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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사 상 용 어/특정한 사상가와 관계가 깊은 용어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상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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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起說

학문은 상기(아남네시스)라고 하는 플라톤의 설.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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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相

에이도스 또는 이데아의 번역어로 볼 수 있는 것. 외견(外見)·외형(外形)이 원뜻. 플라톤에서는 감각으로 볼 수 있는 개개의 말(馬)이 아니라 말 그 자체, 말하자면 마음의 눈으로 보는 말이 말의 이데아로서, 이것은 말들을 떠나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에 대하여 말은 유(類)인 동물의 최저 종(種)(아토몬 에이도스)로서 특정된 질료(質料)와 결부되고 개개의 구체적인 말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사물의 형상(形相 : 이에도스)은 사물의 본질(우시아)로서 사물에 내재하고, 정의(定義)에 의해서 밝혀진다고 한다.

질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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質料

원어 필레이는 숲의 나무라든가 재목의 뜻이지만 바뀌어 재료·소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형상(形相)의 대(對)개념, 또는 상대적인 원리이며, 사물의 실체-본질을 형상인(形相因), 기체(基體)가 되는 것을 질료인(質料因)이라고 한다. 이 양자가 결합하여 개별적인 것이 성립한다. 하나의 금반지라면 금은 질료요, 원형은 형상을 말한다.

듀나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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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르게이아의 대개념(對槪念)으로 쓰이는 술어(아리스토텔레스).

엔테레케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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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현실태(完全現實態)'라고 번역하여 완료 또는 완성한 상태를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 술어. 에네르게이아(現實態活動)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가능성(可能性)과 대응한다.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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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想

원어 테오리아에는 관조(觀照), 관찰, 사자(使者) 파견, 제례(祭禮)와 구경이라는 뜻이 있다. 무엇인가를 '보는 것'으로서, 신이나 신상(神像)을 보는 종교적인 것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의 미의 관조로 바뀌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사물의 원리·원인을 본다――즉 안다는 것, 이론적 지식이 된다. 이것은 제작이나 행위와는 달라 그 자체가 목적이므로 상위(上位)에 속한다. 관상생활(학자의 연구생활 같은 것)은 신의 자기사유(自己思惟)와 흡사하여 행복이며 최고선이라고 한다.

오르가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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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on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저작 전체를 6세기부터 이 이름으로 불렀다. 학문의 실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도구라는 뜻.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논리학(로기케)의 명칭이 없었으며, 분석론(아나류티카)이 주로 그것에 해당한다. '분석론'은 추론(推論)을 3단논법으로 분석, 여러 가지 형식과 정합성(整合性)과 진리와의 관계를 논한다. 이 밖에 통념에 의한 변증적 추론(디아렉티케)을 다루었던 '토피카', 판단과 명제를 논하는 '명제론', 주어와 술어의 개념에 관한 종류를 논하는 '범주론'이 포함되어 있다.

기하학적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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幾何學的精神

파스칼의 용어. 자연의 빛으로 밝은 공리(公理)와 사실의 객관적 분석으로부터 획득된 원리로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만을 사용하여 연역적으로 여러 명제를 논증하는 합리적 사고법. 이에 대하여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는 복잡미묘한 일들이나 선악, 미추(美醜) 등을 맑은 눈으로 한번 보기만 하여 직관하는 현실적 사고법을 '섬세한 정신'이라고 한다.

영원한 상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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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遠-相-

스피노자는 인간의 인식을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의 3종류로 나누고, 제1의 것은 사물의 연관을 결여하는 방법으로서 피상적인 '지속(持續) 아래에서' 파악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에 대해 제2, 제3의 것은 사물의 본질을 신과의 관련으로부터 발생한 필연적인 맥락(脈絡)으로 파악한다고 했다. '영원한 상 아래에'는 제2, 제3의 인식에 공통하는 이 성질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바람직한 인간의 인식에 요구되는 조건의 하나인 것이다.

모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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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d

그리스어 모나스에서 유래된 말로, 흔히 단자(單子)라고 번역한다. 처음에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사용하고, 플라톤이나 브루노 등도 사용했으나 이 말을 철학의 근본원리로 삼은 사람은 라이프니츠였다.

영원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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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遠-眞理

라이프니츠는 진리를 '이성의 진리'와 '사실(事實)의 진리'로 구별했다. 전자는 그 반대가 모순을 포함하는 필연적인 진리로서 흔히 '영원의 진리'라고 하며 모순율(矛盾律)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모순율이란 모순의 존재를 거부할 뿐인 것이며, 이러한 종류의 진리는 단순히 사상(事象)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후자는 우연적 성격을 지니며 그 반대가 모순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의 근거로서 라이프니츠는 충족이유율을 들고 있다.

결합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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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合術

라이프니츠는 알파벳 26자의 구성으로 말이 이루어지듯이 인간의 사유에도 그것을 구성하는 궁극적 요소――'인간 사유의 알파벳'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발견하고 그 모든 가능한 결합형식을 추구, 단순히 기지(旣知)의 인식 논증뿐만 아니라 미지의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결합술로, 즉 이 시도의 중심은 수(數)를 분해하여 소수(素數)를 찾아내고 그 적(積)으로서 수를 구성하듯이 개념을 분해하여 단순한 제1차적 개념을 발견하고 그 적(積)으로서 복잡한 개념을 구성하는 데 있다.

