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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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제52호(1924.10)[편집]

尖口子(첨구자)

宋秉畯伯(송병준백)은 大正親睦會(대정친목회)에서 6,000원의 헐가로 朝鮮日報(조선일보)를 매수하야 가지고 인계 초부터 高利(고리)를 付(부)하야 5만원, 10만원, 내지 13만원의 고가를 呼(호)하며 古物(고물) 競賣者(경매자)처럼 사방으로 願買者(원매자)를 구하기에 분망하더니 근간에 다행이 申錫雨(신석우)군 외 모모씨에게 80,000원 거금에 매각하얏다.

恩賜公債金(은사공채금)도 그럭저럭 다 팔어 먹고 某(모)은행의 채무로 곤란한 판에 8만원 금을 一攫(일확)한 野田(노다)군의 야심은 만족하겟다만은 營門(영문)도 不知(부지)하고 視務(시무)하다가 일한 합병시 군대 모양으로 一朝(일조)에 해산 명령을 당한 5, 60명의 全(전) 사원은 其情(기정)이 과연 如何(여하)할가.

원래 橫暴老獪(횡폭노회)한 자본주의자 하에서 노력을 하는 자는 何時(하시)던지 如斯(여사)한 비참한 경우를 의례 당하지만은 소위 인권을 護護(호호)한다는 언론기관에서 此等事(차등사)를 행하기는 宋伯(송백)의 조선일보가 안이면 세계에서 更見(갱견)치 못할 珍事(진사)다.

紅樹洞天(홍수동천)에 화려한 광대 가옥을 置(치)하고 수천 석 추수하는 대지주가 되야 일시 경성 實業界(실업계)에서 誰也某也(수야모야)하던 趙秉澤(조병택)군은 36만원의 채무로 火病(화병)이 돌발하야 황천의 불귀객이 되얏다. 此可謂富則多死(차가위부즉다사).[1]

경성 내 조선인의 거대한 가옥은 대개 鄕邑(향읍)에서 새로 이주한 부호와 기생들이 점령하얏다. 그런데 기생은 부랑 부호의 재산을 작구 吸取(흡취)함으로 가산이 매년 늘어가나 소위 부호들은 경성에 와서 아모 직업이 업고 妓生妾(기생 첩)하기와 요리집 출입, 양복치례 ᄲᅮᆫ이닛가 매년 가산이 축소된다.

근일에도 玄俊鎬(현준호)군은 金玉香(김옥향), 金基東(김기동)군은 崔可佩(최가패), 金年洙(김년수)군은 金小玉(김소옥), 金俊熙(김준희)군은 邊玉桃(변옥도), 井邑(정읍) 朴某(박모)는 洪彩鳳(홍채봉), 白寅基(백인기)군은 金小紅(김소홍), 全聖旭(전성욱)군은 金錦珠(김금주)를 落籍(낙적)하얏는데 통계로 보면 買花郞(매화랑)은 전성욱 이외 전부 전라도 부호요 기생은 김옥향 김소옥 외 전부 평양 미인이다. 이것도 南男北女(남남북녀)의 특색인지 不知(부지)하거니와, 이 자들의 환락의 압길이 대체 몃 날일고.

서울 청년회의 주최로 산아제한 可否(가부)의 남녀합동토론회가 기독교청년회관 내에 開(개)하얏는데 可(가)편에는 金繡準 朴元熙(김수준 박원희) 兩(양) 여사가 잇고 否(부) 편에는 池貞信 韓晨光(지정신 한신광) 兩(양) 孃(양)이 잇다. 기혼 여자는 산아 고통을 맛보앗스닛가 제한을 주장함이 가하겟고 미혼 여자는 그 고통을 아즉 맛보지 못하얏스닛가 제한 불가를 주장함이 역 무리가 안이다. 특히 한신광 양은 산파이닛가 영업상으로 보와도 부를 절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미혼 여자로 산아 주장을 하는 것은 용기가 어지간하다.

일이년 전에는 경성 내 골목마다 만두집 玄米(현미) ᄲᅡᆼ집이 업는 곳이 업고 苦(고)학생들의 「饅頭(만두)노호야호야」 「겐마이ᄲᅡᆼ」 소리에 귀가 압펏다. 그런데 식물도 시대를 ᄯᅡᆯ아 유행이 되는지 요새이는 그것이 다 쑥 들어가고 露西亞(노서아) ᄲᅡᆼ이 대유행한다. 唐明皇(당 명황)시에는 胡亂(호란)(安祿山亂(안녹산난))이 날 징조로 胡餠(호병)이 유행되엿다더니 조선에 노서아 ᄲᅡᆼ이 대유행됨은 그 무슨 징조를 示(시)함인가. 赤字 露字(적자 노자)만 보와도 과격주의 선전으로 알고 驚風(경풍)을 하는 당국에서 알기만 하면 이것도 取締(취체)할 걸.

유행의 말이 낫스닛가 ᄯᅩ 말이다. 몃 해 전부터 경성의 여자들은 무슨 모양을 내너라고 그러는지 赤衫(적삼)의 안고름을 홍색으로 하더니 근일에는 深玉色(심옥색) 치마가 ᄯᅩ 유행한다. (전일은 백색 혹 隱玉色(은옥색)) 一指不動(일지부동)하고 遊衣遊食(유의유식)하는 경성 여자의 유행 사치 조와하는 것은 可憎(가증) 중에 ᄯᅩ 가증.

—此間削除(차간삭제)—

朝鮮銀行(조선은행)은 臨時費(임시비)가 부족하야 경성부 내 소유 一等地(일등지) 3,000평과 舍宅(사택) 31軒(헌)을 16만원 헐가로 朝鮮鐵道(조선철도)에 매각 운동을 하다가 조선철도도 경비가 부족하야 有意莫遂(유의막수)하얏다니 경제곤란은 부자 빈자가 皆(개)一般(일반)인 듯.

—차간삭제—

甲子年(갑자년)에 무엇이 된다고 인민을 미혹하던 普天敎(보천교)는 갑자년이 건자 다가도록 아모 것도 되는 것은 업고 혁신의 內訌(내홍)이 니러나서 매우 분규한 모양이다. 自家(자가)의 내홍이라도 니러 나기는 갑자년이닛가 車天子(차천자)의 예언이 過(과)히 허무치는 안으나 天神(천신)과 가티 신앙하던 차천자에게 반역당이 생긴 것을 하면 大時國(대시국)의 시운도 大不利(대부리)다.

平壤航空(평양항공) 제6대대 소속인 정찰 비행기는 강원도 平康(평강)에서 정찰 연습을 보다가 추락되야 장교 2명이 참사하얏는데 此(차)는 조선에 日本航空隊(일본항공대)가 設始(설시)된 후 최초 희생자라 한다. 사지 정찰을 하랴면 평강ᄭᅡ지 아니 와도 조흘 터인데 수고ᄭᅡ지 하고 죽는 것은 넘우도 가엽다. 그러나 평양항공대도 인제는 세계 비행기 추락사에 叅錄(참록)되얏스니 유감이 亦無(역무)로구.

