다.

죽음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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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사냥개 캬챔은 검은 별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경관들은 막스의 자태를 발견하고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 일제히 사격을 중지하였다. 막스는 개의 뒤를 따라 검은 별 앞으로 달려 들어갔다.

“꽈앙—”

검은 별은 들고 있던 폭탄을 내던졌다. 폭탄은 막스 앞에서 터져 나갔다. 막스는 뭉게뭉게 떠오르는 연기 속에 깊이 짜여졌다.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숨을 쉬는 날에는 쓰러진다. 이렇게 되면 믿는 것은 오직 개 하나뿐이다. 만일 검은 별이 개와 막스 옆을 지나가는 데 성공하면 그는 그 어떤 비밀통로로 쉽사리 도망을 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개는 어떤 일이 있을 지라도 도망하지 못 하도록 검은 별을 물고 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보통 때 개를 잘 훈련시켜 두었던 것을 막스는 무척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사납고도 영리한 이 사냥개는 검은 별의 목에다 구멍을 뚫어 놓을 것이 분명했다. 검은 별은 개에게 상처를 입힐는지 모르나 그 대신 개는 검은 별을 경관에게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아아, 이 어찌 된 노릇일까?…… 실로 믿지 못할, 꿈과 같은 일이 막스의 눈 앞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독까스를 마시지 않으려고 숨을 꼭 죽이고 있던 막스는 그 때 검은 별의 이상한 웃음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으와, 하, 하, 핫……”

그것은 틀림 없이 하나의 승리자로서의 유쾌한 웃음 소리였다.

그 때 막스는 개가 검은 별의 바로 옆까지 도달한 것을 보았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대체 어찌 된 셈인고?

그것은 적에 대항하려는 분노의 짖음 소리가 아니고 만족과 기쁨 의 웃음 소리였다. 캬챔은 검은 별의 목에다가 구멍을 뚫어 놓는 대신에 그의 주위를 반가운 듯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었다. 꼬리를 내저으며 검은 별의 손바닥을 혀로 핥고 있었다.

“으와, 하, 하, 핫…….”

검은 별의 웃음은 또다시 터져 나왔다.

“저 놈의 개가 어떻게 된 셈이야.”

막스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꿈과 같은 일이 아닌가! 막스는 눈 앞이 캄캄해지며 맥이 푹 빠져 나갔다.

“음—”

다음은 무서운 신음과 함께 숨을 들이켰다. 독까스를 마시고 그는 마침내 기절해 버렸다.

“꼴 좋다!”

검은 별은 쓰러진 막스를 비웃으며 개를 데리고 막스의 바로 옆을 지나 층층대로 뛰쳐 올라갔다.

“저놈 잡아라!”

경관대는 다시금 추격을 시작했다. 일층에서 이층에서 삼층으로! 경찰관은 검은 별의 최후의 계단을 돌아서는 데까지를 보았다. 그리고 경찰대가 삼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검은 별의 자태는 연기처럼 없어지고 말았다.

그 때 검은 별은 비밀의 통로로 자취를 감춘 것이다. 경관들이 미친 듯이 은행 안을 발칵 뒤지고 있을 즈음, 검은 별은 옆 삘딩 삼층에서 그의 두 사람의 부하인 야경의 인도를 받고 있었다.

야경은 검은 별을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지하실까지 데리고 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비밀의 문으로 해서 일층으로 올라오자, 마스크와 까운을 벗어 던지고 코 밑에 조그만 수염 하나를 달고 중절모를 썼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밖으로 빠져나오는 몸이 되었다. 택시 한 대를 불러 타고 어둠 속으로 검은 별은 사라졌다.

한편 경찰대는 검은 별이 아까 복도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그들은 바베크가 전화로 알린 내용을 깜박 잊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막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검은 별이 위로 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금고실에서 무서운 폭음이 들린 것은 막스가 쓰러진지 일 분 후, 경관대가 이층에 도달했을 때였다.

“꽈앙—”

물건이 파괴되는 저릿저릿한 폭음이었다. 새파란 불빛이 금고실 들창을 화안하니 비쳤다가 꺼졌다. 문 틈으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새어 나왔다.

검은 별의 함정이 무서워서 복도에 섰던 경관들은 당황히 도망을 쳤다. 밖에서는 한 사람 경관이 화재 신호기를 돌리고 있었다. 이윽고 소방 자동차가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면서 달려왔다.

들창과 문은 파괴되었다. 그러나 불은 일지 않았다. 은행 안에 전등이 죄 켜졌다. 경관과 소방대가 활동을 개시하였다. 막스가 정신을 차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바베크 선생을 찾아 주시오!”

막스는 꿈결처럼 중얼거렸다.

그 때서야 경관들은 잊어 먹고 있던 사실을 생각했다. 바베크는 금고실에 있다고 전화 연락을 하지 않았던가!

“금고실이다!”

“금고실을 열어라!”

그들은 제가끔 부르짖으며 금고실 문 앞으로 달려갔다. 코를 찌르는 연기가 쓸어나왔다. 소방수가 들어가서 들창을 열고 공기를 잡아 넣었다. 스윗취를 눌러 불을 켰다.

“앗”

방 안의 광경을 보자 막스는 고함을 치면서 뛰어 들어갔다. 바베크는 걸상에 동여매져 있었다. 막스는 빠른 솜씨로 재갈을 벗기고 손발을 풀어 주었다.

금고실 안의 광경을 본 경관들은 모두가 다 놀라 고함을 쳤다. 검사 브란트리, 판사 로울런드, 배심원 열두 명이 모두 바베크와 꼭 같은 결박을 당하고 있었다. 판사 로울런드는 기절을 하고 있었다. 배심원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기의 생명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고들 있었다.

“검은 별은 이 사람들을 폭살시킬려고 했지만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부장이 소리를 치면서 설명을 했다.

그러는데 시장과 시회의원이 달려왔다. 브란트리 검사는 사연을 이야기 하였다. 바베크는 막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바베크는 검은 별의 체포가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놓쳤읍니다. 선생님, 그러나 그놈의 개새끼가 어쩌면……”

“막스, 개가 어쨌다는 말이냐?”

바베크가 물었다.

“선생님, 어찌 된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어요. 그처럼 훈련을 잘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그놈의 개새끼는 검은 별의 목에다 구멍을 뚫지는 않고…… 도리어 꼬리를 흔들고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검은 별을 따라갔지요.”

“음, 이상한 일인걸!”

바베크는 머리를 기울였다.

그 때, 브란트리 검사가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끄집어 내면서,

“이 편지가 내 주머니에 들어 있었소.”

봉투에는 검은 별이 여럿 붙여져 있었다.

“검은 별의 장난이다. 그 놈은 언제든지 도망친 후에는 꼭 꼭 비웃는 편지를 남겨 둔다.”

“바베크 군, 어디 한 번 읽어 보아 주시오.”

검사는 편지를 바베크에게 내 주었다. 바베크는 봉함을 떼고 편지를 펼쳐 들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째서 지금껏 살아 있는지, 그것을 수상히 생각하며 바베크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경관과 소방수들도 모였다. 바베크는 읽었다.

× ×

제군, 나는 먼저 제군에게 경의를 표한다. 만일 제군이 죽지 않고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계획이 지장 없이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탈옥을 계획했을 때, 나의 위대한 힘과 우리 단원들의 우수한 능력을 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한두 가지의 다른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20여 명의 명사를 유괴한 것도 그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바베크와 막스가 가장 무서운 적인 것을 깨닫고 우선 그 두 명을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어째 그러냐 하면 조소(嘲笑)는 가장 유력한 무기(武器)로서 오늘 밤의 사건은 세상 사람들의 조소를 받기에는 가장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의 부하 한 사람은 바베크에게 개 한마리를 팔았다. 그리고 그 개는 곧 막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막스는 아주 열심히 개를 훈련시켰다. 언젠가 한번은 그 개로 하여금 나의 목에다 구멍을 뚫어 놓을 셈으로 맹렬한 훈련을 시켰다.

오늘 밤 나는 그 개를 위하여 발자취 냄새를 남겨 놓았다. 나는 일부러 그 개를 그의 침실에다 매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또 일부러 막스를 바베크의 아파아트에 남겨 두고 그에게 내가 서있던 장소를 보여 주었다. 막스가 개를 앞세우고 나의 뒤를 따라 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물론 나 자신이 그처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발자취 냄새를 남겨 둘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나는 바베크의 아파아트 사무실에서 내 구두를 부하 한 사람에게 신겼다. 이리하여 나의 부하는 내 구두를 신고 나의 대신으로 발자국 냄새를 여기 저기 뿌려 놓았던 것이다. 그 도중에 내 성명으로 다른 부하가 유괴하여 온 시장 이하 몇 사람이 감금당해 있는 장소에 한번씩 들르게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막스는 멀지 않아 국민 신탁 은행에 도달할 것이다. 그는 개를 내 앞에서 놓아 줌으로써 나의 목에다 구멍을 뚫으려 들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개가 막스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아아,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사냥개는 본시 내가 길러낸 개 가운데 한 마리였던 것이다. 나는 체포되기 전에 그 개를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개를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 나는 천재이다. 따라서 어리석은 막스가 아무리 명령을 해도 개는 나에게 조그만 적의(意)도 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

바베크는 읽기를 멈추고 막스의 김 빠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막스는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면서 속으로 검은 별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속았다. 검은 별! 괘씸한 검은 별! 그 개를 훈련시키느라고 얼마나 진땀을 뺐는고! 그 때야 비로소 캬챔이 항상 침착하지를 못하고 두리번거리던 사실을 생각하였다. 개는 일상 본디의 주인인 검은 별의 옆으로 가고 싶어 했었을 따름이었다. 개가 그처럼 열심히 냄새를 따라가던 것도 알고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바베크는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 ×

그 다음 나는 은행 안에서 또 한가지 계획을 실행할 작정이다. 나는 금고 속에서 돈을 다 꺼낸 후, 나의 포로들을 금고실에 쭉 앉힐 것이다. 그리고 장식 전등에다 탄을 매달아 놓고 폭탄이 터지는 순간 제군의 몸뚱이는 콩가루가 될 것을 잘 설명할 것이다. 만일 제군이 죽지 않고 나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면 그것은 곧 나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포로들은 죽음에 당면한다는 것이 어떠한 느낌을 주는가를 알톨 같이 맛볼 것이다. 제군 가운데는 최후까지 용감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와 반대로 자기의 비겁함을 여지 없이 폭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아 세상 사람은 거기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제군, 제군이 그처럼 무서워하던 그 둥그런 물건은 실인즉 폭탄이 아니고 사진을 촬영할 때 쓰는 마그네슘을 특별히 크게 만든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대들의 얼굴에는 사진기가 향해져 있었다. 만일 제군이 금고 위의 천정을 조사해 보면 렌즈에 광선을 보내기 위한 조그만 구멍이 하나 뚫어져 있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금고실의 불을 꼈을 때, 나의 부하는 사진기의 렌즈를 열어 놓았다. 그리고 폭탄이 폭발했을 때, 그 사진기의 필름은 그대들의 그 보기 흉한 얼굴 모습을 일일이 그대로 촬영했을 것이다. 사진사의 몸은 안전히 보호되는 장소에 있다가 안전히 도망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다.

제군, 제군이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시간에 그 사진사는 이미 그 귀중한 필름을 현상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수천장 복사를 하여 전국 각 신문사에 보낼 예정이다. 이리하여 전 국민은 죽음에 당면한 제군이 과연 용감했던가 비겁했던가를 여실히 알게 될 것이다.

검은 별

×

판사 로울런드는 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는 자기의 얼굴이 어떤 모습으로 찍혀졌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도 우울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브란트리와 바베크까지도 결코 유쾌하지는 못했다. 폭탄을 진짜라고 믿고 있은 이상 그들의 얼굴도 그리 보기 좋은 편은 못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 이튿날, 시내 각 신문에는 촬영용 마그네슘이 터지는 순간에 있어서의 15명 명사들의 사진이 게재되어 세상에 발표되었다.

그 중 가장 비겁한 표정을 하고 있은 것은 판사 로울런드와 배심원이었다. 눈을 찢어지도록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리고들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지녀 오던 법관으로서의 위엄성을 완전히 상실한 추악한 그것이었다.

검은 별의 말대로 정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그들이었다. 그 와 동시에 사람들은 검은 별의 그 기묘한 장난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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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이 도시는 사교(社交)의 계절을 맞이하였다. 여기 저기서 대규모의 사교 파아티가 개최된다는 뉴우스가 도시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그 중에서도 일류 갑부요, 사교계의 제일인자인 로버어트•바아크가 주최하는 〈검은 별의 밤〉이 제일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것은 익살군인 바아크가 생각해 낸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가장무도회(假裝舞蹈會)였다.

온갖 오락에 염증이 난 사교계의 인사들에게 있어서는 바아크가 고안한 〈검은 별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이 사교 파아티야말로 그들의 호기심과 엽기심(獵奇心)을 그지없이 북돋아 주었다. 이 〈검은 별의 밤〉의 초대장에 적혀진 파아티의 취지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벌써 수개월 전부터 이 도시를 휩쓸고 있는 검은 별의 기기묘묘 하고도 무시무시한 행동을 모방하여 파아티에 참석하는 인사는 누구나 구별 없이 모두가 다 검은 별이 사용하고 있는 것과 꼭 같은 복장을 하고 올 것. 다시 말하면 검은 두건을 머리에 쓰고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 까운을 츠렁츠렁 입어야 할 것—

둘째로 그날 밤의 파아티 순서와 여흥 같은 것에 대한 모든 절차는 미리 알리지 않고 주최자인 바아크에게 전부 위임할 것. 바아크 부인에게도 그 내용을 알리지 않을 것一

세째로 모든 지휘와 명령은 주최자인 바아크에게 맡겨 둘 것과 밤 열두시까지는 누구와도 절대로 말을 하지 말 것—

대개 이러한 취지의 파아티였다. 바아크가 원체 이러한 사교 방면에는 조예 깊고 흥미 있는 구상을 잘 하기로 유명하니만큼 사람들은 무조건 찬성을 하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었다.

이리하여 바아크의 저택에서 파아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전날, 검은 별에게서 편지가 왔다.

× ×

바아크 군, 군이 지금 대단히 신이 나서 주최하고자 하는 〈검은별의 밤〉은 무조건 중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군은 그 파아티에서 나와 나의 단원을 야유하여 하나의 놀림감을 삼으려는 취지는 적어도 나에게 대해서는 유쾌하지 못한 행사이기에 미리 말해 두는 바이다. 검은 별

×

그러나 원체 심장이 튼튼한 바아크는 그런 것은 별로 문제로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미 파아티의 날짜는 내일로 절박해 있었기 때문에 중지할래야 할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실업가인 부륵스가 그대로 진행시키자고 강경히 주장한 까닭에 바아크로서도 더욱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염려하여 경찰 본부에 사실을 보고하였다. 경찰에서는 경찰대로 검은 별이 혹시나 파아티를 습격하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파아티 당일 10여 명의 경관을 바아크의 집에 파견하였다.

그 날 밤, 정각 오후 8시부터 40쌍이나 되는 부인 동반의 손님이 바아크의 저택으로 모여 들었다. 그러니까 전원 80명이나 되는 거대한 가장무도회였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보니, 남녀가 다 검은 별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실업계나 사교계에서도 이름들이 높은 명사들이었으나 일단 사교장에 모여 놓고 보니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자기 아내도 차에서 내릴 때까지나 알고 있었지 일단, 식당이나 홀에 들어가 놓으면 어느 것이 자기 안내인지 분간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만큼 흥미와 호기심은 한층 더 컸다.

검은 별의 복장을 한 80명이 몰려 드는 광경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차에서 내려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벙어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현관에 들어서는 손님마다 역시 검은 별의 복장을 한 인도자가 서 있다가 안으로 모셔 들이곤 하였다.

이리하여 일동이 벙어리가 된 채,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주인 바아크가 일어서서,

“열 두 시까지는 벙어리가 되어 춤을 추기로 하는 것이 한층 더 흥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 두 시가 되는 순간, 나는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굉장한 여흥을 보여 드리겠읍니다.”

바아크의 이 말에 손님들은 쿡쿡 웃으면서도 규칙대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손벽만 쳤다.

유랑한 음악에 맞추어 한참 춤을 추며 돌아가는데 갑자기 홀안에 전등이 꺼졌다. 여자 손님들은 다소 무서움을 타고 입 속으로,

“앗!”

소리를 쳤으나 이것도 다 바아크의 예정한 순서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캄캄한 홀 안이다. 음악은 그냥 끊임 없이 흘러 나오는데 갑자기 한편 쪽 담벼락에 새빨간 불이 켜지며 조그만 칠판이 한 개 나타났다.

양쪽에 새빨간 불이 켜진 그 칠판 옆에 주인 바아크가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물론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분필을 들고 칠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여러분 조용히 하시오. 나는 검은 별이요. 진짜 검은 별이요!”

사람들은 가슴이 뜨끔했다. 더구나 부인 손님들은 치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 익살군인 바아크의 여흥 프로그램이라 고 생각하고 마음을 든든히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칠판에 씌어진 글자는 불빛에 비치어 역시 피빛처럼 새빨갛게 나타나 있었다.

이윽고 칠판에는 또다시 글이 씌어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꼼짝달싹도 말고 춤추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이 칠판을 주의해서 보시오. 이 댄스•파아티의 주최자인 건방진 바아크는 멀지 않아 나의 복수를 받을 것이요!”

부인 손님 중에는 일부러 웃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암흑과 침묵과 새빨간 글자는 가냘픈 부인네들의 신경을 극도로 긁어 주었다.

이윽고 검은 별의 성명은 지워졌다. 새빨간 불도 꺼졌다. 오오케스트라는 굉장한 곡조를 연주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또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에는 새파란 불이 또 칠판 양쪽에 켜졌다.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이 생기려느냐고 침을 삼켰다. 오오케스트라는 한 곡조를 끝내고 조금 쉬었다가 같은 곡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몇 분인가 지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여기 저기서 부인네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무슨 고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손님은 즐겁게 하는 계획에 있어서 아직 한번도 실수가 없는 바아크가 아니었던가!

그때 다시 전등이 화안하게 켜졌다. 그 순간, 부인 손님들은 일제히,

“악!”

하고 소리를 쳤다.

발코니에서는 그냥 음악이 흐르고 부인들은 그 자리에 얼어 붙은 듯이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이 어떻게 된 노릇인고? 넓은 홀 안에서 40명의 부인 손님만이 우뚝우뚝 서 있었고 짝을 지었던 남자들은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40 명의 남자 손님이 일순간에 땅 속으로 잦아들지 않았는가!

40명의 실종자(失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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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찌 된 셈인고? 무도장에서 춤을 추던 40명의 남자가 단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정말로 로버어트•바아크다운 재미있는 여흥이야요. 여자들만 남겨 놓고 남자들은 감쪽같이 없어지고 말지 않았어요? 모르는 척하고 우리들끼리 그냥 춤을 추어요.”

그것이 다 이 가장무도회의 주최자인 바아크가 미리부터 계획해 놓은 한 막의 재미있는 연극인 줄로 믿고 그렇게 말하는 부인네들도 있었다.

“어디 한번 집 안을 발칵 뒤져 보아요. 아마도 술레잡기를 하자는 판인가 봐요.”

다른 부인이 또 그런 말을 하였다.

“그래,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집 안을 뒤져요.”

맨 처음 부인이 곧 찬성을 하는 바람에 일동은 와아하고 떠들면서 웃었다.

거기서 부인네들은 일제히 복도로 뛰어 나갔다. 아마도 바아크는 검은 별의 본부와 꼭 같은 설비를 어떤 방에다 해놓고 거기다 남자들을 모두 숨겨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바아크가 할려고만 들면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부인네들은 쭈르르 서서 넓은 층계를 올라갔다. 방마다 화려한 장식을 베풀어 놓았으나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웃어가며 방마다 두리두리 뒤졌다.

마침내 그들은 삼층까지 올라왔다.

거기에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어린 애들이 노는 방과 하인들이 자는 방이 있었다. 부인들은 복도에서 귀를 기울이고 방 안에 인기척을 살피고 있을 때, 그중 한 방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아, 바루 여기야요! 이 방에 사람이 있어요!”

부인 하나가 눈짓을 하며,

“들어가 봐요.”

하고 물었다.

“암, 들어가 봐야죠.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아주 침착하게 행동을 해야만 해요.”

하고 다른 부인 하나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들은 가만히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방 안은 캄캄하다. 그 중 가장 용기가 있는 부인 한 사람이 킥킥하고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가자 벽에 딸린 스윗취를 눌렀다. 방 안이 환안해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 있어서의,

“어마나?”

하고 고함을 친 그들의 부르짖음은 결코 재미가 있어서 배앝는 그것은 아니었다. 놀람과 공포에 찬 그것이었다.

