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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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좀 틔각거린 일도 있고 해서 그랬든지 아무튼 일부러 달게 자는 새벽잠을 깨울 멋도 없어 남편은 그냥 새벽 차로 일직암치 관평을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형예(亨禮)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젯밤 다툰 일이다. 하긴 어제밤만 해도 칠원관평은 몸소 가 봐야 하겠다는 둥 무슨 이 사회가 어떠니 협의회가 어떠니 하고 길게 늘어놓은 남편의 이얘기가 그저 좀 지리했을 뿐 별것 없었다면 그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그게 꼭 「이러니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는 것처럼 댓듬 비위에 와서 걸리고 보니 형예로서도 가만이 있을 수 없어 자연 주고받는 말이란 것이 기껏

「남의 일에 분주헌 건 모욕이래요.」

「남의 일이라니 웨 결국 내 일이지.」

이렇게 나오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되고 보니 딴 집으로만 났을 뿐 아직 한집안일뿐 아니라 큰댁에서 둘째 아들을 더 힘 믿는 판이고 보니 하긴 남편의 말대로 짜장 그렇기도 한 것이 형예로선 더 노꼴스럽게 된 판에다가,

「여자가 아무리 영니해도 밖앝 일을 이해 못험 그건 좀 골난해.」

하고 짐짓 딴대리에서 거드름을 부리는 것은 더 견디어 낼 수가 없어서 이래서 결국 형예 편이

「관둡시다 관둬요 ─」

하고 덮어버리게 된 이것이 어제ㅅ밤 사껀의 전부고 그 내용이지만 사실은 이런 따위의 하잘 것 없는 말을 주고받은 것 뿐으로 그저 그만이어도 좋고 또 남편이 이따금 이런데서 그 소위 거드름을 부려봐도 그리 죄 될 것 없는 이럴테면 안해의 단순한 트집이어서도 좋을 경우에 형예는 곧잘 정말 화를 내는 것이 병이라면 병이다. 더구나 형예로선 암만 생각해 봐야 조금도 다정한 소치에서가 아닌데도 노상 정부더리는 제가 도맡어 놓고 하게 되는 결과가 노여울 뿐 아니라 항상 사태를 그렇게만 이끄는 남편의 소행이 더할 수 없이 능청맞고 괫심할 정도다.

간밤에도 물론 이래서 잠이 든 것이지만 막상 아츰에 깨고 보니 결국 또 손해본 사람은 저뿐이다. 지금쯤 분주히 관평을 하고있을 남편에게 비해서 이렇게 오두마니 누어 천장 갈비만 헤이고 어제ㅅ밤 일을 되푸리하는 제가 너무 호젓해 해서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일즉 일어났대ㅅ자 별루 할 일도 없고 또 일즉 일어나기도 싫어서 그냥 멍충이 누어 있으려니 어듸난 거미줄 한나불이 천장 복판에서 그네질을 한다. 형예는 어쩐지 그곳에 몹시 마음이 쓰이려구 해서 일어나 그걸 떼 버릴가 생각는 참인데

「여잔 웨 관평을 하려 다니지 않을가?」

하는 우순 생각 때문에 문듯 실소하려던 마음 한 귀퉁에서 별안간 야단이 난다.

「그깐 일 ─」

하고 발칵 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형예는

「웬일일가? 내가 이렇게 비위를 잘 상우게 되는 것은 그를 대수롭게 녁이 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제법 맹낭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또 뭘 그렇게 치우쳐 다잡어볼 것 없이 그저 남편을 사랑한다구 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이러지 않고는 사실 일이 너무 거창해서 인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서 그는 그저 인망이 높다는 남편의 좋으듸 좋아 뵈는 그 눈자위가 각 ─ 금 비위를 상해줄 뿐이라고 생각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뭘 별루 생각하는 것도 없이 그저 이렇궁 저렇궁 누었으려니

「아지머니 웃말 댓에서 놀러 오시라요 ─」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을 전한다.

형예는 얼른 이불을 거딧고 일어났다.

웃말 댁이라면 그저께 정희(貞熙)혼인이 있은 집이고 정히는 먼 촌 시뉘라기보다 더 많이 여학교 때부터 절친한 동무다. 제바람에 가 볼 주제는 없었지만 아무튼 꽤 궁금하던 판이라 부리낳게 세수를 한 후 그는 『서울신랑』

그 걸패 좋다는 청년을 함부로 머릿속에 넣어 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조심껴 화장을 했다.

「저녁에 아저씨가 오셔도 웃말 댁에 갔다고 엿주고, 집안 비이지 말어라.」

형예는 문밖을 나섰다.

너무 맘 써 치장한 때문인지 언제라도 입을 수 있는 힌 반호장저고리에 옥색 치마가 쨍 ─ 한 가을 볓살에 눈이 부신다. 어째 횃박을 쓴 것처럼 분이 너무 많이 발린 것도 같고, 입술이 주홍처럼 붉은 것도 같아서 뒷둑뒷둑 얼울한 판인데

「아이갸, 새댁 나들이 가나베, 잔칫집에 가요 ─」

하고 마을집 노인이 인사를 한다.

「네 ─」

하고 그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려니, 어쩐 일로 그 노인이 꼭 얼굴만 보는 것인지……. 그는 귓밑이 확근하다.

「망할 노인네, 속으로 무슨 흉을 잡으려구 ─」

형예는 괘니 이런 당찮은 속알치를 부리고, 역부로 얼굴을 쳐들다싶이 하고는 황황이 큰길을 나섰다.

