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소설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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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소설]의 槪念[개념][편집]

(이즈음 차차 잡지열이 다시 일어나는 동시에 작년부터 대두한 순문예에 대한 동경심이 문예 애호가의 사이에 생긴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회에 現時[현시] 문예계의 왕자인 ‘근대소설’에 대한 해설을 간단하게 나마 쓰는 것은 그다지 망발이 아닐 줄 안다.) 인류의 역사 중에 문예의 면을 보면 유사 이래로 여러가지의 문예가 흘러 내려왔다. 지금 통칭 ‘문예’라 일컫는 부문에 든 종류를 문자 발명 이전에도 가졌던 듯한 기록이 있지만 이것은 제외하고 우리 인류가 문자로 기록한 문예를 처음으로 가진 것은 희랍시대의 호머의 「일리아드」며 「오디세이아」 등 서사시이다. 그 시대를 지나서는 바이블이며 여러가지 예언서를 문예로서 가졌던 시대가 있었다. 그 다음에 계속된 것은 ‘시’의 세기였다. 시의 세기의 뒤에는 극, 사극, 고전극의 시대가 한동안 계속되고 그 뒤에는 극시의 시대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이 극시가 차차 낡아 가고 또 다른 문예를 인류가 기다리고 바랄 때에 이 요구에 응코자 인류 생활사 면에 나타난 것이 20세기 문예의 총아 소설이다.

19세기로부터 20세기에 걸쳐 우리 인류가 가진 대표적 문예는 소설이다. 근대소설의 발생에 대하여는 후단에 쓰겠지만 이 근대소설이 발생된지 근 근 3백 년간에 아직껏의 문예의 총아이던 극시를 누르고 시를 누르고 단연 문예의 사령탑 상에 올라 서서 그 광휘를 자랑하는 양은 어떻게 보면 경이 에 가까운 기적으로서 근근 3백 년간에 저작된 소설의 수효와 발행된 부수 는 아직껏 수십 세기간에 저작되고 발행된 문예의 다른 부문의 작품(劇詩 [극시]라든지 시라든지 극이라든지)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훨씬 많다는 이 수자는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류 감정이나 기호에 맞는다는 점을 증명 하는 동시에 지금의 세기는 문예소설의 세기라는 것을 증명 하는 바다. 위에 말하였거니와 소설은 근대인의 감정, 기호에 잘 맞기 때문에 근대인 에게 영합되어 20세기 문예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러면 소설이 어찌하여 근 대인의 기호에 그렇게 맞나? 과거의 온갖 다른 문예를 壓頭[압두]하고 지금 의 승리탑 상에 올라 서게 된 그 원인이 어디 있나?

이 점을 알려면 먼저 인류 사상 변천의 역사를 보아야겠다. 대체 문예라 하는 것은 사람의 감정의 발로의 일종인 이상에는 시대 사상의 변화는 그 시대에 처한 ‘사람의 사상’에 변화를 일으키게 할 것이고 사상의 변화는 또한 그 사람의 감정이며 기호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할 것이니까 소설이 현 대 문예의 승리탑 위에 올라서게 된 그 까닭을 알려면 먼저 시대의 변천과 거기 따르는 ‘사람의 사상’의 변천이라는 것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가 그 시대의 대표적 문예로서 사랑을 받을 때에는 그 시대상에 그럴 만 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극이며 극시가 사랑을 받을 때에 그럴 만한 까닭 이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말에서 비롯하여 19세기를 지나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소설이 이 시대의 문예의 대표자로서 사랑을 받던 그 까닭― 즉 현대의 사상과 소설이 라는 것은 어떠한 관련을 가졌는지 이것을 좀 알아보자.

근대소설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특수한 양식과 내용을 가진 신문예가 처음 으로 인류의 생활 面上[면상]과 그 자태를 나타낸 것은 18세기도 절반이나 지나간 때로서 많은 소설학자들은 영국의 리처드슨의 「파멜라」를 근대소 설의 최초의 작품이라는 데 대개 일치한다. 이 민족적 學譽[학예]를 자기네 나라에 끌어오기 위하여, 佛國[불국] 학자의 수삼 인이며 기타 다른 수삼 학자들은 자기 나라의 작품을 들고 이것이 근대소설의 조라 하고 「파멜 라」를 묵살하여 버리려 하지만 대개의 학자는 「파멜라」설을 타당하다 하 고 이의를 제창치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이던가? 그 「파멜라」라는 소설은 어 떤 내용을 가진 것인가? 두 가지의 점을 살펴보자.