북벌 제1선에 立(립)한 孫文(쑨원)씨는 昭關(소관) 大本營(대본영)에서 일본 모 기자에 대하야 直隷派(직례파)는 금후 1개월 이내에 전멸하리라 壯言(장언)하고 ᄯᅩ 일본은 英米(영미)의 後(후)를 추종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중국의 新運命(신운명)을 이해하고 개발에 노력함을 望(망)하며 尙又(상우) 李烈鈞(리렬균)을 일본에 특파하야 朝野(조야)에 소하겟다고 哀訴的(애소적) 언사를 하얏다. 장언하듯 하면 1개월 이내에 직례군 전멸은 姑舍(고사)하고 1일 내에 중국통일이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애소한다는 말을 들으면 자력의 부족을 폭로하는 것 갓다.

오래 동안 분규 중에 잇던 徽文高普(휘문고보)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야 표면상 무사하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최후ᄭᅡ지 교장과 학감의 의자를 고수하랴고 결심하엿던 任璟宰(임경재), 張齋震(장재진) 양씨가 사임한 代(대)에 반란의 주동자 50여인은 소위 笑殺(소살) 陶淵明(도연명) 격으로 구술시험 불합격 명의 하에 전부 축출하얏다. 이는 마치 기미년에 일본 정부에서 長谷川(하세가와) 총독을 사임 식히고 만세 범인을 감옥에 入(입)한 후 조선의 평온을 圖(도)함과 갓다. 신임 교장 金亨培(김형배)군은 齋藤(사이토) 총독의 문화 정치 선언하듯이 문화규칙이나 선언함이 엇더할지.

기근구제대책회에서는 제1성으로 大講演會(대강연회)를 開(개)하고 다수 연사가 등단하엿는데 其(기) 강연의 요령은 대개 금년의 기근은 水災(수재) 旱災(한재)에 인한 일시적 현상이 안이오 積年(적년) 제도의 불완전으로 生(생)한 결과인 즉 영구의 기근을 면하랴면 此(차) 제도를 개혁함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爲先(위선) 조세 면제, 부채 탕감, 소작료 면제 등 운동을 하지 안으면 안 된다는 의미엿다. 그런데 강연 중에는 연사 강연聲(성)보다 소위 경관의 中止聲(중지성)이 더 만엇다, 정무 총감부터 빈민을 구제만 하면 惰怠性(타태성)을 誘致(유치)한다 하엿스닛가 其下(기하)에 잇는 경관이 구제책에 대한 언론을 중지 식히는 것도 무리가 안이다 만은 문화 정치도 배가 곱흔 담에야 엇지 하나.


개벽 제54호(1924.12)[편집]

忠北(충북)도지사 朴重陽(박중양)군은 遞任(체임)된 丸山(마루야마) 경무국장이 조선을 ᄯᅥ날 ᄯᅢ에 추풍령ᄭᅡ지 餞送(전송)하고 山狸(산리) 1필을 기념품으로 주더니 금번 행정정리 바람에 朴(박)군도 ᄯᅩ한 馘首(괵수)를 당하게 된단다. 충북에 만일 박군처럼 의리 잇는 친구가 잇다 하면 野犬(야견)이라도 1필 주어 야견 撲殺大監(박살대감)의 미역국 먹은 기념품을 삼을 터이다. 그러나 조선 습관상에 산에 개고기는 원래 大忌物(대기물)이니 奈何(내하).

知事(지사) 馘首說(괵수설)이 낫스닛가 말이지 멧 번식이나 정리통에 드럿다가 총독부를 위협한 덕분에 知事位(지사위)를 억지로 가지고 잇던 咸南知事(함남지사) 李圭完(리규완)군도 이번에는 그 만용을 더 부리지 못하고 춘천에 가서 苹果(평과) 장사를 하게 되고 一進會(일진회) 餘物(여물)인 강원지사 尹甲炳(윤갑병)군도 아주 ᄭᅩᆼ지가 ᄲᅡ저서 新淵江(신연강) 배터를 하직하게 되얏다. 그러나 갈시판지사 충남 金寬鉉(김관현)군은 아즉 아모 소식이 업다. 日露(일노)전쟁시 지내가는 총알에 팔 한 번을 맛고 부러진 뼈를 묵은 개뼈 모양으로 잘 울겨먹는다마는 이번 정리통에 ᄯᅩ ᄲᅡ지고 보면 충남의 인민이야 참 팔자가 구질 것이다. 그러나 김군의 세력을 밋고 당진에서 별별 일을 다하는 김군의 妾弟(첩제) 金振璿(금진선)군수는 아직 안심할 듯.(김지사가 무식하야 揭示板을 갈시판이라함)[2]

개가 대통령이나 황제가 되얏다면 누구나 다 놀날 것이다. 그런데 新興靑年會(신흥청년회)의 曹奉岩(조봉암)군은 자기 집 개의 이름들을 「카이젤」이라 하고 건설사의 李鐵(리철)군은 ᄯᅩ 자기 집 개의 이름을 「웰손」이라 하야 아모 ᄯᅢ라도 「카이젤」 「웰손」하면 그 개가 ᄭᅩ리를 치고 잘 다러온다. 보라! 현대인의 군벌 자본벌을 천시함이 과연 如何(여하).

평남 頓川郡(돈천군) 출생인 金洙京(김수경)이란 老物(노물)은 총독의 恩(은)을 謝(사)한다 칭하고 自家産生梨(자가산 생리) 수십개와 사례장을 동봉하야 총독에게 밧치엿더니 총독은 감사하다고 ᄯᅩ 그 노물을 어용 자동차에 태워서 경성 시가를 한 박퀴 구경 식혓단다. 향촌 노물이 生梨(생리) 몃 개를 가지고 어용 자동차로 경성 구경한 것도 영광은 영광이다만은 그 자의 준 배속은 언재 ᄯᅩ 비러먹을는지.


개벽 제60호(1925.6)[편집]

尖口生(첨구생)

鍾峴天主敎會(종현천주교회)는 歐洲大戰(구주대전) 이후로 본국의 송금이 ᄭᅳᆫ어저서 經費(경비)가 곤란함으로 敎堂(교당)을 50만원에 매각하랴고 某(모) 일본인 회사와 교섭한다는 설이 잇더니 그것도 여의히 되지 못하고 近頃(근경)에는 더욱 곤란에 ᄲᅡ저서 엇지 할 수 업는 중 佛國(불국) 가로아 領事夫人(령사부인)의 노력으로 5월 23, 4 양일 同(동) 교회 내에 大慈善市(대자선시)를 開(개)하고 三越吳服店(삼월오복점) 기타 유력 상점과 교섭하야 특별 廉賣(렴매)를 행하고 ᄯᅩ 각 模擬店(모의점)을 개하야 信者(신자) 이외 일반인ᄭᅡ지 교당 내부의 자유관람을 許(허)하고 그 賣品代幾分(매품대기분)을 교회에 기부하게 하얏다. 그 교의 篤信者(독신자)가 아니면 自來觀覽(자래관람)을 불허하던 소위 信聖(신성)의 淨域(정역)도 금전이 곤란한 데야 엇지하랴. 거록하신 천주시여-돈을 좀 주십소사-아멘.