일반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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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般意志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

비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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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判哲學

칸트 이전의 어떤 철학은 인간의 사고능력을 멋대로 휘둘러 신의 존재라든가 영혼의 불멸을 부질없이 운운(云云)했으며, 그와 반대로 영국의 철학자 흄은 자연과학적인 진리조차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칸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연과학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이론적인 능력 자체(이론적 이성)를 비판·검토했다. 그리고 인간의 실천적인 능력(실천적 원리성)을 비판·검토하여 올바른 도덕의 존재양식이나 새로운 형이상학(신·영혼의 불멸·자유 등에 관한 학문)의 가능성을 제시하려고 했다(비판철학인 이유). 그래서 올바른 지식이 성립하려면 우리에게 경험을 성립시키는 형식(따라서 이 형식 자체는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신적(神的)인 형(型)이 있다고 한 것이다. 또한 도덕의 경우에는 신적인 형식이 인간의 의지를 향해 이 형식에 따르도록 명령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험철학(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 경험적인 인간적 의욕에 따라 명령하는 것을 생각하는 철학)의 본질이라고 하겠다.

목적의 나라(목적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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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的-(目的-王國)

우리 인간은 이것저것의 목적을 갖고 산다. 그러한 목적은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자체(인격)는 이미 단순히 무엇인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목적 자체이다. 때문에 서로 이용하면서도 언제나 동시에 존중해야만 한다. 자타(自他)의 인격을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칸트는 '목적의 나라(왕국)'라고 불렀다. 목적의 나라는 자유로운 이성적 인간의 공동태(共同態)이다.

절대적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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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對的 觀念論

헤겔의 철학적 입장. 그는 사유와 존재, 주관과 객관의 통일적 파악이라는 독일 관념론의 과제에 응하여 자아를 근본 원리로 하는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 나아가서는 자연을 근본 원리로 하는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결함을 통찰하여 바로 양자의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통일하고 절대적 정신의 입장에서 사유와 존재의 합일을 논했기 때문에 이처럼 불린다.

자연의 제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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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齊一性

J.S. 밀에 의하면 우리의 인식의 근원은 경험이며 과학의 유효한 귀납이다. 그리고 귀납적 추리는 특수에서 보편으로 이끌 때 귀납적 비약을 하나, 이를 가능케 하는 근거로서 밀은 자연의 제일성(齊一性)을 가정했다. 즉 자연은 동일한 조건 아래에서는 동일한 현상을 발생시켰다는 그러한 통일적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공간적인 공존의 제일성과 시간적인 계기(繼起)의 제일성으로 나뉜다.

문화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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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價値

리케르트의 용어. 현실이 가치를 떠나 일반적인 것에 주목하면 자연이며, 가치와 관계하면 문화이다. 가치를 실현하거나 그것과 관계가 있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은 문화재(文化財)라고 한다. 문화재는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역사적 개성으로서, 그것의 전제(前提)가 되는 것이 문화가치이다. 진·선·미·성(聖) 등이 그것이며 만인으로부터 실제로 타당하다고 승인을 받건 또는 타당해지기가 요구되건 문화가치의 본질은 보편적인 타당성에 있다.

에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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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斷中止

① 그리이스어의 에페케인·삼가다·멈추다에 유래한다. 회의론자는 어떠한 생각에도 반론(反論)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을 중지해야만 한다고 하여 이를 에포케라고 불렀다. ② 후설의 현상학에선 일상적인 관점, 즉 자연적인 태도를 괄호 안에 넣어 멈추도록 함으로써 순수한 체험, 순수한 의식을 획득하는 방법을 두고 현상학적인 에포케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연적인 세계로부터 현상학적인 본질 또는 세계에로의 현상학적 환원의 한 단계이다.

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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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遠回歸

니체 철학에서 볼 수 있는 근본사상의 하나. "똑같은 것이 그대로의 형태로 영원에 돌아가는 것(回歸)이 삶의 실상(實相)이다"라는 생각. 모든 생성(生成)을 한 원환(円環) 안에서의 되풀이로 보는 이 사상에서는 모든 점이 바로 중심점(中心點)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이 순간이 영원한 과거와 미래를 응축(凝縮)시킨 영원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며, 이리하여 현재의 모든 순간, 현실의 이 대지(大地) 위의 삶 자체가 그대로 영원한 가치로 이어져 힘차게 긍정되어 간다는 것이다.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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持續