방바닥 위에는 여자 하인이 한 사람 손발을 결박 당하고 쓰러져서 낑낑거리며 굴러 다니고 있었다. 하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바아크 부인은 깜짝 놀라 뛰어갔다. 다른 손님들도 손을 도와 입에 물린 손수건을 끌러 주고 커어튼을 찢어서 동여맨 박승을 풀어 주었다.

“마리,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바아크 부인이 고함을 치듯이 물었다.

“마님.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마님께서 손님에게 인사를 할려고 아래로 내려가신 후에 저는 복도를 걷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이 희미해지면서 쓰러졌나 봐요. 누군가가 저를 붙들어 준 것도 같았지만 잘은 모르겠어요.”

“그럼 네 시간 동안이나 이 방에 있었다는 말이냐?”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한 10분 전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처럼 재갈을 물리었기 때문에 사람을 부를 수가 없었어요.”

“어마나! 이럴 리가……”

바아크 부인은 놀라는 표정으로,

“이것이 다 바아크의 여흥의 한토막이라면 정말 너무하지 않어? 마리, 어서 방으로 가서 좀 쉬어요.”

마리는 자기 방이 있는 복도 저 쪽으로 사라졌다.

화려한 의상들을 몸에 걸친 손님들은 바아크를 찾아내려고 바아크 부인의 뒤를 따랐다.

그 때 자기 방으로 들어갔던 마리가 도로 뛰어 나오면서,

“아!”

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냈다. 부인들은 그리로 뛰어갔다.

“여기두…… 여기두.”

마리는 고함을 쳤다.

일동은 그리로 뛰어 들어가 보았다. 또 한 사람의 여자 하인이 침대 위에 결박을 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리의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바아크 부인은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났다. 눈초리가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남편이 밉살스럽기 짝이 없다.

“아, 저 조그만 검은 별!”

하고 그 때, 부인 하나가 고함을 쳤다.

“어마나?”

하인의 볼에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었다.

“검은 별은 언제든지 희생자에게 저런 표적을 하지 않아요? 남편은 어디까지나 정말 검은 별처럼 보이기 위해서…….”

바아크 부인은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대답을 하고 방을 나섰다.

그 때, 바아크 부인은 문득 자기 목에 걸렸던 다이야 목걸이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마리, 내 목걸이가 없어졌다. 아마 아까 너를 풀어 줄 때, 떨어졌나 보다. 가서 줏어 와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손님들도 그제야 비로소 자기 목에 손을 갔다 대 보았다.

“아, 내 목걸이도 없다!”

“내 다이야 목걸이도 없지 않어?”

“내 진주 머리빗도 없어!”

그들의 얼굴에는 그 어떤 공포의 빛이 알알이 떠올랐다. 부인네들은 거의 전부가 피해자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막대한 장식물이 분실된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좀 침착하십시다. 나는 잘 알고 있어요. 이건 분명히 남편의 여흥입니다. 남자 분네들은 어느 한 방에 숨어서 우리들이 무서워하는 모양을 내다보고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바아크 부인은 그런 말을 하여 손님들을 안심시키려 하였다.

“그렇지만 대체 언제 목걸이를 뺐을까?”

손님 하나가 의아스런 얼굴을 지었다.

“그건 아까 전등이 꺼졌을 적일 거야요. 꼼짝달싹도 말고 칠판을 바라보라고 그럴 때야요.”

“그래요 그때 우리들 옆에는 남자 한 사람씩 서 있었죠. 그러니까 한 사람이 한 사람씩 맡아 가지고, 빨간 손이 칠판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의 목걸이는 없어졌어요. 그렇게 하도록 연극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이 분명해요.

“어쩌면! 그러나 두고 봐요. 그네들을 발견만 하면 그대로 두지 말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어서 좀 더 찾아 봐야겠어요.”

하고 바아크 부인은,

“그렇지만 무섭다는 얼굴을 해서는 아니 돼요. 남자 분네들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니까 반대로 그들을 웃어 줍시다요.”

그러는데 누구가,

“아, 부인의 목에 검은 별이—”

하고 돌연 고함을 쳤다. 일동의 시선이 바아크 부인의 목으로 일제히 쏠려갔다. 부인의 흰목에 조그만 검은 별이 한 개 붙어 있지 않은가!

“어마나?—”

그러나 자세히 보니, 검은 별의 표적은 부인네들 전부에게 붙어 있었다. 어깨에, 팔에, 뒤통수에, 가슴에, 등에 ……

그들은 삼층을 뒤져 보았다. 그러나 거기서도 박승을 지운 하녀를 발견한 이외에는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들은 다시 이층으로 내려와서 방이란 방은 죄 뒤졌다. 벽장까지 들어가 보았다. 그들은 또 일층으로 내려왔다. 오오케스트라가 발코니에서 쉬고 있었다.

넓은 식당은 텅 비어 있었고 하인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이크 부인은 이상히 생각하여 집 뒤로 돌아가 보았다. 거기서 또 새로운 발견을 하였다.

남자 하인 전부가 손발을 동여매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녀들과 같은 방법으로 기절을 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손발의 자유를 잃고 있는 자기들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여흥으로서는 너무 심한 장난이라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리하여 하인들도 섞여서 다시 수색은 계속되었다.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나가 버렸는지도 모르지 않어?”

바아크 부인은 발코니로 나가서 정원을 경계하고 있는 형사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형사는 가벼운 웃음을 입가에 지으며,

“당신들 몰래 밖으로 나가 버렸답니다. 벌써 얼마 전이지요. 부 인 손님들이 집 안을 뒤지러 다닐 때까지는 잠자코 있으라는 분부를 하고 나갔읍니다. 자동차를 타고요.”

“그럼 지금쯤은 어느 구락부에서 우리를 웃고 있을 게 아냐?”

바아크 부인은 다시 말을 이어,

“그렇지만 남자들이 밤 식사를 하지 않고 나가 버렸다는 건 좀 이상해요. 하는 수 없으니 우리들끼리만 식사를 해요.”

그들은 밤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남자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부인은 하인 한 사람을 불러 가지고, 시내 일류 구락부에 죄다 전화를 걸어 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한참만에 하인은 들어와서 아무 데도 남자 손님들이 없다고 보고하였다.

거기서 하는 수 없이 손님들의 가정에 전화를 각각 걸어 보았으나 역시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남자들이 제 발로 돌아오기까지 우리들은 모르는 척하고 재미있게 놀아요.”

바아크 부인이 말했다.

“모두 자동차를 타고 가 버렸으니까 우리들은 갈 수도 없어요.”

부인 하나가 울상을 지었다.

바아크 부인은 손님을 잘 접대하는 데 있어서는 평판 높은 사교가였다. 그러나 이때처럼 입장이 딱한 적은 없었다.

여자 손님들은 우울한 표정으로 금강석 목걸이가 걸려 있던 자기 목덜미를 어루만져 보았다. 기분이 모두 침울해졌다. 남편에 대한 바이크 부인의 분노는 점점 더 높아가고 있었다. 이 사교 계절 중 가장 성공했다고 칭찬을 받은 〈검은 별의 밤〉은 인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게 되었다. 주인공 로버어트•바아크는 너무 지나치게 오랫 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쇠사슬에 매여서

[편집]

밤이 이윽고 새었다. 그래도 남자들의 행방은 전연 묘연하였다. 전화 하나 걸려오지 않는다.

악대는 돌려 보냈다. 바아크 부인은 하는 수 없이 택시를 불러 여자 손님들을 일일이 집으로 모셔다 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분해서 엉엉 울었다. 이윽고 부인은 잠이 들었다.

오정 때쯤 해서 친구 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와서 부인은 일어났다. 부인은 전화를 받았다. 부인은 그 때야 비로소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 밤 모였던 남편들은 단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온 이는 없다고 한다. 땅속으로 잦아든 것처럼 그들 40명의 남편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들 중에는 중요한 일이 태산처럼 밀린 사람도 있었고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서와 사무원들이 미친 듯이 주인을 찾아 다닌다고 하였다.

오후에는 전화가 여기 저기서 걸려왔다. 하루 저녁에 남편을 잃은 부인들이 발광을 하기 시작하였다. 바아크 부인은 정중한 말로 미안하다고 빌었다. 부인의 울화는 극도에 달했다.

오후 두 시가 지날 무렵, 운전수가 흥분한 얼굴로 부인 앞에 나타났다. 남편의 외국제 자가용이 강변 쓸쓸한 장소에 유기되어 있는 것을 자동차 협회의 역원 한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바아크 부인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런 사실을 발표해야 할는지 어쩔는지를 몰랐다.

“이것도 다 남편의 장난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부인은 경찰이나 시립 탐정의 힘을 빌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문득 로오쟈•바베크가 생각이 났다. 바베크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어제 밤에는 참석 못했지만 검은 별과의 지금까지의 투쟁 경력으로 보아 40명의 행방불명인을 찾아내기 쯤은 문제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인은 곧 바베크의 아파아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통에 나온 것은 부하 막스였다.

“바베크 선생님은 지금 막 댁으로 찾아 가셨읍니다. 한 10분 전입니다. 아마도 검은 별에 관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러셔요? 마침 잘 되었읍니다.”

부인은 전화를 끊고 바베크가 도착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바로 그 즈음, 바아크 부인은 전연 모르고 있었지만 도하의 각 신문은 40명의 괴상한 실종사건(失踪事件)에 관한 호외(號外)를 발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비밀에 붙이기는 대단히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실종자의 비서들이 그만 사실의 힌트(暗示)를 신문 기자들에게 주고 말았다.

어떤 신문은 그 어떤 대규모의 계획 밑에서 40명의 인사가 제가끔 종적을 감춘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다른 어떤 신문은 또 이러한 추측을 부정하여 40명의 인사 가운데 직접 실업계에 관계하고 있는 것은 절반 밖에는 아니 된다고 반박하였다. 또 어떤 신문은 〈검은 별의 밤〉을 개최한 보복 수단으로서 검은 별이 그들을 유괴한 것이 분명하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신문사의 이러한 추측을 비웃어 버리고 말았다. 바아크와 손님들은 재밤중까지 춤을 추고 있다가 다 같이 자동차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때의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놀러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들은 바아크의 집 부근에는 통 나타나지 않았다고 경찰부장은 기자들에게 단언하였다. 어째 그러냐 하면 그날 밤, 바아크의 집 주위에는 경관들이 엄중히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돈 많은 사람들의 장난일 따름이다.”

경찰부장은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실은 장난이기를 경찰부장은 희망했을 따름이요, 마음 속 한편 구석에는 무엇인지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

만일 그 때, 바아크와 그의 친구 39명의 인사들이 어디서 그리고 어떠한 비참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를 경찰부장이 알았달 것 같으면 그는 자기의 불안이 추호도 어김없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혀를 찼을 것이다.

그렇다, 실상 그것은 40명의 포로들은 낡은 식민지풍(植民地風)의 드넓은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평안히 자유로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40명이 긴 쇠사슬에 조롱박 모양 주루루 비끄러 매어진 채 앉아 있었다. 한 자 길이는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은 40명 전부가 움직이지 않는 한, 앞으로나 뒤로나 꼼짝달싹도 못했다.

그 드넓은 방에는 문이 셋, 들창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감시를 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좀처럼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열 명씩 네 줄로 동여매진 채였으니까 문으로도 들창으로도 뛰어 나갈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 40명이 깊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그 지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맨 처음으로 정신을 차린 것은 바아크였다. 그는 자기 손목과 발목이 사슬로 비끄러매진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는 놀라서 주위를 돌아다 보았다. 그들의 친구 39명이 똑 같은 자태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일어나는 이는 없다. 바이크는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그만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사슬이 너무도 짧았다. 그는 다시금 고함을 치고 사슬을 잡아 당기어 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바아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것 역시 군의 장난의 계속인가?”

하아레라는 친구가 역시 정신을 차리고 묻는 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이건 결코 내가 한 노릇은 아니다.”

하고 바아크는 부르짖으며,

“어째서 이런 데로 왔는지 나는 통 모른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냐? 날이 밝았다. 날이 벌써 밝지 않았는가? 오분 전에는 밤 아홉시 경이었다. 나는 준비가 다 됐는지 어쩐지를 살필 셈으로 집 안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바아크, 자세히 보라! 어제 밤에 군에게서 초대를 받은 손님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이곳에 있다. 노예처럼 모두가 다 사슬로 비끄러매진 채—.”

하아레는 빙글빙글 웃고 있다. 그는 아직도 이것을 바아크의 장난인 줄로만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다. 이건 나의 여흥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다가 바아크는 갑자기 부르짖었다.

“그렇다. 이건 그 놈의 장난이다!”

“그 놈? 그 놈이 누구라는 말이냐!”

“검은 별이다! 그 놈은 만일 내가 〈검은 별의 밤〉을 개최하면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고 협박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놈은 지금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흥, 군의 연극이 그만하면 상당하이.”

“군은 아직도 이것이 나의 여흥인 줄로 믿고 있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어떻게 감쪽같이 이런 짓을 했는지 그걸 좀 설명해 주게.”

“도대체 군은 어떤 일을 당했는가?”

하고 바아크는 먼저 그것을 물었다.

“나는 검은 까운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한 채 택시에서 내린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네. 그리고는 또 발코니에서 군을 만나서 어둑컴컴한 서재로 인도를 받아 들어간 생각이 나네. 그 때, 군은 무척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 같은 태도로서 극히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지 않았나?”

그 말을 듣고 있던 바아크는 놀라며,

“하아레, 나는 맹세를 하마. 나는 군을 발코니에서 만난 적도 없으려니와 서재로 인도한 사실도 없네. 그래, 그리고는 또 무엇을 했나?”

“이 양반이! 아무리 모르는 척해도 소용이 없어. 아, 부륵스가 정신을 차렸다.”

부륵스는 키가 작으나 몸집이 풍부한 사나이었다. 그는 일종의 호인 타잎의 풍채를 하고 있었다. 실업가로서는 대단한 재주를 갖고 있지만 다른 일에 관해서는 곧잘 속아 넘어가는 일종의 호인이었다. 부륵스는 주위를 한번 휘이 둘러 본 후에 서글픈 표정으로 바아크를 향했다.

“부륵스, 그런 표정으로 나를 대하지 말게. 이건 내가 한 장난이 아니다. 여기가 어딘지,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벌써 날이 밝았다.”

“뭐가 뭔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재미 있는 장난이야.”

부륵스는 빙그레 웃었다.

“아니다. 나는 전연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하아레,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주게.”

“군이 서재에서 다시금 나를 복도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었지. 그 때, 갑자기 무엇인가 나의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지독한 냄새를 맡고 나는 비틀 비틀 쓰러져 버렸다. 그랬더니 군은 나를 바라보며 쿡쿡 웃지 않았는가?”

“나도 똑 같은 경험을 했었네.”

그것은 부륵스였다.

“나도 그랬네.”

다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또 들렸다. 돌아다보니, 일동은 점점 의식을 회복하는 모양으로서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일제히 긴장과 놀란 얼굴로 바아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미 날이 밝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아크는 어디까지나 자기는 전연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상한 것은 내가 눈을 떴을 때, 일어나 있는 것은 자네 혼자 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고 하아레가 바아크를 여전히 의심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군보다 2분 전에 정신을 차렸을 뿐이다.”

그 때, 부륵스는,

“그것은 어쨌든 간에 이제부터는 우리를 어떻걸 셈인가? 부인 손님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아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 말이야?”

“나도 모른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전연 모른다. 그러니까 내 말을 믿어 주게. 검은 별이 우리들을 포로로 만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그 놈은 우리들을 그대로 두지는 않겠노라고 협박을 했었으니까.”

“사정을 듣고 보니 그런지도 모르겠네.”

하아레의 대답이다. 그 말에 부륵스는 공포에 사로잡히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오늘 아침 사무실에 나가야만 하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커다란 장사가 실패로 돌아간다. 만일 이것이 정말로 검은 별의 복수 행위라면 그 놈은 대체 어디 있는가? 바아크 군, 군의 말이 사실이라면 군은 또 어떻게 해서 이리로 왔다는 말인가?”

“그걸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준비가 다 됐는지 어쨌는지, 그걸 살펴볼 셈으로 집 안을 거닐고 있었다. 오오케스트라도 와 있고 모인 손님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그래 나는 서재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사실은 여흥으로 유령을 내 세울 계획을 하고 열두 시까지는 서재에 불을 켜서는 아니 된다고 명령을 했었지. 결국 나도 제군과 똑 같은 봉변을 당한 셈이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를 맡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 때도 옆에서 누군가가 쿡쿡 웃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네. 그리고는 지금 정신을 차렸으니까.”

“까스•피스톨이다!”

하아레가 단언을 하였다.

요술장이 검은 별

[편집]

“그렇다. 그러나 내 집 서재에서 어떻게 그런 대담한 짓을 했는지, 통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집 주위에는 경관이 엄중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검은 별의 습격을 받을까 해서 몰래 경찰에 통지를 해 놓았으니까, 설사 그 놈이 집 안으로 숨어들어 왔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40명이나 되는 우리들을 밖으로 유괴해 냈는지. 통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들이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에 검은 별과 경관대의 맹렬한 충돌이 있었는지 누가 알아?”

부륵스의 말이다. 일제히 일어서서 들창 밖을 좀 내다보자.

“그러면 여기가 대체 어딘지 짐작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하아레의 말에 40명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혼자는 사슬이 짧아서 일어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들창 밖은 황량한 산야(山野)였다. 수풀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한 쓸쓸한 장소여서 여기가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멀리 떨어진 시골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손발의 자유를 잃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네. 백년이 돼도 사람 하나 찾아 올 것 같지도 않은 장소다. 이 집만 해도 백년은 됐을 거네.”

“바아크. 도대체 군이 잘못이야.”

하고 그 때 하아레가 불평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검은 별의 밤〉 같은 걸 열지만 않았으면 이런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그렇구 말구”

누군가 하아레의 말을 받았다.

“나는 여기서 사무실로 가야만 하겠는데, 야단났네!”

부륵스의 불평이다.

“나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다.”

하아레였다.

바로 그 때, 그들의 등 뒤에서 굵다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제군 조금만 기다리시오. 인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오.”

조롱박 모양으로 사슬에 발목을 매인 40명의 명사가 일제히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앗—.”

그 중 몇 사람의 입으로부터 공포의 부르짖음이 튀어 나왔다. 그들은 한 눈에 그것이 검은 별인 줄을 깨달았다.

그렇다. 검은 별은 팔짱을 지긋히 낀 채 문 안에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까운에 검은 마스크다. 아침 햇발이 두건(頭巾) 이마에 붙은 검은 별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음, 네가 검은 별이로구나!”

바아크가 입을 열었다.

“말씀 대로다! 바아크 군.”

검은 별의 어조는 엄숙했다. 분노에 넘쳐 있었다. 그는 입을 여는 대신 달려들 것 같은 태도를 보였으나 그것을 스스로 억제하는 것 같았다. 바아크는 적지 않게 겁을 집어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공포에 떨고 있었다.

바아크는 그러면 될 수 있는 한 태연한 어조로 검은 별을 향하였다.

“너는 우리들을 마침내 손에 넣었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수완이야.”

“흥, 그러나 너희들 같은 계급의 인간을 달래기는 그리 많은 지혜가 필요치 않어.”

바아크는 그 경멸하는 것 같은 검은 별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며,

“얼마든지 우리를 경멸해도 좋다. 어쨌든 우리들은 사슬을 벗어나지 못한 무력한 사람들이니까 하는 수 없다.”

“아, 이건 잠간 실례! 내 말이 다소 지나친 것도 같으이. 그러나 군은 우리의 단체와 우리의 행동을 웃음거리로 만들려 했다. 거기 대하여 우리는 군에게 항의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나의 항의를 무시하고 경박한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군의 계획을 그대로 진행시켰다. 그리고 군의 그러한 계획은 충분히 성공한 셈이다. 군의 손님들은 보는 바와 같이 이처럼 공포와 전률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이냐? 우리들은 초저녁부터 네게 희생이 되었지만 그 후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이냐?”

바아크는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일동도 똑같은 호기심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인 손님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실례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 점만은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들은 부인 손님들을 실망케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이 이 계획한 여흥은 원만히 진행시켰다. 군 자신이 무대감독을 하는 것보다 몇 갑절이나 더 훌륭한 연출로서 말이다.”