무식하고도 문자 잘 쓰는 함남도지사 金寬鉉(김관현)군은 근래 그 사랑하던 부인이 죽엇는데 엇던 친구를 대하야 하는 말이 중년에 內艱喪 (o o o)(내간상) 당하는 것이 참 곤란하다고 하야 일시 笑話(소화)거리가 되엿다고 한다. 납세를 아니하면 斯文亂賊(사문난적)이라고 하는 김씨로서 妻喪(처상)을 內艱喪(내간상)이라고 하는 것도 容或無怪(용혹무괴).[3]

배재고등보통학교장 阿篇薛羅(아편설라)씨와 교무주임 姜邁(강매)씨는 서대문경찰서를 방문하고 同校(동교) 盟休事件(맹휴사건)에 노력 만히한 것을 치사하얏다. 불행이 학생들이 감옥은 안니 갓기에 그만이지 만일 감옥에ᄭᅡ지 갓더면 양(兩)군은 재판소 형무소에ᄭᅡ지 치사하러 다이네라고 발바당이 달을 번 하엿다.

문제 多端(다단)하던 宋秉畯(송병준) 유산은 그의 忘僕(망복)인 芮宗錫(예종석), 白完爀(백완혁) 양 군이 마타 정리하던 중 전 재산을 31만원에 매각하야 負價(부가)를 淸帳(청장)하고 其餘(기여) 몃 만원은 개장메(狗肉(구육)) 논우드시 諸子群妾(제자군첩)과 기타 관계자의게 분배하엿는데 其中(기중)에는 踈薄妾(소박첩)으로 世評(세평)이 만턴 白樂子(백낙자)와 50만원사건으로 爭訟(쟁송)하던 李容九(리용구)의 子(자) 李顯奎(리현규)ᄭᅡ지 참여하엿다. 그런데 송씨의 諸子間(제자간)에는 유산분배로 암투가 닐어나 잘못하면 형제 相訟(상송)이 생길는지도 모르겟다 한다. 송사 문제로 화병이 나서 죽은 송씨는 지하에서도 화병이나 ᄯᅩ 나지 안을는지.

총독부 某(모) 당국자는 말하되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영어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의 구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고 한단다. 그러면 노서아 사람은 영어를 잘해서 勞農主義(노농주의)를 실현한 줄로 아는가.


개벽 제66호(1926.2)[편집]

尖口生(첨구생)

徐載弼(서재필) 박사와 尹致昊(윤치호) 씨 등 일류의 구식 신사들이 잇다금 주책업는 말을 신문잡지상에 함부로 발표하는 것은 일반이 苦笑(고소)를 금치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 新民雜誌(신민잡지) 신년호에 例(렬)의 횡설수설을 ᄯᅩ 발표하야 사회의 비난을 만히 밧는다. 그 두 분은 조선총독부 社會課囑托(사회과촉탁) 李覺鍾(리각종)군의 主幹發行(주간발행)인 신민잡지를 그전 독립협회 시대에 그네가 경영하던 독립신문의 후신으로만 알엇는지 좀 물어보고 십다. 米國(미국) 통의 一流 老紳士(일류 노신사)들! 엇지 그다지 갸륵한신고.

李完用猴(리완용후)는 李在明氏(리재명씨)에서 被刺(피자)한 상처가 해마다 冬節(동절)이 되면 다시 도저서 신음하더니 금년 동절에는 더욱 심하야 매우 고통 중에 잇다 한다. 그래도 요전 湯淺政務總監宴會(탕천정무총감연회)에는 ᄲᅡ지지 안코 參叅(삼참)하야 祝辭兼哀乞(축사 겸 애걸)의 答辭(답사)를 하되 「조선통치의 실적을 충분히 나타나게 하랴면 정무총감이 其任(기임)을 頻變(빈변)치 안는데 잇슨 즉 각하는 長久(장구)히 조선에 在任(재임)하기를 희망한다고 운운 하얏다 한다. 그러나 운명이 未久(미구)한 老傷物(노상물)이 그 實蹟(실적)을 볼 수가 업는데야 엇지하리오. 此(차) 소위 최후의 비명이 안일가.

700만원의 거대한 금액과 8개 餘年(여년)의 장구한 세월을 費(비)하야 건축공사를 하던 조선총독부는 這間(저간) 준공이 되야 신년초에 倭城臺(왜성대)로부터 이전하고 地鎭祭兼示威運動(지진제겸시위운동)으로 白晝(백주) 광화문 大街(대가)에서 前日(전일)에 업던 관병식ᄭᅡ지 별달리 거행하얏다. 그런대 그 청사는 官房(관방)(秘書官室(비서관실) 이하 외사과,문서과, 合(합) 15室(실)), 내무국(국장실, 지방, 사회, 건축토목과 幷(병) 22실), 재무국(국장실, 세무, 司計(사계), 理財(리재) 병 12실), 殖産局(식산국)(국장실, 農務(농무), 산림, 鑛務(광무), 상공, 토지개량, 수산 6課(과) 병 18실), 법무국(행정, 법무, 국장실 병 5실), 학무국(局長及視學官室(국장 급 시학관실), 學務(학무), 종교, 편집 3과 병 6실), 醫務局(의무국)(의무, 고등, 보안, 위생 4과 及(급) 국장실 병 12실) 외 임야조사위원회실(2실)과 給仕(급사), 小使室(소사실), 受附宿直室(수부숙직실)을 加(가)하야 전부 120실 이상에 至(지)하고 수용인원이 1,500여 인에 달하며 ᄯᅩ 此外(차외)에 대소회의실 3개소와 식당 변소ᄭᅡ지 완전히 설비되야 소위 동양모범의 大政廳(대정청)이라는 칭호가 잇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특색으로 변소에도 高等官便所(고등관 변소)와 判任官便所(판임관 변소)를 엄격히 구분하고(前日倭城臺廳舍(전일왜성대청사)에도 그랫지만) 其外(기외) 식당도 고등관 식당은 「호텔」 이상으로 廣大華麗(광대화려)하고 판관 이하의 식당은 설비가 불완전할 ᄲᅮᆫ 外(외)라 점심 ᄯᅢ마다 1시간 전에 食堂傳票(식당전표)를 自己主任(자기 주임)에게 제출치 안이하면 안이 되고 茶碗(다완) 茶罐(다관)ᄭᅡ지 자기가 持去(지거)하게 되야 점심시간이면 난장판 갓고 ᄯᅩ 同廳(동청)의 廳(청) 현관 정면에는 수위가 잔뜩 서서 출입객을 일일조사하야 국장 이외에는 자유출입을 불허한다고 하야 방문객의 비난이 多(다)함은 물론이고 하급관리 자체에서도 불평이 퍽 만흔 모양이다.