그 시대라 하는 것은 봉건사상이 그 극도에 달하여 귀족의 타락과 횡포가 최상에까지 달한 시대다. 그리고 최상에 달한 자는 반드시 기울어지는 천리 에 의지하여 바야흐로 어떤 변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였다. 문예 방면으로 보더라도 르네상스 이후의 귀족문학이 극도까지 발달하여 문예의 각 방면에 까다롭고 귀찮은 엄밀한 방정식이 붙어서 문예의 자유로운 경지 를 더할 나위 없이 제한하여 놓고 불국 한림원이 총주재자 격으로 되어서 그 눈에 패스되기 전에는 문예라는 명칭을 붙일 수가 없으리만큼 자유로운 경지를 개척할 여지도 없이 된, 말하자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지라, 장차 기울어질 수밖에는 없는 운명을 가진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영국의 일개 무명 인쇄업자요, 편지 代作者[대작자]이던 사무엘 리처드슨의 손에 제작되어 사회에 던진 「파멜라」라는 이야기는 어떤 내용을 가진 것인가? 그 내용은 파멜라라 하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그가 자기의 父[부]에게 보내 는 전편이 왕복 편지의 형식으로 된 것이다. 어떤 점잖은 집안의 한 개 하 녀인 파멜라는 주인집 도령에게 사랑을 받았다. 파멜라도 그 도령을 마음으 로는 사랑하였으나 자기의 처지가 도저히 正妻[정처]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끝끝내 주인 도령의 사랑을 거절하였다. 이리하여 여 러가지의 재난과 갈등이 거듭된 뒤에 주인 도령도 파멜라의 마음을 알고 드 디어 정처로 삼았다.― 대략 이런 내용을 가진 것이다.

그러면 이런 내용이 어찌하여 당시 사람의 기호와 맞았나?

여기 나타난 파멜라의 감정은 순전히 평민 계급의 감정이었다. 재래의 문 예의 그 전부가 모두 한결같이 정치를 찬송하고 제왕을 찬송하고 귀족을 찬 송하고 영웅을 찬송하고 연애를 찬송하고 이런 고귀한 노릇만 찬송하고 그 위에 엄격한 작법에 있어서 그 방면에 전문적 지식을 못 가진 사람으로서는 감상키 힘든 것임에 반하여 이 「파멜라」는 평민을 주인공으로 평민의 생 활과 평민의 감정을 가장 알기 쉬운 소박한 형식으로써 나타내었기 때문에 그때 바야흐로 머리를 들려던 전 평민 계급은 양수를 높이 들고 이 새로운 형식의 문예를 환영한 것이다.

이리하여 문예의 온갖 방면에 간섭을 가하려는 한림원에서도 이 새로운 이 단자만은 ‘문예가 아니라’ 하여 간섭치 않는 好機會[호기회]를 타고 그때 바야흐로 흥하여 가는 인쇄업과 신문 잡지 기타 출판물이라는 배를 타고 19 세기의 대무대로 용감히 뛰쳐나온 것이다.

小說[소설]의 起源[기원][편집]

단순한 감수성으로도 넉넉히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바야흐로 대두하려 는 평민 계급 전체의 환호 아래 지금 문예의 총아가 된 소설이다. 이 근대 소설의 祖[조]는 학자의 대개가 「파멜라」라는 데 별다른 의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 소설의 기원은 어떠한가? 어떠어떠한 경로를 밟아서 드디어 이 근대소설이라는 것이 출현하게 되었나?

여기 대해서 차알스 호온은 그의 명저 「소설의 기교」에서 이렇게 斷案 [단안]하였다.