검은 별은 자기의 자랑을 대단히 좋아 한다. 그래서 그는 어제 밤의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군이 어디까지나 〈검은 별의 밤〉을 주최하겠다는 것을 알고 난 나는 군에게 한번 실물교육(實物敎育)을 베풀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 단체의 위력은 실로 훌륭한 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하였다. 군의 집에서 한길 하나를 건너 선 맞은 편 쪽에 〈가족 호텔〉이 있다. 우리들의 조직의 손길은 그 호텔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호텔을 근거로 해서 그 어떤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검은 별은 일단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으며,

“만일 군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술 창고를 한 번 더 살펴보라. 만일 군이 세상에서 평판 하듯이 그렇듯 현명하다면 그 술 창고 담벼락에 문이 한 개 달린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 문은 교묘히 숨겨져 있지만 군과 같이 민첩한 인간이라면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은 하나의 굴속으로 통해져 있다. 그 굴은 사람 하나가 간신히 엎디어서 다닐만한 조그만 턴넬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길 밑을 꿰어 맞은 편 〈가족 호텔〉 지하실로 통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굴을 파려면 상당한 시간을 요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굴을 파낸 흙은 도대체 어디다 처분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부륵스의 질문이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그 점은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나의 부하들을 보호하지 않아서는 아니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굴을 파내는 것은 겨우 이틀 밤의 노동이었다. 단원 중에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있어 돈만 마음대로 쓰면 최신식 기계를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음, 그럼 그 굴 속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나갔다는 말이지?”

하아레의 물음이다.

“가만히 내 이야기나 들어 봐. 물론 나는 부하를 데리고 그 〈가족 호텔〉로 갔다. 나의 부하가 전부터 들어 있는 그 방으로 간 것이다. 거기서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아크 군, 나는 어제 밤에 모이는 손님들의 신분과 수효를 자세히 조사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군의 계획까지도 알아 두었다. 그러니까 나의 계획도 세우기가 수월했었다는 말이야.

나는 또 바보 같은 경관대가 군의 집 주위에 배치되는 것을 보았다. 사복 형사가 군의 집 정원을 감시하는 것을 보았다. 특무형사가 발코니에서 군이 일상 사용하는 상등 엽초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두 사람의 부하를 데리고 남자 손님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굴 속으로 해서 군의 집 술 창고로 빠져나와 군의 서재로 숨어 들어갔다. 우리들은 까운과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군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고 손님들도 같은 복장으로 참석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복도에서 만나는 군의 집 하인들도 누구 하나 우리들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군이 남자 손님에게 대하여 열두 시까지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 참으로 나에게는 편리하였다. 그리고는 우리들은 손님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손님을 인도 하여 서재로 데리고 가서 까스•피스톨을 사용하였다. 이윽고 서재에는 기절해 쓰러진 손님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물론 부인 손님이 무도장에서 남자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는 사이에 굴 속으로 숨어 들어 온 다른 여러 부하들을 쓰러진 손님 대신으로 한 사람씩 무도장으로 보냈다. 까운을 입고 마스크를 하고 게다가 말까지 금지 해놓았으니 실로 안성맞춤이었다.”

바아크의 얼굴에 분노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검은 별은 그것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나의 부하들은 무도실로 가자 한사람씩 상대자를 골랐다. 그리하여 두 시간 반 동안 부인 손님들과 춤을 추었다. 그 동안에 다른 부하는 하인들을 하나씩 처분하였다. 오오케스트라는 연주를 계속하고, 나의 부하가 어여쁜 부인들과 춤을 추고 있을 즈음, 정신을 잃은 제군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술 창고로 운반 되어 굴 속을 지나서 〈가족 호텔〉로 옮겨진 것이다. 거기서 다시 뒷 뜰에 면한 들창으로 해서 자동차에 싣고 이리로 운반되어온 것이다. 실로 간단한 일이지 뭐야? 뿐만 아니라, 군의 순서를 다소 변경하여 한밤중에 나는 불을 전부 끄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아무 말도 말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썼다. 부인들과 같이 춤을 추고 있던 남자 손님은 모두가 다 나의 부하다. 그리고 부인들은 모두 귀중한 보석을 갖고 있었다.”

“그래 너는 그것을 훔쳤다는 말인가?”

바아크가 부르짖었다. 다른 손님들은 일제히 신음 소리를 냈다.

“참으로 걸작이었다!”

검은 별은 빙글빙글 웃으며,

“내가 무대 위 칠판 옆에서 요술장이 같은 노릇을 하고 있을 때, 부인들은 군이 예고한 공포와 전률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내 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틈에 나의 부하는 교묘하게 금강석 목걸이와 진주로 만든 패물들을 훔친 대신에 부인들의 어깨, 팔, 가슴, 모가지 같은 데다 조그만 검은 별을 하나씩 살그머니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방에 불을 켰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남자 손님, 다시 말하면 나의 부하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렸을 때였다. 나는 불을 켜기 직전에 부하들을 이끌고 발코니로 나왔다. 그리고는 바보 같은 경관대에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이나 하는 것처럼 귓속말로 속삭여 놓고는 제군의 자동차를 타고 도망을 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는 부인 손님들은 그것이 마치 무슨 신통한 여흥인 것처럼 생각하고 남자 손님을 찾아내려고 집 안을 뒤지기 시작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어때? 그만 했으면 나의 솜씨가 상당하지?”

그러면서 검은 별은 유쾌하게 한바탕

“……하하하하……”

웃어댔다.

스파이의 전화

[편집]

검은 별은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방면의 전문가인 내 부하의 말을 들으면 어제 밤 부인들에게 훔친 보석은 우리 단원 전부에게 상당한 금액을 분배하여 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제 밤 나는 복수와 이익을 한꺼번에 성취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계획의 전부는 아니다.”

이 최후의 한 마디에는 그 어떤 협박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불안으로 말미암아 가슴을 조리고 있는 40명의 인사는 검은 별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검은 별은 벽으로 걸어가서 단추를 눌렀을 따름이었다. 어디선가 총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네 사람의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들은 수령의 지시 대로 걸상, 테이블, 식기, 컵 등을 운반해다가 넓은 방 안을 마치 식당처럼 만들어 놓았다.

“제군, 앉으시오. 쇠사슬이 다소 귀찮을 것 같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요. 나는 제군이 제군의 집에서 취하는 것과 같은 아침식사를 준비하였읍니다. 단원 가운데는 전문적인 요리인이 있어서 제군의 시중을 잘 들어 드릴 것이요. 팁은 필요가 없읍니다. 모두들 어제 밤 보석을 많이 분배 받았으니까.”

검은 별의 말이 끝나자 식사가 들어왔다. 40명의 포로들은 대단히 만족하였다. 얼음에 채운 과일, 향기로운 커피, 맛있는 빵, 조그맣게 군 고기, 챺, 햄, 베이콘, 달걀 훌륭한 식사였다.

“내가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시오. 나는 제군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 잠깐 이야기할 것이 있읍니다. 나는 아까 내 계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오.”

검은 별은 거기서 잠시 무엇을 생각하다가,

“나는 아까 부륵스 군이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어서 사무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고 부륵스가 말을 받아,

“나는 오늘 아침 중대한 일이 있어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커다란 손해를 본다. 빨리 나를 보내다오. 그러면 상당한 보수를 너에게 하마!”

검은 별은 그 말을 듣자 머리를 젖히며 웃었다. 까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심부름군들도 웃었다.

“군은 아마 그 보수로서 몇 천 불 쯤 나에게 줄 모양이지만 나는 그러한 코 묻은 돈은 필요가 없읍니다. 부륵스 군, 나는 그대의 장사 속을 잘 알고 있는 것이요. 그리고 그 장사의 상대자 몇 명이 이 포로 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잘 아오. 그대는 장사에 있어서는 친구를 배반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요.”

부륵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포로 가운데 몇 명이 의심쩍은 표정으로 부륵스를 바라보았다. 부륵스는 가장 악질적인 인상이었다.

“나는 직접 내가 나서서 장사를 할 테다. 나의 부하는 그 때문에 지금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위하여 어떤 주(株)를 매점(買占)하고 있다. 그리고 시기를 보아 한꺼번에 내던져서 사는 편을 전멸시킬 셈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 단체는 약 50만 불의 이득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손실은 전부 그대와 그대의 친구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은 이 장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군은 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검은 별의 밤〉을 주최한 바아크군의 친구라는 데 대해서, 그리고 또 어제 밤, 회에 출석한데 대해서 그만한 벌을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부륵스의 얼굴로부터 핏기가 쭉 사라졌다. 그는 손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자기의 그 악질적인 장사 속이 세상에 퍼질 것이 더욱 두려웠다.

“그리고 다른 제군도 모두 벌을 받아야만 한다. 하아레 군은 유명한 에메랄드를 갖고 있을 것이다. 군이 여기서 돌아갈 때까지는 내가 그것을 인계 받을 것이다. 그 밖에 제군에 대해서도 각각 요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는 역시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나의 요구를 들어준 분은 까스•피스톨로 기절을 시켜서 여기서 운반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안전 지대에 보내 줄 터이다.”

검은 별은 말을 이어,

“도망을 하려고 해도 그것은 허사일 것이다. 커다란 소리를 낼려면 내도 좋다. 누구 하나 제군의 목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여기는 낡은 집으로서 최근 내가 빌려서 수선을 하고 가구의 일부를 설비해 놓은 것이다. 거리의 중심지에서는 퍽 떨어진 곳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집 주위에는 엄중한 감시가 배치되어 있다.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곧 경보가 내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자아, 그러면 어서 식사를 하시오. 그리고 식후에 엽초라도 피우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요. 나는 외출하였다가 오후에 다시 돌아와서 제군을 뵙겠소. 그 즈음에는 제군의 생명에 대한 생살여탈(生殺與奪)의 권리가 완전히 내 수중에 있게 될 것이요.”

검은 별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무력한 40명의 포로들의 입으로부터 질문, 요구, 애원의 소리가 일제히 일어났다. 그러나 검은 별은 돌아도 보지 않고 복도로 나가버렸다. 심부름군들은 식기를 거두고 성냥과 엽초를 배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오후 네 시. 도하의 각 신문은 다시금 호외를 발행하여 실업계와 사교계의 유명한 신사 40명이 검은 별에게 유괴를 당했다는 보도를 하고 그것은 로버어트•바아크가 주최한 〈검은 별의 밤〉에 대한 보복적 행위라고 하였다.

검은 별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에는 유괴의 진상이 죄다 적혀져 있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부인 손님들이 보석을 도둑맞았는가, 어째서 사교계의 명성(名星)들이 검은 별의 단원들과 댄스를 했는가, 어째서 검은 별이 경관의 눈 앞에서 손님들의 자동차를 타고 태연히 도망쳤는가를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검은 별이 예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40명의 포로들을 조소하였다. 그리고는 또 공포에 떨기 시작하였다.

한편 바베크는 각 신문사가 진상을 알기 직전에 검은 별로부터 조소에 찬 편지를 한장 받았다. 검은 별은 그 편지로써 자기가 한 일을 알리고 바베크에게 다시금 싸움을 걸어왔다. 그래서 바베크는 막스에게 준비를 명령하고 바이크 부인을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러나 바아크 부인의 입에서 그 이상의 자세한 사실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40명 실종자의 행방을 알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바아크 부인과 헤어졌다.

한편 경찰 본부에서도 실종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만 할는지 통 알 수가 없읍니다. 나는 정보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최후 오분 동안에 살짝 도망을 하는 것이 검은 별의 상투 수단이니까요.”

하고 바베크는 경찰부장에게 말했다.

“만일 그 놈이 군에게 무슨 정보를 제공할 때, 경찰의 응원이 필요하거든 전화로 곧 알려 주시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그 악당을 체포하여 놈의 단체를 파괴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니까 말이요.”

경찰부장과 헤어진 바베크는 밖으로 나와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막스는 풀풀 화만 내고 있었다. 더구나 검은 별을 곰살곰살 따라가 버린 개를 생각 하면 정말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손이 그 놈의 모가지에 가 닿기만 해 봐라. 그저 닭의 목을 비틀 듯이 이렇게 힘껏 비틀어 죽일 테다!”

그러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전홥니다.”

바베크는 수화기를 들었다.

“로오쟈•바베크이십니까?”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렇읍니다.”

“당신은 검은 별에 관한 소식을 알고 싶지 않읍니까?”

“나는 놈을 당장에라도 붙잡아 버리고 싶읍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을 하나 알으켜 드리지요. 당신은 자동차가 유기되어 있던 장소를 아실 것이요. 그 장소로부터 오른 편 숲 사이에 조그만 강이 흐릅니다. 그 강줄기를 타고 가보십시오. 충분히 재미있는 광경을 발견할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이름은 댈 수 없읍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지요. 나는 악당입니다. 그러나 검은 별은 말하기를, 나같은 것은 단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단원이 아니라면 어떤 사정으로 당신이 그들의 내막을 그처럼 잘 알고 있다는 말이요?”

“그것은 말입니다. 그 놈이 부하와 함께 자동차를 몰고 왔을 때, 나는 그 강가의 숲 속에서 잘 보았기에 말입니다. 놈들이 까운과 마스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눈에 그들이 검은 별의 일행인 줄을 알았읍니다.— 바베크씨, 나는 조금도 거짓없는 정보를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신용하건 안 하건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지요. 만일 나를 신용하시고 검은 별을 훌륭히 체포하신다면 나는 그 때, 역시 전화로 당신에게 그 어떤 부탁을 하나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상대편은 전화를 끊었다. 바베크가 돌아서 보니 막스가 그의 모자를 들고 서 있었다.

“외출하실 필요가 계실 것 같아서요.

“그 밖에 무슨 딴 생각은 없는가?”

“있읍니다. 전화를 들어 보니, 내일 아침 쯤은 검은 별을 만날 것 같읍니다. 이 손으로 그 놈의 목덜미를—”

검은 별의 요구 조건

[편집]

40명의 포로들은 그날 오전 중, 자기들의 이 불우한 재난에 대하여 의논도 하고 화풀이도 했다. 그리고 정오에는 또다시 훌륭한 점심 식사가 나왔다. 식당 보이들은 모두가 다 벙어리가 아니면 귀머거리와도 같았다. 그들은 포로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검은 별이 다시금 포로들 앞에 나타난 것은 밤 여덟 시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있었으나 마스크 사이로 두 눈이 무섭게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 제군에게 만찬을 대접하고자 합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오늘 하루 동안에 생긴 일을 제군에게 보고해 드리겠읍니다.”

뒤이어 40명의 무력한 포로들은 제가끔 검은 별에게 질문의 화살을 던졌다. 그러나 검은 별은 거기 대해서 단 한 마디 대답도 없었다.

그러는데 부하들이 들어와 그 날 저녁 신문을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는 포로들의 모험과 함께 전 시민의 흥분된 상태가 상세히 보도되어 있었다.

검은 별은 문간에 가까운 걸상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참으로 대단히 바쁘고도 이익이 많은 날이었읍니다. 난생 처음으로 그처럼 많은 전화를 받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제군 가운데는 중개업자(仲介業者)도 있으니까, 사무실에서 전화와 수신기(受信機)를 양편에 놓고 시장(市場)에서 일하는 부하 사원을 지휘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새삼스레 느꼈읍니다. 나는 오늘 그것을 했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 외로 좋은 성적이었읍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부륵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부륵스의 얼굴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그는 검은 별의 설명을 듣고 자기의 계획이 파괴된 사실을 짐작하였다.

“이 놈, 두고 보아라! 인제 꼭—.”

부륵스는 부르짖었다.

“흥, 실행할 가망이 없는 협박처럼 싱거운 것은 없다. 그만하고 인제 고만 둬요, 부륵스 군! 나는 다음 하아레 군에게 또 뉴우스를 갖고 왔읍니다—.”

“무슨 뉴우스인지는 모르지만 저 에메랄드만은 못내 놓겠다!”

하아레는 분명히 말했다.

검은 별은 쿡쿡 웃으면서 검은 까운 밑으로 손을 쓸어넣었다. 그는 비인 테에블 앞으로 걸어가서 까운 밑에서 쥐고 나온 주먹을 탁 펼쳤다. 새파란 상보 위에 떨어져 내리는 예쁜 보석이 한 줌 찬연히 빛나고 있었다.

“어때요? 훌륭한 보석이죠! 나는 이것을 우리 단원에게 적당히 분배해 줄 작정이요. 이건 군의 에메랄드요. 하아레 군, 군은 이것을 내가 손에 넣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걸 손에 넣었다는 말이냐? 안 전보관고(安全保管庫)에 넣어 두었던 것인데—.”

“거기서 꺼내온 것이요. 나의 부하 중에도 가장 민첩한 사나이가 같은 장소에 안전 보관고를 빌려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 사나이는 오늘 자기의 안전 보관고에 공채(公債)를 가질러 갔었오. 그리고 그 때 군의 안전 보관고도 열어서 이 에메랄드를 꺼내 온 것이요. 열쇠라고요? 그런 건 문제 없지요.”

“악마!”

하아레는 부르짖었다.

“욕질은 그만 둡시다. 나는 제군 가운데 25명에게 대해서 한 사람 앞에 10만 불씩을 요구합니다. 인제 그 이름을 불러 드리겠읍니다.”

“한 사람 앞에 10만 불이면 2백 50만 불!”

은행가 한 사람이 외쳤다.

“그렇읍니다. 이것은 상당한 기업입니다. 제군은 바아크 군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요. 바아크 군은 〈검은 별의 밤〉을 주최한 자로서 제군은 그 참가자이니까요.”

“너는 바보다. 설사 수표(手票)를 손에 넣었대도 교환(交換)이 될 줄로 아느냐?”

“그 점은 염려 마시오. 수표의 교환이 끝날 때까지 제군을 이곳에 감금해 두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요. 그리고 제군은 제군의 회계 담당자에게 편지 한 장씩을 쓰면 됩니다. 즉, 이 수표는 비밀 장소에서 발행한 것이니까 아무 말 말고 지불하도록 하라는 한 마디만 써서 회계에게 보내면 되지요. 수표는 나의 부하가 가지고 은행으로 갑니다. 만일 수상하다 하여 경찰에게 구속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대신 제군을 여기에다 무기한으로 구속해 두면 되지 않읍니까? 나의 부하는 함구불언(喊口不言)을 지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군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사실을 말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것입니다. 알았읍니까?”

“2백 50만불! 거기다 오늘의 장사 수익, 그리고 하아레군의 에메랄드, 부인 손님들의 보석을 합치면—.”

부륵스는 고함을 쳤다.

“그렇소.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요. 그러나 비용도 상당히 걸렸지요. 어쨌든 간에 이 검은 별을 농락하려고 든 것이 도대체 제군의 잘못일 것이요.”

“나는 절대로 수표는 쓰지 않을 테다! 죽어도 안 쓴다!”

바아크가 분연히 말했다.

“그러나 그런 분을 설득하는 방법도 있지요.”

“어디 한번 나를 설득해 보는 것이 좋겠지!”

바아크는 어디까지나 대항하였다.

그 말을 듣자 검은 별은 손벽을 쳤다. 여러 사람의 부하가 달려왔다. 검은 별은 부하에게 무슨 신호를 하였다. 그랬더니 부하들은 바아크의 옆으로 다가서서 손목과 발목에 매인 쇠사슬을 풀어 놓았다.

바아크는 저항을 하였다. 그러나 저항하는 순간, 까스•피스톨 을 한방 얻어 맞고 기절하였다. 세 명의 부하가 바아크를 밖으로 끌어냈다.

검은 별은 다시 남아 있는 포로를 향하여,

“바아크 군은 저편 방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한 후에 상당한 징벌을 줄 것이요. 제군이 잘 귀를 기울여 보면 우리 부하들의 설득법(說得法)의 효과를 들을 수 있을 것이요.”

검은 별은 말을 끊었다. 포로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십 분이 지났다. 그때 저편 방에서 고통의 부르짖음과 공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아크의 고민하는 목소리었다.

“그만해라! 나는 죽을 것 같다! 그만해 다오!”

그런 목소리였다.

“나는 사람을 죽인다든가 또는 폭력을 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때로는 가장 고상한 고문을 베풀 필요도 없지 않아 있지요.”

“악마!”

부륵스는 고함을 쳤다.

“너도 저편 방으로 가 보고 싶으냐? 희망한다면 언제든지 데려다 주마.”

부륵스는 새파래져서 힘없이 걸상에 늘어져 버렸다. 저편 방에서는 아직도 바아크의 무서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인제 펜과 잉크를 갖다 놓을 것이요. 그리고 백지식(白紙式) 수표와 편지지도 갖다 놓을 것이요. 그러니까 우선 회계 담당자에게 편지를 쓰고 그 다음에 수표에다 금액과 연월일과 서명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얼굴을 한 포로들은 서로 사슬을 잡아당기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검은 별은 그들 포로 앞의 테에블 위에 펜과 잉크와 수표장과 편지지를 펼쳐 놓아 주었다.

“자아, 빨리 이 수표에 서명을 하여라! 벌써 밤 열시다. 제군이 수표에다 서명을 하고 나의 부하가 그것을 현금으로 바꾸게 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제군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다.”

부륵스는 새파래진 얼굴로 걸상에서 일어섰다. 그것을 보자 다른 포로들도 일제히 일어서서 쇠사슬을 쩔렁거리며 테에블 앞으로 걸어나갔다. 저편 방에서 또다시 창자를 끊어 내는 것 같은 고통의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부륵스는 하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수표장에다 필요한 사항을 기입해 넣었다. 그리고는 거기다 서명을 한 다음 검은 별이 하라는 대로의 편지를 썼다.

