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그리스도교의 성립/1 ~ 3세기경의 세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1 ~ 3세기경의 세계〔槪說〕[편집]

기원 1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지중해 세계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 시대를 맞이하였고, 동아시아 세계에 있어서도 한(漢)제국의 부흥(後漢)이 이루어져서 전대(前代)의 성기(盛期)가 재현되었다. 또 동서 양(兩) 세계의 중간에는 서아시아에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및 서북 이집트에 쿠샨 왕조, 남이집트에 안드라 왕조 등 여러 국가가 있어서 각각 번영하여 동서 교통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2세기 중엽부터 3세기에 걸쳐서 한제국, 페르시아, 안드라 왕조는 내외로 위기가 찾아왔으며, 3세기에 와서 이들 제국은 차례로 멸망, 쿠샨 왕조의 왕국은 해체되었으며, 로마도 원수정(元首政)에서 전제군주정으로 정체를 바꾸면서 제국의 위기를 타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기원 1세기에서 3세기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의 지배에서 5현제(五賢帝)에 이르는 시기로, 로마의 전성기였다. 이 동안에 제국 내의 평화는 최대로 유지되었고, 로마식 도시가 건설되어 속주(屬州)의 로마화(化)가 추진되었으며, 지중해 세계의 문화적·경제적 통일이 달성되어 여기에 로마의 세계 시민적 정신이 출현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는 또한 노예의 공급이 대체로 한계에 달하여 차츰 감소되었고, 그 위에 빈번한 노예 반란으로 인하여 노예제 농업을 시행함에 있어 많은 난관이 드러났다.2세기 후반, 5현제 최후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래 이민족(異民族)과의 전쟁을 위한 군사력 강화의 결과로 각지의 군단(軍團) 세력이 증대하였으며, 3세기에는 50년간에 걸쳐 군인 황제의 시대를 이끌었다. 내란은 로마의 정치나 군제(軍制)뿐만 아니라 사회나 경제에도 변화를 초래했으나 이러한 여러 변화를 하나의 체제에 고정화하여 제국 재건을 도모한 것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였다. 로마제정시대의 지중해 세계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敎)의 성립과 발전이었다. 기원 1세기에 유대교로부터 분리, 생성(生成)한 그리스도교는 사도(使徒)들에 의하여 제국 내의 여러 인민들에게 전파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교는 빈번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교세가 확장되어 3세기에는 제국내에 견고한 조직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서는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로마와 국경을 접한 동방의 강국 페르시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로마에게는 강력한 적대자였다. 그러나 로마와의 항쟁으로 국력을 소모하였고, 또 국내에 있어서 제후국의 분립(分立)으로 피폐해 있던 중, 3세기에 들어와서 이란의 페르시스 지방에서 일어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였다.중앙아시아에는 기원을 전후해서 쿠샨 왕조가 대통일을 실현하고 서북 이집트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2세기의 카니시카왕 시대가 최성기(最盛期)였으며, 쿠샨 왕조의 발전으로 중앙아시아의 국제 무역은 현저하게 번영, 간다라의 불교문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3세기에 들어와서 서방에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세력이 침투함에 이르러 왕국의 해체가 시작되었다.인도 남부에는 마우리아 왕조의 쇠퇴 후 드라비다계(系)의 여러 국가가 세워졌으나, 그 중에서도 안드라 왕국이 최대 왕국으로서 전후 350년간 존속되었다. 남인도의 여러 국가는 인도양의 해상 무역에 의하여 번영을 누렸으며, 로마제국과의 교역도 성행하였다. 그 위에 인도인의 해상 진출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동아시아의 한제국은 기원 1세기 초에 외척인 왕망(王莽)이 한을 멸망시키고 신(新)을 세워 일시 와해되었으나, 얼마 후에 한제실(漢帝室)의 일족인 유수(劉秀, 光武帝)가 한조(漢朝)를 부활하여 후한(後漢)을 세웠다.후한은 1세기 후반에 재차 서역(西域)에 진출하여 동서 교통로를 확보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2세기에 들어와서 환관(宦官)·외척의 세력이 증대하여 중앙의 정치가 문란해지고, 지방에는 호족(豪族)의 토지겸병이 진척되어 농민을 압박하였으며, 북변(北邊)에는 선비(鮮卑)의 침입이 격화되었다. 2세기 후반의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계기로 제국은 분열되었으며, 3세기에 이르러 왕조는 완전히 멸망하였다.후한의 멸망 후 약 반세기 동안은 위(魏)·촉(蜀)·오(吳)의 3국에 의한 정립(鼎立) 상태가 계속되었고, 그 후에 진(晉)에 의한 중국의 재통일도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으며, 겨우 30여 년 후 중국 내부에 이주한 흉노(匈奴)족에 의하여 수도 장안(長安)이 함락됨으로써 왕실의 일족이 강남(江南)으로 이동하고, 진의 일족도 새로 건강(健康)에 도읍을 정하니, 이것이 동진(東晉)이며 이전의 서진과 구별된다.동진은 그 후 1세기 가량 계속되었으나 그 사이에 화베이 지방에서 5호(五胡) 민족들이 연달아 건국하여 동란의 시대를 연출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중국 역사상의 5호 16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