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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한국의 종교/한국의 불교/한국불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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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종파〔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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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佛敎-宗派〔槪說〕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상과 불경(佛經)을 전한 것에서 비롯된다. 고구려의 전래보다 12년 뒤인 침류왕(枕流王) 원년인 384년에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와서 백제에 불교를 전하였다.

신라에의 불교전래는 자못 수난을 겪은 바 많았으나 법흥왕(法興王) 14년(527)에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고비로 하여 공인되었다.

3국시대의 불교 전래는 국가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국가 중심적인 종교로 되었으므로 호국적(護國的)인 성격을 강하게 풍기게 되었다.

개인적인 치병(治病)이나 구복(求福)도 포함되지만 국가의 발전을 비는 호국신앙(護國信仰)이 강렬하였다. 나라를 보호한다는 유명한 인왕경(仁王經)을 위주로 한 백좌강회(百座講會) 의식이 성행하였고, 이를 통하여 국태민안을 기도하였다.

백제나 신라의 많은 절이 호국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특히 왕흥사(백제)·황룡사(신라)는 호국의식을 전담한 사찰로서 그 규모는 대단하였다. 국가 위주의 불교는 종파성립에도 큰 영향을 미쳐 삼국시대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종파는 계율종(戒律宗)이었다. 백제의 겸익(謙益)과 신라의 자장(慈藏)이 대표적인 계율종의 인물이었다.

특히 자장은 대국통(大國統)으로서 신라불교를 총관장했다. 고구려에서는 말기에 보덕(普德)이 중심이 되어 도교(道敎)의 불로장생사상을 척파하기 위하여 모든 중생은 영원불멸의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는 열반종(涅槃宗)을 세우기도 하였다.

통일 이후 의상(義湘, 625∼702)에 의하여 화엄종(華嚴宗)이 개종(開宗)되었으며, 그는 중국 화엄의 대종장인 지엄(智儼)에게 수학한 이후 귀국하여 영주에 부석사(浮石寺)를 창건, 화엄종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입당유학을 하지 않고 학승으로 숭앙받은 원효(元曉, 617∼686)는 법성종(法性宗)을 분황사(芬皇寺)에서 개창했으며, 법성종을 내세웠다고는 하나 화엄종, 기타 어느 종에도 치우침이 없었다. 그의 시호인 화정(和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일체를 화(和)로 통일시키려 했으므로 그 종을 해동종(海東宗)이란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는 유가론(瑜伽論)과 유식론(唯識論)을 중심교학으로 연구체계화한 법상종(法相宗)이 진표(眞表)에 의하여 금산사(金山寺)에서 개종되었다.

진표는 미륵신앙이 강하였으며 미륵설계와 점찰법(占察法)으로 민간을 선도하였는데 대단한 교세를 이룩하였다.

위의 교종의 여러 파는 귀족사회에 환영을 받은 바 있지만 신라사회를 휩쓸었던 것은 미타신앙(彌陀信仰)인 정토교(淨土敎)의 형성이다.

이것은 원효의 무애가(無碍歌)·무애춤에서 전교가 비롯된 신라 민중신앙의 대맥을 이룩하였던 것이다.

8세기 말∼9세기 초부터 선종(禪宗)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다른 종파가 소의경전(所依經典)에 의하여 그 종파의 특색을 나타내는 데 반하여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것이다. 천만언설(千萬言說)에 의하지 않고 다만 직지인심(直指人心)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종파이다.

이와 같은 선종은 달마(達磨)에 의하여 중국에 유입되고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의하여 가장 성하였다.

신라에는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 632∼647) 때 전래되어 헌덕왕(憲德王:재위 809∼826) 때 도의(道義)에 의하여 크게 떨쳐 신라 9산(山)을 이룩하였는데 그 9산은 보림사(寶林寺)를 중심으로 도의(道義)가 개산(開山)한 가지산(迦智山)파, 실상사(實相寺)를 중심으로 하여 홍척(洪陟)이 개산한 실상산(實相山)파, 대안사(大安寺)를 중심으로 하여 혜철(惠哲)이 개산한 동리산(棟裡山)파, 굴산사를 중심으로 하여 범일(梵日)이 개산한 사굴산파, 봉림사(鳳林寺)를 중심으로 하여 현욱(玄昱)이 개산한 봉림산파, 흥녕사(興寧寺)를 중심으로 하여 도윤(道允)이 개산한 사자산(獅子山)파, 봉암사(鳳岩寺)를 중심으로 하여 지선(智詵)이 개산한 희양산(曦陽山)파, 성주사(聖住寺)를 중심으로 하여 무염(無染))이 개산한 성주산파, 광조사(廣照寺)를 중심으로 하여 이엄(利嚴)이 개산한 수미산(須彌山)파이며, 앞서 교종과 합칭하여 5교9산(五敎九山)이라고 한다.

고려조에 와서도 5교9산이 유지되다가 의천(義天, 1055∼1101)이 천태종(天台宗)을 세우므로 9산이 합쳐 조계종(曹溪宗)이 되어 5교양종으로 이룩되었다.