큰길 옆 음식점 앞에선 무던이 키가 적고 다부지게 생긴 엿장사가 어느 우 대ㅅ사투리론지 엿판을 치며 얼사녕을 빼고 있다. 그 옆에 우무룻한 애들, 손자를 앞센 노인, 뒷짐을 짓고 괘니 주춤거리는 얼주정꾼, 이렇게 숫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암만 생각해봐도 어쨋든 그 앞을 지내칠 용기가 없을 상 싶어서 형예는 수째 되돌쳐서 좁은 길을 잡었다. 좁은 길로 가면, 학교 뒤 긴 ─ 담을 돌아서도 논뚝길로 큰 길 두 배나 가야 하고, 그보다도 길이 험해서, 앨써서 보투 신은 보선발에 흙알이 들어가면 낭패다. 그는 뉘집 사립 가 엔지 죄 없이 하늘거리는 몹시 노란 빛깔을 한 채송화 폭이를 일부러 잘근 밟으며 짜징을 냈지만, 아무튼 굳이 이 길을 잡은 그 사람 됨됨을 비록 스스로 자조한다 친대도, 영 갈 수 없었든 것은 의연 갈 수 없었든 것으로 어찌 할 수는 없다.

형예가 좁은 길을 거진 다 빠져나려구 했을 때다. 마침 고 삼가람길에서 그는 공교롭게도 명순(明順)이와 마조쳤다. 명순이는 몹시 호사를 하고 사내아이도 그 남편도 이 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값진 옷들인 상 싶으다.

「어데 가니?」

「어디 가니?」

「나 온천에 좀 가.」

대답하는 명순이는 밝고 다정한 얼굴을 해서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인차 헤졌다.

학교 뒤 긴 ─ 담을 돌아 나오려니

「저런 게 행복이라는 걸가 ─」

하는 야릇한 생각에 썬듯 걸린다.

생각하면 형예는 전부터 명순이 같은 애들이 그리 좋지 않은 폭이다. 명순이만 두고 말해도 처음 시집 갈 땐 그렇게 죽네 사네 싫다든 아이가 시집간 지 얼마가 못 되서부터 혹 동무들이 찾어가도 조금도 탐탁해 하지 않는 대신, 날로 살림 잘한다는 소문이 높아 가는 것부터가 싫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개개 두고 볼라치면 학교 때 공부 못하고 빙충맞게 굴던 군들이 시집가선 곧잘 착한 말 듣고 잘 사는 것이 참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속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걸 부럽게 역일 맘보다는 일종 멸시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든 상 싶다 하지만 . 웬일로 이제 이렇게 긴 ─ 담을 끼고 호젓이 생각하노라니 그 귀엽고…곻은 생각을 담옥 담옥 지녔던 죽은 숙히라든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 지금은 진남포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른다는 지순이라든가 또 게봉이나 이제 형예 저 같은 사람보다도 명순이 같은 애들이 훨신 대견하고 그저 그만이면 그만으로 어째 훌륭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순간 그는 맘속으로 가만 ─ 이

「지순이는 뭘 하고 있을가 무슨 빠 ─ 엔가 차ㅅ집에 있다는 소문이 정말이라면 그건 명순이처럼 곧 남편이 좋아지지 않은 죄고, 음악이 취미라고 해서 축음기판을 무수이 사드리고 오 ─ 케ㄴ지 뭔지 하는데서 가수들이 오는 날이면 숫한 돈을 요리값으로 없새곤 하든, 그 남편을 끝내 싫어한 죄일 가 ─」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쩐지 이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보다 몇 배 더한 이상한 노여움을 어찌 할 수가 없다. 발아래 폭삭폭삭 밟히는 흙알을 한 줌 쥐어 누구의 얼굴에고 팩 ─ 끼얹고는 그냥 돌쳐서고 싶은 야릇한 분만이다.

마침 성호천이란 내ㅅ물을 끼고 내리 거르면서 그는 맘속으로 페 받듯 숫한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소린지 한참 중얼대고 나니까 어째 맘이 헛전한 것이 이상하게 쓸쓸한 정이 든다.

쟁평하니 남실거리는 여울물이 보였으나 그는 죄ㄱ고만한 돌맹이로 파문을 긋고 싶은 마음도 없이 그저 휘ㅅ청 휘ㅅ청 걸었다.

어듸난 대사를 치른 마당이라고 색기나부랭이 조이 쪼각 떡 부스레기 이런 것들이 어수선이 널렸는데도 그게 상가나 무슨 불길한 마당과는 달러서 어쩐지 풍성풍성하고 훈훈한 김이, 어데서고 당홍치마를 입은 신부나 귀밑이 파르란 신랑이 꼭 나타날 것만 같아서 짐짓 대청 앞을 피하고 샛문으로 해서 정히가 거처하는 방 쪽으로 가만가만이 가려니까 아니나다르랴 정히가 뛰어나온다.

「요런 깍쟁이 고렇게 새ㅅ침일 띤담, 그래 모시러 보내지 않었드면 안 올 번 했지?」

정히는 야속다는 듯이 눈을 홀긴다.

형예는 정히 태도가 하도 신부답지 않다기보다도 너무 전날 그대로여서, 어떻게 보면 그게 더 곻와 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또 한편 이상한 감을 주기도 해서 어쩐지 얼굴이 달았다.

형예가 정히에게 이끌려 마루로 올나서려니 여지껏 아랬목에 앉아서 두 사람의 수작을 보구 있던 퍽 해맑게 생긴 사나이가 밖으로 나온다. 형예는 속으로 「저게 뭐니 뭐니 하는 이 집 사위로구나 ─」했다.

정히는 그저 얼떨떨해 있는 형예에게 자리를 권할래 이얘길 건늴래 뭘 또 채려오게 하고, 한참 부산하다.

