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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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 리

홍수는 축 중에서도 숙성하였다. 유달리 일찍이 앙도라지게 익은 고추 송이랄까. 쥐알봉수요. 감발적귀였으나 야무러지고 슬기로는 어른 뺨쳤다. 들과 냇가에서는 축들을 거느리고 장 거리에서는 어른과 결었다. 인동은 홍수를 어른같이 장하게 여겼다. 우러만 볼 뿐이요. 아무리 바라도 올라갈 수 없는 나무 위 세상에 홍수는 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이의 세상이 아니요. 어른의 세상이었다. 어른의 세상은 커다란 매력이었다. 그러므로 홍수는 늘 존경의 목표요. 희망의 봉오리였다. 그는 약빨리 어른을 수입한 천재였다.

장 이튿날 거리에서 김접장과 으른 것만 해도 인동에게는 하늘같이 장하게 생각되었다. 당나귀 밭에 징을 박고 있는 김접장의 상투를 홍수는 뒤로 몰래 가서 보기 좋게 끄들어 흔든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벌떡 일어서는 김접장은 서슬에 당나귀 발길에 면상을 채웠다. 약이 바짝 올라 쇠 망치를 든 채 홍수를 후들겨 쫓았다.

“망종의 후레자식.”

홍수는 엎어잘락 쓰러질락 쫓겼다. 총중에는 홍수를 안된 놈이라고 사설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었으나 어른들은 차라리 심심파적으로 바라다들만 보고 있었다. 인동은 누가 이길까 주먹을 오므려 쥐고 속으로는 홍수 편을 부축하였다.

“요놈 붙들기만 하면 네 아범하구 한데 묶어 강물에 띄울 테다.”

“고치 번더지만한 상투를 아주 빼놀까부다.”

대거리하면서도 홍수는 지쳐서 소 장파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는 말뚝이 지천으로 박혀 있다. 그것을 이용하자는 꾀였다. 가리산지리산 말뚝을 헤치고 날래게 몸을 뒤적거리는 홍수를 쫓기가 유들유들한 김접장에게는 무척 거북한 듯하여 굽은 말뚝 한 개를 돌다가 기어코 다리를 걸쳐 나가 곤드라지고 말았다. 분김에 불심지가 올라 얼얼한 다리를 비비면서 바짝 길을 죄었다. 손아귀에 움켜든 기름종개같이 홍수는 얼른 손 안에 움켜 들렸다.

“어린 놈이 어른에게 대들다니.”

“그 잘난 어른.”

“아이는 아이와 노는 법인 것을.”

“무얼 다 안단 말이야.”

“무엇이든지 다 보았어.”

“무서운 생쥐 같으니.”

어린 볼을 사정없이 갈기로 다시 발칙한 짓 하겠느냐고 으르며 강종받으려 하였으나 홍수는 홀홀히 휘이지 않고 어디까지든지 박서며 겯거니 틀거니 한참 동안이나 실내기였다. 수많은 눈들과 웃음 속에서 철부지의 하룻강아지를 대수로 하고 그 짓임을 생각하고 김접장은 열 적고 경 없어졌다. 사지를 한데 모아 달룽 들어 소장더미에 갖다 동댕이를 치고 발길로 두어 번 엉덩이를 찼으므로 마음은 한결 누그러졌다. 홍수는 어떻게든지 하여 김접장의 볼을 한 개 갈겨 보려고 쓰러진 채 손을 휘젓고 애썼으나 헛수고였고 발길을 돌리는 어른에게 침을 두어 번 뱉었다. 침발은 날려서 다시 얼굴 위에 떨어졌다.

인동은 보고 섰는 동안에 눈물이 돌았다. 오히려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박서는 담찬 홍수의 마음을 대신하였음일까. 눈물은커녕 홍수는 도리어 새빨간 얼굴에 입술을 꽉 물더니 벌떡 뒤치고 일어서 한층 노기를 띠었다.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시 징 박기를 시작한 김접장의 뒤로 갔다.

“객적은 자식한테 실없이 봉변했다. 여편네 하나 거느리지 못하는 맹추가 멀쩡한 뉘게 분풀이야. 느 여편네 오새 난질이 나서 는실는실 발광인 줄 모르니.”

돌멩이는 공교롭게 상투를 맞췄다. 김접장은 어이가 없어 더 대거리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을 부릅뜨고 돌아섰을 때에는 홍수는 쏜살같이 거리를 달아나던 판이었다.

