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미술/동양미술의 흐름/일본의 미술/일본의 건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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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축[편집]

호코지의 건조[편집]

法興寺-建造

아스카(飛鳥) 시대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원(588)으로서 이로부터 불교미술이 번성하게 된다. 백제에서 사공(寺工), 와박사(瓦博士)·노반박사, 화공(畵工)들이 일본에 건너가 당시 일본 미술로서는 불가능하였던 사원건축을 고도의 기술에 의하여 건립하였다. 이로부터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 공인(工人)들이 주로 불교미술 부문에서 활약하였다.

아스카 양식[편집]

飛鳥樣式

아스카데라(飛鳥寺)와 호류지(法隆寺)에서 볼 수 있는 양식으로서 강한 긴장감이 있는 원주(圓柱, entasis), 스바스티카(svastika 卍) 형(形)의 고란(高欄)·운형(蕓形)·두공·대두(大枓) 밑의 명판(皿板)·주목의 강한 선 등이 특징이다.

가람 배치[편집]

伽藍配置

불교건축의 가람 배치는 그 전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다.

탑·금당(金堂)·회랑(廻廊)·중문(中門)·종루(鍾樓)·경장(經藏)·승방(僧房) 등, 가람에는 반드시 있어야만 될 건축을 칠당(七堂)이라 하고, 그 밖에 식당·욕실원(俗室院)·창원원(倉垣院)·천원(賤院)·원원(苑院)·화원원(花苑院)이 있으며, 이 주위에 축지(築地)를 둘러 사방에 문을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당풍 불교건축[편집]

唐風-佛敎建築

나라시대(奈良時代 7∼8세기)에 들어서자 전대에 이어 불교건축이 주류인데 당에서 직접 가지고 온 양식이 채택되었다. 그 중에서도 구후쿠지(弘福寺)·다이칸타이지(大官大寺)·간코지(元興寺)·야쿠시지(藥師寺)는 중요시되었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야쿠시지 동탑(東塔)뿐이다.

도다이지 법화당[편집]

東大寺-法華堂

도다이사의 건설 사업은 나라시대 최대의 조사공사(造士工事)였는데, 창건 당초의 건물은 거의 재해로 없어지고, 현재는 법화당(三月堂)과 전해문(轉害門), 쇼소인(正倉院)을 비롯한 두 세 아제쿠라(校倉)가 남아 있을 뿐이다. 비교적 간소한 건물이기는 하나 그 모습의 우미함과 세부의 뛰어난 의장(意匠)이 대불전(大佛殿)의 당초 모습을 복원시키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귀중하다.

호류지 유메도노 및 전법당[편집]

法隆寺夢殿-傳法堂

호류지의 동쪽에 쇼토쿠태자(聖德太子)를 기념하기 위하여 중 고신(行信) 등이 건립한 팔각 원당형식(八角圓堂形式=원당이란 육각 이상의 건물을 가리킨다)의 유메도노이다. 전법당은 호류지 동원(東院)의 강당에 해당한다.

진자 건축[편집]

神社建築

진자 건축은 고분시대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생각되는데 이세징구(伊勢徵宮)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와 같은 아스카시대 이전에 성립된 진자는 일본식의 직선적인 사전(社殿)이지만, 나라시대에 형성된 진자에서는 신불습합사상(神佛習合思想)의 이유에서, 또는 새로운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 건축이나 궁전 건축양식을 받아들여 지붕에 곡선적인 수법을 채택하게 되어서 새로운 형식의 진자 본전(本殿)이 만들어지기 시작된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라의 가스가진자(春日眞社)이다. 이것은 같은 형의 작은 4동(棟)의 신전을 좌우로 아주 접근시켜 나란히 세웠다. 지붕은 박공쪽을 정면으로 하고, 지붕 앞 계단 위에 하시카쿠(階隱)라 부르는 지붕을 갖다 붙이고, 지붕 위에는 퇴화해서 형식화된 지극히 가느다란 천목(千木)·견어목(堅魚木)을 붙이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가스가즈쿠리(春日造)라고 한다. 또한 교토(京都)의 가모노미오야(賀茂御祖)진자, 가모노와 케이카즈라(賀茂別雷) 진자는 귀화인계인 진씨(秦氏)가 세운 것으로서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곡선적이고 가스가진자의 하시카쿠시에 해당하는 고하이(向拜)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을 나가레즈쿠리(流造)라고 하는데, 가스가가 단청(丹靑)을 칠한 데 대하여 이 형식은 칠을 안 한 무채이다.