「얘, 덥단다. 내가 웨 시집왔니, 아랫목으로만 밀게 ─」

형예는 도무지 적당한 말이 없어 곤란하던 차라 아랬목으로 앉힌 것을 다행으로 아무렇게나 말한 것인데

「너 시집 좀 와 보렴!」

하고 정히가 말을 받고 보니 영문 없이 또 귀밑이 확확하다. 하긴 정히의 이런 말버릇이 이제 처음도 아닌 게고 또 뭘 이대도록 무안을 탈 것도 없지만 어쩐지 그는 왼편 바람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말었다. 그랬는데 ─ 하필 그곳엔 체취가 풍기도록 고대 벗어 건 것만 같은 넥타이가 끼여진 와이샤쓰며 양복이 걸려 있어 여지껏 정히가 처녀였다는 사실과 이상하게 엉크리져 그는 또 한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얼마나 즐거우냐.」

그는 급기야 애꾸진 정히를 놀리고 만 셈이다.

「너 이러기냐?」

하는 듯이 정히는 고 초랑초랑한 눈으로 작난꾼이처럼 잠깐 형예를 처다봤으나 인차 무슨 맘으론지

「얘, 너 서울가서 살잖으련?」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 것이다.

「너이 서울엘 내가 뭣 하러……」

「언젠가 웨 너이 신랑 서울로 취직된다드니 그것 정말이냐.」

정히는 제 말을 게속한다.

「쉬 ─ 갈지도 모루지만 아마 그이 혼자 가게 될 거다.」

「건 또 무슨 자미람, 그래 너이 신랑이 혼자 가서 있겠다든?」

「그럼 넌 혼자 가질 못해서 가려는 게로구나 ─」

「요런, 내가 내 이얘길했어, 내가 간댔어?」

하고 정히가 대바질이다.

결국 형예가

「얘, 관둬라, 듣기 싫다.」

하고 말을 끊었지만 그는 정히와 오래두록 앉아서 이런 이얘길 주고 받을 스록 어쩐지 맘이 수수하다.

정히의 잉어처럼 싱싱한 청춘이 말과 동작으로 되어 눌리는 것처럼, 설사 그게 주책없이 뵌다구 한대도 아무튼 이상한 힘으로 압박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형예가 한동안 그저 흥을 잃고 앉았으려니

「너, 내가 시집간다니까 처음 생각이 어떻듸?」

하고 정히가 말을 건다.

「어떻긴 뭐가 어때, 그저 가나부다 했지!」

「어뜬 사람에게로 가나 했지?」

「그래 어뜬 사람에게로 갔단 말이냐!」

이래서 정히는 첨 「그이」와 알게 되던 이얘기, 연애를 하던 이얘기, 결혼하기까지의 실로 숫한 이얘기를 들려준 셈이다.

형예는 정히가 은연중에 결혼을 늦게 하는 사람은 으레 의지가 강하고 이상이 높다는 자랑을 하는 것 같어서

「그야 좋은 연애를 해서 결혼하는 게 가장 리상일진 몰라두 연애라구 다 좋을 수야 있나 ─」

하고 잣칫하면 불쾌해지려는 감정을 자 ─ 긋이 경험하면서도 왼일인지 또 한편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맞추던 해 정히와 도망갈 약속을 어기든 일, 별로 맘이 내키지도 않는 것을 어머니가 몇 번 타이른다고 그냥 시집갈 궁리를 하든 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가 한 일이래도 모도 지랄같다.

그는 역부러 사과 한 쪽을 집고

「너 언제 시댁으로 가니?」

해서 생각을 돌리려구 한다.

「아직 잘 몰라 ─」

정히는 왼통으로 있는 사과를 집는다.

「나 않 먹는다. 목이 마른 것 같어서…….」

「그럼 식헤 가져오랴?」

「아 ─ 니.」

「대체나 아인 까다롭기두 해 ─」

「까다롭긴 네가 까다롭지 뭐 ─」

「내가 뭐가 까다뤄.」

「여태 골랐으니 말이다 ─」

「못된 거 같으니라구 어디서 말재주만 뱄어?」

형예는 조금도 맘에 있어 게획한 말도 아니면서 정히 말맛다나 결국 말재주로 놀려주게 된 것이 우습고 또 어째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시 뭐라구 말을 건늬려는데 별안간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난다.

그 술상 하나 내오소 「 온…아니 서울사위를 보문 다 이른가? 그 서울사위 이리 좀 나오게 그려. 내 좀 보세 그래 ─」

하고, 정히 끝에ㅅ 당숙이란 양반이 술이 거울거울해서는 익살을 부리는 판이다.

이통에 정히가 듣다가 혹 신랑이 노여할 말이나 하지 않을가 맘이 켜지는지 그만 초조한 얼굴로

「풍속이 다르니까 이해야 허겠지만서두 사람들이 너무 무관하게 구는 통에 불안해요. 더구나 떠드는 건 질색인데 ─」

하고 낯빛을 어둡힌다.

「아인 승겁기두, 그이가 질색인데 네가 웨 야단이냐 글쎄.」

그는 정히 말을 받아서 이렇게 허트로 놀리기는 했어도 정히가 어느새 이처럼 참견하려드는 그 맘이 암만 생각해도 이상할 뿐 아니라 객적으리만치

「정히는 반했나보지, 제 말맛다가 사랑하면 반하게 되나 보지. 제가 반하는 것은 남이 저헌데 반하는 것 보담 어떨가?」

하는 우수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너 웨 잠작고 있니, 내가 수선을 떨어 불쾌허냐?」

「미쳤어 ─」

그러나, 정히는 뭘 별루 더 의심하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작난감을 감춘 소년처럼 또랑 또랑 형예를 처다보며

「참 우리 인사헐가, 그이허구.」

하고 묻는다.

