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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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돌의 정신은 점점 현실과 멀어졌다. 흐릿한 기분에 싸여서 한 걸음 한 걸음 으슥하기도 하고 그저 훤한 것 같기도 한 데로 끌려 갔다.

수수깡 울타리가 그의 눈앞을 지나고 꺼뭇한 살창이 꿈속같이 뵈는 것은 자기집 같기도 하나, 커단 나무가 군데군데 어른거리고 퍼런 보리밭이 뵈는 것은 이웃 최돌네 집 사랑뜰 같기도 하고, 전번에 갔던 뫼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어딘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 때문에 기분이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가 앉았는지 섰는지도 의식치 못 하였으며 밤인지 낮인지도 몰랐다.

그의 눈은 그저 김 오른 거울같이 모든 것을 멀겋게 비칠 뿐이었다.

이때 그의 정신을 흔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부터 저편에서 슬금슬금 기어 오는 커단 머리[頭]였다. 첨에는 저편에 수수깡 울타리 같기도 하고 짚더미 같기도 한 어둑한 구석에서 뭉긋이 내밀더니 점점 가까와질수록 흰 바탕 누런 점이 어른거리는 목 배떼기며 검푸른 비늘이 번쩍거리는 머리며, 똑 빼진 동그란 눈이며, 끝이 두 가닥 된 바늘 같은 혀를 훌쩍훌쩍 하는 것이 그리 빠르지도 않게 슬금슬금 배밀이해 오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등에는 그도 모르게 찬 땀이 흘렀다. 그는 뛰려고 하였다. 다리는 누가 꽉 잡는 듯이 펼 수 없고 팔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무서운 기다란 짐승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슬금슬금 기어 왔다.

이제 위급이 한 찰나 새이다. 그의 몸과 그의 짐승의 입 사이는 겨우 한자나 남았다.

그는 소름이 쪽 끼치었다. 그는 악을 썼다. 사지는 여전히 마비된 듯하여 꼼짝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입만 짝짝 벌어질 뿐이지 목구멍이 칵 막혀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그의 숨결은 울렁거리는 가슴과 같이 급하고 잦았다.

온몸의 피를 끓여 가면서 쓰는 애도 이제 모두 허사가 되었다. 그의 왼편 발뒤꿈치가 뜨끔하였다.

“으악…….”

그는 온몸의 악을 다 내어 소리를 치면서 내뛰었다.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내뛰었다. 징그럽게도 긴 그 짐승은 발뒤꿈치를 꽉 문 채 질질 끌렸다.

“에구…… 이잉…… 아이구.”

그는 소리쳐 울었다. 뛰던 그는 귀를 찌르는 벽력 같은 소리에 우뚝 섰다.

머리를 돌렸다 하늘을 . 쳐다보고 땅을 굽어보고 사면을 돌아보았다.

“저게 미치지 않았는가?”

“히히히.”

“야 이놈아!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자빠졌다가 지랄이 무슨 지랄이야? 으응! 칵 퉤…….”

마루 위에서 벽력같이 지르는 주인 김 좌수의 호령 소리가 두 번 날 때, 삼돌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눈앞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엄연하게 보이고 마루 위에 거만스럽게 앉은 김 좌수의 불그레한 낯이 보였다. 소나기 뒤 쨍쨍한 볕은 추근한 땅에 흘러서 눈이 부시고 서늘히 스쳐가는 바람 곁에 논 매는 노래가 들렸다. 그는 별 세상에 선 듯하였다.

“야 이 머저리(바보) 같은 놈아, 글쎄, 무슨 머저리 행세 (바보짓)냐? 무시기 어쩌구 어째, 뱀아페(한테) 물긴 게 아프구 어쩌구, 뛰기만 잘 뛰더구나!”

김 좌수는 물었던 장죽을 한 손에 뽑아 들고 노염이 충일해서 호령을 하였다. 뜰에 나다니는 여편네들은 입을 막고 돌아가면서 웃었다. 삼돌이는 죽은 듯이 서 있었다.

“글쎄 이놈아, 입이 붙었니? 어째 대답이 없니? 어째 그랬니?”

김 좌수는 또 소리를 질렀다.

“뱀이 와서 발뒤축을 물어서…….”

삼돌이는 쥐구멍으로 들어갈 듯이 겨우 대답하였다.

“뱀이? 저놈으새끼 실루 미쳤구나! 뱀아페 물긴 게 아프다구 허덕깐에 한나절이나 자빠졌었는데 무슨 뱀이 또 거기 있더란 말이냐? 저눔이 필시 꿈을 꾼 게로구나? 하하.”

김 좌수는 마지막 말에 자기로도 우스운지 웃음을 못 참았다.

‘참말 그래 내가 꿈을 꾸었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한 삼돌이도 픽 웃었다. 삼돌의 웃는 것을 본 김 좌수는 다시 노염이 등등해서 호령을 내린다.

“제야 잘한 체 웃음이 무슨 웃음이─ 어서 또 가 봐라. 비 오구 난 뒤끝이니 나왔을 거다…….”

“아―구 실루, 머저리네!”

병아리 다리를 노끈으로 붙잡아 매어가지고 마루 아래서 놀던 김 좌수 아들 만득이가 삼돌이를 보면서 입을 삐쭉하였다. 삼돌에게는 만득의 소리가 더욱 듣기 괴로왔다. 자기보다도 퍽 차가 있는 어린것에게까지 비웃음을 받는 것이 알 수 없이 불쾌하고 낯이 붉어지면서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 것 같았다 만득이는 연주창으로 . 목을 바로 못 가지고 늘 머리를 왼편으로 깨웃하였다. 뺏뺏이 말라서 허수아비에 옷을 입힌 듯한 만득의 해쑥한 낯을 볼 때 삼돌의 가슴에는 가긍스런 생각도 치밀고 미운 생각도 치밀었다. 그것 때문에 밤낮 ‘배암’ 잡아들이라는 호령받는 것을 생각하면 어서 죽여 버리고도 싶었다. 그리고 전번에 왔던 의사도 미웠다. 그놈이 아니었더면 배암 잡으러 왜 다녀 ?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산 배암에게 물리면 연주창에 큰 효과가 있다.”

하고 의사가 가르친 뒤로부터 삼돌이는 배암 잡으러 다녔다. 그러다가 이틀 전에 배암에게 다리를 물리고 그것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드러누웠더니 그런 꿈을 꾸고 또 이 봉변을 당하고 있다.

“낼까지 그러고 있겠니? 빨리 가 잡아라!”

김 좌수의 호령에 멍하니 섰던 삼돌이는 왼편 다리를 절룩절룩 절면서 사랑 머슴방으로 나갔다. 쨍쨍한 볕은 그저 땅에 흘렀다.


삼돌이는 배암 잡는 무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그것은 낚싯대[釣竿] 끝에 말총 올가미를 붙잡아 맨 것이다. 배암의 목을 올가미질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삼돌의 지혜로 나온 무기였다. 땀과 먼지가 엉키어서 찔덕찔덕한 적삼 등골로 스며드는 삼복 볕은 유난스럽게 뜨거웠다. 무릎까지 오는 베고의에코가 떨어진 짚신을 끌고 절룩절룩 걸을 때마다 몸에서 오르는 땀 냄새는 시틋하고 구리였다.

집앞 채마밭을 지나서 눈이 모자라게 벌어진 논가 길에 나섰다. 지지는 볕 아래 빛나는 흥건한 논물은 자 남짓이 큰 벼포기 그늘을 잠갔다. 그루를 박아 세운 듯한 한결 같은 키로 질펀히 이어 선 벼는 윤기나는 푸른 비단을 살짝 깔아놓은 것 같았다. 이따금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가는 볏잎이 살금살금 물결 치는 것은 빛나는 봄 하늘 아래서 망망한 큰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 삼돌이는 멍하니 서서 그것을 보았다. 시각이 옮겨갈수록 현실에 괴로운 그의 의식은 점점 신선하고 빛나는 자연과 어울려서 그는 자기라는 존재까지 잊었다. 그에게는 빛나는 태양과 푸른 벌판과 서늘한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베 고의적삼에 삿갓을 쓰고 논 기음에 등을 지지던 농군들은 저편 방축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담배도 피우고 장기도 두고 있다. 삼돌이는 그것을 볼 때 잠잠하던 마음이 다시 물결쳤다. 자기도 밭이나 논에서 기음맬 때는 길가는 개까지 부럽더니 오늘은 그것이 도리어 부러웠다. 그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방축 아래 좁은 길로 앞산을 향하였다.

“삼돌이, 자네 또 뱀 잡으러 가는가?”

방축 위 서늘한 그늘 속에 누워서 담배 피는 늙은 농군이 소리쳤다. 삼돌이는 대답 없이 그리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웃기는, 개꽃 싸라간 눔처럼 ! 히히.”

그 옆에서 고누를 두던 쇠돌이라는 젊은 농군이 웃었다.

