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제
옛날 아주 옛날, 우리 나라에 몹시 어진 임금이 한 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다스려가는 데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항상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양을 보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 가끔 가끔 한 지나가는 행인처럼 복색을 차리고, 다만 혼자 남의 눈에 뜨이지 않게 백성들 틈에 끼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돌아다니고 하였습니다.
하룻밤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듯 싶은 쓸쓸스런 동네를 거닐려니까, 어느 조그만 쓰러져 가는 집 속에서,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습니다.
“대체 우습기도 하다. 노래하는 소리가 울음 소리 같구나!”
하고, 임금은 가깝게 가서 그 다 쓰러진 오막살이집 뚤어진 창 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보니까, 이상한 일도 많지요. 이십 오륙 세 되어 보이는 아름답게 생긴 젊은 여자가, 머리는 중처럼 새빨갛게 깎고, 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고, 그 옆에 삼십 세쯤 된 마른 남자가 한 사람이 앉아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점점 이상하여, 이 집이 혹시 도깨비집이나 아닌가 싶어, 더욱 궁금한 마음으로, 두 눈을 씻고 자세히 들여다본즉, 그 두 남녀의 옆에는 한 늙은 영감이 엎드려 흑흑 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하하 이것은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임금은 참다 못하여 그 다 쓰러져 가는 이상한 집 대문을 열고, 쑥 들어갔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길 가는 사람이올시다만, 묻고 갈 것이 있어서 들어왔는데, 대체 당신들이 울면서 노래를 부르고, 젊은 부인이 머리를 깎고 춤을 추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집의 세 사람은 그가 임금인 줄은 알지 못하나, 지나가는 행인이로되, 보아하니 점잖고 귀하게 생긴 인물이라, 의심할 것 없이 엎드려 울던 영감이 일어나서 숨김없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 것은 우리 아들이고, 춤을 추던 머리 깎은 여자는 우리 며느리랍니다. 나는 몸이 늙은 위에, 벌써 삼 년 전부터 고치지 못할 중병이 들어서, 이 날까지 마당에도 내려가 보지 못하고 앓고만 있는데, 요사이는 아들까지 병이 들어서 돈벌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며느리가 여자의 몸으로 품삯을 팔아서 우리 부자를 먹여 오기는 하였으나, 약 한첩 지어 올 돈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오늘 다리꼭지 장수가 와서, 우리 며느리의 머리가 좋은 것을 보고, 하도 탐스러워서 ‘돈을 많이 줄 터이니 팔지 않을 터이냐?’고 하기에, 내가 안 판다고 하였건만, 며느리가 우리 모르는 동안에 자기 머리를 빨갛게 깎아서 팔아 버렸습니다그려……. 그래, 그 돈으로 우리 부자의 약을 사 온다고 하기에, 약값은 장만되었으나, 내 마음에 며느리가 하도 불쌍하여서 눈물을 흘리고 울고 있으니까, 우리 아들이 효성스런 사람이라 나를 위로하느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부르기는 부르지만 제 마음도 슬퍼서 그렇게 우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니까, 우리 부자의 마음을 위로하느라고 머리를 깎은 며느리가 그렇게 춤을 추고 있었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도 슬픔을 못이겨 흑흑 느껴가며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임금님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보다 더 마음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들은 다시 없으리라고, 더할 수 없이 감복하였습니다.
“참말 감복할 일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효성스런 사람이 만일 이 나라에 제일 높은 대신이 된다 하면, 얼마나 백성을 친절하게 잘 다스리겠습니까.”
하니까, 세 식구는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예엣? 대신이 되라구요?”
“정말입니다. 당신 같은 이가 이 나라 대신이 되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옳지, 내일 모레 아침부터 대궐 안에서 큰 과거를 보이니, 그 날 가서 과거를 보아 대신이 되십시오”
하였습니다.
“처, 처, 천만예요. 저는 인제 간신히 편지나 한 장 쓸 만밖에 못되는데요. 대신이 무업니까.”
“아니오. 대신 노릇은 반드시 글을 잘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지 그 날 가서 보시구려……. 문제는 아주 쉽게 날 터이니!”
하고, 임금은 아무쪼록 그 날 과거를 보라고 친절히 권하고, 그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이상한 행인이 나간 후에 세 식구는 의논이 분분하였으나, 모두 생각하기에 암만해도 그 사람이 보통 행인이 아닌 모양이니, 그 말대로 과거를 보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대궐 안에서는 큰 과거를 보인다고 천하에 글 잘하는 학자란 학자는 모두 모여들어서 장안이 벌컥 뒤집힌 것 같았습니다. 제각기 장원할 듯이 잘 차리고 거드럭거리면서, 대궐로 모여 들어가는 학자들 틈에, 더러운 해진 옷을 입은, 그 울면서 노래를 부르면 불쌍한 아들도 섞이어 있었습니다.
모든 학자들이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무슨 문제가 나려노?”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윽고 내어 걸린 문제를 보니까,
- 父泣(부립 ; 아비는 울고)
- 夫歌(부가 ; 지아비는 노래부르고)
- 婦舞(부무 ; 며느리는 춤추다.)
이러하였습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도, 아무리 고개를 이리 틀고 저리 틀고 하면서 궁리하여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암만 머리를 썩히고 생전에 배운 것을 다 생각해 보아도, 아무 책에도 그런 것이 적히어 있는 책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다 못하여, 아무렇게나 우물쭈물 써 들여간 사람도 있고, 또는 아무 것도 못 쓰고 흰 종이를 그냥 바치어 모두들 낙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상한 문제를 잘 알고 글을 잘 지어서 급제하여 뽑힌 사람이 단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이 대신이 되었을 때, 대신의 부인은 머리가 없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나라를 잘 다스리고, 부인은 시아버지를 잘 봉양하여 늙도록 잘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