여편네가 난질이 났다는 말이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사람들은 다만 웃음을 머금없을 뿐이었고 김접장도 더 그 말을 취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축들은 홍수를 따라 거리를 벗어져 마을 앞으로들 달렸다. 인동도 그속에 있었다.

“어른과 싸우기 무섭지 않든.”

풀밭에 왔을 때에 홍수는 축들에게 둘러싸였다. 모두 앞을 다투어 그와 어깨동무 되려고들 하였다. 칭찬의 소리가 요란스럽게 풀잎을 무지렀다.

“무섭기는 그까짓 것 난 세상에 무서운 것 없어 마음이 개운하다.”

“밤에 선왕 숲에 가도 무섭지 않든.”

“도깨비를 만나도 김접장같이 해낼걸.”

“넌 장사다. 어른이다.”

“요담에 싸울 때 됩데 김접장의 사지를 묶어 덤 속에 처박으련다.”

축들은 김접장을 그만 팔불용으로 여기게 되고 홍수는 김접장보다 훨씬 나은 장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알 수 없이 기운들을 얻어 뛰고 차고 쓰러지고 하였다. 조그만 발밑에서 풀 포기가 짓으끄러져서 쓰러지면 옷자락이 푸르게 물들고 하였다.

홍수에게서 갑내집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동은 피가 불끈 솟으며 소름이 돋았다. 춤이 불같이 달다. 홍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이 별안간 그에게로 기울어지며 콧방울이 긴장되었다.

“다 보았다. 젖꼭지까지도 발톱 끝까지도 무어고 무어고 다 보았어. 무섭더라. 죄지는 것 같더라.”

홍수를 그 자리에 때려눕히고도 싶고 그를 칭찬하고 위해 주고도 싶다.

“얼른 말을 이어라.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

“밤은 깊고 달은 밝은데 뒷모양이 아무리 보아도 갑내집이길래 필연 장 거리의 어떤 놈팽이와 만나러 가는 눈치 같아서 슬며시 뒤를 따라 보았다. 중간에서 두어 번 들켜서 쫓기우고야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을 알게 된 것은 사흘되던 밤이었다. 어디로 간 줄 아니.”

눈망울이 달빛을 받아 구슬같이 빛났다.

“개울가에 이르더니 조약돌 위에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둑 밑 웅덩이 속에 풍덩 잠기더구나. 밤마다 그곳에 목물하러 가는 줄을 처음으로 알았다. 둑 옆에 왜 큰 버드나무 있잖니. 나는 숨을 죽이고 가지 위에 올라 개구리같이 줄기 사이에 배를 납작 붙이고 내려다보았다. 다 보았다. 옆구리에 박힌 점까지 알았다. 무섭더라. 하아얀 살결이 달빛에 쩔어 눈알이 둘러패이는 것같이 부시더라.”

인동은 전신의 피가 수물거리며 머리가 아찔하였다. 숨이 가쁘다.

“장거리에 뜬 술장사가 많이도 오기는 왔지만 난 갑내집만한 일색을 모른다. 그런 품속에서 하루라도 지내 보았으면 어머니 품에서 자는 것보담 얼마나 좋겠니. 지금 생각하문 미친 짓 같으나 보고 있는 동안에 별안간 화가 버럭 나더구나. 아무리 그립다고 생각한대야 우리 같은 것에야 눈에야 한곤 바로 떠보겠니. 다 어른 차지야. 어른이 되는 수밖에는 없어. 심술 김에 나는 고이가달을 걷어 올리고 다리 사이로 오줌을 깔리기 시작했다. 갑내집은 별안간 빗방울이 떠는 줄만 알고 손바닥을 벌리고 하늘을 치어다보더구나. 톡톡히 혼을 좀 뽑아 보려고 난 목소리를 내서 황급스런 고함을 쳤다. 저것 봐라. 물 위를 떠가는 저 구렁이! 갑내집은 악 소리를 치더니 기급을 하고 철벙철벙 물가로 나와 치마폭으로 젖은 몸을 가리고 허둥허둥 돌밭을 뛰더구나. 구렁이라니 휘젓고 가는 그의 몸동아리야말로 흰 구렁이같이 곱더라.”

인동은 홍수에게 확실히 한 대 먹은 것 같았다. 그 역 갑내집에 대하여서는 홍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던 것을 홍수가 한 걸음 먼저 가로채어서 해버린 셈이었다. 인동은 자기의 고림쟁이의 성질을 안타깝게 여기고 나무에 오르는 재주 없음을 한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홍수는 민첩한 감동으로 인동의 심중을 족히 헤아릴 수 있었다.