「싫다, 얘 ─」

어리둥절해서 거절을 했을 때, 정히는 몹시 섭섭한 얼굴을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이야길 많이 했고 그때부터 소개할 것을 약속했다고 하면서 사람을 잘 이해한다는 것과 과히 인상이 나뿌지 않으리라고까지 말을한다.

형예는 제가 거절한 것이 무엇으로 보나 정말이 못될 뿐 아니라 응당 알고도 시침이를 띈 이를테면 저보다는 깍쟁이 같은 속인 줄은 조금도 모르고, 그저 안되하는 정히에게 일종 죄스런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렇게 자랑이 하고 싶다면 내 인사헐테니, 작작 고만 두잤구나 얘.」

하고 쉽사리 대답해버렸다.

두 색시가 저녁상을 받고 앉았는데 정히 어머니가 들어왔다.

많이 먹으라는 둥, 혼인날 웨 안왔느냐는 둥, 인사치레 허랴, 딸 걱정, 사위 자랑 허랴, 갈피를 못 잡는 주인마나님의 부산한 이얘기를 귀ㅅ곁으로, 형예는 제 생각에 기우렀다 . 고 좀체로 우슬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제법 무심하게, 별루 말도 없이 그저 인사만 하든 신랑의 태도가 어쩐지 이상한 불쾌와 더부러 굄물을 도는 맴쟁이처럼 뱅뱅 머리ㅅ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히 어머니는

「이제 시집이라고 훌 가버리면 그만인데, 자주 놀로 오게이, 있다가 밤참 먹고 오래 놀다 가게이 ─」

하며, 쉬 큰방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나가자 정히도 따라 숫갈을 놓으며

「웨 고만 먹니?」

하고 쳐다본다.

「넌 웨 고만 먹니?」

둘이는 우섰다.

별 의미도 없는 그러나 몹시 다정한 우슴을 우스면서도 어쩐지 형예는 점점 맘이 편칠 못하고 자꾸 어두워지려구 해서 곤란했다. 그런데다 정히가 멋모루고 자꾸 이 얘길 꺼내 놔서 더욱 딱하다. 그래서 그만 이ㅅ빨이 쏜다고든지 두통이 심하다고든지 해서, 피해 볼가도 생각해 봤으나, 그러나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아서

「한번 보구 그런 걸 어떻게 아니 ─」

하고 말을 받었다.

「깍정이 같으니라구……」

「그럼 꼭 좋단 말을 해야헌단 말이지, 그래 참 좋드라.」

말이 떨어지자 형예는 도두세고 앉인 종아리를 사정없이 얻어 맞었다.

「아이 아퍼, 너 막 셀쓰누나, 난 갈 테다 ─」

하고 형예는 종아리를 만진다.

그는 비단 작난엣 말로뿐 아니라 정말은 조금 전부터 그만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했니, 맘놓구 때려서 아푸냐?」

눈이 꿩 ─ 해서 잠자코 앉았는 형예를 보자, 미안한 듯이 정히가 말을 건넨다. 그는 속으로 또 괘니 딴대리를 잡누나 하면서

「쑥스릅다 얘, 허지만 네 기뿜에 내가 공연한 히생을 당헌 셈이니 사관 해야 허지 않어?」

하고 되도록 다정한 낯빛을 한다.

정히가 거진 방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서로들 웃고 하는 판에

「새댁들이 뭘 이리 크게 웃나?」

하고 정히 큰 오라범댁이 문을 연다. 일가집 젊은 댁들이 뫼서 신랑신부 데려오라구 야단이 났으니 빨리 큰방으로 가자는 것이다. 먼저 오라범댁을 보낸 후 정히는 웨 오늘따라 오랬느냐고, 짜징을 내다싶이하는 형예를 졸랐다.

「다들 뫃여서 논다는데 빠지면 섭섭할 것 같애서 그랬지 뭐, 하긴 나두 별루 가구 싶은 건 아냐, 하지만 안가면 또 뭐니뭐니 말성이 구찮지 않어?

그리고 그이들허구 놀아 보면 구수헌 게 의외로 재미있다 너 ─」

하고 정히는 은근이 형예의 그 타협하지 못하는 곳을 나무라는 것이다. 형 예는,

「그래, 내 혼인노리라는게 아무렇기로니 네가 빠져야 옳단 말이냐?」

하고, 짐짓 챗치는 정히 말이 아니라도, 아무튼 가야 할 것만 같아서 일어나긴 했지만, 대소가 젊은이들이라면 모두 형예와는 동서빨이거나, 아지머니빨이겠는데, 어쩐지 그는 전부터도 이 사람들을 대하기가 제일 거북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네들도 다 소학교라도 마친 사람들이고, 이보다도 나들이 갈 때라든가 무슨 명일날 같은 때 볼라치면 곻은 옷은 더 잘 입은 것 같은 데도, 어째 형예만 보면 연상 살금살금 개웃동거리는 것만 같고, 암만 애를 써도 그 사람들과는 도저히 어울리질 않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완고한 할머니들을 대하기보다도 더 힘이 들고 싫었다.

「암만해도 난 그만 둘가 봐 ─」

형예는 한번 더 주저한다.

「아인, 뭐가 그리 무셔냐 ─」

정히는 갑작이 어룬티를 부리고 말하는 것이다.

전에도 이런 경우엔 일수 정히에게 야단을 맞는지라

「무섭긴, 누가 무섭대?」

하고, 그는 일부러 나지막한 대답을 하려는데,

「그럼 뭐냐, 너 그것 결국 못난 거다!」

하고, 정말 야단을 하는 것이다.