오이타(大分)의 우사징구(宇佐神宮)는 정면 3간, 측면 2간의 건물을 전후로 연속시킨 것으로서 야하타즈쿠리(八幡造)로 불린다. 불사건축(佛寺建築) 영향의 하나로서 중요하다.

밀교사원[편집]

密敎寺院

9세기 초엽 당에서 돌아간 사이 조우(最澄)·구카이(空海)는 저마다 히에이산(比叡山)에 엔랴쿠지(延曆寺), 교토에 교오고고쿠지(敎王護國寺)를 열어, 천태종(天台宗)·진언종(眞言宗)을 전하였다. 산지(山地)에 있으므로 가람 배치는 불규칙하게 되고 시각에 의한 경관(景觀)의 변화는 평지 가람과 전혀 이질의 밀교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밀교 건축의 오중탑은 이전의 사리탑(舍利塔)과는 달리 예를 들면 다이고지 오중탑에서는 심주(心柱)의 사면판(四面板) 등에 양계(兩界) 만다라(曼茶羅) 등이 그려져 있어 진언밀교(眞言密敎)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보탑 건축(寶塔建築)도 밀교 특유의 것으로서 만다라에 그려진 삼매야회(三味耶會)의 원형보탑에 상계(裳階)를 단 것을 대탑(大塔), 상부만 원형인 것을 다보탑(多寶塔)이라 한다. 또 하나의 밀교 특유의 것으로서 본당 내진(內陣) 앞의 널빤지를 깐 예당(禮堂)을 들 수 있다. 이전의 금당이 본존(本尊) 안치를 주목적으로 한 데 대해서, 예배할 장소가 설치된 것으로서 처음에는 지붕도 따로 가구(架構)였던 것이 나중에 한 지붕 아래 모아진 것으로 생각된다.

정토교 건축[편집]

淨土敎建築

헤이안(平安) 후기가 되자 밀교에 곁들어 황실(皇室)이나 후지와라(藤原) 귀족 사이에 정토교가 유행되었다. 호조지(法成寺)를 비롯하여 호쇼지(法勝寺) 등 육승사(六勝寺)에 이르러서는 사원 내에는 아미타당(阿彌陀堂)이 건립되었다. 이것은 정토신앙이라기보다는 극락정토에 왕래하고 싶은 염원이 금색찬연(金色燦然)한 아미타여래에 직접 돌려진 것이라 하겠다.

현존하는 아미타당 중에서 보도인 호도(平等院鳳凰堂)는 가장 화려한 것인데 당의 중앙에서 좌우로 뻗친 2층 복도는 옆으로의 광폭을 보이고, 양익(兩翼)의 누각(樓閣)은 전체를 긴장시켜 완전히 조형지상주의적이다. 내부의 장식은 더욱 밀도가 높고, 구품정토(九品淨土)의 벽화나 극채색(極彩色)의 천장, 기둥, 들보 등 또는 칠(漆)이나 나전(螺鈿)이라는 공예품적인 기술이 구사되어 있다. 구체인 아미타상(阿彌陀像)을 안치하는 형식은 필연적으로 가로길이의 평면을 가졌으며, 이에 조루리지(淨瑠瑠寺) 본당이 있다.

아미타당(堂)의 분포는 지방의 실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규슈(九州)에서 동북에 걸쳐서 보이고 후키지대당(富貴寺大堂), 고조지(高藏寺) 아미타당, 시라미즈(白水) 아미타당 등의 유구(遺構)가 있다.

대불양식[편집]

大佛樣式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송나라에서 수입된 것으로서 천축(天竺) 양식이라고도 한다. 구조가 단순 간소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져 매우 힘찬 인상을 준다. 기둥, 들보 등은 굵고 각 부분의 재료도 규격에 맞춰 경제적인 점도 고려되고 있다. 두공도 삽주목이라고 하여 차례로 앞으로 내밀듯이 주목을 기둥에 꽂아 전체적으로 커다란 처마를 받치도록 되어 있다. 한 천장판(天障板)은 붙이지 않고 지붕받침을 드러낸 지붕밑 구조도 서까래나 들보 등을 만든 지붕밑이 모두 보이게 되어 있다. 도다이사(東大寺) 재건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선종 양식[편집]

