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구락부
공상구락부
“자네들 무얼 바라구들 사나.”
“살아가자면 한 번쯤은 수두 생기겠지.”
“나이 삼십이 되는 오늘까지 속아오면서 그래두 진저리가 안 나서 그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그 무엇을 바라지 않고야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말하자면 꿈이네. 꿈꿀 힘없는 사람은 살아갈 힘이 없거든.”
“꿈이라는 것이 중세기적에 소속되는 것이지 오늘에 대체 무슨 꿈이 있단 말인가. 다따가 몇 백만 원의 유산이 굴러온단 말인가. 옛날의 기사에게 같이 아닌 때 절세의 귀부인이 차례질 텐가. 다 옛날얘기지 오늘엔 벌써 꿈이 말라버렸어.”
“그럼 자넨 왜 살아가나. 무얼 바라구.”
“그렇게 물으면 내게두 실상 대답이 없네만. 역시 내일을 바라구 산다고 할 수밖엔. 그러나 내 내일은 틀림없는 내일이라네.”
“사주쟁이가 그렇게 말하던가. 관상쟁이가 장담하던가.”
“솔직하게 말하면─”
“어서 사주쟁이 말이든 무어든 믿게나. 무얼 믿든 간에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일반 아닌가. 결국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게니까. 악착한 현실에서 버둥버둥 허덕이지 말구 유유한 마음으로 찬란하게 내일이나 꿈꾸구 지내는 것이 한층 보람 있는 방법이야. 실상이야 아무렇게 되든 간에 꿈조차 꾸지 말라는 법이야 있겠나.”
“그렇구말구. 꿈이나 실컷 꾸면서 지내세 그려. 공상이나 실컷 하면서 지내세 그려.”
“꿈이다. 공상이다.”
이렇게 해서 좌중에 공상이란 말이 시작되었고 거듭 모이는 동안에 지은 법 없이 공상구락부라는 명칭까지 붙게 되었다.
구락부라고 해야 모이는 집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오, 부원이 많은 것도 아니오, 하는 일이 또렷한 것도 아닌─친한 동무 몇 사람이 닥치는 대로 모여서는 차나 마시고 잡담이나 하고 하는 정도의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직업 없는 실직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 없는 날마다의 무한한 시간과 무료한 여가를 공상과 쓸데없는 농담으로 지우게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상구락부란 사실 허물없는 이름이었고 대개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찻집에 들어가서 식어 가는 커피잔을 앞에 놓고 음악소리를 들어가면서 언제까지든지 우두커니들 앉아 있는 꼴들은 ─좌중의 어느 얼굴을 살펴보아도 사실 부질 없는 공상의 안개가 흐릿한 눈동자 안에 서리서리 서리우지 않을 때가 없었다. 꿈이란 눈앞에 지천으로 놓인 값없는 선물이어서 각각 얼마든지 그것을집어먹든 시비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 허름한 양식으로 배를 채우려고 한잔의 차와 음악을 구해서는 차례차례로 거리의 찻집을 순례하는 것이다.
솔솔 피어오르는 커피의 김을 바라볼 제 그 김 속에 나타나는 꿈으로 얼굴을 우렷이 아름답게 빛내이는 것은 유독 총중에서 얼굴이 가장 뛰어나고 문학을 숭상하는 청해군 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코 아래에 수염을 까마잡잡하게 기르기 시작한 천마군도 그랬고 비행사 되기를 원하는 유난히 콧대가 엉크런 백구군도 그랬고 총중에서 가장 몸이 유들유들한 운심도 또한 그랬던 것이다. 꿈이라면 남에게 질 것 없다는 듯이 일당백의 의기를 다 각각 가슴 속에 간직하고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잠그고 앉아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네 사람의 자태를 그 어느 날 그 어느 찻집에서나 발견하지 못하는 때는 없었다.
“남양의 음악을 들으면 난 조그만 섬에 가서 추장노릇을 하고 싶은 생각이 버쩍 생긴단 말야.”