조선 태종(太宗:재위 1400∼1418) 때 종파 통합을 꾀하여 7종(曹溪·天台·華嚴·慈恩·中神·摠南·始興)으로 하고 더욱 조직적인 통합을 하여 선교(禪敎) 양종으로 하였다. 선종은 봉은사(奉恩寺)가 본사가 되어 천태·총남·조계의 3종이 합치고, 교종은 봉선사(奉先寺)가 본사가 되어 화엄·자은·중신·시흥의 5종이 통합하여 선교 양종의 면목을 세웠다. 그러다가 1911년 일본의 사찰령(寺刹令)으로 불교교단은 31본사제(本寺制)로 화하고 본사 주지는 총독, 말사(末寺)는 도지사·군수가 명하게 하여 해방될 때까지 유지하였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고유성을 되찾는 운동이 전개되어 1954년에서 1962년까지 승단정화(僧團淨化)의 기치를 내세워 62년 4월 12일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발족되고 25교구(敎區) 본산제도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대처(帶妻) 측은 끝내 불응하여 대한불교 태고종(太古宗)을 별립(別立)해 나갔고, 조계종단은 교세를 단합하여 한국불교가 직면한 3대불사(도제양성·포교사업·역경간행)에 박차를 가하였다. 앞서 조계종 이외에도 18종의 신흥불교가 우후죽순격으로 파생되어 이를 간결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법화신앙계(法華信仰系)를 중심으로 한 대한불교법화종·한국불교법화종·천태종·불입종·일승종(一乘宗)이나, 밀교(密敎)를 중심으로 한 진각종(眞覺宗)·진언종(眞言宗) 정토신앙계(淨土信仰系)를 중심으로 하는 대한불교용화종·정토종·법상종·미륵종·천화불교 등이며, 원효를 중심적 사상으로 하는 새 종파가 있는데 원효종·화엄종·총화회 등이며, 이외에도 등록되지 않은 단체로 영산법화사관음종·구세불교가 있고, 비구니교단(比丘尼敎團)으로는 보문종(寶門宗)이 1972년에 등록을 필하였다. 불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불교를 내세우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신흥불교인 원불교도 있다.

<吳 法 眼>

열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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涅槃宗

신라의 무열왕(武烈王:재위 654∼661) 때에 보덕(寶德)화상이 개종한 것이다. 보덕은 본래 고구려 용강현(龍崗縣) 사람이다.

고구려에서 반룡사(盤龍寺)에 주석하였다. 당시 보장왕(寶藏王)이 도교를 혹신(惑信)하였다.

보덕은 말하기를, 도교를 신앙하면 국조가 위태하다고 간청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비래방장(飛來方丈)으로 백제 완산주 고달산(孤達山)에 이주해 경복사(景福寺)를 창건하여 열반종풍의 근본도량을 세웠다.

보덕화상의 제자 중에 11인의 상수제자가 8대 가람을 창건하였는데 금취(金趣)는 금동사(金銅寺),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은 진구사(珍丘寺), 지수(智藪)는 대승사(大乘寺), 일승(一乘) 및 그의 제자 심정(心正)은 대원사(大原寺), 수정(水淨)은 유마사(維摩寺), 사대(四大)와 계육(契育)은 중대사(中臺寺), 개원(開原)은 개원사(開原寺), 명덕(明德)은 연구사(燕口寺)를 지었다.

조선 세종 6년(1424)에 7종을 폐합하여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개편할 때 조계(曹溪)·천태(天台)·총남(摠南)의 3종을 합하여 선종이라 하였다. 또한 화엄·자은·중신(中神)·시흥(始興)의 4종을 합하여 교종이라 하였다. 열반종의 근본도량은 경복사를 삼아 18사를 내렸다.

계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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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律宗

신라 자장율사에 의해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창시됨. 남산종(南山宗)이라고도 한다. 자장은 당나라 남산 운제사(雲際寺)에서 율종을 수학하였으며, 귀국 후 대국통이 되어 신라 승관제도의 최고 위치에 있으면서 승률(勝律)을 바로잡았다. 또한 자장은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하여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고 율종의 본질을 표방하여 매월 15일마다 포살(布薩)·설계(說戒)하여 5부승니(五部僧尼)를 다스렸다.

법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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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性宗

법성종, 즉 해동종(海東宗)은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대사가 개창하였다. 분황사(芬皇寺)를 근본도량으로 하였으며, 고려 광종 이후에는 개성 왕륜사(王輪寺)를 본사로 하였다. 이 종파의 소의경전은 <화엄경> 외에도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과 <대집경(大集經)>이 있다.

이 법성종은 화엄종·범상종과 같이 그 종세가 융성하지 못하고 고승대덕도 나오지 못하였다. 조선 세종 6년(1424)에 5교양종으로 폐합할 때까지 존립하였다.

화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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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宗

의상이 문무왕 10년(670) 개종한 종파.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므로 화엄종이라 한다. 개산조(開山祖) 의상대사가 영주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여 근본도량으로 정하였으며, 부석종(浮石宗)·의상종(義湘宗)이라고도 한다.

의상은 진평왕 46년(624)에 탄생, 29세 때 황룡사에서 득도하여 무열왕(武烈王) 2년(655)에 입당, 지상사(至相寺) 지엄(智儼)에게 수학하였다.

의상대사의 교화를 입은 3,000 제자 중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源)·상원(相源)·능화(能和)·의적(義寂) 등 화엄10성(聖)이 배출되었다.

부석사의 창립을 본 후 의상의 제자 혹은 그 법손(法孫)들의 손을 거쳐 이룩된 절로 원주의 비바라사(毘婆羅寺), 가야의 해인사(海印寺), 동래 범어사(梵魚寺), 비슬의 옥천사(玉泉寺), 남원의 화엄사(華嚴寺) 등 10대 사찰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화엄종의 교단은 대단하였다. 특히 해인사는 의상의 법손 신림(神琳)의 제자 순응(順應)에 의하여 이룩되었고, 화엄사는 의상의 법손인 연기(緣起)조사가 이룩하였다.

신라 말까지 계속 화엄대덕이 나왔는데 숭복사(崇福寺)의 쾌언(快言), 세달사(世達寺)의 신림(神琳)이 유명하였다. 또한 법융(法融)·범체(梵體)·융질(融質)·담림(曇林)도 화엄의 강백이다.

고려 광종(光宗) 때 화엄종의 균여(均如)가 교세를 크게 떨쳤다. 연산의 개태사(開泰寺), 개성의 귀법사(歸法寺)·법수사(法水寺)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합천 반야사(般若寺)·홍호사(弘護寺)가 이 화엄종 교단이며, 조선 태종 6년에는 화엄종 도문종 합류 43사(寺)가 되었다.

