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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상/서양의 교육사상/서양 교육사상의 흐름/서양 교육사상의 흐름〔槪說〕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서양의 의도적·형식적 교육인 학교교육의 발달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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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ce-敎育

그리스의 교육은 B.C. 5세기 중엽을 경계점으로 하여 고(古)그리스 시대와 신(新)그리스 시대로 나누어지며, 또 도시국가에 따라 교육의 내용·목적·방법 등이 서로 이질적인 흐름을 보였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교육적 특질을 나타내고 있었다.

첫째, 그들은 교육을 인격적 도야와 직업준비로서의 교육으로 구별하였으며, 직업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은 자유민이 받을 것이 못 된다고 보았다.

둘째, 교육을 일종의 장식으로 여겼을 뿐 이익을 산출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셋째, 품성의 도야를 교육의 주된 목적으로 해석하였다. 즉, 교육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장식이라고 생각하였다.

넷째, 강제교육을 배제하고 자유교육을 주장하였다. 즉, 자유민으로서의 교육은 강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이 스스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섯째, 다방면적인 교육이었다. 즉,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인격의 조화적 발달과 다방면적인 도야를 교육의 요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로마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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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敎育

그리스를 이은 로마의 교육은 일반 정치사적인 구분에 따라 공화정 시대의 교육과 제정 시대의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흔히 공화정 시대의 교육을 로마의 전기교육, 제정 시대의 교육을 로마의 후기교육이라고 부른다.

로마의 전기교육은 순수한 로마적인 사회조직과 고유한 사상 아래에서 이루어진, 따라서 순(純)로마적인 교육의 특색을 발휘한, 이른바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수입하기 이전의 교육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교육은 실제적·실리적이며, 또 검소하고 강건하여 도의심과 애국심이 강한 인간상을 이상으로 하는 로마교육의 교육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발휘되는 시대의 교육이다.

이에 반하여 로마의 후기교육은 B.C. 2세기 중엽부터 흘러 들어온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순수한 로마적 교육의 특색을 상실하고, 그리스적 교육의 전성 시대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로마의 전기교육은 가정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후기교육은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로마 후기에 존재한 학교교육의 유형으로 ① 12동판법을 주요 교육내용으로 한 초등교육기관인 루두스(Ludus), ② 7자유학과의 기초과목을 주요 교육내용으로 한 중등교육기관인 문법학교, ③ 고등교육기관의 기능을 담당했던 수사학교(修辭學校)와 철학학교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중세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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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世-敎育

그리스·로마의 고대사회가 무너지고, 이어서 중세사회가 시작되는데, 이것을 편의상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전기교육은 5세기부터 11세기까지로, 기독교 사상이 교육내용과 교육실제를 지배하던 종교적 교육의 시기이고, 후기교육은 전기교육을 이어받은 11세기 후반부터 문예부흥이 일어나는 근세 직전까지의 세속적 교육, 즉 비종교적 교육의 시기를 말한다.

중세 전기의 교육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기초한 초자연주의·내세주의·주정주의(主情主義)로서, 이것이 교육의 모든 실제면에 반영되었다. 빌만(O.Wilmann)은 중세교육의 특질을, ① 기독교적인 완전에 도달하는 것, ② 정신 집중을 위한 교육, ③교권(敎權)에 의해서 교육을 엄중히 감독하는 교육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때의 교육기관으로는, ① 초등교육기관의 구실을 한 문답학교, ② 중등교육기관 및 문답학교의 교사 양성기관인 고급문답학교, ③ 가장 수준이 높고, 당시 고등교육기관의 구실을 하여 교회의 지도자, 즉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 본산학교(本山學校), ④ 수도원 사상의 배양과 전파, 그리고 수도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수도원학교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 이르면 봉건제도의 성립과 더불어 사회생활상에 변화가 일어나 소위 세속적 교육이라는 비종교적 교육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세속적 교육은 게르만적 고유사상과 기독교신앙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기사교육을 거쳐, 다시 승려 및 기사계급에 대한 제3계급의 새로운 요구로 일어난 시민교육으로서, 오늘날의 대학교육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문예부흥기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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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藝復興期-敎育

15세기 문예부흥의 근본사상은 중세 기독교적인 복음주의와 내세주의의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자태로 복귀하려는 인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선천적인 여러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켜, 오직 인간본위, 인간중심의 문화를 이룩하여서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세주의에서 현세주의로, 금욕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옮겨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외부적 권위를 박차고,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주인공이 되게 하려는 사상이다. 이런 인문주의 사상을 구현하려는 인문주의 교육은, ① 교양교육으로서의 인문주의 교육, ② 고전 중심으로서의 인문주의 교육, ③ 키케로주의(cice­ronianism)로서의 인문주의 교육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②와 ③은 참된 의미에서의 인문주의 교육만이 순수한 인문주의 정신을 구현시킨 교육이었다.