“에이구! 꼭꼭 뱀이를 그렇게두 잡니? 새나 다람쥐를 말총 올개미루 잡지 뱀을 올개미로 잡는 걸 어디서 봤니, 하하하.”

“그러문 어떻게 잡니?”

힘없이 말하는 삼돌은 서먹한 웃음을 억지로 웃었다.

“몽치로 때려 붙들어야지 이눔아. 뱀이 죽었다구 올개미에 들겠니?”

“응, 때리문 죽어두……. 산 뱀이라야 쓴단다.”

누군지 기다리고 있는 듯이 받아쳤다.

“응, 산 뱀은?”

“김 좌수 아들이 옌쥐챙 있는데 손가락 물기문 낫는다네.”

이런 말을 듣다가 삼돌이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머리 뒤에서 수근거리고 웃는 것은 모두 자기를 비웃고 멸시하는 듯이 불쾌하였다. 걸음까지 터벅거렸다.

모래땅은 물 기운이 벌써 빠져서 삭삭 마르고 굳고 오목한 데는 그저 빗물이 괴어서 반짝거렸다.

구불구불하고 축축한 산길을 휘돌아 오른 삼돌이는 쓰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았다. 등에는 땀이 흠씬 내배고 전신에서 후끈후끈 오르는 땀냄새는 김같이 뜨겁고 시틋하였다. 그는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가슴을 풀어 헤쳤다.

가슴은 마구 뛰었다.

크고 작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서 으슥한 속에 가지 사이로 흘러드는 쨍쨍한 볕은 우거진 풀잎에 아롱아롱 흘렀다. 이따금 울울한 소나무 끝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시원히 들리나 숲속은 고요하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스쳐서 어른어른 푸른 벌이 내려다보이고 그 한쪽으로 볕에 눈이 부실 듯한 마을집이 보였다. 이렇게 사면을 돌아보면서 한참 앉았으니 몸이 점점 식고 마음이 가라앉아서 한숨 자고 싶었다. 그러나 주인 영감의 시뻘건 눈깔이 눈앞에 언뜩할 제 그는 정신이 바짝 들고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는 다시 터덕터덕 산마루턱 감자밭 가에 이르렀다. 우중충한 숲속을 벗어나오니 환한 것이 졸지에 딴 세상이나 밟는 것 같았다. 그는 감자밭과 숲 사이에 난 좁은 길로 돌아다니면서 끼웃끼웃하였다. 돌을 모아 놓은 각 담에도 뒤져 보고 쓰러진 나무등걸 위도 보았다. 소나기 지난 뒤요, 따라서 볕이 쨍쨍하니 배암이가 나오리라는 자신도 없지 않았다. 그는 어둔 벼랑길을 더듬는 소경처럼 조심스럽게 걷다가는 서고 서서는 이리 끼웃 저리 끼웃하였다 이름도 모를 풀이 . 우거진 숲을 들여다보고 풀잎이 다리에 스르럭 스르럭 스칠 때면 그는 공연히 몸이 오싹오싹하고 옮기던 발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어디서 바람 소리만 들려도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하였다. 이렇게 어청어청하다가 감자밭 맨끝 커단 나무가 쓰러진 곳에 이르러서 그는 우뚝 서면서 입을 벌렸다. 그는 금방 뒤로 자빠질 듯이 궁둥이를 뒤로 내밀고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의 눈은 유리알을 박은 듯이 꼼짝 않고 쓰러진 나무 위만 쏘고 있다.

크고 작은 풀이 우거진 새에 흉악한 짐승같이 쓰러진 것인지 껍질은 썩어 벗어지고 살빛이 꺼뭇하게 되었다. 군데군데 쪽쪽 트기도 하고 감탕물 속에 거머리 지나간 자취 모양 아롱아롱 좀먹은 자리도 있다. 그리고 어떤 데는 뜨거운 볕에 송진이 끓어서 번지르하고 찐득찐득하게 뵈었다. 그 나무 한복판에 길이가 발이 남고 굵기가 어린애 팔뚝만한 게 고요히 붙어 있다. 퍼런 등골은 햇볕에 윤기가 번득거리고 희슥한 햇살에 누른 점이 얼룩얼룩하였다. 그리고 동그스름하고 넓죽한 머리에 불끈 빼진 눈은 때룩때룩하였다.

그 생김생김이 자기를 물던 놈 같기도 하였다. 그놈에게 물려서 이틀밤이나 신고를 하고 아직도 낫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그놈을 꼭 깨물어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싶으나 때룩때룩한 눈깔이나 얼룩얼룩 징그럽게 늘어진 꼴은 금방 몸에 와서 말리고 서리는 듯해서 점점 뒷걸음만 났다. 그러다가도 주인 영감에게 서리 같은 호령을 들을 것을 생각하니 그저 물러갈 수도 없었다.

우우 하는 소리와 같이 수수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암만 보고 무시무시하게 서 있는 삼돌이는 깜짝 놀라 뒤를 보고 발을 굽어보았다. 그것은 바람 지나는 소리였다. 그는 긴 한숨을 쉬면서 가만가만 나무등걸 곁으로 갔다. 손에 잡은 낚싯대가 자랄 만한 곳에 가서 엉거주춤 섰다.

“휙─ 휙.”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고요한 볕 아래 누웠던 배암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머리를 들어 ㄱ자로 구부리고 눈을 때룩때룩하였다. 그때 그놈을 칵 때렸으면 단박 잡을 듯하나 그래서 죽으면 힘은 힘대로 들이고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그러나 그놈을 설다루어서는 뺑소니를 칠 것이다. 삼돌이는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낚싯대를 뻗쳐서 올가미를 배암 머리부에 주었다. 배암은 머리를 기웃기웃하더니 늘씬한 몸을 늘였다 졸이면서 그 나무등걸 밑으로 머리를 수그렸다. 푸른 바탕에 누른 점 흰 점이 볕에 얼른얼른 빛났다. 그것이 징글징글 기어 풀 속으로 내리는 것은 정신이 아찔하도록 무서웠다 . 그것이 풀포기 밑으로 스르르 나와서 바짓가랑이 속으로 금방 들 듯이 신경이 찌긋찌긋하였다. 그는 등골에 찬땀을 흘리면서 소름을 쳤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놓치는 것이 안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낚싯대로 등걸에 겨우 남은 꼬리를 쳤다. 꼬리는 꾸불하더니 쏜살같이 풀 속에 숨어 버렸다. 그때 그는 바른편 넓적다리가 뜨끔하였다. 그것은 배암의 꼬리를 칠 때 낚싯대가 잘못 넓적다리에 찔린 것이었다. 신경이 예민해서 그는 그것이 배암의 이빨이 박히는 줄 믿었다.

“으악…….”

삼돌이는 낚싯대를 버리고 뜨끔한 넓적다리를 붙잡으면서 뛰었다. 감자 포기, 풀포기, 나무등걸, 가시밭─ 그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마구 뛰었다. 발에 걸쳤던 짚신은 어디로 갔는가? 발끝과 아랫 다리는 나무 그루와 가시에 찢겨서 새빨간 피가 스치는 풀잎을 물들였다. 그 모든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삼돌은 그저 허둥지둥 뛰었다. 한참 뛰던 삼돌이는 짜근─ 소리와 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일면서 정신이 아찔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속 바위 밑에 쓰러진 삼돌의 이마에서는 걸디건 피가 느른히 흘렀다.

바람은 때때로 숲 끝을 우수수 지났다. 서천에 좀 기운 볕은 여전히 가지 사이로 흘러들었다. 멀리 논벌에서 은은히 울려 오는 논김 노래가 새소리 벌레 소리와 같이 숲속으로 흘렀다.


삼돌이는 등골이 선뜩선뜩함을 느끼면서 흐릿한 눈을 비비었다. 우중충한 가지와 가지가 머리를 덮은 사이로 흰 하늘이 엿보였다. 그는 일어나 앉아서 앞뒤를 보았다. 자기 몸은 뜻하지도 않은 풀 속에 있다. 지금이 아침인가? 저녁인가? 또는 밤인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그는 피묻은 자기 손이 언뜻 눈에 띄자 두 눈이 뚱그래졌다.

손을 펴서 들고 뒤쳐 보고 젖혀 보다가 적삼 앞과 속옷에 검붉은 피가 발린 것을 보고 그의 눈은 더 뚱그래졌다. 그는 비로소 앵한 이마가 째릿째릿함을 느꼈다. 그는 이마에 손을 대었다. 손이 닿을 때 이마가 쓰리고 손에 칙은한 것이 발렸다. 그는 손을 떼어 보았다. 언제 흐른 피런가. 엉기어 걸어져서 흐르지는 않고 그 빛은 검붉다. 이마는 점점 쓰리고 아팠다. 그는 쭈그리고 우두커니 앉아서 두 손을 엇결은 채 피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엇을 생각하였다. 그의 눈은 옛 기억을 좇는 듯이 흐릿한 속에 의심이 들어찼다.