형예는 정히가, 너무 욱박질으려구만 하는 것처럼 자칫 노여운 정이 들려구도 해서,

「못나두 헐 수 업지 뭐 ─」

하고 말해버린다.

「글세, 그렇게 말험 그건 또 딴 게지만, 아무튼 가야 해요. 고대 잘 놀다가 뭐가 무섭다구 도망한 것처럼 되면 그 화나지 않어?」

정히는 두 손을 한데 뫃으고

「자, 갑시다, 제발 가 주시옵소서 ─」

하는 듯이 비는 흉내를 한다.

형예는 하는 수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정말 오라버니처럼 친절한 것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와서

「아인 극성이기두 해 ─」

하고 따라 나왔지만, 축대를 내려서면서 그는 맘속으로,

「누구에게나 귀염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되따에 갔다 놔도 사귀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맘이 착한 사람이 아닐가 ─」

싶어저서, 어쩐지 외로운 정이 들었다.

두 색시가 들어서려니,

「야, 이 신부는 본대 이리 빗사냐? 자넨 또 언제 왔는가?」

하고, 형예에게도 인사를 할내, 모두 왁자껜하다.

「신부는 신랑 옆으로 가고, 자넨 이리 오게 ─」

그중 나이 지긋한 정히 종숙모가 농을 섞어가며 자리를 치워 준다.

「신부는 신랑 옆으로 가라니께, 온 신식 신부도 부꺼럼을 타나?」

이래서 방안은 한바탕 짜글 ─ 했고, 형예는 도모지 태도가 얼울해서 낭감했다. 함부로 웃고 떠들 수는 세상엔 없고, 그렇다고 가만이 있으려니 뭘 대단히 뽑스리기나 하는 것처럼 주목이 오잖을가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보다도 정히와 나란이 앉은 때문인지, 신랑이 자꾸만 보는 것 같아서 영 곤란했다.

이여 방안엔, 한참 공론이 분분하다.

「뭘 해서라두 오늘밤엔 좀 단단이 턱을 받어야만 할 겐데 화투를 하자니 사람이 많고, 우리 윳으로 나서 볼가?」

「장가청에 웬 윳은 ─」

「아 ─ 워낙 신식이거든 ─」

정히 종숙모가 사람 좋게 익살을 부려서 형예도 우섰다.

「어쩔고? 신랑 편, 신부 편, 갈나서 판을 짤가?」

「그리다가 신부가 지면 어짤라고.」

「그게사, 절양식, 중양식이라고, 아무가 진들 누가 아리, 우리는 그만 한턱만 받으면 되는 판 아닐까서 ─」

이래서, 방안은 또 끓어올랐고, 윳판은 버러진 셈이다.

「윳이야!」

하고 손벽을 치기도 하고,

「모야, 모면 모개에 있는 놈, 개로 잡고 방으로 들거라!」

이 모양으로, 웬일인지 점점 신부 편이 우세를 취해 가는데, 형예는 다행히 신부 편이어서, 줌이 사뭇 버는 윳가락을 잡을 차레가 또 왔다.

「자 ─ 요번에 자넨 뭐보다도 윳이나 도로 해서 윳길에 있는 두 동백이 놈을 먼저 잡고 가야 하네 ─」

형예는 어쩐지 진작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팔이 후둘후둘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던진다고 던진 것이 하필 걸로 나, 이미 걸낄에 가 있는 신부 편 말을 쓴다면, 뒷길로 도에 가 있는 신랑 편 말이 죽는 판이고, 그 도에 가 있는 말은 또 공교롭게도 고대 막 신랑이 보내 놓은 말이다. 별안간 와 ─ 소리를 치는 손벽이 일어났다.

여지껏 별루 흥겨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굳이 승부를 다투려구도 않던 신랑이, 판국이 이리 되고부터는 약간 성벽을 부려보려는 자세었으나, 결국 윳길에 가 있는 신부 편 말을 놓치고 승부는 끝이 났다.

손벽을 치랴 신랑을 놀리랴 방안은 한참 부푸렀다.

「초장부터 졌으니 누가 쑥인구 ─」

「아이갸, 곧은 눈섭 잡고는 말도 못한다지.」

이렇게 웃고 떠드는 통에 요리상이 들어오고 신랑의 노래를 청하고, 한참 신이 난다.

형예는 더운 체하고 정히와 훨신 떨어져 문 옆으로 와 앉았다. 그랬는데도, 노래는 여자가 하는 법이라고, 견양을 정히에게로 돌리려는 신랑의 눈과 그는 또 한번 마조첬다.

그러지 않아도 속으로,

「정히가 내 말을……혹시 여학교ㅅ 때 이야기라도, 긴찮은 말이나 하지 않었나 ─」

하는, 객적은 생각 때문에 괘니 초조한데다가, 덥처서

「잠깐 봐두 노래 잘할 분이 퍽 많은 것 같은데, 첨 온 사람 대접할 겸 좀 듣게 하십시오 ─」

하고 신랑이 말을 해서, 그는 더욱 당황하다. 그랬는데 다행으로 신랑의 말이 떨어지자

「저 실랑, 그라나믄 한양랑군 아닐진가, 웨 저리도 약을고.」

하고, 벅작건 하는 통에 형예는 겨우 곤경을 면했다.

