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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현대극〔개설〕[편집]

中國-現代劇〔槪說〕

중국의 현대연극은 그들의 전통적인 고전극으로 대표되는 경극(京劇)과 각 성(省) 및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지방극(地方劇), 그리고 오늘날 신극에 해당하는 화극(話劇)으로 대표된다.

경극[편집]

京劇

건륭(乾隆) 말년(1795) 곤곡(崑曲:일명 崑劇)의 뒤를 이어 발생한 전통극 중의 하나인 경극(京劇)은 창(唱)·염(念)·주(做)·타(打)의 4요소를 갖추고 있고, '창'은 노래, '염'은 대사, '주'와 '타'는 동작과 연기에 해당한다.

또한 그 등장 인물에는 생(生)·단(旦)·정(淨)·축(丑) 등 일정한 형의 배역이 따로 있고, '생'에도 가령 그 역할에 따라 노생(老生)·무생(武生)·소생(小生)·홍생(紅生) 등의 구별이 있다. 그리고 '단'과 '정축'역(役)에도 각각 그 구별이 있었다.

'생'은 원래 선생(先生)·서생(書生)에서 온 말이고, '단'은 여역(女役), '정'은 장사와 같은 호쾌(豪快)한 역, '축'은 골계(滑稽)와 해학(諧謔)역의 일종이다.

역대의 경극배우로는 '노생'의 명우 청창겅(程長庚), 탄진페이, '단'역(役)에는 메이란팡(梅蘭芳), 정옌츄(鄭硯秋) 등이 유명했고, 현역 배우로는 탄진페이의 손(孫)으로 '노생'역의 탄푸잉(譯富英), '소생'역의 위안스하이(袁世海), '축'역의 샤오창화(簫長華) 등이 일류 명배우로 알려져 있다.

경극의 각본 중에는 대개 역사소설을 각색한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홍루몽(紅樓夢)> 등이 있다. 문화대혁명 이전에는 마먀오보(馬小波) 등에 의한 경극 개량운동이 일어나, 소위 문화대혁명 이후에는 역사극은 자취를 감추고, <홍등기(紅燈記)> <사가병(沙家浜)> <기습백호단(奇襲白虎團)> <지취위호산(智取威虎山)>등 현대를 소재로 한 경극의 작품이 생겼다.

지방극[편집]

地方劇

중국 전토에 걸쳐 무려 2백여 종에 달하는 지방극이 현존하고 있으나, 그 테마 역시 초기에 있어서의 경극과 마찬가지로, 재자가인(才子佳人)과 제왕·재상(帝王宰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어 현대감각에 맞지는 않다. 이들 지방극 중 현재 가장 유력한 것으로는 남방의 월극(越劇)과 북방의 평극(評劇)이다. 전자는 지방극 중 가장 그 역사가 길지 않은 것으로, 중국 저장성 성셴 지방 부근의 민속예능에서 발달, 특히 고전극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의 남녀 애정문제를 다룬 것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양산박(梁山泊)과 축영대(祝英臺)> <서상기(西廂記)> 등이 있다. 후자 또한 허베이성 지둥(冀東)지방의 민속예능에서 발생한 자유로운 형식으로서 그 표정이 밝고 가사가 쉬운 것이 특징이며, 주요 레퍼토리로는 <진향련(秦香蓮)> <유교아(劉巧兒)> 등이 있고, 이들 작품은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 밖에도 중국의 지방극으로는 허베이성의 허베이 방쯔(河北榜子), 산둥성의 여극(呂劇), 산시성의 진극(晋劇), 허난성의 예극(豫劇), 산시성의 진강(秦腔), 안후이성의 휘극(徽劇), 장쑤성의 소극(蘇劇), 상해의 호극, 푸젠성의 민극, 광시성의 계극(桂劇), 쓰촨성의 천극(川劇), 원난성의 전극, 구이저우성의 검극, 내몽고의 이인대(二人擡) 등이 유명하다.

화극[편집]

話劇

전통적인 가무 연극과는 달리 오늘날 중국에서는 신극 대칭으로 화극이 보급되어 있다. 중국의 화극은 1904년 그들의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 조직된 도쿄 춘류사(春柳社)의 창립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때의 창립 멤버로는 쩡지구(曾季谷), 리시스왕(李息霜), 어우양위쳰 등이었으며, 그들은 뒤마 피스의 <춘희(椿嬉)>, 스토 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 등을 상연하고 1907년 본국으로 돌아가 신극운동단체를 조직,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이때 톈한(田漢)과 홍선(洪深)이 이에 가담, 톈한은 남국극사(南國劇社)를 조직했고, 홍선은 미국에서 돌아와 어우양위쳰의 희극협사(戱劇協社)와 톈한의 전기 극단에 관여하며 <오규교(五奎橋)> <향도미(香稻米)> 등의 창작극을 발표, 새로운 화극의 연출체계와 연기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그로 말미암아 북경에서는 1922년 처음으로 신극 배우의 양성을 위한 인예희극전문학교(人藝戱劇專門學校)가 창설되어 중국 최초의 여우(女優) 우루이옌(吳瑞燕)을 배출했다. 1925년에는 다시 미국에서 연극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즈아오타이머우·위상위안(余上沅) 등에 의해 국립북경 예술전문학원이 설립되어 하나의 대학과정의 역할을 했고, 연출지도는 슝포시(態佛西)가 맡았는데, 그는 자작극(自作劇) 외에 입센의 <유령(幽靈)>, 오닐의 <고래> 등 번역극을 연출, 구미 각국의 연극들을 소개했다. 이어서 난징에도 국립희극학교가 설립되어 극작가 차오위와 연출가 잉위언웨이(應雲衛) 등이 교단에 섰다.

