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동양미술의 흐름/미개사회의 미술/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의 미술
아프리카
[편집]아프리카의 미술
[편집]-美術
니그로 아프리카는 흔히
'미술의 보고(寶庫)'라 불린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인디언이나 뉴기니어 원주민의 미술과 더불어 미개사회 미술의 백미(白眉)이다. 이것은 아마도 일찍이 문명의 영향을 받은 일이 적고 그들의 전통적인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발효시킨 미주(美酒)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한 마디로 아프리카 미술이라 할지라도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종족이 살고 있으며 각기의 종족들은 그 나름의 특징을 갖춘 미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떠한 종족은 왕국을 형성해 있으나 바로 이웃에는 그처럼 강력한 집권적인 정치조직을 갖지 못한 종족이 살고 있는가 하면 사막이나 밀림에는 채집 수렵민이 살고 있는 형세이다. 이와 같은 정치 내지 경제에 의한 차이점은 미술에도 반영된다. 서아프리카에서 17세기에 성립한 다호메 왕국은 전제적 군주국가였으며 이 왕국에는 궁정 직속의 미술가가 있었다. 일반 국민들과 인연이 먼 세습제의 특수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어서 왕의 권위를 나타내고 왕의 선조의 영광을 칭송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었다. 그 밖에도 궁정 장식용의 집기류(什器類)도 제작하였으나 특권이 비호하는 덕택으로 값진 재료를 사용하여 우수한 기술을 지닐 수 있었으므로 기교적으로는 대단히 뛰어난 것을 만들었다. 이러한 미술제작자의 집단은 베닌 왕국과 요루바 왕국 그리고 콩고의 여러 왕국에도 있었다. 이들 여러 왕국에서도 민중은 왕실의 미술과는 별도로 자기들의 미술을 만들고 있었다. 마리의 드곤족(族)에는 아와라고 하는 가면결사(假面結社)가 있었는데 이 가면은 '가면 제작 동료(同僚)'라 일컬어지는 조각가들이 만들었다. 부족(部族) 공통의 선조를 제사지내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가면은 제작자가 개성적인 독창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고 제사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작품을 향수(享受)하는 사람들은 결코 작가로부터 유리된 감상자가 아니고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제작에 참가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아프리카 미술이 현대 내지는 근대 문명사회의 미술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은 작자의 개성 표현이라는 성격을 갖지 않고 고도의 양식화와 작품 그 자체의 실재감만을 구현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또한 동일한 종족에는 강한 전통이 흘러 일양성(一樣性)을 보여 주는 데 대하여 다른 종족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을 인정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아프리카의 목각
[편집]-木刻
니그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하게 목각을 제작한 것은 농경민이었다. 이것은 서아프리카의 기니만(灣) 연안에서 중앙아프리카까지 분포되어 있다. 동아프리카의 목축을 주로 하는 종족에는 목각이 비교적 적고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도 않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은 유동적인 선의 암화(岩畵)를 남겼으나 조각은 없다. 중앙아프리카의 숲속에 살던 피그미도 부시맨과 마찬가지로 채집수렵민이고 그들은 나무껍질로 제사용 가장(假裝)을 만들었으나 가면은 없다. 더욱이 이슬람의 침투가 잦았던 사회에는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의 계율에 따라 사람의 본을 뜬 조형은 쇠퇴하고 기하학적 문양(紋樣)이 발달하였다. 아프리카를
'미술의 보고'라고는 하지만 그 보고는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걸친 것이 아니고 서아프리카에서 중앙아프리카에 이르는 농경민사회에 한정되어 있다.
양식의 다양성
[편집]樣式-多樣性
기니의 바가족(族)이 인간을 표현한 조각은 전후로 기다란 머리, 닭볏모양의 두발, 갈고리형의 코, 흉터를 표현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눈코 가장자리의 패임, 완만한 오목면으로 된 턱 밑, 머리 뒤로 바싹 붙어 있는 목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바가족이 살던 곳의 동쪽인 시에라리온에서 산 멘디족의 가면은 앞뒤로 길어진 머리, 닭볏과 같은 두발, 턱밑의 오목한 면, 세장(細長)한 나뭇잎 모양의 눈 따위의 점에서는 바가족의 그것과 근사하지만 삼각형으로 가늘고 긴 이마, 갈고리 모양이 아닌 코, 굵은 목 따위 점에서 명백하게 바가족의 것과 구별된다.