眞所謂(진소위) 새사람 드러와 3년이오 새집 지어 3년이라고 그만한 큰 청사를 지어 노코 여간 말성 좀 잇기가 例事(열사)이요. ᄯᅩ 위엄한 관병식ᄭᅡ지 거행하얏슨즉 하등의 動土鬼(동토귀)가 나터날 염려는 업지만은 고사떡은 한번 잘 해먹어야 인심이 안정될 것 갓다.

만주에 출동하엿던 일본군대는 歸途(귀도) 중 경의선 열차에서 점심밥에 중독이 되야 병사 200여명이 중독되야 吐瀉(토사)를 하얏스니 그 밥집 주인이 郭松齡(곽송령) 장군 夫妻(부처)의 寃鬼(원귀)에게 무슨 부탁이나 밧지 안엇는지.

일본 동경시의 電灯(전등) 수는 214만5천 등으로 每戶(매호) 4등 6분 6里(리)의 比(비)가 되고 조선 경성의 전등 총수는 18만 5천 개로 每戶(매호)에 僅(근)히 2등 6리의 비가 된다 한다. 그리고 보면 경성은 동경보다 반쯤 암흑한 모양이지.

최근 조사에 의하면 세계 6대 자본국의 富力(부력)은 米國(미국)이 제일로 7천억원에 달하고 次(차)에는 영국이 3천6백억원, 佛國(불국)이 2천억원, 독일이 1천660억원, 이태리가 600억원, 일본은 최하지만 500억원이 되고 又(우) 國富(국부) 1인의 평균액은 영국이 7,914원, 미국이 6,580원, 불국이 4,820원, 독일이 2,770원, 이태리가 1,630원, 일본은 890원의 비례가 된다 한다. 그러나 그 부력이라 하는 것는 역시 몃몃 자본가 놈의 것이요 실제 일반 민중의 富(부)는 그럿치 못하다. 자본가의 세력이 강대하니만콤 무산자의 고통은 더 심하야 날로 비참한 境(경)에 至(지)하고 따러서 거긔에 대한 대운반동이 격렬하게 이러난다. 彼等(피등) 資本閥(자본벌)의 운명은 과연 몃칠이나 더 유지할지.

國勢(국세) 조사 통계표를 見(견)하면 조선의 총인구는 1,951만 9,927인 중 남자는 1,001만 8,729인이요, 여자는 950만 1,198인인대 남자가 여자보다 多(다)하기가 51만 7,531인으로 여자 100에 대하야 남자는 105强(강)이 된다. 그런대 실제생산율을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多(다)하니 그것은 究竟現社會(구경현사회)의 제도나 가정제도가 남자만 중시하고 여자를 천대하야 보호를 잘하지 안는 ᄭᅡ닭에 여자의 사망율이 多(다)한 所以(소이)니 엇지 주의치 안이할 일이랴.

여자의 말이 낫스니 말이지 여자나 남자나 다 가튼 사람이요 남자의 斷髮(단발)이 지금 와서 문제거리도 되지 안는 이상에야 奚特女子(해특 여자)의 단발을 가지고 그다지 문제 삼을 것이 무엇 잇스랴. 그런대 근내 新女性(신여성) 중에 몃 개인 단발사건이 생긴 뒤로 한 문제가 되야 혹은 언론계 혹은 교육계 내지 문인계ᄭᅡ지 말셩이 만터니 요사이에는 ᄯᅩ 엇던 청년회 주최로 단발 가부의 토론회ᄭᅡ지 하야 乙未(을미) 단발령이 下(하)할 시대에 頑固輩(완고배)들이 「此頭可斷(차두가단)이언정 此髮(차발)을 不可斷(불가단)」이라 하며 ᄯᅩ 「身軆髮膚(신체발부)는 受之父母(수지부모)하니 不敢毁傷(불감훼상)이 孝之始也(효지시야)」라 하고 의병ᄭᅡ지 이르키던 舊劇(구극)을 復演(부연)한다. 旣(기)히 문제를 삼으랴거던 국민대회를 한번 열던지 의병을 다시 이르키는 것이 何如(하여)오.


개벽 제67호(1926.3)[편집]

죽는다 죽는다하던 李完用(리완용)은 2월 12일에 아주 죽고 말엇다. 지하에 잇는 李在明(리재명)은 「아-이놈이 인제야 죽엇구나」하고 웃겟지만은 팔자 구진 과부며 누리는 남유달리 더 슬퍼할 것이다. 그런데 경성부의 搾除夫(착제부)들은 또 「이재부터는 공동변소의 벽이 ᄭᅢ긋해지ᄭᅢᆺ스닛가 무엇보다도 조켓다고」 치하하겟지.

죽은 爵者(작자)의 말이 나스닛가 말이지 宋秉晙(송병준)이 죽은 뒤에 재산 정리 문제로 말성이 퍽 만터니 근래에 其子(기자) 송병준은 엇던 변호사의 후림 ᄯᅢ에 또 ᄲᅡ저서 이중 삼중이 부채가 생긴 까닭에 同家(동가) 재정고문 佐瀨態鐵(사세 쿠마테즈)은 소위 송씨가 재산 정리 위원장 겸 총독부 학무국장 李軫鎬(리진호)씨와 협의한 결과 송가의 중요 서류 기타 文簿(문부)를 금고에 봉쇄하야 其于(기우)의 재산 자유 처분을 방지하고 또 생활비까지 제한하야 전 가족의 생활이 極困(극곤) 중에 잇다 한다.

불의로 모든 재산이 元來傳之子孫(원래전지자손)하기는 만무의 리(理)이지만은 리완용은 송병준처럼 생전에 부채가 업슬 ᄲᅮᆫ 안이라 경성 제일류의 현금 부호 칭호를 드럿스닌가 사후 즉시에 송가처럼 그러한 생활 곤란 문제는 업슬 것이다. 그러나 世事(세사)는 예상키 難(난)한 바인 즉 경성부에서는 밀닌 학교비나 從遠督俸(종원독봉)함이 何如(하여)

경성에서 발행하는 某(모) 일본인잡지는 총독부의 신청사를 평하야 왈 華麗極侈(화려극치)함이 진시황의 아방궁 갓다고 하얏다. 그러면 二世而(이세이)○하라는 말인가.

일본 의회에 출석한 湯淺(유아사) 정무총감은 松山(마츠야마) 代議士(대의사)가 조선의 土地兼倂(토지겸병)에 대하야 맹렬히 질문을 하닛가 조선은 그러한 폐해가 업다고 극력 변명 하얏다 한다. 아모리 거짓말하기 위하야 출석한 湯淺(유아사)군이라도 양심에 부끄러운 거진말이야 엇지 함부루 하랴. 차아리 「나는 新政之初(신정지초)가 되엿서 조선 사정을 아모 것도 모른다고」 변명하는 것이 조켓다.