당시의 화극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차오위의 <뇌우(雷雨)>와 <일출(日出)> 등이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그 후 1930년 톈한(田漢), 사옌(夏衍), 양한성(陽翰笙) 등이 주동이 된 중국좌인극단연맹이 조직되었으나, 곧 당국의 제재로 해산되고, 1935년에는 진산(金山)·즈아오단(趙丹) 등이 업여극인협회(業餘劇人協會)를 결성했다.

한편 상해와 우한(武漢) 등지에서는 항일전쟁으로 희극선전대가 조직되어 각 전선을 누비며 국방의식을 고취했다. 이때 훙선은 구국연극 제2대대장으로 우한 등지에서 활약, 자작 희극 <비장군(飛將軍)>을 연출·주연했으며 또 충칭(重慶)에선 궈모뤄(郭洙若)의 역사극 <호부(虎符)> <굴원(屈原)> <당체지화>, 그리고 사옌의 <파시스트 세균(法西斯細菌)> <슬픔의 거리> 등이 유명했다.

그 밖에도 충칭시대의 작가와 작품으로는 영국 유학을 마친 딩시린(丁西林)의 <묘봉산(妙峰山)>이 있고, 또 라오서(老舍)의 <잔무(殘霧)>, 양한성의 <이수성(李秀成)의 죽음> <천국춘추(天國春秋)>, 송지적(宋之的)의 <안개 속의 중경> <조국의 소명(召命)을 받고> 등이 있다.

2차대전 후 중국의 현대극은 북경엔 수도극장·인민극장·장안극원, 그리고 상해에선 천섬(天蟾)무대·중국대희원(中國大戱院) 같은 새로운 현대식 극장을 중심으로 상기 여러 작가들의 신작이 상연되다가 그 중 궈모뤄, 톈한, 라오서, 사옌, 양한성, 천바이천(陳百塵), 위링(于伶) 등 대부분의 작가들은 중공의 문화혁명 이후 모진 자기비판을 받고 스스로 그 제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편 오늘날 자유중국의 현대극으로는 중국전통극의 대표격인 경극(京劇)과 대만 고유의 백자희(白字戱)·채다희(採茶戱)·차고희(車鼓戱)·가자희(歌仔戱) 등 그들 고유의 토희(土戱:地方戱)와 아동극으로는 소년 중심의 7각자(七脚仔)와 소녀 중심의 당자반(唐子班) 등이 있다.

대인들의 극단인 대희(大戱)와 노희(老戱)에서는 <삼국지(三國志)> 등에서 취재한 <천수관(天水關)> <황학루(黃鶴樓)> 등 무협극이 아직도 환영을 받고 있다. 또 소년소녀들의 극단에서는 문예희(文藝戱)인 <삼백영대(三伯英臺)> <소군초번(昭君初蕃)> 등이 연출되고, 이 밖에도 소위 문화희(文化戱)로 불리는 구미 각국의 신극이 그들의 현대극에서 자주 상연되고 있다.

<張 漢 基>

작가와 작품[편집]

어우양위쳰[편집]

(1890-1962)

후난성 류양(瀏陽) 출신.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 시절 '춘류사' 동인(同人). 그는 경극(京劇) 여역(女役)의 명우인 메인란팡(梅蘭芳)과 함께 단역(旦役)의 명수이기도 하였다. 텐한(田漢)의 '남국극사'에도 협력하는 한편, 광저우(廣州)에 '광동희극연구소'를 설립, 많은 작품을 상연했다. 대표작 <충왕 이수성(忠王李秀成)> <도화선(桃花扇)> 등의 역사극이 있고, 만년에는 북경중앙희극학원 원장직을 맡고 일생동안 연극 교육에 헌신했다.

궈모뤄[편집]

郭洙若(1891-1977)

문학자·극작가·정치가·쓰촨성 러산(樂山) 출신. 일본 규슈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여자와 결혼했다. 일찍이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귀국 후 문학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극작가로서 여성해방을 테마로 한 <3인의 반역적 여성>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중국 현대극 중 본격적인 사극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후 국민혁명의 문화적 선도자로서 우한·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두 번이나 일본에 망명했으며 2차대전시에는 다시 충칭으로 돌아와 문화공작의 책임을 맡았다. 그때 발표된 희극 <굴원(屈原)>(1942)의 내용은 혁명아 굴원이 중국을 위하여 항쟁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 밖에 <호부(虎符)> <공작담(孔雀膽)> 등의 사극이 있고, <궈모뤄 희곡소설집(郭洙若戱曲小說集)>이 나왔다. 1949년 파리평화회담에 문화인 대표로 참가하고, 중공 정무원 부총리겸 과학원장 등 요직을 거쳤으나, 문화대혁명 초기 모진 비판을 받고 그 동안의 모든 발표작을 스스로 부정하고 나섰다.

