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사/중세 유럽과 아시아/봉건제도와 이슬람 문화/러시아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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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건국〔槪說〕[편집]

동유럽에 널리 분포되어 있던 동슬라브인은, 6세기에는 중부 드네프르 지방에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볼가강 하류에 있는 하자르 한국(汗國)에 종속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러시아의 기원을 스웨덴 계통의 바이킹(와랴그人)에서 찾으려는 의견도 있으나 그것은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9세기 말의 키예프 공국 성립에 즈음하여 노르만인이 사령관이나 왕실 재정에 관여하는 상인 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는 지배자들이 자주 와랴그인을 용병으로 사용하고 있다.

키예프 공국[편집]

-公國

도시 키예프(Kiev)의 성립은 오래되었으며 수장(首長)들에 대한 전설도 있지만, 키예프 공국으로서의 성립은 9세기 말이다. 전설에 의하면 노브고르트 와랴그의 수장 류리크의 사후 일족인 오레그가 키예프를 점령하고, 초대 후(侯)가 되었다고 한다. 2대째의 공(公) 이고리는 류리크의 아들이라 전해지며, 소위 류리크 왕조는 16세기까지 계속된다. 키예프 공가(公家)의 기원은 어떻든 간에 이때에는 키예프가 하자르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히려 이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키예프 공국은 10세기에는 비잔틴 제국과 통상조약을 맺었으며, 블라디미르 대공 때 전러시아를 통일했지만, 11세기가 되면 봉건화의 진행과 함께 분열되며, 러시아는 소공국 분립 시대를 맞이한다.

블라디미르 대공[편집]

-大公

Vladimir the Great(956?

1015) 처음에는 노브고로트공(公)이었는데, 형 키예프 공이 야로폴루크를 내쫓고 키예프공이 된다. 비잔틴의 군대 폭동을 진압하는 데 조력하고, 그리스 황제 바실리우스 2세의 여동생 안나를 아내로 맞아하였다. 크리스트교를 채택하고, 988년 키에프의 주민들을 드네프르 강에 집합시켜 세례하고, 권력강화의 일환일 되게 하였다. 그 이전에도――예를 들면 이고리의 처(妻) 오리가와 같이――개개의 그리스도 교도는 있었지만, 교회제도를 조직한 것은 그가 처음이며, 러시아의 봉건화 정도를 추측할 수가 있다. 이 시대에 비잔틴 건축술이 전래하였고, 그리스의 수도사(修道士)들은 슬라브 문자를 만들었다. 그리스의 성직자에게 돈과 토지를 주고, 성직자들은 그리스의 종교서적을 번역하며 연대기(年代記)를 썼다. 영웅시(英雄詩) 「발리나」는 이 시대의 키에프 국가를 습격한 유목민과 슬라브의 용사들과의 싸움을 노래하고 있다. 블라디미르의 아들인 야로슬라프 1세는 부친의 사업에 대한 위대한 후계자였다. 그는 전쟁이나 정복의 지도자로서보다는 성속(聖俗)문화의 추진자, 러시아 최초의 법전(法典)을 편찬한 입법자, 교회의 열성스러운 보호자로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또 비잔틴식 성당을 키예프와 노브고로트에 건립하여 비잔틴과의 사이에, 혹은 보다 진보한 문명을 가진 유럽 여러 나라와의 사이에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인 관계를 확립하는 일에 진력했다.