병합 당시로부터 작년도까지 조선총독부의 세출 총계는 14억4천1백76만원인데 其中(기중) 官業費(관업비)는 5억1천6백89만원, 警務費(경무비)는 1억6천4백62만원이고 교육비는 僅(근)히 4천8백만원, 醫務及衛生費(의무급위생비)는 1천7백만원에 불과하며 又(우) 同府(동부)의 부채 총액은 2억7천3백만원으로 年(연)이자 지출이 2천3백여 만원에 달한다고 하니 결국 총독정치는 自己 自體로도 이익 보랴는 정치가 안이라 부채를 하랴는 정치다. 그러나 경무비가 多大(다대)하닛가 누가 함부로 강제집행하거나 파산선고는 잘 못 하겟지.

일본 내무성에서는 勞農(노농) 노서아에서 오는 기아구제금 15만원을 압수하얏다더니 朝鮮檢事局(조선검사국)에서는 또 노국에서 오는 구제금 2만원을 압수하얏스니 罹災民(이재민) 구제보다 자기 구제가 더 급한 모양이지.

압수한 검사국도 검사국이어니와 당장에 죽게 된 사람의 구제금을 바다 가지고 卽速(즉속) 분배치 안이하고 單濁(단탁)히 은행에 任貸(임대)하얏다가 압수를 당하게 한 그 사람의 심사는 본의가 那邊(나변)에 잇슬가. 원래에 구제금이 대금업의 자본금이 안인 이상에야 은행에 任置(임치)할 것이 무엇 잇나.

印度(인도) 청년은 자동차로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데 조선의 海州(해주) 청년은 自轉車(자전차)로 조선 일주여행을 계획한다 云(운)한다. 그것도 안이하는 것보다는 장할 것이다. 그러나 가튼 청년으로 조금 붓끄럽지 안이할가. 더 한번 분발함이 何如(하여).

李秉武(리병무)는 李完用(리완용)의 죽엇단 말을 듯고는 「舊(구)한국의 원로도 거진 다 죽는다」고 장탄하더라니 元老(원로)란 다 무엇이냐. 원숭이 늙은 것이 猿老(원로)가 안이냐. 이것이 왈 狐死兎悲(호사토비)다.

당국에서는 압수를 잘 한다 하닛가 아해들 苦草(고초)장 먹듯이 억개 바람이 낫는지 新興靑年會(신흥청년회)의 壁新聞(벽신문)까지 또 압수하얏다. 이것이야말로 참 壁窓戶(벽창호)의 일이다. (車賤者(차천자))


개벽 제69호(1926.5)[편집]

尖口生(첨구생)

문제 중에 잇던 경성도서관은 그여히 李昇範君(리승범군)의 손을 ᄯᅥ나서 경성부의 직영이 되고 말엇다. 그런데 경성부에서는 리 군의 공로를 생각하야 상여금 3천원을 주고 ᄯᅩ 府(부)의 囑託名義(촉탁명의)로 의연히 그 도서관을 관리하게 되엿다. 이것이 엇지 말하면 일한 합병 당시에 當路大官(당노대관)들이 합병의 공로로 은사공채금과 襲爵(습작)의 특전을 입은 것과 갓다고 할가. 하여간 무슨 일이던지 시작만 해 노면 손해는 업는 모양이다.

李星鎔(리성용), 李灌鎔(리관용) 양 박사와 기독교청년학관의 독일어 교사 浪承翼(낭승익)군은 南大門通(남대문통) 小廣橋(소광교) 부근에 경성 초유의 伯林館(백림관)이라는 독일식 茶店(다점)을 開(개)하고 영업을 개시하얏다 한다. 아모 영업이라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조치만은 독일 유학생으로 多年(다년) 연구의 결과가 그 ᄲᅮᆫ일가. 아마 그들의 專攻(전공)한 학과는 茶料(다료)요 ᄯᅩ 박사시험 논문에도 다점 設計書(설계서)를 제출하엿던 모양이다. 그런데 풍문에는 독일 미인의 뽀이ᄭᅡ지 잇다고 하야 호기심으로 가는 사람이 만헛섯는대 실제에 가본즉 독일 미인은 影子(영자)도 업고 독신의 總角(총각)놈 뽀이만 쑥쑥 나와서 모도 실패하얏다고.

경성제국대학은 예정과 如(여)히 5월 1일에 개교하야 먼저 법문과, 의학과의 敎授(교수)를 시작하고 학생은 同校(동교) 預科(예과)를 종료한 150명을 수용하며 총장은 문학박사 服部宇之吉(핫토리 우노키치)군, 건축비는 166만8천원으로 明年(명년)ᄭᅡ지 준공한다고 한다. 인제는 조선에도 일본 廢物學者(폐물학자)의 高等收容所(고등수용소)와 조선 ᄲᅮᆯ조아 遊食民(유식민)의 고등양성소가 ᄯᅩ 완전히 설립된 모양이다.

六堂(육당) 崔南善(최남선)군은 紙面上(지면상)으로는 간혹 이름을 볼 수 잇스나 엇던 사회적 集合(집합)에는 별로 形影(형영)이 뵈지 안터니 요전 朝鮮文壇(조선문단) 崔鶴松(최학송)군 결혼식에 주례로 출석하엿더라고요. 육당이 六禮主義(육례주의)는 매우 찬성하는 모양이지.

조선문단은 4月월호 編輯餘言(편집여언)에 「新民(신민) 대 朝鮮文壇(조선문단) 사건은 아즉 明言(명언)치 아는다. 營業部在所(영업부재소)만 그곳으로 한 것 ᄲᅮᆫ이요 결코 아직은 新民社(신민사)에 넘어가지 안은 것만 확언한다」고 하얏다. 이것이 맛치 과부가 개가를 하고는 왈 개가는 하엿지만 아즉 許身(허신)은 아니하얏다는 말과 가튼 격이나 안일가.

경기도 경찰부에 오는 공문 중에는 경성경찰서라고 쓴 것이 종종 잇는데 그것은 엇던 무식한 사람이 한 것도 안이오 아주 훌늉한 일본 동경의 日比谷(히비야) 署長(서장), 麯町(고지마치) 서장이 그리한다고 한다. 일본인의 소위 朝鮮通(조선통)이라 하는 사람이 그 두 서장보다 나흘 자가 몃치나 잇슬고.

毁撒(훼살)을 하느니 移轉(이전)을 하느니 하고 문제가 만턴 광화문은 결국 20만원의 예산으로 他處(타처)에 이전하게 되얏다. 물론 섭섭한 일은 섭섭한 일이다만은 역사가 相當(상당)한 광화문으로 그곳에 잇서서 朝夕(조석)으로 눈ᄭᅩᆯ이를 이는 사람들의 출입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찰아리 한적한 곳에 가서 고결하게 잇는 것이 광화문에 대하야 幸(행)일가 한다.