“생각이 있거든 두말말고 오늘밤 내 뒤를 대서라. 나무에는 내 떠받들어 올려 줄게. 오늘밤엔 기막힌 장난해 보지 않으련-갑내집이 물속에 들어갔을 때 몰래 가 벗어논 옷을 집어다 감추는 것이다. 얼마나 난탕을 칠까. 우리 말을 듣거든 의젓이 항복을 받고 내주자꾸나. 갑내집과 친해 가지구 됩데 어른들에게 골탕을 먹이잔 말이다. 달이 벌써 높았다. 갑내집은 갔을 게다. 뛰어나가 보자.”

꽁하게 맺혔던 인동의 심사도 적이 풀려 이제는 새로운 모험에 가슴이 두렵게 뛰었다.

둘은 짧은 그림자를 발아래 밟으며 달 아래를 돌멩이같이 굴러 달아났다.

갑내집의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 올라서 기다리기로 하고 홍수는 인동의 발을 떠받쳤다. 뒤미처 다람지같이 날쌔게 가지 위에 올랐다.

좁은 나뭇가지 위에서는 몸을 쓰기가 거북하였으나 홍수는 누웠다 섰다 앉았다 하여 교묘하게 몸을 쓰며 결코 무료를 느끼는 법이 없었다. 오래되었어도 물 위에는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별안간 나무 아래에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에는 갑내집은 안 오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요 가살이들, 나무에는 무엇 하러 올라갔어.”

갑내집임을 알았을 때 인동은 몸이 으쓱해지며 두려운 생각이 났다.

“왜 이리 늦었우.”

침착한 홍수의 태도도 인동의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지는 못하였다.

“멀쩡한 각다귀. 언제든지 속을 줄만 알았니. 어른을 노리갯감으로 알고-년석들.”

“어른은 어른 노리개밖엔 안되나.”

“하는 소리가 모두 엉큼해. 이 년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 오늘 밤엔 혼을 뽑아 놓겠다.”

“오줌을 깔릴까부다.”

홍수는 대거리를 하며 띠를 풀려고 할 때, 갑내집은 돌연히 기급을 할 듯이 외면하면서 고함을 쳤다.

“에그머니 저것 보아라 뱀? 나무 위에 서리서리 올라가는 저 구렁이 에그머니나!”

가리산지리산 내렸다.

“으앗!”

나무에 들어붙었던 인동은 짧은 소리를 치며 정신을 잃었다. 팔에 맥이 풀리며 그대로 나무줄기를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제서야 홍수도 일시에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황급히 떨어져 버렸다. 요행 아래는 풀밭이라 다친 데는 없었으나 인동은 오래 있다 정신을 차렸다. 갑내집은 가고 없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것이 불시에 사라진 요물같이 생각되었다.

그 밤 일은 물론 둘만이 알고 비밀이었다.

그 후로 인동은 넋을 떼운 듯이 기운을 잃고 비영거렸으나 들에 나가 뛰고 시내에 나가 잠기고 하는 동안에 차차 기운을 차려갔다. 홍수는 제 허물도 느끼고 하여 특히 두남 두어 뭇 시발을 귀찮게 여기지 않았다. 선왕 숲에서 돌배를 두드려 떨 때에는 굵은 것을 나눠 주고 물가에서 삼굿을 할 때에는 잘 익은 옥수수 이삭을 인동에게 물려주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속궁리는 스스로 달랐다.

홍수는 늘 인동을 한풀 접어놓고 같은 대접을 하지 않았다. 인동을 아직도 풋등이라고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동에게는 맞갖지 않고 슬펐다.

인동이 가진 한푼의 동전을 탐내면서도 홍수는 속을 뽑히울까 봐서 터 놓고 말을 하지 않았다. 제일 굵은 가래나무 열매와 바꾸자는 청이었으나 곳은 불림으로 말하면 거저라도 줄 것을 하고 인동은 녀석의 심중을 서글프게 여기면서 괘장부리고 싶은 생각조차 들었다.

“무슨 소리인지를 말하려무나.”

“싫거든 그만두어라.”

되수래잡는 홍수는 야속하게 여기는 한편 두서없는 제 꼴도 경 없게 생각되어 인동은 가래에 동전을 바꿔 버렸다.