그 추장노릇의 준비 행동으로 코 아래 수염을 기르는 것일까. 총중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추장의 자격이 있다면 있을 천마는 음악에 잠기면서 꿈의 계획을 피력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부락을 맨들겠네. 섬에는 물론 새 문화를 수입해서 각 부문에 전부 근대적 시설을 베풀고 한편으로는 농업을 힘써서 그 농업 면에도 근대화의 치장을 시키고 농업 면과 공업 면이 잘 조화해서 조금도 어긋나고 모순되지 않도록 즉 부락민은 농사에 종사하면서도 도회면서 살 수 있도록─그러구 물론 누구나가 다 일해야 하구 일과 생활이 예술적으로 합치되도록 그렇게 섬을 다스려보겠네. 노동이 있을 뿐 아니라 예술이 있고 음악이 있고 음악에 맞춰서 일이 즐겁고 수월하게 되는 부락─그 부락의 추장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 평생 원이야.”
“그럴 법하긴 하나 원두 자네답게 왜 하필 추장노릇이란 말인가. 이왕 꿈이구 공상이라면 좀더 사치하고 시원스런 것이 없나. 공중을 훨훨 날아 본다든지 하는 비행가가 되기가 내겐 천상 원인 듯하네. 꿈이 아니라 가장 가능한 일인 것을 시기를 놓쳐 버리고 나니 별수없이 공상이 되구 말았으나.”
백구는 천마를 핀잔주듯이 말하면서 은연중에 공상을 늘어놓는 셈이었다.
“추장이니 비행기니 공상들두 왜 그리 어린애다운가. 어른은 어른답게 어른의 공상을 해야 하잖나.”
청해의 차례이다. 다른 동무들과 달리 그다지 부자유롭지 않은 처지에서 반드시 취직 걱정도 할 것 없이 안온하게 지내 가는 그가 문학서를 많이 읽고 생활의 기쁨이라는 것을 유달리 느껴 오는 탓일까. 그렇지 않으면 남보다 뛰어난 얼굴값을 하자는 수작일까. 하필 하는 소리가
“두구 보지. 내 이십세기 클레오파트라를 찾아내지 않고 두는가. 세기의 미인 만대의 절색─그 한 사람을 위해서는 천리 길을 걸어도 좋고 만리 길을 걸어도 좋은─그의 분부라면 그 당장에서 이 내 목숨 하나 바쳐도 좋은─그런 절색 내 언제나 구해 내구야 말걸. 이 목숨이 진할 때까지라도.”
하는 것이다.
“찾아내선 어쩌잔 말인가. 지금 왜 절색이 없어서 걱정인가. 할리우드만 가보게, 클레오파트라 아니라 그 이상 몇몇 곱절의 이십세기의 일색들이 어항 속의 금붕어 새끼들같이 시글시글 끓을 테니 가르보나 셔어러는 왜 클레오파트라만 못하단 말인가. 디이트리히나 콜베엘두 몇 대 만에 태어나는 인물이겠구 아이린•단이나 로저스두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인 인물이네. 요새 유명한 다니엘 다류는 어떤가. 미인이 아니래서 한인가. 미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네 차례에 안가서 걱정이라네. 이 철딱서니없는 동양의 돈 환 같으니.”
천마의 핀잔에 청해는 가만있지 않는다.
“다류나 로저스를 누가 미인이래서. 그까짓 할리우드의 여배우라면 자네 같이 사족을 못쓰는 줄 아나. 이 통속적인 친구 같으니. 참된 미인은 스크린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다른 숨은 곳에 있는 것이라네.”
“황당하게 꿈속의 미인만을 찾지 말구 가까이 눈앞에서부터─자네 대체 미모사의 민자는 그만하면 벌써 후리게 됐나 어쨌나. 민자쯤을 하나 후리지 못하는 주제에 부질없이 미인타령은 무어야.”
운심의 공격에 청해도 얼굴을 붉히면서 할말을 모르는 것을 보면 미모사의 민자는 아직 엄두도 못낸 눈치였다.
“어서 나와 같이 세계일주 계획이나 하게. 이것이야말로 공상이 아니라 계획이네. 세계를 일주해봐야 자네의 원인 절색두 찾아낼 수 있지 찻집 이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서야 이십세기의 일색을 외친들 다따가 코앞에 굴러 떨어지겠다. 내 뜻을 이루게 되면 그까짓 세계일주쯤이 무엇이겠나. 자네두 그때엔 한몫 끼여 주리. 자네 비위에 맞는 미인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도록. 자네뿐이겠나 천마군의 추장의 꿈두 백구군의 비행가의 공상두 그때엔 다 실현하게 되리. 내 성공하는 날들만을 빌구 기다리구들 있게.”