톈한[편집]

田漢(1898-1968)

중국의 극작가이며 중국 신극운동의 최고 지도자. 후난성 창사(長沙) 출신. 일찍이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유학하였고, 귀국 후에는 창작극 <카페의 하룻밤>에 이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을 번역 소개했다. 한편 1923년 상해에서는 '남국극사(南國劇社)'를 창립, 본격적인 신극운동을 전개하여 갔다. 그때의 대표작으로는 <명우의 죽음> <호상(湖上)의 비극> 등이 있고, 와일드의 <살로메>, 메리메의 <카르멘> 등을 각색·상연했다. 중국의 많은 신극배우와 무대 관계자들은 대부분 그의 극단 출신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30년대부터 좌익연극에 투신, 많은 창작극과 번역극으로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으며, 고전극 개량운동을 지휘, 경극 현대화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옌[편집]

夏衍(1900-?)

중국 현대의 극작가. 본명은 천된셴(沈端先). 항저우(抗州) 출신. 1929년 루장쑨(陸晶孫)·핑나이차오 등과 상해에서 '예술극사'를 결성해 기관지 <예술월보(藝術月報)>를 편집, 막심 고리키의 작품을 번역·소개했다. 또 <새금화(賽金花)> <자유혼(自由魂)>등의 희곡을 발표했으며, 1937년 이후 항일운동에 참가, 주로 상해에서 그곳 연극인 단체인 구국연극대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그때의 중요작품으로는 <상해야(上海夜)> <파시스트 세균> <슬픔의 거리> 등 일본군 점령하의 상해를 배경으로 한 희곡을 써서 호평을 받았다. 그 밖에도 <이리초(離離草)> <수성기(愁城記)> 등 여러 작품이 있고 위링(于伶)·쑹즈디(宋之的)와 합작해 신극운동을 주제로 한 <희곡춘추(戱曲春秋)>를 내었다. 그 중 그의 대표작인 <새금화>는 문화혁명 때 비판의 대상에 올랐던 작품으로 청말(淸末)과 민국(民國) 초의 기녀(妓女) 새금화(賽金花)가 몽고사가(蒙古史家) 홍균(洪鈞)과 결혼, 홍이 죽자 의화단 사변(義和團事變) 때에 연합군 사령관과 동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생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었다.

차위[편집]

(1909-?)

중국의 극작가. 본명은 완쟈바오(萬家寶). 후베이성 쳰장(潛江) 출신. 청화대학(淸華大學) 영어과에서 희곡을 전공했다. 1934년 <뇌우(雷雨)>로 일약 극단에 데뷔한 그는 국립희극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1936년 <일출(日出)>을 발표, 이어서 1937년에는 난징의 중국 희극학회의 성립과 더불어 중심 인물로 활약했다. 그 해 탈옥수의 거친 애정문제를 소재로 한 <원야(原野)>로 1941년에는 <북경인(北京人)> 등 모두 10회 이상의 상연 실적을 가진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입센·오스트로프스키·체호프·오닐·고리키 등의 영향을 받았던 그의 작품은 풍부한 상상력과 현실적인 박력으로 일반인들의 환영을 독차지했다. 전시에는 우한(武漢)·충칭에서 연극을 지도했고, 전후에 라오서(老舍)와 함께 일시(1946) 미국에서 중국연극을 강의했다. 다시 귀국하여 시나리오와 역사극을 집필하며 중공 정부 직속하에 중앙희극학교 부교장직을 역임했다.

뇌우[편집]

雷雨

차위 작. 전4막. 1934년 <문학계간(文學季刊)>지에 발표하고 이듬해 홍선(洪深)의 소개와 어우양위쳰의 연출로 복구극사(復舊劇社)에서 상연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부유한 광산주(鑛山主)의 한 가정을 배경으로, 몰락해 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인습과 병폐를 폭로한 비극이다. 러시아의 극작가 오스트로프스키의 동명(同名)의 희곡(1860)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영향이 컸던 작품이다.

북경인[편집]

北京人

차위 작. 전3막. 전쟁말기에 널리 상연되었던 중국 현대 희곡 중의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증가 일족(曾家一族)의 멸망해 가는 과정, 봉건적인 가정의 압박에 고민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인류의 조상인 북경인이 현대에 와서 부패하고 침체한 사실을 통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으로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용수구[편집]

龍鬚溝

1950년에 발표된 극작가 라오서(老舍)의 작품. 전3막 5장.

이 작품은 북경 외곽의 룽숴거우(龍鬚溝)를 중심으로 가난하고 따뜻한 근로 대중들의 실생활을 다룬 작품으로, 연출가 쟈오쥐진(焦菊隱)에 의해 다시 개작(改作) 상연되어 큰 갈채를 받은 문제작이다.

<張 漢 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