塔洞(탑동)공원은 북부 조선인의 유일한 공원이다. 기미년 후에 당국의 미움을 바더서 禁錮(금고)에 처한 사람 모양으로 후문의 봉쇄를 당하고 원내 樹木花草(수목화초) 등도 별로 보호치 안이하며 園丁(원정)이 잇스면서도 掃除(소제)ᄭᅡ지 안이하야 일반의 불평이 多大(다대)하더니 근일에는 경성부에서 그 基址(기지)ᄭᅡ지 30만원인가 25만원에 매각하고 공원을 아주 폐지한다는 설이 잇다. 폐지를 하던지 設始(설시)를 하던지 제 마음대로들 하는 일이지만은 일본인 시가를 중심으로 한 장충단공원이나 漢陽公園(한양공원)을 볼 ᄯᅢ에 그 자들도 양심의 가책이 업슬가.

경성의 전차는 線數(선수)가 130대(승무원 560)이나 되는데 요새이는 ᄭᅩᆺ 구경군이 만흔 ᄭᅡ닭에 매일 만원이 된다고 한다. 이놈의 세상은 ᄭᅩᆺᄭᅡ지도 돈 잇는 놈을 위해서 피는 것 갓다.

동대문 경찰서에서는 各(각) 妓生券番(기생권번)에 경고하기를 「기생이 용무 이외에는 城外(성외) 출입을 금지하라」고 하얏다 하니 기생의 용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時間費(시간비) 밧고 노는 것이 용무인데 돈 안 밧고는 성외에 가서 놀지 말난 말이냐. 그것이 다 무슨 수작이냐. 長長春日(장장춘일)에 경찰용무가 업거든 낫잠이나 자는 것이 何如(하여).

일반 府民(부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폭리專業(전업)의 전기회사는 부민의 猛拳(맹권)을 一被(일피)하고 양심이 회복되엿는지 武者(무샤 렌조) 전무가 8월부터 요금을 減下(감하)하겟다고 공언하얏다. 감하할 터이면 즉시 감하하겟지 하필 8월이냐 한 달이라도 폭리를 더 취득하자는 수작이지.

日文(일문) 朝鮮新聞社(조선신문사)의 주최인 朝鮮博覽會(조선박람회)는 本月(본월) 13일부터 열이게 되엿는데 총독부, 경기도청, 경성부, 상업회의소 등 여러 관공서가 모다 후원이 되엿다. 기왕이면은 각 경찰서와 재판소ᄭᅡ지도 후원을 할 거이지, 한아라도 ᄲᅡ지는 것은 일본인 愛護上(애호상)에 한 유감이 안일가.

當年(당년) 평양명기로 閔泳徽(민영휘) 대감의 애첩이 되야 부귀영화를 자랑하던 金基賢(김기현) 마마는 東風(동풍)의 落花(낙화)를 伴(반)하야 애차러이 죽어버렷다 그런데 그 구둑쇠의 대감도 애첩에는 엇지나 후덕하신지 만여 원을 드려 굉장한 장례를 하고도 推爲不足(추위부족)하야 그의 無子孤魂(무자고혼)을 위로하랴고 수천원을 드려서 엇던 사찰에서 제를 올럿다고 한다. 참 장하고 의리잇는 일이다. 누가 그에게 褒賞金(포상금) 半指(반지)나 한 개 해 주지 안이하나.

長久間(장구간) 집회금지되엿던 靑總(청총)과 勞總(노총)을 근래에 근근히 회원의 간담회만을 허락하게 되엿다. 그래도 경성의 경찰을 그러한 양해라도 잇스닛가 다소 기특하다만은 鄕谷(향곡)에서 얼간망둥이 모양으로 아모 양해도 업고 이유도 분명치 못하며 함부로 집회금지, 언론取締(취체)를 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다. 이 기회에 한번 猛省改俊(맹성개준)함이 何如(하여).


개벽 제70호(1926.6)[편집]

尖口生(첨구생)

작년 녀름에 전남 화순군 부호 朴賢景(박현경)은 자기 외손의 병을 고치랴고 소작인의 脊髓液(척수액)을 뽑아서 注射(주사)한 ᄭᅡ닭에 한참동안 京鄕(경향)에 말성이 만히 되더니 요새이 경성 부호 趙鎭泰(조진태)군의 아들은 중병이 드러서 總督府病院(총독부병원)에 입원하엿는데 자기 집 차인군의 피를 뽑아서 혈액주사를 함으로 그 차인이 ᄯᅩ 병이 나서 입원ᄭᅡ치 하엿다고 한다. 부호의 세력도 세력이어니와 고혈의 착취를 당하는 가련한 무산자의 신세도 참 京鄕(경향)이 일반이다.

閔泳徽(민영휘) 子(자)은 요전에 애첩을 상실하엿다 하더니 그의 愛子(애자) 閔大植(민대식)군은 요새이 비밀히 엇던 妓妾(기첩)을 어더 두고 안국동에다 새로이 굉대한 가옥을 건축하는데 누가 알가 쉬쉬하고 밤이면 ᄭᅩᆨ 同妾(동첩)을 하고 와서 건축하는 집구경을 하고 간다니 可謂(가위) 父失子得(부실자득)이로구.

얼마 전에 서대문 私立(사립) 啓聖學校長(계성학교장) 車相信(차상신)군과 영국인 교사 구란드 군 간에 대격투가 생겻섯는데 동리 사람들이 계성학교에서 花鬪(화투)를 한다고 ᄯᅥ드닛가 그 부근 駐在所巡査(주재소 순사)가 두 눈이 휘둥그래 달려가 본 즉 도박의 화투가 안이라 차군이 英人(영인)의 집 「사구라」 ᄭᅩᆺ을 꺽근 ᄭᅡ닭에 ᄭᅩᆺ쌈이 나서 차군 측에는 그 학교 생도 수십 명ᄭᅡ지 가담하야 일장 대풍파가 니러난 것을 동리 사람이 화투라고 조롱한 所以(소이)엿다. 엇지 하엿던 화투는 화투요 화투 중에도 黃白人(황백인)의 大花鬪(대화투)이다.

구한국 시대의 무관이라고 하는 某某(모모)는 요새 恩給運動(은급운동)을 하너라고 열중하는 모양이다. 배가 곱푸면 도적질도 하는 터이닛가. 그다지 過責(과책)할 것은 업지마은 그래도 廉恥(렴치)가 잇서야 하지 몃해 동안이나 국록을 먹어가며 군사교육을 바더 가지고 해산당할 ᄯᅢ에 방귀 한 번도 못 ᄭᅱ고 잇다가 인제 누구더러 은급을 ᄯᅩ 달나고 한단 말이냐. 밥이 업거던 찰아리 깨끗하게 굴머 죽어서 지하에 잇는 朴星煥(박성환)이나 閔肯鎬(민긍호) 諸氏(제씨)와 상견례나 하여라. 氣着(기착)! 左向(좌향)!!