법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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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相宗

이 법상종은 유가론(瑜伽論)과 유식론(唯識論)을 소의 경전으로 하므로 유가종·유식종이라고도 한다. 진표(眞表)가 경덕왕 때 금산사(金山寺)에 근본도량을 개창하여 그 문하에서 영심(永深)·보종(寶宗)·신방(信芳)·체진(體珍)·진회(珍悔)·진선(眞善)·석충(釋忠) 등 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다. 영심(永深, 혹은 義信)은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를 창건하였다. 영심의 제자 심지(心地) 왕사가 동화사(桐華寺)를 창건하여 진표의 점찰법회를 계승하였다.

유가종의 사찰은 국녕사(國寧寺)·웅신사(熊神寺)·장의사(莊義寺)·법주사·중흥사·유가사가 있으며 이 종파는 신도조직으로서는 수정결사(水晶結社)가 있었다.

천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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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台宗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개성 국청사(國淸寺)에 주석하면서 예종(睿宗) 4년(1109)에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대각국사는 화엄종 출신이었으나 천태종의 소의경전 <법화경>과 그 교단인 사교삼관(四敎三觀)을 내세웠다. 그의 제자 중에 원묘(圓妙)국사가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구성하여 적극적인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천태종의 특징은 천태(天台)·조계(曹溪)·화엄(華嚴)·정토(淨土)가 혼융되었고 본종 총본사는 국청사(國淸寺)이며, 남숭산 선봉사(僊鳳寺), 북숭산 신광사(神光寺) 등 6본사가 있는데 이것은 천태 6파의 근본도량이다.

의천의 문하에 덕린(德麟)·익종(翼宗)·경란(景蘭)·연묘(連妙)가 있었으며 뒤에 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 등으로 나누어졌다.

실상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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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相山派

실상사(實相寺)는 현재 전라북도 남원시의 입석리 지리산(智異山)에 있는 절이다. 826년, 즉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 당에 구법한 홍척(洪陟)이 귀국하여 선(禪)을 중심으로 종파를 개산(開山)하였다.

홍척은 교가(敎家)에서 수법하는 문자교설에 의지하지 않고 불립문자(不立文字)·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견불(見性成佛)을 소의로 하는 선가(禪家)의 불교교단을 창종했다. 그는 입당하여, 마조(馬祖)의 상수제자였던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달마(達磨)의 불립문자인 선종심법(禪宗心法)을 배웠다. 귀국하여 흥덕왕과 당시 상대등(上大等)의 위치에 있던 선강(宣康)태자의 숭앙을 받아 그의 종풍을 떨쳤다.

홍척의 시호는 증각(證覺)이며 탑호는 응료(凝廖)이다. 그에게는 편운(片雲)·수철(秀澈) 등 제작자 1,000여 명이 있었으며 수철의 제자로서는 음광(飮光)이 있었다.

실상산파는 신라 경문왕과 헌강왕의 숭앙을 받았으며 그 종파는 날로 발전하였다.

가지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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迦智山派

본산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에 있는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이다.

개산조인 도의(道義)국사는 헌덕왕 5년(813) 입당하여 광저우(廣州) 보단사(寶壇寺)에서 구족계를 받고 조계산 육조(六祖)대사의 영당을 참배하였다. 다음 강서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서당 지장(西堂智藏)에 인가를 받았다. 그 후 귀국하였으나 신라에서 선법(禪法)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설악산에 진전사(陳田寺)를 세우고 일생을 은거하였다.

도의의 법을 받은 승려가 염거(廉居)이며, 염거는 다시 체증(體證)에게 전하고, 체증은 전남 가지산에 들어가 보림사를 개창하여 도의국사의 선풍을 선양하였다. 또한 가지산 보림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교단은 진전사(陳田寺)·억성사(憶聖寺)·운문사(雲門寺)·인각사(麟角寺), 군위 법주사(法住寺)·구산사(龜山寺)·안화사(安和寺)·경암사(璟岩寺)·지곡사(池谷寺), 해양 무양사(無陽寺)·불일사(佛日寺)·무위사(無爲寺), 개성 송림사(松林寺) 등인데, 가지산문의 소속사찰이 아닌가 한다.

사굴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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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梵日)국사가 문성왕 8년(846)에 개산하였으며 9산 중에 가장 번창하였다. 그 옛자리는 현재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확산리에 있다.

개산조 범일은 품일(品日)이라고 하며 양산사(陽山寺) 지증비(智證碑)에는 고산일(孤山日)이라고 되어 있다. 속성은 김씨이며 구림인(鳩林人)이다. 헌덕왕 2년(810)에 출생하여 15세에 출가, 입당하여 염관제안에 사법하여 문성왕 8년(846)에 귀국하였다. 그 뒤 계속 굴산사에 주석하여 경문왕·헌강왕·정강왕의 3왕으로부터 존숭을 받았다.

문하에 개청(開淸)·행적(行寂) 등 소위 10대 제자들이 사굴산파를 선양하였다. 개청의 제자는 신경(神鏡)·총정·월효·환언(奐言)·혜여(惠如)·명연(明然)·홍림(弘琳) 등 수백인이 문풍을 유지 상승하였다.

사굴산 행적의 문하에도 신종(信宗)·주해(周解)·임엄(林儼)·양경(讓景) 등 500여 명의 제자가 종파를 전승하였다. 양경은 신라 헌강왕의 외숙으로, 그는 행적의 뒤를 이어 건성원(乾聖院)에 종풍을 선양하였다. 이 양경이 태백산에 백월비(白月碑)를 세운 지 160년이 지난 뒤 굴산문에 유명한 종장이 나왔는데 광명사(廣明寺)에 있었던 혜조이다. 그는 입송(入宋)하여 정인(淨因)선사에 법을 얻어 귀국하여 사굴산 종풍을 빛내다가 순천 계족산에 정혜사(定慧寺)를 세웠다. 문하에 지인(之印)·탄연(坦然)·영보(英甫)·이자현(李資玄) 등 수백인의 명승이 나와 사굴산을 빛낸다.