지금 소설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 문자가 남아 있는 것의 최고한 자 는 「웨스트카알 파파이러스」라 할 수 있으니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류의 기원을 미생물에 두는 다윈의 학설을 본받자면 소설의 기원은 그보다도 썩 이전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사람이라는 것이 ‘거짓말’을 시작한 이때가 벌써 원시형의 소설의 발생 시대라 볼 수 있다. 가령 여기 어떤 사람(원시 시대의)이 사냥을 나갔 다가 한 마리의 잠든 사자를 잡아왔다 하자. 만약 그 사람으로서 정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 사람으로서 좀 약고 꾀가 있고 영리한 사람일 것 같으면 여기는 한 가지의 영웅담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 한 사람이 잠자는 사자를 잡아 가지고 동리로 돌아와서 자기의 친구에게 말하는 때는 반드시 자기의 모험담을 장식하기 위하여 사자가 자기에게 달 려들던 광경을 말할 것이며 그 펄펄 달려드는 사자를 자기가 어떻게 놀라운 용맹과 힘으로 때려 죽였는지를 기껏 과장하여 자랑할 것이다―.

소설의 기원을 우리는 이 영리한 원시인의 거짓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차알스 호온은 이렇게 단안을 내렸다.

이 영리한 사람의 자기 공명담이 轉之又轉[전지우전]하여 몇 사람의 입에 서 귀로 넘어갈 동안은 반드시 좀더 여러가지의 양념이 가미될 것이다. 양 념이 가미되고 또 가미될 동안은 본시의 창안인 거짓말과는 비슷도 안한 물 건이 되어 드디어는 엉뚱한 영웅담이 되어 버릴 것이다.

좀더 이야기를 잘 꾸미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이야기에 불만을 感[감]하고 이야기의 새로운 방면을 개척하리라. 즉 사람의 힘이라는 것을 좀더 변화시 켜서 神變 不思議[신변 불사의]한 ‘신’이라 하는 것을 창조해 내어 가지 고 그 신의 조화를 엄청나게 이야기하여 이야기의 재미성을 크게 하리라― 신화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람의 지혜라는 것이 차차 더 발달됨에 따라서 실재성이 결핍한 신화에 차차 불만을 느끼고 여기서 창안해 낸 것이 英雄物語[영웅물어], 악 한물어 중세기의 기사도가 흥하면서 기사물어, 연애물어― 이리하여 점점 진보되던 물어가 18세기말 평민의 대두와 함께 ‘소설’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출현한 것이다.

만약 호온의 설을 시인하자 하면 소설의 祖先[조선]은 인물의 역사와 함께 시작이 되었다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소설― 혹은 그 前世[전세]의 형태이 던 온갖 물어는 그것이 비교적 소박하고 이해키 쉬운 것인만큼 언제든지 평 민간에 유포되고 애독되었다. 이리하여 소설은 그 기원시부터 오늘까지 꾸 준히 평민의 好伴侶[호반려]로서 내려왔다. 평민의 시대인 현대야말로 가장 소설의 득의 시대이다.

近代小說[근대소설]의 特徵[특징][편집]

평민의 반려자가 되기 때문에 근대소설이 문예상 왕자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여러번 거듭 말한 바다.

옛날부터 입으로 혹은 글로 전하여 내려온 많고 많은 이야기가 모두 평민 의 반려자가 되면서도 문예의 왕자의 지위에 올라가지 못한 그 까닭은 옛날 에는 평민이 권세를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평민이 권세를 잡은 현세에 있어서는 이 현상(소설의 승리)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근대소설이란 자는 옛날부터 전한 많은 이야기보다 더욱 더 평민의 반려자가 되기 위하여 새로운 내용을 갖추고 나타났다. 이것이 즉 근대소설 의 특징이다. 옛날 이야기는 한낱 ‘이야기’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야기’가 되기 위하여 그 속에 포함된 것은 ‘통속적 재미’와 ‘도덕 적 귀결’이면 족하였다. 도덕적 의미를 나타내는 재미있는 이야기면 족하 였다. 그러나 차차 이지화되고 복잡하게 된 근대인에게는 그 두 가지의 요 소만으로는 만족을 줄 수가 없다. 좀더 다른 경지를 개척하고야 비로소 평 민 전체의 환호를 받을 것이다. 여기 근대소설 이전의 ‘이야기’와 근대소 설과의 차이점이 생겨나는 것이다.