피가 웬 필까? 어찌하여 예까지 왔나? 집에서 떠나서 배암 잡다가 뛰던 이렇게 아까 일이 ……. 오랜 일같이 슬금슬금 떠왔다. 그러나 어쩌다가 이마가 터진 기억이 얼른 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맞았나? 아니 맞았으면 모를 리 없다. 배암에게 물렸나? 배암이 이렇게 물리는 없고……. 이렇게 생각 생각 끝에 허둥허둥 뛰다가 이마가 찌근 부딪치는 일까지 생각났다. 그러나 뒷일은 종시 떠오르지 않았다.

‘오오, 그래 부딪친 게로구나!’ 그는 무슨 수수께끼나 푼 듯이 이렇게 혼자 부르짖었다. 동시에 그는 넓적다리를 급히 만져 보았다. 아까 뜨끔하던 기억이 오른 까닭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볼 때 그는 혼자 픽 웃으면서 한숨을 지었다. 삼돌이는 모든 기억이 또렷이 나설수록 이마가 몹시 저렸다. 그는 풀잎을 따서 피를 씻었다. 풀잎에 닿을 때면 바늘로 띠금 찌르는 듯도 하고 딱지 뗀 헌 데를 만지는 것 같기도 해서 온몸이 송구러들었다. 피를 씻은 뒤 허리끈을 풀어서 이마를 동였다. 그리고 바지춤을 움켜잡고 숲속을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감자밭에 나선 그는 조심스럽게 아까 배암 나왔던 등걸 앞으로 갔다. 풀대가 바람에 얼른하여도 배암 같아서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는 저편 풀 위에 던져져서 풀이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낚싯대를 집어들고 마을로 향하였다.

숲속에 흐르는 별은 자취를 감추고 눅눅한 그늘이 숲을 덮었다. 바람이 스치는 때마다 잎들은 우줄우줄 춤을 췄다. 어디선지 새 소리가 울렸다. 나무 사이를 스쳐서 멀리 파란 벌판 끝에 저녁볕이 뻘겋게 타들었다. 그는 더듬더듬 내려오다가 길 옆에 서리서리 늘어진 칡줄기를 잘라서 허리를 잡아 매었다. 우중충한 숲을 벗어나서 산 아래로 내려온 그는 볕에 나섰다. 아까지났던 방축 아랫길로 발을 옮겼다. 방축에 모여 앉았던 일꾼들은 깡그리 논으로 내려가고 머리에 석양을 받은 수양버들만이 실바람에 흐느적거렸다.

앞으로 끝없이 끝없이 잇닿은 푸른 논판에 붉은 저녁볕이 비껴 흐르고 또 바람이 흐르는 것은 더욱 아름다왔다. 온 세상의 모든 행복은 기름이 흐르듯이 윤기 돌아 먹음직하게 연연히 자란 푸른 포기가 벼바람에 물결쳐 넘는 듯하였다. 온몸을 벼포기 속에 숨기고 오직 삿갓 꼭대기와 땀 밴 등만 드러내고 기어가면서 김매는 농군들은 신선같이 보였다. 그는 그것을 보고 맞추어 부르는 격양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멍하니 서 있었다. 자기도 배암 잡이만 아니었더면, 아니 그놈의 만득의 연주창만 아니었더면 지금 저 속에서 저들과 같이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슬에 베잠방이를 적시고 불볕에 등골을 지지면서 김매는 것이 더 말할 수도 없는 설움이요 괴로움인 줄 알았더니 이제 와서는 세상에 그처럼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신선같이 느껴지는 저 푸른 벼바다 속에서 김매고 노래 부르는 그네가 모두 자기와 같은 사람이요, 또 자기 친구요, 또 같은 사람이요, 또 친척이요, 또 같은 일꾼으로 네냐 내냐 지내 왔는데 지금은 그네가 별로 높아진 듯이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질수록 그는 두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것 같고 온몸이 땅에 자지러지는 듯하였다. 스쳐가는 바람, 흔들리는 풀조차 자기를 비웃는 듯이 자취마다 설움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의 집구석으로 다니면서 꼴이나 베고 소나 먹이며 김매면서 나이 삼십 되도록 장가도 못 들고─ 그것도 부족하여 팔자에 없는 배암잡이로 다리 병신 되고 이마까지 피 터진 것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가슴이 메어지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목이 메어 소리는 나오지 않고 눈물만 좍좍 흐르고 가슴이 꽉꽉 막혀서 주먹으로 가슴만 꽝꽝 쳤다.

논판에 흐르는 석양은 점점 자리를 옮겨서 멀리멀리 붉어 가고 서늘한 실바람은 끊임없이 수양버들 가지를 흔들었다.

한참 애끊게 울던 삼돌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일어섰다. 방축 아래 볏잎에 진주 같은 별이 흐르는 논가 좁은 길을 지나 집 가까이 왔다. 타박탁 박한 그의 걸음은 더 느리어졌다. 그의 발은 마음과 같이 무거웠다. 만일 그의 손에 꿈틀거리는 산 배암만 잡혔다면 그는 이마가 저리고 다리 아픈 것까지 잊어버리고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주인 영감의 독살 오른 눈과 고무볼같이 불어서 불룩불룩 두 눈이 눈앞을 언뜻 지날 때 그는 어깨를 오싹하면서 머리를 힘없이 가슴에 떨어뜨렸다. 그는 발을 돌렸다. 그만 어디라 없이 끝없이 끝없이 가 버리고 싶었다. 이꼴 저꼴 다 안 봤으면 살이 찔 것 같았다.

‘애키 가자! 그만 달아나자!’ 이렇게 생각은 하였으나 가면 어디로 가며, 간들 무슨 수가 있으랴─ 하는 생각이 또 머리를 울렸다. 뒤따라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이집 저집 들어가도 밥 한술 주지 않고 일까지 시켜 주지 않아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이슬을 마시면서 밤을 지내는 옛날의 자기 그림자가 눈앞에 떠오를 때 그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면서 휙 돌아서 집으로 빨리빨리 걸었다.

삼돌이는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집앞 채마밭에 나선 주인 영감의 그림자를 보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눈앞이 흐리고 다리가 떨렸다. 마치 침침 철야에 무서운 짐승 있는 굴로 들어가는 듯하였다.

“응, 오늘은 잡았지?”

삼돌이를 본 김 좌수는 ‘네까짓 놈이 그렇지 무얼 잡겠니’ 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삼돌에게는 그 소리가 벽력 같았다.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어째서 대답이 없니?”

김 좌수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못 잡았오…….”

무서운 힘 앞에 마주 선 잔약한 생명의 소리같이 삼돌의 가는 소리는 떨렸다.

“응, 무시기 어쩌구 어째? 아까운 쌀을 뱃등이 터지두룩 먹구 그거 하나 두 못 잡는단 말이냐? 응, 글쎄!”

주인 영감은 삼돌이를 쥐어나 박을 듯이 벌벌 떨면서 눈이 빨개서 삼돌이를 노려보았다.

“이매[額]는 왜 그 꼴이냐?”

“뱀아페(뱀한테) 쫓기와서(쫓겨서) 엎어져서(넘어져서) 그랬음메!”

그는 겨우 울 듯 울 듯이 대답하였다.

주인 영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고는 가죽 신발로 삼돌의 가슴을 찼다.

“힝.”

삼돌이는 기운 없이 자빠졌다.

“이눔아!”

주인 영감은 또 쥐어박을 듯이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몸을 쏠리면서,

“이 못생긴 놈아! 응? 뱀 잡기 싫으니 일부러 이매를 터쳐 가지구 와서…… 즌 개소리를 친단 말이냐? 그깟놈의 핑계 대문 뉘귀 곧이나 듣니?

응 이눔아(거꾸러져 소리 없는 삼돌의 등을 막 밟으면서), 가가라, 저런 쌍눔으 새끼를 밥을 멕이다니…….”

분이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펄펄 뛰었다.

“애고! 이게 영감이사…… 이게 워쩐 일이오. 그만두오!”

곁에 있던 주인 마누라가 주인의 팔을 끌어당겼다.

“노덕(마누라)이는 아무것두 모르구서 가만 있소! 저눔아를 죽이든지 내쫓든지 해야지!”

주인은 또 발을 들었다. 주인 마누라는 주인의 발을 잽싸게 안으면서, ‘영감! 이거 그만두오 …….”

