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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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두를 지어야겠는데…….”

며칠 전에 K양이 자기의 숭배자들 가운데 싸여 앉아서 혼잣말 같이 이렇게 말할 때에 수철이는 그 수수께끼를 알아챘다. 그리고 변소에 가는 체하고 나와서 몰래 K양의 해져가는 누런 구두를 들고 겨냥을 해두었다. 그런 뒤에 손을 빨리 쓰느라고 자기는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한다고 하고 그 집을 나 서서, 그길로 바로(이 도회에서도 제일류로 꼽는) S양화점에 가서 여자의 흰 구두 한 켤레를 맞추었다.

그리하여 오늘이 그 구두를 찾을 기한 날이었다.

조반을 먹은 뒤에 주인집을 나서서(이발소에 들러서 면도나 할까 하였으나)시간이 바빠서 달음박질하다시피 구둣방까지 갔다.

구두는 벌써 되어 있었다. 끝이 뾰족하고 뒤가 드높으며 그 구두 허리의 곡선이라든지 뒤축의 높이라든지 어디 내놓아도 흠잡힐 점이 없이 잘 되었 다. 도로라 하는 것이 불완전한 이 도회에는 아깝도록 사치한 구두였다.

“이쁘게 됐습지요.”

“그만하면 쓰겠소.”

수철이는 새심으로 만족해 구두를 받아가지고 그 집을 나섰다.

“수철군, 어디 가나?”

구둣방을 나서서 좀 가다가 자기를 찾는 소리에 돌아다보았다.

거기는‘거머리’라는 별명을 듣는 치근치근한 친구 ○가 있었다.

“저기 좀…….”

“그 손에 든 건 뭔가?”

“이것?”

수철이는 구두곽을 높이 들어 보였다.

“구둘세”

“구두? 자네 구두 아직 멀쩡하지 않나?”

“후보가 있어야지. 아차 도적맞는 날이면 뒷간 출입도 못하게…….”

“한턱내게. 구두를 둘씩 짓고…….”

수철이는 논리에 어그러지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구두가 두 켤레면 한턱내야 한다는 이론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달려든 다음에는 먹기 전에는 떨어지지를 않는 ○를 생각 해볼 때에 한 접시의 양식으로 얼른 떼버리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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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근처의 어떤 양식점으로 갔다.

○와 작별하고 그사이 ○ 때문에 허비한 시간의 몇 분이라도 회복할 양으로 바쁜 걸음으로 K양의 집까지 이른 수철이는 막 들어가려다가 중대문 밖에서 멈칫 섰다. 대청에 걸터앉아 있는 K양의 그림자를 걸핏 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고 있는 (역시 K양의 숭배자의 하나인) T가 있었다.

수철이는 몰래 중대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

T가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은 결코 사랑을 구하는 러브신이 아니었다. K양은 다리를 뻗치고 있고, T는 K양의 발목을 잡고 새로 지어온 흰 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맞아요?”

“네. 꼭 맞는걸요.”

내 것이 더 맞을걸. 수철이는 성이 독같이 나서 씩씩거리며 발소리 안 나게 그 집을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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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철이는 공원으로 갔다.

“○ 때문에 늦어졌다.”

그는 연거푸 성을 냈다. 성이 삭아지려는 때마다 다시 구두곽을 보고 성을 돋우고 하였다.

동시에 그에게는 그 선헌권(先獻權)을 앗긴 구두가 차차 보기가 역해오기 시작하였다. 성을 돋우려고 그 구두곽을 볼 때마다 고통이 차차 더하였다.

“이 구두를 얻다 내다 버리자.”

두 시간 남짓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그는 구두곽을 벤치에 놓은 채로 슬그머니 일어서서 공원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가 급기야 공원을 나서려 할 때에 누가 그를 찾았다.

“나으리, 나으리.”

돌아다보니 거지였다.

“없어!”

그는 그냥 가려 하였다.

“나으리. 이것 잊어버리신 것 가지구 가세요.”

다시 돌아다보니 거지는 그가 슬그머니 놓고 온 구두곽을 들고 따라온다.

“자네 가지고 싶으면 가지게.”

“천만에 말씀이올시다.”

수철이는 홱 돌아서면서 그 곽을 빼앗고, 20전을 거지에게 던져 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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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수철이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서 네 활개를 펴고 누웠다. 아까 활동사진 구경을 가서 그 곽을 교자 아래 넣은 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 나 그 안심이 오랫동안 계속되지를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 수철이가 막 조반을 먹고 나가려는데 그 양화점의 사환이 찾 아왔다.