운심의 뜻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그가 오래 전부터 ‘꿈’ 꾸고 생각해 오던 광산의 일건이었다. 고향이 충청도인 그는 특수광지대인 고향 일대에 남달리 항상 착안해서 엉뚱하게도 광맥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어 온지 오래였다. 물론 당초부터 광산을 공부한 것도 아니오,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오, 다만 막연히 상식적으로 언제부터인지 그런 야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서울에서 공부를 마치고는 그대로 눌러서 날을 지우게 된 그로서 공상구락부에서 꾸는 그의 꿈은 언제나 광산에 대한 애착이요 공상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기적이라는 것이 있듯이 공상도 간간이 가다가 공상의 굴레를 벗어나서 실현의 실마리를 찾는 것인 듯하다. 아마도 사람에게 공상이라는 것을 준 조물주의 농간이라면 농간이 아닐까. 운심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조물주의 농간을 입어 그의 공상의 현실과의 접촉점을 우연히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공상은 참으로 공상 아닌 현실의 성질을 띠이고 나타나게 되었고 그뿐 아니라 동무인 세 사람에게도 그것이 영향이 되어 그들은 벌써 공상만이 아니라 공상을 넘어서의 찬란한 계획을 차차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고향을 다녀온 운심의 손에 이상한 것이 들려 있었다. 알고 보면 그 일 때문에 일부터 시골 있는 동무에게서 편지를 받고 내려갔던 것이나 근처 산에서 희귀한 광석을 주워 가지고 온 것이다. 여전히 공상의 안개가 솔솔 피어 오르는 찻집 좌석에서 운심은 주머니 속 봉투에서 집어낸 그 광석을 내보이면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돌멩이 속 틈 틈에 거무스름한 납덩어리가 보이잖아. 손톱자리가 쑥쑥 들어가는 이것이 휘수연(輝水鉛)이라는 것이네. 모립덴이라구 해서 경금속으로 요새 광물계에서 떠들썩하는 것인데 가볍기 때문에 비행기 제조에 쓰이게 되어 군수품으로 들어가거든. 시세가 버쩍 올라 한 톤의 시가가 육천원을 넘는다네. 광석채로 판다구 해두 퍼센티지에 따라서 팔수록에 그만큼의 이익은 솟을 것이네. 고향에서 한 삼십 리 들어간 산속에서 발견한 것인데 늘 유의하고 있던 동무가 내게 알려준 것이네. 한 가지 천운으로 생각되는 것은 실상은 들어본즉 애초에 어떤 사람이 그 산을 발견해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가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단념하구 산을 버렸다는 것인데 아마도 그 사람은 휘수연의 광산이라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구 알았어두 그때엔 시세도 없었던 모양이데. 버린 것을 줍지 말라는 법이야 있겠나. 별반 수고도 하지 않고 남이 발견한 것을 차지한 셈인데 꼭 맞힐 듯한 예감이 솟네. 희생을 당하더래두 집안을 훌두드려 파는 한이 있더래두 이 산만은 꼭 손을 대보구야 말겠네. 공상구락부의 명예에 걸어서래두 성공해 보겠네. 맞혀만 보게, 자네들 꿈쯤은 하루아침에 다 이루게 될 테니.”
좌중은 멍하니들 앉아서 찬란한 그의 이야기에 흔들을 뽑히우고 있었다. 금시에 천지가 바뀌고 해가 서쪽에서 뜨게 된 듯도 한 현혹한 생각들을 금할 수 없었고 운심이란 위인을 늘 보던 한 사람의 평범한 동무를 새삼스럽게 신기한 것으로들 바라보는 것이었다. 오돌진 그의 육체 속에 그런 화려한 복이 숨어 있었던가 하고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운심은 제법 틀이 생기고 태도조차 의젓해져서 거리를 분주하게 휘돌아치는 꼴조차 그 어디인지 유유한 데가 보였다. 우선 사사로운 몇 군데 광무소를 찾아 감정을 해보고 마지막으로 식산국 선광 연구소에서 결정적 판단을 얻기가 바쁘게 지도와 인지를 붙여서 그 자리로 출원해 버렸다. 당분간 시굴을 해볼 필요조차 없이 곧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하려고 즉일로 고향에를 내려갔다. 땅마지기나 좋이 팔아서 천원 돈을 만들자마자 부랴부랴 올라와서 속허원을 내서 광업권 설정을 하고 일년분 광구세까지 타산해 놓고 앞으로 일주일이면 당장에 일을 시작하게까지 재빠르게 서둘러 놓았던 것이다.