울 듯이 말렸다. 어른 아이 할것없이 채마밭 머리에 쭉 모였다. 삼돌이는 땅에 거꾸러진 채 아무 소리도 없었다. 무심한 저녁 연기는 점점 퍼져서 마을을 싸고 먼 산허리까지 밀렸다. 괴괴거리고 발머리를 헤매는 닭들도 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밤부터 내리는 실비는 아침에도 촐촐 내렸다. 김 좌수는 아침 뒤에 삿갓을 쓰고 비를 맞으면서 배추밭에 오줌똥을 주었다. 거뭇하고 부들부들한 흙에 비가 괴어서 디딜 때마다 발이 쑥쑥 들어갔다. 삿갓에 떨어진 비는 삿갓 네 귀로 낙수물처럼 흘러내렸다. 후즐근한 고의적삼 소매 끝과 가랑이 끝에도 물이 뚝뚝 흘렀다. 그는 팔을 불끈 걷어붙이고 바가지로 똥을 풀어논 것을 퍼서는 한쪽 손으로 배추 포기를 비스듬히 밀면서 밑동에 부었다. 큰 항아리 통같이 비대한 몸이 끙끙하면서 등깃등깃 수그렸다 일어났다 하다가는 한숨을 쉬고 턱에 흘러내린 빗물을 씻으면서 빳빳이 서서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바람 없는 가는 빗발이 푸른 잎에 소리를 내는 것은 먼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은은한 물 소리 같기도 하였다. 넓은 들과 먼 산을 뿌연 빗속에 고요히 잠자는 것 같다.

어디서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병아리 데린 암탉은 저편 울타리 밑에서 꼬 룩꼬룩하면서 목을 늘여 끼웃끼웃한다.

“에키 망한 눔으 새끼, 자빠져서 늙은 게 이 고생이로구나.”

김 좌수는 혼자 분개한 소리로 뇌이면서 등깃등깃 오줌을 나른다. 삼돌이가 이마와 다리가 저려서 며칠 드러누워 있게 된 뒤로 집터 밭은 김 좌수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비 오는 때를 타서 거름을 한다고 식전에도 삼돌이를 죽으라고 호령하고 아침 뒤에 배추밭으로 나왔다.

김 좌수는 삼대 좌수이다. 그 까닭에 여기에는 지금도 읍으로 들어가나 시골집으로 나오나 세력이 등등하였다. 누구나 그 앞에서 기지 않으면 호령이 요 볼기였다. 그것은 무조건이다. 그러나 그의 집은 퍽 소조하다. 그의 마누라, 아들, 며느리, 머슴, 그, 그리고 먼 일가 되는 늙은 여편네가 와서 밥짓고 빨래나 거들어 주고 얻어먹는다. 그의 아들 만득은 금년 열 여섯이 된다. 열 두 살 때에 장가 보내서 며느리를 삼았는데 만득이가 어려서부터 목에 돋힌 연주창이 장가든 뒤로는 더 심해서 약이란 약과 의원이란 의원은 다 들여 보았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작년에 죽은 큰마누라에게 자식이 없어서 처녀장가 들어서 맞은 첩에게서 늦게야 얻은 만득이였다. 그러한 자식의 병이니 간호가 여간 크지 않았다. 일전에는 타도 의원을 모셔다가 보였는데 그 의원은 이러한 말을 하였다.

배암 산 것을 잡아서 “ 병자의 손가락을 물리시오. 그놈이 연주창 있는 사람은 잘 물지 않으니 그리 알아서 단단히 아쥐어야 합니다. 그래서 효과가 없거든 사람의 모가지 고기를 병자가 모르게 얻어먹이시오. 그밖에는 약이 없읍니다.”

이 뒤부터 김 좌수는 여러 군데 산 배암 잡아들이라는 영을 놓고 머슴 삼돌이까지 배암잡이에 내놓았다.

“아 좌수 영감은 이 비 오는데 어쩐 일이오니까?”

하고 등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김 좌수는 머리를 돌렸다.

“응, 자네 오는가? 이 비 오는데 어디 갔다 오는가?”

김 좌수는 일어섰다. 그 사람은 김 좌수 동리에서 이십 리나 떨어져 사는 사람인데 최 유사라고 부른다.

“여꺼지 온 길이외다.”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고 부대를 등에 걸친 최 유사도 삿갓을 썼다. 가늘고 할끔한 다리에 구실구실한 검은 털이 나고 푸른 힘줄이 아른아른한 것은 농토에 어울리지 않는 살빛이었다.

“무슨 일로 여꺼지 왔는가?”

그저 한결같이 내리는 비는 두 사람의 삿갓을 치고 연두빛 윤기 흐르는 배추잎을 살랑살랑 건드렸다.

“좌쉿님 무슨 뱀이를 쓰신다구 해서……”

최 유사는 황송스럽게 말하면서 김 좌수를 보고 웃었다. 그 웃음은 무슨 큰 자랑거리나 감춘 듯하였다.

“응! 그래…….”

빳빳이 섰는 김 좌수는 무슨 수나 난 듯이 들었던 바가지를 던지고 최 유사 곁에 다가섰다.

“응, 그래 어찌 됐는가? 전번 휘구 편에 자네게두 부탁을 했지? 그래 구 했는가?”

“여기 잡았는데…….”

하면서 최 유사는 왼손에 들었던 척 늘어진 베 주머니를 내들었다.

“응, 그건가?”

김 좌수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덤비면서 손을 내밀어 받으려다가 비에 젖은 주머니가 꿈틀꿈틀 물결치는 것을 보더니 그만 손을 움츠렸다. 움츠려들인 손이 스스로도 안되었는지,

“하여간 들어가세! 이 비 오는데 큰 고생을 했네!”

하고 앞장을 섰다.

“별 말씀을 다 하심메!”

최 유사는 희색이 만면해서 뒤따랐다.

“저 댁이집 최 유사(有司) 뱀이를 잡아 왔구마?”

헤벌헤벌 마당에 들어선 김 좌수는 소리를 질렀다. 방문이 열리면서 주인 마누라가 나왔다. 온 집안은 끓었다. 닭을 잡네, 찰밥을 짓네 하여 최 유사점심 준비에 여편네들은 수군거렸다.

“여보 노댁이(마누라)! 저 건넷집 선동 아비를 오라구 하오……. 그놈 삼돌인지 셋돌인지 앓아 자빠 누웠으니…….”

김 좌수는 분주히 들락날락하면서 떠들었다. 김 좌수가 부른 선동 아비가 왔다. 그는 김 좌수의 아우다. 이웃집 늙은이 두어 분도 왔다. 어수선 들썩하던 집안이 점심상이 방에 들게 된 뒤로 조용하였다. 한참 만에 우루루 흩어진 머리에 감투를 눌러 쓴 선동 아비가 이웃집으로 가더니 한 자 남짓한 왕대[王竹]를 가져왔다. 방안에 모여 앉은 여러 사람은 우우 나왔다. 툇마루에 나선 김 좌수는,

“삼돌아!”

높이 불렀다.

“삼돌아! 저눔이 죽었니?”

더 높이 불렀다.

“네…….”

하고 젊고 쯕쭈리운 듯한 대답이 들리더니 이윽하여 사랑으로 어청어청 들어오는 삼돌의 머리는 누구에게 줴뜯긴 것처럼 더부룩하게 되었다. 검은 낯에 두 뺨은 좀 빠졌고 이마는 꺼먼 수건으로 동였으며 이맛살은 조금 찌푸렸다.

“네 이눔아, 남은 이 비 오는데 뱀이를 잡아 가지고 왔는데 너는 꾹 들어 백혀서 대가리도 안 내민단 말이냐?”

주인 영감의 소리는 나직하나 위엄이 등등하였다. 삼돌이는 아무 대답 없이 마루에 수굿이 서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다 한 번씩 삼돌을 보았으나 그런 인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태도였다.

“어서 저기 참대통에 넣라.”

김 좌수의 소리가 끝나자 선동 아비는 배암 든 베 주머니를 집어서 삼돌에게 주었다. 삼돌이는 서먹서먹해서 주저거리다가 겨우 받았다.

“야 이눔아, 얼른 줴내라!”

김 좌수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비죽거렸다.

“줴내다니, 산 뱀을 어떻게 쥐오?”

선동 아비는 왕대를 손 새에 넣고 쓱쓱 훑으면서 혼잣말처럼 뇌었다.

삼돌이는 베 주머니 아가리를 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열고 들여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머리를 돌렸다.

“그대루는 안 되리라. 꼬리를 맸으니 그 노끈을 내제!”

문턱 앞에 앉았던 최 유사가 가로채더니 그만 자기가 들어서 그 끈을 집어 냈다. 배가 희고 등이 거뭇한 것이 노끈을 좇아 꿈틀하면서 달려 나왔다.

