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사회 I·문화재/매스미디어와 미래사회/미래의 사회/유토피아·역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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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사상[편집]

utopia 思想

유토피아라는 말은 모어(T. More,1478-1535)의 저서의 제목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그리스어의 oν(not)+γoπos(place)에서 모어가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로서 '어디에서도 없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국가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의 라파엘 히스로디의 이야기'라는 형태로 전개된 이 모어의 유명한 공상사회소설 이후 유토피아라는 말은 점차로 널리 보급되게 되어, 일반적으로 (1) 이상향(理想鄕), (2) 이상사회, (3) 공상적 내지 비현실적 정치사회체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유토피아'라는 말 그 자체는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신조어였으나, 이상향이나 미래의 이상사회를 공상하고 구상하며, 묘사하고 설계하는 것으로서의 유토피아 사상의 역사는 결코 여기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 사상의 역사는 인류의 사유(思惟)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토피아를 탐구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 있어서는 인간에 있어서 본질적인 행위이다. "인간은 심심하다거나 불만을 느끼고 낙원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라고 프롬은 말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선잠을 자고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존하고 있던 인간 이전의 상태로 두 번 다시 복귀할 수가 없다. 꿀벌과 같이 자연의 자동조절 메커니즘 속에 짜여져 있던 시대의 '자연과의 생물학적 조화'를 잃어버린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 영원한 방황자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자연을 모두 알아버려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때까지 스스로를 발전시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더 한층 전진할 것을 강요당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그 존재의 의미를 해명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영원한 미완(未完)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인간은 부단한 불균형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 바로 이 불균형이 동물적 욕구를 훨씬 초월한 갖가지 인간적 욕구를 낳고 이 욕구의 강도(强度)가 인간을 미래의 이상사회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인간은 미래의 이미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결정적으로 구별된다. 개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도 개가 있었다든가 자기 사후(死後)에도 개가 있을 것이라는 등의 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에 의한 사고능력의 획득에 의해서 자신의 개인적 생활이나 직접적 경험의 한계를 초월한 과거나 미래에 대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시간 이미지의 구조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에는 '관계(關係)의 이미지'라는 것도 있다. 시간을 의식함으로써 인간은 원인과 결과, 연속과 불연속, 순환과 반복 등과 같은 관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사고능력이라는 타임 머신에 의해서 현실의 시간·공간·관계의 제약을 초월해서 과거나 미래의 세계를 그 이미지 속에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그려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 사상의 역사란 각 시대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인간이 지닌 어떠한 미래 이미지의 변천과 발전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우리들은 모어의 『유토피아』이전의 제사상이나 신화·종교 등에서도 유토피아 사상의 계보를 발견할 수가 있다((모어의 『유토피아』).모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콩도르세는 『인간정신 진보의 역사』의 최종장에서 '인간정신의 미래의 진보에 대하여' 논하기를 인간정신의 미래의 상태를 제국민 간의 불평등의 타파, 동일 민족 중에서의 평등의 진보, 인간의 실질적인 완성의 3가지에 대해 기술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1793년말 단두대에 보내지게 되어서 자살하기 약 반년 전의 일이었다. 혹은 18세기의 러시아의 작가 라디시체프는 전제 러시아가 인간평등의 사회로 변천될 것을 공상하여 시베리아로 유형됐는데 "나는 1세기 앞을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세기의 사상가 체르니셰프스키도 또 미래사회를 묘사하여 알루미늄의 집, 해방된 인간의 노동을 경감(輕減)하는 기계, 그 속에서의 인간의 풍속이나 생활까지도 고찰하려 하여 시베리아와 그 밖의 땅에서 27년이나 유형의 고통을 맛보았던 것이다. 이것들은 겨우 몇 가지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사실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떤 시대에 있어서도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창조하려고 한 사람들이 바로 가장 날카롭게 그 시대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플라톤 이래 진실한 유토피안은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성인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최선의 국가나 사회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사색해 왔던 것이다.모어의 『유토피아』,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1623년), 베이컨의 『뉴 어틀랜티스(New Atlantis)』(1627년), 해링턴의 『오세아나(Oceana)』(1656년) 등 근대 초기의 유토피아로부터 버틀러의 『에리훤(Erewhon)』(1872년), 벨라미의 『회상(回想)-기원 2000년에서 본 1888년』(1888년), 모리스의 『유토피아 통신』(1890년), 웰즈의 『모던 유토피아』(1905년) 등을 거쳐 헉슬리, 오웰 등의 역(逆)유토피아의 비관주의를 지나서 1960년대의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의 부활에로 유토피아 사상은 전개되는 것이다.