朝鮮步兵隊(조선보병대)는 이번에 ᄯᅩ 축소하야 70명의 1소대만 두기로 내정이 되엿다고 한다. 탄환 업는 총을 메고 虛營(허영)만 직히는 데야 70명ᄭᅡ지 무엇하나 二三人(이삼인)도 足之又足(족지우족)이지.

조선 승려 수백인은 승려의 娶妻食肉(취처식육)을 금지하여 달나고 총독부에 진정을 하엿다고 한다. 취처식육을 하는 여부야 각각 자기에게 잇지 하필 총독부에ᄭᅡ지 금지청원을 할 것이야 무엇 잇나. 언제는 총독부에서 승려에게 취처식육하라고 강제명령을 하엿던가. 그럴 터면 바로 부처님에게 취처식육하는 승려에게 벌을 나리라고 불공을 하는 것이 조치 안흘가. 아이고 「男無娥眉打佛(남무아미타불) 觀世飮普殺(관세음보살)」[4]

승려의 말이 낫스닛가 말이지 조선 부교 敎務院(교무원)에서는 전조선 사찰의 소유재산을 殖産銀行(식산은행)에 저당하고 백만원의 巨債(거채)를 내서 구사업을 정리하고 ᄯᅩ 신사업을 경영한다는 설이 잇다.

此(차)가 과연인지 알 수 업거니와 만일 그럿타 하면 불교계는 물질ᄭᅡ지도 마주 남의 지배를 밧게 될 모양이다.

조선박람회는 내용이야 엇지 되엿던지 會場(회장)이 遠巨離(원거리)에 산재한 것으로 보와 博覽會(박람회)의 가치가 잇다. 만일 한 장소에 잇더면 狹覽會(협람회)일 터인데

우리 사회 운동 선상에 중진인 金思國(김사국)군의 永逝(영서)한 것은 누구나 다 애석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데 평소에 執見(집견)이 다르던 正友會(정우회)와 그 他(타) 사상단체에서 연합하야 初終(초종)으로부터 장례식ᄭᅡ지 유감 업시 잘 칠엇섯다. 이것이 잠간 보면 사소한 일갓지 만은 조선의 사회운동이 점차 통일 되여 가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잇다. 이 압흐로 이러한 禮式(예식) 이외의 實地(실지) 운동에도 피차 大局(대국)을 생각하고 모든 감정을 초월하야 동일한 전선에 나가기를 바란다.

정감록에 「落盤孤四乳(낙반고사유)」라는 말이 잇는데 미신에 취한 자들은 그것을 米字(미자)라고 解(해)하야 米國(미국)이 엇지 하느니 하고 ᄯᅥ들더니 요새 이 당국에서 産米政策(산미 정책)을 쓴다 하닛가 ᄯᅩ 일부의 무지인들은 익크 이것이 정감록과 ᄭᅩᆨ 마젓다고 ᄯᅥ든다 하니 정감록의 해석도 隨時變遷(수시변천).

모처 조사에 의하면 大正(대정) 8년 이래로 금일ᄭᅡ지 密偵(밀정)의 嫌(혐)으로 상해에서 피살한 同和(동화) 조선인이 120여인에 달한다고.

경기도 평의원 金之煥(김지환) 외 某某(모모) 和族(화족) 遊食者(유식자)는 日鮮融和(일선융화)를 촉진하기 위하야 高陽 龍江面(고양 용강면) 新孔德里(신공덕리) 後山(후산)에 소위 二聖賢(이성현) 신사를 건설하고 공자와 二宮(니노미야) 尊德(손토쿠) 양인을 합사하기로 發論(발론)하야 기부금 모집운동을 한다고 한다. 기왕이면 조곰 참앗다가 道評議員會議(도평의원회의) 時(시)에 二宮(니노미야) 씨를 文廟(문묘) 配亨(배향)하자고 제안함이 何如(하여)할지. 그러나 공자는 조선인이 안이오 중국인이니 日中融和(일중융화)에는 필요할지 모르나 日鮮融和(일선융화)에는 하등 관계가 없는 데야 奈何(나하).

負債(부채)왕 尹澤榮(윤택영) 侯(후)는 국상 중에 귀국하면 아주 債鬼(채귀)의 독촉이 업슬 줄로 안심하고 왓더니 각 채귀들이 사정도 보지 안코 벌떼 가티 니러나서 소송을 제기함으로 재판소 호출에 눈코 뜰 새가 업는 터인데 일전에는 엇지나 火症(화증)이 낫던지 그의 아우 대갈 대감과 대갈이가 터지게 싸움ᄭᅡ지 하엿다고 한다. 그러케 싸우지 말고 국상 핑게ᄶᅵᆷ에 아주 ○○이나 하엿스면 충신 칭호나 듯지.

귀족의 이약이를 하는 끗에 ᄯᅩ 한 마듸 하자 閔泳徽(민영휘) 외 모모 귀족들은 금번 국장에 장비를 몃천원식 헌납하얏다. 그것도 안이하는 것보다는 기특하지 만은 그네들이 과거에 정권을 擅弄(천롱)하야 國財(국재)와 民産(민산)을 濫食(남식)한 것을 생각하면 李朝(이조) 최후 국장을 기회로 하야 전재산을 사회사업에 제공하고 죄를 전민중에게 謝(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다만 일시의 人心(인심)을 買(매)하기 위하야 手段的(수단적)오로 若干(약간)의 금전만 쓰는 것으로는 천하의 目(목)을 掩(엄)할 수 업는 것이다. 더 한 번 생각함이 何如(하여).


개벽 제71호(1926.7)[편집]

尖口生(첨구생)

朝鮮寺刹令(조선 사찰령)의 개정안은 근간 발표하리라는데 그 중는 승려의 食肉娶妻(식육취처)를 인정한 것이 한 특색이라 한다. 법령으로 인정하기 이전부터 승려들은 벌서 식육취처 내지 飮酒卜妾(음주복첩)ᄭᅡ지 한 사람이 만흔 즉 本令(본령)은 發布(발포) 전부터 시행한다고 지시하얏스면 조흘 것 갓다.

시내 齊洞(제동)에 잇는 소위 普天敎 京城眞正院(보천교 경성진정원)은 飯塚(반총)이라는 日女(일녀)에게 15,000원에 저당하엿더니 辦償(변상)의 道(도)가 전무하야 일전에는 債主(채주)가 집행을 하고 門戶(문호)ᄭᅡ지도 봉쇄를 하얏다고 한다. 眞天子(진천자)도 파멸을 당하는 이 시대에 假天子(가천자)의 별궁이 봉쇄당하기도 容或無怪(용혹무괴)이지.

第二東拓(제2동척)인 土地改良株式會社(토지개랑주식회사)는 점차 실현되야 조선인게도 株(주)를 모집하는데 평북 부호로 경성에 존재하는 吳熙源(오희원)군이 최상으로 1,300주를 응모하얏다 한다. 배주고 배속 비러먹는 격이지만 同(동)회사의 중역 한아는 아마 ᄭᅱ여노흔 당상일걸!

