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나폴레옹과 빈 체제/미국의 팽창
미국의 팽창〔槪說〕
[편집]19세기 전반은 광대한 서부 지역이 미국에 병합되어 태평양 연안까지 달한 시기이다. 1803년 프랑스로부터의 루이지애나 구입과 1819년 에스파냐로부터의 플로리다 획득으로 영토는 순식간에 2배로 팽창하였다. 그러나 1830년부터 1840년에 걸쳐 더욱더 서쪽으로의 진출을 계속하였다. 특히 면화 재배의 중심이 멕시코만 연안 지역으로 이동됨에 따라 남부의 면화 플랜테이션은 텍사스에 새로운 토지를 찾게 되었으며, 재배자들은 이 지역에 노예를 투입했다. 멕시코는 이에 각종 제한을 가했기 때문에 1836년 이곳 주민이 텍사스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미국이 병합된 것은 1845년의 포크 대통령 시대였다. 1830년대는 이렇게 해서 서진(西進) 운동의 발판을 이루었다. 그래서 7월혁명 후 유럽으로부터의 이민 증가와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의 교통 발달, 미시시피강을 항해하는 기선의 출현 등으로 인하여 서부 개척이 더욱 촉진되었다. 영토 확장론자는 태평양 연안까지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당연한 숙명이라는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 사상을 낳게 하였다. 1848년의 멕시코 전쟁으로 미국은 캘리포니아·뉴멕시코를 획득했다. 이 전쟁중에 오리건령(領)도 북위 49도선을 경계로 미국 영토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사금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의 골드 러시로 인구가 삽시간에 10만으로 불어났다. 이와 같은 금의 대량 산출은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에 번영을 가져왔다. 한편 미국의 영토 확대는 남북 양지역의 대립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예제 면화 플랜테이션은 끊임없이 새로운 토지가 필요하게 만들었고, 서부의 새 지역에 대한 노예제의 확대를 추구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와 병행해서 북부의 공업발전은 서부에 시장을 확대시키고 새로운 자유주(自由州)를 창출시킴으로써 정치적·경제적 지배체제를 확립하려고 했다. 서부의 발전은 19세기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매수
[편집]-買收
1803년 미국이 미시시피강 서쪽의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프랑스로부터 매수한 사건. 1802년 에스파냐가 미국의 선박들에 대하여 뉴올리언스에서의 화물 환적권(換積權)을 정지시킨 것이 계기가 되어 프랑스와의 교섭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폴레옹은 대불동맹(對佛同盟)과의 대항을 위해 미국이 영국과 동맹관계를 맺는 것을 우려, 루이지애나 매각을 미국에 제안했다. 제퍼슨은 의회의 승인 없이 1천5백만 달러라는 염가로 이를 구입했다.
텍사스 병합
[편집]-倂合
1845년 포크 대통령 재임시 텍사스는 미국의 한 주가 되었다. 텍사스는 원래 멕시코령이었으나 미국의 남부로부터 많은 이민이 노예를 이끌고 이주해 왔다. 이에 대하여 멕시코는 이민들에게 멕시코화를 강요했기 때문에 텍사스인은 1835년에 항거, 이듬해 독립을 선언했다. 이 공화국은 합중국에의 가입을 희망했으나 노예주(奴隸州)로 전락할 위험성과 멕시코와의 충돌이 두려워 가입이 연기되어 오다가, 영토확장론자로 등장한 포크 대통령의 당선으로 의회의 다수결을 거쳐 병합되었다.
멕시코 전쟁
[편집]-戰爭 Mexican War
텍사스 남서 경계를 둘러싸고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벌어진 전쟁(1846
1848). 1840년대의 미국의 서진운동(西進運動)의 결과, 남부노예주(南部奴隸主)들은 노예제(奴隸制)를 확대하기 위하여 멕시코 영토를 획득하려 하였다. 1845년 미국의 텍사스 병합에 따라 멕시코는 대미 외교를 단절하였다. 미국은 텍사스의 서남 경계선으로서 리오그란데를 요구했으나 멕시코가 이를 인정하지 않자, 1846년 포크 대통령은 멕시코에 선전포고, 약 1년 반의 전쟁으로 멕시코를 굴복시켰다. 1848년 2월 구아달루페 이달고(Guadalupe Iidalgo) 조약에 의해 미국은 리오그란데를 텍사스 국경으로 하고 뉴멕시코·캘리포니아도 손에 넣었다.
이 전쟁은 미국에게 노예제 지역의 확대를 둘러싼 정치 문제의 재연(再燃), 영토의 태평양안(太平洋岸) 도달, 중남 아메리카 진출의 기초 확립, 남부 정치 세력의 강화란 여러 계기(契機)를 가져온 사건으로 주목된다.
미영전쟁
[편집]美英戰爭
1812년부터 1814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 중 영국의 봉쇄정책에 반감을 품었던 미국이 일으킨 대(對)영국 전쟁. 미국 선박들이 영국 해군에게 나포되고 선원들이 강제 징집된데다 영국인이 인디언에게 무기를 공급, 서부 프런티어를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주전론자들의 주장이 강해져 1812년 6월에 대영국 전쟁이 선포되었다. 북동부의 페더럴리스트는 전쟁에 반대입장을 취했으나 영국군이 워싱턴에 침입, 화이트하우스를 파괴해 버리자 국민적 결속을 촉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강화조약에 의하여 전쟁이 종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되고 경제적 자립화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프런티어(서진운동)
[편집]Frontier (西進運動)
19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의 서부는 미시시피강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확대하였다. 새로운 변경지대, 즉 프런티어는 서쪽으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수렵자나 모피 상인들이 들어갔고 이어서 자작농민과 토지 투기업자가 새로운 치부와 기회를 찾아 이주했다. 이러한 개척활동은 전통과 습관에 속박당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꾸준히 창조해 나갔다. 프런티어는 미국 민주주의의 육성과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잭슨
[편집]Andrew Jackson (1767
1845)
미국의 제7대 대통령(재임 1829
1837). 서부 개척자 출신. 미·영전쟁 발발 직후인 1815년 육군 소장으로 뉴올리언스에서 영국군을 격파,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818년 인디언 토벌, 플로리다 침입 등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어서 1828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신흥 서민층의 이익과 권리 옹호에 노력하여 동부의 특권계급이나 은행가에 맞섰다. 그는 ‘스포일스 시스템’이라 불리는 관직 교체제를 실시하여 정치를 서민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렸다. 또한 이 시기에는 남자보통선거제의 확대가 이루어져 서민적 민주정치가 발전했다. 제2국립은행의 특허 기한 연장에 반대하고, 동부 노동자 및 서부 농민을 위해 값싼 공유지를 제공하는 등 동부의 소수 부유계급의 특권과 독점적 기업에 도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