길이가 자가 되나마나 하고 통은 엄지손가락만한 독사였다. 노끈에 꼬리가 달려서 대중대중 드리운 배암은 꾸핏꾸핏 몸을 틀다가도 머리를 빳빳이 하고 허리를 휘여서 사람의 손을 향하고 처올렸다. 겨우겨우 꼬리 끝 가까이 오다가는 그만 힘이 모자라는지 축 늘어져 버린다. 그렇게 사오 차나 하더니 그 담에는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마치 짐승의 밸을 늘인 듯하나 이따금 꿈틀꿈틀할 때면 삼돌이는 등골이 근질근질하였다. 선동 아비는 왕대 구멍을 요리조리 뺑소니치는 배암 머리에 대더니 한참 만에 댓속에 배암을 집어 넣었다. 댓속에 스르르 든 배암의 머리가 손잡은 쪽대구멍으로 거진거진 나오게 된 때에 처음 머리 넣은 구멍 밖에 뼘이나 남은 꼬리를 쓱 휘어다가 대에 꼭 잡아 매었다.

이때 방으로 들어간 김 좌수는 엉엉 우는 만득이를 붙잡고 나왔다.

“흥─ 흥 싫소─ 으응.”

만득이는 문턱에 발을 버티고 뒤로 몸을 젖히면서 고함을 쳤다. 뚱뚱한 김좌수는 만득의 겨드랑이를 들어 내밀었다.

“이눔으 새끼야, 죽기보담은 안 날나더냐?”

그러나 만득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왕대를 쥐고 섰던 선동 아비까지 대는 삼돌에게 주고 만득이를 끄집어내기에 힘썼다.

“만득아, 아프지 않다. 눈을 질끈 깜고 견데라.”

선동 아비는 순탄스럽게 말하였다.

“이런 개새끼 같은 눔으 새끼─ 야이 쌍눔 새끼야.”

김 좌수는 솥뚜껑 같은 소리로 만득의 머리를 쳤다.

“에구 제마이잉 에구 내 죽슴메─.”

마루로 끌려나오는 만득이는 집이 떠나가게 통곡한다.

“에구! 그거 무슨 때림매? 철없는 거 얼리지 때릴 게 무에요.”

영감 곁에 섰던 주인 마누라는 가슴이 아프다는 듯이 영감을 흘끗 보았다.

마루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모여들어서 만득이를 붙잡았다. 만득이는 그저 섧게섧게 통곡했다. 삼돌이는 왕대통을 가로 들었다. 여러 사람들은 만득의 바른편 장손가락을 배암의 머리가 있는 대구멍에 넣었다.

“에구 제마.”

삼돌이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오장이 뒤집히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삼돌의 손가락을 뽑아 보았다. 그러나 배암은 물지 않았다. 이번에는 만득의 손가락을 배암의 입에다 꾹 대고 바늘로 배암의 꼬리를 쑥쑥 찔렀다. 엉엉 울던 만득이는 갑자기 몸을 송그리고 울면서 낯이 파래서 큰소리를 질렀다. 여럿이 뽑는 만득의 손가락에서는 검붉은 피가 뽀지지 돋았다.

“됐다! 우지 마라, 이저는 그만둬라.”

김 좌수는 큰 성공이나 한 듯이 희색이 만면해서 만득이를 달래었다.

“응, 이거 먹어라. 우지 마라.”

주인 마누라는 꺼먼 엿 뭉치를 만득의 가슴에 안겼다.

“으응 흥…… 에구…….”

만득이는 모두 귀찮다는 듯이 발버둥을 치면서 그저 울었다.

“어─ 이저는 낫겠군─. 그러나 그 뱀을 불에 태우오. 그놈이 살아나 문아무 효험두 없는걸!”

어떤 늙은이가 점잖게 말했다.


그럭저럭 하는 새에 중복이 지나고 말복이 끝났다. 배암이 문 덕이든지 만득이의 병은 좀 차도가 있었다. 목으로 돌아가면서 두튀름두튀름 돋아서는 물이 번지르하게 터지던 연주창이 더 돋지 않았었다. 지르르하던 물도 차츰 거두었다. 일심 정력을 다 들여서 구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웃음이 흘렀다.

그러던 연주창이 말복이 지나서부터 다시 멍울멍울한 알이 지면서 뿌옇고 씬득한 군물이 돌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 어깨에까지 며틀며틀한 것이 눌러 보면 아렸다.

김 좌수 내외는 낯빛이 좋지 못하였다. 금년 스물 셋 되는 며느리(만득이의 아내)도 말은 안 하나 매일 상을 찡그리고 지내었다. 만득이는 글방에도 가지 않았다. 낯이 해쓱한 것이 목을 한쪽으로 끼웃하고 늘 늙은 어미 궁둥이에서 떨어지지 않고 엿과 떡으로 날을 보내었다. 밤이면 아버지 곁에서 자고 젊은 아내는 뒷방을 홀로 지켰다. 만득이는 장가가서 삼 년 동안 아내와 잤으나 병이 심하면서부터는 아버지 김 좌수가 별거를 시켰다. 그러나 만득이는 어떤 때면 남 자는 밤에 슬그머니 아내 방에 갔다가는 바지춤을 음켜쥐고 와서 몰래 아버지 곁에 누웠다. 그가 열 두 살 나서 장가 들 제 지금 스물 셋 되는 아내가 열 아홉 살이었다. 그것도 김 좌수가 권력으로 뺏아오다시피 삼은 며느리였다. 만득이는 장가든 첫날밤에 오줌을 싸고 울었다.

“과년한 처녀색시가 못 견디게 군 게지?”

만득이가 울었단 말 듣고 이웃에 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그 말이 색시 귀에 들어갔는지 색시는 한참 동안 밖에 못 나왔다. 그러다가 어느 때에는 뒤 우물가 대추나무에 목까지 맨 일이 있었다.

‘어린게(만득) 무스거 알겠소! 색시는 이것저것 다 알 텐데 아매 잘 ○○○ 못 하니 죽고자 한 게지!”

색시가 목매었다는 소문이 나자 이웃 사람들은 또 수군거렸다.

그러다가 작년 봄─ 만득이가 열 다섯 나서부터 각 자리를 하게 되었다.

각 자리를 한 뒤 일곱 달 만에 색시는 몸을 풀었는데 딸이었다. 그 딸은 난 지 첫 이레가 겨우 지나서 죽어 버렸다. 어떤 때 뒷방에서 소리 없이 우는 만득의 아내의 꼴이 시어머니와 주인 영감 눈에 띄었다.

‘사내가 그리운가? 사내 병이 걱정되는가?’ 시어미 시아비는 며느리의 울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나날이 심하여 가는 만득의 병에 모든 정신이 쏠려서 그밖의 것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만득의 병을 생각하고 뜰에서 거닐던 김 좌수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저녁 뒤는 방에 드러누웠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서 파란 기름불을 보았다.

“여보 노댁(마누라)이 거기 있소?”

드러누웠던 김 좌수는 벌떡 일어나 앉아 재떨이에 대를 엎어 꾹 누르면서 불렀다.

“네에.”

방 사잇문이 열리면서 낯이 불그레한, 아직 사십이 될락말락한 주인 마누라가 들어왔다.

“만득이는 어디메 있소?”

좌수는 마누라를 힐끗 보았다.

“저 정제(부엌방) 있음메!”

마누라는 입으로 부엌방 쪽을 가리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영감과 아직 입술이 붉은 마누라가 마주 앉은 사이는 따뜻한 기운이 없이 쓸쓸하였다.

“자아, 병을 어떻게 하문 좋겠소!”

“글쎄 낸들 암메. (혀를 차면서) 죽어두 어서 죽고 살아두 살구!”

마누라는 너무도 지질하다는 어조였다. 김 좌수는 물었던 대를 뽑고 이마를 찡그렸다.

“또 방정 떤다. 죽다니?”

“에구! 해해 낸들 죽기를 소원하겠소? 너무도 시진하니 나온 소리지비.”

마누라 소리는 좀 화순하였다.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지 곤체야 안 쓰겠소?”

영감의 소리도 의논 좋게 나왔다.

“글쎄, 뱀이게 물예두 그러니! 인저는 사람의 고…….”

마누라는 말을 뚝 끊더니 누구를 꺼리는 듯이 좌우를 돌아보았다. 불빛이 흐릿한 방에는 연기가 휘돌아 열어 놓은 문으로 흘러나간다.

“쉬, 조심하오! 조심해……. 아이 듣소?”

영감도 주의를 시키더니 마누라 곁에 다가앉으면서,

“사람의 고기나 멕여 볼까?”

하고 입속말로 소곤거렸다.

“글쎄 그랬으믄 오즉 좋겠소마는 어디서 얻겠소?”

마누라 역시 나직한 소리였다. 영감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주저거리더니 마누라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소곤하였다. 눈이 둥그랬지만 마누라는 영감의 말이 끝나자,

“그눔이 들을까?”

하고 어색하게 물었다.

“잘 얼리면 안 듣구 말겠소? 제게두 좋지비.”

영감은 자신 있게 말했다.

“좋기야 그렇게만 하면…… 만 하면이 아니라 꼭 해 주지 무슨…….”

마누라도 뱃심을 튀겼다.

“암, 해 주구 말구!”

영감은 다시 담배를 빨았다.