동무들은 그의 활동력에 놀라면서 그가 다시 고향으로 떠나려는 전날 밤 송별연을 겸해 모였을 때에 그의 초인적 활동을 칭찬하고 성공을 빌면서 새로운 인격의 탄생인 듯이도 그를 찬양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공상들이 더한층 현실성과 생색을 띠우고 아름답게 빛났던 것은 물론이다. 백구는 그 자리에서 금시 한 사람의 비행가나 된 듯 비행기의 설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속력이 무척 빠르고 원거리로 날 수 있는 것은 물론 군용기에 지나는 것이 없으나 민간에서 쓸 수 있는 특수기로라면 영국의 데•하비란드•코오멧 장거리 비행기 같은 것이 가장 튼튼한 것인데 사백사십팔 마력 최고속도 한시간에 삼백칠십육 킬로─이만하면 세계일주두 편히 되지. 이런 장거리라 비행기가 아니라면 차라리 조그만 걸 가지구 가까운 곳에서 장난하기 좋은데 가령 불란서서 시작한 부우•드•쉘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속력이 한 시간에 백 킬로는 되거든.”
“염려할 것이 있나 무엇이든지 뜻대로지.”
운심은 얼근한 김에 술잔을 들고는 동무를 응원하는 것이다.
“세계일주를 하거든 같이 맞서서나 그려, 자네는 비행기로. 난 배로. 비행기로 일주일 동안에 세계를 일주한 기록이 천구백삼십삼년에 서지 않었나 왜. 그러나 난 그런 급스런 일주는 뜻이 적은 것이라구 생각하네. 불란서 어떤 시인은 팔십 일 동안에 세계를 유람했구 세계일주 관광선이란 것두 넉 달만에 한 바퀴 유람들을 하구 하지만 그런 것은 재미가 덜할 것 같어. 이상적 세계일주로는 역시 그 시조인 십육세기 마젤란의 격식이 옳을 듯하네. 삼년 동안이 걸리지 않았나. 그는 고생하노라고 삼년이나 지웠지만 나는 그 삼년 동안을 각지에서 적당히 살면서 다니자는 것이네. 시절을 가려 적당한 곳을 골라서는 몇 달씩 혹은 한철을 거기서 살고는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네. 그렇게 각지의 인정, 풍속과 충분히 사귀고 생활을 즐기면서 다니는 곳에 참된 유람의 뜻이 있지 않나 하네. 가령 봄 한철은 파리에서 지내고 여름은 상모리츠에서 지내고 가을은 티톨에서 겨울은 하와이에서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음에 서전에서─이렇게 해서 세계를 모조리 맛보자는 것이네.”
“그 길에 제발 나두 동행하세나. 이십세기의 절색을 찬찬히 구해보게.”
청해의 농담도 벌써 농담은 아닌 듯 또렷한 환영이 눈앞에 보여 와서 그는 눈동자를 빛내면서 술잔을 거듭 들었다.
“어떻든 내 자네들 구세주되리, 공상구락부의 명예를 위해서래두. 그것이 동무의 보람이란 것이 아닌가.”
운심은 어느덧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나중에는 혀조차 꼬부라지는 판이었으나 그래도 이튿날에는 말끔한 정신과 개운한 몸으로 동무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늠름하게 출발의 첫걸음을 띄어 놓았다. 고향에 내리기가 바쁘게 사람들을 모아 일을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며칠 안 가 동무들은 듣게 되었다.
