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역 주의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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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경제회의가 실패한 이래로 세계의 각국은 오늘날의 경제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모두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피나는 노력을 하여왔으니 무엇보다도 외국상품의 침입을 저항하기에 힘쓰는 한편 국내산업을 진흥하여 수출만 증가하기를 주요정책으로 한 것은 각국의 공동한 요구였던 만큼 누구나 부인치 못할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로서 허수히 보아치우지 못할 중대한 문제는 이러한 경쟁의 목표와 이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 그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세심한 관찰을 용서한다면 오늘날같이 블록경제가 성행하는 시대에 있어 각국 무역의 목표와 수단은 벌써 새로운 전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개국가의 이익을 전제로 수입을 방지하고 수출을 증진한다는 것은 완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전체세계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볼 때 이러한 순연한 이기적인 수입방지와 수출증진은 사실상 양립하지 못할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은 한 국가의 수입은 다른 한 국가에는 수출이 된다. 그러므로 만약 국가가 수입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다른 한 국가의 수출과 및 그 나라의 수출증진정책을 억제하는 것과 같음으로 이에 완전히 대립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수출은 다른 한 국가의 수입이 된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수출증진은 다른 한 나라의 수입을 초과케하고 따라 그 나라의 입초방지정책과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현금의 세계 각국은 모두 자국에 이익을 전제로 하는 처지에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국제경제의 근본적인 일개 모순이다.

현재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모순된 한 정책을 그냥 실행해 갈 수가 있다한다면 결국 입초방지는 어느 지경까지 할것이며 수출증진은 어느 정도까지 할 수가 있느냐는 것도 당연히 한낫 문제가 된다는 것은 수입을 완전히 봉쇄하야 자급자족을 실행한다는 것은 실제에 있어 목적을 도달하지 못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수출을 무제한으로 증가한다는 것도 일종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고 이같은 정세밑에서 천식하는 세계각국은 그 힘이 자라는 데까지 입초를 방지하고 수출을 증가하는 외에 실제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국제경제의 혼란은 그 무역으로써 드디어 일종 새로운 전향을 발생케 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전향이란 것은 즉 최혜주의를 폐기하고 호혜주의를 내세는 것이다.

이(二)

상대방에 한 개의 대상이 있을 때 그것을 가장 고급인 형용사로 최(最) 자를 가져다가 표현하면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국제경제상에 가장 은혜롭게 부여된 최혜주의도 당연히 일개 국가에 한해서만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국제무역의 최혜주의란(즉 최혜국조약주의) 상술한 의의와는 전연 상반해서 다수상대국에 대하여 최대의 은혜를 급여하는 것이고 결코 어떤 일개국가에 한해서만 최대의 은혜를 급여하는 것은 아니다. 기실 다수국가에 대하여 시여한 박애인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최혜주의가 이같이 박애주의로 변했느냐는데 우리가 좀더 탐구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은 최혜주의란 갑을 양국간에 체결할 최혜국 협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만약 양자중에 어떠한 국가가 제3국에 대해서 보다 더 큰 이익을 준다고 할것 같으면 그 외 상대방의 국가도 역시 그 이익을 균점해야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중국이 미국과 체결한 통상조약에 최혜국조약의 규정이 있고 그후 만약 중국이 영국에 대하여 저율관세를 협정했다고 할 것같으면 미국도 당연히 이에 균점해야 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 한 개 국가가 다수한 조약국을 상대로 이러한 최혜국조약을 승인하고 그것이 비록 어떠한 국가에 최대의 은혜를 급여했거나 기타 일체의 체약국이 다같이 예에 따라 이익을 균점할 수 있다고 하면 무엇으로써 최혜라고 할 조건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최혜의 본질이 최혜균점주의로 변한 것이며 벌써 이것을 균점주의라고 할 것같으면 차라리 박애주의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러한 실례에는 명치 44년 일본과 영·불·이 삼국간에 특별관세협정이 체결되었을 때도 이러한 은혜를 균점한 최혜조약국이 20여개에 달한 것을 보아도 소위 최혜주의란 것은 결코 일개국가에만 한해서 주는 최대은혜가 아니고 일체의 조약국의 다같이 주는 최대 은혜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보면 최혜조약은 벌써 박애주의일 뿐만 아니라 균점주의인 동시에 결국은 자유주의 평등주의로 변질한다는 것은 적어도 일개의 근대국가는 어떤 한 개라도 외국과 더불어 조약을 체결치 않은 국가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의 국제관계에서 일반이 국가인격이 있다고 승인하는 국가는 거의가 다 조약국이다. 따라서 통상조약에 최혜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일체 국가상 국가간에 적용되는 보편원칙이 되어있다.

