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인류의 탄생/신석기시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신석기시대〔槪說〕[편집]

러보크에 의한 시대 구분으로 본다면 구석기시대는 뗀석기(打製石器)와 수렵채취(狩獵採取) 생활로서 특징지워지고, 신석기시대는 마제(磨製)석기와 농경목축(農耕牧畜) 생활의 특징을 갖는다. 이 시대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시대에서 식량생산을 하면서 정착생활과 촌락의 형성이 가능해져 문명 형성의 기틀을 마련한 시대이다.기술의 진보로 식량을 저장하거나 익혀먹기 위해 토기가 발명되고, 수렵과 농경을 위한 도구로 마제석기가 사용되었다. 기원전 6500년경, 북이라크의 쟈르모나 팔레스티나의 예리코에서 최초의 농경·목축이 시작되며, 기원전 6천 년경에는 이집트도 농경의 중심지대가 된다. 드디어 기원전 5천 년경에는 오리엔트 지방 일대가 신석기시대로 접어들었다. 한편 유럽에서는 마제석기 시기와 토기를 갖게 되지만, 농경·목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가 오래 계속되다가 오리엔트의 영향을 받아서 기원전 3천 년경까지에는 거의 모든 지방에서 농경·목축을 실시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인류는 자급자족의 경제 단계에 도달했는데, 곡물 재배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출현에 의해서 더욱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었다. 금석(金石)병용기에 들어가자, 농경지대의 중심은 대하(大河) 유역으로 옮겨져서 한층 생산력이 증대했다. 그러나 농경·목축의 생활이 불가능한 사막·스텝(steppe)·툰드라(tundra)지대에서는 유목(遊牧)생활이 영위되고 농경민과의 접촉에 의해서 고도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요인이 된다. 나아가서 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삼림지대나, 수산자원이 풍부한 연해지대(沿海地帶)에서는 수렵·채집의 생활이 계속된다.신석기시대-금석병용기의 사회 구성·종교에 대한 연구는 억측(臆測)의 영역을 넘지 못하지만, 고고학적 연구, 민족학적 연구에 의해서 차차 알려지게 되었다.

농경목축의 기원[편집]

농경목축의 기원

팔레스티나의 나투프 문화, 이라크의 팔레가우라 문화는 중석기시대의 문화에 속하며 농경목축의 개시 이전 단계에 있다. 거기서는 야생의 곡물 수확, 후에 가축이 되는 동물의 수렵이 행해졌다. 드디어 인류는 토지를 경작하여 곡물을 재배하게 되었다.최초로 농경을 실시한 지역은 북이라크의 산악지대이다. 재배된 곡물은 보리·밀·에메르 밀(Emer 小麥)이다. 야생의 보리는 북아프리카,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트란스코카서스, 아프가니스탄에 분포했고, 밀은 발칸 반도, 크림 반도, 소아시아에 야생했으며, 에메르 밀은 팔레스티나와 이란에 야생하고 있었다. 북이라크의 최초 농민은 이러한 품종을 서서히 개량해 나갔다. 곡물은 탄수화물을 많이 함유하며 영양가가 매우 높고 오래 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낟알로 몇십 배나 수확할 수 있다. 또한 경작에 요하는 노력이 적게 들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농민은 기아 상태에서 구제되었다.농경구(農耕具)로서 중앙에 구멍을 뚫은 둥근 돌(막대에 꽂아서 찍는다)이나 마제(磨製) 돌도끼가 발명되고, 아스팔트로 뭉친 낫, 곡물을 제분하기 위한 돌절구, 돌공이도 제작되었다. 당시의 농경은 천수(天水)에 의지하고 있었다. 농경과 함께 목축이 행해졌는데, 사육된 동물은 양·염소·돼지·소 등의 유제류(有蹄類)의 동물이었다. 이러한 동물의 고기·젖은 식용으로, 피혁·털은 의복으로, 똥은 비료로서 유용했다. 더욱이 이러한 동물은 양순하여 사람을 따르기 쉬운 성질을 가졌고, 풀이나 곡물, 인간이 먹고 남은 것을 먹이로 할 수 있었다. 최초의 목축은 야생 동물을 길들인 것들이다. 야생의 양은 터키에서 이란에 이르는 산악지대에 존재했고, 야생의 돼지(멧돼지)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 서아시아 특히 북이라크는 이와 같이 야생의 곡물·동물을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농경과 목축은 거의 동시에 기원전 6500년경 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