교양교육으로서의 인문주의 교육이란 인간성의 원만한 개척에 의해서 얻어지는 인간적 문화·인간적 교양을 교육의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뜻한다. 그것은 일면 초현실적·초자연적·금욕적인 기독교적 도야이념에도 반대하는 동시에 경제적·물질적 생활에 구속된 목전의 직접적인 실리주의에도 반대하는 순수한 그리스·로마적인 의미에서의 교육을 뜻한다.

종교개혁기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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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改革期-敎育

문예부흥운동이 자아의 자각을 통한 인간 재생운동이라면, 종교개혁운동은 형식적 교권주의에서 탈피하여 오직 성서에 의해서만 복음을 가질 수 있다는 신앙 해방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자가 개인적 교양을 위한 개인적 인문주의로, 후자가 사회적·도덕적·종교적 교양을 위한 사회적 인문주의로 다르게 나타나게 된 것은, 두 운동을 전개시킨 기반과 배경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문예부흥은 동방무역에 성공한 상업자본가 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미적 가치를 동경하여 개인적·귀족적 가치를 자랑하는 데 반하여, 종교개혁은 농업·목축 등 주로 서민계급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운동은 보다 평민적이면서 일반 민중의 교양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여기서 보통·초등교육의 필요를 증대시켜, 드디어 근대 초등·보통·의무교육제도의 기초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종교개혁사상이 교육에 남긴 업적은 모든 국민에게 사회적·경제적·종교적·성적 조건에 관계없이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사상적인 뒷받침을 제공한 데 있었다. 그 결과 우연히도 1642년에 루터파(派)에 의해서는 고타(Gotha) 교육령으로, 칼뱅파(派)에 의해서는 매사추세츠 교육령으로 각각 나타났다. 두 교육령은 근대적 의미에서 세계 최초의 교육령인 동시에 의무교육령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문예부흥에 이은 종교개혁운동의 결과는 사람들의 관심을 신학에서 과학으로, 초자연에서 자연으로 옮겨 근세 개화(開花)의 길은 열렸으나, 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여전히 언어주의·암기주의·훈련 위주의 형식주의적인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형식주의 교육에서 탈피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 일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17세기의 실학주의 교육사상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학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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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學主義敎育思想

실학주의는 인문주의자와 종교개혁자의 편협성에 대한 반항으로 생긴 사상을 말하며, 교육의 이론 및 실제를 통해 관념보다는 사물을 중시하고, 자연과학적인 사물적 교과를 중시하는 교육사상이요, 운동이다.

실학주의는 그 발달과정에 있어, ① 인문적 실학주의, ② 사회적 실학주의, ③ 감각적 실학주의의 세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이 중에서 감각적 실학주의가 17세기의 실학주의를 대표한다. 감각적 실학주의의 대표적인 교육 사상가는 오스트리아의 코메니우스(J. A. Comenius)이다. 코메니우스는 <대교수학(大敎授學)>(1632), <세계도회(世界圖繪)>(1658) 등의 저서를 통하여, 모든 교수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서'라는 합자연성(合自然性)의 원리와 감각적 직관을 교수법의 중핵으로 삼는 직관의 원리를 내세워 교수법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계몽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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啓蒙主義敎育思想

18세기에는 계몽사상이 교육계를 지배하였다. 계몽이란 독일어의 'Auarung', 영어의 'enlightenment'인바, 몽매(蒙昧)를 계몽한다는 뜻이다. 계몽사상이란 '사람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이성을 지상원리로 하여, 자유로이 사고하고 연구하여 지식을 증진, 보급시켜 과거의 모든 전통과 인습·사회제도·형식주의 인간관·비과학적인 세계관 등의 전통적인 기성권위를 비판하며, 사람과 사회의 몽매와 불합리함을 타파하고, 합리적이고 완전한 사회와 인간관계를 구하려는 사상'이다.

이러한 계몽사조는 인간이성의 주체적 활동에 의한 무한한 진보와 가능성을 만들었다. 앙시앵 레짐에 의해 상징된 과거의 전통은 파기되어야 할 것이지,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를 부정하고, 오로지 합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입장, 따라서 영원한 것, 보편타당한 것에 의존하려 한 것이 계몽사조의 입장이었다.

이러한 사조는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인간의 작위적인 전통적 인습에서 벗어나 자연으로의 복귀를 주창한 자연주의 교육사조와, 국가관념과 국가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범애적(汎愛的) 입장에서 교육을 시도한 범애주의(汎愛主義)의 교육사조를 배태하게 된다. 전자의 대표로는 루소(J. J. Rousseau)를, 후자의 대표로는 잘츠만(C. G. Salz­mann) 등을 들 수 있다.

