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인류 문화의 시작/인류의 탄생/전기 구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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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구석기시대〔槪說〕[편집]

구석기시대는 지질연대로 보면 홍적세, 즉 빙하시대에 해당하며, 자연환경은 오늘날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최초의 인류가 어떠한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석기 이외의 도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썩어 없어져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간단한 도구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제1빙하기에 출현한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는 역석기(礫石器)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인류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적응하여 갔다. 제2간빙기 이후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구석기시대의 여러 유적의 발굴조사에서 전기 구석기시대의 물질문화·정신문화가 분명해졌다. 셸기(期)·아슐기의 문화를 남긴 고생인류는 석핵(石核)에서 손도끼를 만들었다. 무스티에기(期)에 등장하여 구대륙의 각지에 서식하게 된 네안데르탈인은 박편(剝片)석기를 사용하여 수렵에 종사했다. 또한 동굴이나 바위 틈을 주거로 하고, 불을 피우는 법을 발명하고, 매장(埋葬)의 풍습이 생겼다. 이 시대에, 군이라는 사회집단에서 차차 씨족(氏族)이 형성되어 갔다. 그러나 식량을 얻기 위한 도구나 집단노동의 방법이 유치했기 때문에 언제나 식량은 부족했다.

구석기시대의 편년[편집]

-編年

돌을 두들겨 깬 타제(打製)석기가 만들어지고 마제(磨製)석기는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를 구석기시대라 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전기 구석기시대와 후기 구석기시대의 편년은 표와 같다.

뗀석기[편집]

-石器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구석기시대의 석기로서, 돌망치나 뿔망치로 돌에 직접 타격을 가하여 만들거나, 뿔·뼈·나무·긴 자갈 등을 쐐기처럼 써서, 간접적으로 타격을 가하여 만든다. 또한 뿔·뼈로 만든 날카로운 가압기(加壓器)를 써서 돌날에 대고 눌러 격지를 떼어내는 방법 등이 있는데 만드는 기술이 전기·중기·후기에 따라 변화한다. 종류는 다양하며, 대형석기와 소형석기로 나누어진다. 대형석기에는 주먹도끼·찍개·안팎날찍개·주먹괭이·자르개·다각면원구(多角面圓球) 등이 있는데, 주로 전기구석기시대에 많이 만들어 썼다. 중기·후기에는 그 비율이 줄어들었으며 한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소형석기는 격지석기와 돌날석기로 나뉘는데, 격지석기로는 긁개·첨기(尖器)·홈날·톱니석기·유경석기·르발루아석기 등이 있다. 돌날석기는 끝긁개·밀개·송곳·조각칼·복합석기·첨두형돌날·기하문형석기(幾何紋形石器)와 다듬은 돌날 등이다. 격지석기들은 석기·후기 구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주로 중기에 주된 뗀석기로 썼으며, 돌날석기는 주로 후기에 만들어졌다.

셸기[편집]

-期 Chellean

프랑스의 셸 유적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기. 유물 포함지는 프랑스, 에스파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아르메니아, 인도, 북아프리카에 분포한다. 제2간빙기의 온난한 기후 아래 옛코끼리, 하마, 비버, 코뿔소 등이 시난트로푸스에 유사한 구인류와 공존했다. 석기는 자갈을 양면에서 두들겨 깨서 만든 손도끼, 조잡한 송곳, 스크레이퍼 모양의 것이 만들어졌다.

아슐기[편집]

-期 Acheulean

셸기 다음의 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기. 서유럽을 중심으로 서아시아, 아프리카에 분포한다. 프랑스의 산타 아슐을 표준 유적으로 한다. 제2간빙기에서 제3빙하기로의 전환 시기로서, 온난계의 동물에서 매머드 코뿔소와 같은 한랭계의 동물이 출현한다. 동굴이 주거로 사용되고, 화덕이 만들어졌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삼각형, 타원형의 악부(握斧)·첨두기(尖頭器)·스크레이퍼·송곳이 만들어졌다. 팔레스티나의 카르멜산(山) 타분 동굴에서 8천 개 이상의 악부가 출토했다. 인류는 시난트로푸스형의 구인류였던 것 같다.