장날 저녁때 해가 그늣할 때 풀밭에서 삼굿을 시작하였다. 구덩이를 피고 불을 피우고 조약돌은 모아 쌓고 뻘겋게 달게 달렸다. 신명들이 나서 뛰고 법석들이었으나 그때까지도 홍수의 꼴이 보이지 않음을 인동은 괴이히 여겼다. 또 한 구덩이에 삶을 것을 묻으려 할 때에 홍수는 비로소 뛰어왔다. 품에는 감자와 콩꼬투리를 수북이 안고 왔다. 늦게까지 장판을 헤매인 눈치였다.

익힐 것을 모조리 묻고 단 돌에 물을 주고 제각각 흩어져 잠시 동안 쉬일 때 인동들은 잔 버들 숲에 가서 앉았다.

홍수는 어디서 어떻게 후려 넣은 것인지 온개의 권연 한 개를 집어내더니 불을 붙였다. 담배와 성냥과-인동에게는 무섭고 놀라운 것이다. 어떻게 피우나 하고 보고 있으려니 홍수는 제법 연기를 길게 마시더니 코와 입으로 휘하고 뽑았다. 눈물은커녕 기침도 하는 법 없다. 찔레같이 밋밋한 권연이 두 손가락 사이에 간드러지게 쥐였다. 그 곤댓짓하고 거드름부리는 꼴에 인동은 새암조차 느꼈다.

“어느새 그렇게 배웠니. 늠름한 시늉이 어른 같구나.”

“너두 한 모금 피워 보렴. 아무렇지도 않단다. 눈 꾹 감고 목구멍으로 후욱 들여 마시문 가슴이 시원하고 연기는 제절로 콧구멍으로 술술 새어 나온다.”

인동은 연기를 입안에 물어본 것은 있어도 넘겨본 적은 없었다. 잘못 하다가는 당장에 정신이 아찔하여지며 그 자리에 쓰러져 꼬꾸라질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넓은 도랑을 뛰어 건널까 말까 망설일 때와도 같았다.

그러나 닦달질하는 홍수의 권고를 못 이겨 결심하고 입에 한 모금 그 뜩 머금은 연기를 죽을 셈치고 마셔 보았다. 역시 홍수를 따를 수도 없었다. 금시에 가슴을 홀치는 것 같아 재채기를 하고 눈물이 솟았다. 풀 위에 가슴을 박고 쓰러져 버렸다.

“애초부터 겁을 먹으니 그렇지. 물 마시듯 천연스리 마셔보렴. 아무렇지도 않지.”

홍수는 보라는 듯이 호울좋게 푹푹 빨아서는 마시고 마시곤 하였다. 인동은 눈물 사이로 하염없이 그 꼴을 바라보았다. 끝끝내 뛰지 못할 도랑 건너편에 있는 홍수였다. 별안간 앵돌아진 홍수의 얼굴이 쏜살같이 뒷걸음질쳐 손닿지 못할 먼 곳에 달아나곤 하였다.

“담배쯤에 겁을 먹으니 무엇이 되겠니. 넌 아직두 멀었어. 난 너와 놀기 싫다. 암만 해두 어울리지 않어.”

인동은 서글펐다. 한마디 더하면 눈물이 푹 솟을 것 같다.

“이까짓 담배쯤에!”

홍수는 목소리를 떨어트리더니 귀에 입을 갖다 대었다.

“순자 말이다. 너를 좋아하는 눈치더라. 수명이더러 널 늘 데려와 놀라구 그러는 눈친데 녀석이 잊어버리는 것 같애. 거리에선 순자가 제일 낫다. 키두 제일 크구 나백이요 섬도 들대로 들었어. 그러나 너 겁을 먹으문 안 된다. 재채기를 하구 쓰러지믄 다 틀려. 천연스럽게 굴문 무서울 것 없어.”

인동은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눈이 부셨다. 담배보다도 독한 말을 들은 것 같으다.

“여기 두 개 있다. 한 개 주마. 접때 넣어 주던 동전으로 가만히 샀다. 오늘 장날 아니냐. 어른 몰래 사느라구 이렇게 늦었다.”

인동은 두 눈을 말뚱하게 뜨고 홍수의 손에 쥐인 것을 보았다. 큰일이라도 저지른 듯한 현혹한 느낌이었다. 반지였다. 구리실로 가늘게 휘어 만든 노란 반지였다.

“하나는 내 것이다. 알지. 봉이 말이다. 봉이 손가락에 끼워 주련다. 날 더러 사달랬어.”

