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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머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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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기를 위해서 詩를 써 본 적이 없읍니다. 더구나 詩人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읍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波濤치는 情熱에 마음이 부다끼면 罪囚가 손톱 끝으로 監房의 벽을 긁어 落書하듯한 것이 그럭저럭 近百首나 되기에 한곳에 묶어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詩歌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詩歌에 관한 理論이나 例套의 謙辭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冊床 머리에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쓰다듬어 보자니 耳目이 반듯한 놈은 거의 한 首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病身자식이기 때문에 참아 버리기 어렵고 率直한 내 마음의 結晶인지라 知舊에게 하소연이나 해보고 싶은 서글픈 衝動으로 누더기를 기워서 조각보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 ◇

三十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아직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듯 내 몸이 三十의 마루터기 위에 섰읍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욤없게 生命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自我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발을 타게 되는 날까지 내 情感의 波動은 이따위 변변ㅎ자 못한 記錄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

一九三二年九月 嘉俳節 이튿날
唐津 鄕第에서 沈 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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