禪宗樣式

선종은 에이사이(榮西)에 의하여 전해졌는데 13세기 초엽으로부터 세워진 겐닌지(建仁寺)·센뉴지(泉涌寺)·도후쿠지(東福寺)에서는 배치 등 부분적으로 선종양식이 인정될 뿐이지만 13세기 중엽에 건조된 겐초지(建長寺)에서는 전반적으로 송나라의 금산사(金山寺)를 본뜬 것이라고 하며, 이후 많은 사원의 규범이 되었다. 유구로서는 엔카쿠지(圓覺寺)의 사리전(舍利殿)이 대표적으로서, 그 본채 주위에 상층(裳層)을 만들고 지붕이 이중으로 되어 건물폭에 비하여 키가 매우 크게 보이며, 지붕의 경사도 비교적 가파르다. 창틀에는 곡선을 응용한 아치형(形)의 화두창(花頭窓)이 사용되는 등 교묘하게 장식적인 효과가 살려져 있다. 선종 양식은 가람 배치, 개개의 건축에 일양성(一樣性)이 있는 것이 현저한 특징이다.

성곽건축[편집]

城廓建築

이전의 성곽은 산정(山頂)에 구축되는 산성이 대부분이었으나 모모야마시대(桃山時代)부터 평지나 낮은 언덕 위에 구축하는 평성(平城)이나 평산성(平山城)이 불어 왔다. 산성(山城)의 예는 이누야마조(犬山城)이고, 히메지조(姬路城)는 평산성의 대표적인 예이며, 에도조(江戶城)·오사카조(大坂城)는 평성에 속한다. 성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용상에서 보더라도 평면계획으로서, 외굴(外堀)·내굴(內堀)에 둘러싸인 지형(地形)에 산노마루(三の丸)·니노마루(二の丸)·혼마루(本丸)로 최후의 거점이 되는 천수각(天守閣)에 용이하게 도달 못하도록 배치하고, 부분적으로는 망루(望樓)·도로(渡櫓)·누문(樓門)·승형이나 들여다볼 수 없는 통로·미로(迷路)에서 적과 대하고, 우군에게는 그 움직임을 잘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덴슈가쿠(天守閣)는 주위의 누각군(樓閣群) 가운데서 빼어나 있어서 봉건영주의 상징이었는데, 백(白)을 기조로 한 당박공(唐搏拱)·지도리하후(千鳥破風)의 의장(意匠)은 지극히 숭고한 화려함을 갖고 있다.

히메지조[편집]

姬路城 915년에 완성된 전형적인 평산성으로서 완전한 모습으로 잔존한 유일한 성곽이다. 전체는 덴슈(天守)·혼마루(本丸)·니노마루(二の丸)·산노마루(三の丸)·니시노마루(西の丸)로 성립되고, 건물이 전부 칠해져 있어서 희고 아름다우므로, 시라기조(白驚城)라는 이명이 있다. 대천수 및 세 소천수로 이룩된 덴슈는 복잡한 구성을 가져서 구성미를 자랑함과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지극히 교묘한 연립(連立) 천수(天守)이다.

다실[편집]

茶室

중세 이후에 성하게 된 차노유(茶の湯)는 처음에는 서원(書院)의 히로마(廣間) 등에서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점차로 차노유를 위한 독자적인 건축과 다실(茶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슈코(珠光)에서 조오(紹鷗)를 거쳐서 리큐(利休)에 의하여 완성이 된 다실의 참모습은 시골냄새가 풍기는 간소한 소안(草庵)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가능한 한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다. 기둥도 통나무인 채로 벽도 거친 벽이 좋다고 하며, 장식을 하는 것보다 이상(理想)으로서 깊이가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유구(遺構)로서는 우선 묘키안(妙喜庵)의 타이안(待庵)을 들 수 있겠다. 사이호지(西芳寺)의 쇼난테이(湘南享) 등도 유명하다.

닛코토쇼구[편집]

日光東照官

영묘건축(靈廟建築)으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1617년 사전(社殿)을 준공하였으나 현존하는 것은 1636년 조채(造替)되고 1700년대에 대수리를 거쳤다. 모모야마풍(桃山風)의 호화로운 유풍을 계승하고 있고, 당시의 조형 문화의 정수를 다한 것으로서 에도 초기(江戶初期)의 대표적인 건축이라 할 수가 있다. 토쇼구는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거의가 종교적인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대규모로 현란할 정도로 장식한 건축물이다. 묘건축(廟建築)으로서의 전체 표현이나 세부 장식에 뛰어나고, 사전(私殿)과 자연과의 조화에도 볼 만한 곳이 많다.