모어의 『유토피아』[편집]

More-Utopia

모어의 『유토피아』는 오늘날 영국문학의 고전(古典)의 하나로 되어 있는데, 그 초판은 1516년에 루반에서 출판되었으며 원문은 라틴어였다. 모어의 시대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2가지 사상조류가 중세적인 전통적 사상조류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던 무서운 시대였다. 이와 같은 시대의 상황 속에 있어서 모어는 플라톤의 『국가』에 친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나라』를 탐독하면서 이상적인 국가의 미래상을 그림으로써 현실의 영국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유토피아』는 과도기의 근대적 정신의 매니페스트(선언서)이며 중세적 절대주의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 자유의 선언이었다.『유토피아』는 베스푸치의 항해에 참가했다고 하는 라파엘 히스로디(히스로디란 이야기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에게서 들은 유토피아섬의 이야기를 쓴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폭이 약 200마일, 길이 500마일의 섬에서 유토피아인들은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극단적인 빈부의 차나 착취라는 것은 없으며, 사람들은 6시간 노동을 하며 전쟁과 폭력을 저주하며 평화를 희구하고 자유스러운 신앙 아래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어는 히스로디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아직도 그가 말한 전부를 승인할 수는 없다. ……나로서는 설령 유토피아공화국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우리나라에 옮긴다고 하면 다만 바랄 수는 있어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으리라는 것을 여기에서 분명히 고백해 두어야 겠다"는 의미심장한 말로써 이 글을 끝맺고 있다.모어의 『유토피아』가 그 가운데 다분히 중세적·가톨릭적인 것을 지니고 있다고는 해도 과도기의 근대정신의 매니페스토(선언서)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 때문에 모어는 이윽고 국왕의 노여움을 사서 런던탑에 유폐되고 단두대에서 사형에 처해진다.

유토피아와 사회주의[편집]

utopia-社會主義

산업혁명 이후의 초기 산업사회가 그 새로운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을 들고 등장한 것이 생시몽, 푸리에, 오언, 프루동, 혹은 그레이, 호지스킨 등의 리카도파 사회주의자 등으로 대표되는 초기 사회주의자의 일꾼이었다. 그들 앞에 현존하고 있던 사회는 자유방임시대의 초기산업사회였으며 거기에는 빈곤·불평등·억압·불안정 등의 갖가지 모순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모순이 없는 산업조직이나 사회조직, 즉 풍요하고 평등하며 자유롭고 안정된 유토피아를 그려서 그것에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그들은 갖가지 사회개혁을 제시하고 혹은 또 그것을 오웬처럼 실험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오늘날 아직도 흥미가 있는 많은 착상이나 제안(提案)이 높은 이상과 더불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들 초기 사회주의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를 이와 대치시켰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의 현실의 운영문제는 사회주의자가 국가를 지배하게 되어야 비로소 취급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그의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조직과 기구를 가지느냐에 대해서는 설명을 거부하였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많든 적든 19세기 사상에 공통되는 결의론적(決意論的)인 경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또 한편 그 후 마르크스주의가 대중운동의 지도이념으로 되었다는 것에 의해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말하자면 내측(內側)과 외측(外側)으로부터 도그마화(dogma化)된 결과가 되었고 그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의 다수가 미래에의 유연하고 창조적인 자세를 잃어버린 채 제안(提案)이 없는 반대파로 되어 간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도 또한 자유화를 통하여 말하자면, 처음 의도로 돌아가서 산업사회의 장래에 관한 유토피아 탐구를 20세기 후반의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 촉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편집]

utopia-ideologie

유토피아와 신화(神話)를 명확하게 구별하여 전자가 지적 노작(知的勞作)의 산물임에 대하여 후자는 사실의 서술이 아니라 의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유토피아가 사실의 합리적 분석과 판단을 기초로 해서 현실사회를 그것과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론 모델임에 대하여 신화는 "행동에 상응(相應)하는 감정의 총체를 일체의 반성적(反省的) 분석(分析) 이전에 일괄적으로, 유일한 직관(直觀)에 의해서 환기(喚起)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리스먼이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를 한편은 합리적 신념체계, 다른 편은 비합리적 신념체계로서 분류한 것과 거의 대응하고 있다. 물론 이 양자의 경계는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의 합리적 신념체계가 다음 시대의 비합리적 신념체계로 전환하는 일이 역사의 과정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들의 미래 이미지는 언제나 가치적(價値的) 요소(要素)와 사실적 요소의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것으로서의 미래 이미지를 고정화해 버려서 이를 비판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신성불가침하고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들의 미래 이미지는 신화(神話)로 전환한다. 그에 의해서 신화화(神話化)된 미래 이미지는 이미지의 다양성을 부인하고 하나의 고정관념을 절대적인 것으로서 외부로부터 강제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미래 이미지의 신화화, 이데올로기화에로의 하나의 움직임인 것이다.다른 편에서 미래 이미지를 언제나 현실의 변화와 연관시키면서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것으로서 취급한다면 그것은 이미지의 고정관념화, 이데올로기화를 극복할 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미래 이미지를 가능한 한 경험과학적으로 처리하여 그 이미지를 모델화하는 노력에 의해서 보증된다. 그런데 유토피아 사상의 대부분은 경험과학(經驗科學)의 미확립이라는 사회적 조건하에서 고정관념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 결과 유토피아로서의 매력의 대부분을 상실하였고 유토피아에의 환멸(幻滅)을 낳았다. 이리하여 유토피아 사상의 일시적 쇠퇴라고도 할 수 있는 현상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서 진행되게 되는 것이다.

