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근대 유럽과 아시아/남북전쟁과 제국주의의 발전/19세기 후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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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세계〔槪說〕[편집]

ㄹㄱㄴ 지피tv 만세121.171.155.142 (토론) 19세기 후반이라고 하면 1848년의 2월혁명 이후 50여 년간을 생각할 수 있다. 연대를 떠나 실질적인 유럽 사조(史潮)에서 보면 1848년은 18세기의 청산이요, 동시에 19세기사의 시초이며, 또 19세기의 중요한 사상(史像)이 20세기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만큼 1848년은 20세기사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848년까지 유럽사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1848년 말경부터는 역사적 권리에 의거해서 모든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게 되었고, 그런 경향이 20세기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기를 특징있게 한 세력은 민족주의(民族主義 혹은 國家主義)와 사회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거대한 세력은 20세기사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주로 나폴레옹 전쟁의 소산이요, 사회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였음은 두말할 것 없다.

민족주의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문제였다. 그것은 두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유럽적 문제였고, 20세기 역사에도 크게 관계되는 문제였다. 우선 독일은 빈 회의 이후 여러 모양으로 통일문제를 논의하여 오다가 1848년 3월혁명 이후 프랑크푸르트 국회에서 연방 대의원들이 통일제국과 헌법문제를 토의하였다.

그러나 이 국회가 실패하자 결국 39개 연방 중 어느 나라가 독일을 통일하느냐, 또 통일이 앞서느냐 자유가 앞서느냐 등의 현실문제가 긴급하게 되었다. 이때 연방 중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서로 경쟁하였으나 나폴레옹 전쟁에 공을 세우고 독일 민족과 신교로 통일된 프러시아가 독일 통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실제로 프러시아에 독일의 많은 인재가 모여 있어서 프러시아의 국토 통일을 지지하였다. 또는 현실적으로 자유보다 통일이 앞서야 된다는 것, 그리고 통일은 프러시아의 군비확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사실 프러시아는 세 번의 전쟁을 통해서 독일을 통일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에 로마 교황령, 남부에 나폴리 왕국, 북부에 오스트리아 세력, 그리고 서북부의 사르데냐 왕국 등으로 분열된 이탈리아의 통일은 사보이 왕가의 사르데냐 왕국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왜냐하면 1848년의 혁명 이후 사르데냐 왕국이 제일 먼저 자유헌법을 발표했고, 또 북부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와 싸워 적군을 몰아냈으며, 카보우르, 가리발디 같은 인재들이 사르데냐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탈리아의 통일을 사르데냐의 임무로 생각했다. 사실 사르데냐 왕국은 외교와 전쟁을 통해서 이탈리아를 독일과 같이 1871년에 통일했다. 이 무렵 프랑스는 제3공화국으로 성립되고 강렬한 민족주의가 부흥되었다. 또한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앙양되었다.

유럽 민족주의의 다음 단계는 그것이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데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열강은 그 통일된 국가의 여력(餘力)을 아프리카와 같은 미개지 또는 아시아와 같은 후진지역에 쏟았다. 그러는 동안에 각 국가 내부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이 대두하여 계급투쟁이 일어났다. 국가가 외적으로 발전하는 동안에 국가 내부에서는 사회계급투쟁을 통해서 모든 민주적 개혁이 촉진되었다.

그것도 1848년 이후부터였다고 볼 수 있는데, 원래 2월혁명이 사회주의적 혁명이었고, 또 동년에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출간되어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적 알력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새로운 기계문명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켰고, 그들은 자본가에 대해서 투쟁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1848년부터의 사회계급 투쟁은 세계 혁명적인 사회주의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18세기의 인도주의적인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나 초기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사상보다는 투쟁과 폭력으로 세계를 개조하려는 과격한 혁명사상이 압도적이었다. 이리하여 각국 내에서는 폭력적인 사회주의 사상이 팽창해갔다. 제1인터내셔널이 1860년대에 창설되었고, 제2인터내셔널이 1890년대에 조직되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노동자들이 국제노동자협회를 조직하고 프롤레타리아 정당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노동자보호법, 공장입법, 협동조합 건설,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해방 등을 위해 공동 투쟁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 결과 독일에는 사회주의당이 생기고 영국에도 노동당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사회주의운동에 대해서 영국에서는 기독교사회주의, 차티스트 운동, 부녀 운동, 페이비언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어 합법적이고 비혁명적이며 점진적인 사회주의가 성공하였다. 대륙에서 혁명적·비합법적·무신론적 사회주의 운동이 왕성했던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고 보겠다. 영국의 사회주의는 논리적이고 도덕적이었는 데 반해 대륙의 그것은 지극히 유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