기니만(灣)을 따라 동편에 인접한 라이베리아의 마노족의 가면은 또 틀린다. 역란형의 윤곽이 편평한 안면, 둥그스름하고 부푼 얼굴을 특징으로 한 가면이다. 이러한 가면에는 두 종류로 세분되어 있는데 그 하나는 눈이 속 파인 원통(圓筒)으로 돌출시켜 표현되어 있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눈을 가늘고 길게 짼 것이 있다. 이 두 종류의 눈의 표현은 동쪽 아이버리코스트 해안 서부의 단족과 게레족에게도 계승되어 있으며 단족의 경우에는 눈을 마치 반쯤 감은 것처럼 가늘고 길게 나타내는 방법으로 되어 있다.
단족이 살던 상아해안(象牙海岸)의 동북쪽 얼마간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서 사는 바우레족의 가면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역란형(逆卵形)의 얼굴, 가늘고 길게 째진 눈과 부풀어 오른 이마라는 양식에 바가족에서 보는 목추형(木椎形)의 머리, 계관(鷄冠)모양의 두발이 뒤섞여 있다. 가늘게 찢어진 눈, 그 위에 좌우 대칭으로 반원을 그린 것 같은 눈썹, 하관이 빨린 긴 얼굴은 보다 도식화되어 상아해안(象牙海岸) 북부에 사는 세느포족의 조각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세느포족의 것에는 머리에 뿔이 나와 있든지 새나 뱀 따위를 붙인 가면이 많고 전체적으로 바우레의 조각보다 선이 굵고 구성도 대담하다.
세느포족의 대담한 선과 면으로 된 구성은 사실(寫實)을 무시하고 있다 하겠으나 이러한 요소는 오트 볼타의 사반나에 사는 보보족의 가면에 이르면 더욱 심하게 된다. 보보족의 대부분의 가면은 수모(樹毛)의 얼굴 덮개 위에 세우는 길고 평평한 널빤지에 검고 어두운 주홍이나 백색 등으로 기하학적인 문양(紋樣)을 채색한 것이 많다.
이러한 보보족의 미술양식은 삼림농경민인 바우레족의 리얼한 조각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고, 니젤강(江) 유역의 반바라, 드곤 등 여러 종족의 추상적인 선과 면으로 구성된 조각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다.
바우 조각에서 특징적인 얼굴 모양과 머리에 비하여 불균형하게 작은 직선적인 신체는 바우레족 동편에 있던 아샨티족 미술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호메, 욜바, 베닌 제왕국(諸王國)의 가늘고 긴 레몬형의 눈, 콧방울이 팽팽한 코, 두꺼운 입술 등은 특징적인 일련의 양식과는 전혀 달라서 이러한 양식 사이에는 단절이 가로놓여 있다. 서아프리카 농경민사회의 조각을 예로 하여 니그로 아프리카 미술의 양식을 간단히 기술하였는데 이 기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족에 따라서 양식의 연속 또는 단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은 이 분야의 연구는 이제 시작했을 따름이어서 금후에 보다 정밀한 양식 내지 유형연구의 성과가 기대된다.
아프리카의 가면
[편집]-假面
가면에는 성년식(成年式)에 사용되는것, 농경의식에 사용되는 것, 선조 제사에 사용되는 것 등이 있는데 특히 성년식과 결부되어 가면은 넓은 지역에 걸쳐 발달하였다.