운심이 시골로 간 후 그에게서 소식은 자주 듣는다고 해도 아무래도 무료한 마음들을 금할 수 없었고 공상의 불꽃도 전과 같이 활활 붙지는 못했다. 세 사람이 찻집에 모여들 보아도 좌중의 공기가 운심이 있을 때같이 활발하지 못했고 생활의 경우가 갈린 이상 마음들도 서로 떨어지는 것 같아서 서먹서먹한 속에서 공상구락부의 명칭조차 그림자가 엷어 가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는 중에 생긴 한 가지의 큰 변동은 천마와 백구가 뒤를 이어 차례차례로 직업을 얻게 된 것이었다. 물론 다따가 돌연히 된 것이 아니라 어차피 무엇이든지 일을 가져야 하겠기에 두 사람 다 은연중에 자리를 구해는 오던 중이었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바로 이때 두 사람이 전후해서 천마는 신문사에 백구는 회사에 각각 자리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근무시간을 가진 두 사람은 낮 동안 온전히 매어 지내는 속에서 자유로이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밤에 들어서야 겨우 박쥐같이 거리로 활개를 펴고 날았으나 피곤한 몸과 마음에 꿈을 꾸고 공상을 먹을 여가조차 줄어가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을 잃은 청해 혼자만이 자유로운 몸으로 허구한 날 미모사에 나타나 민자를 노리면서 날을 지우게 되었다 . 공상구락부란 대체 그만 없어지고 만 것일까 하는 생각은 세 사람의 가슴속에 다 각각 문득 솟는 때가 있었다.
하루는 청해가 역시 미모사에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별안간 눈앞에 나타난 것이 의외에도 운심이었다.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운심은 막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네 하고 앞자리에 덜석 주저앉는다. 사실 광산에서 그대로 빠져 나온 듯이도 촌스러운 허름한 차림이었다.
“자네 내 주머니 속에 지금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짐작하겠나.”
운심은 빙그레 웃으면서 두두룩한 가슴을 두드려 보았다. 물론 속주머니에 가득 찬 것이 돈이라는 뜻임이 확실하였다.
“이럴 것이 없네. 남은 동무들을 속히 모으게. 취직들 했다는 소리는 들었네만 오래간만에 얘기두 많어.”
그날 밤으로 천마와 백구를 불러 네 사람이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여 편편하게 가슴을 헤치게 되었다.
“난 지금 운명의 희롱을 받고 있다구 밖엔 생각할 수 없네. 일이라구 시작은 했으나 이렇게 잘 필 줄은 몰랐구 너무도 어이가 없어 세상에 이런 수두 있나 이것이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두 몇 차례씩 드네. 파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소위 부광대(富鑛帶)를 만났는데 하루에도 몇 톤씩 나오네나 그레. 사람을 조롱하는 셈인지 어쩌는 셈인지 조물주의 조화를 알 수나 있겠나. 한편 즉시 시장으로 보내군 하는데 벌써 돈 만 원이 거래는 됐단 말이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셈이지 결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어. 이렇게 된 바에야 더욱 전력을 들일 수밖에 없는데 번 돈 전부를 넣어서 위선 완전한 기계장치를 꾸미려고 하네. 이번엔 그 거래 겸 자네들과 놀 겸 해서 온 것이네만.”
당자사인 운심 자신이 놀라는 판에 동무들이 안 놀랄 수는 없었다. 식탁 위 진미보다도 술보다도 눈앞의 명기들보다도 그들은 더 많이 운심의 이야기에 정신을 뺏긴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들의 공상두 이제는 정말 실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 일이 되기 전에는 세계일주니 비행기니 하는 공상이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잠꼬대같이 들리더니 지금 와서는 차차 현실성을 띠어가는 그 모양이 또 어처구니없게 생각된단 말이네. 세상에 사람의 일같이 알 수 없는 것이 있겠나. 땅속의 조화와 같이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신비야.”
“공상 공상 하구 헛소리루 시작된 것이지 사실 누가 이렇게 될 줄야 알았겠나. 지금 세상 그 어느 다른 구석에 이런 일이 또 한 가지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두 없네.”
“제발 이 일이 마지막까지 참말되어 주기를─운심이 최후까지 성공하기를 동무들의 이름을 모아서 충심으로 비는 바이네.”