철조망(鐵條網)

[편집]

쇠사슬에 얽매인 포로들은 테에블 앞으로 걸어와서 제가끔 십만 불의 수표를 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별은 25매의 수표를 거두어 가지고 부하 두 사람을 불러 귓속말을 하였다. 부하는 이윽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편 방에서 들리던 고통의 부르짖음은 점점 희미해 가다가 마침내 멎어 버렸다. 바아크가 마침내 고문에 못 이겨 기절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분 후, 검은 별의 부하 두 사람이 바아크를 사이에 부축하고 들어왔다. 입에는 재갈이 물리워 있었다. 손목도 결박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부하는 바아크를 걸상에 앉히우고 다시 몸을 걸상에다 결박해 놓았다.

39명의 포로들은 바아크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검은 별은 손수 다가가서 바아크의 입으로부터 재갈을 끌러 놓아 주었다. 그랬더니 바아크는 꿈꾸는 사람처럼,

“도대체 어쨌다는 말이냐? 어째서 자네들은 도깨비에 홀린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느냐 말이야? 대체 나는 얼마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는가?”

고 말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30분 이내다!”

하고 대답한 것은 검은 별이었다.

“바아크 군, 나는 군의 친구들에게 암시(暗示)의 효과로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부륵스가,

“바아크 군, 군은 어떤 봉변을 당했는가?”

하고 물었다.

“봉변이라곤 여기서 까스•피스톨을 한방 먹었을 뿐이다.”

“그리고는?…… 군이 고통을 못이겨서 부르짖는 신음 소리를 우리들은 들었는데……”

“군은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까? 나는 그런 신음 소리를 낸 기억은 없어. 나는 지금껏 꿈나라에 있었으니까.”

그 때 검은 별이 천천히 나서며,

“제군, 그건 단순한 암시의 효과였오. 제군은 바아크 군이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상은 나의 부하의 연극이었오. 바아크 군의 음성을 흉내 낸 단원의 연극.”

일동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제부터 제군을 두 사람씩 화장실로 인도할 테니, 공포로 말미암아 손과 얼굴에 내대인 땀을 씻고 와서, 담요를 드릴 테니 다소 불편은 하시겠지만 주무셔 주시오.”

다섯 명의 부하가 나타나서 사슬을 풀고 40명을 20명씩으로 나누었다. 부하 한 사람은 바아크를 걸상에서 풀어 두 패로 나뉜 한쪽 패 쇠사슬에다 바아크를 끌어다 매려고 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바아크는 분노와 함께 자기를 붙들고 있는 부하 두 명을 그 자리에서 쓰러뜨렸다.

검은 별이 뒤를 돌아다 보고 부하들이 바아크를 향하여 달려 들려고 했을 때 그는 교묘히 까스•피스톨을 피하여 들창가로 뛰어갔다.

그는 두 손을 들고 얼굴과 머리를 보호하면서 들창을 깨뜨리고 밖으로 넘어 갔다. 그는 곧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바아크는 숲 사이를 꿰어 한시 바삐 이 건물에서 빠져 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는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또 발더듬이로 전진을 계속하였다. 이 숲에서만 빠져 나가면, 그리고 방향만 정하면 거리에 등불을 발견할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컨대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이편에서 소리를 내면 손을 쓸 모양인지도 몰랐다.

이윽고 조그만 강가로 나섰다. 그는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일순간 구름이 걷고 달이 얼굴을 냈다. 그는 나무에 납작 붙어서 주위를 살펴 보았다.

조금 떨어진 저편에 철조망(鐵條網)이 쳐져 있었다. 오른 편으로 멀리 거리의 등불이 보였다. 그때 달이 다시금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바아크는 그 철조망을 넘어 불빛이 보이는 쪽으로 도망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사방에 신경을 쓰면서 발자취 소리를 죽여 가면서 걸어갔다. 검은 별의 부하가 어딘가 숨어 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윽고 철조망을 친 데까지 다달았다. 그는 손을 빼쳐 쇠줄을 넘을려고 했을 때였다. 번쩍하는 불빛이 어둠을 헤치며 주위에 비쳤다. 순간, 그는 격렬한 부르짖음과 함께 전신이 불똥이 되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바아크는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면서 다가오는 기척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이 적인지 편인지를 분별하기 전에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검은 별의 부하였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땅 속에 파묻힌 조그만 상자를 열고 스윗취를 껐다. 그때야 비로소 바아크의 손이 쇠줄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정신을 잃은 바아크를 둘러메고 수풀 사이로 운반하여 갔다.

“상당히 타격을 받은 모양인걸.”

부하 한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악당들의 간호로 다시 정신을 차렸다.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한 검은 별의 단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바아크를 다시 운반하여 39명의 포로들이 사슬에 매이어 있는 넓은 방으로 들어왔다.

“아, 바아크 군이 돌아왔는가. 그처럼 이 방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니 영광은 영광이니까. 그래 재미나 많이 보고 돌아왔는가?”

검은 별은 유쾌한 듯이 그렇게 물었다.

“음, 너희들은 나를……”

바아크는 약이 바싹 올랐다.

“군은 이 방에서 도망을 쳤다. 그러나 이 구내로부터는 도망을 못치고 돌아왔다. 군이 방에서 도망을 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여기서 조그만 단추 한 개를 눌렀던 것이다. 그 신호로서 이 부근을 감시하고 있던 나의 부하는 곧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스윗취는 주위의 철조망에다 전류(電流)를 통해 놓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군의 손이 그 철조망에 닿는 순간 군의 몸뚱이에서 불빛 신호가 번쩍이어 군의 처소를 부하들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검은 별은 다시 말을 계속하여,

“바아크군. 군은 어디까지나 나를 괴롭힐 셈인가, 우리는 군의 부질없는 도주로 말미암아 적지 않게 시간을 잡아 먹었다. 그리고 군의 친구들은 모두 수표에 서명을 하고 편지를 썼다. 그러나 군은 아직도 쓰지 않고 있다. 군은 15만 불의 수표를 떼야만 할 것이다. 부질없는 도주를 감행한 벌이다. 나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전부 받을 테다!”

“그렇다! 한 놈도 빼놓지 않고 전부 체포해 버릴 테다! 손을 들어라!”

돌연 등 뒤 들창 가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별은 후딱 뒤를 돌아다 보았다. 두 사람의 사나이가 들창을 넘어 뛰쳐 들어오고 있었다. 뛰어 들어오자 검은 별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숲 사이를 무척 헤매인 것처럼 전신이 흙투성이었다

“앗!”

하고 검은 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옆에 서 있던 단원 일곱 사람도 일제히 손을 들었다.

“조용해라!”

들창으로 넘어 들어온 두 사람의 손에는 피스톨이 잡혀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 걸음도 훔치지 않을 결사적인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검은 별은 그 두 사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음, 로오쟈 바베크! 그리고 너는 막스로구나!”

검은 별은 괘씸한 듯이 중얼거렸다.

미녀와 바베크

[편집]

바베크와 막스가 이곳에 돌연 나타나게 된 경로는 다음과 같았다.

“막스, 여기가 바루 자동차가 유기되어 있던 장소다.”

정체불명의 사나이로부터 전화를 받은 바베크는 막스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아까 그 전화는 거짓인지 참말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검은 별이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 낼려는 계책인 것이다. 시내에서 또 무슨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막스는 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이 숲 사이에 조그만 강이 흐른다고 했다.”

회중전등을 비치며 두 사람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조그만 강줄기가 눈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 발자취가 진흙 위에 인박혀 있었다.

“막스, 검은 별이 수풀 속에서 뛰쳐 나올는지도 모르니, 손을 우리 편에서 써야만 하네.”

“염려 마십시오. 쏘아서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닭의 목을 비틀듯이……”

“하하하하…… 사냥개 캬챔의 생각이 또 나는 모양이로군. 이다음 그 개보다 더 좋은 개를 한 놈 사 줄 테니 그 때는 검은 별의 개냐 아니냐, 개의 이력(履歷)을 잘 조사해 봐야만 할 걸!”

그리고는 둘이가 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숲 사이를 이리 저리 싸돌아 다니다가 그들은 마침내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조그만 판자집 하나를 발견하였다.

들이는 발자취 소리를 죽여 가면서 판자 집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둘이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들창 밑으로 가서 가만히 방안을 넘겨다 보았다.

“여자!”

막스는 속삭이었다.”

“음. 대단한 미인이다.”

손발을 동여매이고 입에 재갈을 물리운 채 여자 한 사람이 소파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 주의해야만 합니다. 이건 모르면 모르되 검은 별의 술책인지도 모르니까요.”

“음, 그렇지만 연약한 여자가 저런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검은 별의 술책일지 몰라도 어쨌든 구해 놓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보실 셈이십니까?”

“음, 나는 예쁜 여자가 저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을 눈 감고 지낼 수는 없다. 어쨌든 사정을 좀 들어 보자. 꼭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도 같으니까. 막스, 군은 이 들창 밖에 숨어서 안을 잘 살피다가 무슨 긴급한 일이 생기거든 손을 써 주게.”

“네.”

바베크는 문으로 돌아가서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지는 않았다. 그는 권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예상하던 대로 젊은 미인이었다. 여자는 쓰러진 채 말을 못하고 눈으로 구해 달라고 애걸하였다.

“어떤 녀석이 이런 짓을 했읍니까?”

손발을 풀어 주고 입에 물리운 재갈을 끌러 준 후에 바베크는 물었다. 여자는 대단히 쇠약한 기력으로 처음에는 말도 잘 하지 못했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바베크는 열심히 물었다. 여자는 그때 숨가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검은 별이, 검은 별이 호텔에서 저를 유괴해다가 이런 데로 끌 고 온 것이야요. 저의 집에는 조상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보석이 있답니다. 그것을 안전 보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말이야요. 검은 별이 자꾸만 그 보장고를 여는데 필요한 서류(書類)를 자기에게 인도해 달라는 거야요. 그걸 거절했더니만 저를 이렇게……”

“언제부터 이 꼴을 당하고 있읍니까?”

“어제 낮부터야요. 그런데 주의를 하셔야 해요. 사나이가 한 사람 감시를 하고 있다가 한 시간 전에 나갔어요. 그러나 언제 돌아올는지 알 수 없잖아요?”

“이거 봐요, 숙녀(淑女)!”

하고 바베크는 다소 비웃는 듯이,

“정직하게 말을 하시오. 당신은 검은 별의 단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슨 엉뚱한 목적을 위하여 나를 함정에 잡아 넣을려는 것이 분명하오. 당신은 확실히 미인이요. 그러나 나는 그러한 당신에게 유혹을 당할 사람은 절대 아니요. 화를 내도 하는 수 없오. 그러나 나는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요. 긴급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뛰쳐 들어올 사람이 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요.”

“흥, 당신은 아주 제가 잘난 척 하지만—”

하고 그때, 여자는 마침내 가면을 대담하게 벗어 버리며 비웃는 어조로,

“그래 당신은 나를 검은 별의 단원의 한 사람으로서 경찰에 인도할 뱃장이라는 말이요?”

“나는 여자 같은 것은 상대로 하지 않으오. 다만 당신의 수단에 넘어갈 내가 아니라는 것뿐이요.”

“좋아요, 어서 그 권총을 내 가슴에다 겨누어 봐요.”

“겨누지요, 이처럼—”

바베크는 웃으면서 총 뿌리를 천천히 여자의 가슴을 향하여 겨누었다. 그 순간—

“탕—”

바베크의 등 뒤에 총소리가 한방 터졌다. 그와 동시에 바베크의 손에서 권총이 툭하고 방바닥에 떨어졌다. 바베크가 놀라 뒤를 돌아다 보는 사이에 여자는 떨어진 권총을 주워 들창 밖으로 내던졌다. 유리가 깨지며 권총은 어둠 속으로 날아 가 떨어졌다.

그때, 반대편 문이 벙긋이 열리며 까운과 마스크를 한 단원 하나가 쑤욱 나타났다. 손에 피스톨을 들고—

“나는 권총만 떨어뜨릴려고 했는데, 손에 상처는 없읍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베크씨, 이 걸상에 걸터앉아서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으시오. 당신의 충실한 부하 막스군은 지금 까스•피스톨로 잠깐 잠을 재워 놓았읍니다.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발견된 실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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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의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여자의 이야기에 그만 마음을 놓고 있던 것을 그는 저으기 후회하였다.

“총알은 당신의 손가락을 조금 스쳤을 뿐이지.”

피스톨을 겨눈 문간의 사나이는 그렇게 말을 하며,

“어서 거기 좀 걸터 앉으시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옳지 옳지!”

바베크는 빙그레 웃으면서 하라는 대로 했다. 어쩌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검은 별에게 신뢰를 받는 부하 중의 한 사람이요.”

검은 까운에 마스크를 한 그 부하는 말을 계속한다.

“수령은 오늘 밤 일이 좀 있어서 당신의 접대역으로서 내가 파견되어 온 것이요. 어째 그렇냐 하면 우리의 수령 검은 별은 인제는 당신을 문제로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러나 조금만 더 두고 봐야 알걸!”

하고 바베크는 대답하였다.

“글쎄 그럴까요? 우리의 조직은 한층 더 튼튼해졌답니다. 그러니까 인제부터 당신은 검은 별을 붙잡을 생각은 아예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소. 당신은 돈도 있고 또 여행을 즐기는 분이니까, 다른 데로 여행을 가서 색다른 모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소? 검은 별에서는 아예 손을 떼고 한 반년쯤 여행을 하고 오는 것이 어떻소?”

“흥, 검은 별은 내가 무서워 날더러 손을 좀 떼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 셈인가?”

바베크는 지지 않고 대항을 하였다.

“아니요, 수령은 단지 당신이 귀찮을 따름이지요. 수령은 당신의 용기와 지략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한 반년 동안 다른 데로 여행을 떠나면 당신을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것을 쾌히 승낙하지 않으면 수령은 당신을 또 한번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홍, 검은 별은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뭐야? 검은 별이 나로 하여금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게 할려거든 나를 죽이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방법은 달리 또 있지요.”

“내가 너희들의 위협쯤으로 놀랄 사람인 줄로 아느냐? 나는 일부러 오늘 밤 너희들의 손에 붙들려 준 것이다. 검은 별이 있는 데를 알기 위해서다. 그래 대체 무슨 이유로 젊은 부인을 그처럼 결박해 놓고 있느냐 말이다.”

“너를 이 방 안으로 유도해 넣기 위해서다.”

“그래, 나는 과연 방 안에 들어왔다. 어쩔 셈이야?”

“그럼 어디까지나 당신은 일주일 이내에 이 도시를 떠나라는 우리 수령의 명령을 거절한다는 말인가?”

“물론 단연 거절이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도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수령은 여기서 약 오백미터 밖에 있는 어떤 낡은 가옥에서 이 도시에서 유명한 인사 40명을 포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매상금이 목적이다. 만일 당신이 그 가옥 안을 한번 들여다 본다면 검은 별은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대로 농락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요.”

“검은 별의 거처를 알리어 주어서 대단히 고맙소. 내가 그리로 방문을 하지요.”

“당신은 이곳에 이대로 있어야만 하오. 우리는 실로 교묘한 방법으로 당신을 망신시킬 수가 있지요.”

“무슨 말인가?”

“이야길 하리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검은 별의 부하는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그랬더니 여자는 곧 방을 나가 버렸다.

“당신은 이 도시에서도 명망 높은 포오스티나•웬델 양과 약혼을 하고 있소.

“그 여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건 사양을 해라!”

바베크는 분연히 책망을 하였다.

“그 순진한 여자가 갑자기 바람이 나서 약혼자인 당신을 무시하고 다른 놈팽이들과 밀려 다닌다면 세상은 당신을 어떻게 알 것 같소? 웃음거리! 여편네를 빼앗긴 웃음단지가 당신이 될 것이요.”

“비겁한 놈아!”

“너무 흥분하지는 마시오. 여편네는 놀아나고 당신은 여기에 감금되어 행방불명이 되고……”

“그러나 그 여자만은 절대로 그런 방탕한 사람이 아니다!”

“흥, 그럼 뵈어 드릴까요?”

검은 별의 부하는 손벽을 쳤다. 그랬더니 문이 열리면서 아까 나갔던 여자가 들어왔다.

그 순간 바베크는 놀람으로 말미암아 걸상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바베크의 약혼자인 포오스티나•웬델 양과 꼭 같지가 않은가!

“물론 포오스티나 양을 잘 아는 이가 가까이서 보면 딴판 다른 여자란 것을 알겠지만요, 보시는 바와 같이 머리도 꼭 같이 틀고 옷도 꼭 같이 입고 걸음걸이도 꼭 같지요.”

실로 놀라운 일이다. 바베크가 얼마 동안 놀람에 찬 얼굴로 서 있는데 여자가 입을 열었다.

“로오쟈, 인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아냐요?”

바베크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목소리까지 그처럼 꼭 같은 것인가!

“설명을 하면 간단하지요.”

하고 부하는 또 말을 꺼냈다.

“이 부인은 프린세스라는 사람으로서 검은 별의 단원이요. 이 여자는 최근 당신의 약혼자를 몰래 따라다니면서 몸짓, 손짓, 걸음걸이 말투 그 밖의 온갖 표정을 연구했지요. 물론 친한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없지만 세상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하지요. 이 여자가 돌아다니면서 당신의 망신되는 일을 세상에 뿌려 놓는다는 말이요. 알겠읍니까, 바베크씨! 알겠으면 금후 여섯 달 동안 이 도시를 떠날 것을 약속하시오.”

이 계략은 바베크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이었다. 약혼자 포오스티나는 어릴 적부터의 애인으로서 결혼식은 한 달 이내에 거행되게 된 이 때, 이 가짜 포오스티나가 나타나서 가진 상스럽지 못한 행동을 세상에 펼치어 놓는다는 것은 정말로 치명적인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여자는 바베크의 눈 앞에서 약혼자와 꼭 같은 태도로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있을 때, 바베크는 부하가 서 있는 등 뒤의 문이 조금씩 열려지는 광경을 재빨리 눈치챘다.

이윽고 그 문틈으로 손 하나가 쭈욱 나타나는 것을 바베크는 보았다. 그는 두 사람의 주의를 자기에게 집중시키기 위하여 입을 열었다.

“만일 내가 이 도시를 떠난다면……”

“물론 그렇다면야 포오스티나 양의 명예는 손상되지 않을 것이 요.”

순간, 문이 홱 열렸다. 막스가 방안으로 뛰쳐 들어온 것이다. 그는 검은 까운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손을 들어라!”

부하와 여자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었다. 막스는 한번 빙그레 웃으면서,

“형세가 바뀌어진 모양이다.”

하고 호기를 한번 빼고 나서,

“선생님, 피스톨이 또 한 자루 있읍니다. 놈들은 나를 쓰러뜨린 줄 알고 있지만 까스를 조금 밖에는 먹지 않았읍지요. 그래 쓰러진 척하고 있노라니까, 놈들은 나를 방 안으로 옮겨다가 절 상에 동여매 놓고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지요. 그래 나는 밧줄을 풀고 복도에 서 있는 놈 둘을 쓰러뜨리고 까운과 마스크를 썼지요.”

바베크는 막스의 말을 듣자 막스가 내주는 무기를 잡았다. 순간, 들창을 뚫고 들어온 총알이 방 안의 전등을 깨뜨리면서 날아갔다.

둘이는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캄캄한 밤이었다. 부하들은 일제히 사격을 하여 왔다. 바베크와 막스는 수풀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따라 오지는 않는 것 같읍니다.”

“자아, 빨리 검은 별이 있는 데로 가자! 북방 오백 미터 거리에 낡은 집이 한 채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포로 40명도 감금되어 있는 것이다.”

둘이는 발자국 소리를 죽이면서 북방으로 자꾸만 걸어갔다. 바베크는 나침반 하나를 손에 들고 있을 뿐이다. 그는 회중전등으로 나침반을 때때로 들여다 보며 자꾸만 앞으로 걸어갔다.

“아, 저기 담장이 보입니다.”

긴 수풀을 다 꿰어 나간 곳에 쇠사슬로 된 담이 길게 둘려져 있었다. 그 순간, 약 50미터 지점에서 불이 번쩍하고 빛나는 광경을 보았다. 뒤이어 로버어트•바아크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아크가 전기를 통해 놓은 쇠사슬에 손을 댄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이다. 주위로 부터 검은 별의 부하가 쓰러진 바아크를 향하여 달려가는 광경도 또한 보았다.

거기서 바베크와 막스는 곧 신속한 활동을 개시하였다. 둘이는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랬더니 까운을 입은 사나이 하나가 땅 속에 파묻은 조그만 상자를 열고 전기의 스윗치를 끄는 장면을 목격했고, 다른 부하 하나가 쓰러진 사나이의 얼굴을 회중전등으로 비치어 보는 광경도 목격하였다.

“아, 바아크다!”