많은 미개사회에서는 남녀가 다같이 사춘기에 이르면 어떤 일정기간 일상생활에서 떠나 시련과 교육을 받은 후에 한 사람 몫의 성인이 되어 어른의 생활 축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성년식 때에 소년과 소녀에게 시련을 과하고 부족사회의 전승(傳承)과 비사(秘事)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가면에 표현된 신령(神靈)이었다. 가면을 쓰고 수모(樹毛)와 천으로 몸을 감싼 자는 이미 마을사람이 아니고 신령으로서 젊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가면은 가면을 갖지 못한 사회에서는 특히 발달한 화장이나 신체장식과 기능면에서 같은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가면은 '비밀결사'라 불리는 폐쇄적인 결사(結社)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해 왔다. 이것은 일상생활의 치안유지와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장소에 따라서는 정치상의 기능을 가진 것이다.
결사가 성인식이나 제사를 지냈고 사법이나 정치활동을 할 때에는 그 성원이 가면을 쓰고 세속사회로부터 격리된 신성한 성격 아래 비로소 공중 앞에 모습을 나타낸다.
비밀결사가 발달한 서아프리카의 기니만 연안에서 중앙아프리카에 걸쳐서 가면이 유달리 풍부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행하는 의식의 전부가 신비적이어서 사람에게 외포감(猥佈感)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카메룬의 바문족에서 보는 혹부리 영감과 같은 가면은 마을축제에서 죽마(竹馬)처럼 높은 발판을 붙이고 연출하는 야릇한 춤에 사용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가면은 모두 동작에 수반되어 연출되는 한 부분이고 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감상(鑑賞)할 때에 정적(靜的)으로 나타나는 면(面)만을 보아서는 가면(假面)이 주는 본디의 미(美)는 알아볼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인상
[편집]-人像
사람을 본뜬 상에는 선조상(先造像), 왕과 같은 특정 인물의 기념상(記念像), 주술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 등이 있다.
선조상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선조를 표현한 것이 아니고 집합적인 선조로서 표현되어 있다.
선조상을 만드는 근거에는 농작물의 결실 여하를 좌우하는 토지 숭배에 결부된 선조숭배의 신앙이 있으며 선조를 신변에 놓고서 현재의 생활을 보살펴 달라는 목적이 있었을 게다. 앞서 말한 왕국의 궁정 조각가들은 특정한 왕을 기념하는 상을 만들고 있다.
또한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사회의 계급분화를 표현하는 일군의 인상(人像) 을 왕의 승창에 새긴 예도 있으며 같은
인상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되면 목적이 달라진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어느 곳을 물을 것 없이 볼 수 있는 것에 모자상 내지 지모신상(地母神像)이 있는데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에서 아기를 무릎에 안고 젖을 물리고 있는 모상(母像)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의 보편성은 일찍부터 지적되고 있으며 다산(多産)과 모자의 보건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호부(護符), 집이나 재산의 수호자로서의 조상(彫像), 저주(詛呪)를 하기 위한 주상(呪像) 등 주술적인 조상(彫像)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편집]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미술
[편집]-原住民-美術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는 기술과 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미개하고 식물채집과 저급한 수렵에 의해서 생활하였다. 수렵 도구는 부메랑(목제로 된 구부러진 막대기인데 던지면 던진 사람에게 되돌아온다)과 타제석기를 화살끝에 붙인 창밖에 없고 활·살도 아직껏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에서는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종교생활에 관련된 미술이 발달하였다. 제사에 사용되는 튜링거(際儀俸)와 블로러(울림판 널빤지에 끈을 꿴 것인데 이것을 휘돌리면 소가 우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여졌다.)에 그려진 문양(紋樣)과 암화(岩畵)에도 모두 그들의 종교생활 내지는 세계관이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방패에도 적색과 백색으로 단순한 무늬를 그리거나 다소 복잡한 각선문(刻線紋)의 장식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북부 킨바래이 지방의 동혈에 그려져 있는 암화는 유명한 것인데 그 중심인 제재는 원지나라고 불리는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다.