벌써 최혜조약이 이러할 때 이후는 어떤 국가를 물론하고 어떤 특혜조약을 체결하더라도 일체국가가 다같이 공동으로 균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릇 지구위에 있는 모든 근대국가는 다같이 평등으로 자유로 최대이익을 균점할 것이다.

국제무역의 자유주의적 근거가 비록 여기에 있지 않다하더라도 최혜주의는 확실히 자유무역의 일개유력한 지주인데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이유밑에서 자본주의 초기에는 일방 관세주의인 동시에 또한 자유무역주의가 행해져 왔다.

삼(三). 협정관세로부터 구제관세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후진자본주의국가에 대하여 예외없이 강력적인 침략을 행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후진자본주의국가가 선진자본주의국가를 상대로 체결한 관세조약은 모두가 이러한 강박밑에서 체결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형세하에 체결된 관세조약을 일반 사람들은 쌍방의 협의로 된 것이라하여 협정관세라고 하나 사실은 강박으로써 결정한 것이란 것이 사실에 가깝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 차 선진국의 강제밑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한 관세조약이라도 다른 일절의 조약국은 여기에 이익을 균점해야 하는 것이며 이와같은 역사를 가진 관세조약이 앞에 말한 최혜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국가의 중압밑에 있는 후진국가가 점점 자본주의화해올때는 앞에 체결한 협정관세를 파기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며 따라 자국의 법률에 의한 자주적인 보호관세를 규정할려고 하는 것이니 이런 방법은 조약을 개조하는 수속을 밟아서 관세의 자주권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이전에 다른 국가와 협정한 관세는 곧 자국의 법률로 규정한 법정관세로 변하는 것이다.

본래 최초의 법정관세란 것은 자국내의 유치한 산업을 보호하기를 목적으로 한 일종의 보육관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치한 국내산업의 발달이 관세의 보호밑에서 어느 정도까지 성숙하면 법정관세의 최초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며 이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법정관세는 철폐키는커녕 도리어 팽창하여 카-ㄹ텔 관세로 전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후로 전후에 영속적인 불경기와 세계경제공황은 결국 카르텔 고나세로부터 구제관세에 두 번째 전화하지 않을수 없었고 이에 원인하여 벌써 특수히 유치한 산업조차도 보호하지 못할 뿐아니라 또한 단순한 카르텔 산업도 보호하는 것이 아닌 동시에 일종공황의 참화 중에서 일반산업중의 약소기업을 구제하려는 구제관세가 되고 말았다.

사(四). 국민주의와 관세전쟁

위에 말한 보육관세라든지 카르텔관세라든지 구제관세라든지 모든 자주적 권한으로 제정해온 법정관세 등등은 자국을 본위로 한 자애주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자애주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소위 박애주의니 평등주의니 하는 최혜국조약은 자연히 소멸할 운명을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국제무역의 자유주의도 또한 제한주의로 변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관세의 자주적 보호주의는 후진자본주의국가에 소용되는 반면에 카르텔관세는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수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최근의 구제관세는 일절자본주의국가가 모두 필요로 하는 바이며 이 까닭에 전세계는 모두 관세전쟁의 참화중에 혼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보면 관세의 전환은 최혜주의로부터 자혜주의에 다시 협정주의에서 법정주의에로 전화하였다. 바꾸어말하면 자유주의에서 제한주의에 국제주의에서 국민주의에로 전화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방임주의에서 통제주의의 계단에까지 왔다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관세의 전환은 대전후 전세계의 주요한 무역의 동향인 것이다.

그러나 이 국제주의에 반해서 국민주의에 돌아간 세계무역은 오늘날의 일개 국민경제의 범위안에 있어서 벌써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극단적인 수입방지와 수출증진은 현하의 국제 정세밑에서는 한 개의 아름다운 몽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편협한 국민의 자족자급이란 절대주의는 소수의 특수국가를 제한 외에는 어느 곳에나 통과시켜볼 곳도 없는 것이며 이 때문에 오늘의 국제경제의 정세안에 있는 세계무역은 국민주의로부터 블록주의에 전향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즉 관세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하에의 세계무역은 전 세계의 일반적인 정치적 위기와 보조를 같이 하여 쉴 바를 모르고 무궤도로 운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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