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매스미디어와 미래사회/매스 커뮤니케이션/통신혁명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통신혁명[편집]

通信革命

기원전 20년, 로마제국에서 비롯된 역체제도(驛遞制度)는 정치적·군사적 목적보다 차츰 경제·사회의 교류를 위한 제도로 바뀌어 개인간의 의사 전달수단으로서 널리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달의 방법으로서 인마(人馬)에 의존하는 한 시간과 거리의 정복은 불가능했다. 2,000년의 역사를 지나 통신혁명은 시작된다. 전기통신의 출현에 따라 시간이 극복된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1세기, 현대에는 아득한 거리의 대륙에 대해서도 국내에서와 마찬가지의 통신이 가능하다. 제2차의 통신혁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구상의 거리의 정복에 성공했고 이어서 우주공간에 도전하게 되었다.문명의 발달은 정치·경제·사회에 걸쳐 그 구조를 변혁(變革)시킨다. 한 나라의 존재는 세계와 따로 분리해서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도시는 더욱 거대화되어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로 되어가고 산업은 고도화·광역화(廣域化)되어 상호연계(상호연계)는 점차 밀접해진다. 통신의 양은 급속히 증가해간다. 세계의 생산량의 증대, 경제활동의 발전은 종래의 비능률적인 전신전화에 대신해서 고속도의 데이터 전송(傳送), 전자계산기(電子計算機)의 이용에 따른 신속한 데이타 처리를 필요로 한다.일상생활의 합리화는 더욱 진전되어 원격감시(遠隔監視)·원격제어(遠隔制御)의 기능을 요구한다. 즉, 전기 통신은 종래의 의사전달에 더하여 정보의 전달, 의사(意思)의 실시 수단으로서의 구실을 맡게 된다. 인간 대 인간의 통신으로부터 인간대 기계, 또는 기계 대 기계의 통신으로 바뀐다. 이와 같은 형태로서 제3차 통신혁명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통신의 시원[편집]

通信-始源

인간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 냈다. 몸짓·손짓이나 말(言語)은 그 수단의 하나이다. 문자의 발명은 시간·공간을 떠난 통신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문자로 쓰여진 편지를 멀리 떨어진 곳에 도달케 하려면 역체(驛遞) 혹은 파발군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속도는 1시간당 고작 15㎞에 불과했었다. 만일 전달하려는 내용을 미리 신호로써 정해두면 빛이나 소리 따위를 이용할 수가 있다. 서부활극에 나오는 인디언의 횃불 혹은 아프리카 토인의 탐탐(길쭉한 북) 따위는 그 한 예이다. 1790년 프랑스 혁명이 한창 중일 때에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 1763-1805)는 되도록 단시간내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것은 탑(塔)의 지붕에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 수평의 가로 막대를 붙이고 그 양쪽 끝에다 가동성(可動性)의 짧은 막대를 단 것으로 탑의 내부쪽에서 로프로 그 막대의 각도를 바꿀 수가 있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이것이 세마포어(semaphore, 信號柱)라는 것이며, 현대적인 통신의 시초가 된다.이 탑은 10㎞ 내지 12㎞마다 설치되어 병사가 망원경으로 이웃 탑의 막대의 모양을 보고 차례로 같은 부호를 다음 탑으로 전달하였다. 1794년 파리와 릴 간에 설치된 세마포어의 처음 메시지는 프랑스군의 케즈노 탈환을 정부에 알리는 것이었다. 영국·네덜란드·프러시아의 대군에 포위된 프랑스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군에게 세마포어를 이용한 정보의 전달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전자기(電磁氣)의 연구가 진전됐다. 이 전자기를 이용해서 알파벳을 송신하는 방법에 대하여서 여러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1832년 뉴욕의 화가 모스(S. F. Morse, 1791-1872)는 프랑스 여행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 대서양 정기 여객선에 때마침 함께 타고 있던 학자로부터 전기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어떤 영감(靈感)을 얻게 되었다. 그는 뉴욕에 돌아오자 곧바로 베일(Alfred Vail)과 협력, 점과 봉선(棒線)의 배열로 문자와 숫자를 표시하고 이것을 송신해서 전자석으로 펜을 움직여 기록을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것이 모스 부호이다. 1845년 1월에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에 전신회선(電信回線)을 만들어서 최초의 모스 부호의 실험을 했다. 이 때에 송신된 말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What hath God Wrought)"이었다.이 말은 1963년 8월 23일 신콤 위성(Syncom, Synchronous Communication Satellite), 즉 정지통신위성(靜止通信衛星)을 통해서 이루어진 미국·아프리카 간의 7만 2,000㎞의 거리를 두고 케네디 대통령과 나이지리아 수상 사이의 통화에서도 이야기되었다. 이 모스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통신의 역사는 비로소 전기통신의 시대로 들어섰다.