첫째로 진실성을 띠지 않으면 안 된다. 가공적 이야기라고 번히 들여다보 이는 내용을 가진 이야기는 이지적인 근대인은 돌아보려고도 아니한다. 여 기서 리얼리즘이 출발을 한 것이다. 이 리얼리즘의 발달이야말로 근대소설 의 생명이며 가장 큰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리얼리즘이라 하면 흔히 ‘있는 대로’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 이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리얼리즘의 사명은 이 복잡하고 불통일되고 모순 많은 인생 생활을 단순화하고 통일화하는 데 있다. 찌꺼기를 모두 뽑 아 버리고 골자만을 남겨 가지고 그것을 정당화시켜서 표현하는 데 있다. 그런지라 실재치 못할 일이라도 실재성을 띠게 묘사하고 실재한 사실이라 도 거기서 모순된 군더더기를 모두 뜯어 버리고 단순화하고 구체화하여 실 재성을 띠게 하여가지고 나타나야 한다. 성격소설의 발달은 즉 리얼리즘의 발달을 뜻함이다.

그러나 사실 묘사의 일방에 기울이기 때문에 건조무미한 맛이 자연히 따르 게 될 것이니 여기 이 결함을 보충키 위하여 생겨난 자가 로맨티시즘이다. 아무리 이지적인 현대인일지라도 역시 꿈과 환몽과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마 음을 가졌나니 로맨티시즘의 가미가 없이는 아무리 이지적인 근대인일지라 도 근대소설에 귀의하기를 주저할 것이요, 귀의하였다가라도 언제 變飾[변 식]을 할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성격적 방면을 대표하는 리얼리즘의 골자와 사건적 방면을 대표하는 로맨 티시즘의 가미가 잘 조화되어 여기서 비로소 근대인의 기호에 꼭 맞는 근대 소설이 대성을 하게 되었다. 경험과 환몽의 아름다운 조화야말로 이지적이 면서도 또한 미지의 나라를 동경하여 마지않는 현대인에게는 가장 큰 귀여 운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근대소설의 특징은 이 양자를 조화하여 근대인의 비위에 맞게 한 데 있다.

朝鮮[조선]의 近代型[근대형] 小說[소설][편집]

근대소설의 특징이 성격 묘사에 있다 하는 것은 위에도 말한 바다. 그러면 조선에 있어서는 성격소설, 즉 근대소설이 언제 발생되었나?

이 점에 대해서는 菊初[국초] 李人稙[이인직] 씨로서 그 創草者[창초자]라 는 점에 이의를 가진 사람이 없을 줄 안다. 여기서 씨의 작품을 일일이 검 토하자는 것은 지면 관계로나 이 글의 본의로나 감행할 바가 아니로되 「귀 의 성」이며 「혈의 누」등 수개의 명편은 세계문학 수준상에 내놓아도 아 무 손색이 없을 작품을 벌써 30여 년 전에 이 암흑한 조선 사회상에 내어던 졌다. 내어던지기는 하였지만 받아 줄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외로운 선 구자의 생애를 보내고 그의 작품조차 지금은 구해 보기가 힘든다.

조선 평민 계급의 대두와 함께 일어섰던 이 선구자가 외로이 간 뒤 조선의 소설계는 한동안 암흑하였다. 그 뒤에 국초가 낳아 놓은 유아를 양육하려고 나선 유모가 春園[춘원] 李光洙[이광수] 씨다.

춘원은 유모이지 산모가 아니다. 국초가 낳아 놓고 그냥 갔기 때문에 영양 불량이 된 조선 근대소설을 받아서 후대로 넘겨준 그 공적의 위대함은 몰각 할 수가 없지만 과거의 춘원은 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을 산출치를 못하였 다. 이것은 물론 씨가 내내 신문의 책임기자로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씨의 아직껏의 작품이 전부 신문 연재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매우 분망 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근대소설의 붓을 잡을 시간이 없었던 탓이 겠지만 씨의 작품이 전부 한낱 저널리즘의 산물인 것은 몰각할 수 없는 사 실이다. 인제 신문사의 관계를 끊고 은퇴한 씨이매 씨의 장래는 주목할 만 한 것이다. 아직껏 근대소설의 傍系[방계]를 더듬어 오던 씨가 자유의 몸이 된 장래에는 어떤 작품을 내어놓을는지 조선 근대소설의 유모의 역할을 하 던 씨가 산모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 한 사람뿐이 아닐 것이다. 흐르는 듯한 문장과 풍부한 어사와 박학과 많은 경력에서 생겨난 지식으로 짜 낸 씨의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을 근근 볼 수 있을 것을 오인은 의심치 않고 기다린다.