역유토피아의 의미[편집]

逆 utopia-意味

빅토리아시대(19세기에 있어서 영국의 찬란한 번영의 시대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에 해당된다)에 최고조에 달한 낙관주의적인 진보에의 신앙은 19세기 말경부터 차츰 흔들리기 시작하여 비합리주의의 몇 가지 조류가 등장한다.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두에 걸친 이 풍향(風向)의 변화를 버틀러의 『에리훤』(1872년)만큼 적절하게 전해 주는 것은 없다. 이 소설은 가공(架空)의 나라 '에리훤국'(Erewhon이란 nowhere를 역으로 쓴 것, 즉 유토피아의 반대의 뜻)의 견문기에 의탁해서 기계문명의 장래에 대하여 경고하고 빅토리아시대의 사상·풍속·습관 등을 풍자한 것이다.에리훤국은 일찍이 고도로 발달한 공업국이었는데 이 나라에서 반기계혁명이 일어난 것은 약 500년 전의 일이다. 기계문명은 이 나라에 갖가지 재액(災厄)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고명(高名)한 교수 한 사람이 기계는 궁극적으로 인류를 대신하여 인류를 지배할 운명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이 학설을 둘러싸고 국민은 기계당(機械黨)과 반(反)기계당으로 양분되어 주민의 수를 반감시켰다고 하는 장기간의 내란이 계속되었는데, 반기계혁명이 승리하여 승리자들은 복잡한 기계를 전부 파괴하고 기계학의 서적과 공장을 완전히 불태워버린다. 말할 나위도 없이 버틀러가 기계문명을 저주하고 원시상태를 바라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의 의도를 반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러나 버틀러는 역설적인 형태를 취하면서 기계문명의 장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경고하고 문제의 소재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에리훤』에 나타난 이 비관주의의 희미한 색조는 웰즈의 『타임 머신』(1895년)에도 짙게 침투되어 있다. 이 독창적인 SF는 타임 머신을 타고 80만 2701년 후의 인류 쇠퇴기의 세계를 경험하는 시간여행자(time traveler)의 이야기인데, 이러한 비판주의적인 색조는 이윽고 1930년의 '디스토피아'의 시대로 연결되어 간다. '디스토피아'의 시대는 헉슬리의 『멋있는 신세계』(1932년)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 책에서는 1930년대에 예상된 자유없는 비인간적인 계획사회의 악몽을 극단적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헉슬리는 『멋있는 신세계』에 이어서 『원숭이와 본질』(1935년), 『멋있는 신세계 재방문』(1959년)을 썼다. 이들 헉슬리의 일련의 연작(連作) 외에 오웰의 『1984년』 등을 포함하여 디스토피아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들 디스토피아는 기계문명과 계획사회의 장래에 대한 위대한 경고이며, 낙관주의적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했다.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이란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더구나 그것을 초월한 데에서 미래를 창조하려고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시각적인 유토피아의 계보[편집]

視覺的-utopia-系譜

1516년에 모어가 『유토피아』를 내놓기 반세기 전쯤에 두 사람의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베르티와 필라레테(안토니오 아벨리노의 雅號)가 이상적인 도시를 디자인하는 또 하나의 유토피아의 전통에 불을 붙였다. 알베르티의 제안도 필라레테의 이상도시 계획도 모어의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로 바람직한 미래의 생활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새로운 노력이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 두 가지 유토피아 사상의 계보는 서로가 그다지 영향을 주는 일이 없이 따로따로 발전해 왔다.언어적(言語的) 내지 사회적 유토피아는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사회조직이나 제도의 변화 속에, 그리고 시각적인 유토피아는 변화한 인공환경이나 공간(空間)의 계획화 속에 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전자는 흔히 인간생활의 물리적·공간적인 조건을 경시하며, 후자는 반대로 인간환경을 형성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조건을 흔히 간과하고 있다. 이 양자의 계보가 최근의 미래연구 속에서 계획과 디자인의 대화를 통해서 통합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시각적인 유토피아의 계보 속에는 많은 뛰어난 건축가나 도시계획의 전문가에 의한 비전과 설계가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에는 후리치의 『미래의 도시』(1896), 하워드의 『내일의 전원도시』(1890), 샨브레스의 『도로도시(道路都市)』(1910), 코미의 『지역계획이론』(1923), 다레덴의 『대도시의 팽창』(1923), 르코르뷔제의 『내일의 도시』(1929), 라이트의 『브로드에이커 시티』, 그로피우스와 바그너의 『도시재건을 위해서의 프로그램』(1943), 굿맨 형제의 『코뮤니타스』(1947) 등이 있다.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쾌적하고 건강하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시의 제조건을 모색한 것으로, 그 속에서 인간의 인간적인 생활환경의 이상을 추구한 것이다.