통신의 기능과 장래[편집]

通信-技能-將來

우편과 전기 통신은 신선한 문화적 자료를 공급하고 교류하며 소개하고, 때로는 직접 교화(敎化)하고 교육함으로써 지식의 흡수나 상황의 파악 또는 정보의 입수·수용·유출·공급을 가능하게 하였다. 근대통신은 넓게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쉽게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국은 통신사업을 국영으로 하거나, 민영일지라도 충분한 국가관리하에 두고 있다.전기통신의 발달은 전화의 사람 대 사람의 대화에 그치지 않고 전화와 컴퓨터의 결합에 의한 사람 대 기계의 통신, 컴퓨터와 다른 기계와의 통신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전화기 자체가 상대방을 호출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기능에 컴퓨터를 비롯하여 원격 장치 등을 조작하는 신호를 송출(送出)하는 기능, 브라운관 등을 사용한 표시기를 부가(화상 전화)하여 상대의 얼굴이나 문자·기호 등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을 첨가하고 다시 이 표시기에 기록기능을 첨가하면 기록성이 없었던 종래의 결점이 해소되어 통신으로서 구비되어야 할 기능을 완비할 수 있게 되었다. 종래 통신의 주류를 이루었던 우편·전신·전화는 점차 데이터(data) 통신으로 이행되고 있다. 텔레비전이 유선화되고 화상 전화의 수상기(受像機)와 공용되며, 또 기록성이 고도화되면 신문도 이 화상 전화를 통한 송달이 가능하게 되어 통신은 사회활동과 생활행동을 혁신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통신의 국제성[편집]

通信-國際性

우편·전기통신의 발달과 함께 각국간에는 공통된 통일적 취급법을 정립함으로써 국제간 통신의 신속과 실효를 도모할 필요가 인정되었다. 전기통신분야는 65년 파리에서 설립된 만국전신연합(UTU)과 1906년 베를린에서 창립된 국제무선전신연합(IRU)이 32년 마드리드에서 합병되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되었다. UPU와 ITU는 현재 UN의 전문기구가 되어 있으며 각 가맹국간에는 통일된 기준에 의한 통신을 교호나하고 있다. 한국은 UPU(1895) 및 ITU(1952)의 정식회원국이 되어 있으며, 통신에 관한 한 세계무대에 동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통신공학[편집]

通信工學

라디오나 전화와 같은 통신을 취급하는 공학의 분야. 인간에게는 언어라고 하는 정보수단이 있고, 이것을 전달하는 것이 곧 통신인테 통신공학에서 취급하는 통신은 라디오나 전화와 같이 모두 전기신호로 바꾸고 나서의 통신을 말한다. 옛날에는 문자나 숫자를 전류의 단속부호(斷續符號)로 바꾸어서 보낸 전신이나 A. F. 벨이 발명한 음성을 전류의 강약으로 바꾸어 보내는 전화 등의 개량 또는 원방전송(遠方轉送)이 주된 문제였으나, 이윽고 무선전신과 전화가 발명되어 그 장치의 개량이나 전파(電波)의 전파(傳播) 등이 문제가 되었다. N. 위너 등이 창시자가 된 통신의 논리구조를 추구하고 통신의 질을 의논하는 통신이론 또는 제어기술과 합체(合體)하여 사이버네틱스(cybernctis:인공두뇌학)가 활발하게 연구되었을 뿐 아니라 전화의 통신 시스템을 구성하는 기술의 발전에서 산업일반의 시스템으로까지 응용할 수 있는 시스템 공학이 발전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의 전신·전화[편집]