모두들 달뜬 마음으로 동무를 찬미하고 술을 마시고 밤이 늦도록 기쁨을 다할 수는 없었다. 넘치는 기쁨을 마치 식탁 위에 삘 새가 없는 술과 같이도 무진장이었다. 잔치는 하룻밤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틀이 계속되고 사흘로 뻗쳤다. 운심이 모든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다시 고향인 일터로 떠났을 때에야 동무들은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상의 고삐를 죄이고 각각 맡은 직업으로 나가게 되었다. 공상이 실현될 때는 실현되더라도 그때까지는 역시 사소한 맡은 일에 마음을 바침이 사람의 직분인 듯도 하다. 물론 직업이 없는 청해는 역시 자기의 맡은 일─미모사에 나가 다시 민자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 기적이라는 것이 간간이 가다가 생길 수 있는 것이라면 나타났던 기적이 꺼지는 법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운심은 이번의 자기의 성공을 설명하기 어려워서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신비라고 탄식했고 자기의 경우를 운명의 희롱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다. 그러나 그 의심과 탄식도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일 것이며 그 마따나 조물주의 농간에 맡기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의 일이 알 수 없는 것임은 두 번째 나타난 운심의 자태를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운심이 내려간 지 달포나 되었을 때였다. 청해가 여전히 미모사에서 건들거리고 있을 때 오후는 되어서 그의 앞에 두번째 나타난 것이 운심임을 보고 청해는 놀라서 첫번 때와 똑같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의 청해의 한 가지의 변화라면 전번과는 달라 달포 동안 진을 치고 있는 동안에 완전히 민자를 함락시켜 그를 수중에 넣고 뜻대로 휘이게 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민자와 마주앉아 단 이야기에 잠겨있던 판이다. 다따가의 동무의 출현에 사실 뜨끔하고 놀랐던 것이다.
“자넨 항상 기적같이 아무 예고두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네 그려. 이번엔 또 무슨 재주를 피우려나.”
전번과 똑같은 마치 산속에서 그대로 뛰어나온 길인 듯한 허름한 차림임을 보고 청해는 농담을 계속했다.
“자네 내 주머니 속에 지금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짐작하겠나─하고 왜 얼른 묻지 않나. 그 두두룩한 속주머니 속이 이번에두 지전으로 그득 찼겠지. 자넨 아무리 생각해두 보통사람은 아니야. 초인이야. 영웅이야. ─아니 수수께끼고 신비야.”
그러나 운심은 첫번 때와 같이 빙그레 웃지도 않으면서 동하지 않는 엄숙한 표정을 지닌 채 분부하는 듯 짧게 외쳤을 뿐이었다.
“동무들을 속히 모아주게.”
한참이나 동안을 떼었다가 조건까지를 첨부했다.
“요전같이 굉장한 데를 고르지 말구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구 조촐한 좌석을 잡아두게.”
그날 밤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앉았을 때에도 물론 전번과 같이 좌중의 공기가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고 알 수 없이 무겁고 서먹서먹한 것이었다. 물론 운심의 입이 천근같이 무거웠던 것이요, 그의 입이 떨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던 까닭이다. 마치 제사의 단앞에나 임한 듯 운심은 음식상을 앞에 놓고 간신히 무거운 입을 열었다.
“난 지금 운명의 희롱을 받구 있다구 밖에 생각할 수 없네.”
별 것 아닌 첫 좌석에서 말한 그 한마디언만 그의 심상치 않은 태도에 긴장하고 있던 동무들은 그 말속에서 첫번에 들었던 것과는 다른 뜻을 민첩하게 직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네들의 공상의 책임을 졌던 나는 지금 말할 수 없는 괴롬과 두렴을 느끼고 있는 중이네. 내 운명이라는 것이 이제야말로 참으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됐네.”
숨들을 죽이고 잠자코만 있는 동무들은 별수없이 그들의 예감이 적중한 셈이어서 더 듣지 않아도 결과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운심의 그 이상의 말은 다만 자세한 설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두 그렇게 만만하게 잘될 리는 만무한 것이야. 그것을 똑똑히 알게 됐네. 소위 부광대라는 것도 그다지 큰 것이 못돼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돼서 벌써 광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네. 원래 휘수연의 광맥은 단층이 져서 찾기 어려운 것이라군 하는데 광맥이 끊어진 위와 아래를 아무리 파가두 줄기를 찾을 수가 없네 그레. 아마도 지각의 변동이 몹시 심했던 것인 듯해서 기술자를 들여 아무리 살펴보아두 광맥의 단층이 정단층인지 역단층인지 수직단층인지조차도 알 수 없단 말야. 괜히 헛 땅만을 파면서 하루에 기계와 인부의 비용이 얼마나 드는 줄 아나, 기계장치니 뭐니 해서 거진 수만 원이나 들여놓고 이 지경을 만났으니 일을 중단할 수두 없는 처지요, 그렇다구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헛일을 계속할 수두 없는 것이구, 첫째 벌써 그런 비용을 돌려낼 구멍조차 없어져 버렸네. 어쨌으면 좋을는지 밤에 잠 한숨 이을 수 있겠나. 물론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것이구 이렇게 이런 좌석에서 자네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처음이네 별수없어. 운명의 희롱을 받은 셈이지 다른 것 아니야.”