이리하여 국초에서 시작되어 춘원을 걸쳐서 내려온 조선의 근대소설은 대 전 후 무리로 일어난 많고많은 신작가들로서 대성할 기미를 한때 보였는데 그것이 조선 경제 파멸에 밀리어 다시 쓰러지는 비운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想涉[상섭], 憑虛[빙허] 등등 건설 초창기의 작가를 비롯하여 朴泰遠[박태 원], 尙虛[상허], 蔡萬植[채만식] 기타 적지 않은 수효의 작가들이 모두 붓 을 쉬거나 혹은 그날그날의 口腹[구복]을 위하여 잡기 싫은 대중소설의 붓 을 잡고 그들의 본업인 근대소설 제작을 중지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한편으로는 소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상까지 수입하 여 조선 근대소설은 한때 혼란을 지나서 파멸의 境[경]에까지 직면하였다. 그렇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다시금 겨우 정로를 회복하려는 길이 보이는 것은 매우 경하할 일이다.

순수문예에 관해서는 언제 다시 붓할 기회를 기다리고 여기서는 언급치 않 거니와 지금의 이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바이다.

近代小說[근대소설]의 型的[형적] 區分[구분][편집]

근대소설을 형적으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형으로 大分[대분]하여 나눌 수 가 있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그 양의 장단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타입에 있어서 혼동할 수 없는 구별점이 있다. 이것을 상론하자면 수책의 巨書[거 서]로도 論了[논요]치 못할 것이니 여기서는 상세히는 말할 수가 없다. 극 히 단축하여 말하자면 장편소설은 ‘인생을 광범한 시각 아래서 보고 거기 서 본 바 비교적 산만한 인생을 재현한 것’이요, 단편소설은 ‘단일한 효 과를 목적하고 최대의 경제 수단으로써 표현한 이야기’다.

이것을 좀 다른 말로 말하자면 읽은 뒤에 산만하고 무거운 느낌을 받는 종 류의 소설은 단편형에 속하는 소설이다.

그런지라 장편형의 소설에 있어서는 많은 에피소드를 끼울 수가 있고 많은 인생 문제를 취급할 수 있고 복잡한 사건을 조리할 수가 있으되 단편소설에 있어서는 단일한 사건을 가장 경제적인 수단으로써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내 도록 그려야 한다.

그 양자의 우열은 쉽사리 논단할 수가 없으되 大凡[대범]으로 보아서 장편 형 소설은 차차 낡아 가고 전 세계적으로 단편형 소설의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연유로 볼 수 있으니 첫째로는 인류의 생활이 점점 복잡다단하여 가기 때문에 유유히 기다란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잠시 의 틈을 내어서라도 읽을 수가 있는 단편형 소설에 기호가 기울어진 까닭이 겠고 또 한 가지로는 역시 인류의 생활의 복잡 때문에 상반한 감을 느끼는 장편형 소설보다도 날카로운 감을 받는 단편형 소설이 아니면 감수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近代小說[근대소설]의 갈 길[편집]

지금 문예의 승리탑 위에 올라선 ‘소설’이 언제까지나 그 영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 형의 소설이 그 옥좌에서 떨어질 때는 어떤 새로운 문예가 그 자리를 점령할 것인가. 이것은 예언의 부류에 속할 자로서 우리 범인류가 감히 용훼할 것이 아니겠지만 이전의 문예의 옥좌를 점령하였던 극시를 차 떨어뜨리고 그 대신 그 자리를 점령하였던 소설은 인 류 감정의 변화와 함께 그 옥좌를 후대의 새로운 형의 문예에게 물려줄 날 이 반드시 올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을 것이다.

한때 전세계를 풍미하였던 특장편소설 (위고의 「레 미제라블」, 톨스토이 의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로망 롤랑의 「쟝 크리스토프」 등)이 차차 그 자취를 감추고 단편소설의 세상이 된 지도 꽤 오래다.

음녀의 마음같이 한 때도 한 군데 머물러 있기를 싫어하는 ‘인생’인지라 지금 그렇듯 좋아하던 소설도 장차는 반드시 싫어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리고 소설은 역사적 문예물로 인정될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때는 어떤 형의 문예가 인류의 꽃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날는지 이 커다란 수수께끼를 남겨 둔 채 개념적 소설 강화의 붓을 놓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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