특히 불일보조(佛日普照)가 사굴산파에서 나와 조계 9산의 중흥조가 되었다. 보조는 팔공산 정혜사(定慧社)를 신종(神宗) 3년(1200)에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로 옮겼으며, 의종(熙宗) 원년(1205) 송광의 중창공사가 이룩되어 120일간의 경찬법회를 베풀고 희종의 명에 의하여 송과산 정혜사는 조계산 수선사(曹溪山修禪社)로 개칭되어 조계종 굴산파의 제2 본산이 되었다.

동리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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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裡山派

신라 문성왕(文聖王) 원년(839)에 혜철(惠哲 혹은 慧澈)이 귀국하여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泰安寺)에 동리산파의 선종을 개산하였다. 개산조 혜철은 속성이 박씨이며 경주인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처음 부석사(浮石寺)에서 화엄(華嚴)을 배웠다. 헌덕왕(憲德王) 5년(813)에 입당(入唐)하여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선법(禪法)을 배워 인가를 받았다. 26년간이나 당에 있었으며 문성왕 1년(839)에 귀국하여 태안사에서 교화에 전력을 다하다 경문왕 1년(861) 77세로 시적(示寂)하였다. 시호는 적인(寂忍)이다. 그 문하에 도선(道詵)·여(如) 등 수백 인의 제자가 있어 동리산의 선맥을 유지, 현양하였다.

특히 도선은 15세때 구례 화엄사(華嚴寺)에서 득도하여 화엄경을 수업하다가 동리산 혜철에 입시하여 무설지설(無說之說)과 무법지법(無法之法)을 품수받아 견성하여 등리산을 영도하였으며, 도선의 제자 중 경보(慶甫)는 후백제 견훤(甄萱)의 추앙을 받아 종풍을 선양하였다.

이상 혜철·도선·경보 등은 모두 화엄종 사찰에서 득도한 다음 선종법(禪宗法)을 계승하였으므로 후세에 와서도 동리선사(桐裡禪寺)와 화엄강사(華嚴講寺)와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성주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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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住山派

성주산은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성주사 옛터가 그것이다. 신라 문성왕 8년(846) 개산하였으며, 개산조는 무염(無染)이다.

무염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이며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법성(法性)에 의하여 득도하였다. 그 뒤 부석사 석증(釋證)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다. 헌덕왕 13년(821)에 입당하여 마조의 문하 마곡보철(麻谷寶澈)로부터 심법을 얻었다.

문성왕 8년(846)에 귀국하여 왕자 흔(昕)에 의하여 충남 남포(藍浦) 오합사(烏合寺)에 주석하여 선풍을 날렸는데 문성왕이 사액(賜額)을 성주사(聖住寺)로 내렸다.

경문왕·헌강왕 두 왕의 국사가 되어 무설토(無舌土)의 정전문법(正專門法)을 열어서 종지를 선양하였다. 진성여왕 2년(888) 향년 88세로 시적하여 대랑혜(大朗慧)란 시호를 받았다. 문하에 승량(僧亮)·보신(普愼)·순차(詢叉)·심광(心光) 등 2,000여 인이 있어 종풍을 유지 현양하여 성주산문의 한파를 이루었다.

사자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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獅子山派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사자산에 흥녕사지(興寧寺址)가 있다. 개산조는 철감(哲鑑)국사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제자 증효(證曉)에 의하여 사자산문의 교단이 형성되었다.

철감은 신라 원성왕 13년(798)에 태어나서 18세 때 황해도 귀신사(鬼神寺)에서 득도하고 헌덕왕 17년(825)에 입당, 남천보원(南泉普願)에게 사법하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하여 쌍봉사(雙峯寺)에 주하면서 종풍을 선양하였다.

이 사자산파의 제2조인 증효는 본래 화엄종 대덕 오관산사(五冠山寺) 진전(珍傳)에 의하여 득도한 사람인데 이 파에 들어온 것이다.

증효는 철감에게서 수법한 이후 지팡이와 바루만을 갖고 정처없이 방랑 수양하였다. 이를 본 전 국통 위공(威公)이 곡산사(谷山寺) 주지로 천거하였으나, 증효는 번거로운 도시 생활을 피하여 주지직을 사양하였다.

그후 사자산 석운(釋雲)선사의 처에 의하여 사자산 흥녕원(興寧院)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증효선사를 크게 도왔다. 문하에 여종(如宗)·홍가(弘可)·이정(理靖)·지공(智空) 등 1,000여 인이 있어 유법을 계승하였다. 이 산파의 명승으로 개성 용암산 오룡사(五龍寺)에 법경(法鏡)대사가 있었는데 해동 사무외대사(四無畏大師)라는 별명을 받았다.

희양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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曦陽山派

신라 헌강왕 7년(881)에 도헌(道憲)국사가 개산하였다. 즉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희양산 봉암사(鳳岩寺)이다.

도헌은 처음에는 화엄종의 대덕인 부석사 범체(梵體)에게 득도하였으며 그 뒤 혜은(慧隱)선사로부터 선법(禪法)을 받았다. 단월(檀越) 신도였던 심충(深忠)의 시지(施地)인 희양산에 봉암사를 세우고 종풍을 세웠다.

도헌이 시적한 이후에도 성촉·민휴(敏休)·양부(楊孚)·계미(繼微) 등 수백 인의 제자가 속출하여 희양산문을 떨쳤다.

이 파의 사찰은 봉암사만이 아니라 유점사(楡岾寺)·보경사(寶鏡寺)도 속한 것이 아닌가 한다.

봉림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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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林山派

봉림사는 현재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다.

신라 효공(孝恭)왕 때 개산하였다. 개산조 현욱(玄昱, 혹은 玄育·玄旭이라 한다)은 입당구법하여 마조의 제자 장경회휘(章敬懷揮)로부터 심법(心法)을 받아 귀국하였다.

처음에는 광주(廣州)에 있는 혜목산(惠目山) 고달원(高達院)에 주하면서 선풍을 대자(大慈)하였다.