이 신은 적·백·흑색 등의 안료(顔料)로써 그렸으며 얼굴은 모두가 눈과 코만 있고 입이 없는 것이 공통된 특색이다. 원지나는 해마다 드리는 증식(增殖)의식을 지낼 때 색칠을 다시 하게 되는데 그것으로서 11월이나 12월에 시작되는 우기(雨期)가 보증되어 인간까지도 포함한 자연의 재생산이 이루어진다고 원주민은 믿고 있었다.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유럽풍(風) 그림의 기술을 가르쳐 주면 굉장한 재능을 발휘한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예술가의 유파(流派)가 몇몇 있다. 이것은 퍽 흥미있는 일이다. 니그로 아프리카의 근대화된 제작자가 일찍이 전통적 사회 속에서 만들어 낸 것과 같은 걸작을 그리지 못하고 번민하고 있는 예와 좋은 대조가 된다.
오세아니아
[편집]뉴기니의 미술
[편집]-美術
멜라네시아 가운데서도 뉴기니는 목조(木彫)가 풍부한 곳이다. 미개사회 미술의 목조의 선조, 정령(精靈), 악마, 토템 등의 상에는 걸작이라 할 말한 것이 적지 않다. 더욱이 세픽강(江), 프라리강, 프라이강을 비롯한 큰 강의 습도 높은 저습지(低濕地)와 그 주변, 그리고 동남부 마심 지방과 동북 타미도(島)를 위시한 해안지방에 많이 있다. 그러나 내부 뉴기니의 고지에 사는 파푸아계(系) 주민에서는 조형미술이 그다지 발달해 있지 않고 가면이나 조상도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세픽강 유역
[편집]-江流域
세픽강 유역의 미술의 분방(奔放)한 표현은 많은 학자가 주목하는 표적이 되었다. 이 미술품의 중심은 부락 중앙에 있는 집회소이다. 집회소는 회의, 향연, 가무 때의 회장으로서 사용되었고 그 밖에 미혼 청년의 숙박소 역할도 하였다. 그 안에는 길이 30m, 높이 18m나 하는 거대한 건물도 있다.
건물의 기둥과 합각머리 등은 조각으로 장식되고 건물내부에는 목제 북, 대 피리, 가면 등이 놓여 있으며 외부에는 의식용의 장식판이 정렬되어 있다. 홀쭉한 모양을 한 북에는 훌륭한 조각이나 채색이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북에는 서조(犀鳥)의 조각이 부식(附飾)으로 붙어 있는데 이러한 모티프는 밖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의식용 장식판은 높이가 거의 1m로 교묘한 투조(透彫) 세공으로 서조가 디자인화되고 있다.
토템의 선조를 표상하는 것으로 성년식에 사용되는 가면에는 긴부리형의 코가 붙어 있고, 선조나 영웅을 본뜬 인상에도 그러한 종류의 긴 코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긴 코를 가진 가면과 인상은 원주민의 말에 의하면 신화적인 '위대한 씨족 창시자'라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태초(太初)의 쌍동이의 한 사람인'사고 야자(椰子)의 남자' 디바리바의 상이다. 이곳 세픽강 유역에 있어서도 가면이나 인상 따위는 그들의 종교생활, 세계관, 신화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원주민의 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
콜왈 양식
[편집]-樣式
서북 뉴기니에서 선조의 두개골을 넣어 두는 용기인 콜왈(칼왈)에는 특이한 양식이 있다. 구형(球形)인 머리에다 수평으로 잘린 턱 가까이에 매우 폭이 넓은 입이 있고, 인상은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콜왈양식의 특징이다. 웅크린 인상(人像)이 또 다른 좀 작은 인상을 껴안듯이 하고 있는 것도 자주 있는데 이 콜왈상(像)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선조상과 유사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동쪽에서는 솔로몬 군도(群島)와 폴라네시아 동부의 마르키즈, 그리고 섬 이스터에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넓은 범위에 점재(點在)하고 있는 콜왈 양식은 실은 태평양에 널리 분포하는 준거양식(웅크린 자세의 인상양식)의 일종이다. 동남아시아 기원의 오랜 준거 양식이 특수한 발전을 하여 콜왈양식이 되었다고 보아진다.