아게야건축[편집]

揚屋建築

에도 초닌문화(江戶町人文化)의 발전은 유각에 활기를 가져왔는데, 거기에서 발달한 아게야 건축의 유구에 교토 시마하라(京都島原)의 스미야(角屋)가 있다. 외관은 보통 마치야(町屋)와 마찬가지로 소박하지만 내부는 장식적인 것이 많아서, 푸른 조가비를 아로새긴 나전문이나 벽 등 당시의 정수(精粹)를 다한 유곽의 양상을 엿볼 수가 있다.

정 원[편집]

정원[편집]

庭園

정원은 아스카시대에 이미 백제 사람이 건너가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진다, 이것 역시 건축과 마찬가지로 대륙문화의 영향이라 생각되며, 뒤의 유메도노즈쿠리(寢殿造) 정원에 이어지게 된다. 나라시대(奈良時代)에는 가산이라는 것이 있었고, 이는 스하마 형(洲濱形:윤곽이 들쭉날쭉한 형)의 판(板) 위에 기석(奇石)·괴석(怪石)을 본뜬 구치키즈쿠리(朽木造)의 정원 모형이다. 헤이안시대(平安時代)의 유메도노즈쿠리 정원은 교토 신셍엔(京都神泉苑)에 그 일부가 남겨져 있다. 이러한 정원에서는 곡수연(曲水宴)이 열려 문인들이 물가에 자리를 잡고 잔을 물에 흘려가며 시가(詩歌)를 만들었다.

정토교(淨土敎) 정원은 보도인(平等院)·조루리지(淨瑠璃寺)에서도 그것의 면모를 엿볼 수 있지만 히라이즈미모추지(平泉毛越寺)의 대천지(大泉地)는 가장 잘 남겨져 있다. 공간 구성상으로도 재미있지만 그 조원 수법(造園手法)은 유메도노즈쿠리 정원의 계통이라 생각된다.

고산수[편집]

枯山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중기 이후부터 시작된 정원 양식이다. 석조(石組)를 주로 하고 연못이나 견수(遣水)를 사용하지 않고, 돌과 백사(白砂)로 물의 요소를 표현할 경우를 말한다. 무로마치시대 이전의 정원은 대부분 송나라의 조원술에서 본땄으나 전통적인 일본 조원법 특히 정토 정원(淨土庭園) 형식이 점차로 생겨나 종래의 선사(禪寺) 예술 중에서 정원만이 일본 선승(禪僧)의 독창물처럼 여겨졌다. 그 시대 정원의 대부분이 세이호지(西芳寺)나 덴류지(天龍寺)의 정원을 이상으로 하였으므로 정토 정원의 영향은 애당초 지극히 컸었다. 이 중국식 정원과 일본식 정원을 절충하여 점차로 축경(縮景)으로서 상징도(象徵度)를 높이고, 간소한 석조인 고산수가 최종적으로 성행하였다. 고산수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류안지(龍安寺)·다이센인(大仙院)·다이조인(退藏院)·엔토쿠엔(円德院) 정원 등이 있다.

모모야마시대 정원[편집]

桃山時代庭園

무로마치시대에 발달한 석조는 이 시대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세 정원이 정적인 데 반해 동적인 구성을 가져 거대한 돌, 무늬나 색채가 풍부한 색석(色石)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다이고지 산보인의 정원에 현저하다. 또한 이 시대에 발달한 차테이(茶庭)를 잊어서는 안 된다. 노지(露地)라고도 불리는 이 정원은 다실(茶室)로 거니는 엔지(苑路)를 구성하고 작은 면적이면서도 자연을 충분히 살려 감상뿐만이 아니라 실용과 목적으로서 만들어져 있는 점에 특징이 있다.

회유식 정원[편집]

回遊式庭園

에도시대에 가쓰라리구(桂離宮) 정원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그 구성은 중앙에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에 계절마다 이용될 수 있는 다옥(茶屋)을 배치하여 원로(園路)에 따라서 거니는 사람이 차례로 변하는 경관(景觀)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종래의 고정된 정원감상 태도에 시간 개념을 도입한 사실은 의의가 깊고, 이후 제후의 정원은 다소간에 이 구성법에 의한다.

평정적 고산수[편집]

平庭的枯山水

무로마치의 고산수는 지표(地表)에 단차(段差)가 있는 것이 통례이지만, 에도시대에는 평탄면(平坦面)이 구성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다이토쿠지(大德寺) 고호안 지키뉴켄 남정(南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