또한 현욱은 민애·신무·헌안·경문 등 역대왕의 귀의를 받고 크게 종풍을 떨치다가 경문왕 10년(870)에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제자 중 진경(眞鏡)이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봉림산사(鳳林山寺)를 창건하여 종풍을 빛내니 봉림산파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진경은 혜목산에서 수선하는 현욱을 찾아 득도하고 계승전법한 것이다. 진경의 제자에 경질(景質)·융체(融諦) 등 500여 인이 있었는데, 융제는 진경에게 사법(嗣法))한 이후 달성군 팔공산 삼랑사(三朗寺)에 주하면서 봉림산의 종풍을 날렸으며, 융제의 제자 찬유(璨幽)는 경문왕 9년(869)에 출생하여 13세에 출가하고 22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진성여왕 5년(891)에 입당하여 석두(石頭)의 법손 대동투자(大同投子)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가지고 귀국하여 고려 태조의 숭앙을 받아 봉림파를 튼튼히 하였다.

수미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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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彌山派

이 파(派)는 황해도 해주군 수미산 광조사(廣照寺) 옛터에 있었던 선종의 한파이다. 9산 중에서 최후에 개산되었으며 고려 태조 15년(932)에 개산하였다. 개산조 이엄(利嚴)은 태조의 왕사로서 해동 사무외대사란 칭호를 받은 바 있다.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탄생하여 12세에 가야갑사(伽耶岬寺) 덕량(德良)대덕으로부터 득도하여 진성여왕 9년(895)에 입당, 동산양개(洞山良介)의 제자 운거도응(雲居道膺)에 구법하였다. 효공왕 14년(910)에 귀국하여 영각산(靈覺山)에 주석하였다. 그 뒤 고려 태조가 해주의 수미산에 광조사를 세워 주지로 모셨다. 이엄은 수미산에서 동산(洞山)의 종풍을 내세워 그 문도가 한없이 배출되었으니 현조(玄照) 등은 사법전승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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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曹溪宗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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沿革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

신라시대 및 고려시대를 통하여 내려오면서 통일된 종단 구성이 되지 않았으나 다만 5교 9산 등 12종파로 전승되어 왔다. 5교는 교종(敎宗)으로서 열반종·율종·법성종·화엄종·법상종이며, 9산은 선종(禪宗)으로서 실상산(實相山)·가지산(迦智山)·사굴산·동리산(桐裡山)·성주산(聖住山)·사자산(獅子山)·희양산(曦陽山)·봉림산(鳳林山)·수미산(須彌山)이고, 5교는 다시 남산종(南山宗)·삼론종(三論宗)·성공종(性空宗)·원융종(圓融宗)·자은종(慈恩宗)·유식종(唯識宗)·유가종(瑜伽宗)으로 파생하여 앞서의 5종과 함께 12종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고려 말에 이르러 태고보우(太古普愚)국사에 의하여 5교 9산을 통합하여 조계종을 창종케 하였다.

이것은 보조(普照)국사에 의한 선교일치(禪敎一致)사상을 실천 수립한 것이며 이조에 들어오자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말미암아 명백만 유지한 선교양종은 임진왜란 때까지 팔도 도총섭제도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임진왜란에서부터 한말(韓末)까지 남북총섭(南北摠攝) 시대는 선종과 교종이 양립되어 선종은 조계종·천태종·총남종(摠南宗)이 되어 봉은사(奉恩寺)에서 관할하고, 교종은 화엄종·자은종·중신종(中神宗)·시흥종(始興宗)으로 되어 봉선사(奉先寺)에서 통할하였다. 사찰령(寺刹令)이 1911년에 내리자 31본산제도(本山制度)가 확립되고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 뒤 1913년 31본산 연합사무소 위원장제도가 실시되고 1923년에는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朝鮮佛敎中央敎務院) 이사제도가 실시되었다.

또한 선교양종을 통합하여 조선불교조계종(朝鮮佛敎曹溪宗)이 설립되어 본산주지는 총독인가, 말사주지는 지사(知事)인가 사항이었다.

그 당시 이룩된 31본산은 봉선사(奉先寺)·봉은사(奉恩寺)·전등사(傳燈寺)·용주사(龍珠寺)·법주사(法住寺)·마곡사(麻谷寺)·위봉사(威鳳寺)·보석사(寶石寺)·백양사(白羊寺)·화엄사(華嚴寺)·선암사(仙岩寺)·송광사(松廣寺)·대흥사(大興寺)·고운사(孤雲寺)·김룡사(金龍寺)·은해사(銀海寺)·동화사(桐華寺)·기림사(祇林寺)·해인사(海印寺)·통도사(通度寺)·범어사(梵魚寺)·월정사(月精寺)·건봉사(乾鳳寺)·유점사(楡岾寺)·석왕사(釋王寺)·귀주사(歸州寺)·보현사(普賢寺)·영명사(永明寺)·법흥사(法興寺)·패엽사(貝葉寺)·성불사(成佛寺) 등이 있고, 1,384말사(末寺)가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도행정단위로 도종무원(道宗務院) 제도가 실시되었으며, 1954년에서 1962년까지 승단정화를 내세운 비구(比丘)·대처(帶妻)간의 분규가 야기되었으나 1962년 4월 12일 대한불교조계종의 통합종단이 발족하여 25교구 본사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동년 12월 14일 부터 불교재산관리법에 의거하여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종단등록을 하였다.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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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理

부처님의 교설에 귀의하여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세상에 널리 펴서 원만한 행동을 실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조계종단은 신라 도의(道義)가 창종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普照)국사의 중흥을 거쳐 태고보우(太古普愚)국사의 사상을 계승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을 종지로 하고,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전등법어(傳燈法語)>로 하며 기타 경전의 연구와 염불·송주(誦呪) 등은 제한하지 않는다.