“나으리, 어제 활동사진관서 이것을 잊고 가셨더라구 사진관에서 오늘 아 침 우리 집에 보냈습디다.”

“그게 뭐야?”

“어제 지어 가신 부인 구두올시다.”

그만 수철이는 성이 왈칵 났다.

“너 가져라! 갖다 팔아먹든 어쩌든 마음대로 해라.”

사환은 씩 웃었다.

“여기 두고 갑니다. 한데 활동사진관 아이에게 50전을 주었는데요.”

수철이는 주머니에서 70전을 내어서 던져주었다. 그러나 만약 예의라나 도덕이라나가 없다 할지면 수철이는 70전의 대신으로 70번을 쥐어박기를 결코 사양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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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철이는 곽을 들여다가 끌러서 속을 꺼내보았다. 뾰족한 코, 드높은 뒤 축, 곱게 곡선을 지은 윤곽, 어디로 보든 흠할 곳이 없는 구두였다.

“T란 자식, 죽여주리라.”

그는 들창을 열고 그 구두를 홱 밖에 던지려다가 다시 생각을 돌이키고 주인집 딸아이를 찾았다.

“얘야, 순실아.”

“네?”

계집아이가 왔다.

“너 몇 살이냐?”

“열두 살이에요.”

“너무 적군.”

그는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계집애의 발을 보았다. 이렇게 서너 번 번갈아 보고, 수철이는 계집애의 발밑에 그 구두를 던졌다.

“에따, 너 가져라. 이담에 시집갈 때 신어라.”

계집애의 눈은 동그랗게 되었다. 동그랗게 된 눈으로 수철이와 구두를 번갈아 보다가,

“싫어요.”

하고 나가려 하였다.

“정말이다. 가져!”

“싫어요!”

“계집애두. 어른의 말을 들어야지. 못써!”

그는 구두를 주워서 계집애의 가슴에 안긴 뒤에 내쫓았다. 그리고 기다란 안심의 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저 계집애가 인제 자라서 저 구두를 신게 되도록은 다시 내 눈에 안 뜨일 테지.”

그는 하루 종일을 유쾌히 지냈다.

‘구두를 처치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미궁에 들어갔던 사건이 해결된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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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늦잠을 깬 수철이는 어느 틈에 머리맡에 갖다놓은 몇 장의 편지를 보기 시작하였다. 첫 장은 어떤 친구의 결혼식 초대였다. 둘째 장은 출판회사의 서적 목록이었다. 셋째 장은 무슨 자선회의 기부 권유였다. 그는 그것을 차례로 집어던지고 넷째 장의 봉을 찢었다. 그것은 시골 사촌 누이동생의 편지였다.

오래 막혔었나이다.
일기 차차 더워오는 이때에 오빠께서는 객지에 내내 건강히 지내시는지 알고자 하나이다. 이곳은 다 평안하오며, 수남이는 벌써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사오며 수동이는 금년 봄……. 수복이는 글을 배우느라고……. 수천이는 쉬운 말은 다…….

“무슨 소리야. 좁쌀쌀아서 먹겠네.”

그는 몇 줄을 건너뛰었다.

……되었사오매, 인제는 학생 시대와도 달라 좀 몸치장도 해야겠는데 오빠 도 아시다시피 이 시골에야 어디 변변한 구둣방이 있나이까. 그곳에서 흰 구두를 한 켤레 지어 보내주시면…….

수철이는 편지를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뜻 없이 방안을 두어 바퀴 돌았다.

처치하지 못하여 안달하다가 겨우 순실이를 주어버린 구두의, 참으로 처치할 곳이 인제야 생겨난 것이었다. 그는 방 안을 빙빙 돌면서 구두곽을 얻어 서 머리맡에 갖다놓은 뒤에 지갑에서 돈 2원을 꺼냈다. 순실이에게 구두를 도로 살 밑천이었다.

“얘야, 순실아.”

“네.”

하고 들어온 것은 순실의 어머니였다.

“순실이 어디 갔습니까?”

“경찰서에 갔는데요. 왜 찾으십니까?”

수철이는 입을 머뭇머뭇하였다.

“순실이한테 어제 그…… 구두를 한 켤레 준 것이 있는데 그게 있습니까?”

“글쎄 말씀이올시다. 어젯밤에 도적놈이 들어와서 대청에 있는 물건을 죄 훔쳐갔는데, 그 구두도 집어간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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