일본 兵庫(효고)縣(현)의 대지주인 水澤政一(미즈자와 세이이치)은 소작쟁의로 번민 발광되야 자기의 부모 외 가족 2인을 刺傷(자상)하고 자기ᄭᅡ지 자살하얏다. 富則多死(부즉다사)는 원래 定則(정칙)이지만은 이 세상의 모든 자본주가 이 지주 가튼 철저한 번민이 잇슬 것 가트면 무산자의 절규하는 모든 운동은 不勞(불로)하고도 잘 실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면 水澤(미즈자와)의 발광은 발광이라 하는 이보다 철저한 각오라 함이 可(가)할 것이다.

6월 10일 因山(인산) 당일에 학생의 만세사건으로 총독부 당국에서는 책임문제가 니러 나서 일부에서는 學務(학무) 당국이 교육방침을 그릇한 결과라 하고 ᄯᅩ 일부에서는 警務(경무) 당국이 경계를 너무 엄중히 한 반동이라 하야 갑론을박이 매우 만흔 모양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거렁이의 제 자루 짓는 격이라고나 할가.

경무국 말이 낫스니 말이지 同局(동국)의 발표에 의하면 인산 당일에 모모의 지방에서는 일본 국기를 아즉 미비함으로 구한국기를 게양하얏다고 하얏다. 이왕이면 학생들의 조선○○만세 부른 것도 학생이 아즉 일본이라는 말을 몰나서 조선○○만세도 代唱(대창)하얏다고 하는 것이 何如(하여).

本町(혼마치) 경찰서에서는 이번에 검거된 엇던 사람을 심문하는데 네가 종로서 三輪(미와) 警部(경부)와 평소에 엇던 관계가 잇스며 무슨 일을 서로 하엿느냐고 진기한 심문을 하더라니 그 署(서)에서는 三輪(미와)군도 무슨 위험인물로 인정하는 모양인가.

배우학교의 玄僖運(현희운)군은 예명을 玄哲(현철)로 하야 몃해 전부터 행세하더니 근일에는 다시 玄門宗哲(현문종철)이라고 變名(변명)하얏다 한다. 예술의 생명이 長(장)한 이상에야 예술가의 성명이 長(장)한들 누가 그의 論難(논난)하리오마는 일본인이 안인 조선인으로는 四字姓名(사자성명)도 대걸작이다.

新民(신민) 6월호는 본인도 不知(부지)하는 記名記事(기명기사)가 만하서 記名(기명)된 이의 비난이 만터니 石村(석촌) 尹用求(윤용구) 노인은 그여히 문제를 이르키여 「純宗實記(순종실기)」라는 題號取消(제호 취소)을 신문상에ᄭᅡ지 광고하고 李覺鍾(리각종)군도 사과 광고를 ᄯᅩ 하얏다. 그리하야 신민은 新民(신민)이 안이고 欺民(기민)이라는 평이 잇다.

槿花學校(근화학교)에서는 經費(경비) 곤란으로 총독부 모 고관의 소개장을 어더 가지고 교장 金美理士(김미리사)씨가 일본ᄭᅡ지 갓다가 결국 好成績(호성적)을 엇지 못하고 空歸(공귀)하더니 근일에는 ᄯᅩ 문제의 여배우 李月華(리월화), 崔星海(최성해) 등 일파의 후원을 得(득)하야 학생과 共同的(공동적) 歌劇會(가극회)를 開(개)하얏다. 교육에 열심도 열심이지마는 좀 더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업슬가.

府民國葬奉悼團(부민 국장봉도단)의 간부인 全聖旭(전성욱) 외 모모는 輿士軍(여사군) 이천사백여명에게 每人(매인) 15원식(피복비 5원 貸金(대금) 10圓井(원정)) 줄 돈을 타 가지고 여사군에게는 僅(근)히 7원식만 주고 (피복비 2원 대금 5원) 其餘額(기여액) 근 20,000원의 거금을 은닉분식 하랴다가 결국 전성욱이 단독 沒喫(몰끽)하고 타인은 一分(일푼)도 주지 안이함으로 피차 爭鬪(쟁투)가 생겨서 추태를 폭로하게 되엿다 한다. 喪家狗爭骨(상가구쟁골)은 自來(자래) 잇는 말이지만은 彼輩(피배) 가튼 추잡한 죄악이 ᄯᅩ 어듸 잇스랴 寧欲無言(영욕무언)

혼례식 주례 한 번에 일금 30원식 ᄭᅩᆨᄭᅩᆨ 바더 먹기로 유명한 기독교 목사 김모는 엇던 사람에게 대하야 말하기를 이번 국장 전후에 자기 교회에서 한 사람도 검속이 아니된 것은 다행이라고 하더라니 총독부에 가서 특별상여금을 청구할 자격이 잇군.

경성부에서는 도로를 확장하는데 금번에는 특별히 신도로로 수익하는 주민에게 그 비용을 부담케 한다고 한다. 착취의 방법도 점차 진화하는 모양이지.

京城測候所(경성 측후소)에서는 고기압만 터지면 6월 21, 2일 이내로 甘雨(감우)가 온다고 하더니 고기압이 아즉 터지지 안하서 그러한지 21, 2일 이후에는 旱魃(한발)이 더욱 심하야젓다. 측후소가 원래 귀신 가튼 예언자가 안인 이상에야 예측대로 절대 마즐 것은 안이지만은 경성측후소 가티 천기를 잘 마치면 틀니기는 걱정 업슬 것이다.

전 韓一銀行員(한일은행원) 朴尙說(박상설)이란 자는 방탕의 결과로 가정상 불화가 생겨서 자기의 처를 매일 구타하다가 눈ᄭᅡ지 빼서 본가로 축출하더니 繼(계)하야 ᄯᅩ 자기 노모를 蹴殺(축살)하야 滅倫敗常(멸륜패상)의 대괴변을 生(생)케 하얏다. 일본 신문지상에서는 간간히 그런 기사가 잇지만 조선에서는 신문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대괴변이다. 이것도 시대 변천의 결과라 할지.

6월 6일 사건에 女性同友會(녀성동우회) 趙元淑(조원숙)양 형제가 동시 검속된 것은 萬綠叢(만녹총) 중 雙点紅(쌍점홍)이라 하겟고. ᄯᅩ 6월 10일 사건에 경성대학생 李天眞(리천진)이 주모자가 된 것도 문제이지만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모관리의 子(자) 崔濟民(최제민)군이 ᄯᅩ한 주모자 된 것은 참 진기한 사실이다. 그러나 제2 黃鈺(황옥)이 업는 것만은 다행이다.

  1. 이는 재산이 많으면 잘 죽는다고 이를 만하다
  2. 揭(게)를 渴(갈)로 잘못 읽었다는 뜻임
  3. 내간상은 어머니의 상을 당했다는 뜻.
  4. 한자 발음을 이용한 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