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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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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 앞에 이 글을 내놓지 아니치 못하게 된 것을 한편으로 부끄러워 하며 또 한편으로는 슬퍼하여 마지 않는다. 내가 망명활 삼십유여년(亡命活三十有餘年) 동안 이역에서 무위도일(無爲渡日)하다가 팔·일오해방과 함께 노구(老嫗)들 이끌고 흔연귀국(欣然歸國)하였을 때 나는 이미 노후(老朽)된 몸이건만 여생을 조국의 남북통일과 자주독립을 위해서 바치겠다는 것을 다시금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좌우상극으로 인한 그 혼분란(混紛亂)□파랑(波浪)에 휩쓸리기 싫어 나는 귀국하자마자 모든 정치단체와의 관계를 분연 끊고 초야로 돌아가 □야인(野人)으로서 어느 당론에도 기우리지 않고 또 어떤 파쟁에도 끌림이 없이 오직 국가를 건지고 민족을 살리려는 일념에 단성(丹誠)을 기울였든 것이다. 그렇듯 내 심경은 명경지수와도 같이 담담하든 중 단기 사이팔일년칠월이십일(四二八一年七月二十日) 뜻밖에도 국회에서 나를 초대부통령으로 선거했을 때에 나는 그 적임이 아님을 모른 바 아니었으나 이것이 국민의 총의인 이상 내가 사퇴한다는 것은 기대를 져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심사원려 끝에 마지 아니치 못했다는 것을 여기에 고백한다. 그 뒤 임염삼년(荏苒三年)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대체로 무엇을 하였든가. 내가 부통령의 군임(軍任)을 맡음으로서 국정이 얼마나 쇄신되었으며 국민은 어떠한 혜택을 입었든가.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 부통령의 임무라면 내가 취임한 지 삼년 동안 얼마나 한 익찬(翼贊)의 성과를 빛내였는가. 하나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야말로 척위소찬(尺位素餐)에 지나지 못했든 것이니 이것은 그 과책(過責)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무위무능(無爲無能)에 있었다는 것을 국민 앞에 또한 솔직히 표명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매양 사람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다웁게 일을 하도록 해 줌으로써 그 사람의 직능(職能)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에 그렇지 못할진대 부질없이 공위에 앉아 허영에 도취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자리를 깨끗이 물러나가는 것이 떳떳하고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봉직하는 모든 공무원된 사람으로써 상하계급을 막론하고 다 그러하려니와 특히 부통령이라는 나의 처지로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내 본래 무능한 중에도 모든 환경은 나로 하여금 더구나 무위하게 만들어 이 이상 척위(尺位)에 앉아 국(國)록만 축낸다는 것은 첫째로 국가에 불충한 것이 되고 둘째로는 국민에게 참괴(慙愧)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국가가 흥망간두(興亡竿頭)에 걸렸고 국민이 존몰단애(存沒斷崖)에 달려 위기간발에 있건만 이것을 광정(匡正)할 홍구(弘救)할 성충(誠忠)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별로 없음은 어찐 까닭인가. 그러나 간혹 인재다운 인재가 있다 하되 양두구육(羊頭狗肉)□ 가면 쓴 애국위선자들의 도량으로 말미암이 초토에 묻혀 비육의 탄식을 자아내고 있는 현상이니 유지자(有志者)로서 얼마나 통탄한 일인가. 뿐만 아니라 나는 정부수립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관의 지위에 앉은 인재로서 그 적재가 그 적소에 등용된 것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그러한 데다가 탐관오리는 도비(都鄙)에 발호(跋扈)하여 국민의 신망을 상실케 하며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나아가서는 국가의 존경을 모독하여서 신생민국(新生民國)의 장래에 암영을 단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이며 이 어찌 마음 아픈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마다 그르다 하되 고칠 줄 모르며 나쁘다 하되 바루잡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의 시비를 논하든 그 사람조차 관위에 앉게 되면 또한 마찬가지로 탁수오류(濁水汚流)에 휩쓸려 들어가고 마니 누가 참으로 애국자인지 나로서는 흑백과 옥석을 가릴 도리가 없다. 더구나 그렇듯 관기가 흐리고 민막(民膜)이 어지러운 것을 목도하면서 워낙 무위무능 아니치 못한게 된 나인지라 숙수무책에 수수방관할 따름이니 내 어찌 그 책임을 통감 않을 것인가. 그러한 나인지라 나는 이번 결연코 대한민국 부통령의 직을 이에 사퇴함으로써 이 대통령에게 보좌의 직책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며 아울러 국민들 앞에 과거삼년 동안 아무 업적과 공헌이 없었음을 사(謝)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는 일개포의(一個布衣)로 돌아가 국민과 함께 고락과 사생을 같이하려 한다. 그러나 내 아무리 노혼한 몸이라 하지만 아직도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단심(丹心)과 성열(誠熱)은 결코 사그러지지 않었는지라 잔생(殘生)을 조국의 완전통일과 영구독립에 끝내 이바지할 것을 여기에 굳게 맹서한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은 앞으로 더욱 위국진충(爲國盡忠)의 성의를 북돋아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여 주었으면 흔행(欣幸)일까 한다.


단기 사이팔사년오월구일(四二八四年五月九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