긴 설명을 듣고도 동무들은 다따가 대답할 바를 몰랐다. 자기 일들만같이 실망과 놀람이 너무도 커서 탄식했으면 좋을는지 동무를 위로했으면 좋을는지 격려했으면 좋을는지 금시에는 정리할 수 없는 얼삥삥한 심정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야. 당초에 그런 산을 발견한 줄도 모른 것이요 발견하자마자 옳게 맞힐 줄도 몰랐다. 그러던 것이 오늘 다따가 맥이 끊어질 줄도 누가 알았겠나. 모두가 땅속의 조화 같이두 알 수 없는 것이야. 혹 앞으로 일을 계속하다가 다시 또 풍성한 광맥을 찾을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리 애써 봐두 벌써 일은 더 계속할 처지는 못되는 것이네. 불가불 내일부터래두 모든 것을 던져 버려야 하는데─지금의 마음속 도저히 걷잡을 수는 없어.”
“자네 일은 말할 수 없이 섭섭하고 가여운 것이어서 어떻다 위로할 수도 없으나─지금까지의 호의가 마음속에 배여서 고맙기 한량없네.”
동무를 위로하는 천마의 가장껏의 말이 이것이었다.
“공상이란 물거품과도 같이 부서지기 쉬운 것! 사람의 힘으로나 어찌 눈에 안 보이는 일을 헤아릴 수 있겠나. 부서지는 공상 깨지는 꿈─난 웬일인지 이 자리에서 엉엉 울고 싶네. 자네 자태가 너무도 안타깝게 보여서.”
사실 백구의 표정은 금시 그 자리에서 울 것도 같은 기색이었다. 기생의 자태가 그의 옆에 없었던들 탄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놓았을는지도 모른다.
“민자를 후리기를 잘했지. 어차피 미인탐구의 세계일주의 길을 못 떠나게 될 바에는.”
애수의 장면을 건지려는 듯이 청해는 모든 것을 농담으로 돌렸으나 그러나 그의 마음속도 따져 보면 쓸쓸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어떻든 오늘밤 모임이 공상구락부로서는 최후의 모임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드네. 화려한 꿈이 여지없이 부서져 버린 것이네.”
운심의 그 한마디부터가 마지막 한마디인 듯한 생각이 나면서 비장한 최후의 만찬을 대하고 있는 듯도 한 감상이 동무들의 가슴속을 흐리게 해서 모처럼의 별미의 식탁도 그날 밤만은 흥이 없고 쓸쓸하였다.
그날 밤의 그 쓸쓸한 기억을 남겨 놓고 운심은 다음날 또다시 구름같이 사라져 버렸다. 고향으로 간 것은 틀림없는 것이나 사업을 계속하는지 어쩌는지는 물론 알 바도 없었다. 구만리의 푸른 창공으로 찬란한 생각을 보내며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잠깐 동안 잡았던 동무들은 순식간에 그 구름을 놓치고 하염없이 비인 허공을 바라보는 격이 되었다. 천마는 분주한 편집실 책상 앞에 앉았다가는 그 어느 서슬에 문득 운심을 생각하고는 사라진 추장의 옛 꿈을 번개같이 추억하다가는 별안간 책상 위에 요란히 울리는 전화의 종소리로 인해 꿈에서 놀라 깨어 가는 것이었고 백구 또한 무료한 회사의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서는 까마아득하게 사라진 비행기의 꿈을 황소같이 입안에 되씹고 곱씹고 하는 것이었다. 청해 역시 잡았던 등불이나 잃어버린 듯 집에서 책을 읽는 때에나 미모사에서 차를 마실 때에나 운심을 생각하고는 풀이 없어지며 인생의 적막을 느끼곤 했다. 혹 가다가 토요일 밤 같은 때 세 사람이 찻집에서 만나게 되어도 그들은 생각과 일에 지쳐서 벌써 전과 같이 아름다운 공상의 잡담을 건너는 법도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찻집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인생의 답답함을 탄식하고 원망하였다.