막스가 속삭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검은 별의 소굴도 멀지 않았다.”

둘이는 부하들이 바아크를 메고 가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둘이는 조심조심 철조망 사이로 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바아크는 메고 가는 회중전등의 불빛을 어디까지나 따라갔다. 눈 앞에 낡은 집 한 채가 보였다. 바아크는 곧 안으로 운반되어 들어갔다.

아까 무모하게도 바아크가 도망을 친 바로 그 들창에 불빛이 화안하다. 둘이는 들창 밑으로 다가가서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쇠사슬에 얽매인 40명의 포로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포로를 위협하고 섰는 검은 별의 목소리도 들렸다. 둘이는 곧 안으로 뛰쳐 들어갔던 것이다. 외침과 신음의 합창이 일시에 일어났다. 그것은 검은 별의 단원들의 입에서가 아니고 40명의 포로의 입에서 들려나왔다. 그들은 바베크를 눈 앞에 바라보자, 구조의 손이 뻗친 줄을 알고 밀물처럼 앞으로 밀려 나왔다. 어떤 사람은 쇠사슬을 풀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검은 별의 부하를 물어 뜯으려고 했다.

“움직이지를 말어요!”

바베크는 피스톨을 겨누고 고함을 쳤다. 포로들은 곧 그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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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는 번쩍번쩍 빛나는 검은 별의 눈에서 일순간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으시오. 떠들다가는 유탄(流彈)에 맞읍니다. 그리고 까운을 입고 있는 검은 별의 부하들도 움쭉만 했다가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검은 별과 그의 단원을 전멸시켜라! 그들이 감옥으로 가는가, 병원으로 가는가, 시체실로 가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경찰 당국의 엄중한 포고다! 자아, 조용히 담벼락을 등지고 있거라! 손을 들고!”

바베크와 막스는 피스톨로 위협을 하였다. 40명의 포로들은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은 긴장한 얼굴들을 하고 바라보았다.

여기는 적의 소굴이다. 다른 방에는 검은 별의 단원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에 도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포로들은 40명이나 되지만 쇠사슬로 자유가 없다. 검은 별에서 시선을 떼고 그들의 쇠사슬을 풀어 줄 여지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굴 안에는 어떠한 함정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사건 맨 처음, 바베크는 발 밑 방바닥에 떨어져서 깊은 지하실로 빠져 들어갔던 생각을 문득 하였다.

“그래 우리가 병원엘 가든지, 감옥에 가든지,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인가?”

하고 검은 별은 손을 든 채 입을 열며,

“여기서 바베크 군을 만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군을 어떤 장소에 감금해 놓도록 수배를 했었는데……”

“예산 대로 일은 되지 않는 법이다.”

바베크가 대답하였다.

“우리 단원 중에 바보 같은 자식이 있는 모양인데…… 음, 그 녀석을 징벌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너는 너의 부하를 징벌할 그런 평화로운 상태에 있지는 못하다. 너는 또 무어라고 떠들어 대면서 이 곤경을 빠져 나갈 생각을 열심히 하고 있을테지?”

“그건 나 뿐이 아니고 군 역시 그럴 거다. 이처럼 눈을 흘기고 서 있으면서도 이 싸움을 유리하게 전개시키려고 열심히 궁리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잘 안될걸!”

“선생님, 저 놈의 모가지를 이렇게 두 손으로 비틀어서……”

막스가 외쳤다.

“막스 군은 역시 약간 교양이 모자라는군. 저 사냥개 캬챔에 대한 원수를 갚아 볼 셈인가?”

하고 검은별은 빙글빙글 웃었다.

“음, 이 자식아…….”

하고 달려들려는 막스를 바베크는 손으로 막으며,

“막스, 제일 가까이 섰는 놈의 신체 검사를 하고 까스 피스톨이 있으면 꺼내라. 그리고 지금 군이 쥐고 있는 무기는 바아크에게 주어 감시를 시켜라.”

막스는 바아크의 결박을 풀고 피스톨을 쥐어 주었다. 바아크의 눈에서 불똥이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바아크는 전기가 통해 있는 철조망에 손을 대던 순간의 아픔을 생각하였다.

“바아크 군, 불가피한 경우 이외에는 피스톨을 쏘아서는 아니 된다! 총 소리는 검은 별의 부하들에게 신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아, 막스, 까스•피스톨을 꺼내라.”

막스는 검은 별의 단원의 주머니에서 까스•피스톨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먼저 검은 별의 면상에다 대고 쏘아라!”

“바베크 군, 너무 서둘다가는 공연히 큰 일을 저지른다!”

검은 별은 어디까지나 유유자적의 태도였다.

“너는 나를 또 협박하려는가?”

“협박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 없어! 만일 내가……”

“쓸데 없는 소리 듣기 싫다! 이거라도 한방 먹고 꿈 나라로 가거라!”

그러면서 막스는 까스•피스톨의 방아쇠를 당겼다. 코를 찌르는 맹렬한 독까스가 검은 별의 얼굴을 덮었다. 막스는 재빨리 검은 별의 마스크를 벗기고 한방 더 먹였다. 검은 별은 일순간 막스의 얼굴을 한번 무섭게 흘기면서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부하다!”

바베크는 또 명령을 하였다.

막스는 하나 하나씩 연달아 여섯 명의 부하를 쓰러 뜨렸다. 그리고는 바아크를 결박했던 밧줄로 검은 별을 꽁꽁 묶어 놓았다. 이리하여 바아크는 들창을 경계하고 막스는 문 쪽을 감시하고 바베크는 포로를 비끄러 맨 쇠사슬을 검사하였다. 쇠사슬에는 엄중한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그 자물쇠는 검은 별의 주머니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바베크는 문을 가만히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복도에는 많은 부하들이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잠든 놈도 있겠지만, 당번으로 깨어 있는 놈도 있을 것이었다.

그는 조그만 목소리로 바아크와 막스를 불러 가지고 귀에다 입을 대고 뭐라고 속삭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활동을 개시하였다. 바베크는 우선 검은 별의 몸에서 까운을 벗겼다. 그리고 검은 별의 이마에 번쩍거리는 두건을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웠다.

막스와 바아크도 똑 같이 부하 두 사람의 까운과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이 집안을 자유롭게 싸돌아 다닐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단원들은 수령에게 특별히 명령을 받기 전에는 서로 말을 건네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바베크의 정체가 폭로될 염려는 조금도 없었다.

바아크는 혼자 남아서 쓰러진 검은 별과 그의 부하를 감시하고, 바베크는 검은 별이 되어 막스를 거느리고 복도로 나섰다.

둘이가 복도를 끝까지 걸어가니, 거기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넓다란 층층대가 있었다.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한 방에서는 검은 별의 부하 하나가 혼자서 트럼프 장난을 하면서 전기 스윗치 대의 감시를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거기는 검은 별의 신호실이다.

바베크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막스는 등 뒤에서 그 사나이의 목을 팔뚝으로 잘라 맸다. 바베크는 곧 까스•피스톨을 쏘아서 쓰러 뜨렸다. 그리고는 까운을 찢어낸 헝겊으로 꽁꽁 동여매 놓았다.

둘이는 또다시 세 사람의 단원을 그 지경으로 쓰러뜨렸다. 그러나 쇠사슬의 열쇠는 아무 데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층층대를 내려와서 집 뒤로 돌아가 보았다.

그 때, 검은 별의 부하 하나가 바베크에게 가벼운 절을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바베크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둘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한 놈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거기도 열쇠는 없었다.

바베크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세 시였다. 한 시간 반만 있으면 날은 밝는 것이다. 날이 밝기만 하면 안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해서 부엌으로 빠져 나왔다.

까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사나이가 난로 위에 엎디어서 무슨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또 한 놈은 이리로 운반하려는지, 식료품을 상자에 넣고 있었다. 바베크는 막스에게 눈짓을 하였다. 까스•피스톨이 아니고 이번에는 진짜 피스톨을 둘이는 내댔다.

“손을 들어라!”

한 놈은 손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 놈은 재빠르게 전기 스윗 치를 껐다. 부엌 안은 캄캄해졌다.

두 줄기 불빛이 암흑 속을 비췄다. 피스톨이 발사되어 상대편 두 놈이 쓰러지는 순간, 바베크는 어둠 속에서 머리를 한대 쇠마치 같은 것으로 얻어맞고 방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고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 실패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핑 머리에 떠오르자, 바베크는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조그만 징벌(懲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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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열시 경, 멧센쟈•보이가 경찰부장에게 편지 한 장을 전달하였다. 그 소년은 한길에서 어떤 사나이에게 돈 일불을 받고 편지를 갖고 온 것이었다. 키가 큰지 작은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경찰부장은 편지를 읽고, 경부보와 순사부장과 특무 형사 세 사람을 불렀다. 오분 후, 경관을 가득 실은 두 대의 자동차가 날카로운 경적 소리와 함께 거리를 달렸다.

경관대는 주택지를 꿰어 교외로 빠져 나왔다. 이윽고 그들은 저번날 밤, 로버어트•바아크의 자동차가 유기되어 있던 장소까지 다달았다. 그들은 곧 자동차를 내려 경찰부장을 선봉으로 하여 강물을 끼고 수풀을 향하여 더듬어 가기 시작하였다.

경찰부장에게 온 편지는 검은 별한테서 온 것으로서 거기에는 40명의 신사와 바베크와 막스가 있는 곳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경찰부장은 이런 종류의 편지를 마음으로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을 잃어버린 40명의 부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 와서 경찰부장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하루 바삐 남편의 생사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마, 가슴, 팔, 목덜미 등에 붙은 검은 별이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아서 부인들은 미쳐 나갈 지경으로 흥분해 있었다.

어제의 주식 시장(株式市場)의 대공황(大恐慌)은 검은 별 일당이 전부 매점(買占)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 이외에는 통 사건의 진상을 알아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경관대는 전기가 통해 있는 철조망을 교묘히 꿰어 마침내 40명 의 포로가 갇혀 있는 낡은 집을 발견하였다.

경찰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40명의 포로들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부장을 한 눈에 바라보자 일제히 환호의 소리를 퍼부었다.

바아크는 다시 사슬에 묶이었고 바베크와 막스는 방 한 모퉁이에서 결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조그만 별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검은 별이 항상 남겨 두는 편지 한 장이 바베크의 가슴에 붙어 있었다. 부장은 떠들어 대는 포로들의 말을 들어 넘기면서 편지를 바베크의 가슴에서 떼 주었다.

“포로들을 구하려면 자물쇠를 여는 열쇠 전문가를 데려와야만 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열쇠는 없읍니다.”

바베크의 말을 듣고 부장은 곧 부하를 시켜 열쇠 기술자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여러분, 너무들 떠들지 마시오. 기술자가 이곳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은 걸릴 것이요. 그러니까 한 시간만 기다리면 여러분은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그것보다도 부장 나리! 수표, 수표! 우리들의 수표를 빨리!”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들이 떠드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검은 별은, 그들 중의 24명에 대하여, 액면 10만 불의 수표 한 장과, 그 수표를 갖고 가는 사람에게 지체 없이 돈을 지불하라는 신임장까지 받아 가지고 갔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부장은 가장 민첩한 부하를 시켜 은행에 전화를 걸고 지불을 중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전화를 걸려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부하의 뒷 모양을 바라보면서 부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제군이 이곳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안 것은 열시 경이 었다. 그리고 지금은 열두 시 반이다. 그러니까 이미 수표는 지불이 되었을 것이다.”

그 앞에 포로들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윽고 부장은 검은 별 위 성명서를 펼쳐 들고 읽어 보았다.

× ×

또다시 우리는 승리하였다. 이 사실은 검은 별에게 모욕을 주려는 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좋은 교훈이 될 줄로 아는 바이다. 이것은 〈검은 별의 밤〉을 주최한 자와 거기에 참가했던 자에게 주는 조그만 징벌에 지나지 않는다.

바베크 군이 우리 앞에 돌연 나타났을 때, 나는 적지 않은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그럼 나는 마침내 위기 일발의 곤경에서 빠져 나오는 데 성공하였다. 사실을 말하면, 나의 진짜 본부는 이 낡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다. 바베크와 막스가 들창으로 넘어 들어왔을 때, 나는 담벼락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러나 바베크 군, 내가 서 있던 바로 그 곳을 자세히 조사해 보라! 그러면 군은 그 곳에서 조그만 단추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는 구둣발로 그 단추를 눌렀다. 그리하여 진짜 본부에 있던 나의 부하는 내가 곤경에 빠져 있었던 사실을 알고 약 20여명이 이리로 달려 온 것이다.

그러나 부엌에 있던 나의 부하 두 사람은 구원대가 오기 전에 이미 군의 두 명을 처분해 버렸다. 그 단원의 공로에 대해서는 이미 상당한 보수를 나는 주었다.

바로 그 때, 우리들의 구원대가 도착하였다. 나는 재빨리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나는 또다시는 이곳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우리들이 할 일은 우리들의 진짜 본부와 단추로 연락한 전선을 단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제군으로 하여금 우리의 진짜 본부를 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군이 이 편지를 읽을 즈음에는 포로 제군이 나를 위하여 써 준 수표는 이미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뀌어졌을 때이다. 그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시장에서의 장사도 상당한 이익을 보았다. 그 밖에 나는 하아레의 유명한 에메랄드를 비롯하여 수많은 보석을 수중에 넣었다. 거기에 수표의 금액을 가산하면 이번의 계획은 우선 성공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인들의 팔목, 손목, 이마, 가슴, 목덜미 등에 붙은 검은 별은 한 주일만 지나면 자연히 없어질 테니 너무 흥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전해 주기 바란다. 부인네들의 흥분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약 일주일 동안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말고 집안에 들어박혀 있는 편이 약일 것이라고, 이 말도 같이 첨부해 주기 바라는 바이다.

이리하여 이 조그만 징벌은 어디까지나 검은 별이 받은 모욕은 반드시 돌려 드린다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다. 오늘은 이만— 검은 별

×

“음, 사실 부인네들은 검은 별이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거지반 정신에 광란을 일으킨 사실도 상당히 많았오.”

하고 경찰부장이 말했을 때, 로버어트•바아크는 외쳤다.

“만일 이것이 검은 별의 조그만 징벌을 의미한다면 후일 검은 별이 정말로 복수를 해 올 때의 관계자가 되는 것은 나는 싫다!”

검은 별의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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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유명한 크라드리강의 도박장이다. 이 도박장은 이전에는 주택이었다. 한길에서 한참 쑥 들어가 있는 이 도박장의 주위에는 높은 나무가 비쭉비쭉 솟아 있고 드넓은 정원에는 울창한 수목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 수목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하나 둘 나타났다. 얼굴에는 마스크들을 쓰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문지기의 머리를 내갈겨 쓰러뜨리고 결박을 지워서 한 구석에 틀어박아 둔 후에 수목 사이에 숨어 있는 동료에게 신호를 하였다. 그 신호를 보자 검은 그림자는 우루루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몰려 들어가자 그들은 곧 검은 까운으로 몸을 감추었다. 쓰러진 문지기 대신에 부하 한 사람이 문간에 섰다.

그것은 두 말도 할 것 없이 검은 별의 일당이었다. 검은 별은 부하를 시켜 넓은 층계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였다. 일당은 발자국 소리를 죽이면서 이층으로 올라가자 도박실 앞에 우뚝 멈췄다. 몇 놈은 일층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 때 드넓은 도박장에서 30 여명의 도박군들이 도박판 옆에 뻥 둘러 앉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이 도시에서도 유명한 신사들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지금 도박에 한창 눈이 어두워 자기네 등 뒤에 20 명의 검은 별 일당이 쭉 들어선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앗, 저건 검은 별이 아닌가?”

맨 처음으로 고함을 친 것은 이 도박장의 주인 크라드리강의 놀란 목소리였다.

“그렇다! 검은 별이다!”

30 여명의 신사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 섰다.

“떠들지 말아! 도망 갈 곳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맨 앞에 서 있는 검은 별의 엄숙한 명령이었다. 검은 별은 피스톨을 겨누고 있었다.

사람들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것이 만일 경관대 같으면 그들 도박군은 들창이라도 넘어 도망을 쳤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소란케 하고 있는 검은 별은 경관대 보다도 더 무섭다. 그뿐 아니라, 그들 도박 상습자들은 그런 경우를 염려하여 설비된 비밀의 출입구가 도박장 안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검은 별의 부하 하나가 서 있는 바로 그 담벼락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서 얼른 보기에는 거기에 출입구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부하 하나가 그 앞에 서 있기 때문에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그런 광경을 보자 크라드리강은 절망을 느꼈다. 검은 별은 그러한 비밀 통로가 있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검은 별은 부하들을 시켜 손님들의 몸 검사를 하고 무기를 죄다 빼앗아 버린 후에,

“자아, 제군이 갖고 있는 금품을 죄다 여기에 내놓으시오.”

하는 수 없이 손님들은 모두 주머니를 털어 놓았다. 시계, 지폐, 보석, 반지 등등 수 많은 금액이었다. 검은 별은 맨 나중에 크라드리강을 향하여,

“그대는 이 도박장의 주인인가?”

“그렇다!”

주인도 녹녹치 않는 대답을 하였다.

“말씨를 좀 점잖게 하는 것이 그대의 이익이야. 우리들이 일부러 그대를 방문한 것만도 그대에게는 영광일 것이다.”

“하필, 왜 우리 도박장을 습격했느냐 말이다. 경찰과 비밀히 손을 잡고 있는 도박장이 얼마나 많기에 그래?”

“내게는 돈이 많은 도박장이 필요한 것이다.”

“돈을 강탈하려 왔다는 말이겠지?”

“아니다. 나는 정정당당히 도박을 할려고 찾아 온 것이다.”

“정정당당히……?”

크라드리강은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도박은 둘도 없는 나의 오락이다. 나는 도박을 시작하면 모든 근심을 잊어 버리고 만다. 목하 경찰이 나를 눈이 벌개서 찾아 다니기에 혼자 올 수가 없어서 이처럼 부하를 동반하고 온 것이니, 과히 염려할 필요는 없는 거야.”

“우리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또 도박을 해서 이득을 보겠다는 말이지?”

“아니다. 빼앗은 돈은 전부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는 직접 내 돈으로 내 걸 테니까, 그 점도 염려할 것 없어. 자아, 여러 손님들은 거기에 가만히 서서 구경이나 하는 것이 좋아.”

그러면서 검은 별은 자기가 갖고 온 다른 돈을 까운 밑에서 한 뭉치 내 놓았다. 그 때 크라드리강은 검은 별이 양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정당당히만 승부를 한다면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잘하면 검은 별의 돈을 딸는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검은 별의 돈을 딴 크라드리강의 명성은 자못 높아질 것이 아닌가!

“정정당당히만 해준다면……”

“물론 정정당당히 하는 것이다. 도박이란 당당히 해서 따는 데 흥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럼 하마!”

마침내 주인은 승낙을 하였다.

이리하여 크리드리강과 검은 별의 흥미 진진한 도박은 시작되었다.

“많이 걸어도 좋은가?”

검은 별이 물었다.

“좋다. 만 불이든 10만 불이든 좋다!”

주인도 녹녹치가 않다.

검은 별은 지폐 뭉치를 끌러 가지고,

“속이면 재미 없다. 어디까지나 공정히 승부를 하자!”

“물론이다.”

이리하여 둥그런 판에 알은 굴기 시작하였다. 30명의 포로들은 둘이의 도박을 흥미 있게 바라보고 섰다.

검은 별은 도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열심히 도박판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졌다. 천불 짜리를 몇 장씩 댈적도 있다. 검은 별은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지폐 뭉치는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땄을 때는 그 딴 돈은 따로 테이블 위에 쌓아 놓았다. 졌을 때는 무릎 위에 지폐를 또 내걸곤 하였다. 크라드리강은 이 사실을 나중에 이르러서야 생각해냈던 것이다.

주인 크라드리강은 여러 번이나 금고 속에서 지폐를 꺼내 오곤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검은 별에게 상당히 잃은 줄 알았었으나 나중에는 거의 피장파장인 것을 깨닫고 다소 안심을 하였다. 맨 마지막 판에 검은 별은,

“에이 귀찮으니, 마지막으로 10만 불씩을 대고 트럼프로 한장씩 골라서 수가 높은 편이 먹기로 하세.”

하고 제안을 하였다. 그 때 크라드리강은 이 마지막 판만 자기가 이기면 승부는 비등비등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검은 별의 제의를 승낙하였다.

“공정하게하기 위해서 여기 서 있는 손님에게 부탁하여 한장씩 나누어 달라는 것이 무방하겠다.”

“그러자!”

실로 무서운 도박이었다. 10만 불의 도박을 단 한 장의 트럼프로써 승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처음 보는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자아, 뽑읍니다.”

손님 하나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나는 9다!”

검은 별이 외쳤다.

“나는 퀴인, 여왕이다!”

크라드리강이 환성을 올리면서 트럼프를 내 보였다.