韓國-電信·電話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신기가 들어온 것은 1837년 모스(S. F. B. Morse)가 전신기를 발명한 48년 후인 1885년이며 서울-인천간에서 개통되었다. 한편 전화는 1898년에 궁중(宮中)을 중심으로 정부 각 아문(衙門)과 인천을 연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 후 일본인의 진출과 더불어 급격히 성장했으며, 1923년 7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국이 생겼다(경성 중앙전화국). 당시 5만여 회선이었던 것이 해방 전후의 혼란과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일시 전화선이 감소되었으나 1953년 스트로저식 4,600단자를 복구, 1960년에 서독의 EMD자동 교환시설 도입 등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97년말 현재 전국의 전화시설수는 2,370만 회선이고 전화가입자수는 2,037만명으로 전화수용률은 87.7%이다. 한편 가입전화시설의 대량공급과 시설의 현대화를 위해 전전자식 교환기를 대량공급하여 1988년에는 전자화율 72%로 획기적인 실적을 이룩하였다.

자동즉시식 통화[편집]

自動卽時式通話

다이얼(dial)식 통화라고 한다. 시외통화는 오랫동안 수동식이었다. 가입자가 교환수에게 신청하면 교환수가 중계국의 교환수를 차례로 통하여 상대방 가입자를 호출하여 비로소 통화가 가능한 것이다. 도중의 중계국에서 시외회선이 사용되고 있을 경우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한다.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즉각 상대자를 호출하는 것은 전화 이용자의 꿈이었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971년 3월에 서울-부산 간 장거리 자동전화의 개통을 본 이후, 점차로 이 방식을 전국 주요도시에 확대하여 직접 다이얼을 돌리면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89년말 현재 장거리 통신의 회선수는 전신용 5,064회선, 전화용 35만1,456회선 등 총 35만6,520회선이다.방식별로는 전신방식 5,064회선, M/W 4만6,800회선, 동축반송 7만668회선, 케이블반송 804회선, 광통신 12만 7,176회선, 기타 10만6,008회선이며, 장거리 통신망의 디지털화율은

72.8%이다. 국제전송로는 위성통신 3,682회선, 스켓타 504회선, 해저케이블 1,200회선 등 5,386회선을 보유하고 있다. 83년 처음 개통된 국제자동전화(ISD) 이용지역은 89년말 현재 153개국 180개 지역이다.

버튼 다이얼 전화기[편집]

button dial 電話機

전화망(電話網)은 전국에 거미줄처럼 널려 있는 거대한 조직이지만 우리가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말단 기관인 전화기 뿐이다. 집안에 놓인 전화기는 얼핏 보아서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지만 그 알맹이는 근래에 와서 크게 달라져가고 있다.바야흐로 전화기에 있어서의 통신혁명은 버튼 다이얼 전화기의 출현으로 시작되고 있다. 세계 자동 다이얼 통화망을 이용하려면 상대국의 가입자를 호출해 내는데 적어도 12자리 정도 숫자의 다이얼을 돌려야만 한다. 이러한 불편을 덜기 위하여 종래의 기계적인 직류단속신호(直流斷續信號)의 송출(送出) 방식을 폐지하고 원 터치(one touch)로써 각각의 번호에 상응한 음성 주파수(音聲周波數)의 두 웨이브를 내보낸다. 이 방식에 따르면 종래의 직류처럼 시외 반송회선(市外搬送回線)과 겹치는 경우에도 굳이 신호의 변환(變換)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버튼의 0에서 9까지의 숫자 외에(버튼의 수는 12개가 있음) 두

개의 특별 버튼을 사용해서 여러 면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일상 흔히 사용하는 상대편 가입자의 번호를 단축(短縮) 다이얼로 해서 특별 버튼과 숫자 버튼, 두 개의 터치만으로써 호출이 가능해진다.