그 이튿날 저녁이었다. 김 좌수는 터밭에서 밭을 파고 있는 삼돌이를 불러들였다. 삼돌이는 삽을 땅에 박아놓고 아랫 다리를 불신 걷은 채 마루 아래에 와 섰다. 어느새 선동 아비도 왔다.

“응, 네 왔늬? 저 뒤 구름물[井]에 가서 손발을 씻구 오라구!”

대를 물고 문턱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김 좌수는 어린 아들이나 대한다는 듯이 다정스럽게 말하였다. 삼돌이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서 섰다가 시키는 대로 우물에 손발을 씻고 왔다.

“응, 시쳤늬? 들어오나라.”

주인 영감의 명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모든 사람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고 주인 영감은 화순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삼돌이는 기꺼우면서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그는 한 무릎을 깔고 한 무릎을 세우고 공손히 앉았다.

“얼매나 팠소?”

선동 아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삼돌이를 보았다.

“얼마 못 팠음메─. 낼 아츰꺼지나 파야 다 파겠소.”

머리를 감히 못 드는 삼돌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낼 아츰꺼지 파구 말구. 그게 그래 봬두 네짐[4백 평]이라 그렇게 갈걸.

트릿한 하늘을 쳐다보던 김 좌수는 동정을 하였다. 삼돌이는 기꺼웠다. 이 집에 들온 뒤로 일이면 일마다 잘 했다 소리를 못 들었더니 오늘은 자기 일을 옳다고 한다. 어째 주인 영감의 태도가 그리 쉽게 변하는가 생각하니 안개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의심스럽고 어리둥절하였다.

“그런데 삼돌이두 이저는 서방(장가)가야 하지. 흥!”

주인 영감은 삼돌이를 흘끗 보면서 싱긋 웃었다. 삼돌이도 벙긋 웃었다.

언젠가 일만 잘하면 장가도 보낸다던 주인의 말도 희미하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떠오? 서방갈 생각이 없소?”

옆에 앉았던 선동 아비도 한몫 끼었다.

“모르겠소. 흥!”

삼돌이는 선동 아비의 시선을 피하여 낯을 돌리면서 또 웃었다. 그의 입은 아까부터 벙긋벙긋 웃음이 흐를 듯 흐를 듯하면서도 차마 내놓고 못 웃는 것이 완연히 보였다. 나이 삼십이 되도록 여편네 곁에도 못 앉아 보았건마는 장가라고 하니 어째 마음이 들먹들먹 움직였다.

“모르기는 어째 몰라? 그 자식이! 너두 장개를 어서 가서 아들딸 낳고 소나 멕이고 하문 조챙이켔니?”

김 좌수는 빙그레 웃었다. 옆에 앉은 주인 영감 마누라와 선동 아비는 하하 웃었다. 그 웃음은 놀리는 것처럼 가볍게 흘렀다.

“어째 대답이 없는가? 서방 안 가겠는가?”

주인 마누라는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제 팔재 무슨 장가를 다 가겠음메.”

삼돌이는 그저 벙긋거리면서도 모든 것은 단념이라는 듯도 하고 또는 한 줄기 희망이나마 붙이는 듯이 말하였다.

“그눔아 별소리를 다 한다. 어디 장개가지 말래는 팔재를 걸머지고 나온 눔이 있다더냐? 내 말만 잘 들으려므나. 그러문야 장개만 가? 쇠[牛]두 있구 밭두 있구 무시긴들 없으리!”

주인 영감은 담배를 피면서 삼돌이를 마주 앉았다.

“어떠냐, 네 생각에? 너두 생각해 봐라. 이저는 고만하면 아들은 둘째로 손자 볼 텐데 하하하 . 내 하는 말을 듣겠니? 그러문 장개두 보내구 또 쇠, 밭꺼지 줄께 흥.”

주인 영감은 농 비슷하면서도 정색을 하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오?”

“응, 무슨 말이든지 할께 꼭 듣지?”

주인 영감은 다짐을 두라는 듯이 말했다. 삼돌이는 대답이 없었다.

“응, 너더러 거저 들으라는 말은 아니다. 이봐라, 내말을 들으문 장개가 구 집 한 채, 쇠 한 필이, 밭 다셋 갈이를 당장에 주마! 그만하면 네 한 뉘는 염려 없을 게구! 또 너두 늘 이러구 있어야 쓰겠늬!”

지금은 웃음에 장난으로 믿지 않았으나 점점 무르녹아가는 주인의 타령에 삼돌이의 마음은 솔깃하였다. 간간이 그의 머리를 치는 조그마한 집, 세간 ─ 그것이 금방 눈앞에서 실현이나 될 것같이 기쁘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과 같이 낯모를 여자의 낯, 아담하고 깨끗한 작은 집, 듬직한 황소─ 이런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그는 스스로도 억제치 못할 웃음을 빙긋하였다.

“무스게요?”

“글쎄 꼭 듣지?”

“네!”

“오─ 그러믄 내 말하마!”

“그래 이 말은 꼭 들어야 한다. 그리구 아무게 하구두 말을 말아야 한다.”

주인 영감은 다지고 다지었다. 삼돌이는 그저 간단하게,

“네!”

하였다. 그의 낯에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기쁨이 흐르는 속에 두 눈은 의심의 빛이 돌았다.

“내게 무슨 심(힘)이 있겠음메마는 거저 제 심만 자란다문사…….”

말끝을 맺지 못하는 삼돌의 소리는 떨렸다. 그것이 서두가 없고 조리가 없으나 그 말하는 그의 낯에는 어떠한 괴롬이든지 만득의 병을 위한다면 받겠읍니다 하는 표정이 불그레 올랐다. 그 태도, 그 소리에 방안의 공기까지 스르르 알 수 없는 기분에 움직거리는 듯 김 좌수 내외, 선동 아비까지 부드럽고 따스한 애수에 잠기는 듯이 한참 말이 없었다.

희미하게 틘 서천 구름 사이로 굵은 햇발이 먼 들에 흘렀다. 훈훈하고 축축한 바람이 풀향을 싣고 방으로 불어 들었다.

“으음! 그런데 이거 봐라, 네가 조금 아픈데 견듸면 만득의 병두 낫고 또 너두 장가 보내고 쇠 한 필이와 밭을 줄 테니…….”

한참 만에 입을 연 좌수는 말 뒤를 끌었다.

“무슨 일이오?”

삼돌이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물었다.

“응! 이거 봐라.”

김 좌수는 역시 말하기 어려운 듯이 주저하다가 다시 목에 가래를 떼고 삼돌의 앞에 다가앉아 수굿하고 삼돌이를 보면서,

“이거 봐라. 너도 들었는지, 쟤(만득)의 병에 뱀이 약이라구 해서 너두 숱한 고생을 했구나! 한데 그눔으게 어듸 낫더냐? 그런데 이번에는…… 이거는 꼭 다르(낫는)단다……. 저…… 사……사람으 괴기를 먹이면 낫는다니 어디서 얻겠니……. 너루 말해두 이저는……. 벌써.”

하더니 손가락을 폈다 꼽았다 하다가,

“삼 년이나 우리 집에 있으니 그저 참 우리 식구나 다름이 없는 처지요.

또 우리도 아들 겸 멕이는 판이니 아픈 대로네 목 괴기를 조금만 떼자……

응.”

김 좌수는 말이 끝나자 숨이 찬 듯이 한숨을 휴 쉬었다.

“이 사람, 자네 동생을 살리는 셈 대고 한 번 들어주게, 제발…… 응……. 자네게 우리 아이 목숨이 달렸네.”

주인 마누라가 애원스럽게 뒤를 이었다. 삼돌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목 괴기 할 때 가슴이 꿈틀하고 울렁울렁하였다.

“네 어떠오, 뭐 크게 뗄 것도 없고 요만하게(자기 목을 엄지와 검지로 쥐어 잡아당기면서) 거저 골패짝만하게 떼겠으니…….”

선동 아비도 말하였다. 세 사람의 시선은 다 같이 무엇을 바라는 듯이 흐릿하게 삼돌의 수그린 머리에 떨어졌다.

“아파서 어떻게…….”

삼돌이는 쥐구멍에나 들어갈 듯이 울 듯 울 듯 한 마디 응했다.

“하하, 야 이 사람아, 그양 선득할 뿐이지 그게 무슨 그리 아프단 말인가? 조곰 도려내고 이내(금방) 약을 척 붙이면 그까짓 거 뭐 담박 낫을 걸.”

김 좌수는 호그럽게 말하였다.

“그래두 아파서.”

선돌이는 금방 잘리는 듯이 상을 찡그리고 목을 어루만졌다.

“이거 봐라, 그러기만 하면 네가 우리 집에 진 돈두 그만 탕감해 버리구, 그리구 너를 서방두 보내구 또 밭과 쇠두 준단 말이다. 내 이제 이렇게 늙은 게 네게 거짓말을 하겠늬?”