요란스런 소리가 나며 벌써들 삼굿으로 몰려들어가는 눈치에 홍수는 날쌔게 반지 하나를 인동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고 자리를 일어섰다.

인동은 무시무시한 생각이 나서 여러 차례나 반지를 풀밭에 내버릴까 궁리하면서 시남시남 홍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순자년 혼자 집 지키기 무섭다드라.”

수명은 누이를 년이라고 부르기가 일쑤였다.

인동은 겸연쩍으면서도 수명의 귀찮은 닦음질 바람에 뒤를 쫓았다. 물론 홍수가 있기 때문도 때문이었으나 아버지는 나무하러 가고 어머니는 촌으로 술 팔러 간 뒤를 수명 남매가 지키는 때가 많았다. 그런 때는 늘 축들을 불러놓고 순자는 새로운 장난을 생각해내곤 하였다. 막우발방의 홍수도 한 고패 위인 순자 앞에서는 한풀 죽고도 겁스럽게 굴었다.

숨바꼭질을 시작하였으나 네 사람만으로는 경 없었다. 인동은 혼자 찾아다니는 동안에 뒤뜰에서 순자를 만나볼 뿐이요 수명과 홍수의 꼴은 종시 보이지 않았다. 어느곁엔지 살며시 내뺀 모양이었다.

구럭에 걸린 것 같아 인동도 멋쩍어 그 자리를 감치려 하였으나 순자에게 붙들려 버렸다.

“너 가버리문 난 어떻게 하니. 무서워서.”

나중에는 두 손을 모고 사정이었다.

“좋아하는 것 줄게.”

뒤꼍 헛간으로 끌고 가더니 겻섬 속에서 문배를 한두 가리 꺼냈다.

이빨에 군물이 도는 잘 문 돌배는 두려운 맛이었다. 인동은 배맛도 좋은 둥 만 둥 한결같이 마음이 조물거렸다.

“이 집은 흉가란다. 밤에는 여기 도깨비가 나와.”

인동은 썸찍하여 모르는 곁에 순자에게로 몸을 쏠렸다.

“난 보았다. 파아란 불이 하나 나타나문 이어서 어디선지두 모르게 둘 셋 수없이 몰켜와 왔다갔다 하며 모였다 흩어졌다 하다가두 어느곁엔지 웅얼웅얼 부엌으로 몰려들어가 솥뚜껑 장난이야.”

소름이 돋으며 손에 땀이 배었다. 순자의 품이 어머니의 품같이 믿음직하였다.

“무섬두 펏 탄다. 애기 같구나. 젖 좀 먹으련.”

정신이 들었을 때 가슴에 가쿨가쿨 맞히는 것이 있었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으니 언제인가 홍수에게 얻은 반지였다. 쓰지 못한 반지였다. 홍수 생각이 났다. 모처럼 간곡히 띄어주던 것을 당해 보니 헛것이었다. 순자는 담배보다 곱절 더 무서운 것이었다.

인동은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서 안-알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비밀이었다. 그 순간을 지경으로 인동은 그때까지의 세상에 작별한 셈이었다. 인동은 벌써 어른들의 세상을 엿본 것이요. 숙성한 홍수의 심증을 알게 된 것이다. 모두가 물론 홍수에게서 왔다.

망울선 젓가슴이 유심히도 아프고 부어서 꼼짝달싹하기 싫은 것을 홍수에게 끌려서 인동은 그날도 강변에 목욕을 나갔다.

헤엄치고 가댁질하고 물싸움하는 동안에 비 맞은 풀 포기같이 퍼들퍼들 살아났다. 파득거리는 조그만 짐승들이었다. 물속과 모래밭에는 발가벗은 짐승들이 고기떼같이 오르르하였다. 휩쓸려 물싸움질을 시작하면 누구든지 하나가 물벼락을 맞고 꼬꾸라질 때까지 쉬지를 않았다. 물방울 같이 기운들이 그칠 줄 모르는 줄기차게 어느 때까지든지 뻗쳤다. 제 힘에 지치든지 싸움이 터지든지 하여야 비로소 기운은 쉬고 주저든다.

기어코 모래밭에서는 싸움이 터졌다.

패로 갈려 모래가 날으며 몸들이 부딪혀 쓰러지며 하였다. 인동은 홍수에게 끌려 싸움에는 목에 보지 않고 씻어진 기운을 간직한 채 동떨어진 나무그늘로 들어갔다.