출가승은 구족계(具足戒)와 보살계(菩薩戒)를 수지(受持)하고 수도에 전념 해야 하며 신도는 재가5계(在家五戒) 또는 보살계를 수지하여 3보를 호지하여야 한다.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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機構

종단의 중앙 종정(宗定)기관으로 총무원이 있으며 종단의 감사기관으로서는 감찰원이 있다. 의결기관은 중앙총회가 맡는다.

종단의 상징적인 대표자는 종정(宗正)이며 행정적인 책임수행은 총무원장이 한다. 종정의 자문위원으로서 장로원(長老院)이 있다.

조계종은 해외포교에 적극적인 열을 기울여 1965년 재일홍법원(在日弘法院)과 71년에는 홍콩흥법원을, 또한 미국에서도 혜능사(惠能寺)·조계선당(曹溪禪堂)·삼보사(三寶寺)를 창간하여 포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종단의 육영기관으로는 동국대학교를 위시하여 명성여자중고·대동상업중고·동대부속중고·해동중고·학산여중·금정중·광동산림중고·보문중고·금산중고·정광중고·농인중고·보광중·홍제중 등의 중고등학교가 있으며, 초등학교로서는 은석초등학교가 있다.

또한 사회 사업기관으로 봉은보육원·낙산보육원·대원유치원·선학원 유치원 등이 있다. 산하단체로서는 전국신도회·대한불교청년회·대학생불교연합회·전국관음회·달마회·거사림회·원각회·룸비니학생회·마야부인회·대동염불회 등 무수한 단체가 있다.

한국불교태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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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佛敎太古宗

1970년 4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1의 7에서 박대륜(朴大輪) 대종사가 창종.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태고보우(太古普愚)를 종조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석가세존의 자각 각여한 각행원만의 근본정신을 봉체하고 태고종조의 종풍을 선양하여 전법도생함을 근본으로 한다.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조선 초기의 태고보우국사를 종조로 삼아 청허·부휴의 법맥을 이은 태고종은 종단기구로 종정 아래 총무원·감사원·종회와, 상벌·법규·고시의 3위원회를 두고 총무원 아래 5부 3국이 있다.

또한 총무원 예하에 각도 종무원과 사찰이 있으며, 총무원장은 종회의 선거를 통하여 종정의 승인을 얻어 취임하고 주지는 선거에 의하여 종정이 임명한다.

신도조직으로는 중앙에 전국중앙신도회와 지방에 총무원 예하 지방신도회가 있다. 교육문화사업의 일환으로 72년 2월에 불교성전(佛敎聖典)을 간행하였고 기관지인 <월간불교>를 발행하고 있다.

포교활동은 봄가을로 교육자 특별 수련대회를 개최하고, 종로구 사간동 법륜사(法輪寺)를 비롯하여 각 사찰은 일요일 일제히 정기법회를 가진다.

대한불교진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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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眞覺宗

1953년 8월 24일 대구시 소재에서 손규상(孫珪祥) 대종사가 창종하였으며 밀교계(密敎系)에 속한다. 법신대일여래를 교주로, 육자진언을 본존으로, 손규상 대종사를 종조, <대일경>·<금강정경(金剛頂經)>·<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법신비로자나불의 체(體)가 되는 육대(六大)와 법신불의 상(相)이 되는 사만(四蔓)과 법신불의 용(用)이 되는 삼밀(三密)로 유위무위(有爲無爲) 일체의 이치에 대비(大悲), 결정 용예하여 일체 마군에게 항복받고 외도를 제어하는 현세정화와 즉신 성불함에 있다.

1947년 6월 14일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 동림촌에서 손규상 대종사가 개종, 49년 12월 심인불교(心印佛敎)라 칭하고, 53년 8월 대한불교 진각종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대종사의 위(位)에 올랐다.

63년 10월 손규상 대종사가 입적 후 손대련(孫大鍊) 종사가 대종사에 오르고, 64년 3월 종제 개편 후 초대 총인(總印)에 추대되었다.

68년 12월 총인원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22에 이전하고 본부내에 종조전과 종조비를 세웠다. 72년 6월 손대련 총인의

퇴임 후 박을수(朴乙守) 종사가 통리원장(統理院長)에 피선되었고, 그후에는 배신(裵信) 총인과 김철(金哲) 통리원장이 종단을 이끌어 갔다.

총인원 아래에 3원과 4부, 원의회 아래에 3회가 있으며, 원로기관으로 기로원이 있다. 교육 및 교화사업으로 1945년 4월 대구시 대명동에 심인중학교를 설립하고, 서울교단내에 중앙강원, 지방(서울·대구·부산)에 지방강원을 두어 교역자를 양성하며, 또한 체육부를 두어 심신을 연마시키고 있다.

수행정진으로 삼밀관행법과 무시항송법·시간정진법을 행하여 6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수지 염송한다.

서울 본원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정진수행 공부를 하며 타종단과 같은 의식은 전혀 없이 (불상이 없고 목탁을 사용치 않음) 시시불공·처처불공의 극히 생활화된 예식을 취하고 있다.

중요행사로는 종조멸도제(10월 16일)·해탈절(7월 15일)·열반절불사(2월 15일)·성도절(12월 8일)·종조탄생일(5월 16일) 등이 있으며, 연 2회 교역자 수련과 7일간의 월례불사, 매 일요일 자성일 불사를 실시하고 있다. 행사는 모두 양력으로 시행하며 교역자는 순정(純淨)·편의(便衣) 출가와 순정·세속·재가로 구분한다.

대한불교진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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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眞言宗

1963년 12월 3일 대구시 남구 대봉동에서 손영진(孫榮振) 스님이 창종한 것으로 밀교계에 속한다.

대일여래를 본존불로, 혜통화상을 종조로, <대일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법신대일여래와 관세음보살께 귀명정례하여 육대(六大:본체)·사만(四曼:실상)·삼밀(三密:작용)을 수행 중심으로 한다.

본래 손해봉(孫海棒:中興祖) 스님이 1948년 경상북도 포항에 참회도량을 세우고 포교를 시작한 것이 시원이 되어 54년 4월 울산에 참회원을 만들고, 대한불교 참회당교도회라 명명한 후 유지재단법인을 창설하였다.