동축 케이블 방식[편집]

同軸

cable 方式

전화가 처음 사용되던 무렵의 전선은 나선(裸線)이었다. 나선은 전주(電柱)에 가설할 때 하나의 전주에다 가설할 수 있는 선의 수량에 제한되어 있고 또 비나 바람 따위의 자연조건에 영향을 받게 되어 결점이 많았다. 이 때문에 여러 가닥의 심선(心線)을 다발로 묶어 그 겉을 절연체로 덮어 씌운 '케이블'을 채택했으나 이것은 또 전류의 감쇠현상이 심해서 장거리용 시외전화 회선에는 여전히 전력 손실이 적은 나선이 사용되어 왔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미국의 퓨핀이 케이블에 장하선륜(裝荷線輪)을 일정 간격마다 삽입해서 전류의 감소량을 줄이는 방식을 제안헸다. 그 뒤에 3극진공관(三極眞空管)이 발명됨으로써 미약한 전류를 증폭(增幅)하는 중계기(中繼器)가 실용화되어서 음성(音聲) 시외회선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고 회선이 증가함에 따라 그 경제화(經濟化)가 필요해졌다. 장거리 회선에서는 케이블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이것을 다중화(多重化)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다중화란 하나의 심선을 여러 사람이 공동하는 방법으로서 반송주파수(返送周波數)를 사용하여 이를 여러 통화자가 분할·배분해서 쓴다. 이것을 주파수 분할 다중방식(周波數分割多重方式, FDM)이라고 한다.그 뒤 회선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동축 케이블 방식이 개발되어 널리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통상적인 케이블은 주파수가 높아지면 누화(漏話)가 많아져서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을 빚었는데, 이것은 500KHz 정도가 한도여서 그 이상은 다중화가 어려웠다. 이에 대하여 동축 케이블은 그 구조(構造)보다 높은 주파수에서도 누화가 적다. 현재 12KHz의 전송에 따라 2,700회선까지 수용할 수 있다. 나아가서 40 또는 60MHz의 전송 방법도 연구되고 있으며 하나의 동축 케이블에 수만 회선을 전송하려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이들 전송기술의 진보는 전자공업(電子工業)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1948년 미국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래 진공관 대신에 이 트랜지스터가 다중방식에 도입되었다. 이어서 반도체 회로(半導體回路)가 출현하여 통신기기(通信器機)가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이러한 전자기술의 진보에 따라 기기(機器)의 소형화, 신뢰성의 향상, 회선의 품질에 대한 향상이 꾀하여졌다. 종래의 동축 케이블 방식에서는 4㎞-5㎞마다 무인중계소(無人中繼所)를 세워야 했으나 반도체 사용에 의하여 중계기(中繼器)가 소형화되어서 맨홀 속에 있는 소형 상자에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피시엠 통신방식[편집]

PCM 通信方式

전송로(傳送路)의 다중화(多重化)는 주파수를 분할하여 여러 사람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나 PCM(pulse code modulation, 펄스 符號變調) 방식에서는 각 통화자마다 이용시간을 분할·배분하는 시분할 다중방식(時分割多重方式)이 사용되고 있다.PCM의 원리는 1937년 프랑스에서 영국인 리프스가 발명했다. 음성전류를 펄스로 변환시켜 부호화해서 보내기 때문에 진공관밖에 없었던 당시의 전자기술로서는 실용화할 수가 없었다. 2차 대전 중 레이다가 발명되어 펄스 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194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트랜지스터 및 기타 반도체 부품의 출현에 따라 미국이 제일 먼저 그 실용화에 성공하였다. 그 이유로는 미국의 전자계산기의 발달이 펄스 기술을 발전시킨 것과 그 대량사용이 반도체 부품의 가격을 내리게 한 사실 등이 지적된다.이 PCM 방식은 음성전류를 펄스 상태로 단속(斷續)시키고 그 끊긴 시간에 다른 가입자의 음성전류의 단속 펄스를 끼워 넣는 것으로서, 전화인 경우 이 단속은 매초당 8,000회로 되어 있으며 이론상으로는 통화자는 이 단속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PCM에서는 단속된 전류의 크기를 128개 종류로 분류하고 지금 어느 정도의 크기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가를 부호화해서 상대편에게 송출한다. 상대방은 이것을 본래의 크기로 환원시켜 단속적인 전류를 모아 한 개의 음성파형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전화로서의 통신이 가능해진다. PCM 방식의 특징은 종래의 아날로그 전송과는 달리 디지털 전송이므로 도중에 있는 중계기에서도 펄스의 유무에 대한 판별을 할 수만 있다면 상당한 왜신(歪信)을 받아도 원래와 같은 부호를 낼 수가 있어서 전송의 질이 좋다. 또한 주파수 분할방식에 있어서는 분할을 위한 여파기(濾波器) 등의 비싼 기기를 필요로 하지만 PCM에서는 단국장치(端局裝置)가 간단하므로 경제적이기도 하다. 시간을 분할해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일시간내에 여러 사람의 통화가 동시에 가능한 것 등 PCM 방식은 통신방식 혁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위성통신방식[편집]