사람들은 이 마지막 승부에 검은 별이 이길 줄만 알고 있었다. 무슨 교묘한 술책을 써서 크라드리강을 지울 줄만 알았다. 그러던 것이 마침내 검은 별이 지지 않았는가!

“자아, 그럼 이 돈은 그대의 것이다.”

하고 검은 별은 쿡쿡 웃으면서,

“참, 재미가 있었다! 그럼 우리는 간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 지 30분 동안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전화선도 이미 다 끊어 놓았으니까, 경찰에 전화를 걸려도 소용 없는 일이다. 만일 우리의 명령을 위반하여 30분 이내에 이 방을 떠나는 자는 멀지 않아서 후회할 것이다.”

검은 별은 몸을 일으키고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방을 나서면서 검은 별은 주인을 향하여,

“주인 님, 오늘 밤은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오!”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그 때의 크라드리강으로서는 좀처럼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한 마디에는 실로 웃지 못할 중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후장에 이르러 판명될 것이다.

그것은 하옇든 그 때 아래층을 지키고 있던 부하 하나가 헐레 벌떡 뛰어 올라오면서 부르짖었다.

“수령, 큰일났읍니다! 경관대가 이 도박장을 포위했읍니다!”

“으음?”

검은 별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눈초리가 번쩍 빛났다. 그것은 실로 검은 별도 예기하지 못했던 불행한 사실이었다.

경찰 본부에서는 수 개월 전부터 시내의 각 도박장을 습격하여 손님과 주인을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 밤에 이 크라드리강 도박장을 습격한 것도 그 행사의 하나였다. 그 속에 검은 별의 일당이 모여 있는 줄은 물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경찰부장을 선봉으로 하고 경관대는 굳게 잠근 문을 파괴하고자 하였을 때 돌연 이층으로부터 밖을 향하여 일제 사격이 개시되었다.

“탕! 탕! 탕!”

경찰부장은 깜짝 놀랐다. 도박장을 검거하는데 권총으로 대항하는 일은 별반 없었기 때문이다. 경관대는 총알을 피하여 일단 뒤로 퇴각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경찰부장은 하는 수 없이 본부에 전화를 걸고 응원대를 보내도록 부하에게 지시하였다.

크라드리강도 경관에게 총을 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검은 별에게 애원을 하다시피 하여 총 쏘기를 중지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검은 별은 마이동풍 격으로 그냥 냅다 쏘았다. 그러나 총알은 위가 아니면 옆으로 빗나가고 경관을 죽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윽고 응원대가 왔을 때 어찌된 셈인지 이층으로부터는 총 소리가 딱 멎어 버렸다. 그때야 경찰대는 물밀 듯이 욱 하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아래층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층은 캄캄하다. 경관 한 사람이 회중전등을 켰다.

드넓은 도박장 안에는 크라드리강을 비롯한 30여명의 손님이 정신을 잃고 즐비하게 쓰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부장은 놀랐다.

“죽지는 않았읍니다. 모두 기절을 했을 따름입니다.”

“앗, 검은 별!”

부장은 부르짖었다. 30명의 이마에는 모두 조그만 별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그러나 검은 별은 보이지 않읍니다.”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쓰러진 사람들 옆에 피스톨이 스무 자루나 던져져 있었다.

“흥, 이 놈들은 자기네가 총을 쏘아 놓고는 검은 별이 쏜 것처럼 슬쩍 속여 보려는 뱃장이로구나!”

부장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십 분이 지났을 무렵에 사람들은 제가끔 정신들을 차렸다.

“크라드리강! 너는 공무를 집행하는 경관에게 사격을 했다! 실로 중대한 일이다!”

“아닙니다! 그건 저 무서운 검은 별의 일당이……”

거기서 주인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손님들이 또한 그것을 증명하였으나 부장은 통 들어 주지를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잘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걸?”

“정말입니다. 우리들은 전부 돈 지갑을 놈에게 빼앗겼읍니다. 나는 손님들을 뒷문으로 도망시키고 내가 벌금을 물 작정이었읍니다. 손님들 중에는 이 도시의 명사들이 많기 때문에……”

“그래 어쨌다는 말이냐?”

그러는 동안에 놈들은 우리에게 가스•피스톨로 기절을 시키고 그리고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수에는 속지를 않는다. 너와 손님들은 살인미수 죄로 모두 미결감(未決監)으로 가야만 한다.”

“아닙니다. 놈들은 아마 비밀 통로로 도망을 한 것 같읍니다.”

“그 비밀 통로라는 것은 어디 있다는 말이냐?”

“저기 저 담벼락에……”

주인은 단추를 눌렀다. 그랬더니 담벼락에 문이 한 개 뻐끔하니 열리었다. 그 속은 벽장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벽장 뒤에 문이 한짝 달려 있는데, 그 문에는 자물쇠가 엄중히 잠겨져 있었다.

“이놈아, 거짓말이다! 검은 별의 일행이 이리로 도망쳤다면 저 자물쇠를 어떻게 이편에서 잠그었겠는가 말이다. 흥, 소용 없다! 다들 가자!”

그 말에는 크라드리강도 어쩌는 도리가 없어 경찰에 끌려 가는 몸이 되고야 말았다.

검은 별은 대체 어디로 도망을 쳤는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검은 별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체 무슨 이유가 있기에 돌연 크라드리강 도박장을 찾아 와서 도박을 한참 동안 하고 갔는가?

연기처럼 사라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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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드리강 도박장을 검색한 결과는 이 도시에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도박장의 주인과 사용인, 그리고 거기 모였던 명망 있는 신사들이 경찰관에게 대하여 총부리를 겨누었다고 생각한 경찰부장의 노여움은 실로 컸다. 그들은 모두 살인미수죄로 고발을 당했다.

그 밖에도 도박 상습, 흉기 휴대, 화기(火器) 취체 규칙 위반 등 경찰부장은 그들에게 대하여 추가할 수 있는 죄명은 모조리 추가하였다.

그것이 검은 별의 소위라는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를 않고 경찰 부장은 정식 재판을 요구하여 한 사람 앞에 각기 일만 불씩의 보석금(保釋金)이 결정되었다. 이리하여 피고들은 가족이나 혹은 친구들을 통하여 보석금을 바치게 하고 경찰의 손에서 빠져 나왔다.

그런데 맨 마지막으로 도박장의 주인인 크라드리강은 보석금을 내고 그 길로 바베크를 찾아 갔다. 검은 별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베크인 줄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드리강은 바베크의 서재에서 지난 밤, 도박장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나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경찰부장은 제 말을 통 믿어 주지 않읍니다. 부장은 우리들 전부를 고발하여 공판에 붙이겠다고 합니다. 저는 본시부터 도박군이니까 무방하지만요, 그러나 손님들은 이 도시에서도 명망 있는 분들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저는 그 검은 별에게 복수를 하고 싶읍니다. 그 놈이 이런 일을 하고 간 데는 그 무슨 뚜렷한 목적이 있으리라고 저는 믿읍니다.”

“막스와 나와는 검은 별의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지요. 조반을 먹고 곧 활동을 개시합시다. 당신네 도박장으로 가서 검은 별이 대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 그것을 알아 봅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럼 저는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겠읍니다.”

도박장의 주인은 이윽고 바베크의 집을 나섰다. 그는 고문변호사를 찾아 갔다가 사용인들의 보석 수속을 하기 위해 다시 경찰 본부로 찾아 갔을 때, 거기에는 실로 놀라운 사실이 벌어져 있었다.

“음, 잘 찾아 왔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체포 명령을 내려던 참이다!”

하고 순사부장이 눈을 흘겼다.

“체포 명령이라고요?”

크라드리강은 놀랐다.

“그렇다.”

“무슨 혐의로?”

“위조 지폐를 사용한 죄목으로다!”

“뭐라고요?”

“능청맞은 수작은 작작해라! 네가 아까 보석금으로 바친 지폐는 모두가 다 가짜 돈이다. 당분간 너는 감옥살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가짜 돈이라고요?”

“잔말 말고, 할 말이 있거든 재판소에 나가서 하는 것이 좋아!”

크라드리강은 당황히 자기 주머니 속을 조사해 본 결과 그가 보석금으로 바친 지폐는 전부가 검은 별에게서 딴 돈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주머니 속의 지폐는 모두가 가짜 돈이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검은 별의 감쪽같은 지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별과의 어제 밤의 승부는 서로 비등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 승부에서는 자기 편이 다소간 이겼다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아아―”

그가 갖고 있는 지폐의 태반은 가짜였다. 그는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검은 별은 항상 가짜 돈만 사용하고 있었구나!”

검은 별은 돈을 내놓을 때는 가짜를 내놓고 자기가 이겨서 크라드리강의 돈을 거두어서는 주머니에 넣어 두곤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어제 밤 도박의 목적은 돈을 따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가짜 돈과 진짜 돈을 바꾸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서 크라드리강이 갖고 있던 수만불의 지폐는 검은 별의 것이 되고 검은 별이 갖고 온 수만 불의 가짜 지폐는 크라드리강의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런 사실을 경찰이나 재판소에서 과연 믿어 줄 것인가……?”

그는 검은 별을 그지없이 저주하였다. 그에게는 검은 별의 유쾌한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고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놓고 다시금 경관에게 끌려 미결감으로 들어가는 몸이 되었다.

한편 경찰부장은 부하를 시켜 사건이 발생한 도박장을 조사하게 하였다. 문과 들창은 꼭꼭 닫치고 외인은 절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엄명하였다.

이윽고 경찰 본부로 달려 온 바베크와 막스를 경찰부장은 반가이 맞이하여,

“바베크 군, 물론 우리도 검은 별을 체포하여 그 놈들의 단체를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지만 그러나 이번 사건과 검은 별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한다. 검은 별에게 속아서 가짜 지폐를 받았다는 게 말이 되나?”

“크라드리강은 악당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 사건에 검은 별이 관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관에 대해서 총을 쏜 책임을 검은 별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 뿐이니까―”

이윽고 경찰 본부를 나선 바베크와 막스는 크라드리강 도박장으로 차를 몰았다. 구경군들이 한길에 오르르 모였다. 둘이는 부장의 허가증을 내 보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형사대는 이미 조사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베크와 막스도 그들과 함께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지하실에서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죄 뒤져 보았다. 비밀 통로도 조사해 보았다. 총알의 흔적이 난 문과 들창, 그리고 방에 떨어져 있는 피스톨도 검사해 보았다. 그러나 검은 별과 그의 부하가 경관의 눈을 피하여 도망친 방법과 수단은 좀처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형사대는 본부로 돌아가고 도박장을 감시하는 순경이 여섯 명 남았을 뿐이었다.

“막스, 검은 별과 그의 부하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도망을 쳤을 것 같은가?”

“글쎄요.”

“한번 더 지하실을 조사해 보고 오게. 나는 여기서 좀 생각을 해 보겠네.”

바베크는 도박판 옆 의자에 걸터 앉았다. 막스는 지하실로 내려 갔다. 도박실에 혼자 남아 있던 경관 한 사람은 복도로 나가서 동료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베크는 혼자서 이 넓은 도박실 안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막스는 회중전등으로 지하실 담벼락을 샅샅이 살펴 보았으나 검은 별의 일행이 빠져 나간 듯 싶은 행적은 통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끊어진 전화선을 이어 놓고 전화가 통하도록 만들어 놓은 후에 이층으로 올라왔다. 거기서 경관들과 잠깐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베크 선생은 지금 어디 계시오?”

막스는 순사부장에게 물었다.

“이층 도박실에 있지요.”

막스는 넓은 층계를 걸어 올라가자 드넓은 도박실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바베크는 보이지 않았다.

“바베크 선생은 어디 계시냐?”

아까 바베크가 도박실에 앉아 있을 때, 복도로 이야기하러 나갔던 경관에게 물었다.

“도박실에 있을 텐데요. 아까 내가 나올 때, 혼자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도박장에서는 다시 깊숙한 두 개의 방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도 바베크는 없었다.

“이층에는 없다.”

막스는 아래층을 내려다 보면서 고함을 쳤다.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아래층으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내가 아까부터 여기 서 있었는데……”

막스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을 두근거렸다.

“빨리 선생님을 찾아야겠다!”

두 사람의 경관이 뛰어 올라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바베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문과 들창은 죄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도 않는 도박실에서 바베크는 연기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수상한 일이다.”

막스는 뒤통수를 벅적 벅적 긁으면서,

“혹시 저 검은 별이……”

“막스, 웃기지 말아요. 아니 검은 별이 어디 있단 말이야?”

하고 경관 한 사람이 비웃듯이 말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지 않은가……? 선생님은 층층대로 해서 밖으로 나간 것을 알면서도 나를 속이는 게 아닌가?”

“아니다. 아까 도박실로 들어가는 것은 보았으나 나오는 것은 못 보았다.”

그것은 순사부장의 엄숙한 목소리였다. 경관들은 아래층에 모여 있었다. 막스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한번 이층 도박실로 올라가서 혹시나 하고 예의 그 비밀 통로를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굴 속으로 통하는 문에는 여전히 이편 쪽에 자물쇠가 걸려져 있었다. 바베크가 만일 그 통로로 빠져 나갔다면 자물쇠가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래층에서는 어디선가 바베크가 불쑥 나타날 것을 생각하며 경관들이 여전히 웃어대고 있었다.

“여어, 막스! 이리 내려와 기다려요. 바베크 씨가 인제 어디선가 나타날 테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그것은 순사부장이었다.

그러나 막스는 대답이 없다. 또 한번 불러 보았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 순사부장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넓은 층계를 올라가서 이층 도박실 문을 밀어 보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막스가 보이지 않는다!”

순사부장은 아래층을 향하여 외쳤다.

“누구든지 두 사람만 올라오라!”

두 명의 경관이 뛰어 올라와서 이층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이 어찌된 노릇이뇨, 충복 막스의 자태는 연기처럼 없어져 있었다.

“한번 더 이번에는 일층을 뒤져 보고 그 결과를 나한테 보고해 라. 나는 이 도박실을 찬찬히 조사해 보마!”

“네네―”

경관 두 사람은 순사부장을 혼자 도박실에 남겨 두고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다시금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경관 이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결과를 보고하고자 이층 도박실로 갔다.

“앗, 이번에는 부장 님이 또 없어졌다!”

그렇다. 순사부장도 역시 바람처럼 없어지고 말았다.

다섯 명의 경관은 무척 당황했다. 순사부장은 결코 넓은 층계를 내려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박실이 수상하다! 세 사람이 모두 도박실에서 없어졌다!”

“빨리 본부에 보고를 하자!”

“그러나 보고는 천천히 하는 게 좋을 거야. 보고한 후에 세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나면 그거야 말로 웃음거리가 아닌가!”

그들은 각기 자기 부서로 돌아와선 약 한 시간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취를 감춘 세 사람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차츰차츰 걱정이 되었다.

거기서 세 사람은 아래층에서 그냥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이 이층 도박실로 또다시 올라가 보았다.

그 때, 조금 전에 주문해 놓았던 점심을 가지고 한길가 식당에서 사람이 왔다. 이층에 남아있던 세 사람은 점심 그릇을 테이블 위에 벌려 놓고 올라갔던 두 사람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이층을 향하여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이 뛰어 올라가면서 소리를 쳤다.

“빨리 내려와서 점심이나 먹고 조사해요!”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관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로 올라갔는가? 땅으로 찾아 들었는가……?

그는 깜짝 놀라 아래층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을 불러 가지고 한 번 더 이층을 뒤져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들은 다시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큰일났다! 처음엔 바베크씨, 다음에는 막스, 그리고는 순사 부장, 이번에는 경관이 두 사람 도합 다섯 명이 공기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빨리 본부에 전화 연락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러다가 그들이 불쑥 나타나는 날에는 웃음거리다! 그뿐인가, 경찰부장에게는 호되게 욕을 먹고…… 조금 더 기다려 보세.” 세 사람은 거기서 점심을 먹고 보이를 돌려 보냈다.

“자네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 우리 둘이서 한번 더 이층에 올라가 보고 올 테니……”

“자네들 마저 없어지고 싶은가?”

“걱정두 팔자야. 우리는 둘이가 다 상당한 완력가다! 염려 말아!”

두 사람은 코웃음을 치고 유행가를 불러 대면서 이층으로 올라 갔다.

남아 있던 한 사람은 들창 밖으로 한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구경군들이 오르르 모여 있었다.

이윽고 유행가를 부르면서 올라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덧 그치고 이층은 다시 조용해졌다. 남아 있던 경관은 그 어떤 불길한 생각에,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 도박실 문을 벌컥 제쳤다.

“앗, 없다. 역시 두 사람의 동료는 요술장이처럼 없어지고 말지 않았는가!”

그는 그 어떤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괴상한 일도 다 보겠다!”

이윽고 경찰 본부에 있는 경찰부장은 실로 괴상한 환경 속에서 바베크, 막스, 순사부장, 그리고 네 사람의 경관이 도박장 안에서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어 버린 사실을 전화로 연락 받았다.

감금된 경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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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가 눈을 떴을 때, 또다시 검은 별의 까스•피스톨의 희생이 되어 버린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는 자기가 소파에 누어 있는 사실을 의식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공기는 극히 향기롭고 그윽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먼 곳으로부터 이야기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무척 놀랐다.

바베크는 어렸을 적부터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난 덕택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여 왔었지만 이처럼 호화로운 방 안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는 조그만 방 안에 있었다. 사면 벽에는 훌륭한 장식품이 걸려 있었고 방바닥에는 값비싼 우단이 깔려 있었다. 들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으나 공기는 신선하고 그윽하였다.

그때, 벽에 걸린 카아페트가 하나 휙 열리면서 검은 까운에 마스크를 한 검은 별의 부하가 한 사람 그 곳에 있었다.

“응?”

하고 바베크는 놀라는데 다시금 카아페트가 닫히면서 까운의 사 나이는 보이지 않았다.

바베크는 걸어가서 다시금 카아페트를 열어 젖혔다. 그랬더니 그의 눈 앞에는 실로 호화롭기 짝이 없는 커다란 방이 있었다. 이제 바베크를 들여다 본 그 사나이가 그의 수령인 검은 별에게 바베크가 정신을 차렸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었다.

바베크는 지금까지도 여러 번 검은 별의 포로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곧 수령에게서 시선을 돌려 방 안을 휘이 둘러 보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이 드넓은 방 안에 천하의 진귀한 미술품들이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지 않는가!

“바베크 군, 어떤가? 이만하면 훌륭한 방이지?”

검은 별은 말했다.

“음, 확실히”

바베크는 대답하였다.

“여기가 바루 나의 본부다. 군이 그처럼 보고 싶다 하길래 군을 모셔 온 것이다.”

“그래 대체 여기가 어디냐?”

“아, 그건 지금 갑자기 대답하기가 곤난하다. 군은 크라드리강 도박장에서 이리로 끌려 왔을 뿐이다.”

“어떻게 해서 나를 이리로 끌어 왔는가?”

“그것도 대답할 수 없다. 나는 여기에 진열된 미술품을 군에게 보이고 싶었을 따름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군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그러면서 검은 별은 맞은 편 또 다른 조그만 방으로 바베크를 인도하였다.

“아, 선생님.”

그것은 막스가 외치는 소리였다.

“군은 실로 충복을 가져서 행복할 것이다.”

검은 별의 말이었다.

이 방은 다른 방들과 같이 호화로왔지만 무엇보다도 바베크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기에는 까운과 마스크를 한 검은 별의 단원이 약 20명 가량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막스는 걸상에 동여매져 있었고, 그 반대 쪽에 순사부장과 네 사람의 순경이 역시 수족을 모두 결박 당하고 있었다.

“바베크 군, 나는 조그만 연극을 해 보았을 따름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도박장에서 데려왔다. 그리고 이 검은 별에 대항하는 것이 조금도 이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경찰은 우리에게 대하여 아무런 것도 못하고 있다. 나와 나의 단체는 가고 싶은 데로 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다. 군이 한번 나를 붙잡은 일은 있지만 그러나 나는 곧 미결 감방에서 교묘히 탈출하지 않았는가?”

바베크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은 별이 뽐을 내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경찰은 언제든지 검은 별에게 속아 넘어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 쯤 크라드리강 도박장에서는 대단히 떠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경관 한 사람만은 그래도 남겨 두었다. 경찰 본부에 연락을 시키기 위해서다. 그 사나이에게 연락을 받은 경찰부장은 손수 20명 가량의 경관을 거느리고 도박장으로 달려가 보았으나 아무런 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대들을 이곳으로 데려 온 기기묘묘한 방법은 마침내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아아,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네가 그것을 구경하지 못한 것은 유감된 일이다.”

“천만에! 나는 지금 그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보고 오는 길이다. 바베크 군,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고 왔느냐고? 흥, 그런 건 묻는 편이 쑥이야.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 대체 우리들을 어떻걸 셈인가? 너는 우리들을 죽일 작정이냐?”