63년 12월 포교원으로 등록하였으며, 69년 9월 대한불교 진언종총본원으로 명칭을 변경시켰다. 수행방법으로 '옴마니반메훔' 6자진언과 관자제보살·본심진언·광명진언·유제(維提)진언을 염송한다.

대한불교불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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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佛入宗

1965년 10월 31일 서울 동대문구 숭인동 178의 8 소재 묘각사(妙覺寺)에서 이홍선(李泓宣)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法華思想系)에 속한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부처님의 본회인 교지를 받들어 불지지견개시오입(佛之知見開示吾入)의 교리를 정혜겸수로서 체득하여 국민생활 원리로 삼고 있다. 70년 6월 석굴암 및 28척 대불입상을 조성하고, 72년 4월 종헌종법을 새로이 개정, 72년 10월 포교원에서 본종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기구조직은 종정 아래 교정원과 호법원·감찰원이 있고, 그 아래 각 4부가 있으며, 신도조직으로 전국중앙교도회와 말사 단위의 동(洞)조직 및 군·면의 세부조직을 펴고 있다. 승속의 일치를 꾀하며 수행방법으로 범음(梵音) 진언, '나모살달마푼다리카수드라'를 염송한다.

종전으로 <성전요품(聖典要品)>을 간행하여 교도의 자질을 높이며, 포교문화사업으로 기관지 <범성(梵聲)>을 73년 1월부터 월간으로 내고 있다.

연 2회 교역자 정기수련이 있으며, 매월 3회의 일반법회를 갖는다. <법화경>의 근본교리대로 모든 체제·의식을 갖춘 본종의 특기할 행사로는 10월 신곡제(新穀祭)가 있다.

대한불교법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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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法華宗

1946년 4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 무량사(無量寺)에서 김갑열(金甲烈)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法華思想系)에 속한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대승불교사상을 봉체로 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과 교관겸수(敎觀兼修)로 제세안민과 흥법호국함에 있다. 종단기구는 종정 아래 2원 5회와 4부가 있으며 원로원이 독립되어 있다. 포교는 법화경요품을 중심으로 일요일에 각사찰 단위로 일제히 법회를 보며, 매년 전국 순회포교를 실시하고 있다. 승속의 구분은 없으며 재래 기복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석가모니상만을 모심이 특징이다. 수행방법으로 연 2회 수련대회를 가지며 일반신도는 나무묘법연화경을 수지 염송한다.

한국불교법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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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佛敎法華宗

1969년 5월 31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 2가 233 소재 법화사(法華寺)에서 김혜선(金慧宣) 스님이 창종하였으니 법화사상계에 속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구원실성(久遠實成) 본불인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의 금본교리를 봉지하고 광도중생함에 있다. 법화경요품을 종전으로 하고 있다.

대한불교일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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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一乘宗

1969년 1월 2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9의 33 소재 일승사(一乘寺)에서 최혜정(崔惠正)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에 속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회삼귀일의 일승법으로 파사현장의 보살도를 수행실천한다. 주요 종단기구는 종정(宗正) 아래 종무 전반을 관장하는 총무원(總務院), 규정(糾正) 기관인 감찰원, 의결기관인 종의회(宗議會) 등이 있다.

대한불교천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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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天台宗

1967년 1월 24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18 소재 구인사(救仁寺)에서 박상월(朴上月)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에 속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하며, 대각국사를 종조, <법화경>용수보살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천태의 사상인 회삼귀일·일심삼관·원융불이의 교리와 대각국사의 호국이념에 있어 불교관을 참구신해하고 참선염불하여 정혜겸수각행원만불입합일의 인격완성과 국민사상통일과 사회정화에 공헌하는 데에 있다.

45년 4월 20일 소백산에 구인사(救仁寺)를 창건하고 66년 8월 천태종 대각불교를 창립. 69년 12월 포교원을 본종(本宗)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종단기구는 종정 아래 총무원·감사원·종의회와 그 밑에 4부를 두고 있다.

신도회 조직으로 전국 중앙신도회와 그 아래 각도·시·군 단위 지부·지회가 결성되어 있으며,

신흥종단 중 신도조직이 가장 조직적이며 방대하다.

교화사업으로 70년 1월 천태종약전(天台宗略典)을 발간했으며, 71년 천태종성전이 간행되었다. 포교사업으로 월별로 각 지방을 순회포교하며 각지부별로 신도회 자체의 정기법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주경야독을 수행신조로 삼아 모든 재원은 자체 임야를 개간하여 충당하며 새마을사업과 사회 공익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육영사업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후세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대한불교원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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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元曉宗

1963년 12월 6일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에서 김경담(金敬潭)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원효사상계(元曉思想系)에 속한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원광법사를 종조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대승경전에 의한 견성성불·광도중생을 발원하며 원효대사의 정신을 계승 선양하는 것이다.

1965년 1월 15일 초대 종정에 정수용(鄭壽鎔) 종사가 선임되고 65년 2월 포교원을 총본원으로 개칭했으며, 67년 8월 본부를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배리 495로 이전했다. 70년 11월 민속신앙신도회를 구성하였으며, 71년 8월경 수용종사를 2대 종정에 재추대. 71년 9월 총본원을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에 임시 이전했다가 1973년 5월 20일 동대문구 창신동 안양암(安養庵)으로 정식 이전했다. 종전으로 67년 5월 <원효종성전>을 발간, 73년 1월 일부 종헌을 개정했다.

대한불교화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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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華嚴宗

1966년 10월 21일 인천시 신흥동 1가 4에서 한영석(韓永錫) 종사가 창종하였고 원효사상계에 속한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원효대사를 종조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대승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여 화엄의 지·관(止·觀)을 닦아 견성 성불하며 또한 염불배(拜)를 하여 왕생을 발원한다. 중앙행정기구인 총무원은 해광사에 있다.