우리 집에 진 돈 이라는 ‘ ’ 것은 전달 장마 때 삼돌이가 소를 갯가에 매었는데 그만 소가 물에 빠져 죽었다. 주인 영감은 삼돌이가 잘못 매서 죽었다 하고 그 소값을 일백 오십 냥이라 하여 삼돌이에게서 표를 받았다. 삼돌의 한 해 삯은 오십 냥이었다.

“어째 대답이 없니? 만일 정 슬흐면 그만두란 말이다마는 쇠값을 내 놓고 낼이라도 나가거라.”

영감은 배를 튀겼다.

“아따 영감두, 삼돌이가 어련히 들을라구!”

마누라는 고삐를 늦추었다. 삼돌이는 그저 대답이 없었다. 그에게는 장가, 소, 밭, 집, 그것보다도 쇠값─ 이것을 없애버린다는 것에 마음이 씌었다.

이때까지 자나깨나 그 돈 일백 오십 냥이 가슴에 체증처럼 걸렸더니 깜박 잊은 이 순간에 또 그것이 신경을 흔들었다. 그만 얼른 모가지 고기를 디밀고라도 그것을 벗고 싶었다. 그 돈을 벗어 장가들어 소 한 필이, 밭, 집 한 채……. 뒤따라 이러한 생각과 환영이 그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는 기뻤다. 바로 그런 데나 지금 들앉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다시 모가지 고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꺼림하여졌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빚, 장가, 밭, 소, 집이란 이상한 큰 힘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문 어떻게…….”

그는 겨우 말번지는 어린애처럼 머리 숙인 채 말했다.

“흥, 그래……. 그저 삼돌이야!”

주인은 능쳤다.

“그러믄 저 방으로 들어가지.”

선동 아비는 일어서서 웃방 문을 열었다.

“노댁이는 여기서 뉘기 들어 못 오게 하오! 어서 저 방으로 들어가자.”

김 좌수는 벼룻집 서랍에서 헝겊으로 똘똘 감은 것을 집어내더니 삼돌이를 재촉하였다. 주인 영감의 손에 기름한 것(헝겊에 감은 것)을 볼 때 삼돌이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것은 상투밑 치는 것이었다. 삼돌이도 그것으로 머리 밑을 쳤다. 그의 가슴은 울렁울렁 걷잡을 수 없고 몸이 우르르 떨렸다. 이가 덜덜 쪼겼다. 차마 일어서지지 않았다.

“야, 빨리 하자! 맞을 때는 얼른 맞아야 시원하니라!”

주인 영감은 순탄하게 재촉하였다. 삼돌이는 일어섰다. 머리까지 울렁거리고 다리는 마비된 듯이 뻣뻣하였다. 그는 뿌리칠까, 들어갈까 하면서 끌렸다.

세 사람은 앉았다 삼돌이는 . 누었다. 주인 영감은 선동 아비를 보고 눈짓을 하였다. 선동 아비는 삼돌의 머리를 잡았다. 굵고 억센 주인 영감의 엄지와 검지에 삼돌의 목 고기는 잡혀서 죽 늘어났다. 삼돌이는 온 신경이 송 그러들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쳤다.

“에구 에구에구!”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빚, 장가, 집─ 다 그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다만 고기, 피, 죽음, 이것만이 그의 모든 정신을 지배하였다.

“쉬─ 이게 무슨 소리냐? 소리를 내지 말아!”

주인 영감은 손을 멈추면서 삼돌에게 주의시켰다. 삼돌이는 소리를 그쳤다. 칼이 닿았다. 목이 산뜻하였다.

“에구…… 싫소!”

삼돌이는 장에 갇힌 개처럼 마구 울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주인 영감은 손을 펴고 번쩍 일어나 삼돌의 가슴을 깔았다.

“머리를 꼭 붙들어라!”

주인 영감은 선동 아비에게 주의를 시켰다.

“에구! 으윽.”

목을 눌려서 끽끽하는 삼돌이는 몸을 모로 뒤치면서 머리를 들었다. 주인 영감은 급한 김에 두 손으로 목을 눌렀다. 오르는 힘, 내리는 힘! 두 힘 속에 칵 박혔다. 피는 여전히 흘렀다. 삼돌이가 배를 뿔구고 숨을 들이쉴 때면 흐르던 피가 그르르 끌어들다가도 응윽─ 하고 숨을 내쉬게 되면 뜨거운 선지피가 김 좌수의 손가락 사이와 손바닥 밑으로 쭈루룩 쏴― 솟았다. 세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누릿한 삿자리에 줄줄이 흐르는 피는 구름발같이 피기도 하고 샘같이 흐르기도 하였다.

“야, 장(醬)─ 가제오나라, 장!”

어쩔 줄 모르고 섰던 선동 아비는 아랫방으로 뛰어갔다. 이슥하여 선동아비와 주인 마누라가 들어왔다. 주인 마누라는,

“어마!”

하더니 그냥 푹 주저앉아서 부들부들 떨었다. 선동 아비는 장을 삼돌의 목에 철썩 붙였다.

때는 흐른다. 초초분분이 숨을 빼앗긴 목숨은 흐르는 때와 같이 시들었다.

장을 붙였을 때는 삼돌의 억세인 사지에 기운이 빠지고 두 눈은 무엇을 노리는 듯이 뜨고 못 감을 때였다. 끓어들었다. 솟아나오던 그 뜨거운 피도 이제는 김 없이 줄줄 흘러 엉키었다. 피투성이 된 김 좌수 형제와 주저앉은 마누라는 그저 멍하니 식어 가는 삼돌의 몸에 눈을 던졌다. 방안은 점점 충충하였다. 우중충한 하늘이 저녁 뒤부터 비를 뿌렸다. 몹시 뿌렸다.

쏴― 우─ 바람 소리 빗소리가 어우러져서 먼 바닷 소리 같았다. 기왓골로 흘러 주루룩주루룩 내리는 낙수물 소리는 샘 여울 소리처럼 급하였다. 삼경이 넘어서였다. 김 좌수 집 웃방에서 장정 둘이 밖으로 나왔다. 베 고의적삼에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앞서서 마루에 나서는 것은 뚱뚱한 김 좌수다. 뒤따라 역시 단출하게 차리고 발 벗고 등에 기름하고 큼직한 것을 검은 보에 싸 지고 나서는 것은 선동 아비였다. 두 사람은 방으로 흘러나오는 불빛까지 거리낀다는 듯이 비쓱 문을 피하여 어둠 속에 섰다.

“에구 어드메루 감메!”

나중에 어청 나온 마누라는 어둠 속을 향하여 수근거렸다.

“쉬, 아무데루 가든지 어서 문을 닫소!”

역시 입속말로 하면서 뚱뚱한 그림자부터 마루 아래로 내려섰다.

“아즈마니, 들어가오, 저 앞갠[川]으로 감메!”

큼직한 것을 짊어진 그림자가 뒤따라 내려가면서 수근거렸다.

두 그림자는 마루 아래서 어른거리더니 침침한 어둠 속 시끄러운 빗속에 자취와 몸을 감추었다. 쏴― 내리는 비는 그저 이따금 바람에 우─ 불려서 마루에까지 뿌렸다.

두 사람이 빠져나간 뒤 창문만 불빛에 훤한 커단 검불이 비바람 속에 잠겨서 가만히 놓인 것은 무슨 큰 비밀을 감춘 듯도 하고 무슨 큰 설움을 말하는 듯도 하였다.


삼돌의 그림자가 김 좌수 집에서 사라지던 날부터 김 좌수 집에 드나드는 것이 있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은 김 좌수뿐이었다. 그 마누라와 선동 아비도 희미하게 느끼나 김 좌수처럼은 느끼고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어둔 밤, 고요한 밤, 깊은 밤, 비오는 밤이면 어둑한 구석에서 슬그니 나타났다. 낮에도 언득언득 김 좌수 눈에 띄었다.

조그마한 일에도 현령을 서릿발같이 내리는 김 좌수의 위엄으로도 그것은 쫓아낼 수 없었다. 쫓아내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뭉깃이 보이면 그는 간담이 써늘하여지고 머리끝이 쭈뼛하였다. 날이 점점 지날수록 그것의 출입은 더 잦았다. 어떤 때는 밖으로부터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웃방으로부터 나타났다. 그것이 드나들게 된 뒤로부터 김 좌수는 날만 저물면 뒷간이나 헛간으로 나가기를 싫어하였다. 웃방으로는 더욱 드나들기를 꺼렸다.

김 좌수의 마누라도 말치는 않으나 낮에도 우중충 흐리고 비나 출출 내리면 헛간이나 웃방으로 드나들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따라서 만득이와 그 며느리까지도 공연히 무시무시한 기분에 싸인 듯싶었다. 아직 초가을이건만 김 좌수 집에는 늦은 가을처럼 쓸쓸한 기운이 스스로 돌았다.