“천만에, 바베크 군! 내가 폭력을 미워한다는 것은 군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의 일종의 오락이다. 계획이 잘 짜여져 있으니까 군들은 재미 있는 구경을 하면 되는 거야. 지금은 아직 세 시 전이지만 내일 아침까지는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네.”

“내 손이 너의 모가지에 닿기만 하면……”

막스가 푸르럭거렸다.

“막스, 너는 좀 잠자코 있어라. 나는 지금 바베크 군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일대 뉴우스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 뉴우스란 무엇이냐?”

바베크가 물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는 멀지 않아서 이 도시를 떠난다는 사실이다.”

“응? 뭐라고……?”

“그리 놀랄 필요는 없어. 이미 이 도시에서 내가 훔칠만한 물건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예술품, 더구나 보석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이 도시에 있는 보석은 대강 다 훔쳤으니까, 여기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 이번에는 다른 도시로 가서 또 훔치겠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제 두 가지만 더 일을 해 치우고는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이 만일 나를 체포할 생각이라면 하루 바삐 손을 써야만 한다. 이 두 가지 일 가운데 하나는 오늘 밤으로 끝장을 본다. 남어지 일은 일 주일 후에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일은 정말 걸작이다. 그것만 끝나면 이틀 후에 우리는 이곳을 출발한다. 단원들을 일단 해산시켰다가 다른 도시에서 다시 규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수많은 경관대를 각 정거장에 풀어 보았댔자 소용이 없어. 이 방에 있는 수많은 미술품도 죄 가지고 가는 것이다. 실로 교묘한 방법으로―”

“흥, 한 주일 안으로!”

“그렇다. 꼭 한 주일이다. 그 한 주일 동안에 군은 도저히 나를 체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군과 이야기 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흥, 두고 보아라. 내가 너를 꼭 붙잡아 버리고야 말테다!”

그것은 막스였다.

바베크는 이 방 안에 수 많은 값비싼 물건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여기서 검은 별을 체포한다면 이 귀중한 물건을 다시 찾을 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바베크는 현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 크라드리강 도박장 옆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혹은 이 도시 변방에 있는 어떤 강변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디선가 그때 째르릉 하고 벨이 울렸다. 검은 별은 바베크를 향하여 인사를 하여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가 이윽고 다시 되돌아 들어왔다. 그 뒤로 까운과 마스크를 한 두 사람의 부하가 기절을 한 어떤 사나이 하나를 메고 따라 들어왔다.

“앗, 경찰부장!”

바베크와 순사부장은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포로는 실로 경찰부장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얼마 후 경찰부장은 정신을 차렸으나 그 순간에 있어서의 그의 모양은 실로 정시할 수 없을만큼 딱했다. 그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검은 별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는 자기 부하만이 아니라, 바베크와 막스까지도 자기와 꼭 같 은 모양으로 포로가 되어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뿐 아니라 방안에는 검은 별이 훔쳐 온 수 많은 귀중품이 진열된 사실을 보았다. 얼마 동안 경찰부장은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고 있었으나 결국은 어쩌는 도리가 없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부장, 점심은 자셨읍니까? 아직 자시지 않았으면 곧 준비를 하겠읍니다.”

검은 별은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점심 준비보다도 감옥에 갈 준비나 해라!”

경찰부장은 고함을 쳤다.

“하하하핫…… 대단히 기분이 좋지 않으신 모양인데 너무 흥분하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부장은 그 때 방안을 휘둘러 보면서 벽력 같은 명령을 했다.

“이거 봐, 순사부장! 그리고 경관이 네 명 씩이나……왜 바보 들처럼 앉아만 있는 거야? 박승을 끊어라! 검은 별을 곧 체포하라! 너희들은 경관으로서의 본분을 잊어 먹었느냐?”

그 때 검은 별은 또 한번 쿡쿡하고 웃으면서,

“경찰부장께서는 명령만 내리면 될 줄로 아시지만, 그러나 명령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실행한다는 말이요? 자기의 입장을 좀 생각해 가면서 명령을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음―음―”

“너무 흥분만 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오.”

검은 별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어떡할 셈이란 말이야?”

“우리는 오늘 밤 여흥을 한가지 해볼 작정이요.”

“지나치게 뽐내다가는 재미 없어! 지금 이 도시의 전 경관이 통털어 나서서 너를 찾고 있는 줄만 알아라!”

“그건 나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요.”

“이거 봐, 바베크 군! 군은 자유로운 몸이다. 왜 가만히 앉아만 있는가?”

경찰부장은 부르짖었다.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바베크는 웃음을 깨물면서 조용히 물었다.

“저 놈을…… 저 검은 별을 그대로 둔다는 말이냐? 여기서 빨리 빠져 나가서……”

그 말에 막스는 대단한 불평을 느꼈다. 경찰부장이 바베크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부장, 자신은 왜 못합니까?”

하고 대들 듯이 말했다. 그 때 바베크는 조용히 말했다.

“부장, 그러나 복도에도 채 못 나가서 뒤통수에 총알이……”

“그렇구 말구!”

하고 검은 별이 이번에는 말을 받아,

“바베크 군은 영리하지요. 설사 이 방에서 빠져나간대도 나의 부하가 또 기다리고 있는 걸요.”

경찰부장도 이제는 하는 수 없이 잠자코 있었다.

“아, 참 손님 대접을 잊어 먹었군. 이제부터 나는 제군이 가장 흥미를 느낄 만한 소중한 물건을 보여 줄테다.”

그러면서 검은 별은 호화로운 장식장 서랍을 열고 소반에다 가뜩히 보석을 담아 가지고 와서 경찰부장과 바베크에게 보였다. 그것은 모두가 다 이 도시에서 훔친 거대한 재산이었다.

“나는 이것을 무엇보다 좋아 한다. 나는 이러한 어여쁜 보석을 살 돈이 없어서 도둑이 되었다. 단지 한 개의 허영심으로 이런 보석을 갖고 있는 시민의 손으로부터 나는 그것을 빼앗었다. 보석에 대하여 진정한 애정을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이 보석에 참다운 주인일 것이다.”

검은 별은 정말로 애정을 느끼는 듯이 보석을 황홀히 들여다 보았다.

바베크는 바로 그 틈을 탔다. 보석에 미쳐 검은 별은 바베크를 일순간 잊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베크는 소반을 탁 퉁겼다. 수많은 보석이 검은 별의 얼굴을 뒤덮으며 방 안에 산산이 흩어져 나갔다. 그 순간, 바베크는 옆에 서 있던 부하의 손에서 가스•피스톨을 빼앗아 쥐자 뒤통수를 내려 갈겨 쓰러뜨린 후에 복도로 뛰어 나갔다.

“바베크를 잡아라!”

검은 별은 벼락 같이 명령하였다.

“용하다!”

경찰부장은 찬양의 한마디를 던졌다.

괴상한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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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크는 복도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중도에서 검은 별의 부하를 한 사람 만났다. 까스•피스톨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주먹으로 놈의 턱을 내갈겼다. 부하는 쓰러졌다.

바베크는 그냥 달렸다. 복도가 세 길로 나뉘어진 데까지 다달았다. 맨 처음 길로 꺾어졌다. 뒤에서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덜컥―”

하고, 그 때 갑자기 발부리 앞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어져 나 갔다. 하마터면 바베크는 그 구멍 속에 빠질 뻔하였다. 그것이 검은 별의 함정인 줄을 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무서운 함정을 건너 뛰었다.

비좁은 통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검은 별의 본부는 땅 속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어디로 가야만 땅 위로 나가는지 통 예측조차 할 길이 없다. 그는 검은 별의 부하를 만나지 않는 것을 수상히 생각했으나 아직도 검은 별의 소굴에서 완전히 빠져 나가지는 못한 것이다.

캄캄한 길이었다. 그는 아까 회중전등을 빼앗은 사실을 문득 생각했다. 성냥은 있다. 그러나 함부로 성냥불을 켜서 자기의 소재를 적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그는 벽에 납작 붙어서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가 가만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앞에선지 뒤에선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까스•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발자국 소리는 등 뒤에서부터였다.

약 한간 길이 밖에서 번쩍하고 회중전등이 비치었다. 그 순간, 바베크는 까스•피스톨을 발사하였다. 상대자는 신음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바베크는 그 놈의 손에서 회중전등과 권총을 빼앗아 들었다. 그만 했으면 무기는 충분했다. 그는 다시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때때로 걸음을 멈추기도 하였다. 이윽고 통로가 두 갈래로 벌어져 있었다. 그는 오른편으로 꺾어졌다. 어느 길이 땅 위로 빠져 나가는 길인지 물론 알 바가 없었다.

또다시 인기척이 났다. 그는 박쥐처럼 또 벽에 납작 붙었다. 그러나 이윽고 인기척은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다시금 전진을 계속하였다.

그는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수 없이 갈래가 많은 지하도를 무턱대고 자꾸만 걸어 나갔다. 어느 것이 죽음의 길이고 어느 것이 삶의 길인지 물론 알 수가 없다.

이윽고 그는 어떠한 층층대 밑에까지 다달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으나 위로부터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면서 층계를 가만 가만히 걸어 올라갔다. 층층대 막바지에 문이 하나 잠겨져 있었다.

그는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손잡이를 쥐고 가만히 돌렸다. 그리고는 또 가만히 가만히 문을 떠밀어 보았다. 문 저 편은 캄캄하다.

그는 마침내 문 밖으로 나섰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회중전등을 켜서 거기가 어딘지 알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편에서 희중전등을 켜기 전에 먼저 그의 눈 앞에서 번쩍하고 전등불이 켜졌다.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그 어떤 조그만 방 안에서 있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는 까운과 마스크를 쓴 검은 별의 부하가 두 사람 서 있었다. 그는 또다시 그들의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을 자각하였다. 그들은 마스크 속에서 쿡쿡 웃었다. 그 중 하나가 까스•피스톨을 겨누고 다가왔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전에 바베크는 먼저 권총을 내댔다.

“물러서라!”

바베크는 외쳤다.

“움직이면 쏜다! 이건 까스•피스톨과는 달라서 총알이 나가면 생명은 없다!”

두 사람의 악당은 곧 저항하는 것이 불리함을 깨닫고 두 손을 들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어디냐?”

그러나 대답이 없다. 그저 돌부처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대답을 해라! 대답을 하지 않으면 쏜다! 나는 이 이상 더 기다릴 수는 없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어디냐?”

“이 쪽 문으로―”

악당 하나가 대답을 하였다. 그것은 바베크가 서 있는 반대쪽 문이었다.

“그럼 그 문을 열어라!”

악당은 문을 열었다. 문 밖 굴 속은 여전히 캄캄하다.

그 말에 한 사람이 벽에 딸린 스위취를 눌렀다. 굴 속이 환해졌다.

“너희 두 사람은 내 앞장을 서라. 두 간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걸어가라. 그 이상 떨어지거나 또는 도망을 칠 때는 용서없이 쏠 테다. 그런 줄 알고 빨리 나를 밖으로 인도해라!”

그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두 손을 들고 앞장을 섰다. 약 50 피이트 가량 걸어가니 길이 또 두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 그들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오른편으로 꺾어졌다. 이윽고 또 층층계가 나타났다.

“올라가라!”

다소 망설이고 있는 그들을 바베크는 뒤에서 재촉하였다.

그들은 천천히 층계를 올라갔다. 주위를 면밀히 살피며 바베크는 따라 올라갔다.

이윽고 문 앞까지 다달았을 때, 그들 중의 하나가 열쇠를 꺼내 잠겨진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때, 벽에 뚫려진 조그만 구멍 하나에서 까스•피스톨의 대가리가 살그머니 나타나기 시작한 사실을 바베크가 알리는 전연 없었다. 그 까스•피스톨이 마침내 바베크의 코 앞에서 발사되었다.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와 함께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지면서 바베크는 권총을 쏘았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두 사람의 악당이 뛰어 내려왔을 때, 바베크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얼마 후, 바베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가 한길 옆에 쓰러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의 주위에서 허술한 차림의 아이들과 부인네들이 뻥 둘러서 있었다.

바베크는 일어나 앉아서 가만히 생각하였다. 그곳은 이 도시에서도 가장 더러운 빈민굴이었다. 술 주정배기와 쌈패와 도둑이 득실거리는 이 거리 한밤중 같은 때는 경찰관도 혼자서는 잘 걷지 못하는 컴컴하고 위험한 거리였다.

“술만 취하면 그만이지. 저런 훌륭한 양반도 술만 취하면 한길가에서도 일쑤 잠을 잘 자거든”

군중의 한 사람이 비웃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취하지 않았다.”

바베크는 얼굴을 들었다. 그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취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는 취하지 않았다는 거야. 하하하하……”

그러는 동안에 바베크는 완전히 제 정신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는 모여 섰는 군중 가운데서 가장 힘깨나 씀직한 젊은이 하나를 불러 가지고 지폐 한장을 쥐워 주면서,

“이리 좀 와요”

했다. 젊은이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내 말을 잘 들으면 또 한장 줄 테니 알겠나?”

“네네, 사람만 죽이지 않는 일이라면 뭐든지 합죠. 헤헤헷.”

“음, 그럼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다 쫓아 내 주게.”

“그런 것쯤 문제 없죠. ―자아, 물러들 가라! 안 물러설 테야?”

꽥하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군중은 하는 수 없이 맞은 편 쪽으

로 물러섰다.

“그 담엔 또 무얼 할깝쇼?”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어떻게 이처럼 한길가에서 자고 있었는지, 그것을 좀 알으켜 주게. 사실 나는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먹지 않았는데……”

“아, 그건 저두 잘 압죠. 저 모퉁이에 있는 술집 주인이 나리를 그처럼 한길가에……”

“음. 그럼 나를 따라오게. 조사할 것이 있으니까 말이야. 약주 값은 적당히 쥐워 줄 테니 염려말구……”

“때로는 주먹도 필요합죠?”

“그럴는지도 모르지.”

젊은이는 또 한번 빙그레 웃었다. 바베크는 곧장 길 모퉁이에 있는 주막으로 걸어가서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대 여섯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단히 불결한 주막이었다. 주인인 듯 싶은 사나이가 저편 구석에서 험상궂은 눈초리를 들었다.

“나를 한길로 내던진 사람이 너냐?”

바베크는 주인을 향하여 다짜고짜로 물었다.

“그래 나라면 그것이 어쨌다는 말이냐?”

주인도 녹녹치 않다.

“한가지 물어 보겠는데. 내가 어떻게 이 주막으로 왔는지, 그것을 좀 이야기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술이 잔뜩 취해서 이리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주정을 하기에 귀찮아서 내던진 것이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그래?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주인의 표정이 험악하게 움직였다.

손님들이 모두 자리를 일어섰다. 싸움판이 벌어지려는 것이다. 주인이 바베크를 때릴려고 손을 들었다.

“이놈아, 정신 차려라! 네가 나를 때려?”

그 말에 주인이 멈칫했다.

“내가 어떻게 이 주막에 왔는지, 그것을 똑바로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감옥살이다!”

“감옥살이? 너는 경관인가?”

“경관은 아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너는 감옥살이를 하게 될 것이다.”

“너는 이 도시의 시장이냐?”

“시장도 아니다. 나는 로오쟈•바베크다.”

자기의 이름이 이처럼도 사람들을 떨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손님들이 모두 밖으로 뛰어나갔다. 데리고 왔던 젊은이도 도망을 쳤다. 그러나 주인은 그냥 버티고 서 있었다.

“할 말이 있느냐?”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당신은 지나가다가 우연히 주막에 들렸을 뿐이다.”

“이 집에 전화가 있는가?”

“저기 있다.”

“내가 인제 전화를 걸 테니, 너는 그 동안 그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된다. 만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너는 꼭 후회를 할 것이다.”

“흥! 마음대로 해!”

주인은 비웃기만 한다.

바베크는 전화를 걸면서 주인의 행동을 유심이 감시하였다. 그는 지금 경찰 본부에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다. 경찰 본부에서는 바베크의 전화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바베크는 전화를 끊고 다시 주인과 마주섰다.

“경관을 내가 무서워할 줄 아는가? 나는 조금도 경찰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그럼 바른대로 말을 해 봐. 내가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

“낯설은 사나이가 둘이서 당신을 메고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술이 취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마 그 두 녀석이 마약을 먹이고 돈지갑을 때 갔는지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후환이 무서워서 당신을 내던진 것이다. 그것뿐이다.”

“거짓말 말아! 이제 경관이 오면 이 집을 자세히 뒤져 볼테다. 그럼 이 집안 어느 구석에 비밀 통로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주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도대체 너는 저 검은 별에게 얼마나 받아 먹고 이 집을 지키고 있는가?”

“검은 별? 나는 검은 별이 뭔지 모른다!”

“똑똑히 말을 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러는데 주인의 손이 번쩍 들리면서 움켜잡은 쇠망치로 바베크를 후려갈겼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던 바베크는 홱 몸을 비키면서 주먹으로 주인의 턱을 보기 좋게 내갈겼다. 주인은 쓰러졌다.

그 때, 경찰대의 자동차가 경적을 우렁차게 울리면서 바람처럼 문 밖에 와 멎었다. 거미 새끼들처럼 차에서 뛰어 내리는 경관, 경관대―

최후의 계획

[편집]

이 주막 주인으로 말하면 벌써부터 경찰에서 찾아 다니던 무뢰한으로서 그는 경관대를 인솔하고 온 경부의 질문에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바베크는 경관대와 함께 주막 안을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라나 아무런 이상한 것도 발견하지는 못 하였다. 그 주막 안에서 바베크는 컴컴한 비밀의 통로를 발견할 셈이었던 것이다. 자기가 기절해 있는 동안 그 비밀의 지하 통로로 해서 이 주막으로 운반된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 보아도 그러한 종류의 출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이번에는 주막을 중심으로 한 다른 건물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여기는 크라드리강 도박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다. 우리들은 전부 그 도박장에서 유괴되어 갔다. 그러니까 그 도박장과 검은 별의 본부를 연락하는 것은 물론 지하 통로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하고 설명하는 바베크의 말을 받아,

“그렇습니다.”

정부도 찬성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니까 도박장에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그 어떤 비밀의 출입구가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까지 근방 일대를 샅샅이 조사해 보았으나 결국 헛수고였다. 하는 수 없이 경관대는 본부로 돌아가고 바베크는 저녁 먹을 것도 잊어 버리고 크라드리강 도박장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 갔다.

도박장에는 또다시 여섯 명의 경관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을 환하니 켜 놓고 있었다.

바베크는 경관들에게 여러 가지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경관 한 명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사면으로 벽을 두드려 보았으나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일층과 이층에도 비밀의 출입구 같은 것은 통 보이지 않았다. 경관들의 눈을 피하여 손님들이 몰래 드나든다는 비밀통로에도 옆으로 뚫어진 갈랫길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를 일이다”

바베크는 자기 자신이 슬그머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검은 별의 본부는 이 근방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경찰부장을 비롯하여 값진 보물이 수두룩하니 있다. 아니, 그것보다도 검은 별은 포로들을 그리 오랫 동안 감금하여 둘 것 같지는 않았다. 검은 별은 오늘 밤 사이로 그의 최후의 계획을 실행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검은 별은 과연 포로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바베크는 다음 막스를 생각하였다. 자기가 보석 소반을 검은 별의 얼굴에다 팽개쳐 버리고 복도로 뛰쳐 나온 후, 검은 별의 본부에서는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만일 그 때의 광경을 바베크가 보았다면 그는 실로 유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그처럼 침착하던 검은 별이 네발 걸음으로 방 바닥에 흩어진 보석들을 줏어 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그러는데 바베크를 따라갔던 부하로부터 보고가 들어 왔다. 바베크가 굴 속에서 부하 하나를 쓰러뜨리고 피스톨과 회중전등을 빼앗어 간 사실, 그러나 이윽고 조그만 방까지 와서 이번에는 검은 별의 부하가 바베크를 쓰러뜨려 예의 그 수상한 주막으로 내보냈다는 말을 하였을 때 검은 별은 무척 노했다.

“바베크를 밖으로 내보내라는 명령을 누구가 했다는 말인가?”

“그만 수령의 명령을 잘못 듣고…….”

바베크를 도로 데려오라는 검은 별의 명령을 그만 당황해 있던 부하들이 잘못 듣고 밖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 바보 같은 자식들아!”

검은 별은 눈에서 불길이 튀어나올 것처럼 분노하였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내보낸 바베크를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명령을 잘못 들은 단원들은 기절한 바베크를 주막 지하실로 운반하여 콩크리이트 담벽에 교묘히 붙어 있는 비밀 문으로 해서 내보냈던 것이다. 그것은 주막 안에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비밀의 출입구였다.

주막 주인은 기절해 있는 바베크를 끌어 내다가 바깥 한길가에다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한편 검은 별의 본부에서는,

“하는 수 없다. 바보 같은 자식들이 바베크를 내보냈다니, 나는 나의 계획을 변경시키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검은 별은 부하 한 사람을 불러 세워놓고 물었다.