멜라네시아 도서부의 미술
[편집]-島嶼部-美術
중앙 뉴아일랜드섬과 뉴헤브리디스 제도(諸島)와 뉴칼레도니아에서는 목조가 성행하였다. 그 외에 섬유를 재료로 한 타파(樹皮布=tapa), 돗자리, 바구니와 직물도 있다. 멜라네시아 미술이라고 할 때에는 적어도 두 지역으로 분류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토템숭배가 그다지 발달해 있지 않은 솔로몬 군도에서 피지섬에 이르는 섬들인데 패류(貝類:자개) 상감(象嵌)의 신상과 정령상(精靈像)을 만든 이외에는 종교와 관계되는 미술품은 거의 볼 수 없다. 오히려 카누의 발달과 더불어 배 장식(舟飾)과 상앗대 장식(櫂裝飾)이 발달되어 있는 것처럼 실용적인 가재 도구류의 장식이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토템미술이다.
토템 미술
[편집]-美術
비스마르크 군도의 아드미랄티와 뉴아일랜드 및 뉴브리튼의 세 개의 섬에서는 종교와 의식에 결부된 조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토템적 미술이 가장 발달해 있다. 토테미즘은 사회구조와 종교의식의 양면에서 추구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다. 부계(父系) 혹은 모계 씨족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단결되어 있을 때에 그 단결을 견고히 하기 위하여 씨족의 선조인 토템동물을 씨족의 명칭 혹은 문장(紋章)으로 삼았다. 한 토템동물을 심벌로 해서 단결한 씨족들은 일년의 어떤 일정한 시기에 성지(聖地)에서 토템동물과 씨족의 신을 맞이하여 유계에 들어간 씨족의 선조들까지도 참가하는 씨족의식을 거행한다. 그 의식은 씨족원·선조·토템·동물·자연·천연자원을 신비롭게 결합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행하여지고 신비적인 결합을 구상적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조각을 만들었다. 뉴아일랜드 섬에는 토템 폴이 있다.
뉴아일랜드의 토템동물에는 새가 많아 그것을 조각하고 있다. 우리라고 불리는 다채로운 선조상의 목조도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남자의 상이지만 유방이 붙여져 있다. 사자(死者)의 기념제사는 매년 5월 말부터 7월 초순에 걸쳐 개최되는데 그 제사에 관련된 춤, 가면, 조각은 모두 마란간이라 불렀으며 그 예술적인 특징은 '마란간 양식'이라 불린다. 또한 그 제사 때에는 우리의 상을 위시하여 케봉이라고 하는 개별적인 사자(死者)를 표상한 가면 등이 만들어졌다.
그 제사를 마치면 씨족의 선조를 본뜬 우리의 상은 정중하게 특별히 마련된 가옥에 보존되었으나 기타 다른 상이나 가면은 모두 부수어 버리거나 불태워 버렸다.
폴리네시아의 미술
[편집]-美術
멜라네시아에서 보는 바와 같은 토템미술은 여기에는 없다. 토템적 사회는 비교적 민주주의적이지만 폴리네시아의 사회에는 대추장(大酋長)이 있어서 지배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다신교적인 신들에 대한 신앙이 깊어서 신상(神像)이 만들어졌는데 이 신상은 인간 형태로 되어 있지않은 수도 있다. 쿡도(島)의 탄가로아신(神)의 목조는 매우 아름답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조각을 성하게 만들었으며 오늘날에도 선물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패류(貝類) 상감(象嵌)이 붙여진 투조(透彫) 세공에는 정교를 다한 작품이 많다.
멜라네시아에서 곧잘 만들어진 선조상이 폴리네시아에서는 뉴질랜드와 동부의 섬에만 있다. 그러나 폴리네시아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이스터 섬에서 만들어진 작은 남성의 해골목상(骸骨木像)과 거대한 석인상(石人像)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미크로네시아의 미술
[편집]-美術
미크로네시아는 오세아니아 중에서 조형미술이 가장 빈약한 곳이다. 신상도 겨우 폴리네시아계 주민이 살고 있는 중부 카로린의 느크올섬에만 있을 따름이다. 미크로네시아 미술의 걸작은 파라오섬에 있는 집회소의 대들보 부조(浮彫)이며 거기에는 파라오인의 전설이 새겨져 있다.