衛星通信方式

1895년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무선통신 방식을 발명한 이래 해양통신(海洋通信)에 이용되어 무선통신은 급속히 발전해 왔다. 전자공업의 진보와 더불어 무선통신 기술은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다. 단파에서 초단파로 차차 고주파 전파의 이용이 연구되어 마이크로파 방식이 실용화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마이크로 전신망은 국제적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종래의 국제통신은 주로 단파회선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자기태풍(磁氣颱風, magnetic storm) 따위로 말미암아 통화상태가 매우 불안정했었다. 이에 대신해서 대륙간을 잇는 대양횡단 해저 동축(海底同軸)케이블 방식이 완성되어 세계 자동 다이얼 통화의 실현이 진일보한 바 있는데, 통신위성의 이용은 다시 이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1965년 4월에는 최초의 상업용 통신위성 인텔사트(INTELSAT) 1호(Early Bird)가 대서양에 , 그리고 1967년 1월에는 동 2호(Rani Bird)가 태평양상으로 쏘아 올려져 전기통신도 우주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동 3호 계(系)는 전화의 회선이 1,200회선으로 늘고 멕시코 올림픽에 쓸 예정으로 발사(68.9.18)한 위성은 로켓의 고장으로 실패, 3호 A(68.12.18)는 대서양상, 3호 D(69.2.5)는 태평양상(그 뒤 6월 24일에 인도양상으로 이동), 3호 C(69.5.22)는 태평양상, 69년 7월 26일에 1회 실패한 다음 3호 D(70.1.15)가 각각 대서양상의 정지궤도(靜止軌道)에 진입했다. 전화 6,000회선이라는 대용량(大容量)의 4호계는 71년 이후 발사되어 왔다.각 대륙을 잇는 세계 해저 케이블망과 인공위성을 이용한 세계 위성통신망에 의하여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전세계에 전달될 수가 있게 되고, 또한 언제 어느 곳에서나, 어떠한 사람이라도 호출할 수가 있다. 전기통신에 의한 통신혁명은 여기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통신위성[편집]

通信衛星

세계 최초의 민간 통신위성은 미국의 AT&T사에 의해 1962년 발사된 텔스타(TELSTAR) 1호로서 저고도의 지구궤도에 발사되어 운용되었다. 얼리버드(Early Bird)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의 상용 통신위성인 인텔샛(INTELSAT) 1호는 1965년 3만 5,800km 상공의 지구 정지궤도에 발사되어 3년 반 동안 대서양 상공에서 대륙간의 통신중계를 위하여 사용되었다.통신위성은 국제통신위성기구에서 운영하는 대륙간 통신 중계용의 인텔샛 통신위성과 국제해사위성통신기구에서 선박이나 항공기의 통신 및 안전 서비스를 위한 인마르샛(INMARSAT), 과거에 러시아를 중심으로 동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인티스푸트니크(INTERSPUTNIK)가 대표적 국제 통신위성이다. 대륙간의 통신중계보다 특정지역에 통신 서비스를 하는 지역통신위성이 현재 급속히 발전되고 있으며 1995년 8월 5일 발사된 한국의 무궁화위성(KOREASAT:1996년 3월 18일부터 위성서비스 실시)도 이에 속한다.