대체로 신랑이 그리 재미있게 굴지 않는 폭인데, 정히도 그저 허트로 노는 판이라, 처음부터 뭐가 그리 자잘치게 재미로울 게 없는 상보른데도, 사람들은 그저 신랑이고 신부란 생각 때문인지 무쳑이나 유쾌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꼭 신랑의 노래를 들어야만 하겠는지, 장가온 신랑은 본시 닭도 되고 개도 되는 법이니 못하면 닭의 소리도 좋고 개소리도 좋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 통에도 셈센 아지머니라구 정히 숙모가,

「아이구, 노래는 무슨 노래, 신랑눈치 보니께 저녁내 싱갱이 해도 노래할 것 같잖구만, 그만해도 많이 놀았을 바야 백죄 장성한 신랑신부한테 궁뎅이 무겁다는 욕먹지 말고 어서 먹구 일찍암치들 가세. 가 ─」

하고, 익살을 부려서 사람들은 또 한판 우섰다.

혜져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형예도 가려구 하는 것을 정히가 굳이 잡았다.

「오늘밤엔 선생으로 뫼실 테니 더 좀 놀다가라 얘 ─」

하고, 어리광을 피고 졸라서

「그래 자별하니 선상 노릇 좀 하고 놀다 가게, 그래 ─」

하고, 정히 어머니도 정히 편을 들고 모도들 웃는 통에 형예는 어쩐지 몹시 무안을 타서

「얘가 ─ 괘니 자랑을 못다 해서 이러는 것이래요.」

하고, 말하려던 것도 그만 못 허고, 그냥 끌려서 정히 방으로 들어오고 말었다.

「아인 첨 봤어, 있다가 어떻게 혼저 가니?」

「아이 무셔 쌀쌀둥이, 이쁜 눈 가지고 누깔이 그게 뭐냐 글세, 누가 너더러 혼자 가래? 있다가 내 어련이 대려다 줄라구 ─」

「싫다 얘 ─」

「싫건 그만 두렴.」

이렇게 정히가 싱글싱글 껑충대서 결국 둘이는 웃고만 셈이다.

주위가 차차 조용해가자 정히는 또 이얘길 꺼내 놓는다.

「얘 넌 이기는 게 좋으냐, 지는 게 좋으냐?」

다리를 쪽 ─ 뻗고 마조 앉아선, 발끝을 요롱요롱 하고, 정히가 묻는 말이다.

「건 또 무슨 소리야 ─」

「아 ─ 니, 넌 신랑헌데 이기냐, 지냐, 말이다.」

형예는, 정히의 언제나 버릇으로, 앞도 뒤도 없이 톡 ─ 잘라 내놓는 말이라든가, 어린애 같은 그 표정이 우습다기보다도 어쩐지,

「결국 끝에 가선 저이 신랑얘기를 헐 게다!」

하는 생각이 드자, 이번엔 방정맞으리만치 폭 ─ 소꾸려는 우슴을 참어야 할 판이다 이래서 형예는 . , 간신이 짓는다는 게 너무 지내치게 점잖을 정도로,

「그래, 난 잘 모루니 너부텀 말해 보렴 ─」

하고, 정히를 본다.

「깍정이 같으니, 그래 난 지는 게 좋다 일부러래두 지려구 해, 어떠냐?」

「그럼 되우는 좋아하는 게지 ─」

「그래 좋아하기두 해, 허지만 그보다도 이기구 보면 영 쓸쓸할 것 같구 헛전할 것 같어서 그런다, 너 ─」

정히는 눈섭을 째긋 ─ 이 하고 아주 진실하다.

「그럼 행복이란 널 위해서 준비됐게?」

「아인 남의 말을.」

하고 정히는 때리려는 시늉을 한다.

「아니고 뭐냐, 좋아해서 지고 싶고, 지면 만족하고, 설사 그곳에 어떤 희생이 있대도 즐겨 희생하는 곳엔 고통이 없는 법 아냐?」

「너 웨 이렇게 막 뻐기니, 무섭다 얘 관두자.」

이번엔 정히가 얻어맞일 번한다.

형예는 뻐기는 것까지는 좀 거짓말일지 모르나, 아무튼 너무 정색한 것을 깨닫자,

「그럼 너만 뻐기련?」

하고 어름어름 우스면서도 어쩐지 부끄러웁다.

정히는 아닌게 아니라 제가 지는 것으로 해서 조금도 자존심이 상할리 없다는 설명과 지고도 만족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지 모른다는 것을 말하면서 ─ 「그이」를 오라고 해서 같이 이얘기하고 놀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형예는 웬일인지, 거이 폭발적으로 콱 ─ 터져 나오는 우슴을 참을 수가 없다.

「나 온 그렇대도, 글세 누가 너이 신랑을 못 봤다구 이렇게 야단이냐 말이다 ─」

형예는,

「이른 심뽀하고는 전 소라통이야 웨 ─」

하고, 토라지려는 정히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소라통이 아니면 뭐냐 그럼 ─」

하고는 그저 우섰다.

조금 후에 형예는, 전에 달러 별 댓구도 없이 그저 시무룩해 있는 정히를 발견하자, 훔칫,

「너무 심히 굴지 않었나?」

하는 후회가 난다.

제가 슬플 때라던가 기쁜 땐, 꼭 어린애처럼 순진해지는 정히ㄴ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형예로서는, 정히가 하는 노롯을 단지 자랑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형예는 속으로,

「제가 좋아하는 내가, 제가 좋아하는 그이와 친했으면…제가 좋아하듯 서로 좋아했으면…하는, 이를테면 정히다운 맘씨가 아닐가?」

싶어서 더욱 짓궂게 군것이 미안해진다.

「너 노했니?」

「…….」

「못났다 얘, 어쩜 그렇게 생판이냐 ─」

「뭐가 생판이야?」

「어린애란 말이다 ─」

「어린애래두 좋아 ─」

한순간 둘이는 이상하게 부끄러운 어색한 분위기에 싸였으나, 그러나 인차 정히는 훨신 명랑해져서,

「이따굼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 ─」

하며 트집까지 부린다.