아메리카
[편집]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미술
[편집]北-原住民-美術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지금으로부터 1만5천년쯤 전 아시아 대륙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이주해 온 몽골로이드(황색인종)의 자손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미술은 에스키모, 태평양 연안지대, 서남부, 로키분지=고원지대, 대평원지대, 중서부, 동부 삼림지대, 동남부의 8지역으로 분류하여 관찰할 수 있다. 이들 여러 지역에 사는 원주민은 저마다의 자연환경에 적응한 생활을 영위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예술의 대부분은 그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작품을 보존하여 갈 습관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대의 것은 거의 없고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유럽사람이 건너와서부터 지금까지 수집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에스키모의 미술
[편집]-美術
그린란드,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에 걸쳐 에스키모가 거주하는 범위는 영구 동토지대(凍土地帶)로서 큰 수목은 거의 없는 곳이다. 유목(流木)을 이용하여 목제도구를 만들었을 뿐이고 그 외에 미술품의 소재가 되는 것은 동물의 이·뿔·뼈 등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미술품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발견되어 에스키모 문화사 복원에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발굴품의 대부분은 실용적인 목적의 도구이지만 그 가운데에는 뛰어난 조각이 되어 있는 것도 많이 있다. 또한 그 중에는 한 개의 재료에 교묘하게 조각하여 쇠사슬 모양으로 이어진 조각도 있다.
현대 에스키모 미술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가면이다. 그 가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장사를 지낼 때에 관 위에 놓는 목제의 것으로서 사자의 풍모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의(祭儀)에 사용하는 목제 또는 골제(骨製)의 가면인데 에스키모가 수렵이나 어로(漁撈)의 대상으로 삼는 동물의 소유주인 이누아를 본뜬 환상적인 것이다. 제의에 쓰이는 가면은 얼굴이 달걀 모양이고 그 둘레에 깃이나 가느다란 짐승뼈와 목조로 장식하고 있다. 계절적인 축제 때에는 이누아가 가면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태평양연안부 인디언의 미술
[편집]太平洋沿岸部-美術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중미나 안데스의 문명지대를 제하면 미술에 대하여 가장 풍부한 재능을 보여 준 것은 이 지역의 인디언이다.
태평양연안의 인디언 문화는 남·북 둘로 나눌 수가 있으며 그들의 미술도 마찬가지로 남과 북으로 분류된다. 북군(北群)은 하이다족, 침시안족, 트린기트족으로 대표되고 남군은 와카슈어족(語族), 세리슈제족(諸族), 치누크족으로 대표된다. 남군의 미술은 아마도 오랜 미술의 전통을 보존·계승해온 것으로서, 간단하지만 늠름하고 강한 양식의 조각을 발달시켜고 이 양식에서는 양식화보다는 오히려 집단과 운동감이 강조되어 있다.
북군의 미술에서는 토템 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북군의 인디언들은 자기 씨족의 표장(表章)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표장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 표장의 하나가 토템 폴이다. 멜라네시아의 뉴아일랜드섬에도 토템 폴이 있었으나 실은 기둥을 사자의 기념으로서 묘지나 그 근처에 세웠던 일은 동북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도 있었던 풍습이었다. 따라서 양식화된 장식이 눈에 띈다고 하여 태평양 연안부 인디언의 토템 폴만을 끄집어 내어서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옥의 장식과 기타 문화요소의 유사에서 태평양을 사이에 끼고 멜라네시아와 북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미개사회의 미술은 단지 진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수수께끼를 밝혀 나갈 커다란 실마리이기도 하다.
서남부 인디언의 미술
[편집]西南部-美術
이 지역에서는 고고학적인 조사도 진전되어 있어서 옛 시대의 미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이 많다. 터키석(石)의 모자이크와 바구니 등 공예품에는 우수한 것이 많이 있으며 토기는 채색이 아름다워 미술품으로서도 값진 것이다. 흰 바탕에 흑색이나 적색으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놓기도 하고 또 동물이나 사람의 문양(紋樣)을 그리기도 하였다.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푸에블로 황금시대에는 종교적인 벽화가 출현하게 되어 심벌릭한 표현으로 신화가 그려져 있다. 나바호족(族)은 샤먼이 병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화(砂畵)로 신화를 그렸다.
