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교육사상/서양 고대의 교육/서양고대의 교육〔槪說〕
서양문화의 기초가 된 그리스는 많은 작은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교육을 대표할 만한 나라는 역시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휴머니즘과 아름다움, 그리고 자유 및 진리 추구에 고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서양문화의 지주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교육의 방법과 제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으나, 교육의 목적은 비교적 같았다. 즉 용맹한 무사(武士)와 강렬한 애국심을 가진 시민양성 교육을 들 수 있으며, 특히 문화적·군사적으로 국력을 배양하는 데 교육을 그 밑거름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파르타식 교육의 목적은 '지혜로운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을 요구하여 강력한 군사훈련으로 군국주의 정치를 실시하였으며, 극기(克己)와 기율(紀律)에 의한 시민생활을 강요하였다. 결혼도 건전한 남녀의 결합만이 허용되고, 남아를 출산하면 건강검사를 실시하여 허약아는 버리고 전사(戰士)가 될 가능성이 있는 남아의 생존만을 허용하였다고 한다. 교육방법으로서는 생존이 허용된 남아는 어머니에 의해서 7세까지 양육되고, 8새가 되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동 교육장에 수용되어, 엄격한 신체훈련과 애국정신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여자의 교육도 엄격했으나 다만 건강한 남아를 출산하기 위한 교육에만 중점을 두었다. 스파르타의 교육내용은 지육(知育)보다 훈련을 통한 신체의 성장 발달에 중점을 두었고, 18세에서 20세까지 군사적인 전투훈련으로 씨름·말타기·창던지기·수영·활쏘기 등의 교과과정과 군대음악을 가창(歌唱)하였으며, 독·서·산의 극히 초보적인 지적 교육도 겸하였다. 30세가 되어야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았고, 시민권을 얻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아테네의 교육목적은 무사(武士)를 양성한다는 점에서는 스파르타 교육과 같은 데가 있으나, 그 차이점은 인간성을 존중하고, 지혜로운 인간을 강조하고, 시민적 자격을 개인적 교양이라고 보았으며, 개성의 발달을 중시하며 풍부한 개인적 교양을 함양하는 자유인적 교육을 시행하였다. 교육방법으로는 7세까지는 가정교육을 받고, 8세부터 16세까지는 교복(敎僕:paidagogos)이라는 노예와 동반하여 펄레스트러(palaestra)라고 하는 공공체조학교에 나가고, 오후에는 다이다스칼레움(didascaleum)이라고 하는 사설음악학교에 가서 공부하였다. 그 후 2년간은 군사훈련에 종사하고 20세가 되면 완전한 하나의 시민으로서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다. 교육내용은 음악학교에서는 읽기·쓰기·셈하기 및 현악기·거문고·피리를 배웠고, 체조학교에서는 군사훈련 및 각종 체조경기의 훈련을 받았다. 이때의 교육사상가로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Socrates, B. C. 470-399)와 플라톤(Platon, B. C. 427-347)·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 C. 384-322)가 있다. 로마는 기원전 3세기 중엽 무렵에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정복하고, 이후 대외 정복에 나서 마침내 하나의 도시국가에서 대제국으로 발전하어 광대한 지역에 걸친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기원전 2세기 중엽 그리스 지역을 정복한 이후부터는 공화정 시대의 국가주의적 체제를 탈피하고 세계주의적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로마의 교육은 이러한 광대한 지역의 정복 및 통치자를 위한 무인 양성(武人養成)에 고심하였으며, 애국심·인내심·경건심과 법치(法治)를 위한 교육에 힘쓰게 되었다. 교육의 목적은 인내와 용맹한 전사(戰士)가 되기 위한 강한 국민성을 가지고 순종하는 영웅적 애국심을 갖게 하는 데 있었다. 또한 남성적 기상과 웅변술을 갖게 하는 데 이상을 두었다. 교육내용을 보면 유년시대에는 영웅의 무용담(武勇談)과 역사 이야기에 힘썼고 애국심과 영웅심을 길렀으며 초보적인 읽기·쓰기·셈하기는 엄격한 모친이 교육시켰다. 성장함에 따라 승마·창던지기·수영과 같은 신체적 훈련과 우수한 능변가(能辯家)의 양성을 이상으로 하였다. 교육방법으로, 교육은 사립학교에서 실시되었으며, 7세가 되면 초등교육기관인 루두스(ludus)에 입학하여 읽기·쓰기·셈하기 및 12동판법을 배웠고, 중등교육기관으로 정치가 양성을 위한 문법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에는 12세 경에 입학하여 문학·그리스어·라틴어·역사·지리·기하·천문학 등을 이수하였다. 또한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5-16세경에 입학하는 변론가 양성을 위한 수사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는 정치·법정변론을 위시하여 음악·수학·측량학·천문학·철학 등을 가르치는, 정부의 많은 보조금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치적 웅변가의 양성기관이었다. 이때의 교육사상가로는 키케로(Cicero, B. C. 106-43)와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 B.C. 35-95) 등이 유명하였다.<金 用 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