그래서 김 좌수는 농군을 어서 두려고 구하였으나 아직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사랑방에 바둑 장기를 갖다 놓고 밤이면 이웃집 젊은이 늙은이들을 청하였다.

“어쩐지 그 집으루 가기 싫네!”

“글쎄 무슨 귀신이 있는 것처럼 늘 무시무시해서.”

“나는 삼돌이 달아난 뒤에는 못 가 봤소.”

이웃집에서 이렇게 수군수군하였다. 그런 소리가 여편네들 입으로 김 좌수에게도 전하였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김 좌수는,

“별눔들 별소리를 다 한다. 어느 눔이 그래, 응 어니 눔이 귀신? 무슨 귀신 있단 말인구?”

하고 혼자 푸닥거리를 놓았다. 그러나 그 말대꾸 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좌수의 마누라가 일전에 몸살로 드러누웠을 때 어떤 무당이 와서 점을 치고 원귀(怨鬼)가 있다고 한 뒤로는 김 좌수의 마음도 더욱 무거워졌거니와 이웃에서 또,

“오오, 그래서 만득이가 앓는 게로군. 그래서야 뱀이 아니라 불로촌들 소용 있겠소?”

하고 수군거렸다. 그럴수록 사람의 자취는 더욱 끊어질 뿐이었다.

이렇게 될수록 김 좌수의 이맛살은 나날이 심하였다. 불그레하던 낯빛은 한 달이 못 되어 푸르고 희며 축 처지다시피 살쪘던 두 뺨은 빠졌다. 늘 무엇을 멍하니 보고 있는 그의 가느름한 눈에는 겁과 두려운 빛이 흘렀다. 그는 매일 술로 벗을 삼았다. 그것도 처음에는 벗이 되었으나 지금은 소용없었다.

오늘도 술을 그리 기울였건만 점점 정신만 났다. 그 거무스름한 그림자만 눈에 어른하면 그리 취하였던 술도 번쩍 깨여졌다. 퇴침을 베고 누웠던 그는 슬그머니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대에 담았다. 그는 벽에 걸어 놓은 환한 등불에 껌벅껌벅 담배를 붙이더니 문을 탁 열고 가래를 칵 뱉었다.

서늘한 바람은 방으로 수우 흘러들었다. 별이 총총한 하늘은 퍼렇게 높게 개었다. 뜰이며 울타리며 먼 산들이 맑은 밤빛 속에 윤곽이 보였다.

김 좌수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따라 뒤숭숭한 것이 또 안절부절을 못하게 되었다. 어둑한 뜰 저편 헛간 침침한 어둠 속으로 목을 쭉 늘이고 뭉깃한 것이 어청어청 나왔다. 그는 눈을 돌렸다. 불빛이 그물그물 비추인 웃방 문이 번쩍 열리면서 시뻘건 피뭉치가 나왔다. 그는 애써 모든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뜨면서 시선을 마루로 옮겼다. 시커먼 그림자가 그의 앞에 섰다. 그는 가슴에서 돌덩어리가 쿡 내렸다. 그것은 피묻은 그림자였다. 모두 착각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용기를 가다듬었다. 담배를 퍽퍽 빨면서 뜰에 내려서서 어둑한 곳마다 자세자세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없으리라 믿기로 하였다. 그러면서도 무에 있는 듯하고 알 수 없는 커단 것이 뒤로 슬금슬금 와서 모가지를 잡는 듯이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렸던 머리를 다시 돌이킬 때가 더 괴롭고 무서웠다. 그는 무엇이 쫓는 듯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노댁이(마누라), 자쟌이캤소?”

그는 부엌방을 향하여 떨리는 소리를 진정해 소리쳤다.

“네, 자지비.”

하는 소리가 나서 한참 만에 사잇문이 열리면서 마누라가 씩씩 자는 만득이를 깰깰 안고 들어왔다.

“영감이 야를 안고 여기서 자오. 나는 며느리 혼자 자기 무섭다니 같이 자겠소!”

하고 마누라는 부엌방으로 나가 버렸다. 마누라가 나간 뒤에 김 좌수는 손수 자리를 펴고 만득이를 뉘었다. 다음 그는 벽에 걸어 놓은 기단 환도를 끄집어 내려서 머리맡에 놓았다. 이것은 대대로 전해 오는 환도였다. 몸이 몹시 아프거나 꿈자리가 뒤숭숭한 때면 이것을 머리맡에나 베개밑에 넣고 잔다. 그러면 원귀가 들지 못하여 꿈자리도 뒤숭숭치 않고 몸살 같은 것도 물러간다고 믿는 까닭이었다. 요새 그놈의 이상 야릇한 그림자가 꿈에까지 김 좌수를 못 견디게 굴어서 이 환도를 머리맡에 놓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그 그림자가 보이면 환도로 그것을 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늘 그림자는 맞지 않고 방바닥이나 문턱이 맞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김 좌수는 불을 끄고 만득의 곁에 누웠다.

무거운 어둠이 흐르는 방에 창문만이 밝은 밤빛에 희스름하였다. 사면은 괴괴한데 이따금 바람이 지나는 소린가 마당에서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김좌수에게는 그것도 저벅저벅하는 자취 소리 같았다. 그는 눈을 애써 감으나 자꾸 웃방 문을 향하여 뜨여졌다. 그는 또 눈을 감았다. 자리라 하였다. 몸살이 나고 미열이 났다. 그는 두 발을 이불 밖으로 내밀면서 눈을 떴다. 커단 흰 그림자가 그의 눈앞에 섰다. 그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번쩍 일어나 앉았다. 그림자는 점점 확실히 보였다. 그것은 횃대에 걸친 두루마기였다, 그는 가슴에 손을 대면서 다시 누웠다.

돌아누웠다가는 번듯이 눕고 번듯이 누웠다가는 돌아눕고 눈을 감았다가는 뜨고 떴다가는 감고 이불을 차 밀었다가는 도로 덮고 덮었다가는 활짝 차 밀고 하여 신고하던 끝에 김 좌수는 느른하여 비몽사몽간에 들었다. 고요히 누웠던 그는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방 안은 훤하였다. 웃방 문고리가 찔렁 빠지면서 문이 쩡 열렸다. 침침한 웃방으로부터 아랫방으로 넘어서는 그림자가 보였다. 김 좌수는 자기도 모르게 번쩍 일어나 앉았다.

그림자는 꺼먼 베 고의적삼을 입었다. 다리는 불신 걷었다. 푸른 힘줄이 툭툭 삐진 다리! 솥뚜껑 같은 손! 터부룩한 머리는 산산이 흩어졌다. 꺼멓고 쪽 빠진 낯은 피칠 되었다. 목으로는 검붉은 선지피가 흥건히 흘러서 꺼먼 고의적삼을 물들였다. 전신이 피였다. 사람이었다. 두 눈은 독살이 잔뜩 오르고 이는 꼭 악물었다. 그것은 김 좌수 앞에 다가섰다. 악문 이빨과 목으로 푸우 뿜는 피는 김 좌수에게 튀어왔다. 모든 것은 너무도 명하게 김좌수에게 보였다.

“앗! 삼돌이눔.”

김 좌수는 한 마디 소리를 쳤다. 그는 알 수 없는 굳센 힘에 지배되어 머리맡 환도를 집어들었다.

“이놈!”

번쩍이는 빛은 벽력 같은 소리와 같이 그 피사람을 향하여 내리쳤다. 일어나 앉은 채 전신의 힘을 다하여 칼을 내리운 김 좌수는 그저 그대로 앉았다.

“영감─ 영감이 소리를 침메?”

저편 방에서 자던 마누라 소리가 울려 왔다. 그러나 김 좌수에게는 그것이 들리지 않았다. 사잇문이 열리면서 환한 기름등이 마누라 손에 들려서 들어 왔다.

마누라는 등을 한 손에 들고 선잠 깬 눈을 비비면서 영감을 보았다. 영감은 입술을 깨물고 부릅뜬 눈으로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다. 힘있게 버틴 팔 아래 억세이게 부르쥔 주먹에는 환도 자루가 꽉 잡혔다. 환도가 내려친 곳에는 그가 사랑하던 아들(만득)의 몸이 모가지로부터 가슴으로 어슥하게 두 조각이 났다. 흐르는 피는 요바닥을 흠씬 적셨다. 흐릿한 방 안에는 비린내가 흘렀다.

“에엑!”

하자 환한 불빛에 노렸다가 풀리던 영감의 눈은 다시 둥그래지더니 피를 칵 토하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그것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던 마누라도,

“으윽!”

하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기름등은 방바닥에 떨어져서 꺼졌다. 좀 있다가 별이 총총한 푸른 하늘 아래 어둠 속에 고래등같이 뜬 김 좌수의 집으로 여자의 처량한 곡 소리가 흘러나왔다. 초가을 깊은 밤, 고요하고 휑한 집으로 울려 나오는 곡소리는 어둠 속에 높이 떠서 온 동리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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