전에도 이런 경우엔 맡어 놓고 정히가 해결을 지워줬지만, 형예는 진정 마음으로 이날처럼 고마운 적은 별루 없다. 그리고 또 이날처럼 그걸 모른 척해 본 적도 없다.

「모루긴 뭘 몰라?」

하고, 형예는 되도록 남의 말처럼 무심하려는데,

「그럼 대려오랴?」

하고 낙구쳐서, 그는

「너두, 참 ─」

하고 당황한 우슴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훨신 넘어서야 형예는 정히 집을 나섰다. 혼자 가도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결국 세 사람은 가까운 길을 버리고 해안통을 나란이 걸었다.

중앙잔교를 지나서 떼ㅅ목으로 만든 긴 ─ 나루ㅅ가엘 나서려니 조그막식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언제 보아도 호수 같은 바다가 안전에서 찰삭거린다.

「웨 안개가 끼려구 할가 ─」

뽀얀 안개가 산에고 바다에고 김처럼 스려 있어 조금도 가을 같지가 않다.

「웨 안개가 낄가?」

이번엔 신랑이 묻는다.

「혹 비가 오려면 안개가 낀대지만 ─」

정히는 말끝을 맺지 않고 하늘을 본다.

신랑도 따라, 그저 은하수를 헬 것만 같은 하늘을 처다봤다. ─ 아지랑이가 꼈든, 안개가 꼈든, 유리알처럼 영농한 하늘이 사뭇 높아서 하늘은 아무리 봐도 가을하늘이다. 그러나 그게 조금도 북방하늘처럼 쇄락한 감을 주지 않는 것이 더욱 연연한 정을 주지 않는가? 음산한 가을비가 오다니, 모를 말이다.

정히는 이제 여름밤을 보라고, 연성 자랑이다. 정히 말을 들으면 비가 오려구 하는 전날 밤과 비가 개인날 밤이 여름밤치고도 제일 곱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눌만 곻은가?」

고, 신랑이 우슴엣말로 정히 말을 받으며 힐긋 형예를 봤다.

형예는 잠잫고 있기가 어쩐지 거북해서

「첨이세요?」

하고, 그저 얼핏 나오는 말을 한 것이지만, 제가 생각해 봐도 대체 뭐가 첨이냐는 것인지 모를 말이라, 더욱 어색했다.

정히는 신랑이 이제 첨 와 본다는 것과, 대단히 좋은 곳이라고 형예 말에 인사를 하자, 더 신이 나서, 섬으로 낙시질을 가 조개를 캐고 소라를 따는 이야기, 섬의 밤은 무척 꺼머코 이심이가 산다는 바윗돌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신랑이 짐짓

「바닷가 색시들은 사나울 게라─」

하고 말을 해서 형예도 우섰다.

「웨 바다가 얼마나 좋은데 그래, 우린 되우 슬푸거나 외롤 땐 갑재기 바다가 그리워지고, 풍낭이 몹시이는 바다에 가서 죽고싶대요 ─」

「건 또 웬일일가, 물귀신의 넋일가 ─」

하고, 신랑이 웃고 정히 말을 받으며

「이러다간 내일 도망하게 되리다」

해서, 색시들은 자지라지라고 우섰다.

정히는 신랑이, 그 큰소리로 웃지들이나 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우습고 재미있다는 듯이 남해서 배를 타고 여수로 가려면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원귀가 있는 섬이 있는데, 혹 비가 오려는 날 어선이 그곳을 지나노라면 아주 구슬픈 ,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 또 옛날에 어떤 총각이 돌치라는 아주 조고만 섬에 가서 고기를 낚고 살었는데 하로는 달밤에 고기를 낚누라니 아주 먹음어 빼친 듯한 처녀가 홀연이 나타나서 밤마다 놀다가는 꼭 새벽이면 눈물을 흘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단 이야길 작난꾼이처럼 재질대며,

「알고 보니 그게 봐루 인어였대요 ─」

하고 사부랑거린다.

「정말 인어라는 게 있을가?」

형예는 싫도록 들어온 이야기지만 어째 이상한 생각이 소굿이 들어서 정히 보구 말한 것인데

「그럼 있지 않구요 ─」

하고 신랑이 말을 받었다.

「내 보기엔 당신네들로부터 수상한 것 같수다 ─」

하는 것처럼 색시들의 얼굴을 보며 웃는 것이다.

형예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밤인 것을 확실이 느낄수록 어쩐지, 점점 물새처럼 외로워졌다. 저와 상관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이 하낫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는 저와 가장 멀리 있고, 일즉이 한번도 사랑해 본 기억이 없는 허다한 사람을 따르려구 했다.

형예는 머리를 숙인 채,

「몇 시나 됐을까?」

하고 말을 건넨다.

「글세 ─」

조금 후 일어나는 색시들을 따라, 신랑도 일어서면서 웨들 물 속으로 들어 가지 않느냐고 해서, 셋이는 모두 우섰다.

세 사람이 새로된 매축지를 거진 다 돌아나려고 했을 때 어듸서 길다란 기적이 아삼푸레 들려왔다.

「정말 날씨가 구지려나 보지?」

정히가 혼잣말처럼 사분거린다.

「무슨 증조로 자꾸 비가 온대는 거요?」

하고, 신랑이 물어서, 이제 막 들리는 기적소리가 바로 날이 구지렬 때 들린다는 것과, 그게 바루 낙동강을 지나는 열차의 신호라구, 정히가 설명을 한다.