병자는 증기(蒸氣) 찜질을 하고는 그 뒤에 샤먼이 신화를 노래부르면서 사화의 각 부분의 그림을 병자의 몸에 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를 마치면 그림은 흔적도 없어져 버려서 매우 덧없는 미술이라 하겠다.
17세기 이후에는 양을 사육하게 되어 양털로 모전(毛氈)을 짜기에 이르렀으며 천연적인 흰빛과 갈색의 실이나 인디고로 물들인 남색의 실로 짰으며 거기에 19세기가 되면서부터 화학 약품으로도 물을 들여 여러 빛깔과 갖가지 무늬를 짜내었다. 그 가운데에는 사화의 디자인을 본뜬 것도 있고 매우 변화물쌍하다. 나바호족에서는 참 완벽을 기한다는 것은 신을 모독한 것이라는 신앙이 있어 나바호의 여성들은 어딘가 한군데만 일부러 직조방식을 벗어나서는 빼놓고 짰다고 한다.
대평원·기타
[편집]大平原·其他
평원 인디언 사이에서는 비즈(beads) 자수(刺繡)가 성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유럽사람과의 접촉으로 글라스로 만든 비즈를 입수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 기초에는 고슴도치의 바늘로 짐승 가죽에 수놓는 기술이 있었다. 이 아이디어를 비즈로서 표현하게 된 셈이다. 로키 분지(盆地=고원지대)는 자연조건이 좋지 못하여 네스 펠세족과 쇼쇼니족 등이 수렵이나 채집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모피(毛皮)에 그림을 그려서 미를 창조하였다. 파유트족은 아름다운 깃털의 모자이크나 바구니를 만들어 냈다. 이동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채집 수렵민 중에도 미적 관심이 있어서 독자적인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좋은 예라고 보겠다. 중서부의 산림지대에 사는 인디언들은 갖가지 나무를 재료로 한 작품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서도 종교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에 우수한 작품이 많다. 동부 삼림지대에 사는 인디언은 옥수수를 재배하는 정착(定着) 농경민이었다. 이로쿼이족과 같이 비밀결사(秘密結社)가 있던 부족에서는 가면이 발달했다. 비밀결사와 가면의 관계는 여기에서도 명백하다.
가면에는 옥수수 꺼풀을 풀어서 짠 것이나 목각(木刻)으로 된 것이 보이는데 성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캐나다 동해안에 사는 미크마크족도 중서부의 인디언과 마찬가지로 고슴도치의 바늘을 짧게 끊어서 자수를 했는데 이것도 유럽 사람과의 접촉 후에는 비즈 자수로 바뀌었다. 동남부 인디언은 유럽인과의 접촉이 가장 빨라서 백인 문화에 동화된 정도가 가장 높다. 이 중에서 플로리다에 사는 세미노레족(族)은 외래 문화를 자기의 문화 속에 받아들여 독특한 공예품을 만들었다. 오늘날 '세미노레'란 명칭으로 통하는 무명 헝겊의 모자이크로 만든 무늬는 밝은 빛깔과 섬세한 기술로 유명하다.
중남미의 미개 미술
[편집]中南美-未開美術
중남미에는 유럽인이 오기 전에 벌써 높은 문명이 꽃피고 있었다. 멕시코의 아스테크와 마야 그리고 페루를 중심으로 한 안데스, 잉카제국(帝國) 등이다. 이들 여러 국가에 있어서 그 이전에 있었던 문화의 미술은 문명이란 말에 합당할 정도로 발달하여 있어서
미개미술'로서 취급할 수는 없다. 중남미의 미개미술은 이들 아메리카 대륙의 영향을 적게 받았던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지대에 점재해 있는 부족 중에 남아 있다. 가령 토기만 들어 본다면 우카얄리강(江) 상류의 시피보족과 에콰도르의 히바로족의 토기가 우수하다. 싱크강(江)에 사는 카라자족의 토우(土偶)도 간소하면서 매우 재미있다. 이 토우는 점토로 형(形)을 만들고 말려서 색칠한 것이나 굽지 않았기 때문에 망가지기 쉽다.