무스티에기[편집]

-期 Mousterian

전기 구석기시대의 문화기(무스티에기를 중기 구석기시대라고도 한다).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하여, 악부(握斧), 돌칼이나 박편으로 만든 스크레이퍼·돌송곳·첨두기(尖頭器)가 나타났다. 제3간빙기의 난(暖)무스티에기, 제4빙하기의 한(寒)무스티에기로 나눌 수 있다. 원시적인 골각기(骨角器)가 만들어지고, 불을 피우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유해는 의식적으로 매장하게 되었다. 유적은 동굴이 많아지고, 유럽, 서아시아, 자바, 남아프리카에 분포하며, 주요한 것은 프랑스의 르 무스티에 유적이다.

역석기[편집]

礫石器

가장 오랜 형태의 석기로서 규암(硅岩)·석영 등 자갈의 한쪽 모서리를 두들겨 깨뜨려 날을 세운 것. 제1빙하기경 동아프리카의 가프 계곡, 보다 좀 지난 시기의 올두바이 계곡에서 출토됐다.

박편석기[편집]

剝片石器

돌의 박편에 가공하여 석기로 만든 것. 스크레이퍼·첨두기 등의 석기가 많고, 가죽을 벗긴다든지, 살을 오려 낸다든지, 뼈에 구멍을 낸다든지 하는 데 편리하다. 박편석기를 가진 문화는 클라크톤 문화(셸기, 아슐기 병행의 영국의 전기 구석기시대 문화)·무스티에 문화를 들 수 있는데, 주로 구대륙 북방의 한랭한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석핵석기[편집]

石核石器

석핵을 가공해서 만든 석기. 악부(握斧)가 많다. 흙을 판다든지, 나무를 찍어 넘기는 데 편리하다. 셸기, 아슐기에는 석핵 석기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구대륙 남부의 온난한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그러나 박편석기와 석핵석기는 따로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양자가 공존하는 예가 많다.

동굴[편집]

洞窟

아슐기부터 인류는 바위 틈이나 동굴을 주거(住居)로 삼게 되었다. 동굴 안에는 노(爐)가 만들어지고, 추위를 막을 뿐만 아니라, 야수로부터 몸을 지키고 잡은 것을 구워 먹기 위해서 이용되었다. 동굴에는 먹은 동물의 뼈, 석기류가 난잡하게 놓여 있었다. 시난트로푸스가 살았던 원인동(猿人洞), 아슐기의 카르멜산의 에 타분 동굴은 대표적인 것이다. 무스티에기 이후, 인류는 더욱 동굴에 정착하게 되어 중석기시대 이후에 있어서도 동굴이 주거로서 이용되었다. 또한 동굴 안에 유체(遺體)가 매장되었다. 동굴은 때때로 무너져서 낡은 층이 묻히기 때문에 많은 문화층이 매몰되어 있는 수가 많다.

매장[편집]

埋葬

무스티에기의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매장의 관념이 발생했다. 네안데르탈인은 가족을 자기들이 사는 동굴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유체는 발을 굽히고 손가락이 얼굴에 닿는 자세로 매장되었다. 프랑스의 라 샤펠 오산, 카르멜산의 스쿨 동굴, 소련의 키크 코바 동굴 등의 동굴은 이와 같은 유적이다.

수렵의 진보[편집]

狩獵-進步

클라크톤기, 아슐기에 이미 창(槍)끝 같은 석기가 제작되었다. 투창과 같은 것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하여 수렵의 도구가 개량되고, 또한 공동작업으로 수렵·어로를 행하게 되어 잡은 것의 수량과 종류도 증가되었다.

채집경제[편집]

採集經濟

전기 구석기시대에는 수렵과 어로(漁撈)도 행하여졌는데 도구도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고, 공동 작업의 방법도 능률적이 아니었다. 당시의 인류는 항상 기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와 같은 경제를 식물채집(food gathering)의 경제라고 부른다.

[편집]

群 Horde

전기 구석기시대의 사회적 집단은 군(群)이었던 것 같다. 군은 어버이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몇 개 모여서 형성된 공동체로서 혈연에 의해서 묶여졌다. 혼인관계는 난혼(亂婚)의 단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렵이나 어로에 있어서는 집단노동이 실시되어 남성은 수렵·어로에, 여성은 채집·불 지피는 일·육아 등의 분업에 종사했다. 군은 원시 공산사회의 최초의 집단이다. 무스티에기가 되자 모계제(母系制)사회에 따른 씨족(氏族)사회가 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