“지금 크라드리강 도박장은 어찌 되었는가?”

“별로 이상은 없읍니다. 여섯 명의 순경이 지키고 있읍니다.”

“그래서?”

“순경들은 여러번 도박실을 조사해 보았으나 아무런 것도 발견하지 못 하고 있읍니다.”

그 때, 검은 별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웃었다.

“흥, 바보 같은 순경들이 무얼 발견해? 이거 봐, 경찰부장! 당신은 어쩌면 바보 같은 것들만 모아 놓았소?”

“음, 이제 두고 보아라!”

경찰부장은 분연히 말했다.

“자아, 나는 계획을 변경하여 한번 더 경찰 당국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줘야만 하겠다! 내일 아침 신문에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경찰부장에 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게재될 것이다.”

검은 별은 무엇이 유쾌한지, 방안을 이리 저리 걸어 다니면서 쿡쿡 웃었다.

“도박은 나의 둘도 없는 취미다! 자아, 나의 존경하는 경찰부장, 나와 더불어 도박이나 한번 해 봅시다. 경찰부장이 검은 별과 사이 좋게 골패를 하고 있었다는 신문 기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흥미거린 걸!”

검은 별은 적지 않게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부하를 향하며,

“그대는 어제 밤 도박실 금고를 보았는가?”

“네.”

“그 금고를 열 수 있겠나?”

“통조림 통을 뜯는 것보다도 쉽죠.”

“그럼 도구를 준비해라. 금고 속에는 적어도 십만 불 현금이 있을 것이다.”

“흥, 마치 자기 집 금고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군.”

경찰부장이었다.

“물론이요.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물건은 죄다 알아 두고 있지요. 자아, 부장어른, 우리 한판 멋지게 놀아 봅시다.”

그러는데 부하 한 사람이 들어왔다.

“수령, 크라드리강 도박장은 경찰에서는 그리 중요시하고 있지 않읍니다. 우리가 오늘 밤 은행을 습격할 것을 염려하여 죄다 시내 은행으로 경찰을 배치해 놓았읍니다.”

“하하하하……”

검은 별은 유쾌히 웃었다. 경찰부장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여,

“경찰 당국의 생각을 너희들이 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 가?”

“그런 것쯤 문제 없죠. 경관의 복장을 하고 있어도 실상은 검은 별의 단원이 되어 있는 자가 있으니까요.”

“음―”

부장은 분한 듯이 신음을 하며,

“어느 놈인지, 내가 알기만 하면……”

“하하하……부장 어른께서는 아마 절대로 모를 것이요! 하하하…… 그것은 어쨌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제부터 도박장으로 가야만 하는데…… 도박장은 여기서 상당히 멀지요. 그러니까, 그 동안 제군이 떠들지 못 하도록 한번만 더 잠자는 약을.”

“또 까스•피스톨이야?”

막스가 이를 갈았다.

“막스, 너는 몸집은 작으면서 성미가 난폭해서 못 쓰겠어.”

“흥, 무슨 말이든 마음대로 해라. 이제 바베크 선생이 너를 붙들 때가 있을 테니, 그 때에 이 두 손으로 네 모가지를 비틀어서…….”

“흥, 그런 말일랑 붙잡어 놓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거야. 이건 떡도 먹기 전에 김치국 생각만……”

검은 별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부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했다. 이윽고 까스•피스톨이 발사되며 포로들의 머리가 푹 꺾여졌다. 따라서 경찰부장의 고함 소리도 멎어 버렸다. 그들은 또다시 기절을 하였다.

도망하는 경찰부장

[편집]

크라드리강 도박장에는 여섯 명의 경관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맨 처음에는 적지 않게 무시무시하였다. 경찰부장을 비롯하여 사람이 연기처럼 없어지곤 한다는 이 유령의 집을 지킨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 안을 대여섯 차례 돌고 나니 무서운 생각도 점점 없어져서 다소의 안심은 되었다. 그들은 명령을 받은 대로 방에는 전기 불을 환하니 켜놓고 들창에는 모두 커어튼을 내리우고 쇠를 잠거 놓았다. 그들의 임무는 말하자면 증거가 인멸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데 있었다.

재밤이 되자 두 명은 지하실, 두 명은 일층, 두 명은 이층― 이렇게 각기 부서를 나눠서 지키기로 하였다. 이층을 지키는 두 명은 도박실 문 안에서 벽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보고 있다가 순찰을 할려고 뒤로 돌아서 보니, 거기에 까운 마스크로 몸을 감춘 괴한이 두 사람 서 있다가 권총을 내댔다.

“앗―”

경관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도 아무도 없 던 도박실이었다. 이 괴상한 인물들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들어왔 는고?

“손을 들어라!”

괴한이 소리를 쳤다. 권총 앞에는 복종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경관 두 명은 손을 들었다. 손을 들면서 그들은 아래층에서 경비하고 있는 동료에게 고함을 칠려고 하였으나 그럴 틈은 조금도 없었다. 괴한 하나가 까스•피스톨을 코 앞에서 발사했다. 경관 두 명이 쓰러지자 괴한은 곧 몸을 뒤져 무기를 압수하였다. 십분 후, 검은 별의 부하들은 아래층과 지하실에 있는 네 명의 경관들까지 기절을 시키고 이층 도박실로 운반해 놓았다.

드넓은 도박실에는 어느덧 20명이나 되는 검은 별의 단원이 모여 있었다. 동시에 경찰부장, 막스, 순사부장, 그리고 다섯 명의 경관도 끌리어 왔다.

포로들은 간신히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까보다는 훨씬 관대한 처분을 받고 있었다. 손목을 뒤로 결박 당하고 있었으나 재갈도 물리지 않고 자유로이 방 안을 걸어 다녀도 좋았다.

검은 별은 골패를 하는 도박대 앞에 걸터앉아서 방 안을 삥삥 돌면서 푸르럭거리는 경찰부장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검은 별이 눈짓을 하기가 바쁘게 부하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부서에 착석하였다.

한 사람은 피아노 앞으로 가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고 다른 몇이는 도박대 뒤에 둘러 서서 심부름을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식당 뽀이가 되어 술을 따르면서 돌아갔다. 그러는데 단원 하나가 들어와서,

“금고를 열었읍니다.”

하고 보고를 하여 왔다.

“음, 그러면 금고 안에 있는 돈을 전부 이리 꺼내 오라.”

이윽고 네 사람이 나가더니 산더미 같은 지폐 뭉치를 운반해 들어왔다.

“자아, 경찰부장, 신사답게 조용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면서 검은 별은 도박대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아주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을 하였다.

“자아, 이제부터 검은 별의 도박장을 개업하겠읍니다. 에헴! 이 도박장으로 말하면 이 도시의 오락장으로서는 일류급에 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은 개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술은 무엇이든지 무료로 써어비스 하겠으니, 입에 맞으시는 것을 뽀이에게 주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음판에 대는 돈은 제한이 없으니 얼마든지 대도 무방하고 만일 돈을 갖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크라드리강의 돈을 얼마든지 취해 드리겠읍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손님은 단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돈을 대시어야만 합니다.”

검은 별은 손뼉을 쳤다. 피아노 소리가 유창히 흐르고 뽀이들이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경찰부장, 여기 지폐가 있으니 얼마든지 대시오.”

“흥, 나를 정말로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 셈이냐?”

부장은 분연히 외쳤다.

“벌써부터 되어 있는걸요. 돈을 대지 않고는 아마도 못 견디어 낼 걸요.”

“그러나 들창으로 가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면 어떡헐 셈이냐?”

“어디 용기가 계시거든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검은 별의 목소리에는 무서운 협박조가 숨어 있었다.

경찰부장은 무척 초조하였다. 전시의 경찰관이 필사적인 노력으로 체포하려는 검은 별이 현재 이 도박장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찰부장과 수명의 경관이 그의 포로가 되어 검은 별의 흥겨운 장난을 속수로 방관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 딱하고도 안타까운 하룻밤이 그지없이 원망스러웠다. 부장은 후딱 들창가로 뛰어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두 사람의 부하가 우뚝 길을 막아서며,

“쓸데 없는 노력은 포기하고 어서 놀음판에 돈이나 대시오.”

했다. 무서운 위협이었다.

부장은 하는 수 없이 도박대로 돌아가서 검은 별의 손으로부터 크라드리강의 돈을 받아 가지고 댔다. 그는 검은 별이 하라는 대로 복종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부장 당신도 막스 군을 좀 본받아야겠오. 막스 군은 나와 누차 교제를 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떠들고 협박을 해 보았댔자 소용 없는 줄을 잘 알고 있지요.”

그러면서 검은 별은 쿡쿡 웃었다. 부장은 막스를 바라보았다. 막스는 도박대 옆에 침울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었다.

“막스, 왜 돈을 안 대?”

검은 별은 물었다.

“까스•피스톨이 심해서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허어, 그건 안 됐는걸! 자네와 바베크가 건전해야만 나의 상대가 되지 않겠나? 기분이 나쁘면 방 안을 마음대로 걸어 다녀도 좋아. 손목을 뒤로 결박해 놨으니 도망칠 염려는 없을게 다.”

막스는 일어서서 드넓은 방 안을 이리 저리 걸었다. 복도로 나가서 아래층을 내려다 보니 두 사람의 단원이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막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가지 생각―그것은 아까 지하실의 전화선을 자기가 수선해 놓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검은 별은 아직도 전화가 통하지 않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도박장 바로 옆에 딸린 조그만 방 테이블 위에 전화기가 놓여 있는 사실을 막스는 흘끗 바라보았다. 막스는 산보나 하는 것처럼 무심한 태도로 옆 방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는 기분이 대단히 나쁘다는 이유로 단원에게 브란디를 한 잔 얻어 마셨다.

전화는 그 방 커어튼 저 편에 있었다. 그는 커어튼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놀음판에 정신이 팔렸었기 때문에 막스의 행동을 주의해 보는 이가 없었다.

막스는 입으로 전화줄을 물고 수화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 다. 그는 재빨리 전화통에 입을 갖다 대고 가는 목소리로,

“본국! 경찰 본부! 빨리 크라드리강 도박장으로 경관대를 파견하라! 크라드리강 도박장으로―”

꼭 같은 말을 그는 다섯 번이나 되풀이하였다. 전화국의 교환수가 자기의 말을 경찰에 전해 주기를 절실히 바랬다.

누구가 오나 보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다시 전화 즐을 물고 수화기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방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막스의 행동을 수상히 생각한 모양인지, 부하 하나가 커어튼을 헤치고 들어왔다.

“아, 막스! 어쨌나?”

“갑자기……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막스는 괴로운 듯이 신음을 해 보였다. 부하는 놀란 얼굴로 동료 한 사람에게 브란디와 냉수를 가져 오라고 말한 후에 방 안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막스는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일어나 앉았다.

“아, 인제야 살았다. 어찌나 어지러운지……”

두 사람은 막스를 데리고 경찰부장이 놀음을 하고 있는 도박대로 돌아왔다.

시간 가는 것이 무척 더디다. 막스는 자기의 전화가 무사히 경찰 본부에 통하기를 하늘에 빌었다. 검은 별은 부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무척 만족한 듯이 도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어제밤 위조 지폐로 크라드리강과 도박을 한 이야기를 하여 경찰부장을 놀라게 하였다.

그 때, 부하 한 사람이 도박장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고함을 쳤다.

“수령! 경관대의 습격입니다!”

“뭐?”

검은 별이 도박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탕― 탕― 탕―”

밑층으로부터 소란스런 총성이 연달아 들려왔다.

“문을 열어라!”

경관대의 호령이었다.

쩌개지는 대지(大地)

[편집]

바베크는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그 수상한 주막 부근을 싸돌아 다녔다.

검은 별은 어떤 방법으로 크라드리강 도박장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을까? 무슨 교묘한 비밀의 출입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밤 중, 바베크는 크라드리강 도박장 부근으로 다시금 돌아왔다. 다섯 명의 경관이 정원을 경비하고 있었다. 이층 도박실 커어튼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올 뿐, 주위는 캄캄하다.

그는 정원으로 들어서서 무성한 수목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 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바베크 옆으로 다가서면서,

“아, 바베크 선생입니까?”

“수고들 하오.”

“경찰 본부로 이상한 전화가 걸려 왔읍니다.”

“이상한 전화?”

“네, 본국에 있는 어떤 교환수가 전달한 것인데요. 이 크라드리강 도박장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면서 곧 경관대를 파견하라고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막 달려 온 참입니다.”

자세히 보니, 도박장 주위에는 수 많은 경관대가 물 샐 틈조차 없을 만큼 엄중히 포위하고 있지 않은가!

“음, 막스가 전화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자아, 그러면 습격을 개시하라!”

“네!”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경관대가 욱하고 몰려 들어갔다. 문을 두들겨 보았으나 집 안을 경비하고 있어야만 했던 여섯 명의 경관은 누구 한 사람 나오지 않는다.

“음, 역시 수상하다!”

경부가 문에 딸린 자그마한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앗, 검은 별의 단원이……”

까운과 마스크를 한 검은 별의 부하가 보이지 않는가! 그와 동시에 안에서도 경관대의 습격을 재빨리 깨닫고 수령에게 보고를 하였다.

이윽고 총성과 함께 문은 파괴되었다. 한 패는 지하실로 밀려 들어가고 한 패는 일층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남어지 한 패는 경부보다 바베크를 선봉으로 하고 이층 도박실로 뛰어 올라갔다.

전등이 휘황한 도박실― 테이블 위에 술병과 술잔이 흩어져 있고, 피아노 옆에는 피다 남은 담배가 타고 있었다.

“앗, 경찰부장!”

“막스!”

경찰부장과 막스를 비롯한 수명의 경관이 방 한가운데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검은 별과 그의 일당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빨리 뒤져라! 일 분 전까지도 그 놈들은 이 곳에 있었다!”

경부보는 미친 듯이 고함을 쳤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검은 별의 일당은 보이지 않았다.

바베크는 텅 비인 넓은 도박실 안을 휘이 둘러 보았다. 악당들이 지하실로 내려 갈 시간의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이 도박실 안에 비밀의 통로가 있다는 말이지? 크라드리강이 만들어 놓은 통로는 물론 나올 것이다. 그것은 이미 면밀히 조사해 보았다.

그는 방 한 구석을 점령하고 있는 커다란 난로(爐) 앞으로 걸어가서 다시 사방을 돌아다 보다가 문득 자기 발부리 앞 방 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자국 껌정이 묻은 발자국이 한개 뚜렷이 인박혀 있지 않은가!

“아, 이 껌정이 묻은 발자국!”

그는 주저 없이 난로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머리 위로 높다랗 게 밤 하늘이 쳐다보였다. 굴뚝이다.

“그럼 저 높다란 굴뚝으로는 단시간에 빠져 나가지는 도저히 못할 것이다.”

그는 권총을 거꾸로 들고 난로 뒷담벼락을 뚝뚝쳐 보았다. 그랬더니, 쿵쿵, 쿵쿵― 분명히 담벼락 속은 비어 있었다.

“마치를 가져 오라!”

바베크는 부리나케 고함을 쳤다. 이윽고 묵직한 쇠마치 하나를 가져 왔다.

“힘껏 쳐라! 이 담벼락을 힘껏 쳐라!”

그 말에 경관이 쇠마치를 들고 난로 뒷담벼락을 힘껏 내려갈겼다. 뚫어져 나가는 구멍―

“턴넬이다! 굴이다”

바베크는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보라! 저 지레(槓杆)를!”

굴 속으로 기다란 지렛대가 들여다보였다. 그 지레를 누르면 담벼락이 좌우로 열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베크는 회중전등을 켜 들며,

“방 바닥에 껌정이 묻은 발자국이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검은 별의 본부로 통하는 비밀의 출입구다!”

“추격을 해라!”

경부보가 벼락같은 명령을 내렸다. 굴 속은 사람이 하나 서서 걸을 만한 넓이로 뚫려져 있었다. 이것을 파려면 상당한 시일과 돈이 들었을 것이다.

바베크가 앞장을 섰다. 경부보와 수명의 경관이 뒤를 따랐다. 이윽고 굴은 왼편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한 손에는 회중전등, 한 손에는 피스톨― 얼마간 걸어 들어가니까, 성깃성깃한 철봉으로 된 철문이 우뚝 일동의 앞을 막았다.

“부셔라!”

철문을 부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상당히 허비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철문을 부순 후에 일동은 또다시 전진을 계속하였다. 또한 개 철문이 그들을 막았다. 일동은 그것을 또 부수고 들어갔다.

굴이 또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커어브를 했다. 그 순간, 일동의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난 전기글자(電氣文字)가 있었으니―

걸음을 멈추어라! 앞길은 위험하다!

“위험은 무슨 위험! 전진을 계속해라!”

경부보의 명령은 조금도 주저 없다.

“검은 별은 사람을 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때로는 가혹한 술책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바베크는 설명을 하였다.

“좋습니다! 전진을 계속합시다!”

경부보는 분연히 부르짖었다.

이리하여 다시 50 피이트 가량 굴 속을 걸어 들어 갔을 때, 전기 글자가 또 눈 앞에 나타났다.

제군은 이미 나의 경고를 받았다. 죽음을 각오한다면 따라오라!

그래도 일동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그냥 굴 속 깊이 추격해 들어갔다.

경관대는 오늘이야말로 저 흉악한 검은 별을 체포할 것이다 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굴이 또 한번 커어브를 했을 때였다. 일동은 별안간,

“앗―”

하고 소리를 치며 뒷걸음질을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이 어찌된 노릇이뇨?

콰앙하는 무시무시한 폭발 소리와 함께 땅 바닥이 쩍 갈라져 나가지를 않는가!

“검은 별은 굴을 폭발시켰다!”

경부보는 신음하듯이 외쳤다.

굴 속은 까스와 연기와 먼지로 가득찼고 흙덩어리와 암석의 파편이 비오듯이 쏟아져 내려왔다. 굴은 완전히 막혀 버리고 일동은 되돌아 뛰어나왔다.

이윽고 일동이 난로 속으로 해서 넓은 도박장으로 기어 나왔을 때는 경찰부장을 비롯한 포로들은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들창 밖으로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거리에는 수 많은 군중이 아우성을 치며 수라장과도 같은 어지러운 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곧 거리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평하니 뚫어져 있었다. 전차 선로는 엿가락처럼 구부러지고 지나가는 자동차가 구멍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저편으로부터 소방 자동차가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 오고 있었다.

“부장, 그 놈은 굴을 폭발시켰읍니다!”

경부보는 보고를 하였다. 바베크는,

“부장, 전원을 동원시켜 저 구멍을 끝까지 파 봅시다. 파 보면 반드시 굴이 나타날 것이고 그 굴을 어디까지나 따라가 보면 검은 별의 본부에 도착하지요.”

그러나 경찰부장은 망연자실, 아무런 대답도 없다. 자기네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검은 별을 붙잡을 것 같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이걸 좀 읽어 보십시오. 이 종이 쪼각이 제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읍니다. 검은 별의 편지―”

하고 막스가 다가서면서 바베크의 손에 편지 한장을 쥐워 주었 다.

×

도박군을 붙잡으러 다니는 경찰부장이 도박을 하였다. 그는 검은 별을 상대로 골패를 하였다. 이것은 실로 흥미 있는 좋은 신문 기사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경관대가 조금 빨리 들어 닿은 것을 유감히 생각하는 바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나는 크라드리강의 돈을 가지고 경찰부장을 상대로 실로 유쾌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나는 또다시 퇴각을 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그리고 만일 제군이 나의 비밀의 출입구를 발견한다면 나는 하는 수 없이 굴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나는 나의 본부에 있는 귀중품을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겠기에 나는 크라드리 강의 돈을 전부 가지고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오쟈•바베크 군에게 대하여 한마디 한다. 늘 밤부터 한 주일 안으로 나는 이 도시에 있어서의 최후의 일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나는 신천지(新天地)로 여행을 한다. 그러니까 만일 나를 체포하겠다던 군의 맹세를 끝까지 이행할려거든 적어도 한 주일 안에 손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랑스러운 바베크 군이여, 잘 있으라!

검은 별

×

“음, 붙잡구 말구!”

막스는 분한 듯이 푸르럭거리며,

“두고 보아라, 이 놈 검은 별! 네게는 내가 빚을 많이 지고 있다. 인제 붙잡기만 하면 그 빚을 죄다 갚아 줄 테다! 이 손길이 그 놈의 모가지에 닿기만 하면 그저…… 그저…… 닭의 목을 비틀 듯이…… 이렇게…… 이렇게……”

그 때, 경찰부장은 벌떡 정신을 차린 듯이 본부에 전화를 걸고 굴 속을 끝까지 파 보도록 전원을 동원시키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바베크는 충복 막스와 함께 넓은 층층대를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한 주일 안에는 꼭 붙잡을 수 있읍니까?”

“음, 한 주일 안에는 꼭 붙잡지! 붙잡고 말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