아시아
[편집]중앙아시아미술
[편집]中央-美術
중국인들이 일찍이 서역(西域)이라고 불렀던 아시아대륙 중앙부에서 발달된 미술. 지리적으로 파미르고원에 의해 동서로 양분되어, 동(東)투르키스탄(지금의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과, 서(西)투르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의 5국)이라 불렸으며, 이들 지역은 중국·인도·이란 등의 대문명권(大文明圈)에 둘러싸인 내륙성 기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건조지대이며 오아시스 도시를 잇는 톈산북로(天山北路)와 남로(南路:실크로드)가 통상로와 문화전파의 길이 되었던 탓으로, 오아시스 도시에도 이들 여러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문화가 번성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도시의 성곽·사원·분묘는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이 지역에 대한 지리적·고고학적 관심이 높아져 각종 조사와 발굴이 행해졌다.
특히 그 무렵 관심을 모은 것은 동투르키스탄 지역으로, 20세기 초 러시아·스웨덴·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 탐험대가 다투어 조사하고, 수집품을 가지고 갔다. 그것들은 현재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쥬미술관, 스톡홀름의 동아시아미술관, 런던의 대영박물관, 뉴델리의 인도국립박물관, 베를린의 국립인도미술관, 파리의 기메미술관,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남아시아
[편집]東南- 열대 혹은 아열대인 이 지대에는 수많은 미개부족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각자가 독자적인 미술을 발달시켜서 한 마디로 동남아시아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대단히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생활용구 중에 대를 재료로 한 도구가 발달해 있다는 사실이며 각각 그들의 취향(趣向)대로 조각을 하였다. 직물도 성행하여 복잡한 찰과문(擦過紋)과 사라사(Saraca)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부족에 따라 옷의 빛깔이 다른 경우가 있고 염색기술도 발달하였다.
장신구도 팔찌, 목걸이, 발고리 등을 위시하여 많은 것이 있는데 그 중에도 흥미를 끄는 것은 미얀마 샨에 살고 있는 파다운족 여성의 목걸이이다. 이것은 놋철사를 나선상(螺旋狀)으로 감은 것인데 때로는 높이 30cm나 되는 목걸이도 있다. 이러한 장신구는 우리에게는 기묘하다고밖에 볼 수 없으나 그들의 세계에서는 '미(美)'임에 틀림없다. 목조(木彫)는 발달해 있지 않아 아샘 지방과 필리핀에서 겨우 보일 정도이다. 선조상(先祖像)도 조상숭배가 성한 아샘의 나가족과 니아스 도민(島民), 보르네오의 주민과 필리핀의 일부 주민에게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그다지 성행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부터 멜라네시아에 걸쳐서 보이는 선조상은 동남아시아 대륙부의 선조상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러 가지 풍속과 신앙형태를 혼합하여 만들어져 있다. 가면도 대륙부에서는 간혹 볼 수 있는데 불과하지만 도서부(島嶼部)에서는 의식 때에 곧잘 사용되었다.
아이누 시베리아
[편집]수렵과 어로(漁撈)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이 지대의 주민들 간에는 갖가지 일상용구의 장식 문양이 공통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이들 장식문양은 몇몇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연구자들 사이에 아직 명백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이누의 자수나 조각에서 보이는 문양(紋樣)은 새긴 눈금 문양과, 승뉴문(繩紐紋), 동물문, 식물문 등이 있는데 아마도 아이누의 독자적인 무늬는 새긴 눈 문양이라 여겨지고 있다. 동물문이란 목각에만 있고 평면적인 표현인 것은 극히 적다. 승뉴문은 시베리아에서 널리 볼 수 있으므로 그들과의 접촉에서 얻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식물문도 일본인과의 접촉에서 배웠다고 여겨진다. 샤먼의 몸에 다는 수많은 기구류도 이 지대에서의 한 특징적인 미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