대한불교총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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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總和宗

1969년 12월 30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40에 최득연(崔得淵)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원효사상계에 속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원효대사를 종조로, <금강반야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육화(六和)정신을 닦아서 광도중생함에 있는 것이다.

변운호 종정과 이장호(李章鎬) 총무원장이 종단의 업무를 이끌어 왔다.

대한불교법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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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法相宗

1970년 2월 20일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922 소재 불암사(佛岩寺)에서 전영동(全英東)사에 의해 창종되었으며 미륵·정토사상계(彌勒·淨土思想系)에 속한다. 미륵불을 본존불로, 진표율사를 종조로, <점찰선악경(占察善惡經)>·<미륵상하경>·<음부경(陰符經)>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입상불인 미륵존불의 정신을 이어 받아 미륵십선도(彌勒十善道)의 교리로 속세풍진과 이타공익을 위한 수도입덕으로서 인간생활의 유기적인 상관성 및 부합성을 가지고 국가사회를 위하고 우주 일가를 이루어 지상낙토를 건설함에 있다. 69년 3월 15일 대한불교 법상종 포교원을 설립, 1970년 2월 20일 창종 등록.

초대 종정 전영동사가 71년 입적 후 공백상태였다가 73년 2월 17일 종무회의를 소집, 송인숙(宋仁淑) 스님이 2대 종정에 추대되었다. 기구조직은 종정 밑에 운정(運正:부종정) 2인이 있고 행정기관인 총무원과 도정(都正:원장)·포정(布正:차장)과 5부, 감찰기관인 감찰원에 교정(敎正:원장)·심정(부원장) 및 3부가 있으며, 교학기구로는 교리연구원이 있다. 의식이나 수행하는 방법 등 근래에 와서 체제를 정비하고 미륵홍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사업으로 무격분과(역서인)위원회가 72년 2월 설립되었다.

천화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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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華佛敎

1964년 2월 3일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산 1의 6소재 용운사(龍雲寺)에서 이숙봉(李淑峰)·이희수(李喜秀)·이정봉(李貞峰) 3형제가 창종하였으며 미륵·정토사상계에 속한다. 환희성모(歡喜聖母)를 본존불로, 석가여래를 귀명원불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전미개오의 정법을 펴 제세구중의 원력을 성취하는 데 있다.

종단기구(宗團機構)는 교주 아래 수호원(修護院)·총지원(總持院)·교무회와 각 5부로 구성되었고, 본산(本山) 내에 약쑥탕이 있어 많은 효험을 보며 또한 이를 통하여 교화사업의 일환책을 펴고 있다. 현재의 의로시설을 갖추기 위해 사내의 의료원을 건축하였으며, 교화 방법으로 매월 6일과 29일 정기관음법회를 갖고, 매년 사직공원에서 단군사직대제를 음력 3월 15일과 10월 3일에 봉행하고 있다.

대한불교미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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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彌勒宗

1964년 10월 28일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풍암리 769에서 김홍현(金洪玄)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미륵·정토사상계에 속한다. 미륵불을 본존불로, 진표율사를 종조, <유가경(瑜伽經)>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미륵불을 원불로 하여 미륵정법에 귀의, 중생을 수순하여 제세구중하여 삼강오륜과 천지인 3합으로 선불유(仙佛儒)를 통합함에 있다. 본래 증산(甑山:姜一淳)의 계시로 김계주(金桂朱:洪原)가 1942년 9월 무교(戊敎)로 개교, 46년 무을교(戊乙敎)로 개칭하여 활동하다가 50년 공산당으로 학살당함에 자연해체 상태에 있다가 64년 김홍현 스님이 미륵종으로 변경 등록하였다.

중요행사로는 상감님생신일(上監任生辰日:6월 21일), 염제신농씨제일(炎齊神農氏祭日:6월 15일), 미륵선화 기념치성일(彌勒仙化記念致誠日:6월 24일) 등이 있다.

대한불교정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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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淨土宗

1965년 11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958에서 신동환(申東煥)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미륵·정토사상계에 속한다.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무량수경(無量壽經)>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종지(宗旨)는 승속일치 속에 정토극락발원의 수행관법. 66년 3월 서대문구 불광동 산 42의 1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매년 아미타불제를 봉행하고 있다. 주요행사는 불교의 일반적인 행사인 음력 2월 15일 열반절, 4월 초파일의 석탄절, 12월 8일의 성도절 등이 있다. 종단의 주요기구로는 교무를 통합·관장하는 중앙본부와 최고 의결기관인 교정(敎政)위원회 외에 고시원·사정원 등이 있다.

대한불교용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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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龍華宗

1963년 12월 14일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동 272에서 김덕연(金德淵)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미륵·정토사상계에 속한다. 미륵을 본존불로, 진표율사를 종조,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

종지(宗旨)는 미륵본불의 정신으로 지상불국을 실현하고 미래 용화세계를 구현한다는 데 있다. 66년 3월 27일 전주 원각사에서 실질적 교주 서백일(徐白日)이 사망 후 다소 침체에

빠져 있는 상태다.

대한불교보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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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佛敎普門宗

1972년 7월 6일 서울 동대문구 보문동 3가 168에서 이긍탄(李亘坦) 스님이 창종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대애도니(大愛道尼)를 종조로, <관음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종지(宗旨)는 석가모니불의 근본이념과 보문시현의 관세음보살 구제사상에 의하여 전미개오와 복지사회구현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 유일의 비구니종단인 본종은 1972년 6월 경주 석굴암의 모습을 보문사(普門寺) 안에 재현시키고 72년 8월 재단법인보문원을 설립하여 본 궤도에 올렸다. 종단기구는 종정 아래 3원 2부가 있고 원로기구로 기로원이 있다. 교육사회사업으로 70년 8월 공민학교 겸 강원인 보강원을 설립, 보문양로원을 경영하며 월 1회 걸인을 초청하여 위로회를 연다. 지장회(매월 18일)·관음회(매월 24일)를 열어 포교사업에도 진력하며, 총무원장이 모든 일을 총관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