형예는, 이 야심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기적소리가, 이제 웬일로 칼날보다도 더 날카롭게 별똥보다도 더 빠르게 가슴에 오는 것인지, 별 까닭도 없고 어데 논지할 곳도 없어 더 크고 깊은 억울함에, 그냥 목놓아 통곡하고 싶은 감정을 자긋 ─ 이 깨물며, 머리를 숙인 채 잠잫고 걸었다.

세 사람이 거진 형예집 앞까지 왔을 때,

「미안합니다. 괘니 이렇게 ─」

하고, 형예가 그 뒷말을 몰라 하는 것을

「또 뵙겠습니다 ─」

하고 신랑이 얼른 말을 받아 주었다.

형예는 꼭 지처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선, 빗장을 꽂고 다시 고리를 걸었다. 남편은 벌서 돌아와서 잠이 들었든 모양으로,

「새도록 무슨 마을인가?」

하고, 제법 농을 섞은 꾸지람을 했다.

형예가 자리에 누을 제쯤 해서, 남편은 담배에 불을 뎅구며,

「뭘 하는 사람이래?」

하고 말을 건넨다.

「그냥 공부하는 사람이래요 ─」

하고, 형예가 말을 받으니까, 남편은 짐짓 좀 피식이,

「아 여태 학굘 대녀?」

하고 묻는다.

「꼭 학굘 단녀야만 공불허나?」

좀 생파르게 대답하는 안해의 말이 있은 지 얼마 있다가, 남편은 일부러 푸 ─ 푸 ─ 소리를 내고 연기를 뿜으려, 혼잣말처럼,

「공불 허는 사람이다? 좋은 팔자로군 ─」

하고 흥청거린다.

형예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가, 어쩐지 마땅찮었다.

자기도 역시 그 나잇 또랜데도 무슨 자기보다는 훨신 어린 사람의 이야기나 하듯 오만한 그 표정이 어쩐지 비위에 거슬린다. 그래서 짐짓

「건데 여간 침착한 사람이 아니야요.」

하고 말을 해봤다. 그랬드니 남편은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응 ─ 얼굴도 잘나구.」

하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이때 형예에겐 쏜살같이

「내 마음을, 내가 뭘 생각고 있는지를 그는 자기대로 짐작 헌 게다. 그래서 이것이 그 노염의 표정인 게다!」

이렇게 생각이 드자, 또 뒤밑처서

「이런 때 남편의 표정이 이래야만 하는 것일가?」

하고 생각이 든다. 형예는 알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분하다.

「웨 동무 남편임 좋건 좋다고 허는 게, 뭐가 어떻고, 웨 나뿌담 ─」

하고, 형예는 그만 미리 덜미를 잡으려는 시늉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렇게 말을 시작고 보니, 뭘 한번 억척같이 버티어 보구 싶은 애매한 충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해봐요. 내일 광골 써 붙이든지 세상 밖으로 쫓처내든지, 한번 맘대로 해 보세요. 허지만 난 당신처름 거짓말은 헐 줄 몰라요…」

하고 허벅 지벅, 저도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사실 형예는 한번 불이 번쩍 하도록 맞닿고 싶었다.

그리면은 차라리 뭔지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형예가 하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내가 뭐랬다구…」

하며, 거이 당황해서 일어앉는다.

「당신은 번뜻하면 날 잡구 힐난하려 들지만, 온 허 그 참, 그래 내가 어쨋단 말이요. 웨 남이라구 좋단 말 못 허란 법 있나? 그리고 또 당신이 뭘 그리 좋단 말을 했기에, 내가 어쩐다구 이러우? 자 ─ 그리지 말래두 그래, 괘니 평지에 불을 일궈 튀각태각하면, 그 모양이 뭣 되우, 그두 그래, 괘니 평지에 불을 일궈 튀각태각하면, 그 모양이 뭣 되우, 그저 당신은 아무 것두 아닌 것 가지고 이러지 말우에, 내 암말두 않으리다 ─」

하고, 괘니 쉬 ─ 쉬 ─ 한다.

형예는 자리에 누어서도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내 암말도 않으리다 ─」

하고 남편이 하던 말을 되푸리해 본다. 암만 생각해도 이게 아닌 상 싶다.

맞장구를 치는 것도 이게 아니고, 당황해 하는 것도 이거여서는 못쓴다. 아무튼 도통 이런 게 아닌 것만 같다.

얼마 후 형예는

「내가 아주 괴숭한 짓을 할 때도 그는 역시 모양이 뭐 되우, 내 암말두 않으리다. 할건가?」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고 보니 어쩐지 정말 꼭 그러할 것만 같다. 동시에

「이렇게 욕 주고 사람을 천대할 법이 있느냐?」

는, 욋침이 전광처럼 지나간다. 순간, 관대하고 인망이 높고 심지가 깊은

「훌륭한 남편」이 더헐 수 없이 우열한 남편으로 하낱 비굴한 정신과 그 방법을 가진 무서운 사람으로 형예 앞에 나타났다. 점점 이것은 과장되여 나종엔

「그가 반다시 나를 햇치리라 ─」

는 데서 그는 오래도록 노여웠다.

웬일로 밤이 점점 기울수록 억머구리떼처럼 버러지들이 죽게 우르댄다.

(저 길다랗게 끼록끼록 하는 것은 지렝일 테고, 낏득 낏득 하는 것은 귓두 램일 테지만, 저 솨르르 솨르르 하고 쪽쪽쪽 하는 벌레는 대체 어떤 형상을 한 무슨 벌레일가? 웨 저렇게 몹시 울가?) 싶으다. 갑작이 밀물처럼 고독이 온다. 드디어 형예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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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