신인문주의 교육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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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人文主義敎育思想

18세를 이어받은 19세기의 교육은 신인문주의(新人文主義)로 대표된다. 신인문주의란 19세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사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5세기 인문주의가 키케로주의로 타락했던 오류를 지적하고, 17세기 실학주의의 공리성을 비판하는 동시에 18세기 계몽사상의 이성 지상주의에 반발하는 운동이다. 말하자면 계몽사조가 냉철한 이성과 지성을 가지고 인생 또는 사회를 해석하는 경향인 데 반하여, 신인문주의는 이성 또는 지성으로써 해명할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을 감성적·심미적인 태도로 탐구하려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신인문주의는 계몽사조의 주지주의·합리주의·개인주의·반역사주의·반민족주의·반국가주의에 대립하는 정의주의·역사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신인문주의는 교육에 있어 인간의 지·정·의(知·情·意)의 여러 영역에 걸쳐 풍요하고 폭넓은 발달을 지향하였다. 이러한 신인문주의의 흐름에 속하는 교육사상가로는 교성(敎聖)으로 불리는 페스탈로치(J. H. Pestalozzi), 과학적 교육학의 창시자 헤르바르트(J. H. Herbart), 유치원을 창시한 유아교육의 아버지 프뢰벨(F. W. A. Frobel) 등을 지적할 수 있다.

19세기의 교육사상에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교육학설에는, ① 페스탈로치·헤르바르트·프뢰벨을 잇는 일련의 심리적 교육설, ② 피히테(J. G. Fichte)에서 나타난 국가주의 교육설, ③ 스펜서(H. Spencer)와 헉슬리(T. H. Huxley)로 대표되는 과학적 교육설 등이 있다. 이 중에서 ① ②의 교육설은 현대 미국 교육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미국의 교육사상가 내지 교육개혁가들로서는 카터(J. G. Carter)·만(H. Mann)·버나드(H. Barnard), 그리고 파커(F. W. Parker)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새교육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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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敎育運動

20세기는 교육의 기회균등, 교육의 민주화를 기도하고 있다. 그것은 전(前)세기에 이룩된 교육의 제도적 민주화에서 내용적 민주화를 가져온 세기임을 뜻한다. 이러한 교육내용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일련의 새로운 교육개혁 운동을 '새교육운동'이라고 부른다.새교육운동의 최초의 모습은 학교 교육내용의 개조운동으로 나타났다. 새교육운동을 전개시킨 중심인물은 레디(C. Reddie)·드몰랭(J. E. Demolins)·리츠(H. Lietz) 등이다.

새교육운동의 둘째 단계는 아동의 해방운동이다. 아동의 해방운동은 앞서 언급된 파커가 주도한 퀸시(Quincy)운동에서 출발, 케이(E. Key) 와 듀이(J. Dewey)로 연결되어 20세기 전반기 교육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 아동 해방운동의 구체적 사례를 몬테소리(Montessori)법·데크롤리(Decroly)법·사츠키(S. Shat­sky)의 실험학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새교육운동의 셋째 단계는 학습지도법의 개발이다. 아동 해방운동의 필연적인 결과로 개성과 개인차를 존중하는 학습지도법이 여러 형태로 고안 또는 연구되어 나왔다. 이러한 새로운 학습지도법으로는 파커스트(H. Parkhurst)에 의한 '돌턴 안(Dalton 案)', 워시번(C. W. Washburne)의 '위네트카 안(Winnetka 案)', 그리고 킬패트릭(W. H. Kilpatrick)의 '구안법(構案法:project method)' 등을 들 수 있고, 이를 계기로 문제학습·발견학습·프로그램 학습·버즈학습·완전학습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새교육운동의 넷째 단계는 일명 향토학교라고 불리는 지역사회학교 운동이다. 지역사회학교 운동은 지금까지의 학구적 학교와 아동 중심의 학교에서 탈피하여 교육의 사회화, 학교의 사회화를 주장하는 새교육운동으로서, 올슨(E. G. Olsen)에 의해 제창된 새교육운동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교육의 주도권이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하여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교육적 선진국이던 유럽의 교육사상을 대신하는 미국적 교육사상의 탄생을 뜻한다. 미국적 교육사상의 탄생은 바로 생물학적 진화사상을 근거로 하는 프래그머티즘의 풍요한 옥토 위에 꽃피운 진보주의 교육을 지칭한다.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듀이·킬패트릭으로 연결되어, 20세기 전반기까지 교육사상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새로운 교육사상체계를 갖추어 자본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일파(一派), 즉 본질주의 교육사상을 펴는 본질파의 출현을 보게 된다.

이 사상의 대표자는 배글리(W. C. Bagley)이다. 또 한편, 본질주의자들의 진보주의 교육에 대한 공격이 철저하지 못함을 불만으로 여겨, 보다 적극적으로 진보주의 교육의 이론적 근거인 프래그머티즘 자체를 전적으로 거부 또는 부인하는 일파가 있다. 이름지어 항존주의(恒存主義) 교육사상이라 한다. 이 교육사상의 대표자는 허친스(R. M. Hutch­ins)이다.

그 외에 브라멜드(T. Brameld)에 의해서 주창된 재건주의(再建主義) 교육사상이 있다.

20세기 전반기의 아동중심·경험중심·생활중심의 진보주의 교육은 한 세기와 더불어 사양화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20세기 후반기의 새시대의 교육을 이끌어 갈 새교육사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겠다.

<安 商 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