신유토피아 사상의 부활[편집]

新utopia思想-復活

우리들은 현재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지 모르나, 이 신 유토피아 사상의 르네상스는 선진적(先進的) 산업사회(産業社會)에 있어서의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유달리 깊은 관련을 갖는 것이다.미래에의 새로운 모색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명확하게 자각한 사람들에 의해서 개시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쓴 벨이, 『자유를 위해서의 계획』의 로스토나 『엔카운터지』지(1955년 12월호)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자유의 장래에 관한 세계지식인회의'(1955년)에 관한 뛰어난 리포트를 쓴 실스 등과 더불어서 미래사회론연구 그룹인 '피테리브르'에 참가하고 또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의 '2000년에 관한 위원회'의 의장을 지내거나 하면서 미래사회의 제문제나 사회변동의 예측·계획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새 활동에 착수하고 있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벨뿐만 아니라 아롱, 긴스버그, 맛세, 페루, 마르달, 레온티프, 틴베르겐, 맨포드, 갤브레이드, 볼딩 등을 비롯하여 많은 서구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이데올로기시대의 종언의 인식 위에서 새로운 유토피아의 문제나 사회개발계획의 문제 등에 그 관심을 일제히 집중하고 있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라고 할 만하다. 서구뿐만 아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신 유토피아 사상의 부활과의 깊은 관련성은 비 스탈린화 이후의 소련, 동구사회의 사상적 동향에도 드라마틱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1958년 말에 소련에서는 『21세기로부터의 보고』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소련의 제 1선(第一線) 과학자 29인을 각 분야에서 동원하여 발표하게 한 것인데 미래의 과학기술의 낙원을 묘사하고 녹음(綠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21세기의 모스크바를 그린 것이다. 다시 테프로프의 『사이버네틱스 이야기』에서는 사이버네틱스의 사회생활 제분야에의 적용에 의한 자동화의 미래를 논하고 또 콘드라토프는 『수(數)와 사고(思考)』 속에서 20세기야말로 바로 기술의 세기, 노동의 완전한 기계화로의 교체의 세기라고 하여 '전진하라, 사이버네틱스'라고 끝맺고 있다.현재로 보아서는 러시아의 미래서(未來書)는 과학기술이 가진 가능성의 전망이 중심이며, 그 사회적·정치적 제도에의 영향까지도 포함한 본격적인 미래사회론은 아직 볼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더 한층의 진전과 사회학의 새로운 부활이 이윽고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이제까지 말해 온 바와 같이 미래사회에의 새로운 모색은 이미 적잖은 성과를 이룩하고 있으며, 최근 수년간에 출판된 미래사회론의 문헌만으로도 넉넉히 1권의 문헌목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제까지 언급한 것 외에도 게이버의 『미래를 발명한다』, 프라스티에의 『4만 시간』, 그린파커 편(編) 『전자계산기와 미래세계』, 브라이트빌의 『레저의 도전』, 리스먼의 『무엇을 위한 풍요함인가?』, 브라운의 『미래로부터의 도전』, 라곤의 『우리들은 내일 어디서 사는가』, 도그시아테스의 『도시의 미래상』, 프랑스 '1985년 그룹'에 의한 『1985년』, 영의 『메리트크라시』, 골더의 『20년 후의 세계』 등 미래사회론의 문헌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여기에 보다 전문적인 예측·계획 이론에 관한 것, 사회개발, 경제개발, 지역개발, 도시개발 등 각 분야의 문헌을 더하면 그 정보량은 실로 방대한 것이 된다. 또한 이들 문헌뿐만이 아니라 각국에는 갖가지의 새로운 유토피아 사상 운동이 형성되고 있어서 프랑스에는 '피테리브르', '프로스펙티브'의 양지(兩誌)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 있으며, 영국에는 『미래의 프로필』, 『우주문명론』, 수많은 SF로 알려진 전자공학자 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21세기 연구회'가 있고,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의 '2000년에 관한 위원회'는 조사·출판 등 다채로운 연구활동을 진행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