벌거벗었어도 둘만은 피차에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씨름을 하다가 쓰러져 풀을 뽑았다. 씨름의 수로도 당할 수 없는 홍수라는 것을 우두커니 생각하고 있을 때 홍수는 문득 생글생글 웃음을 띠우며 인동을 노려보았다.

“너 아직 모르니.”

인동의 따귀를 한 대 갈기며,

“녀석. 오늘은 다 가르쳐주마.”

인동은 다 배웠다. 원숭이같이 홍수를 흉내내면 되었다. 부끄러운 생각에 몸이 달았다.

순간을 지경으로 인동은 알지 못해 안타깝고 야릇하던 어른의 세상을 철 이르게 가만히 밀수입한 것이었다. 알 수 없이 마음이 즐겁고 대견하고 흐붓하였다.

완전히 홍수의 축에 들 수 있음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모래밭에서 싸움들 하는 동무들을 바라볼 때 마음속 은근히 자랑이 솟아올랐다.

순자에게 대한 생각이 달려 들었다. 도깨비같이 그를 무서워 하고 질겁하던 일이 어리석에 여겨졌다. 그때와 다른 낯으로 대할 날이 언제일까를 마음속 은밀이 생각하여도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또 홍수가 앞장을 섰다. 앞장을 선 것은 장하고 부러운 일이었으나 끔찍이도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하루저녁 해가 아직도 길게 남았을 때 장 거리는 요란한 소동에 한바탕 발끈 뒤집혔다.

술집과 술집 사이 밭둑 헛간에서 일은 터졌다.

홍수는 벌거벗은 채로 들리워 냈다. 봉이가 울면서 뒤를 따라 나왔다. 들어낸 것은 봉이 아버지 박선달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전에 든손 처사를 하려고 선달은 홍수를 멱살 채 들어 두어 번 후려갈려 길바닥에 던지고 딸 봉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집에 이르러 방구석에 처박았으나 그때에는 벌써 거리는 때아닌 장판을 이루어 두런두런 모여들어 요란히들 수물거리는 판이었다.

“세상이 무척 약아는 졌어. 우리 코 흘리던 나일세. 무서운 세월이야. 강릉집 자네 몇 살 때 시집갔나.”

요란스런 사이로 여인의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대체 철은 들었을까.”

새로 일어나는 웃음소리가 뒤를 이어 울명줄명 파도쳤다.

“하기는 어른 흉내내는 것이 아이의 천성인가부다.”

공론은 그 점에 집중되었다. 의론이 분분하고 실내기들을 쳤다. 어른들은 이제는 벌써 너그러운 태도로 아이들의 행동을 막아 주고 변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접장과 갑내집만은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홍수가 저지른 일을 고소하게 여겼다. 그 언제와 같이 “망종의 후레자식, 엉큼한 각다귀”로 그를 불러댔다.

인동은 어른 숲에 들어 여러 가지 말을 들으며 엄청나도 두려운 생각이 났다. 홍수와 같이 생각하고 놀 때에는 그들의 하는 일이 모두 바르고 떳떳하게 생각되었으나 어른들 말을 들으면 어느 편이 바른지를 종잡을 수 없었다. 홍수를 대신하여 그 자신이 그 자리에서 갖은 모욕을 다 당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한결같이 부끄럽고 두려웠다. 순자의 생각도 가슴 속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이튿날 홍수를 만났을 때에는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다시 그들 생각으로 돌아갔다.

“실없이 망신했다. 어제는 밤새도록 천정에 달아매어 아버지한테 얻어 맞았다. 드러나지 않으문 아무 일 없는 것두 눈에 띠우기만 하문 사람들은 법석이란다. 사람은 사람을 놀림감 맨들기를 좋아하는 무도한 짐승이야. 뻔히 어저도 하는 짓을 다른 사람이 하문 웃거든. 쓸데없는 짓야. 겁낼 것 없다. 어른이란 존 것 아니야. 어리석은 물건들이야. 하긴 우리도 이제는 어른이다만.”

홍수의 말을 들으면 인동은 다시 기운이 솟았다. 어른에게 대한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그들의 모든 것이 바르다는 생각을 한결같이 들었다.

김접장과 갑내집을 톡톡히 해낼 날을 마음속에 그려도 보았다. 홍수의 말은 마치 요술같이도 마음을 취하게 하였다.

인동의 가슴속에는 순자의 생각이 요번에는 떳떳하게 떠올랐다. 홍수와 같이 풀밭을 걸어가며 인동은 네 활개를 활짝 펴고 긴 기내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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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