“운심이 요새 어떻게 하구 지낼까.”
“뉘 알겠나. 그렇게 되면 벌써 사람 일이 아니구 하늘 일에 속하는 것을. 하늘 일을 뉘 알겠나.”
“우리 맘이 이럴 제야 운심의 심중은 어떻겠나. 꿈이라는 것이 구름같이 항상 나타났다가는 꺼져 버리는 것이기에 한층 아름다운 것이긴 하나 운심의 경우만은 너무두 그것이 어처구니없구 짧았단 말이네.”
“꿈이라는 것이 원래 사람을 실망시키기 위해서 장만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조물주의 뜻을 일일이 다 안다면야 웬 살 자미가 있구 꿈이 마련됐겠나.”
쓸데없는 회화로 각각 답답한 심경을 말하고 그 무슨 목표를 잡으려고들 애쓰는 그들이었으나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도 종시 이렇다 하는 생활의 표식을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나날의 판에 박은 듯도 한 일정한 생활의 범위와 지리한 되풀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서도 은연중에 운심의 뒷일을 궁금히 여기는 그들에게 하루는 우연히도 한 장의 소식이 날아 들었다.
뜻밖에 운심에게서 오는 한 장의 엽서를 받고 청해는 사연을 전할 겸 천마와 백구를 찾았던 것이다. 물론 기쁜 편지가 아니었고 궁금히 여기는 그의 곡절을 결정적으로 알렸을 뿐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일을 더 계속해 보았으나 이제는 완전히 실패임을 알고 모든 것을 던져 버렸네. 그 동안의 손해로 해서 얻은 것을 다 넣었을 뿐 아니라 되려 수만금의 빚으로 지금엔 벌써 목조차 돌리지 못하게 되었네. 이 자리로 세상을 하직하고 죽어야 옳을지 살아야 옳을지 지금 기로에 헤매고 있네. 수척한 내 꼴을 보면 모두들 놀라리. 아무래도 일을 다시 계속해 볼 계책은 서지 않네. 두 번째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또 누가 바라겠나. 잘들 있게. 다시 못 만나게 될지 혹은 만나게 될지 지금 헤아릴 수 없네.─
세 사람이 엽서를 낭독하고는 그 채 묵묵하니 말들이 없었다. 결국 기다리던 마지막 소식이 왔구나 세상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각 사람의 가슴속에 서리어 있을 뿐이었다. 가엾구나 측은하구나 하는 감상의 여유조차 없는 그 이전의 절박한 심경이었다.
“운심은 죽을까 살까.”
이어서 일어나는 감정이 이것이었다. 이 크고 엄숙한 예측 앞에서 동무들은 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죽어서는 안돼. 전보래두 치세나.”
세 사람은 황겁지겁 각각 전보도 치고 편지도 쓰고 하면서 그 절박한 순간에 있어서 문득 운심은 죽을 위인이 아니야 두고 보지 반드시 또 한 번 일어나서 그 광산으로 성공하지 않는가. 편지 속에서 그것이 약간 암시되어 있지 않는가. 두 번째 기적을 또 누가 바라겠나 한 속에 은근히 기적을 바라는 심정이 나타난 것이며 만나게 될는지 못 만나게 될는지 한 속에도 역시 만나게 될 희망이 은연중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가. 운심은 죽을 위인이 아니야. 보통사람 아닌 초인적인 성격이 반드시 그의 피 속에 맥치고 있어─하는 생각이 들면서 얼마간 기운들을 회복하고 마음을 놓게 된 것이었다.
“운심은 사네. 다시 광산을 시작해서 이번에야말로 크게 성공해서─우리들의 공상도 다시 소생돼서 실현될 날이 반드시 있으리.”
절박한 속에서의 이 한 줄기의 광명을 얻어 가지고는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희망을 회복하고 그 한 줄기를 더듬어서 지난 꿈의 실마리를 다시 풀기 시작하면서 운심의 뒷일을 한결같이 빌고 축복하는 것이었다. 흐렸던 세 사람의 얼굴에 평화로운 기색이 내돌며 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의 발자취 또한 개운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