베르그송 철학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 기본 관념. 그침없는 운동·변화 속에 있는 사물의 과정적 존립(過程的存立) 자체, 또는 사물이나 의식의 존립과 일체화(一體化)하고 있는 질적인 시간의 내적 연속성을 말한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현상의 가변성(可變性)=시간성에 대한 본질의 불변성(不變性)=형상성(形相性)이라는 대치(對置)가 행하여졌음에 대하여 베르그송에서는 이 지속관념의 도입으로써 본질 그 자체가 가변적=시간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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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순이나 질적 차별을 관념적인 사고로 '이것도·저것도' 모두 묶어 하나의 체계로 정리해버리는 헤겔의 양적(量的) 변증법(관념변증법)에 반대하여 키에르케고르가 강조한 말. 그에 의하면 가능성과 현실성, 관념과 존재, 인간과 신 등의 질적 차별은 단순한 관념적 사고에 의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는 자각적 행위자로서의 나, 즉 '실존'의 결단에 의해서 비약적으로 총합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체계를 부정하여 결단을 강조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질적 변증법(실존적 변증법)의 입장이 성립된다.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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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望

"신을 상실한 인생은 모두 절망이며, 정신의 죽음을 뜻하는 이 절망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사병(死病)이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그러나 자연적 삶의 공허함을 근저에서 뒤흔드는 이 절망과의 대결을 통해서만 참된 실존적 각성이나 참된 신앙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세계·내·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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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內 ·存在

하이데거의 용어. 현존재(現存在), 즉 인간의 기초적인 구조를 말한다. 잉크는 펜을 위해서, 펜은 쓰기 위해서, 쓰여진 원고는 읽히기 위해서인 것처럼 도구는 인간에게 사용되면서 서로 지시하고 연관을 갖는다. 여기에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중심은 현존재(現存在)이다. 현존재가 사용하는 도구의 전체는 현존재에 있어 의의가 있는 것의 상호연관 전체, 즉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현존재를 목적으로 하는 의의를 부여한 전체가 아니다. 그것은 현존재가 의의를 부여한 범위의 것이며 현존재의 존재양식(存在樣式)에 속한다. 물체나 자연도 이 현존재에 속하는 세계로부터 처음으로 의의를 부여받는 것이다.

현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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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存在

① 본질이나 가능태(可能態)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할 것. ② 일반적으로 …이다에 대하여, … 있다고 할 때의 존재양식. ③ 하이데거에서는 인간을 가리키고 기초적 존재론의 주제이다.

실존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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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存開明

야스퍼스의 철학적 사유의 본질을 규정하는 방법개념이며 주저(主著) <철학> 제2권의 주제가 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즉 실존적 사유를 뜻하는 말. 과학적 사유와 대비(對比)되어 인간의 실존이 자기 자신에 관해 알려고 하는 바의 실존적 자기 이해를 의미한다. 실존은 객관적 대상으로서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실존적 자기이해는 개명(開明) 또는 개시(開示)로서 실존적인 지(知)가 되는 것이다.

실존적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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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存的-

'실존적 교통'이라고도 한다. 야스퍼스 철학의 실천적 목표를 나타낸다. 그 철학의 중심은 실존개명(實存開明)이지만, 그 철학하는 것은 사귐(콤무니카티온)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에서 나왔다고 자각되고 있다. 실존은 고립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 실존에 의하여, 또한 다른 실존과 더불어서만이 실존으로서의 현실이 된다. 그것은 실존과 실존 사이에 사귐 또는 교통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투쟁'을 그 속에 품고서 그 투쟁을 통하여 인간은 본래적(本來的) 자기가 된다.

포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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包越者

'포괄자(包括者)'라고도 번역되며 야스퍼스의 존재이해(存在理解)를 나타내는 독특한 개념.

암호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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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號解讀

실존은 한계상황에서의 좌절을 통해 초월자인 신과 연관을 가지나, 그 관계에서 세계는 실존에 있어서 초월자의 상징이 된다. 야스퍼스는 이 상징에 있어 초월자로부터 실존에의 암호가 있다고 본다. 실존은 이 암호의 해석에서 초월자와의 관계를 언어적(言語的)으로 명백히 하여 자각하기를 요구한다.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이 된다. 또 구체화된 철학사상을 이해하는 것도 암호해독이라고 한다.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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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企

하이데거가 사용하고 이어 사르트르가 자기의 철학용어로서 중심에 두었던 말. '꾀하다'의 뜻이며 '앞에 던지다'라는 자의(字義)도 살려 놓았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투기(投企)'이며, 인간은 우선 실존한다고 하는 실존주의의 근본명제도 인간이 미래를 향해 자기를 던진다는 것, 또한 이 투기를 의식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투기는 또 자유로운 선택이며 직접적 목적 여하에 따라 '갖다' '하다' '있다' 등의 양상을 취하나 어느 경우에도 근본적으로는 인간 존재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사르트르는 존재투기를 자기에 대한 근원적 투기라고 했다.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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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想型

막스 베버가 사회과학의 개념구성에 있어서 독자적인 방법으로 생각해 내어 여러 논문의 서술에 적용한 것. 예컨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정신'이라는 개념은 역사적 현실 속에서 베버의 관점으로 보아 본질적인 의의를 갖는다고 간주되는 일정한 특징만을 골라, 그것들을 조립함으로써 구성된 이상형이다. 그것은 무한한 모든 요소의 복합체인 역사적 현실을 과장, 단순화시킨 이상적인 극한개념이며 일정한 관점에서 현실을 비교·측정·인과관계를 찾아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상(논리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천적 의미에서의 이상)이건 현실이건 결코 혼돈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