데이터 통신[편집]

data 通信

전화는 소리의 전송이다. 전화로 자료를 보내려면 먼저 메모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불편함은 이미 여러 사람이 경험한 바이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전화의 경우처럼 다이얼을 돌려 상대방을 호출하고 전신부호를 사용해서 자료를 보내는 텔렉스(telex, telegraph-exchange)가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전화기와 비슷한 점으로는 가입자의 집에 장치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에 따라 인쇄전신(印刷電信, teletype)이 이루어진다.고도의 경제성장에 따라서 사회의 산업활동은 복잡다기해지고 사무처리의 신속화가 요구된다. 공장·회사에서는 생산관리를 위해서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며 경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여 경영체제를 이에 맞도록 적응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또 전국에 지점·사업소를 가진 대기업은 많은 정보를 본사가 수집해 들여 이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최근 우리나라도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수출산업의 신장(伸張)으로 말미암아 기업의 근대화와 경영의 합리화가 더욱 요망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각 기업 및 은행은 사무관리(事務管理)의 합리화를 꾀하고자 컴퓨터의 도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외환은행·한국상업은행 등의 온 라인 시스템, KAL의 좌석예약 시스템, 은행의 예금 구좌 기록 시스템 등을 비롯하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널리 가동이 되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는 금후 더욱 증가추세에 있어서 바야흐로 현대는 비즈니스 오토메이션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전자계산기에 의한 정보처리 방식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천공(穿孔, punching)테이프, 그 외에 카드가 정보를 집어 넣은 뒤에 이를 종합해서 전자계산기에 거는 뱃치 처리(batch processing) 방식, 혹은 오프 라인(off-line) 방식이 있고 이 밖에 전자계산기에 데이터 입력(data input)을 직결해서 처리하는 온 라인(on-line) 방식이 있다. 정보의 광역화·신속화로 차차 온 라인 방식을 도입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기에 전기통신 회선과 전자계산기를 직결한 데이터 통신방식이 출현했다.종래의 데이터 통신방식은 한 기업, 한 회사에 한정된 전용 시스템이었으나 앞으로는 같은 분야의 기업 상호간에 정보교환을 하는 시스템(이를테면 전국의 은행 상호간을 연결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 혹은 한 대의 전자계산기를 불특정(不特定) 다수의 가입자가 공동으로 이용함으로써 정보검색(情報檢索)·사무계산·과학계산을 해내는 시스템(加入 데이터 시스템)이 개발된다. 이 경우 데이터의 전송에는 전화회선을 이용한다. 이와 같이 음성·부호에 의한 의사전달에서 비롯된 전기통신은 더욱 고도의 정보처리 수단으로서 정보혁신에 공헌하게 되었다.

미래의 전신·전화[편집]

未來-電信·電話

전기통신에 의한 통신혁명의 미래를 향한 꿈은 한이 없다. 전자계산기와 같은 원리를 응용한 전자교환기의 출현으로 전화 서비스도 훨씬 편리해질 것이다. 앉은 채로 여러 관계자와 협의를 할 수 있는 회의전화, 통화 중 다른 곳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먼저 것을 일시 보류해 뒀다가 다시 통화할 수 있는 콜 웨이팅(call waiting), 행선지에 자동적으로 전화를 이동시켜서 쓸 수 있는 전송(傳送) 서비스 등 여러모로 편리한 방식이 나오고 있다.열차·항공기·자동차·선박에까지 전화는 널리 보급될 것이며 또한 외출 중인 사람과도 즉시 연락이 닿을 수 있는 포켓 벨(pocket bell) 혹은 휴대용 전화도 개발이 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공장이나 사무소 등에 전화선을 통해서 설계도나 전표가 전송되고, 또 거꾸로 공장·사무소는 전화선을 통하여 전자계산기를 이용할 수가 있게 된다. 전기·가스·수도 등의 미터도 전화선을 통해 체크되고 또한 각 가정으로는 전화선을 통해서 팩시밀리에 의한 카탈로그·신문이 전송된다. 가정에 앉아서 은행구좌(銀行口座)로부터 물건의 대금지불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는 전화지불 서비스도 가능하게 되었다.산업용 텔레비전에 의한 원격지(遠隔地)의 공장감시나 학교의 강의 및 강연을 화상(畵像)으로 해서 송신하는 화상통신 서비스,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텔레비전 전화 등등 전신전화에 있어서의 미래의 꿈은 풍성하며 또한 그것이 우리 실생활에 넓게 실현될 날도 시간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